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 뚱녀의 등장 Ⅱ.
“여기서 뭘 하는 거지?”
어느덧 입구로 다가 선 독현이 정체불명 뚱녀를 향해 물었다.
순간 ‘주방 막내 구함’ 이라고 쓰인 판넬의 글씨를 부지런히 지우던 뚱녀가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사장님!”
마치 원래부터 알던 사이인양, 그녀가 눈앞에 서 있는 독현을 향해 반갑게 외쳤다.
“뭐야 너.”
그녀의 격한 반응과는 달리 독현이 곧장 매몰찬 한마디를 던졌다.
“아, 지는……그니께 지는유……”
어쩐지 말끝을 흐리며 뚱녀가 독현을 올려다보았다. 독현 역시 시선을 내리 깐 채 그녀를 응시했다. 거대한 몸집과 대비되는 앳된 이목구비. 기껏해야 스물? 스물 하나?
독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내리 훑었다.
“그거. 제자리에 갖다 놓지.”
“네? 아, 네……!”
뚱녀가 등 뒤에 감췄던 판넬을 다시 원위치 시키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거시기, 주방 막내를 구한다길래……지원해 볼까 하고……”
슬쩍, 뚱녀가 독현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하나도 안 변했구먼. 저 엿가락처럼 매끈한 기럭지하며, 번쩍번쩍 광채 나는 이목구비하며……
“저기유. 혹시 나 기억 하,”
“비켜.”
화악- 뚱녀를 밀쳐내며 독현이 레스토랑 문을 열어 젖혔다. 이윽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뚱녀가 어버버 중얼거렸다.
“세상에……싸가지도 그대로구먼……”
***
“면접……보러 왔다구요? 이렇게 이른 시간에?”
홀 테이블에 앉은 총지배인이 맞은편의 뚱녀를 위아래로 꼬나보았다.
“아 지가 아침형인간이라 잠이 별로 없거든유.”
명랑하게 대답하며, 뚱녀가 헷 웃어보였다.
“흠. 여기 지원서에 붙인 사진이랑, 실물이랑……갭이 좀 있네요?”
“지가 먹는 걸 워낙에 좋아해서……사진보다 좀 찌긴 했는디……”
“좀이 아닌데?”
지배인이 뚱녀를 흘깃 바라봤다. 딱 봐도 팔십 키로는 족히 넘어 보이잖아?
“꼭, 몇 달 전 누굴 보는 것 같네요.”
휙- 고개를 젖힌 지배인이 저만치 홀 복도에 선 은돈을 콕 집어 주시했다.
“야. 은돈아, 뭐지? 너 보는데? 니 얘기 하나부다. 좋겠다야.”
조리사들과 함께 선 부주가 눈치 없이 은돈의 옆구리를 찔렀다.
“아프거든요 부주?”
미간을 찌푸린 은돈이 다시 숨 막히는 면접 현장을 응시했다.
“아니 면접이 저렇게 까다로워서 쓰나. 가뜩이나 지원자도 없구만. 웬만하면 그냥 채용하지.”
부주가 초조한 듯 입을 놀렸다. 그런데 그때, 등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헛! 사장님, 굿모닝!”
벽에 매미처럼 척 달라붙은 부주가 독현에게 길을 터주며 외쳤다.
“……좋은 아침.”
독현이 살짝 잠긴 음성으로 인사를 건넸다. 물론 그의 시선은 부주가 아닌 은돈을 향해있었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사장님.”
동료들의 눈치를 살피며, 은돈이 경직된 한마디를 내던졌다. 긴장한 그녀와는 달리, 독현은 여느 때처럼 시니컬한 모습이었다.
가끔은 저 인간의 포커페이스가 부럽기까지 하다니까.
난 총지배인 패거리가 우리 사이를 물고 늘어질까 봐 무서워 죽겠는데……
꼴깍, 마른 침을 삼킨 은돈이 곧 눈이 마주친 독현을 향해 어색히 웃어보였다.
“뭐야. 웃는 거야, 우는 거야. 괴상한 얼굴이군.”
독현이 짓궂게 입 꼬리를 올리며 은돈에게 한 발 다가섰다. 그런데 그때,
“사장님! 지 여기있구만유! 여기유!”
