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46화 (46/93)

46화. 너랑 악수 따윈 안 해.

“차은돈! 임마! 축하한다!”

“은돈 씨, 경연 2등 축하해요! 자자! 한 턱 쏴!”

다원정 한식 레스토랑.

오픈 준비가 한창인 홀 안으로 들어선 은돈과 독현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을 향해 폭죽을 터뜨리는 직원들을 보며 은돈이 커다랗게 눈을 치떴다.

“다들……뭐에요?”

“뭐긴! 우리 은돈 씨 출근하기만 목 빠지게 기다렸어. 상 탄 거 축하해! 그리고……”

직원 하나가 말끝을 흐리며 은돈의 눈치를 살폈다.

“그 동안 은돈 씨 무시했던 거 미안……”

“나도 미안해요! 지난번 초계탕 사건 때 범인으로 오해했던 것도 그렇고……사과할게요.”

“이번에 나 진짜 차은돈 씨 다시 봤어! 대단해!”

은돈이 앞 다투어 축하를 건네는 홀 직원들과 주방 조리사들을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봤다.

“아니 근데 축하는 축하고……차은돈 씨 지금 사장님이랑 같이 출근한 거……?”

그때 구석에서 입을 삐죽이고 있던 총지배인이 껀수를 잡았다는 듯 불쑥 끼어들었다.

“둘이 어떻게 같이 와? 풋……사장님 세컨드라는 소문은 루머가 아니었나보네.”

지배인의 여우같은 비아냥에 몇몇 직원들이 다시 혼란에 빠진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입구 쪽에서 소라의 날카로운 음성이 날아들었다.

“차은돈 씨랑 이 레스토랑 오너는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에요. 내가 보장하죠.”

생긋 웃으며, 소라가 직원들의 곁으로 다가섰다.

또각, 또각. 차가운 대리석 바닥에 닿는 그녀의 굽 소리가 왠지 모두를 얼어붙게 만들었다.

독현이 그녀의 움직임을 지그시 눈으로 쫓았다. 어느새 그의 표정이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다들 좋은 아침입니다.”

독현의 시선을 무시한 채, 소라가 경쾌한 한마디를 내던졌다.

뭐 저런 게 다 있어? 소싯적 왜놈에 버금가는 뻔뻔함이구만.

은돈이 황당하다는 듯 그녀를 응시했다. 그때, 바로 옆에서 지극히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문소라. 내 방으로 와.”

“……그래. 그럴게.”

소라가 이미 예상했다는 듯, 돌아서는 독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곧 그녀의 입가에 시니컬한 미소가 걸렸다.

***

“축하해. 차은돈이랑 정식으로 사귀기로 했다며?”

프레지던트 룸. 요염하게 다리를 꼬고 앉은 소라가 맞은편 독현을 향해 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냉담한 눈빛과 싸늘한 침묵뿐.

“뭐야? 부정 안하는 거 보니 사실이구나? 너 정말 차은돈이랑 사귀기로 한 거야? 기어이?”

조롱기어린 그녀의 물음에, 독현이 협탁 위로 사진 몇 장을 툭 내던졌다.

“무슨 사진이야?”

“직접 확인해. 네 두 눈으로.”

그의 무감정한 대답에 소라가 손을 뻗어 사진들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곧 우습다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사진 속 배경은 화려한 클럽 내부. 바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잔을 기울이는 이강민과 소라의 모습이 찍혀있었다.

“하여간 지독현 대단해. CCTV라도 돌려본 거야? 뭐, 이 사진 한 장이면 만천하에 드러나겠네. 처음부터 심사위원 이강민을 유혹한 게 차은돈이 아닌 나라는 거.“

드디어 차은돈이 섹스 스캔들의 오명을 벗는 건가?

그녀가 혼잣말을 읊조리며 픽 웃었다. 독현이 그런 소라를 꿰뚫듯 직시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네 짓이라는 건 누구나 알아. 들킬 걸 알면서도 이런 더러운 짓을 하는 이유가 뭐야.“

더러운? 그의 말에 소라가 비스듬히 고개를 꺾었다.

