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68화 (68/93)

68화. 황덩치의 협박

PM 11 : 45.

강북 외곽에 위치한 인력 사무소.

팔을 묶인 채 소파에 앉은 은돈과 닥터 한의 모습이 보였다.

“읍! 읍!”

“우웁! 웁!”

“야, 이 새끼들 뭐라는 거냐? 테이프 뜯어 봐.”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남자의 말에 뱀피 무늬 셔츠남이 재빨리 은돈과 닥터 한의 입에 달라붙은 청 테이프를 떼어냈다.

“살려주세요! 아아악! 사장님!”

“당신들 진짜 닥터 한 몰라? 닥터 한?! 나 아침 방송에도 몇 번 나오고 했는데!”

“아니 이 새끼들 말 못해 죽은 귀신이 들러붙었나, 왜 이렇게 시끄러워? 야 주둥이 도로 봉해버려.”

우두머리의 명령에, 갓 태어난 아기 새마냥 목을 빼고 지저귀던 은돈과 닥터 한의 입이 다시금 봉인됐다.

“우웁! 웁우웁!”

“이 기집애 너 안 닥칠래!?”

“웁웁! 웁웁웁웁!”

“이게 진짜 확!”

뱀피 셔츠가 위협적으로 은돈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그녀가 더욱 몸부림을 쳐댔다.

“웁! 우우붑!”

“하……뭐 이년아! 뭐, 뭐!”

그가 졌다는 듯 은돈의 입에 붙은 청 테이프를 떼어냈다.

“푸하!”

은돈이 참았던 숨을 한꺼번에 터뜨리며 몹시 신속하고 즉각적인 비굴모드를 선보였다.

“저기요! 테이프만 떼주시면, 저희 정말 얌전히 있을게요! 맹세합니다!”

“……진짜지?”

“넵!”

은돈이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심쩍은 시선을 빛내던 뱀피 셔츠가 곧 그녀와 닥터한의 입에 붙은 테이프를 떼어냈다.

몇 분 후. 은돈이 멀찍이 선 덩치들의 눈치를 살치며 닥터 한에게 소근 댔다.

“침착해요 선생님. 제가 이래 뵈도 납치 유경험자에요.”

“유경험자……?”

“옛날에 우리 사장님이랑 같이 냉동 창고에 갇힌 적이 있었거든요. 하여간 겁먹을 거 없어요.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더 아프겠지. 차라리 즉사하는 게 나을 거야.”

생에 가장 비관적인 표정으로 닥터 한이 은돈의 말을 잘랐다.

“은돈 씨. 그거 알아? 공포영화의 법칙. 괴한들한테 납치당했을 때, 가장 먼저 끔찍한 최후를 맞는 게 바로 말 많은 인간들이야. 근데 우리……오늘 너무 시끄러웠잖아.”

닥터 한이 절망에 찬 헛웃음을 흘렸다.

젠장. 이 인간은 이미 겁에 질리다 못해 맛탱이가 갔어.

침착해라 차은돈. 이제 믿을 건 너 자신뿐이다.

그녀가 자신의 팔을 묶은 밧줄을 내려다보며 이를 앙다물었다.

“저기요. 뭐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은돈의 말에, 저만치서 담배를 물곤 낄낄대던 뱀피 셔츠가 고개를 돌렸다.

“뭐?”

“그쪽들 배후가 누구에요?”

“배우? 니 눈엔 우리가 배우로 보이냐? 엉? 우리 진짜 깡패여 이년아!”

이런 덴장 맞을.

은돈이 영혼을 리스 당한 듯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가까스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쪽한테 돈을 주고 날 잡아오게 시킨 사람이 누구냐구요.”

“아~그거?”

뱀피 셔츠가 피식 쪼갰다.

“기다려. 곧 여기로 온다고 했으니까.”

그때 인력 사무소 문 밖에서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가 들려왔다.

“오 마침 왔나보네.”

뱀피 셔츠의 말에 은돈의 표정이 굳어졌다. 귓가에 울려 퍼지는 야릇한 구두 발자국 소리.

‘문소라……?’

그녀가 가늘어진 눈으로 천천히 돌아가는 문고리를 주시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문이 열리며 낯익은 얼굴이 들어섰다.

“오우, 무다리 지탱한다고 구두가 욕보네……”

뱀피 셔츠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소형을 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너……”

은돈이 커다란 눈으로 소형을 올려다보았다.

거대한 몸에 딱 달라붙는 새빨간 원피스와, 길게 풀어헤친 머리.

평소와 다른 짙은 화장에, 14센티 킬힐까지.

“댁입니까?! 댁이 우릴 납치한 겁니까?”

“그쪽은 빠져유.”

소형이 닥터 한을 힐끗 노려본 후 등 뒤의 어깨 무리에게 말했다.

