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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밥해주기-57화 (57/93)

57화. 뚱녀의 반란

“차은돈! 너 정말 요리사 맞냐!? 어떻게 냉장고가 꺼진 줄도 몰라!?”

부주의 고성에, 은돈이 커다랗게 눈을 치떴다.

“……?! 그게 무슨, 냉장고가 꺼지다뇨?”

“하, 너 임마! 벨루가 캐비어는 섭씨 3도 이하로 냉장보관 해야 한다는 거 몰라!? 젠장, 이거 벌써 다 부패됐을 거야!”

부주가 조급한 손길로 캐비어 박스를 잡아 뜯었다.

잠시 후 유리병 안에 든 벨루가 캐비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돈이 지켜보는 가운데, 부주가 전용 자개 스푼으로 캐비어를 살짝 떠 맛보았다.

“이런……망했다, 망했어.”

혀끝으로 전해지는 불쾌한 맛에 그가 낙담한 듯 한숨을 뽑아냈다.

“차은돈. 이게 다 얼마친 줄 알아? 천 이백만 원. 너 때문에 못쓰게 된 캐비어가 자그마치 천 이백만 원어치라고! 이 사태를 대체 어쩔 거야!”

부주의 호통에, 은돈이 사색이 된 얼굴로 파르르 손끝을 떨었다.

“부주. 저 정말 확인 했어요. 어제 퇴근 할 때까지만 해도, 냉장고는 멀쩡히 작동하고 있었어요. 온도도 3도씨로 일정하게 유지 되고 있었,”

“3도씨 같은 소리한다! 너, 그 냉장고 온도 센서 고장 난 거 몰랐어?”

순간 은돈의 얼굴이 급격하게 얼어붙었다.

“고장이요……?”

“냉장고 온도감지 센서가 이틀 전부터 말썽이었다고! 그래서 냉장고 전원이 나간 상태에서도 표시등엔 3도로 표시됐던 거다! 너 정말 전혀 눈치 못 챈 거야?!”

“몰랐……몰랐어요……”

은돈이 멍한 소리로 읊조리자, 부주가 타겟을 바꿔 소형을 노려봤다.

“막내! 설마 차은돈한테 말 안했어? 내가 필히 전달하라고 했잖아! 고장 난 냉장고 TC 수리 맡길 때까지, 모든 식자재는 다른 곳에 보관하라고!”

“아, 그게……”

부주의 서슬에 소형이 하얗게 질려 운을 뗐다.

“지는 분명히 들은 대로 전달했는디유……”

뭐……?

은돈이 고개를 치켜들고 소형을 응시했다. 곧이어 그녀가 소형의 말을 되받아쳤다.

“아뇨 부주. 전 냉장고가 고장 났다는 말도, 식자재를 다른 데 보관하라는 말도 전달 받은 적 없어요.”

“언니……무신 소리여? 내가 어제 틀림없이 전달했구만. 그 언제냐……사장님이 직원들 앞에서 언니랑 사귀는 사이라고 공표 한 후에……”

난감한 얼굴로 더듬더듬 말을 잇는 소형을 보며, 은돈이 재차 목소리를 높였다.

“네가 제대로 전달했는데 내가 기억을 못 할리가 없잖아. 다른 것도 아니고 냉장고가 고장 났다는데 그걸 어떻게 까먹어?”

“그야……사장님 때문에 언니 정신이 딴 데 가 있었으니께 까먹을 만도……”

“뭐?”

“아녀, 미, 미안혀!”

소형이 당황한 듯 손을 내저었다. 뒤이어, 그녀가 굳은 결심을 한 듯 눈을 질끈 감았다.

“생각해 보니께……맞어! 내가 깜빡하구 언니한티 전달을 못 한 게 맞어! 부주. 지 잘못이네유. 지가 실수한 걸 거예유. 언니가 억울할 만 해유.”

소형의 말에 부주가 코웃음을 쳤다.

“야 막내. 니가 차은돈 팬인 건 알겠는데, 감쌀 걸 감싸야지.”

“예……?”

“그래. 니가 중간에서 전달을 못했다 치자……그래도, 이건 명백한 차은돈 잘못이다.”

부주의 단호한 시선이 은돈의 면상위로 박혔다.

“차은돈. 니 부주의함이 일을 키운 거야.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어도, 냉장고 온도에 이상이 있다는 건 금방 눈치챌 수 있었을 거다. 내 말이 틀려?”

“……아뇨.”

맞아. 변명의 여지없이 부주 말이 맞아. 상황이 어떻든 내가 신경 썼어야 했어.

은돈이 고개를 수그렸다.

어제, 사장님이 밖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는지도 몰라. 그래서 평소보다 더 안일했는지도, 더 서둘렀는지도 몰라.