“너한테 경고하는 거야 나.”

“뭐?”

“니가 차은돈을 놓지 않는 이상, 난 그 여자한테 섹스 스캔들보다 더한 짓도 서슴없이 할 거야. 그걸 너한테 일깨워주고 싶었어. 일종의 협박이랄까.”

소라가 협탁 위의 사진을 꼬나보았다.

“증거를 찾아서 차은돈의 결백을 알리고 싶니? 누구한테? 레스토랑 사람들? 아님 세상 사람들?”

쿡. 그녀가 팔짱을 낀 채 실소를 터뜨렸다.

“스캔들이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서 굳이 니가 먼저 차은돈의 섹스 스캔들을 해명하겠다고 나서면. 그 여자 꼴이 더 우스워 질 텐데, 괜찮아?”

소라의 물음에 독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의 시선이 베일 듯 날카로웠다.

“아. 그리고 혹시라도 회장님께 이 사진들 가져갈 생각은 마. 그분은 처음부터 내가 차은돈을 모함했다는 거. 알고 계셨거든.”

이죽대듯 던져진 말에, 독현이 고개를 끌어올렸다.

“뭐라고?”

“지명준 회장님. 아니……네 할아버지 말이야. 처음부터 차은돈의 섹스스캔들이 가짜라는 거 알고 계셨다구. 그 분이 어떤 분인데. 내 거짓말에 속을 것 같아?”

차은돈이 결백하다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궁지로 몰아넣고 경연 참가 자격까지 박탈했다……?

하. 독현이 질렸다는 듯 소라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그의 숨 막히는 시선에 소라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져 내렸다.

“매번 그런 눈으로 날 보는데도 적응이 안 돼. 번번이 자존심이 상해 미칠 것 같단 말이지.”

“……내 레스토랑에서 나가.”

일순 독현의 무거운 한마디가 룸 안을 울렸다.

“그나마 널 친구로 생각해주는 것도 여기까지야. 두 번 다시 차은돈 건드리지 마. 너에 대한 배려는 이걸로 끝이야.”

“배려라……고맙네, 말뿐이라도.”

소라가 독현의 짙은 동공을 빤히 응시했다. 묘하게 사람들 홀리는 눈이었다.

“좋아. 나가줄게. 안 그래도 어울리지 않는 주방 보조 노릇, 슬슬 지겨워지던 참이었어.”

스윽, 그녀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곤 우뚝 선 채 독현을 내려다보았다.

“근데 말이야. 날 여기서 내쫓는다고 뭐가 달라지긴 하니?”

니가 경계해야할 건 내가 아니야 지독현.

그녀가 눈빛을 번득였다.

“소꿉장난 같은 니들 연애. 회장님이 언제까지 참아주실까……? 회장님, 네 생각 이상으로 무서운 분이야. 알잖아? 네 친모도……”

소라가 말꼬리를 늘이며 독현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나. 그의 얼굴이 한껏 경직 돼 있었다.  친모의 얘기엔 언제나 반응이 빠르다니까.

그녀가 우습다는 듯 독현을 향해 지껄였다.

“네 친모가 그런 식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데는, 회장님의 책임이 커. 단 한 번도 너희 어머닐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으셨잖아.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 적막한 저택에 가둬 놓다시피한 채 새장 속 새 처럼 살게 했으니.”

“……그만해.”

“너 설마 차은돈도 그렇게 만들고 싶은 거야? 온갖 무시와 멸시 속에서, 비참한 순간들을 견디며 살게 하려고? 네 어머니처럼……?”

순간 자리에서 일어난 독현이 소라의 팔목을 세차게 거머쥐고 문으로 향했다.

아! 소라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터져 나왔다.

“뭐하는 짓이야!?”

“이방에서 나가.”

“이거 놔! 내발로 갈 테니까.”

소라가 그를 뿌리쳤다. 그와 동시에 몸을 돌려세운 독현이 양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격하게 짓눌렀다.

“내 친모에 대해 다 안다는 듯 함부로 지껄이지 마.”

