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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밥해주기-45화 (45/93)

45화. 지독현의 예감.

“야 차은돈! 너 2등 상금 얼마 받았냐!? 내일 수상 턱 쏠 거지! 나 기대한다!?”

인천공항.

부주가 택시 트렁크에 캐리어를 쑤셔 넣으며 큰소리로 외쳤다.

“넵 부주! 내일 봬요!”

은돈이 택시에 올라타는 부주와 경훈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지세가 그런 은돈을 흘깃 응시했다.

“……우리도 가죠.”

“어? 아, 응……”

은돈이 앞서 걷는 그를 멀거니 응시했다. 바로 옆집인데 따로 가자고 하는 게 더 이상하겠지?

“먼저 타요.”

지세가 택시 뒷문을 연 채 은돈을 바라봤다.

“아, 땡큐……”

은돈이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후다닥 뒷좌석에 올라탔다. 뒤이어 지세가 그녀의 옆자리에 몸을 앉혔고 머잖아 택시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

“……”

아. 어색하여라. 뻘쭘해 미쳐버릴 것 같아.

말 한마디 통하지 않는 산유국 중동 코쟁이와 폰팅을 한대도 이보단 뻘쭘하지 않을 것이여.

은돈이 지세의 옆얼굴을 힐끔댔다. 실연당한 쪽은 오히려 그녀처럼 보였다. 지세는 여느 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비행기 안에서부터 무슨 음악을 듣는지, 여전히 이어폰을 귀에 꽂은 채였다.

“지세야. 뭐 들어? 아, 내 말 안 들리려나……?”

민망해진 은돈이 때는 이때다 재빨리 말을 이었다.

“저기, 난 피곤해서 눈 좀 붙일게.”

그녀가 창가에 머리를 텅! 기댔다. 그리곤 억지로 잠을 청하기를 한참…… 이내 규칙적이고 고른 숨소리가 택시 안에 울려 퍼졌다.

“……”

진짜로 잠이 들어버린 은돈을 힐끗 보며, 지세가 귀에서 이어폰을 빼냈다.

음악은커녕 처음부터 아무 것도 듣고 있지 않았다.

그냥……자신과 은돈 사이의 어색한 공백을 메워 줄 뭔가가 필요했다.

그녀가 제 앞에서 아무렇지 않은 척 떠들며 애쓰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

보기 좋게 차인 주제에 은돈을 배려하는 꼴이라니. 그가 스스로에게 질렸다는 듯 창가로 시선을 돌렸다.

***

“다 왔어요, 누나.”

택시 안.

창문 밖으로 곧 무너져 내릴 듯한 행운빌라의 외경이 보였다.

“총각 어쩌지? 한 바퀴 또 돌아?”

기사가 룸미러로 지세를 바라보며 기대에 찬 물음을 던졌다.

그와 동시에 지세가 난감한 듯 커다란 손으로 자신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뒤이어 그의 눈길이 잠이 든 은돈에게 향했다. 자신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늘어져라 코를 골고 있는 그녀……

“허허. 여자 친구가 꽤 피곤했던가 봐. 어떻게, 한 바퀴 더? 콜?”

기사의 채근에 지세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운을 떼려는 찰나,

“뭐야……왜 이렇게 축축해……”

막 잠에서 깬 은돈이 흥건히 젖은 지세의 어깨를 반쯤 감긴 눈으로 응시했다.

헙. 순간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내가 미쳤지, 대체 왜 얘 어깨에 기대서자고 있어!?

아니 그보다……지세 어깨에 저 흥건한 얼룩은……

“저기 혹시……나 자다 운 거야……?”

“네?”

“그거 제발 내 침이라곤 하지 말아줘……”

침 자국이 확연한 지세의 어깨를 아련하게 바라보던 은돈이 곧 잽싸게 택시 문고리를 잡았다. 튀자. 여기 계속 있다간 쪽팔려서 머리가 터져버리고 말거야.

세상 어떤 여자가 냉정하게 차버린 남자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잠이 드냐고. 그것도 침까지 질질 흘려가며.

“핫핫……이거 뭐, 턱에 구멍이 났나……”

정신 나간 은돈이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을 쳐들었다. 그리곤 지세에게서 달아나려는데, 누군가 밖에서 요란스레 택시 차창을 두들겼다.

“야 이게 누구야! 차은돈! 그리고……옆집 꽃돌이!?”

“어어! 미자야! 뭘 마중까지 나오고 그래!”

은돈이 호들갑을 떨며 재빨리 뒷좌석 문을 열어젖혔다.

“자 얼른 들어가자 친구야! 이지세 나 먼저 가볼게. 내일 보자!”

