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61화 (61/93)

61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빨가면 차은돈.

“하. 끝까지 이런 식이다 이거지……”

독현이 사라진 후.

소라가 싸늘한 얼굴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읊조렸다.

소형이 우물쭈물하며 그런 소라를 바라보다 곧 용기를 내 입을 열었다.

“저기……언니.”

“뭐? 말해요.”

소라가 소형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아니, 다른 게 아니구유……소라 언니는 사장님이랑 대체 무슨 사이……”

순간 소라의 차가운 시선이 소형에게 내리꽂혔다.

“우리가 어떤 사인지, 굳이 말해야 하나?”

“그건 아닌디……지가 알기로는 분명 사장님 애인은 은돈 언니가 맞거든유. 근디 오늘 보니께 소라 언니도 사장님이랑 왠지 트, 특별한 사이 같아서……”

“하아-”

소라의 입에서 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소형 씨. 내가 이제부터 좀 편하게 불러도 되죠?”

“물론이지유!”

“그래……소형아. 너 지금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싸늘하게 돌변한 그녀의 태도에, 소형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가 무슨 생각을……”

“가령 내가 멍청하고 둔해빠진 널, 일부러 이 레스토랑에 끌어들여 차은돈을 내쫓는데 일조시켰다던가. 그런 생각 말이야. 하고 있는 거지?”

“어, 언니……?”

“지독현한테 눈이 먼 내가, 널 이용해서 차은돈을 내보낸 거라고 생각하잖아. 아냐?”

“아니어유! 이용이라니……언니가 왜 지를 이용해유.”

얼른 손을 내젓는 소형을 보며, 소라가 잠시 침묵하다 말했다.

“소형아. 까짓 이용 좀 당하면 어때?”

“……예?”

“덕분에 넌 원하는 걸 가지게 됐잖아.”

“지가 원하는 거유……?”

“차은돈의 대타 자리 말이야.”

대타……가슴에 콕 박히는 그 말에 소형의 눈빛이 떨렸다.

소라가 그녀를 마주보며 다시금 확인사살을 가했다.

“넌 차은돈의 대체품일 뿐이야, 소형아. 이 레스토랑에서 차은돈 대신 살아남는 거, 딱 거기까지가 네 역할이라구. 그러니까……주제넘게 그 이상을 꿈꾸진 마.”

“그……이상?”

“이 레스토랑 오너한테, 지독현한테. 딴 맘 품지 말란 소리야. 난 네 하찮은 감정까지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으니까.”

“무, 무신 말을 그렇게……”

버벅 대는 소형을, 그녀의 거대한 몸집을, 소라가 혐오스럽게 응시했다.

그리곤 곧 몸을 일으켜 독현이 사라진 문가로 다가갔다.

“차은돈 그 여자처럼 쫓겨나고 싶지 않으면. 정신 바짝 차려야 할 거야. 이건, 널 위해서 하는 말이야.”

타악. 이윽고 문소리와 함께 소라가 사라졌다.

내가 쫓겨나……? 은돈 언니처럼?

풀썩, 소형이 주인 없는 소파에 몸을 앉혔다.

불안감 초조함. 당혹스러움. 여러 가지 감정이 교차로 밀려들었다.

뒤이어 그녀가 협탁 위 식어버린 자신의 음식을 응시했다.

“사장님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건……너나 나나 똑같구먼.”

씁쓸한 한마디를 내뱉으며, 소형이 음식 접시를 치우기 시작했다.

***

“아아아악-!”

뷰티 클리닉. 침대 위의 은돈이 손거울에 비친 자신의 울긋불긋 한 얼굴을 보며 비명을 내질렀다.

“이게, 이게 뭐에요! 선생님?! 왜 제 얼굴에 열꽃이 잔뜩 핀 거죠?!”

“진정하세요. 이게, 시술 직후라 붉은 기가 좀 도는 것뿐입니다.”

“좀이 아닌 데요! 제 얼굴 좀 보세요! 채도며 색감이며! 마치……마치 원숭이 궁둥이 같잖아요!”

“푸흡!”

순간 웃음을 참지 못한 의사가 재빨리 표정을 바로하며 수습성 멘트를 던졌다.

“레이저를 좀 강하게 쏴서 그래요. 날 믿으세요. 얼굴의 홍반은 금방 사라질 겁니다.”

“언제 사라지는데요! 언제!”

“그게, 아마도 일주일내로……”

“일주일?! 그 말인즉슨……최소 일주일간……이 원숭이 히푸 색깔의 상판떼기를 유지하라는……?”