홀 테이블에 앉아있던 뚱녀가 독현을 발견하곤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히푸에 낑겨 있던 의자가 퐁! 하고 튕겨져 나갔다.
“무슨 짓이에요? 자리에 앉아요!”
총지배인이 그녀를 나무라며 재빨리 독현의 눈치를 살폈다. 그 순간, 오너의 기분을 살피는 것은 비단 지배인뿐만이 아니었다.
모두가 입을 다문 가운데, 독현이 고개를 꺾으며 천천히 홀 테이블로 다가섰다.
“사장님. 주방 어시스트 면접 지원잡니다. 여기 이력서……”
총지배인이 냉큼 건네는 이력서를, 그가 잠자코 받아들었다.
이름- 황소형.
나이- 22세.
“……황소형?”
뚱녀의 이력서를 대충 읽어 내리던 독현이 의아한 듯 시선을 끌어올렸다. 묘하게 낯이 익은 이름. 하지만 딱히 대수로울 건 없었다. 어차피 이 여잔 내 레스토랑 주방에 발도 들이지 못할 테니까.
“그래. 황소형 씨.”
털썩. 테이블에 몸을 앉힌 독현이 맞은편의 뚱녀, 아니 소형을 예의주시했다.
“내 주방에서 일하고 싶다고.”
“넵! 기회만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글쎄. 난 널 고용할 생각이 없는데.”
“예……?”
“난 아름답지 않은 걸 한 번도 곁에 둬 본적이 없거든.”
“그, 그게 무신……”
“나가. 내 레스토랑에서.”
일순 홀 안을 울리는 몰인정한 한마디에, 소형을 비롯한 모두가 약속이나 한 듯 입을 헛 벌렸다. 단 한 사람, 은돈을 제외하고는.
“쯔쯧. 어떻게 사람이 사시사철 소나무마냥 변하질 않냐……”
은돈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녀의 눈앞으로 몇 개월 전, 뚱뚱했던 자신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그래 지독현 저 인간. 내 면접 때도 분명히 저렇게 말했었어.
‘차은돈. 널 고용할 생각이 없어졌어. 난 아름답지 않은 걸 옆에 둬 본적이 없거든.’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다 한들, 못생기고 뚱뚱한 널 원하는 레스토랑을 찾기가 쉽진 않을 거야. 사람들은 대개 겉모습만으로 상대의 가치를 스캔하고 멋대로 판단해버리거든. 적어도 난 그래. 난 너 따윌 고용할 생각이 없어. 그러니까……분수를 좀 알아.’
“아악-!”
옛일을 회상하던 은돈이 갑작스레 괴성을 내질렀다.
“아 깜놀 했네! 야 너 왜 그래!”
옆에 서 있던 부주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핀잔을 주자, 은돈이 오히려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사장님! 이건 너무 불공평해요! 다른 이유도 아닌 겉모습 때문에 사람을 쪽 주고 내쫓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사장님은……사장님은 뭐가 그렇게 개뿔 잘나셨길래!”
“……개뿔?”
기가 막히는군. 독현이 고개를 삐딱하게 젖혔다.
그와 동시에 부주가 곁에 서 있던 경훈에게 귓속말을 속닥였다.
“내가 뭐랬어. 차은돈이랑 사장이랑 절대 사귀는 거 아니랬지.”
“에? 부주가 언제 그랬어요?”
“저 봐, 저거! 고추장 먹인 쌈닭처럼 사장한테 달려든다. 차은돈 쟤 아무래도 오늘 저 뚱녀랑 나란히 손잡고 여기 뜨려나 보다.”
부주가 씩씩대는 은돈을 보며 쯔쯧 혀를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돈이 정의의 사도처럼 한 번 더 소리쳤다.
“당장 지세가 돌아올 때까지, 주방엔 어시스트가 꼭 필요해요. 저 애한테 기회는 한번 줄 수 있는 거잖아요.”
“……”
소형이 자신의 편에 선 은돈을 찡한 눈으로 바라봤다.
저렇게 예쁜 사람이 날 위해 대신 싸워주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지.
그녀가 두 주먹을 불끈 쥔 채 훕, 숨을 들이켰다.