그의 입에서 무슨 얘기가 나오기도 전에, 은돈이 후다닥 빌라 입구로 사라졌다.

“여자친구가 아닌가벼……?”

기사가 코를 후비작대며 뒷자리의 지세를 향해 물었다.

“아니에요……지금은.”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지세가 홀연한 얼굴로 은돈이 사라진 빌라 입구를 응시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야, 너 혹시 옆집 꽃돌이랑 뭔 일 있냐? 아까 보니까 둘이 분위기가 꽁기꽁기 하던데?”

화장대에 앉은 미자가 클렌징크림으로 얼굴을 범벅한 채 은돈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곧 알만하다는 듯 확신에 찬 탐정 미소를 선보였다.

“너희 둘……사귀지?”

“뭐?”

“에라이 귀신을 속여라 이년아. 하긴……같은 빌라에, 같은 직장이면 정분 날 만 하지.”

은돈이 황당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세랑 나 절대, 절대로 그런 사이 아니야.”

“야! 사귀는 게 아니면 왜 어깨에 기대서 잠을 자? 나 아까 다 봤다?”

“아오! 내가 미친년이야 내가!”

은돈이 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미치지 않고서야 어떻게 거기서 침까지 흘리며 잘 수 있냐고. 이 빌어먹을 렘수면이여……

“야 그나저나 너 경연 끝난 기념으로 우리 치맥이나 할까? 어때? 옆방 니 애인도 불러서,”

“애인 아니라니까!?”

“쯔쯧, 그냥 솔직히 불어. 이제 보니 옆집 꽃돌이가 맨날 아침에 우리 집 쓰레기를 대신 버려준 이유가 있었구만. 분리수거도 싹 해주고.”

“너……너 절대 지세한테 그런 거 시키지 마!”

“애인이라고 편들긴.”

“아니라고, 아냐! 절대!”

안 그래도 심난해 죽겠구만. 은돈이 미자를 마주보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리곤 고심 끝에 툭 던진 한마디.

“나 만나는 사람 따로 있단 말이야.”

“……엑소나 강동원이라고 하는 순간 넌 이 집에서 맨발로 쫓겨날 것이여.”

“나 장난 하는 거 아냐.”

“그래? 니 애인이 누군데?”

“……사장님.”

은돈이 마치 주둑 든 어린애처럼 작게 읊조렸다.

“뭐, 누구?”

“사장님이라구. 우리 사장님.”

“?”

여전히 고개를 갸웃하는 미자를 위해, 은돈이 딱 그녀의 눈높이에 맞게 다시금 말을 이었다.

“대성명가 지명준 회장의 친손자. 식품 재벌 3세, J씨.”

“아 지독현 사마!”

그제야 얼굴이 환해진 미자가 곧 사태파악이 됐는지 헉,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곤 불안한 얼굴로 은돈을 응시했다.

“너……지명준 회장한테 청부 살해당하는 거 아니니?”

어떻게 그 고귀하신 집안의 자제분을 건드려?

너무도 진지한 미자의 물음에 은돈이 웃지도, 울지도 못하며 헛헛하게 허공을 바라보았다.

같은 시각.

자신의 맨션에 도착한 독현이 자켓을 벗어들곤 털썩, 소파위에 몸을 앉혔다.

그의 손엔 아까부터 울리지 않는 핸드폰이 쥐어져 있었다.

“……”

그가 삐딱한 시선으로 핸드폰을 노려보았다.

자신보다 훨씬 먼저 서울에 도착 했을 텐데. 한통의 연락조차 없었다.

독현이 거침없이 메시지 버튼을 눌렀다.

-뭐 해. 왜 하루 종일 연락이 안……-

일순 멈칫한 독현이 삭제버튼을 연달아 누른 뒤 보다 간단명료한 두 음절을 만들어냈다.

-뭐 해.-

꾸욱. 메시지 전송버튼을 누른 그가 곧 소파 등받이에 편안히 등을 기댔다.

그러자 이제껏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하지만 이대로 잠을 청할 순 없었다. 행여 자신이 잠든 사이에 은돈이 답장이라도 보내온다면.

“그걸 무시하는 건 예의가 아니야……”

독현이 유치한 혼잣말을 단호하게 지껄였다. 그리곤 잠을 쫓으려는 듯 양 손으로 가볍게 마른 세수를 했다.

***

“메시지가 도착 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소파 위의 독현이 잠결에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싸장님 굿모닝! 오늘도 본의 아니게 제일 먼저 출근해버렸네요! 핫하하♥-

잠시 후. 그가 액정에 들어찬 부주의 포토문자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다원정 입구 앞에서 볼에 바람까지 넣고 찍은 그의 출근인증 셀카가, 곧 독현의 핸드폰에서 무참히 삭제됐다.

