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얼마나 더 우스워질래?
“무슨 스캔들?”
독현이 기가 막힌 듯 되묻자, 소라가 살짝 웃었다.
곧 그녀의 야릇한 음성이 다시 한 번 비즈니스 룸에 울려 퍼졌다.
“차은돈 씨의 섹스 스캔들 말이야.”
노골적인 한마디에 독현의 눈매가 매섭게 가늘어졌다.
그때 지명준 회장의 눈짓을 받은 윤 비서가 독현에게 다가와 사진 몇 장을 내밀었다.
“……뭐야.”
“일단 보십시오.”
독현이 받아든 사진을 향해 시선을 끌어내렸다. 그러자 반나체 차림의 남자가 시야에 들어왔다.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니라면, 도망치듯 호텔방을 나서는 사진 속 이 남자는 분명 심사위원 이강민이었다.
뒤이어 사진을 넘기자, 이번엔 아슬아슬하게 샤워가운을 걸친 은돈의 모습이 나타났다.
호텔 복도에 선 채, 그녀가 멀어지는 이강민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죄라도 지은 양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훅, 한숨을 내쉬며 독현이 사진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태연함을 가장하고 있었지만 지금 순간 그의 눈빛은 묘하게 뒤엉켜 있었다.
“이 사진들. 뭡니까.”
고개를 꼿꼿이 세운 채, 그가 지명준 회장을 향해 물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은돈이 다급하게 외쳤다. 그러나 독현은 여전히 자신의 친조부를 응시할 뿐이었다.
“오늘 아침, 누군가 우리 쪽으로 그 사진들을 보내왔더군. 사진이 찍혔다는 건, 앞으로 이 일이 얼마든지 공론화될 여지가 있다는 얘기다.”
지회장이 나란히 서있는 독현과 은돈을 매몰차게 주시했다.
“이번 박람회. 가뜩이나 내 손주 놈이 경연에 참가했다고 뒷말들이 많아. 그 와중에 차은돈 저 아이가 심사위원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는 게 알려지면,”
“아니에요 회장님! 전 그런 적 없습니다!”
“네 변명은 듣기 싫다.”
회장이 살벌한 낯으로 은돈의 말을 가로막았다.
“더 이상 문제를 크게 만들지 마라. 어차피 너와 네 팀은 이번 경연에 나갈 수 없다. 이 시간부로 자격 박탈이야.”
“엥?! 회장님 그건 좀!”
난데없는 불벼락에 부주가 소스라치게 놀라 외쳤다. 지회장이 아랑곳 않으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자네들이 결백하게 경연에 임한다 한들, 사람들은 수군댈 걸세. 반드시 뒷말이 나오게 돼 있어.”
“그래도, 회장님!”
“얘기 끝났으니 나가 봐.”
회장이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그와 동시에 망연자실한 은돈이 소라를 향해 돌아섰다.
“저 사진들……문소라 씨가 찍은 거죠.”
그녀가 독현이 쥐고 있는 사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틀림없어. 문소라는 고의로 심사위원 이강민과 자신의 굴욕적인 순간을 카메라에 담은 것이다.
“솔직히 말해요. 이번 일, 날 골탕 먹이려고 당신이 꾸민 짓이죠.”
“하하, 어이가 없네요.”
소라가 은돈을 향해 눈을 치떴다. 아찔하게 말려 올라간 그녀의 속눈썹 너머로 보이는 동공. 정말로 억울하다는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차은돈 씨 내가 만만한가요? 왜 날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못해 안달이죠?”
순간, 은돈의 격앙된 외침이 울려 퍼졌다.
“제발 사실대로 말해요! 어젯밤 호텔 방에 남잘 불러들인 것도, 나한테 정체불명의 드링크를 건넨 것도! 전부 문소라 당신이잖아! 이번 스캔들, 날 경연에 나가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조작한 거죠!”
그녀의 외침에 모두의 시선이 소라에게 쏠렸다. 말없이 서 있던 독현 역시 시선을 비틀어 소라를 응시했다. 뒤이어 숨 막히는 몇 초의 정적이 흘렀고, 곧 얼음장 같은 한마디가 들려왔다.
“차은돈 씨. 혹시 망상장애 있어요? 이를테면 과대망상증 같은?”
“……뭐라구요?”
“이번 경연. 그래요. 차은돈 씨한테 얼마나 부담이었을지 잘 알겠어요. 하지만 아무리 절박해도 이건 아니죠. 어떻게 이런 천박한 방법으로 심사위원을 매수할 생각을 해요?”
“천박……?”
“그래요. 비겁하고, 천박해요 당신. 같은 여자로서 내가 다 부끄러울 지경이야.”
