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65화 (65/93)

65화. 지독현의 트라우마 Ⅱ.

‘엄마! 엄마! 나 아파요! 열도 나고 재채기도 해요!’

성북동에 위치한 단독 주택.

적막한 거실 위로 9살 독현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참참!’

자신이 아직 신발도 벗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각한 독현이 다시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 와중에도 한손은 불덩이 같은 이마를 꾹 붙들고 있었다.

아직 뜨거워.

독현이 생긋 웃었다.

‘세상에. 열이 39도가 넘네? 안 되겠다. 어서 집에 가 봐. 어머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그가 담임 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양 손에 하아, 하아, 입김을 불었다.

그리고는 재빨리 이마를 꾹 눌렀다.

“더 뜨거웠으면 좋겠다……”

며칠 전 봤던 TV 드라마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엄마 역할의 배우가 열이 펄펄 끓는 아들을 안고 밤새 곁을 지키는 장면.

잔뜩 부푼 가슴을 끌어안고, 그가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올랐다.

그 모습 뒤로 언뜻 주방이 보였다. 최고급 대리석 식탁위엔 독현의 친모 성나희가 아들을 위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준비한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

“엄마-! 나 열이……”

잠시 후.

신이 나서 드레스 룸 문을 왈칵 연 독현이 우뚝……자리에 멈춰 섰다.

“엄마……?”

스산한 공기가 불덩이처럼 달아오른 독현의 목덜미를 휘감았다.

그가 바닥에 나동그라진 향수를 보며 허리를 굽혔다.

그와 동시에 짙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렀다.

“……”

어린 독현이 말없이 시선을 끌어올렸다.

누군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엔, 아직 너무 이른 나이였다.

그가 옷가지 사이에 목을 매단 친모 성나희를 빤히 응시했다.

달아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지만 발끝이 바닥에 붙박여 움직여지질 않았다.

친모의 자살을 눈앞에서 목격한 아홉 살 소년이 그 순간 할 수 있는 거라곤, 그저 멍하니 자리를 지키는 것 뿐이었다……

‘아니 다들 나가라니까!? 여기 사건 현장이야 사건 현장!’

‘잠깐만요, 거실 사진 한 컷만 딸게요! 야 카메라! 여기 찍어!’

‘아 글쎄 나가시라고! 경찰만 출입 가능한 거 몰라!’

몇 시간쯤 지났을까.

여배우 성나희의 초라한 죽음을 보도하려는 기자들과 그를 막으려는 형사들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식탁에 앉은 독현이 수저를 들었다.

한 방울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가 밥 한술을 떠 자그마한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가 처음으로 해준 밥. 국은 짰고, 반찬은 하나같이 싱거웠다.

그래도 남기지 말고 다 먹으면……잘했다고 칭찬받을 지도 몰라.

바보 같은 생각을 하며 독현이 천천히 밥을 씹었다. 그 순간, 알 수 없는 역겨움이 솟아났다.

억지로 삼키던 음식을 전부 토해내며, 9살 소년이 식탁 아래로 쓰러졌다.

그 모습을 찍기 위해 일제히 달려드는 카메라들.

‘괜찮으냐!?’

그 즈음, 경호원들을 대동한 채 저택을 찾은 지회장이 축 늘어진 친손주를 안아들었다.

***

빈소.

팔에 상주 완장을 찬 독현이 엄마의 영정사진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었다.

‘저 녀석은 울지도 않는군.’

‘회장님. 이번 성나희 씨 일로, 회장님에 대한 안 좋은 얘기들이 떠돌고 있습니다. 성나희 씨 남편……아, 아니, 예전 부사장님의 그 ’사고‘에 대해서도……재조사가 필요하다는 말들이……’

‘다른 데서 얘기하지.’

지회장이 어린 독현을 힐끗 내려다보고는 자리를 피했다.

‘쯧쯧, 어린 게 참 안됐네. 이 험한 세상에 혈혈단신 홀로 남겨졌으니……’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이 안타깝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독현은 말없이 친모의 영정사진에 몰두할 뿐이었다.