……차은돈은 대체 뭘 하는 거야?

그가 날선 시선으로 벽에 달라붙은 LED시계를 응시했다.

그녀에게 무려 아홉 시간째 문자를 씹히고 있는 상황. 순간 독현의 얼굴위로 묘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혹시 하루 만에 마음에 식은 게 아닐까.

차은돈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굉장히 변덕스러운 여자니까.

독현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어졌다. 차은돈은 그가 매달린 유일한 여자였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러웠고, 혹시 잃게 될까 조바심이 났다.

그가 여전히 묵묵부답인 핸드폰을 바라보다, 곧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

“미자야 나 나가!”

신발장 앞에 선 은돈이 구두를 낑겨 신으며 현관문을 열었다.

“차은돈 잠깐! 너 내 말 잘 들어. 지금 이 순간부터……니네 사장한테 너무 정주지 마. 어차피 곧 차일 테니까.”

팔짱을 끼고 선 미자가 심오하게 입을 열었다.

“딱 보니까 니네 사장. 좀 어린애 같은 구석이 있던데……알아? 그 남자한테 넌 불량식품이란 거.”

“불……뭐시기?”

은돈이 잠자코 팔뚝을 걷어 붙였다. 여차하면 아침부터 한 판 뜨게 생겼는데?

“어디 쭉 지껄여봐 미자야.”

“아니 생각을 해 봐. 맨날 스테이크만 먹다가 학교 앞에서 파는 오백냥짜리 피카츄 돈까스를 처음 봤으니 얼마나 호기심이 일겠어?”

“너……지금 날 피카츄 돈까스에 갖다댄 거냐?”

“컵볶이나 순대 이천 원어치가 아닌 걸 고맙게 생각해 이년아. 하여간! 피카츄 돈까스가 감히 최고급 투뿔 스테이크에 견줄 수 있기나 해?”

“야……”

“결국 너만 상처받고 끝날 거야. 그 남자, 너 같은 피카츄 돈까스는 조만간 쓰레기통에 홱 던져버리고 스테끼 칼질하러 갈 거라니까?”

“……몰라. 나중 일은 나중에 생각 할 거야.”

“뭐? 야! 야 차은돈! 그냥 맘 주지 말고 즐겨! 엔조이라 생각하라구! 알겠지?”

등 뒤에서 들려오는 미자의 외침을 애써 못들은 척 하며, 은돈이 황급히 계단을 내려섰다.

그리고 몇 분 후.

빌라 앞에 멈춰 선 그녀가 돌하르방처럼 입을 떡 벌린 채 눈앞의 페라리를 응시했다.

“사장님……아침 댓바람부터 여긴 왜……”

찰칵, 그녀의 말이 채 끝을 맺기도 전에 독현이 벨트를 거칠게 풀고는 차에서 내려섰다.

“너……”

이윽고 그가 차 보닛을 빙 지나쳐 은돈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섰다.

“웨, 웬일이세요? 혹시 냉장고에 반찬 다 떨어졌어요?”

그녀의 천진한 물음에 어이가 없다는 듯 독현이 미간을 구겼다.

“차은돈.”

“네, 사장님?”

“너 왜.”

“네?”

“……”

“……?”

1차로 말문이 막힌 독현이 의아해하는 은돈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곧이어 그가 특유의 포커페이스를 빛내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연락. 왜 하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거지?”

아……! 그제야 은돈이 멋쩍은 얼굴을 치켜들었다.

“혹시 내 연락 기다렸어요?”

“……뭐?”

2차로 말문이 막힌 독현이 화를 누르며 또박또박 뇌까렸다.

“안 기다렸어.”

“미안해요. 어제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서 정리 좀 하느라 답장을 못,”

“사과 하지 마. 네 연락 기다린 거 아니니까.”

“네? 네……”

은돈이 멍하니 대답하며 초딩 독현을 올려다보았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히 묻어나는 그의 얼굴. 뭐가 급해서 셔츠 단추가 풀어진 것도 모른 채 여기까지 차를 몰았을까.

그녀가 애잔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작 잘 보여야 할 사람은 난데……

“사장님. 단추 풀어졌어요.”

은돈이 손을 뻗어 독현의 두, 세 번째 단추를 채워주었다.

그런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는데 묘하게 안심이 되는 건 왜일까. 독현이 뭔가를 말하려다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저기요 사장님……나 좀 레스토랑까지 태워다 줄래요? 가, 같이 출근해요 우리.”