“……부주. 잠시만.”

그때였다. 모두가 침묵을 지키는 와중에, 잠자코 서있던 지세가 입을 열었다.

“TC 결함으로 온도 센서에 이상이 생겼을 때, 냉장고 전원까지 꺼지는 경우는 드물어요.”

“뭐?”

“표시등에 나타난 온도와 실제 온도가 다를 순 있겠지만, 아예 냉장고 전원 자체가 꺼지는 경우는 없,”

“하? 넌 또 무슨 헛소리야?”

부주가 지세의 말을 자르며 기가 막힌 듯 하하 웃어보였다.

“이지세. 네 말대로라면, 지금 누가 센서 결함을 핑계 삼아 일부러 냉장고 전원을 내렸다는 건데……그게 말이 되냐? 우리 레스토랑에 스파이가 있지 않은 이상! 누가, 무슨 의도로 그런 짓을 해?!”

“그건,”

지세가 은돈을 힐끗 보았다. 그리곤 뭔가를 말하려다, 다시 입을 다물었다.

혹시나 그녀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하여간! 지세 넌 임마! 지금 이 상황에 어떻게든 차은돈 편을 들고 싶냐 어?”

“편드는 게 아니라, 단지,”

지세의 날렵한 시선이 소형에게 내리꽂혔다.

“상황을 제대로 전달하지 않은 쪽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돼서요.”

일순, 소형의 입가가 딱딱하게 경직됐다.

“얌마! 황덩치가 정말 전달을 안했겠어!? 차은돈이 듣고 걍 흘린 거지. 연애질한다고 정신이 딴 데 가있는 놈이니까!”

“부주!”

지세의 음성이 한 톤 높아졌다. 그때 은돈이 재빨리 그의 팔을 붙들었다.

“됐어.”

그녀가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었다. 지금은 누군가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세를 제외한 주방 식구들은 이미 이번 일을 은돈의 부주의함이 빚어낸 결과라 믿고 있었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은돈 자신도 이번 일을 명백한 본인의 실수로 치부하려 애쓰고 있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일부러 냉장고 전원을 내린 거라면……오히려 그 편이 더욱 큰 상처로 남을 것 같았다.

차라리 내 실수이기를……은돈이 입술을 깨물었다.

***

프레지던트 룸.

소파에 비스듬히 기댄 독현이 자는 듯 지그시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옆에 선 총지배인이 긴장한 듯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사장님. 오늘 차은돈 씨의 실수로 발생한 손해 총액입니다. 확인을……”

그녀가 당혹스런 얼굴로 독현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지그시 눈을 뜬 독현이 서류를 받지 않은 채 대꾸했다.

“두고 나가.”

“네? 사장님……”

총지배인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말을 이었다.

“직원들 사이에 말들이 많습니다. 차은돈 씨가 이런 어이없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활개 칠 수 있는 이유는……사장님을 일종의 빽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고요……”

그녀의 말에 독현이 마른 눈빛으로 코웃음을 쳤다. 이어서 그가 검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 부근을 마사지하듯 문질렀다.

“사장님! 이건 마냥 감싸고 돌 문젠 아닌 것 같습니다. 금전적인 손실액만 천만 원이 넘는데다, 차은돈 씨를 이대로 두면 직원들의 반발이 거셀 겁니다. 아무래도 조치를 취하심이……”

조치? 독현이 날카로운 시선을 빛냈다.

“해고하란 소린가?”

“……다른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내보내셔야 합니다.”

“글쎄. 내가 위하고 싶은 건 다른 직원들이 아니라서.”

“사장님!”

“그만 나가 봐.”

“하지만,”

“차은돈에 대한 처분은 내가 결정하지.”

독현이 총지배인을 향해 칼같이 말했다. 그의 어조에서, 더 이상 이번 일을 화두에 올리지 말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한편 그 즈음, 숨죽인 채 문 밖에 서 있던 소형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본의 아니게 정황을 엿듣게 된 그녀의 가슴이 초조하게 두근거렸다.

사장님은 언니를 해고하지 않을 거여.

아니……어젯밤 ‘그 일’을 언니의 실수라고 생각하지 않는 지도……

불안해진 소형이 지난 밤 자신이 행한 비겁한 짓을 떠올렸다.

모든 것은 철저히 계획 된 행동이었다.

그녀는 용의선상에서 멀어지기 위해 일부러 은돈에게 밑 재료 손질을 맡긴 채 일찍 귀가했고, 은돈에게만 고의적으로 냉장고의 결함을 알려주지 않았으며, 도리어 퇴근 후 몰래 돌아와 냉장고 전원을 제 손으로 직접 내리기까지 했다.