“사장님! 저 예쁜 언니 말마따나, 지한테 기회를 한 번 주세유!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 지는 여기서 꼭 일하고 싶구먼유!”
“……기회?”
소형의 외침에 한껏 좁아진 독현의 미간이 곧 원래 자리를 되찾았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이며 스윽 몸을 일으켰다.
“좋아. 지금부터 20분 안에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와.”
“네? 만들어 오면……?”
“여기서 일할 수 있게 해줄게.”
“참말이어유? 뭔 놈의 면접이 이렇게 쉽대? 그니께 사장님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면 뭐든 되는 거쥬?”
“그래.”
“좋아유! 해볼게유!”
소형이 잔뜩 고무된 표정으로 은돈을 돌아보았다. 예쁜 언니! 이게 다 언니 덕분이여!
그녀가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러나……은돈을 포함한 다원정 직원들의 얼굴은 마치 사포질을 한 듯 빳빳하게 굳어 있었다.
“후……차은돈아. 가서 손수건 한 장 구해 와. 저 애, 이따 사장이 접시 집어던지면 울면서 뛰쳐나갈 거야.”
경험자의 관록이 묻어나는 말투로 부주가 지껄였다.
“치사한 인간 같으니라고……”
은돈 역시 저만치의 독현을 보며 볼멘소리를 지껄였다.
“……뭐야.”
독현이 구시렁대는 그녀를 보며 의아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
***
“사장님. 황소형 씨가 만든 시금치 오믈렛 입니다.”
이십분 후. 숨 조이는 긴장감이 흐르는 다원정 홀.
총지배인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믈렛 접시를 테이블위에 탁 내려놓았다.
“……”
독현이 말없이 눈앞의 접시를 바라보다가, 곧 거침없이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이윽고 그가 잘게 자른 오믈렛 조각을 입에 넣는 모습을, 직원 일동이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자자, 다들 피할 준비 해. 이제 집어던질 거야.”
멀찍이 선 부주가 양팔로 가드를 올리며 동료들에게 말했다.
“어?”
“어라……?”
그런데, 갑자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독현이 오믈렛을 좀 더 잘게 잘랐다. 그리곤 두 번째 조각을 다시 입가로 가져갔다.
“지금 사장, 삼킨 거 맞지? 근데 아무렇지도 않네?”
“차은돈이 만든 거 아냐 저거?”
여기저기서 직원들의 수근 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와중에 독현이 시선을 비틀어 은돈을 바라봤다.
“……네가 도와준 건가?”
“네?”
“대답해. 왜 멋대로 일을 키우는 거지?”
“무슨 소리에요?”
은돈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아닌데……”
“이거. 네가 만든 요리 아냐?”
독현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확인하듯 물었다.
“제가 만들긴요. 얘가, 아니. 황소형 씨가 만든 건데……”
그녀가 제 옆에 선 소형을 가리켰다.
“어떻게, 입에 맞나 모르겠구먼유.”
그때, 소형이 머쓱한 듯 웃으며 말했다.
“……뭘 어떻게 한 거지……?”
다소 멍하니 그녀를 직시하며, 독현이 물었다.
“사장님. 아직도 날 몰라보겄어유?”
후 하. 소형이 두어 번 심호흡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에유. 우리 할머니……아니, 박 명장님 외손녀. 황소형.”
……뭐?
“하.”
일순 독현의 입에서 어이없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박명장. 은돈이 나타나기 전 그의 요리를 전담했던, 일명 박 할매.
“네가 그 손녀라고?”
독현이 말없이 시선을 곧추세웠다.
지금으로부터 십년도 더 지난 옛날, 친 가족처럼 여겼던 박 할매를 따라 그녀의 고향에 몇 번 내려간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마주쳤던 통통한 여자아이.
귀찮게 자신의 뒤만 졸졸 따라다니던 박 할매의 외손녀.
“그게 너란 말이지.”
독현이 건조한 시선으로 소형의 얼굴을 훑었다.
“지가 할머니, 아니……박 명장님 음식솜씨를 완전히 빼다 박았다는 말을 솔찬히 들어유. 어때유? 맛이 괜찮쥬?”
독현이 그녀의 넉살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생각에 잠긴 그를 보며, 소형이 냉큼 뒷말을 덧붙였다.
