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56화 (56/93)

56화. 콩나물 다듬기의 대가 지독현.

옥상 정원.

벤치에 몸을 앉힌 소형이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거친 숨을 골랐다.

“아니 사장님도 참말 이상혀! 은돈 언니 뭐가 이쁘다고! 언니가 만든 음식은 삼키지도 못 함서 어쩜 그렇게 싸고도는 겨!”

그녀가 홧김에 마구 언성을 높였다. 눈앞으로 끊임없이 독현의 얼굴이 밀려왔다 사라졌다.

‘차은돈이랑 나. 그렇고 그런 사이 맞다고.’

‘이 시간부로 차은돈에 대해 함부로 떠들지 마. 그 여자에 대한 모욕은 곧 나에 대한 도전이나 마찬가지니까.’

세상에. 모두의 앞에서 사귄다고 공개 선언을 할 줄이야.

“지금 자기가 그렇게 공주처럼 대접받을 때여……? 사장님은 지 땜에 아무것도 못 먹는디……”

그녀가 원망의 화살을 자연스레 은돈에게 돌렸다.

언니가 좋은 사람이라는 거 알아. 나한티 얼마나 친절했는지도.

그치만……자꾸 미워. 이해가 안 간다고. 어째서 사장님 옆에서 계속 미적대고 있는지.

“실력이 모질라면 내려와야 하는 거 아녀? 옛날엔 잘했는지 몰라도, 이젠 아니잖여.”

사장님한테 필요한 건 나라고, 나……

그녀가 뭔가에 홀린 듯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잠시 후. 한참 만에 신호음이 멈추고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소형 씨. 먼저 연락줄 줄 알았어요.

소라였다.

그녀가 액정에 뜬 소형의 이름을 다시금 확인하며 야릇하게 웃었다.

옥상 벤치에 퍼져 앉은 소형이 격앙된 소리로 그녀에게 하소연하듯 말했다.

“왜 이렇게 질투가 나는지 모르겠어유.”

-무슨 일 있었나요?

마치 소형을 회유하듯 달콤하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깜빡 속아 넘어간 소형이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나한티 사장님은 첫사랑이기 이전에, 동경의 대상이었슈.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처럼, 손에 닿지 않아도 얼마든지 보는 것만으로 만족할 수 있었다구유.”

-그런데, 이젠 달라졌나 보죠?

“난……사장님이 누굴 만나든. 누구랑 꽁냥 대며 연애질을 하든 상관 없슈. 하지만……요리사로서 곁을 지키는 건……그건 나였으면 좋겠슈.”

아니, 나여야만 해유.

소형이 눈을 부릅떴다.

“사장님의 전담 요리사가 되려면, 지가 뭘 어떻게 해야 할까유……?”

-쿡……사실 나한테 방법이 하나 있긴 한데.

“방법……?”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요? 어렵진 않을 거예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아주 쉬울 수도 있구요.

핸드폰 너머에서 은밀한 제안이 들려왔다.

“……할게유. 할 수 있어유.”

소형이 그 제안을 차마 뿌리치지 못한 채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

주방.

하루 종일 자신을 힐끔대는 조리사들을 애써 무시한 채, 은돈이 스토브 앞에 섰다.

“어?! 야! 돈아! 뭐하려고? 불 쓰려고!? 하지 마, 하지 마! 다쳐! 내가 할게!”

그때 부주가 호들갑스럽게 곁으로 다가섰다.

“부주……제가 잘 못 들은 건가요……돈이가 누구죠?”

“누구긴 너지. 앞으론 애칭삼아 그렇게 부를까 하는데. 돈이 생각은 어때?”

“아……”

거 참 후지고 좋네요……

차마 뒷말을 잇지 못한 은돈이 아부의 제왕 부주를 난감한 듯 응시했다.

그때 곁으로 다가온 경훈이 쯔쯧 혀를 찼다.

“부주. 인간이 어쩜 그렇게 새털처럼 가벼워요? 차은돈이 사장님 애인이라니까 잘 보이고 싶어 미치겠죠 막?”

“임마. 내가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평소 돈이를 얼마나 이뻐 했……어?! 도니도니! 어디가!?”

부주가 저만치 달아나는 은돈을 불러 세웠다.

“오늘 식재료 들어오는 날이잖아요! 밖에 나가서 대기 타려구요!”

큰소리로 외친 은돈이 자신에게 꽂힌 부담스런 시선들을 뒤로한 채 재빨리 주방을 벗어났다.