생전, 성나희의 음성이 그의 귓전을 울렸다.

‘널 낳지 말았어야 했어.’

‘니가 내 인생을 망쳤어.’

독현이 고개를 치켜들곤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여배우의 얼굴을 응시했다.

날 낳기 전 사진인가 보다. 내가 태어난 후로 엄마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으니까.

‘……엄마. 예뻐요.’

그가 사진을 향해 중얼거렸다.

엄마가 그랬죠. 여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아름다워야 하는 거라고.

못생긴 건 죄악이라고……그래서 난 예쁜 게 좋아요. 그래서……엄마가 제일 좋아요.

나 일부러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말도 매일매일 했어요.

예쁘다고, TV에 나오는 다른 여자들보다 엄마가 훨씬 더 예쁘다고.

하루도 안 빠지고 그렇게 말하면, 엄마도 내가 듣고 싶은 말 한번은 해줄 줄 알았어요.

근데 왜 끝까지 안 해줬어요……?

‘한번만,’

9살, 어린 상주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

‘한번만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내내 망설여 왔던 그 한마디를 터뜨리자, 비로소 독현의 눈가가 젖어들기 시작했다.

눈물이 그의 뺨을 타고 아롱아롱 굴러 떨어졌다.

‘엄마, 사랑한다고 해주세요. 한번만 해 주세요……’

누르고 누르다 한번에 터져버린 감정들은, 쉽사리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숨 조이는 아이의 흐느낌 소리가 적막한 빈소 위에 울려 퍼졌다.

‘……사랑해요.’

그때였다. 귓가를 파고드는 한마디에, 울고 있던 독현이 동그랗게 눈을 치떴다.

‘사랑해요, 사장님.’

잘못 들은 게 아냐.

등 뒤에서 재차 들려오는 그 소리에, 홱- 그가 돌아섰다.

그러자 밥 차 봉사요원 띠를 두른 웬 뚱녀가 보였다.

‘……뭐예요?’

어린 독현이 제게 다가오는 뚱녀를 멍하니 올려다 보았다.

어쩐지, 이 뚱뚱한 누나에게서만 반짝반짝 빛이 나는 것 같다.

‘뭐냐니까요? 여기 우리 엄마 빈소에요. 함부로 들어오면 안돼요.’

‘아 저기……’

찰나였지만, 묘한 표정으로 독현을 바라보던 뚱녀가……곧 난감한 듯 뒤통수를 긁적였다.

‘나, 요 앞  행사장에서 밥 퍼 주는 사람인데……실례지만, 실례가 안 된다면 육개장 좀 얻어먹을 수 있겠니?’

‘밥 퍼주는 사람이 왜 밥을 구걸하러 다녀요?’

‘그게……육개장은 뭐니 뭐니 해도 장례식장 육개장이 제일이거든……’

‘……?’

군침을 삼키며 헷, 웃는 뚱녀. 독현이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후.

빈소 한편에 마련된 테이블위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육개장 대접이 올라왔다.

그와 동시에 뚱녀가 예쓰! 하며 양 주먹을 배 쪽으로 힘차게 끌어당겼다.

맞은편에 앉은 꼬마 독현이 한손으로 턱을 괸 채 그녀를 바라보았다.

‘많이 드세요 누나.’

‘어? 어……너 참 착하구나.’

‘불쌍한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말라고 배웠거든요.’

‘부, 불쌍한 사람? 내가 그래 보이니?’

뚱녀의 물음에 독현이 아이답지 않은 센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름이 뭐에요?’

‘이름?’

뚱녀가 멋쩍은 듯 대꾸했다.

‘난……차은덕이라구 해.’

‘차은덕? 거짓말.’

독현이 다 안다는 듯 뚱녀를 노려봤다.

‘누나 이름 없잖아. 누나 귀신이잖아.’

‘……잉?’

은‘돈’이……황당하다는 듯 꼬마 독현을 응시했다.

‘내가 왜 귀신인데?’