“아, 그렇다고 지가 뭐 지인 찬스를 바라거나 그런 건 아닌디……할머니 손녀라고 봐줄 거 없이, 맛 없으믄 그냥 가차 없이 내쫓아도……”
“일해.”
한참 만에, 그의 입에서 짤막한 대답이 떨어졌다.
“에? 지금……뭐라고……”
“일. 하라고.”
일순간 쌍꺼풀 없이 맹한 소형의 두 눈이 반짝였다.
“어, 언제부터 나오믄 될까유!”
“오늘부터!”
불쑥 끼어든 부주가 재빨리 소형의 팔을 붙들었다. 다시 찾은 주방 막내를 절대 놓치지 않겠단 심보였다.
“자, 딱 출근시간에 맞게 잘 왔어요! 웰컴, 웰컴! 이리 와요! 내가 박스 나르는 것부터 가르쳐 줄게! 되게 재미있어!”
그가 당황하는 소형을 이끌고 쌩하니 레스토랑 출구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주시하던 독현이 곧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차은돈.”
곧 그의 날렵한 시선이 은돈에게 가 박혔다.
“잠깐 내방으로 와.”
***
프레지던트 룸.
“아까부터 왜 뚱해 있는 거야. 니가 원하는 대로 어시스트까지 새로 뽑아줬는데.”
집무 책상에 앉은 독현이 눈앞에 선 은돈을 향해 물었다.
“네. 뽑아주셔서 참 감개무량하네요. 이제 혼자서 박스 안 날라도 되니 신나서 날아갈 것 같아요.”
“……날아갈 것 같은 얼굴이 아니잖아 지금.”
독현이 미묘하게 경직 된 은돈의 눈빛을 들여다보았다.
“혹시 불안해서 그래? 새로 들어온 막내가 니 자리를 위협할지도 모르니까?”
“뭐라구요?”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아니거든요!? 날 뭘로 보고! 사장님 입맛을 맞출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있으면 좋은 거죠. 거기다 박 명장님 손녀라는데, 난 황소형씨 대환영이에요! 내가 화가 나는 건……!”
“화가 나는 건?”
무심코 던진 은돈의 말을 독현이 천천히 곱씹었다.
“말해 봐. 뭐 때문인지.”
“……그냥요. 아까 사장님의 태도 때문에요.”
“뭐?”
독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묻자 그녀가 고개를 쳐들었다.
“아까, 아무렇지 않게 황소형 씨를 무시하고 깔보던 그 태도요! 대체 왜 그래요? 왜 그렇게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냐구요.”
“그것 때문에 화가 난 건가?”
“네. 황소형 씨한테 함부로 구는 거, 솔직히 보기 거북했어요.”
그녀의 말에 독현이 잠시 텀을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난 원래 그런 인간이야.”
“?”
“불친절하고, 안하무인에……부주 말에 의하면 싸가지가 바가지라더군.”
“……”
“하여튼 안 좋은 말은 뭐든 갖다 붙일 수 있는 인간이야 난.”
“뭐야. 본인에 대한 평판을 그렇게 잘 알면서, 왜 고칠 생각을 안 해요?”
“글쎄.”
그가 피식 웃고는 은돈을 바라보았다.
“너한테만 잘하면 되잖아.”
“아뇨. 아까 그거 꼭 나한테 하는 소리 같았다구요. 사장님이 황소형 씨한테 쏴붙인 말과 행동들. 몇 달 전 뚱뚱했던 나로 돌아가 다시 듣는 것 같았어요.”
“걱정 마. 넌 이제 건드리기가 겁날 정도로 말랐으니까.”
“사장님. 나 지금 진지하거든요?”
은돈이 딱딱한 얼굴로 독현을 마주보았다. 그리곤 잠시 망설이다, 조심스레 말문을 열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생전에 잘나가는 여배우였다 그랬죠? 그래서 마지막까지 외모에 대한 집착이 상당했다구요. 아무래도 제 생각엔, 사장님이 그 영향을 받은 거 같아요. 그래서 자꾸만 사람을 대할 때 병적으로 외모지적을 하는 것 같다구요. 일종의 어떤 트라우마처럼.”
“……”
독현이 새삼 놀랄 것도 없다는 듯 은돈을 바라봤다.