소라가 환멸어린 시선으로 은돈을 바라보다, 곧 독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감이 어때? 그토록 지극정성으로 편애하던 여직원에게 제대로 뒤통수 맞은 소감.”
“……”
그녀의 비아냥에 독현은 대꾸조차 않은 채 그저 자리를 지킬 뿐.
은돈이 그런 독현을 올려다보았다. 메마른 그의 눈빛.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사장님. 믿어줘요. 나 정말 아니에요.”
은돈이 가까스로 말문을 열었다.
“알잖아요. 내가 매사에 까불고 덜렁대긴 해도, 심사위원이랑 그런 짓 할 정도로 간 큰 애 아니란 거. 생각해봐요. 난,”
“차은돈.”
독현이 급작스레 은돈의 말을 잘랐다. 그리곤 낮게 뇌까렸다.
“나가.”
“……네?”
평소와는 다른 어조. 다른 눈빛. 이질감이 느껴지는 그의 낯선 태도에 은돈이 입술을 깨물었다.
“나 정말 아니라구요. 설마 이런 말도 안 되는 스캔들을 믿는 건 아니죠? 이거 모함이라구요!”
“나가라고 했잖아.”
“사장님!”
“나가. 이 방에서.”
날카롭게 가슴을 긋는 한마디. 은돈이 할 말을 잃은 듯 그를 응시했다.
“사장님……정말 날 못 믿는 거에요? 내가 아니라, 그 사진들을 믿는 거에요?”
독현이 잠자코 시선을 내리깔았다. 곧 은돈과 심사위원 이강민의 굴욕적인 사진들이 그의 손아귀에서 보기 좋게 구겨졌다.
그 모습을 보며 은돈이 자리에 붙박인 듯 굳어 섰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전부가 자신을 믿어주지 않아도, 독현만은 다를 거라고 생각했다. 내 편이 돼 줄 거라고, 어떤 말을 해도 믿어 줄 거라고 생각했다.
대체 왜 그런 바보 같은 착각을 한 거지……?
지독현과 내 관계는 철저히 갑과 을일 뿐인데.
“……누나.”
그때였다. 멍해있는 은돈의 등 뒤로 지세가 다가섰다.
“나가요, 우리.”
그가 커다란 손으로 은돈의 팔목을 거머쥐었다. 그리곤 출구로 돌아서려는 찰나,
“……그 손 놔.”
독현의 냉기어린 음성이 모두의 귓전을 울렸다. 지세가 걸음을 멈춘 채 힐끗 그를 응시했고 잠시 두 남자가 싸늘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가요.”
다시 은돈의 손을 고쳐 잡은 지세가 보란 듯 문으로 향했다.
잠시 후. 문밖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독현이 빤히 직시했다.
분노, 질투, 혼란. 거추장스러운 감정들이 한데 뒤 섞여 쉴 새 없이 그의 머리를 두드렸다.
“……”
그가 두통이 이는 미간을 한손으로 거머쥐었다.
***
비즈니스 룸 밖. 대기 의자에 앉아 시름시름 앓고 있는 부주와 폭탄머리 경훈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내가, 내가! 이렇게 될 줄 알았어! 어쩐지 초장부터 일이 너무 잘 풀리더라구!”
부주가 들으라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굳게 잠긴 비즈니스 룸 앞에 서 있던 은돈이 그 말에 동요한 듯 고개를 수그렸다.
“괜찮아요?”
지세가 은돈의 상처받은 얼굴을 지그시 살폈다.
“누나가……조금만 이해해줄래요? 다들 누날 못 믿는 게 아니라 너무 갑작스러워서, 어떻게든 이 상황을 받아드릴 시간이 필요한 거니까.”
“……넌.”
“?”
“지세 넌 내 말 믿어?”
은돈의 자조적인 물음에 지세가 곧장 대답했다.
“믿어요.”
“아까 그 사진들을 보고도?”
“어떤 사진을 봐도 믿어요.”
그가 은돈의 양 어깨를 조심스레 붙들었다. 그리곤 자신 쪽으로 돌려세웠다.
“나한텐 누나 말이 더 중요해요. 적어도 그런 사진 따위보단.”
그의 확고한 눈빛에, 도리어 은돈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그녀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지세가 곧 뒷말을 덧붙였다.
“……사장님도. 누날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
“그런 굴욕적인 자리에, 누날 죄인처럼 세워두기 싫었던 것뿐이에요. 그러니까……상처받지 마요.”
그렇게 울 것 같은 표정도 제발 하지 마.
지세가 차마 뱉지 못한 말을 삼키곤 시선을 돌렸다.