“잠깐 이 아자씨 데리고 자리 좀 피해주셔유.”

“아자씨? 내가 어딜 봐서 아자씨야 이 아줌씨야!”

울컥해서 외치는 닥터 한에게 뱀피 셔츠를 비롯한 어깨 무리들이 다가왔다.

잠시 후, 그들이 고성방가 하는 닥터 한의 주둥이를 다시 테이프로 봉하며 사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후……드디어 우리 둘만 남았구먼.”

소형이 의자를 끌어다 은돈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녀가 요염한 척 다리를 꼬자 허벅지의 셀룰라이트가 도드라지게 솟아올랐다.

“너……뭐야? 지금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 거야?”

한참 만에 은돈이 경직 된 얼굴로 묻자 소형이 하 웃어보였다.

“그러는 언니야말로 무신 생각으로 사장님의 병을 낫게 한 거여?”

“……뭐?”

“사장님의 식이장애 말이여.”

그녀가 은돈을 향해 상체를 기울이며 속삭이듯 말했다.

“사장님이 식이장애의 늪에서 허우적댈수록……우리한테 훨씬 득 될게 많다는 거 잘 알잖어?”

“우리?”

은돈이 우습다는 듯 실소했다. 소형도 그녀를 따라 웃었다.

“우리가 만든 음식이 아니면 입도 댈 수 없었던 사장님을, 언닌 결국 그리워하게 될 거여.”

“뭐?”

“생각해 봐. 사장님이 쓸모없어진 언닐 언제까지고 계속 옆에 두겄어?”

소형의 비아냥에 은돈이 차분하게, 그리고 서늘하게 대꾸했다.

“전담 요리사라는 그럴듯한 명분이 필요한 건 너지, 내가 아니야. 난 그런 거 없이도 내가 원할 때 언제든지 사장님 옆에 있을 수 있어.”

“……그려. 애인 사이라 이거지?”

소형이 거만하게 입 꼬리를 치켜 올렸다.

“정말 본인이 사장님 옆에 있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혀?”

“무슨 뜻이야?”

“무슨 뜻이긴.”

그녀가 품에서 자그마한 갈색 병을 꺼내들었다.

그리곤 은돈과 자신의 사이를 가로지른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초오 액이여.”

“?!”

일순 갈색 병을 내려다보는 은돈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초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었다. 그것이 독초라는 것과, 잘못 섭취했을 때 미각을 영원히 잃게 될 수도 있다는 것.

“길게 말 안 할겨. 먹어.”

스윽, 소형이 테이블 위의 갈색 병을 은돈의 앞으로 밀었다.

팔이 묶인 채로 은돈이 시선을 끌어올렸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절대로 억지로 먹이진 않을 테니께. 난 그저……언닐 테스트해 보려는 것뿐이여.”

“테스트?”

은돈이 기가 막힌 듯 되묻자 소형이 즉답을 꺼내놓았다.

“언니가 정말 사장님의 곁에 있을 자격이 되는지 알고 싶어.”

그녀가 잠시 뭔가를 망설이는 듯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이내 서늘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언니가 먹지 않겠다고 하면 난 군말 없이 이 초오 액을 들고 여길 나갈겨. 그리고는 내일 아침 여느 때처럼 똑같이 레스토랑에 출근해서, 이걸 사장님 음식에 넣을겨.”

“뭐?”

은돈이 커다랗게 부푼 눈으로 소형을 응시했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못 들었어? 언니가 이걸 먹지 않으면, 내일 아침 사장님이 언니 대신 미각을 잃게 될 거라고.”

격해진 감정과는 달리 소형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낮게 가라앉았다.

“사장님, 이제야 남들처럼 평범하게 먹고 마실 수 있게 됐는디……다시 미각을 잃게 되면 그거 너무 가엾잖어. 그러니까……잘 선택 혀 언니.”

“……이거 풀어.”

“선택부터 혀. 언니가 먹을건지, 아니면 사장님을 먹일건지.”

“이거 풀라잖아!”

은돈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소형은 조금도 동요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둘 중 하날 선택하기 전까지는, 이방에서 한 발짝도 못 나가.”

그러니까 어서 말혀. 차은돈.

소형이 소름끼치도록 차가운 시선으로 은돈을 응시했다.

은돈 역시 그녀를 노려보았고, 두 여자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못 먹겄지? 그럴 줄 알았어.”

후, 소형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차은돈. 니가 사장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고작 그 정도여. 넌 사장님을 지키기 위해 너 자신을 희생할 용기조차 없는 거여.”

“황소형. 너 미쳤어?”

“하긴. 두렵겠지. 이걸 마시면 미각을 잃게 될테고, 그럼 더 이상 요리사로서 주방에 설 수없을 테니께.”