‘봐. 아까부터 아무도 누날 아는 척도 안하고, 누나랑 눈도 안 마주치잖아.’

‘야 그건!……’

순간 말문이 막힌 그녀가 눈을 급하게 깜박였다.

‘너, 너 이렇게 예쁜 귀신 봤어?’

‘……못생겼어. 뚱뚱해.’

‘뭐시여!?’

울컥 한 은돈이 독현의 머리를 콱 쥐어박았다.

‘아! 지금 나 때렸어?’

‘이게 이게, 커서 뭐가될라고! 너 그렇게 나오는 대로 막 내뱉다간, 누가 나중에 니 머리 위로 국 대접을 끼얹을지도 모른다고! 이……이 젠장맞을 외모지상주의자야!’

은돈의 외침에, 독현 역시 지지 않으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난 절대 아름답지 않은 걸 곁에 두지 않아!’

‘세상에.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대산데? 너 참 어릴 때부터 싹수가 누랬구나.’

마치 칭찬하듯, 그녀가 독현의 머리를 꾹, 꾹 힘주어 쓰다듬었다.

아파! 독현이 그녀의 손을 확 뿌리쳤다.

‘그래서! 누나 정체가 대체 뭐냐구!’

‘하, 그렇게 내가 누군지 알고 싶어?’

은돈이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슬픈 얼굴로 입을 열었다.

‘난. 사실 천사야. 얼큰이 육개장이 먹고 싶어 하늘에서 무지개를 타고 내려왔지.’

‘천사……?’

독현이 한심한 시선으로 은돈을 바라보다, 곧 벌떡 몸을 일으켰다.

‘빨리 먹고 나가. 할아버지한테 쫓겨나기 전에.’

은돈이 푸시시 웃었다. 뒤이어 그녀의 입에서 의미심장한 한마디가 튕겨 나왔다.

‘난 차은덕도 될 수 있고, 귀신도 될 수 있어. 네가 만든 환상이니까.’

‘뭐?’

독현이 다시 은돈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가 휘- 빈소를 둘러보았다.

‘혼자서 감당하긴 힘든 상황이잖아. 두렵고, 외롭고, 아프고……그래서 니가 날 만들어 낸 거야.’

독현의 눈빛이 흔들렸다.

‘거짓말.’

‘……풉! 거의 속을 뻔 했는데. 에이, 됐다 됐어.’

멋쩍게 목덜미를 쓸어내린 은돈이 곧 척!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태연히 육개장에 밥을 마는 그녀를, 독현이 우두커니 선 채 바라보았다.

‘왜? 너도 먹고 싶어?’

‘별로.’

은돈이 숟가락 하나를 독현에게 내밀었다.

‘자. 같이 먹을까?’

‘싫어.’

‘왜? 먹어봐.’

‘싫다고 했잖아.’

바짝 날을 세우는 그를 보며, 은돈이 심드렁히 콧김을 내뿜었다.

‘좋아. 먹지 마. 나 혼자 다 먹어버리면 돼.’

그녀가 뾰로통한 독현을 본 체 만 체 하며 육개장 국물을 들이켰다.

‘크- 이거야 이거! 속이 아주 확 풀리,’

꼬르륵……

순간 독현의 배에서 울려 퍼진 앙증맞은 소리.

‘그러지 말고. 그냥 먹지?’

‘안 먹어.’

‘……너 엄마 돌아가신 날부터 굶었잖아.’

‘아니야.’

‘맞으면서.’

‘아니라니까!’

정곡을 찔린 독현이 목소리를 높였다.

‘아구 무서라~ 요즘 애들 하여간. 쯧쯧……’

은돈이 혀를 차며 다시 육개장을 떠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묘하게 심통이 난 독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왜 다른 사람들처럼 내 눈치도 안보고, 제발 좀 먹어보라고 애원하지도 않는 거야?

‘나도 먹고 싶어! 배고파 죽겠단 말이야!’

그가 꽥 소리를 내질렀다.

‘배고프면 먹어. 먹으면 되잖아.’

‘……안 돼. 또 토할 거야.’