“얌마 막내! 지금 이 상황에 누가 누굴 위로하는 거냐!”
그때 바짝 날이 선 부주의 음성이 들려왔다.
“부주. 우리 진짜 경연 못나가는 거에요? 아 뭐야……차은돈! 니가 가서 뭐라도 좀 해봐. 엉? 혹시 아냐? 니가 사과라도 하면……”
경훈이 은돈의 표정을 살피며 말끝을 흐렸다.
“……죄송해요.”
그녀가 부주와 경훈을 향해 잦아드는 한마디를 건넨 뒤 다시 굳게 닫힌 문을 응시했다.
이 문 너머에서 독현은 대체 무슨 얘길 하고 있는 걸까. 그녀가 어두운 낯으로 고개를 떨궜다.
……같은 시각, 비즈니스 룸 안.
심사위원 이강민이 지명준 회장과 일동을 보며 언성을 높였다.
“차은돈인지 뭔지 하는 그 여자가 먼저 날 유혹했다니까?! 난 술김에 그 여자가 준 호텔 키를 받았을 뿐이고! 솔직히 그 정도 미모의 여자가 대놓고 들이대는데, 마다할 남자 있습니까? 어이 거기. 그쪽이라면 거절 할 수 있어요!?”
이강민이 맞은편에 몸을 앉힌 독현을 향해 외쳤다. 그와 동시에 독현의 고개가 비스듬히 돌아갔다.
“……확실합니까.”
“뭐요?”
“당신한테 키를 준 게 그 여자가 확실하냐고.”
낮게 가라앉은 음성에, 이강민이 움찔했다.
“뭐……내가 술이 좀 됐긴 했지만 거의 확실해요.”
“거의?”
독현이 시니컬한 조소를 머금었다.
“결국 차은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군.”
“어제 나한테 들이댄 여자가 한둘이 아니라……거 인기 많은 것도 죕니까? 하여간! 그 여자가 직접 키를 준 게 아니면 내가 어떻게 그 방까지 알고 찾아갔겠냐고?”
“다른 사람한테 받았을 수도 있겠지.”
“뭐?”
“그 방 카드키. 차은돈만 가지고 있던 게 아니거든.”
순간. 소라의 얼굴이 굳어졌다.
“설마. 너 지금 날 의심하는 거니? 아까 차은돈 씨 말에 현혹되서 너까지 날 몰아붙이려는 거야?”
몰아붙인다라.
그 표현이 맞는지 모르겠군. 독현이 차갑게 식은 시선으로 소라를 응시했다.
“……정말 아니야 너?”
“지독현!”
“아니냐고 묻잖아.”
소라의 속내를 꿰뚫어 보듯, 그가 날렵한 시선을 유지한 채 말했다.
지독현……정말 날 의심하는 건가. 아니면 그저 떠보기일 뿐?
도저히 본심을 알 수 없는 그의 포커페이스에 난감해진 소라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결국 니 말은. 차은돈 씨를 모함하기 위해 내가 이 스캔들을 진두지휘했다는 건데. 하……맞아. 내가 그랬어. 내가 속 좁은 질투에 눈이 멀어 이런 짓까지 벌였어. 됐니? 니가 원하는 대답을 듣게 되서 만족해?”
“문소라.”
“그렇게 부르지 마. 대체 너 날 어디까지 끌어내릴 셈이야? 얼마나 더 날 비참하게 만들려고 이래!”
자존심이 상한 그녀가 백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명준 회장을 향해 돌아섰다.
“죄송해요. 더 이상 이런 모욕적인 자리에 있고 싶지 않네요.”
또각또각. 출구로 향하는 그녀의 발소리가 정적을 깨고 울려 퍼졌다.
계속해서 모두가 침묵하는 가운데, 소라가 홱 문을 열어젖혔다.
“……어라. 아직 있었네요.”
그녀가 기가 차는 표정으로 문밖에 선 은돈을 응시했다.
“……”
은돈 역시 자신과 마주선 소라를 말없이 노려보았다.
“지독현. 내가 현실적인 충고하나 할까?”
소라가 여전히 은돈을 응시한 채 비즈니스 룸 안의 독현을 향해 운을 뗐다.
“차은돈 씨를 지키고 싶으면, 이번 경연 포기해. 불명예스런 스캔들의 A양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그 방법 말곤 없으니까.”
말을 마친 그녀가 은돈의 어깨를 툭 치며 곁을 지나쳤다.
“잘 해봐요.”
은돈에게만 들리는 은밀하고 야릇한 귓속말.
자신 있는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소라를 돌아보던 은돈이 곧 심호흡을 하며 한 발, 비즈니스 룸 안으로 들어섰다.