“와 씨……우리도 차은돈한테 잘 보여야 하는 건가?”

“나 그동안 쟤 무지하게 부려먹었는데……사장한테 다 꼰대는 거 아냐?”

은돈이 나간 후에도 여전히 소란스럽게 웅성이는 사람들.

조리 테이블 앞에 서 있던 지세가 살짝 고개를 들어 모두를 바라봤다. 그리곤 이내 은돈이 사라진 출구로 시선을 비틀었다.

***

“오늘도 혼자 나왔어? 아이고, 이 많은 걸 어떻게 옮기려고?”

“괜찮아요, 주세요!”

레스토랑 후문.

식재료 차량 앞에 선 은돈이 양팔을 활짝 펼쳐보였다.

그와 동시에 짐칸 위에 올라 서있던 운반 직원이 해산물 박스를 집어 들었다.

“이거 산지 직송된 돌돔인데, 꽤 무거울 거야.”

그가 차량 아래 서 있는 은돈을 향해 묵직한 박스를 내던졌다.

“아-악!”

다음 순간, 휘청 중심을 잃은 은돈이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곤 보기 좋게 뒤로 넘어가려는 찰나, 누군가 그녀를 등 뒤에서 받쳐 안았다.

“아……”

본의 아니게 지세의 품에 안긴 은돈이 짤막한 신음을 내뱉었다.

뭐란 말인가 이 묘한 자세는.

“땡큐……덕분에 살았네.”

은돈이 등 뒤의 지세에게서 황급히 떨어져나갔다. 지세가 그녀를 배려해 화제를 돌렸다.

“돌돔이에요?”

“응? 응.”

“내가 들게요.”

지세가 은돈 품안의 박스를 빼앗아 들었다. 그때 짐칸 위에 올라있던 남자가 자그마한 박스하나를 더 건넸다.

“이건 특별히 조심해서 다뤄요. 카스피해산 벨루가 캐비어야.”

“벨루가 캐비어요?”

은돈의 물음에 남자가 마치 은밀한 대화라도 주고받듯 목소리를 낮췄다.

“백 그램에 이백만 원도 넘는 거야. 보자, 이게 육백 그램 정도 되니까,”

“처……천 이백만 원 어치……?!”

지세가 심장을 턱 부여잡는 은돈을 대신해 캐비어 박스를 받아들었다.

“어? 아냐! 내가들게.”

“됐어요. 나 없는 동안 혼자 다 했잖아요. 여긴 신경 쓰지 말고 가서 누나 일 해요.”

“내 일……? 나 할 거 없는데……”

은돈이 머쓱한 얼굴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부주한테 못 들었어? 나 요즘 완전 널널하거든……”

“……”

지세가 애써 장난스레 웃어 보이는 은돈을 빤히 응시했다.

지독현의 음식거부. 그로인해 주방에서 설자리를 잃은 은돈.

은돈의 대타를 자처하고 있는 웬 주방 막내까지.

직접 보진 않았어도 짐작할 수 있다. 자신이 없는 동안 은돈이 홀로 얼마나 고군분투했을지.

지세가 저도 모르게 왼손을 치켜들었다.

맘고생이 심했을 은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그가 곧 손을 원위치 시키며 시선을 끌어내렸다.

“저기, 지금 주방 분위기 어때? 아직도 다들 내 얘기하는 중이야?”

“네?”

“나랑 사장님……얘기 말이야.”

“아……네. 다들 좀 놀랐나봐요.”

하긴. 나도 놀랐으니까.

은돈과의 열애사실을 스스럼없이 인정하던 독현을 떠올리며 지세가 미간을 굳혔다.

“저기, 나 부담스러워서 주방 들어가기 좀 그런데……역시 이거 같이 나를까, 동료?”

그녀가 지세의 어깨를 턱 부여잡곤 웃어보였다.

……은돈은 정말 자신과 동료로 지낼 수 있다고 믿는 걸까.

아니면,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상황을 회피하고 있는 걸까.

“네. 같이 해요 그럼.”

그가 복잡한 속내를 감춘 채 은돈을 따라 웃어주었다.

……같은 시각. 프레지던트 룸.

“저녁 드세유.”

소파 협탁 위에 음식들을 내려놓은 소형이 집무 책상에 앉은 독현을 응시했다.