어깨를 파고드는 독현의 세찬 손길. 소라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난 단지 회장님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고 싶었을 뿐이야. 니가 차은돈을 억지로 곁에 묶어두려다 망가지는 꼴 보고 싶지 않아, 난.”

“……”

독현이 헝크러진 시선으로 소라를 응시했다. 가까이서 느껴지는 그의 거친 숨결.

그때였다. 숨 막히는 정적을 깨고 똑똑, 조심스런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곧 문이 열리며 은돈이 들어섰다.

“아, 저기……”

소라의 어깨를 짓누른 채 서있는 독현을 보며, 당황한 은돈이 간신히 말문을 열었다.

“식사 준비 다됐는데요……사장님.”

은돈의 목소리에 비로소 독현이 고개를 돌렸다. 그가 소라의 어깨를 붙든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럼 얘기 나누세요. 전 나가있을게요.”

꾸벅, 은돈이 인사를 하곤 돌아섰다. 그때 등 뒤로 독현의 음성이 들려왔다.

“나가야할 사람은 니가 아니야.”

그의 메마른 시선이 소라를 향했다. 그의 의중을 알겠다는 듯, 소라가 또각또각 걸어 문으로 다가섰다. 은돈이 제 앞에 선 그녀를 마주보았다.

“나 방금 차은돈 씨 덕분에 해고당했어요, 축하해요. 드디어 모든 게 당신이 원하는 대로 됐네요? 눈엣가시 같은 날 쫓아내고, 지독현을 차지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은돈이 그녀를 비웃었다.

“문소라 씨가 원하던 대로 안 된 것뿐이죠.”

“그런가?”

소라가 여유롭게 웃었다. 당장 지명준 회장이 이 여잘 어쩌지는 않을 것이다.

자신이 손쓰지 않아도 이런 피라미정도는 알아서 떨어져 나갈 거라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녀가 은돈을 노려보았다. 그리곤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자기가 피라미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여자라는 게 문제지.”

“뭐라구요?”

“잘 있어요. 조만간 또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지만.”

소라가 은돈의 곁을 툭, 지나쳐 룸을 빠져나갔다.

은돈이 참았던 한숨을 내쉬며 그제야 독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 때문에……문소라 씨 해고한 거에요? 제주도에서, 그 스캔들 때문에?”

“그래.”

독현이 짤막하게 대답했다. 은돈의 시선이 그를 거쳐, 곧 협탁 위에 놓인 소라의 사진들에 머물렀다.

“이제 회장님도 아세요? 그 스캔들, 내 잘못 아니라는 거.”

조금 긴장한 듯 물어오는 은돈을, 독현이 잠시 바라보다 곧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다들 니 잘못 아니라는 거 알아.”

“정말요?……다행이다……”

비로소 안심이 된 듯 은돈이 얼굴을 치켜들었다.

“사실은 회장님이 계속 오해하고 계실까봐 걱정 많이 했거든요. 사장님의 유일한 가족인데……그분한테 잘 보이진 못해도 밉보이고 싶지 않아서……”

그녀가 멋쩍은 듯 웃었다. 독현이 말없이 시선을 떨궜다.

“참. 오늘 저녁에 제가 한턱 쏘기로 했거든요? 사장님도 꼭 오세요. 미자한테 그간 밀린 방세 갚느라 상금이 반 토막 나긴했지만, 그래도 맛있는 거 사드릴……”

말을 잇다 만 은돈이 독현을 올려다보았다.

“왜 그렇게 빤히 봐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넌 이걸로 만족해?”

“네?”

“니가 원하면. 문소라를 어떻게 해줄 수도 있어.”

그의 말에……은돈이 살짝 미소 지었다.

“어떻게 하게요? 김칫독마냥 그 여잘 땅에 파묻기라도 할래요?”

“니가 원하면.”

그의 대답에 은돈이 황당한 얼굴을 해보였다, 곧 다시 웃었다.

“아니다. 아예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문소라가 심사위원 이강민을 유혹한 장본인이다, 똑같이 망신 줘버릴까요?”

“그것도 니가 원하면.”

“……”

독현의 진지한 대답에 은돈이 입을 다물었다.