은돈이 좌절한 듯 손거울을 툭, 떨궜다.

그때 곁에 서 있던 미자가 위로하듯 은돈의 어깨를 다독였다.

“친구야……너 혹시, 영화 헬보이라고 들어봤니……?”

헬보이라 함은, 붉은 면상의 뿔 달린 괴수가 등장하는 SF 블록버스터가 아니던가.

“너, 지금 뿔만 달면 딱 여자 헬보이,”

“블록버스터 급으로 줘터지기 싫으면 주둥이 다물어라……”

음울하게 읊조린 은돈이 곧 홍고추처럼 새빨간 면상을 감싸 쥐었다.

내가 미쳤지. 오미자 저 년 말에 홀려서 이런 되도 않는 시술을 받다니……

만에 하나, 이 부작용이 만개한 얼굴로 지독현과 맞닥뜨리기라도 한다면……

“안 돼! 절대로 안 돼!”

최악의 순간을 상상해버린 은돈의 입에서 살벌한 비명이 튀어나왔다.

후다닥, 그녀가 곧 침대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로부터 약 한 시간 뒤.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후드 모자를 푹 눌러쓴 은돈이 죄인마냥 빠르게 걸음을 재촉했다.

“야. 너 진짜 일주일간 집에만 있으려고? 지독현 사마는 어쩌게? 안 만나?”

미자의 물음에, 앞서 가던 은돈이 단호히 지껄였다.

“어차피 사직서까지 냈잖아. 안 봐. 안 볼 거야.”

“근데……지금 타이밍이 좀 거시기 하지 않나? 너 일 관두고 지독현이랑 싸우기까지 했다며? 근데 이대로 잠수 타버리면……아마도 상대방은 헤어지자는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헤어지자는 의미? 은돈이 우뚝 걸음을 멈춰 세웠다.

“미자 너. 지독현 그 인간이 얼마나 여자 얼굴을 따지는 지 알아? 날 처음 봤을 때, 얼마나 갖은 모욕과 꼽을 줬는지 아냐고.”

은돈의 눈앞으로 과거, 뚱녀 차은돈을 하대하던 독현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뒤이어 황소형을 냉대하던 그의 모습도 떠올렸다.

후- 심호흡을 하며 그녀가 미자의 어깨를 붙들었다.

“지금 내 면상을 보면, 사장님 입에서 먼저 헤어지잔 소리가 나올 거야. 분명해. 날 보면 충격 먹고 실망해서 도망갈 거야.”

“옴마? 이 년 왜 이렇게 오바 육바야? 얼굴에 열꽃 좀 폈다고 애인한테 헤어지자는 남자가 어디 있냐!?”

“보통은 없지! 근데 그 인간은 달라. 그 인간은……외모지상주의계의 지드래곤 같은 존재라고……”

그녀가 지끈 거리는 머리를 거머쥐었다. 그와 동시에 독현의 차가운 음성이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차은돈 넌 삼 개월 간 정직이야.’

‘똑바로 행동해. 중간에서 어설프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지금 네 모습, 아주 헤퍼 보이거든.’

“……”

은돈이 어두워진 낯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그래 차라리 잘됐는지도 몰라. 나 당분간 사장님 얼굴……보고 싶지 않았거든.”

“흠. 친구야. 당장 개콘에 투입 되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상판으로 제발 진지한 얘긴 하지 말아주라. 웃겨 돌아가실 것 같거든.”

“이, 이것이……!”

순간, 미자의 멱살을 끌어 잡은 은돈의 시야에 고급 진 외제차 한대가 들어왔다.

행운 빌라 앞에 멈춰서는 그 차를 보며, 운전석에 앉은 차주를 보며……은돈이 반 바퀴 굴러 전봇대 뒤로 몸을 숨겼다. 마치 닌자 와도 같은 스피드였다.

“야 차은돈. 너 지금 니 몸이 전봇대에 가려진다고 생각 하냐? 그게 숨은 거여? 너 무슨 꿩이여? 머리만 수풀 속에 감추고 완전하게 숨었다고 생각하는……”

“꿔, 꿩이고 나발이고 쉿 해 쉿! 쒜랍하란 말이야!”

“야……이미 틀린 거 같은데. 지독현 사마 말이야. 차에서 내렸거든? 근데 지금 정확히 네가 숨은 전봇대를 노려보고 있어.”

“뭐?”

“그냥 나오지……계속 그러고 있다간 니 꼴만 더 우스워질 것 같은데……지금 니 애인 표정 무지 안 좋다……”

미자의 말에, 은돈이 살짝 후드 모자를 내리고 고개를 치켜들었다.