누가 예상이나 할까. 은돈이 떠나기만을 기다렸다 냉장고 전원을 내리고 달아나던 자신의 모습을.

“미안혀 언니……방법은 좀 잘못 됐을지 몰러도……이게 모두를 위한 거여.”

내가 전담 요리사가 되면, 언니도 더 이상 주방에서 눈총 안 받아도 되잖여.

이윽고 소형의 머릿속에 어제 새벽 통화를 주고받던 문소라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지독현은 차은돈을 내쫓지 못할 거예요. 그땐……어쩔 수 없이 그 여자가 제 발로 나가게 만들어야겠죠.’

소라의 말을 떠올리며 소형이 비겁하게 웃었다.

***

“누나. 점심 안 먹어요?”

지세가 옥상 벤치에 홀로 앉아 있는 은돈의 곁으로 다가섰다.

“아. 별로 생각이 없네……”

은돈이 태연한 척 말했다. 그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지세가 곧 털썩 옆자리에 몸을 앉혔다.

“왜?”

“나도 별로 생각 없어서요.”

그가 조리복 주머니에서 따뜻한 캔 커피를 꺼내 은돈에게 건넸다.

“아냐. 너 마셔. 난 진짜 생각 없어서.”

“……아, 다른 것도 있는데.”

지세가 반대편 주머니에서 맥주 캔을 꺼내들었다.

“그건……사양 않을게.”

은돈의 말에 지세가 장난스레 씽긋 웃었다. 그리곤 한 손으로 캔을 따 건네자, 은돈이 곧장 맥주를 입으로 가져갔다.

곧이어 그녀에게서 크하. 작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얜 어쩜 이렇게 여자 맘을 잘 알지?

“고마워. 나……낮술이 절실했었거든.”

“누나. 가서 밥 먹어요. 아님 나가서 뭐 좀 사올까요?”

지세의 물음에 은돈이 센치하게 웃어 보였다.

“아니, 나 정말 생각 없어서 그래. 아예 입맛 자체를 잃었……”

꼬로로로로로록.

은돈의 뱃가죽에서 미치도록 잔인한 허기짐의 아우성이 들려왔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다니……부주한테 일 년치 욕을 배불리 얻어먹어서 오늘은 종일 굶을 자신이 있었는데……

“지세야. 잠깐 자리 좀 비켜줄래.”

“네?”

“나 뛰어내려야겠다……”

이 와중에 꼬르륵이라니, 나 같은 건 죽는 게 나아!

은돈이 격앙된 외침과 함께 옥상 난간을 우스꽝스럽게 붙들었다.

“누나, 진정해요.”

지세가 강하게 은돈의 팔목을 잡아당겼다.

그 힘에 옴짝달싹 못하게 된 은돈이 다시 벤치에 털썩 앉으며 좌절했다.

“걍 여기서 번지점프라도 뛰게 해줘……나 진짜 바본가 봐. 하, 차은돈 이 등신아……어떻게 냉장고가 꺼진 줄도 모르고……분명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녀가 쿵쿵 자신의 머리를 내리쳤다.

지세가 그녀의 머리위로 자신의 손바닥을 갖다 댔다.

“너무 자책하지 말아요. 누나가 가고 나서 꺼졌을 수도 있잖아요. 만약 그런 거라면, 누구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을 거예요.”

지세의 말에 은돈이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그녀의 머리칼이 곧 솜사탕처럼 부풀었다.

“지금은 다 궁색한 변명밖에 안 되는 것 같아. 어쨌든 책임자는 나니까.”

“……”

지세가 말없이 손을 뻗어 산발이 된 은돈의 머리칼을 정리해주었다.

그때, 벌컥! 옥상 문이 열리며 소형이 뒤뚱뒤뚱 안으로 들어섰다.

“언니, 여기 있었네……? 계속 찾았는디……”

그녀의 등장에, 지세가 멈칫- 은돈에게서 손을 거뒀다.

“……무슨 일이야?”

어쩐지 평소보다 딱딱한 은돈의 음성. 소형이 살짝 경직된 얼굴로 다가섰다.

“잠깐 자리 좀 피해주실 수 있나유……? 은돈 언니랑 단 둘이 할 얘기가 있는디.”

그녀가 지세를 향해 조심스레 운을 뗐다.

그와 동시에 지세의 시선이 소형에게 내리꽂혔다.

“왜, 왜 그렇게 빤히 보세유? 지 얼굴에 뭐 묻었어유?”

“……아뇨.”

지세가 짤막하게 대꾸하며 몸을 일으켰다.

“누나, 얘기하고 내려와요. 먼저 가 있을게요.”

“아, 응.”

잠시 후. 은돈이 출구로 사라지는 지세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제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선 소형이 보였다.