“회장님이 아셨다면서요. 내 잘못 아닌 거. 그럼 됐어요. 부주도, 경훈 선배도, 그리고 지세도……그 스캔들을 아는 사람들은 다 내편이니까. 뭣보다……사장님이 날 믿어주니까. 이제 괜찮아요.”

은돈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나저나 요즘 같은 천만 백수 시대에, 문소라 씬 어떻게 다시 직장을 구하죠?”

너스레를 떠는 그녀를 바라보던 독현의 입술이 곧 지그시 벌어졌다.

“미안해.”

난데없는 사과. 어떠한 미사여구도 갖다 붙이지 않은 솔직한 그 한마디에 은돈의 놀란 토끼눈을 해보였다.

“지금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사장님이?……왜?”

지명준 회장과 문소라. 자신의 주변 사람들은 앞으로도 은돈을 상처주고 괴롭히고 모욕할 것이다.

그 생각에 사로잡힌 독현이 잠자코 은돈을 응시했다.

“너……나랑 있으면 계속 이런 일에 휘말릴 거야.”

뭐야. 난 또 뭐라고.

“휘말려도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괜찮아요.”

그만한 각오도 없이 좋아한다고 냅다 질러 버렸을까봐? 은돈이 밝게 웃었다.

그와는 정반대로 더욱 얼굴을 굳힌 독현이 재차 입을 열었다.

“괜찮냐고 물어본 게 아니라.”

“……?”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냥 내 옆에 있어달라고 부탁하는 거야 지금.”

독현이 갈급한 시선을 곧추세우고 은돈을 응시했다.

“……뭐 까짓 거. 그 부탁 들어줄게요.”

앞으로 잘 해봐요 우리. 은돈이 독현을 향해 오른손을 처덕 내밀었다.

독현이 그 손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뭐하는 거지 이 여자?

“너랑 악수 따윈 안 해.”

그가 자신에게 내밀어진 오른 손을 가볍게 무시한 채, 은돈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그리곤 그녀를 자신의 품에 살며시 안았다.

“사장님. 사람들이 보면 어쩌려구 이래요.”

은돈이 커다란 통유리 밖으로 보이는 직원들을 의식한 듯 안절부절 했다. 그 모습에 독현이 개구진 미소를 머금었다.

제발 좀 봤으면 좋겠는데. 특히 그 자식 말야.

그가 은돈을 안은 두 팔에 살짝 힘을 주었다.

***

“아니 누가 알았겠어!? 내가 차은돈한테 고기를 얻어먹는 날이 올 줄이야!”

직장인들로 정신없이 붐비는 회식의 명소, 회식의 메카, 돼지갈비 집.

“이게 소갈비였음 쬐~끔 더 감동이었을 텐데.”

입방정을 떠는 경훈의 정수리를 부주가 숟가락으로 딱! 내리쳤다.

“에헤이! 소면 어떻고 돼지면 어때! 공짜라는 게 중요하지! 차은돈! 축하한다! 자 다들 건배!”

부주가 잔을 치켜들며 외쳤다. 그와 동시에 은돈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직원 일동이 모두 잔을 치켜 올렸다. 맨 구석에 있던 총지배인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듯 잔을 집어 들었다.

“저기 부주. 근데 지세는……”

맞은편에서 열심히 고기를 굽던 은돈이 부주를 향해 조심스레 물었다.

“아, 그 자식. 일 다 마치고 올 거야. 오늘 하루 종일 애가 매가리 없이 멍해 있길래 내가 냉동고 재고 정리 좀 시켰거든.”

“재고 정리요? 그거 혼자서 하려면 힘들,”

“아이고! 사장님! 여깁니다, 여기!”

부주가 은돈의 말을 잘라먹으며 요란하게 머리위로 손을 흔들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곳엔 ‘당연히’ 독현이 서 있었다.

“여기가 따로 발렛이 안돼서, 차 대느라 힘드셨죠? 이쪽으로 오세요 사장님!”

부주의 외침을 못들은 척, 독현이 구두를 벗고 고기 집 마루위로 올라섰다.

한 근을 시키면 1+1으로 한 근이 더 따라온다는 믿기지 않는 슬로건을 내 건 저가형 돼지갈비 집.