“차은돈 씨. 나가 주시죠. 회장님의 언질이 있을 때까지 밖에서,”
“회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은돈이 자신을 제지하는 윤 비서를 지나쳐 지명준 회장에게 다가섰다.
갑작스런 상황에 독현을 비롯한 일동의 시선이 은돈에게 내리꽂혔다.
활짝 열린 문밖에서는 지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걱정스런 눈빛을 보내오고 있었다.
“회장님, 부탁드립니다. 이번 경연, 저를 제외한 다른 팀원들은 예정대로 참가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로 인해 불거진 문제, 저 혼자 책임지겠습니다.”
“하? 책임을 져?”
심사위원 이강민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소리쳤다.
“그런 제안을 하기 전에 일단 나에 대한 사과가 먼저 아닌가?”
“……사과요?”
은돈이 경직된 얼굴로 되묻자, 이강민이 다시금 고조된 음성을 내놓았다.
“이건 너 하나만 경연에서 빠진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냐. 잊었어? 너와 나의 섹스 스캔들이라고! 너 때문에 가장 피를 본 게 나야. 내 명예가 지금 땅에 떨어졌다고!”
“……”
길길이 날뛰는 이강민을, 은돈이 말없이 응시했다.
잠시 후, 결심이 선 듯 그녀의 입이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그녀가 옅게 날숨을 내쉬었다.
“저 때문에 이런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리게 된 거……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천천히, 그녀가 이강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강민은 기도 안찬다는 듯 코웃음을 쳤고, 그때였다.
독현이 은돈의 손목을 거칠게 끌어 잡으며 얼어붙은 음성을 꺼내 놓았다.
“이번 경연. 우린 참가 안합니다.”
“그래. 잘 생각했다.”
지회장이 자신의 친손주를 바라보며 짤막하게 대꾸했다.
“따라와.”
독현이 은돈을 잡아끌고 출구로 향했다.
“이거 놔요! 회장님! 제발 다시 생각해주세요! 저 때문에 다른 팀원들까지 피해를 보는 건,”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한 채, 은돈이 독현에게 이끌려 문밖으로 사라졌다.
이윽고 쾅! 세찬 소리로 문이 닫히며 비즈니스 룸 안에 싸늘한 침묵이 감돌았다.
“사장님 이 손 놔요! 놓으라니까요!?”
문 밖에선 은돈이 자신을 질질 끌고 가다시피 하는 독현의 손을 뿌리치려 안간힘을 썼다.
“사, 사장님 무슨 일입니까!”
대기 의자에 앉아있던 부주가 깜짝 놀라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때 지세가 독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비켜.”
한껏 날이 선 눈동자.
독현이 지세를 똑바로 응시하며 그렇게 말했다.
“못 비키겠는데요.”
지세 역시 그에게 팽팽하게 맞서며 대답했다.
“이거 놓으라구요!”
그때 은돈이 독현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대체 왜 이래요! 거기서 왜 날 끌고 나와요? 난 아직 회장님한테 할 얘기가,”
“너 제정신이야!?”
순간 독현의 격앙된 외침이 대리석 복도를 징- 울렸다.
그와 동시에 깜짝 놀란 부주와 경훈, 그리고 은돈과 지세가 입을 다물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 자식 앞에서 머리를 조아린 거지? 널 싸구려 취급하는 그 자식한테 왜 사과 따윌 한 거야?!”
“사장님.”
“이강민 앞에 머릴 조아린 순간, 넌 너 스스로 그 스캔들의 가해자임을 인정한 거나 마찬가지야.”
“……”
“지금 니 꼴이 어떤 줄 알아? 대체 얼마나 더 우스워질래?”
싸늘한 독현의 말에, 은돈이 잠시 텀을 두고 대답했다.
“맞아요. 우스워요. 나도 하필이면 오늘 내 꼴이 이렇게 우스워질 줄 몰랐어요. 근데요. 좀 우스워지면 어때요? 그깟 머리, 잠깐 조아리면 좀 어때. 자존심 까짓것 난 백번도 더 버릴 수 있어요. 우리 팀만 경연에 나갈 수 있다면……뭐든 해요 난.”
“……뭐?”
“부주랑 경훈선배, 그리고 지세가 그동안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내가 그걸 다 봤는데 어떻게 가만있어요! 난 나 때문에 피해보는 거 싫,”
“더 이상.”
독현이 얼음장 같은 시선을 곧추세웠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마.”
“사장님.”
“아무것도 하지 마.”
“……”
말을 마친 독현이 은돈을 멀거니 세워둔 채 그대로 몸을 돌렸다.
잠시 후, 냉정하게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은돈이 헝클어진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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