“단둘이 할 얘기란 게 뭐야?”

“그보다……언니 괜찮은 겨?”

소형이 벤치에 몸을 앉히며 은돈의 손을 붙잡았다.

“점심시간 내내 여기 올라와 있었던 거지? 미안 혀……내가 옆에 있어 줬어야 하는디……사장님 점심 만들랴, 부주 비위 맞추랴 정신이 없었어.”

“그래.”

은돈이 짧게 답하며 그녀에게 붙들린 자신의 손을 잡아 뺐다.

순간, 아주 찰나였지만 소형의 눈빛이 사납게 치솟았다.

“언니……너무 걱정 말어. 캐비어는 급한 대로 거래처에서 공수해 오기로 했어. 아 그리고 언니에 대한 처분도 생각보다 약하게,”

“처분?”

고개를 치켜든 은돈이 소형의 말을 잘랐다.

“소형아.”

“응?”

“너 왜 거짓말했어?”

“거짓말이라니?”

소형이 뜨끔한 얼굴로 은돈을 마주보았다.

“내가 무신 거짓말을 했다고……”

“냉장고 온도 센서 결함……너, 나한테 말해 준 적 없잖아.”

“뭐?”

“근데 왜 사람들 앞에선 나한테 전달했다고 얘기했어?”

흔들림 없는 은돈의 눈빛. 소형의 얼굴위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언니. 아까도 말했잖여! 내가 착각했다고! 분명 언니한테 말한 줄 알았는데, 그만 깜빡했,”

“혹시 일부러 말 안한 거니?”

“……뭐? 지금 그거 무신 뜻이여? 내가 일부러 언니를 골탕 먹이려고 부주 말을 안 전했다는 거여?”

“아냐?”

“……”

굽히지 않고 물어오는 은돈을, 소형이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았다.

뭘까. 묘한 오기가 차올랐다.

“처음인 거 알어? 언니가 날 이렇게 냉대하는 거.”

그녀가 가시 돋친 어조로 곧장 다음 말을 이었다. 더 이상 은돈을 봐주고 싶지 않았다.

“드디어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는겨?”

“뭐?”

“언닌 늘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줬지만……난 알어. 그거 다 가식이란 거. 속으론 내가 얼마나 미웠을껴. 나한테 전담 요리사 자리를 뺏길까봐 얼마나 전전긍긍 했을껴?”

“……?!”

은돈이 입을 닫곤 자신에게 쏴붙이는 소형을 바라보았다. 소형 역시 그녀를 매섭게 마주보았다.

잠시 두 여자 사이에 싸늘한 침묵이 오갔다.

“솔직히 불어. 언닌 정말 단 한 번도 날 질투한 적 없는겨? 한 번도 날 미워한 적 없었냐구.”

“있어.”

순간 의외의 대답이 소형의 귓전을 울렸다.

“있었다구. 너 미워한 적. 질투한 적.”

은돈이 눈앞의 소형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떻게 널 마냥 편히 좋아할 수 있겠어? 주방에서 내 자릴 빼앗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인데.”

“……”

“널 보면 불안했고, 또 부러웠어. 하지만……단 한 번도 널 이 주방에서 비겁하게 내쫓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

의미심장하게 이어진 은돈의 말.

소형이 크게 일렁이는 눈빛을 아래로 떨궜다.

이제 와서 미안해하면 안 돼. 맘 약해져도 안 돼.

그녀가 머릿속으로 자신을 홀대하던 독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언니만 없어지면. 차은돈만 주방에서 사라지면……분명 사장님은 내 소중함을 깨닫게 될 거야.

“……미안혀 언니.”

소형이 고개를 쳐들었다.

“언니가 솔직하게 얘기해줬으니 나도 이젠 솔직해질까혀.”

그녀가 조리복 주머니에서 사직서를 꺼내들었다.

은돈이 동공이 커다랗게 부풀었다.

“뭐야?”

“보이는 그대로여. 내 사직서.”

“?!”

“언니도 알겨. 당장 내가 이 주방을 나가믄 어떤 사태가 발생하는지.”

소형이 살짝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사장님이 다시 언니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믄 좋겠지만……그렇지 않다면……상황이 꽤 곤란해지지 않을까?”

“너 지금 무슨 뜻으로 그런 소릴 하는 거야?”

“……사흘 줄게.”

“뭐?”

“그 안에 오늘 있었던 일, 깨끗이 책임지고 레스토랑에서 나가.”

소형이 웃음기를 거둔 채 은돈에게 사직서를 내밀었다.

“언니가 안나가믄, 내가 나갈 거야.”

“황소형.”

“내가 나가면 가장 힘들어질 사람이 누군지……잘 생각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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