여기저기서 ‘이모!’ 를 외치는 생경한 광경을, 독현이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뭐, 생각보단 나쁘지 않군.

처음 와 보는 돼지 갈비 집이 꽤 맘에 든 듯, 독현이 다원정 직원들을 향해 다가섰다.

“오, 오셨어요.”

은돈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 한 듯 애써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응.”

대답하는 독현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스쳤다. 곧 이어 그가 은돈의 옆자리를 향해 걸음을 떼어 놓으려는데, 갑자기 부주의 외침이 들려왔다.

“여기 상석에 앉으세요, 사장님! 제가 특별히 방석 세 개 깔았습니다!”

독현을 끌어당겨 정중앙 자리에 억지로 착석시킨 부주가 눈치 없이 껄껄 웃어 제꼈다.

“……부주.”

독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린 채 그를 응시했다.

“집에 안 가나?”

“……예? 저 지금 한 점 먹었는데……”

후. 독현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부주가 그런 오너의 눈치를 살피며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자 그럼 거의 다 온 건가?! 아 문소라 씨 안 왔나?”

“부주, 문소라 씨 오늘부로 그만뒀잖아요.”

경훈의 말에 순간 왁자지껄했던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다.

쿨럭, 부주가 어색한 헛기침을 시전 했다.

“아니 뭐……직원들한테 따로 인사도 않고 그냥 그만둬 버리니까 좀 황당하긴 하네.”

그때, 경훈이 부주의 귀에 대고 은밀한 귓속말을 흘려 넣었다.

“부주, 아무래도 제주도에서 그 스캔들요. 진짜 차은돈 말대로 문소라 씨가 조작한 게 맞나봐요. 그러지 않고서야 갑자기 도망치듯 일을 그만 둘 이유가 없죠.”

“헐? 그럼 우리 사장이 문소라를 내치고 차은돈 편을 들어준 거야?”

“두, 둘이 사귀는 게 아닐까요?”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쑥덕이던 두 사람이 곧 심각한 얼굴을 치켜들었다. 그리곤 은돈과 독현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뭐야? 내 얼굴에 뭐 묻었나?”

독현이 부주를 향해 까칠한 한마디를 내던졌다.

“아……아, 예! 이제 보니 사장님 얼굴에 눈코입이 묻었네요! 핫핫핫! 자 건배!”

부주가 사상 최악의 개그를 날리며 다시 잔을 치켜들었다.

그와 동시에 독현이 술잔을 탁 내려놓았다.

“난 됐어.”

“아, 안 드세요?”

부주의 물음에 독현의 시선이 맞은편의 은돈을 힐끗 향했다.

“데려다 줄 사람이 있어서.”

“………하하, 자 드세요들!”

그의 시선을 느낀 은돈이 매우 어색한 몸짓으로 갈비를 뒤집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부주가 매우 미심쩍다는 듯 턱을 문질렀다.

“어? 막내 지금 오냐?”

그때, 경훈이 입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와 동시에 은돈의 고개가 돌아갔다. 그녀의 시선이 이제 막 문을 열고 들어선 지세를 향했다.

“야 이지세! 재고 정리한다고 고생했다! 빨리 와 앉아!”

부주의 외침에 지세가 가볍게 고개를 꾸벅이며 인사를 건넸다. 그리곤 자리로 다가온 그가 곧 은돈의 비어있던 옆자리에 털썩, 몸을 앉혔다.

“……”

“……”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의 행동에, 아무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오직 은돈과 독현만이 입을 다물 뿐이었다.

독현이 날 선 얼굴로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부주, 재고 리스트 새로 작성해뒀는데 내일 확인 좀 해주세요.”

부주와 태연하게 대화를 나누며, 지세가 은돈의 고기 집게를 대신 빼앗아 들었다.

“아니 내가 해도 되는데……”

아무렇지 않게 대신 고기를 굽는 그를 보며 은돈이 아까의 몇 배 쯤 더 어색해진 얼굴을 쳐들었다.

심기가 뒤엉킨 독현이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다, 곧 입술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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