“맞아. 니 말대로야.”
“네?”
“하지만 이제 와서 그게 대체 왜 문제가 되지?”
짜증스럽다는 듯 독현의 미간이 위로 치솟았다.
이윽고, 은돈이 그를 향해 불편한 한마디를 튕겨냈다.
“솔직히 말해 봐요. 내가 예전처럼 뚱뚱했다면, 사장님이 거들떠나 봤을까요? 아마 여전히 날 무시하고 업신여겼겠죠.”
“……”
잠시 침묵을 지키던 독현이 곧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좋아했을 거야. 네가 어떤 모습이든.”
“……안 믿을래요.”
“믿고 안 믿고는 상관없어. 어쨌든 지금 내 눈앞에 서 있는 넌 예쁘니까.”
“이, 이거 봐! 이 외모 지상주의자! 내가 예뻐져서 좋아하는 거 아냐!”
“그게 잘못된 건가?”
“참나! 그러면서 내가 어떤 모습이든 좋아했을 거라구요!? 퍽이나!”
꽥 내지르는 은돈을, 집무책상에 앉은 독현이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바라보았다.
“……예쁘대도 싫다는 여잔 또 처음이군.”
더 이상의 논쟁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는지, 그가 곧 은돈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눈앞의 서류철을 집어 들었다.
“바쁘니까 그만 나가 봐.”
“……그 전에 약속해요. 황소형 씨한테 함부로 굴지 않겠다고.”
“그래. 약속할게.”
독현이 서류에 사인을 휘갈기며 건성으로 대꾸했다. 은돈이 그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늘 마음 한편에 지니고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 하고 있었다.
‘내가 다시 뚱뚱해지면……사장님은 나랑 헤어질 건가요?’
그녀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예뻐해 줘요.”
“……뭐?”
문득 내던져진 은돈의 한마디에, 독현이 고개를 치켜 올렸다.
“예쁘다면서요, 내가. 그럼 어디 예뻐해 줘 봐요.”
난 사장님이 얼마나 날 좋아하는지 모르겠으니까, 직접 증명해 달라구요.
은돈이 당돌하게 말을 이었다.
그리곤 머지않아 독현의 한숨소리가 프레지던트 룸 안을 울렸다.
예뻐해 달라고?
그가 책상위의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버튼을 누르자, 커다란 통 유리창 위에서 지잉- 자동으로 롤스크린이 내려왔다.
“뭐……하시는 거에요?”
롤스크린이 유리창 바닥까지 떨어져 더 이상 홀 직원들 누구의 모습도 보이지 않게 되자, 은돈이 살짝 당황한 채 물었다.
“예뻐해 달라며.”
햇빛조차 들어오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차단 된 밀실. 독현이 회전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런 그의 모습은 섹시하다 못해 어쩐지 위험해보이기까지 했고……
꿀꺽. 은돈이 저도 모르게 긴장한 침을 삼켰다.
……한편, 같은 시각.
여직원 탈의실의 소형이 ‘임시’라고 쓰인 자신의 락커룸을 감격스런 손길로 쓸어 내렸다.
그러나, 벅차오르는 감동도 잠시. 그녀가 엑스라지 사이즈의 조리복을 보며 한숨을 터뜨렸다.
“이렇게 쪼매난 걸 어떻게 입으라는겨……안 되겄어. 가서 바꿔와야지.”
소형이 조리 복을 어깨에 걸친 채 탈의실 문고리를 붙잡았다.
그런데 그때,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 했다.
“으르렁 으르렁대♬ 으르렁~으르렁 대~♪”
“네, 여보세유? 아……! 전화 주실 줄 알고 있었구먼유!”
핸드폰을 받아든 소형이 반갑게 외쳤다. 그러자, 곧 수화기 너머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그래, 사장님과의 재회는? 성공적이었나요?
“네. 소라 언니 덕분에유. 아, 제가 언니라고 불러도 되쥬……?”
-물론이죠.
강남의 어느 명품관. 자신의 운전기사에게 쇼핑백을 툭 던지듯 건네며, 소라가 싸늘한 시선을 곧추세웠다. 그리곤 이내 핸드폰에 대고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얼마든지 나한테 얘기해요. 내가……힘이 돼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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