“……”

소형의 말에 은돈의 눈빛이 일렁였다. 두 번 다시 주방에 설 수 없게 될까봐 두려운 것이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의 선택이 독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봐.

그 생각만으로도 심장이 발밑으로 곤두박질치는 기분이었다.

얄팍한 황소형의 술수에 놀아나고 싶지 않아. 하지만……만에 하나라도 정말 사장님이 초오 액을 마시게 되면? 나 때문에 사장님이 미각을 잃게 되면?

“하……그만 머리 굴리지 좀?”

소형이 어설픈 솜씨로 웨이브를 준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그냥 쿨하게 생각혀. 사장님 대신 이걸 마실 수 있는지 없는지. 사장님을 위해 니 꿈을 포기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니가 사장님을 사랑하는지 아닌지……”

음산하게 이어진 그녀의 말.

은돈이 제 앞에 놓인 자그마한 초오 액 병을 내려다 봤다.

소형이 살짝 떨리는 그녀의 손끝을 응시하며 먼저 운을 뗐다.

“후……좋아. 딱 삼십분 줄께. 난 지금 너한티 아주 과한 친절을 베풀고 있는 겨. 그러니께 삼십분 안에 신중히 생각해서 결정 혀.”

말을 마친 소형이 노랫 가사를 흥얼거리며 은돈의 주변을 또각또각,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은돈은 그저 앞에 놓인 초오 액 병을 들여다볼 뿐이었다.

***

“아니. 이렇게 하면 뭐라고 하는지 다 들리는데. 굳이 왜 나가라있으라고 한 거야 그 뚱땡인?”

인력 사무실 옆방.

동료들과 함께 벽에 바짝 귀를 대고 있던 뱀피 셔츠가 볼멘소리로 투덜댔다.

팔을 묶인 채 바닥에 굴욕적으로 무릎을 꿇은 닥터 한이 그들을 보며 연신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여길 어떻게 빠져나간다?

그가 저 멀리 책상위에 내팽개쳐져 있는 자신과 은돈의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도움을 구할래도 연락할 비책이 없는데……

순간. 닥터 한의 머릿속에 반짝! 하고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가 슬쩍 고개를 내려 자신의 왼쪽 팔목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벌어진 셔츠 소매 사이로 그의 보물 43호 스마트 워치가 보였다.

그래, 스마트 워치.

카메라부터, GPS, 블루투스 오디오, 그리고 전화 발신, 수신이 가능한 최첨단 고성능 임베디드 시스템의 바로 그 현대 문물!

꿀꺽. 닥터 한이 마른침을 삼키며 저만치의 악당무리를 응시했다.

다행이 그들 모두 은돈과 소형의 대화를 엿듣는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흑!컥!흠!”

나오지도 않는 헛기침을 해대며 닥터 한이 밧줄에 묶인 팔을 옴짝거렸다. 그리곤 최대한 자연스럽게 스마트 워치의 통화 기능을 터치했다.

좋아. 연결됐어.

“아니 나같이 무고한 시민을 납치 감금이라뇨! 이게 말이 됩니까!?”

제대로 전화가 걸린 것을 확인한 닥터 한이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홀로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바쁜 사람을 강북 외곽까지 끌고 오고 말이야! 아니 댁들이 똘똘이 인력 사무소 직원들이면 다야?! 똘.똘.이 인력사무소에서 일하면 이렇게 무고한 시민을 함부로 감금해도 돼?”

“저 새끼가 약을 빨았나, 왜 또 지랄이야?”

뱀피 셔츠가 인상을 확 구기며 닥터 한에게 다가왔다.

찔끔한 닥터 한이 재빨리 시선을 내려 워치를 바라봤다. 통화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상대방은 전화를 끊지 않은 채 이 모든 사단을 잠자코 들어주고 있었다.

용기를 낸 닥터 한이 한 번 더 목소리를 높였다.

“하여간! 나랑 은돈 씨가 여길 나가는 순간 댁들을 고용한 그 여잔 바로 새 되는 거야! 듣자하니 무슨 독초 액을 가지고 와서 은돈 씨한테 억지로 먹이려는 모양인데, 그거 범죄야 범죄! 그것도 중범죄!”

“그래서 뭐? 그게 뭐 임마? 우린 돈 되는 일이면 사람 죽이는 것 빼곤 다 해!”

퍽!

뱀피 셔츠가 자신의 주먹을 닥터 한의 명치에 내리 꽂았다.

“윽……! 내가……내가 이거 치료비 기필코 청구한다, 내가……”

자신을 에워싸는 악당 무리를 보며 닥터 한은 마지막까지 패기를 잃지 않았고……

같은 시각. 행운 빌라 입구.

말없이 닥터한의 부르짖음을 듣고만 있던 독현이 핸드폰을 귀에서 떼어냈다.

그의 얼굴이 전에 없이 심각하게 굳어져 있었다.