“나 어때? 얼굴 때깔 좀 돌아왔어? 솔직히 말해봐.”

솔직히?

미자가 여전히 붉은 기 가득한 은돈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느 때보다 진실된 어조로 말했다.

“나 지금……원숭이 엉덩이랑 마주보고 얘기하는 기분이야……”

이……이런 드록바 같은 년. 은돈이 격한 서러움에 이를 앙 물었다.

그리곤 다시 정신을 추스린 그녀가 다가오는 독현의 발소리에 냉큼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다.

“아이구야, 이게 누구야! 지독현 사마 아니세요!”

이윽고 들려오는 미자의 호들갑. 독현이 곁으로 다가 온 게 분명했다.

“오랜만이군. 구기자 씨.”

아니나 다를까. 미자를 이름으로 능욕하는 독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구기……구기자라니……참 한결같이 볼 때마다 상처를 주시네요? 하긴 뭐, 결명자 씨라고 안 한 게 어디에요? 호홋!”

가식적인 미자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전봇대 뒤 은돈이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제발 이쪽으로 오지 마. 제발 아는 척 하지 마.

“……차은돈.”

곧 그녀의 바람을 송두리째 앗아가며, 독현이 입을 떼 열었다.

그의 메마른 시선이 정.확.히 전봇대를 향해 있었다.

“거기서 뭐해.”

“네?!아니, 여기 돈 떨어져서요……”

제기랄. 이런 거지같은 핑계를 대다니.

그녀가 소리 없는 아우성을 내지르며 온몸을 비틀었다.

그때 전봇대 뒤로 다가서는 독현의 기척이 느껴졌다.

“오지 마요!”

“……?”

“한 발짝만 더 오면! 들이받아 버릴 거예요!”

은돈의 볼품없는 외침에 독현이 왼편으로 삐딱하게 고개를 젖혔다.

“들이받기 전에. 잠깐 얘기 좀 해.”

“나 지금 사장님이랑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 헤픈 여자랑 무슨 할 얘기가 있다구요?”

아 이런. 뒷말은 빼는 건데. 은돈이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우뚝 자리에 멈춰 선 독현이 그런 은돈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았다. 이내 그가 단호한 표정으로 거침없이 전봇대를 향해 다가섰다.

“차은돈.”

약 2초후. 그가 나직한 음성으로 은돈의 이름을 부르며 팔목을 낚아챘다.

그와 동시에 소스라치게 놀란 원숭이 엉덩이가, 아니 은돈이……눈을 질끈 감고 헤딩자세를 취해보였다.

“오, 오지 말라니까!”

빠악……!

밑도 끝도 없이 울려 퍼진 ‘빠악’.

그 폭력적인 사운드 이펙트에 미자가 경악하며 입을 벌렸다.

“차은돈! 쟤가 미쳤어! 진짜 들이받으면 어떻게 해?!”

그랬다……

자신을 돌려세우는 독현에게 정말로 박치기를 가한 은돈이, 어느덧 저 멀리 달아나며 큰소리로 부르짖고 있었다.

“미안해요 사장님! 그치만 지금은 아무 얘기도 하고 싶지 않아요! 사장님 얼굴, 당분간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다구요!”

“……”

마치 철제 동상처럼 자리에 얼어붙은 독현이 토다다 달아나는 은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아니, 노려보았다.

“어머! 지독현 사마! 이마가 와전 시뻘개요! 두개골 깨진 거 아니에요!?”

호들갑스럽게 까치발을 든 미자가 독현의 부어오른 이마를 요리 조리 터치했다.

“하여간 저 기집애! 애인한테 무식하게 박치기를 하냐! 이참에 콱 고소해버리세요 저 헬보이를!”

“……손 치워.”

심기가 상할 대로 상한 독현이 자신의 이마를 문지르는 미자의 손을 홱 떨쳐냈다.

그리곤 이미 은돈이 사라지고 없는 행운 빌라 입구를 어이없다는 듯 직시했다.

“하.”

그의 입에서 곧 야트막한 헛웃음이 떨어졌다.

***

“난 망했어……난 이제 끝났다구……거기서 어쩌자고 박치기를……꼭 무슨 레슬링 신기술 같았다고……”

행운빌라 201호.

거실 구탱이에 앉은 은돈이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는 연신 넋 나간 소리를 중얼거렸다.