“은돈 언니한티 들었슈. 사장님이 이젠 내 음식을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고……”

“나가 봐. 알아서 먹을 테니까.”

무감정하게 이어진 독현의 말에 소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가 잠자코 말했다.

“원하시던 대로, 이젠 주방 사람들 누구도 은돈 언니를 깔보거나 업신여기지 않아유. 사장 애인 자리가 좋긴 좋나 봐유……”

들려오는 노골적인 비아냥에 독현이 서늘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소형은 기죽지 않고 마치 독현에게 애원이라도 하듯, 말을 이어갔다.

“사장님. 딱 한번만……은돈 언니를 바라 볼 때처럼, 그때랑 같은 눈빛으로, 같은 표정으로 날 봐주면 안 돼유?”

“뭐?”

“언니가 부러워유. 사장님의 관심과……사랑을 독차지한 언니가.”

소형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남은 말을 지껄였다.

“지한테도 기회를 주세유. 사장님의 그 관심과 사랑……독차지할 수 있는 기회.”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은돈 언니를 대하듯 날 대해준다면……여기서 멈출게유.

절대로 소라 언니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게유……

소형이 흔들리는 눈으로 독현을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 역시 자신을 향해 있었다.

“얼굴이 좀 야윈 것 같군.”

“……?”

소형이 의아한 듯 대꾸했다.

“요즘 다이어트 중이거든유……은돈 언니도 성공했는디 나라고 못 할 거 있나 싶어서.”

“차은돈 흉내를 낸다고 해서, 그 여자 자리까지 네게 되진 않아.”

“흉내……?”

독현이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듯 내리 훑었다. 매섭고 예리한 시선이었다.

“차은돈 식 화장에, 차은돈 식 헤어스타일, 같은 신발, 같은 손목시계……”

낮은 어조로 말을 잇던 그가 곧 고개를 비스듬히 젖혔다.

“다른 점이 있긴 하군. 차은돈은 매니큐어를 바르지 않거든.”

그의 시선이 소형의 핑크 컬러 네일을 향해 있었다.

독현에게 잘 보이고 싶어 난생 처음 샵에 들러 받아본 네일.

알아주길 바란 건 아니지만, 최소한 이런 식으로 무시 받고 싶진 않았는데……

“요리사로서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않으면서 대우는 똑같이 해 달라?”

독현의 가시 돋친 음성이 소형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황소형씨?”

“……”

“너무 애쓰지 마. 어차피 네가 차은돈을 대신할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네. 그럴게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던 소형이 곧 나직이 대꾸했다.

그래. 애 쓸 필요 없겠어. 그냥……쉬운 길로 가믄 돼.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어요? 어렵진 않을 거에요. 마음먹기에 따라서는……아주 쉬울 수도 있구요.’

귓전을 맴도는 소라의 말. 소형이 떨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

“우리 도니 도니 어쩌지. 혼자 남아서 할 수 있겠어?”

직원 휴게실.

의자에 구부정하게 앉은 부주가 걱정스레 은돈을 돌아봤다.

“부주 걱정 마세요. 밑 재료 손질이야 혼자서도 늘 해왔던 건데요 뭐.”

“언니……미안혀. 내가 같이 남아야 하는디, 이상하게 몸살 끼가 있어놔서……”

“걱정 말고 들어가서 쉬어.”

은돈이 울상을 짓는 소형의 이마를 짚었다.

“너 열도 좀 있는 것 같다. 얼른 가 봐. 다들 내일 봬요!”

그녀가 퇴근준비를 하는 직원들을 향해 경쾌하게 외쳤다.

“도니도니. 암 쏘 쏘리 벗……알러뷰.”

부주가 오직 아부의, 아부에 의한, 아부를 위한 프리 허그 자세를 취해보였다.

그리곤 당혹스러워 하는 은돈을 품에 안으려는 찰나,

“누나.”

지세가 자연스럽게 은돈의 옷깃을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미안해요. 오늘 같이 남았어야 하는데……”

지세가 난감한 듯 한손으로 제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야 이지세! 남긴 어딜 남아! 넌 나랑 벌주 한잔 해야지! 그간 내 문자 씹은 죄로다가!”

부주가 지세의 목을 확 끌어당겼다.

“누나. 혼자 하지 말고 기다려요. 이따 늦게라도 올 수 있으면,”

“아냐. 오지 마. 나 혼자서 후딱 끝내놓고 집에 갈 거야.”