‘……’

‘무서워. 사람들 앞에서 토할까봐.’

은돈이 겁에 질린 독현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가 들고 있던 숟가락을 탁! 놓았다.

‘너 절대 사람들 앞에서 창피 당하는 일 없을 거야. 내가 약속해.’

단호하게 이어진 한마디. 그녀가 독현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

‘이 손 잡고 있음, 절대 토 안 해.’

‘왜?’

‘왜냐니? 누난 천사잖아.’

‘……거짓말.’

‘이번엔 진짜야. 한번 믿어 봐.’

‘……’

독현이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은돈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곤 나머지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육개장을 한 입 가득 떠 입에 넣었다.

‘어때? 괜찮지?’

‘……응!’

진짜였어.

독현이 놀란 토끼 눈으로 은돈과 마주잡은 손을 내려다 봤다.

뱃속에 따뜻한 국물이 들어오자, 온몸의 감각기관이 다시 되살아나는 듯했다.

그가 은돈의 오른손을 붙든 채 허겁지겁 밥을 먹기 시작했다.

몇몇 조문객이 그 모습을 힐끔대며 귓속말을 속닥거렸다.

그 후……얼마쯤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정신을 차린 독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턱을 괸 채 흐뭇하게 자신을 지켜보는 은돈과 눈이 마주쳤다.

어쩐지, 조금 초조해졌다.

‘나 이거 다 먹으면, 사라지는 거야?’

‘응?’

‘……누난 천사잖아.’

심각하게 말을 잇는 독현을 보며 은돈이 장난스럽게 웃었다.

‘너 있잖아. 이담에 나한테 장가올래?’

‘싫어. 난 예쁜 여자가 좋아……우리 엄마처럼.’

독현이 살짝 고개를 떨궜다. 은돈이 그를 향해 다정하게 운을 뗐다.

‘그럼 내가 너희 엄마처럼 예뻐지면 되지. 그리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그녀가 독현을 마주보았다.

‘엄마 대신, 내가 널 사랑해주면 되지.’

‘뭐……?’

독현이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은돈이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거, 남기지 말고 다 먹어. 알겠지? 약속해.’

‘응.’

따뜻하다.

은돈의 손길이 계속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독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그가 다시 육개장을 한입 떠먹곤 얼굴을 들었다.

‘누나, 근데 천사들은……’

말을 잇던 독현이 텅 빈 맞은편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가 빈소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렸다. 더 이상 은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거 봐. 갔잖아.’

미묘한 감정이 솟아올랐다. 허무함. 실망감.

독현이 반쯤 남은 육개장을 내려다보았다.

‘남기지 말고 다 먹으랬는데……’

그가 다시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곤 조문객들 사이에 홀로 앉아 묵묵히 육개장을 떠먹었다.

***

제 3 진료실.

진료 의자에 자는 듯 누워있는 독현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뺨을 타고 차가운 눈물이 툭 떨어졌다.

은돈이 말없이 그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 이제 됐습니다. 지독현 씨에 대한 치료는 여기까지에요. 차은돈 씨? 수고 했어요.”

최면술사 옥자의 말에 은돈이 촉촉해진 눈가를 얼른 찍어 눌렀다.

“전 그냥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요 뭐. 근데……사장님이 깨어났을 때, 나랑 주고받은 대화를 기억 할까요?”

“글쎄요. 지독현 씨가 과거로 돌아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차은돈 씨가 아니라 차은’덕‘씨니까요……”

옥자의 말에 은돈이 살짝 웃었다.

“사장님만 괜찮아질 수 있다면 전 아무래도 좋아요.”

“자……이제 지독현 씨를 깨울 때가 된 것 같군요.”

옥자가 마지막 향초를 훅, 불어 껐다.

그와 동시에 닥터 한이 기다렸다는 듯 박수를 탁탁! 내리쳤다. 그러자 전등이 짠, 켜지며 진료실이 한층 밝아졌다.