“근데 사장님은 여기까지 왜 찾아왔을까? 나한테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아니,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난 망했어……난 이제 끝났다구……거기서 어쩌자고 박치기를……”

벌써 한 시간 삼십 분째 반복 되는 그녀의 청승을 더는 못 봐주겠다는 듯, 미자가 꽥 고성을 내질렀다.

“아 그렇게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지독현한테 연락해보든가! 마빡 안녕하시냐고!”

“어떻게 그래……안녕 못할 텐데……보나마나 깨졌을 거야, 이마. 아까 박치기 할 때 뭐가 크게 부서지는 소리가 나더라고. 헙. 설마 씨티 찍으러 병원 간 거 아냐?”

망상에 빠진 은돈의 얼굴이 급격히 초췌해져갔다.

그때, 띵동- 하는 초인종 소리가 두 여자의 귓전을 울렸다.

“지독현이가 병원 댕겨 왔나부다야!”

벌떡 일어난 미자가 쏜살같이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

“누구세요!?”

“아, 저에요. 옆집……”

이 목소린?!

은돈이 놀란 토끼 눈으로 옆에 놓인 이불을 황급히 뒤집어썼다.

그와 동시에 벌컥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마나, 옆집 꽃 총각이 여긴 어쩐 일루……”

의아해하는 미자를 향해 지세가 아이스크림 케이크 상자를 내밀었다.

그가 살짝 시선을 비틀자, 거실 한가운데 놓인 ‘이불 덩어리’가 보였다.

“같이 드세요. 누나랑……”

아마도 은돈으로 추정 되는 그 덩어리를 바라보며, 지세가 입을 열었다.

“야 차은돈. 나와 봐. 우리 잘생긴 이웃사촌이 아이스크림 사왔어!”

미자의 외침에, 이불 속의 은돈이 살금살금 작은 방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쯔쯧 혀를 차며 바라보던 미자가 곧 짓궂은 생각이 난 듯 큰소리로 외쳤다.

“어, 꽃 총각 그냥 가려고!? 알았어 그럼! 잘 가요! 잘 먹을게요!”

미자가 현관 안으로 지세를 끌어당기며 쉿! 하는 제스쳐를 해보였다.

그리곤 은돈이 들으라는 듯 현관문을 쾅 닫았다.

지세가 미자의 수상쩍은 행동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았고, 그때였다. 이불을 확 벗어든 은돈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오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지세가 여긴 왜 왔……”

말을 잇다, 현관 앞 지세를 발견한 은돈이 흡사 모아이 석상과 같은 얼굴을 해보였다.

“아, 누나. 아이스크림 먹어요.”

은돈의 울긋불긋 홍조 대잔치가 열린 얼굴과 정통으로 맞닥뜨린 지세가 그렇게 말했다.

저럴 수가. 어, 어떻게 날 보고도 저렇게 태연할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이 꼴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라고? 그래 아이스크림, 아이스……아이……아……

“아악-!”

곧 은돈의 비명소리가 온 집안에 짜르르 울려 퍼졌다.

그 후- 정확히 삼십분이 지난 시점.

상 위의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기준으로 어색 뻘쭘하게 둘러앉은 세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전 그만……”

지세가 음울한 은돈의 얼굴을 살피며 몸을 일으켰다.

덥석, 미자가 재빨리 그의 손을 붙들었다.

“어허! 어딜 가시나! 같이 먹자니까!”

“아뇨 전,”

“지세야. 나 진짜 괜찮거든? 같이 먹자.”

아까보다 훨씬 더 불그스름한 얼굴로, 은돈이 지세를 끌어 앉혔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나 꼭 일본 국기 같지……?”

“일본 국기요?”

“응. 내 얼굴 색 말야. 시뻘건 게 꼭……”

“아뇨.”

지세가 담담히 대꾸하며 그녀의 새빨간 얼굴을 마주보았다.

일순 피식 웃음이 솟았다.

“왜 웃어?”

귀여워서. 라고 대답하면 난감해 하겠지.

“누나. 괜찮으니까 고개 들어요. 안 이상해요.”

“안 이상해?”

뭐지? 이 진정성이라고는 구준엽 머리칼 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멘트는?

은돈이 미심쩍은 눈초리로 지세를 응시했다. 그때, 미자가 상체를 바짝 기울이며 은밀하게 말했다.

“옆집 총각. 혹시 영화 헬보이라고……들어봤어?”

“하지마라.”

은돈이 폭주하는 절친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퍽 내리쳤다.

지세가 그런 은돈을 웃으며 바라보았다. 얼굴에 무슨 짓을 해도, 그의 눈에 은돈은 은돈이었다. 그냥 차은돈.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자.