용기를 쥐어짜 가까스로 튕겨낸 한마디. 그 한마디에 독현의 굳어졌던 안색이 살짝 풀어졌다. 은돈이 예상치 못한 그의 단순한 면모에 피식 웃었다.

“타.”

이윽고 독현이 페라리 옆 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곤 고개를 돌려 은돈을 바라보는데……그때였다. 빌라 입구를 빠져 나오는 익숙한 실루엣이 그의 시야에 잡혔다.

“……이지세?”

독현의 읊조림에 은돈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맨투맨 차림으로 어깨에 백팩을 걸친 지세가 보였다.

“……”

지세 역시 멈춰선 채 독현과 나란히 있는 은돈을 바라보았다.

본의 아니게 마주친 세 사람 사이에 적막한 공기가 감돌았다.

뭐지. 이 죄진 거 없이 죄진 기분은……?

은돈이 일정 거리를 두고 마주 선 두 남자를 차례로 응시했다.

“먼저 출근할게요. 이따 봐요.”

그때, 지세가 은돈을 향해 말했다. 햇빛에 반사된 그의 갈색 눈동자가 오묘한 빛으로 반짝였다.

“아……응. 이따 보자”

은돈이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그와 동시에 독현의 마른 시선이 휙 그녀에게 쏠렸다.

지금 이 상황이 언뜻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른 시간 같은 빌라 건물에서 나온 두 사람. 한두 번이 아닌 듯 자연스럽게 주고받는 인사.

“머, 먼저 간다네요 쟤가……하하……”

은돈이 드라이한 독현의 눈빛을 마주보며 당황한 듯 웃어보였다.

***

“저기…… 아깐 놀랐죠? 저도 갑작스러워서 설명을 못했는데……실은 저희가 이웃사촌이거든요. 지세, 우리 옆집 살아요.”

페라리 안.

보조석에 몸을 앉힌 은돈이 먼저 정적을 깨고 입을 열었다.

“……옆집?”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다른 손으로 관자놀이를 받친 독현이 정면을 주시한 채 물었다.

“우연히?”

“네? 네. 우연히요. 이 동네가 값이 싸서 자취하기 좋거든요.”

“그렇군.”

무감정한 음성으로 그가 대꾸했다.

“이지세랑은 원래부터 알던 사인가?”

“당연하죠.”

순간, ‘당연하다’는 대답에 독현의 눈빛이 굳어졌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은돈이 무슨 얘기든 주절대야 할 것 같은 압박감 속에서 운을 뗐다.

“지세랑 저, 다이어트 캠프에서 처음 만났어요. 그때 의지할 데가 없어서 되게 힘들었었는데……지세가 많이 도와줬어요. 같이 밥도 먹고, 운동도 하고, 다이어트 식단도 머리 맞대가며 짜고……생각해보면 그때가 좋았던 거 같아요.”

그땐 아무런 사심 없이 지세랑 웃고 떠들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더 이상 그러면 안 되잖아.

어쩐지 센치해 보이는 은돈의 옆얼굴을, 독현이 힐끗 주시했다.

일순 그의 귓가로 이지세의 오래전 음성이 밀려들었다.

‘사장님보다 먼저. 레스토랑에 들어가기 훨씬 전부터……차은돈 씨를 좋아했습니다.’

그게 그런 뜻이었군.

독현이 비로소 알겠다는 듯 시선을 차갑게 가라앉혔다.

“캠프에서 친해진 뒤로 우연히 같은 직장, 또 우연히 같은 빌라에 살게 됐다는 건가?”

“네. 신기하죠……?”

은돈이 살짝 독현의 표정을 살폈다. 그리곤 망설인 끝에 입을 열었다.

“지세, 정말 좋은 동생이에요. 어쩔 땐 진짜 친동생 삼고 싶을 정도로……걔 참 착하잖아요.”

착하다.

은돈의 그 말에서 독현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왜일까. 오히려 문소라보다도 한없이 유약하고 선하기만 한 지세의 존재가 자꾸만 그를 불안하게 흔들어 놓았다.

할 수 만 있다면 은돈의 곁에서 떼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이윽고 복잡한 생각을 떨치려는 듯, 그가 가속 페달을 밟으며 핸들을 꺾었다.

“사장님, 천천히 가요! 이거 에어백 되죠?”

점점 높아지는 속도에, 은돈이 안전벨트를 꽉 붙들며 외쳤다.

……그날, 그 두 사람은 감히 예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서로를 사랑하게 됐을 때, 그래서 도저히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을 됐을 때, 그 손을 억지로 떼어놓는 건 문소라가 아니라는 걸.

사랑에 눈이 먼, 차은돈에 대한 소유욕에 눈을 뜬 이지세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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