은돈이 지세의 등을 떠밀며 싱긋 웃어보였다.

왁자지껄한 직원들의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쾅-! 소형이 큰소리로 락커 문을 닫았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텅 빈 주방에 홀로 남은 은돈이 육수가 팔팔 끓는 솥 앞을 지키고 있었다.

그녀의 옆에는 손질된 꽃게와 홍합, 다듬어진 야채들이 정돈 돼 있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야?”

그때였다.

입구에서 들려오는 독현의 음성에 은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사장님?! 사장님이야말로 여기서 뭐하세요? 아직 퇴근 안했어요?”

“지금 하는 중이야.”

독현이 짧게 대답하며 은돈의 뒤편에서 끓고 있는 육수 통을 바라보았다.

“아, 내일 쓸 멸치 다시 육수에요.”

독현의 눈빛을 읽은 은돈이 척 하고 대답했다.

“……정말이지 무수리가 따로 없군.”

뭐시? 무수리?

“지금 늦은 시간까지 혼자 남아 밑 재료 손질에 열과 성을 다하는 여직원한테 무수리라고 했어요?”

“넌 늘 쓸데없는 일에 필요 이상으로 열심이야.”

그가 맘에 안 든다는 듯 은돈을 쳐다봤다. 손에 물기가 마를 날이 없군.

내가 뭐 도울 거 있어?

그가 은돈을 향해 그렇게 묻기 위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삐딱한 한마디가 뚝 떨어졌다.

“그래서.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아?”

“네?”

“비켜 봐.”

어느덧 처벅처벅 곁으로 다가온 독현이 은돈을 밀어냈다. 그리곤 육수 통 앞에 보란 듯 팔짱을 끼고 섰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그 시건방진 포즈는 다 뭐에요?”

육수 통을 배경삼아 기념사진이라도 한 장 찍어달라는 건가?

은돈이 의아한 시선으로 독현을 응시했다.

“가서 좀 쉬어.”

“네?”

“여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아……지금 혹시 도와주려는……거?”

“그럼 내가 이 주방에 기념사진이라도 찍으러 온 것 같나?”

뜨끔한 은돈이 재빨리 태연자약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됐어요 사장님. 먼저 퇴근하세요. 누가 보면 어쩌려구.”

“눈 씻고 찾아봐도 주방엔 너 뿐인 것 같은데.”

스스럼없이 다가오는 독현을 보며 은돈이 사 뭇 심각하게 말했다.

“우리 사귀는 거, 자꾸 이런 식으로 티내지 말아요. 가뜩이나 직원들이 하루 종일 날 무슨 여왕벌 보듯 했다구요.”

그녀가 푸 한숨을 내쉬었다.

“부주는 나랑 눈만 마주치면 웃어요. 손까지 흔들면서요. 무슨 미스코리안줄 알았어요. 이러다 곧 말까지 높일 기세에요.”

“잘됐군.”

“놀리지 말구요. 난 사장님이랑 특별한 사이라는 이유만으로 편애 받고 싶지 않아요.”

은돈의 말에 독현이 우습다는 듯 말했다.

“글쎄. 난 다른 직원들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만큼 부당한 특혜가 있다면 죄다 너한테 몰아주고 싶은데.”

“마,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은돈이 재빨리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 육수가 화르륵 끓어 넘쳤고 독현이 반사적으로 뚜껑을 닫았다.

“?! 사장님! 뚜껑을 열어야죠! 불! 불 줄여요!”

맨손으로 날쌔게 뚜껑을 집어든 은돈이 불을 줄이곤 후하. 후하 심호흡을 했다.

“아 큰일 날 뻔 했잖아요! 거기서 뚜껑을 왜 닫습니까! 진짜 완전 요리 쭈구리야!”

“……”

은돈의 호통에 뻘쭘해진 독현이 애꿎은 셔츠 소매를 걷어 올렸다. 동시에 그의 맵시 있는 팔뚝이 드러났다.

“뭐든 시켜. 내가 도울 테니까.”

“하아……”

젠장. 저 근거 없는 자신감을 어쩜 좋담.

그녀가 독현의 얼굴을 슥 올려다보았다. 저렇게 돕고 싶어 하니 뭐라도 맡기긴 해야겠는데……

별수 없지. 대충 아무거나 시키는 수밖에.

“사장님. 정 돕고 싶으면 콩나물 정리나 좀 해줄래요?”

“그게 뭐지?”