“두 사람 계속 연락 안 되는데, 지금이라도 경찰에 연락해보는 게 낫겠어요.”

지세가 받지 않는 은돈의 핸드폰에 재차 전화를 걸며 말했다.

“전화할 필요 없어. 못 받을 거야 어차피.”

독현이 지세를 향해 낮은 어조로 뇌까렸다.

차갑게 가라앉은 그의 눈빛을 본 지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채고 자리에 멈춰 섰다.

공중에서 맞물린 두 사람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일렁였다.

***

“5초, 4초, 3초, 2초, 1초……땡. 삼십분 지났네.”

인력 사무소.

벽시계를 바라보던 소형이 기다렸다는 듯 은돈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 밀었다.

“꼴좋구먼 차은돈.”

그녀가 묘한 승리감에 도취 돼 이죽댔다.

“그래 생각은 다 한겨? 시간은 이미 충분히 줬으니께……이제부터 한번 들어볼까? 니 생각을.”

“……”

은돈이 대답 대신 잠자코 소형을 마주보았다.

픽, 소형이 그녀를 보며 웃었다.

“왜? 말하기 쪽팔린 겨? 그냥 솔직히 말혀. 독초 액 따위는 절대 못 먹겠다고. 차라리 사장님을 대신 먹이라고. 사장님이 미각을 잃든지 말든지, 상관없다고!”

“……황소형.”

드디어 은돈의 입이 열렸다. 소형이 고조 된 표정을 가다듬곤 그녀를 응시했다.

“말 혀.”

“……니 말대로야. 난 그 독초 액 못 먹어. 아니, 안 먹어.”

은돈의 말에 소형이 한 번 더 노골적인 비웃음을 머금었다.

“비겁하게. 결국 꼬리 내릴거믄서 끝까지 당당한 척은 왜 하는 겨? 거봐. 언닌 딱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여. 미각을 잃는 게 그렇게 무서웠어?”

“……무서워서 안 먹겠다는 거 아냐.”

은돈이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그녀를 보며 말했다.

“내가 그걸 먹으면. 사장님이 얼마나 괴로워할지 아니까 안 먹겠다는 거야.”

“뭐?”

“내가 나 대신 사장님을 희생시킬 수 없듯이, 사장님도 똑같을 거야. 자기 대신 내가 초오  액을 먹었다는 걸 알면 미안하고 괴로워서 견딜 수 없을 거야.”

“……핑계는 좋구먼. 말로는 그럴싸하게 누가 못 혀?”

소형이 냉랭한 시선을 곧추세웠다.

“하여간 니 뜻은 잘 알겄어. 니가 원하는 대로 이 초오 액은 내일 아침 사장님 밥상에 들어가게 될 거여.”

“황소형. 소형아. 넌 절대 그렇게 못해. 사장님을 좋아하니까.”

멈칫. 소형이 움직임을 멈춘 채 은돈을 응시했다.

“방법은 잘못됐지만……니가 사장님을 진심으로 동경하고 좋아한다는 거 알아.”

“……”

“사장님 음식에 초오 액을 넣겠다구? 아니. 넌 그러지 않을 거야. 그렇게 못할 거야.”

“……뭘 알어……니가 나에 대해 뭘 안다고……”

“알아. 좋아하는 사람한테 그런 짓을 할 만큼 넌 독하지 못해.”

은돈이 시선을 내렸다가 다시 소형을 보았다.

“이 모든 짓을 혼자 계획 했을 만큼 네가 간이 크지 않다는 것도 알아. 아주 잘.”

“그래……그렇게 잘 안단 말이지……”

부들부들. 소형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정곡을 찔린 양, 얼굴이 화끈거렸고, 부끄러웠고, 화가 났다.

머릿속으로 서로 상반된 두 가지 생각들이 마구 휘몰아쳐 지나갔다.

난 사장님을 좋아하지 않아.

아니, 사실은 좋아해.

난 은돈 언니를 용서할 수 없어.

아니……사실은 언니한테 못된 짓을 하는 날 용서할 수 없어.

은돈 언닌 사장님 옆에서 사라져야 돼.

아니, 사실 정말로 사라져야 할 사람은……

“니까짓 게 대체 내 마음을 어떻게 아냔 말이여!”

짝!

일순 차가운 마찰음 소리와 함께 은돈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소형이 파르르. 떨리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차은돈. 테스트는 이제 끝났어! 넌 사장님 곁에 있을 자격 없어! 자격 미달이라고!”

제발 그런 눈으로, 그런 얼굴로 날 보지 마.

소형이 격해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한 번 더 손을 치켜들었다.

그때, 살짝 벌어진 문 틈새로 냉담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군. 이런 식으로 자격을 시험한단 말이지.”

“!?”

소형이 커다래진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문고리위에 손을 얹고 서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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