“자 먹자 먹어.”

다소 민망해진 은돈이 이내 밥숟갈을 집어 들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푹 퍼들었다.

“야. 너 장비가 쫌 살벌하다? 그걸로 퍼먹게……?”

“응? 응. 와 이거 민트 초코네. 치약 맛. 내가 젤 좋아하는 건데.”

은돈이 질린다는 듯 혀를 차는 미자를 무시 한 채 시선을 내렸다.

그러자 영롱한 때깔의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어서 날 퍼드슈. 그럼 세상만사가 즐거워 질 것이여!’

케이크가 마치 자신에게 말을 거는 듯한 착각에 휩싸인 은돈이 멍하니 물었다.

“이 케이크, 원산지가 충청도니? 나 요즘 충청도 사투리라면……왠지 치가 떨리는데……”

푹! 퍽, 퍽!

은돈이 케이크에 공격적인 수저질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예고 없이 시작된 그녀의 폭식, 폭식, 폭식 타임……

“얘, 얘가 요즘 힘든 일이 많아서 이래. 여자들은 원래 스트레스가 쌓이면 단 걸 폭식하거든.”

십 분 후. 이미 바닥을 보이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보며, 미자가 수습성 멘트를 던졌다. 지세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 거나, 이미 무아지경 상태의 은돈은 사정없이 아이스크림을 입에 퍼 넣고 있었다.

“나 참. 살다 살다 아이스크림을 체할 기세로 퍼먹는 년은 첨보네. 야! 너 그러다 동상 걸리겠다 기집애야! 정신 줄 안 붙들어!? 다시 살찌고 싶어!?”

미자가 야멸차게 외치며 은돈에게서 수저를 빼앗기 위해 손을 뻗었다.

지세가 재빨리 그런 미자를 제지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은돈이 살짝 고개를 들곤 그 두 사람을 응시했다.

“있지. 지세야. 절대 말하면 안 돼……”

“네?”

“지금 내 모습……사장님한텐 얘기 하지 말아줘. 비밀로 해줘 꼭……”

“야~ 그 와중에 지 애인한테는 잘 보이고 싶은가봐!? 밥숟갈이나 내려놓고 말해라 이것아!”

미자의 비아냥에 지세가 씁쓸히 시선을 내렸다.

“……걱정 마요. 말 안 해요.”

그가 은돈의 앞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밀어주며 말했다.

***

……사흘 후.

“야 황덩치! 잠깐 내 스토브 좀 봐줘!”

“네!”

“황덩치! 육수통 비었다!”

“네! 지금 채울게유!”

짧다면 짧은 시간 동안, 소형은 은돈의 빈자리를 완벽하게 메워가는 중이었다.

적어도 더 이상 다원정 주방에서 은돈을 찾는 사람은 없었다.

고작 사흘이 흘렀을 뿐인데, 지세를 제외한 누구도 은돈의 빈 스토브를 돌보지 않았다.

“야! 이지세! 거기서 뭐 하냐! 와서 나 서브 좀 해줘!”

“네 부주.”

은돈의 텅 빈 스토브를 행주로 꼼꼼히 닦던 지세가 부주를 향해 돌아섰다.

한편, 같은 시각.

은돈의 부재를 깊이 실감하는 또 한 사람이 레스토랑 입구로 들어섰다.

“사장님, 나오셨습니까.”

깔끔한 수트 차림의 독현을 보며 여직원들이 홍조를 띤 채 인사를 건넸다.

독현이 말없이 그녀들의 곁을 지나쳤다.

“야 요즘 우리 사장님. 정신이 딴 데 가있는 것 같지 않아? 차은돈 씨 때문에 그런가?”

“아닐걸. 주방 소문에 의하면 둘이 헤어졌다는데?”

“하긴, 헤어졌으니까 삼 개월 정직 때렸겠지. 어차피 얼마 못 갈 줄 알았어. 둘이 어울리기나 하니?”

여직원들의 수군거림에, 독현이 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그가 몸을 비틀어 다시 그녀들의 곁으로 돌아왔다.

“사장님. 하실 말씀이라도……?”

카운터 앞에 서 있던 총지배인이 후다닥 독현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총지배인.”

“네 사장님.”

독현이 제 앞의 여직원 둘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잘라버려.”

“네, 네?”

총지배인이 돌아서는 독현을 황당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여직원들 역시 경직된 얼굴로 시선을 맞교환했다.

그러나 독현은 아랑 곳 않고 자신의 방으로 향할 뿐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