“지독현 씨……이제 과거의 기억에서 자유로워지세요……그대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던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이제 전처럼 아프지만은 않을 겁니다……그때는 혼자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당신 곁에 소중한 사람이 함께하니까요……”

옥자가 은돈을 힐끗 바라 본 후 다시 독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자. 내가 하나 둘 셋 하고 손가락을 튕기면 눈을 뜹니다……하나, 둘, 셋.”

딱, 하고 옥자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와 동시에 은돈이 마른침을 삼키며 독현의 얼굴위에 자신의 면상을 들이댔다.

“사장님……사장님? 나 보여요? 이거 몇 개에요?”

부산스럽게 손가락을 흔드는 차은돈. 그래, 차은돈……

가까스로 눈을 뜬 독현이 자신의 시야에 가장 먼저 들어온 그녀를 빤히 주시했다.

“사장님, 괜찮은 거죠……?”

환한 조명에 눈이 부셨다. 독현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리곤 의자에서 상체를 일으키자, 은돈이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조심해요! 조심조심.”

오버스럽게 자신을 챙기는 그녀를, 독현이 말없이 바라보았다.

“은덕이.”

“네……?”

“은덕인 어디 갔지.”

독현이 양손으로 은돈의 볼을 주우욱 잡아 늘렸다.

“이렇게 하니까 은덕이랑 좀 비슷하군.”

“이거 앙나여?” (이거 안놔요?)

“……차은덕. 아니 차은돈. 내 기억 속에서 널 봤어.”

“……아, 그래요?”

은돈이 짐짓 태연한 척 말했다. 뭐야 이 남자. 깨어나자마자 한다는 말이 겨우 ‘은덕이 어디갔지’야?

잔뜩 긴장했던 은돈이 푸, 실소를 머금었다.

“사장님. 정신 차려요. 이거 지금 꿈 아니거든요? 은덕인 대체 누구에요?”

그녀의 너스레에, 독현이 현실감각을 되찾으려는 듯 한손으로 머리를 거머쥐었다.

“좀 어지럽군.”

“어지럽고 나발이고! 자 지독현 씨! 이거 한번 먹어봐요!”

그즈음, 성격 급한 닥터 한이 미리 준비해둔 초콜릿 상자를 독현의 앞으로 내밀었다.

“아니 다들 왜 이렇게 태평해? 난 궁금해서 온몸에 두드러기가 날 지경인데? 독현 씨. 최면 치료는 더 없이 완벽하게 끝났어요. 우리 예상대로라면……당신은 이제 차은돈 씨 음식 뿐 아니라, 모든 음식에 거부감을 느끼지 않아야 해요. 그러니까, 자……한번 시험해 봅시다.”

독현이 제게 내밀어진 초콜릿 상자를 지그시 내려다 봤다.

“사장님. 안 될 것 같으면 하지 마요. 애초에 사장님한테 걸린 자기암시를 풀려고 했던 거지,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았어요. 만약 못 먹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을 잇던 은돈이 스윽- 초콜릿을 집어 드는 독현을 보며 저도 모르게 가슴을 부여잡았다.

그 어떤 장면도 지금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한 컷만큼 은돈의 심장을 뛰게 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닥터 한과 한데 손을 마주잡고는 독현을 응시했다.

그 순간, 독현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손에 든 초콜릿을 입으로 가져갔다.

……같은 시각.

지명준 회장 자택.

경비가 삼엄한 정원을 지나, 자택 현관 앞에 선 소형이 후-하-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벨을 누르자, 곧 안에서 익숙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왔니?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어.

“……소라 언니. 지 들어가두 되지유? 회장님께 할 말이 있어서 왔는디.”

-물론이지. 어서 들어와. 마침 나도……너한테 줄 ‘임무’가 하나 있거든.

소라의 말에, 소형이 각오를 다지듯 숨을 훅 들이마셨다.

이윽고 현관에 걸려있는 3중 장금장치가 해제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려. 들어가자. 들어가는겨.”

차은돈을 절벽 아래로 밀치려면……이제 나도 같이 굴러 떨어지는 수밖엔 없어.

소형이 눈빛을 번득이며, 자택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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