순간 독현의 날카로운 시선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쉬워요. 그냥 콩나물을요, 노란 대가리가 앞으로 오게 일렬로 정리해주세요. 그 통에다가요.”

“그러지.”

은돈이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였을 뿐임을 알 리 없는 독현이 곧 주방 테이블 앞에 섰다.

그리곤 초 집중 모드로 열심히 콩나물을 ‘정리’ 하기 시작했다.

“차은돈. 혹시 콩나물 길이도 맞춰야 해?”

“헉 네. 제가 그걸 말씀 안 드렸네요. 꼭 길이별로 따로 정리해주세요.”

“덜렁대지 좀 마.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잖아.”

자신의 예리한 지적에 흡족해진 독현이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잠시 후. 콩나물 두 가닥을 서로 대보며 긴 것은 긴 것끼리, 짧은 건 짧은 것끼리 따로 정리중인 독현을, 은돈이 멀거니 응시했다.

뭐지 저 인간. 진지한 걸 떠나서 심지어 즐거워 보여.

“이거 다 하고 뭐 해?”

“또 뭘 하시게요?”

“왜……?”

“아……아뇨……흠……그럼 상추 좀 스무 장씩 열 맞춰 정리해주세요. 꼭 스무 장이어야 해요.”

“그럴게.”

고개를 끄덕이는 독현을 보며 은돈이 저도 모르게 푸 후, 웃었다.

쓸데없는 일에 지나치게 열심인 사람이 누군데.

“……왜 다들 사장님을 무서워하는지 모르겠어요.”

실상은 요리 쭈구리에, 단지 콩나물 정리의 대가일 뿐인데.

“으이구.”

은돈이 까치발을 들고 독현의 머리를 헝클이듯 쓰다듬었다.

“뭐하는 거야.”

독현의 그녀의 손길을 가볍게 뿌리쳤다.

그러나 돌아서서 콩나물을 집어 드는 그의 입가에도 곧 피식 미소가 어렸다.

***

“사장님, 먼저 차에 가계세요. 저 재료 창고 좀 내려갔다 올게요.”

AM 12 : 40.

주방 불을 끄고 복도로 나선 은돈이 독현을 향해 말했다.

“같이 가지.”

“아니에요. 오늘 들어온 식재료들 상태 점검만 하고 바로 올라올게요.”

은돈이 독현을 남겨 둔 채 후다닥 걸음을 옮겼다.

독현이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재킷에서 차키를 꺼내들며 반대편으로 몸을 돌렸다.

……잠시 후. 재료창고.

대형 냉장고 앞에 선 은돈이 최고급 식재료들의 상태를 일일이 체크하고 있었다.

“돌돔, 생굴, 갈치 전부 오케이……캐비어도 오케이.”

그녀가 냉장고 안의 캐비어 박스를 대견한 듯 바라보다 상체를 일으켰다.

뒤이어 그녀의 시선이 냉장 온도를 조절하는 스위치 박스로 향했다.

스위치에 표시 된 온도는 3도씨.

확인을 마친 은돈이 만족한 듯 냉장고 문을 닫고 출구로 몸을 비틀었다.

***

다음날.

“야 세상에……이거 일 났다. 도니 도니! 아니……차은돈! 차은돈 어디 갔어! 아직 출근 안했어!?”

주방 입구로 들이닥친 부주가 몇몇 조리사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차은돈 당장 연락해봐!”

“무슨 일인디유 부주?”

“아 일단 연락부터 해!”

“네, 넵!”

소형이 재빨리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좋은 아침입니다!”

조리복 차림의 은돈이 활기찬 인사와 함께 안으로 들어섰다.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부주가 양팔을 걷어붙이며 그녀에게 다가섰다.

“야 임마! 너 도대체 정신을 어디 팔아먹고 다니는 거야!?”

“……네? 갑자기 왜 그러시는,”

“너 이거 어쩔래!”

타앙……!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부주가 조리 테이블 위에 캐비어 박스를 올려놓았다.

“……이게 왜요?”

은돈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부주를 응시했고……그때였다.

역시 조리복 차림의 지세가 입구로 들어섰다.

“……? 무슨 일이에요?”

싸늘한 분위기를 감지한 지세가 모두를 향해 물었다. 그러자 조리사들 일동이 모르겠다는 어깨를 으쓱 해보였다.

오직 한 사람, 소형만이 긴장한 듯 마른침을 삼킬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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