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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밥해주기-37화 (37/93)

37화. 떠나요 제주로 2

“떠나요~제주로~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호오~”

제주 신라호텔 로비.

막 체크인을 끝낸 부주가 폭탄머리 경훈과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 ‘비스무리한’ 뭔가를 부르짖었다.

“그나저나 우리 막내 어쩌나. 하필이면 사장님이랑 같은 방을 쓰게 돼서.”

부주가 옆에 서있는 지세를 안쓰러운 눈길로 훑었다.

“뭐……같이 쓰면 쓰는 거죠.”

다소 넋이 나간 얼굴로 지세가 중얼거렸다. 말과는 달리 그는 호텔 프론트에 서있는 독현을 바라보며 멘붕에 빠져있었다.

“손님. 죄송하지만 말씀하신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은 이미 예약이 끝난 상태라……로열 스위트룸도 마찬가집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일반 룸이라도 찾아봐.”

프론트 앞. 독현이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직원을 향해 쏘아붙였다.

“스탠다드든, 디럭스든, 뭐든. 나 혼자 잘 수 있는 방을 줘.”

힐끔. 그가 저만치 뒤에 서 있는 지세를 응시했다. 죽어도 같은 방을 쓰고 싶지 않은 한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저 자식이었다.

그가 다시금 직원을 향해 날카로운 음성을 끄집어냈다.

“아무 룸이나 내 놔. 어디든 괜찮으니까.”

“어디든 괜찮으면 밖에 나가 민박을 알아보지 그러냐?”

그때였다. 등 뒤에서 중저음의 낯익은 음성이 들려왔다.

독현이 돌아본 곳엔 아니나 다를까, 직원들을 대동한 지회장이 서 있었다.

“저 자식, 절대로 방 내주지마.”

지회장이 프론트를 향해 말했다.

“이번 박람회, 우리 대성명가 이름을 내건 행사다. 그런데 명색이 회장 손주란 놈이 이런 곳에서 한심하게 갑질이나 하고 말이야. 윤비서.”

“네 회장님.”

“다른 호텔에 연락해. 저 놈한테 방 주지 말라고. 회장 손주라고 특별 대우 받는 다는 소리 안 나오게 잘 감시해.”

“알겠습니다.”

“이만 가지. 크흠!”

회장이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로비로 돌아섰다. 독현이 삐딱한 시선으로 친조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우뚝 걸음을 멈춰 세운 회장이 다시 독현을 마주했다.

“참, 그 아이. 차은돈이라고 했던가. 내일 경연에 참석하긴 하는 거냐.”

“당연한 걸 굳이 물어보는 이유가 뭡니까.”

독현이 친조부를 향해 딱딱한 어조로 물었다.

“그 아이, 지레 겁을 먹고 경연 시작 전에 내빼진 않았나 해서 말이지.”

“그럴리가요.”

독현의 입가에 서늘한 미소가 어렸다.

“국제 대회도 아니고 겨우 이 정도 경연에서 지레 겁먹을 필요가 있습니까?”

“겨우 이 정도? 버르장머리하고는!”

쯔쯧 혀를 차며 회장이 자신의 오만한 손주에게서 몸을 돌렸다.

독현 역시 친조부를 무시한 채 반대방향으로 시선을 비틀었다.

쿨해도 너무 쿨한 두 사람을 힐끗대던 부주가 지세의 등 뒤로 슬쩍 다가섰다.

“아이고. 우리 어린 양 이지세. 저 까탈쟁이 사장 놈이랑 결국 한 방을 쓰겠구만.”

토닥토닥. 어깨를 다독여주는 부주를 바라본 지세가 다시 독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뒤이어 그의 입에서 야트막한 한숨이 뱉어졌다.

같은 시각, 이미 방에 올라온 소라와 은돈이 싸늘한 침묵 속에 짐정리를 하고 있었다.

“아, 푹신푹신하니 좋구만!”

캐리어 정리를 마친 은돈이 털썩 자신의 싱글 침대위로 떨어졌다. 팔짱을 끼고 선 소라가 그런 은돈의 곁으로 다가섰다.

“차은돈씨. 우리 잘 해 봐요. 지금 이 순간부터 한 배를 탄, 한 팀이니까.”

“……”

소라가 내민 손을 은돈이 말없이 마주잡았다. 두 여자 사이를 냉랭한 공기가 에워쌌다.

“이번 경연, 자신 있어요?”

“……문소라 씨가 내 음식에 다시 장난만 안 치면요.”

은돈의 날 선 대답에 소라가 피식 실소했다.

“내가 그런 추잡한 짓을 두 번씩이나 할까봐서? 걱정 마요.”

싱그러운 미소와 함께 소라가 돌아섰다. 이내 그녀의 묘한 콧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졌다.

***

박람회장.

전국 각지에서 모인 요리사들과 일반 관광객들로 붐비는 내부 한가운데, 부주를 필두로 한 다원정 팀원들이 서있었다.

“드디어 내일, 이곳에서 경연이 펼쳐진다. 오늘은 관광도 좀 하고, 박람회 구경도 하면서 즐겨들.”

부주의 말에 경훈이 슬쩍 손을 들었다.

“부주. 내일이 경연인데 막바지 연습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얌마! 시험 전날에 공부하는 건 원래 꼴찌들이나 하는 짓이야. 그동안 최선을 다했으니 오늘은 즐겨! 자 자, 붙어 다니지 말고 각자 찢어져!”

부주가 팀원들 사이를 가로질러 쌩하니 사라졌다.

“누나. 우리도 박람회 구경이나 할까요?”

곁에 선 지세의 물음에 은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쪽에 향토음식 전시장 있던데 가볼……우악!”

말을 잇다 만 은돈이 갑자기 등 뒤에서 손을 낚아채는 독현을 돌아보곤 비명을 내질렀다.

“뭡니까.”

지세가 반사적으로 독현의 앞을 막아섰다.

“못 들었어? 각자 찢어지라잖아.”

차갑게 대꾸하며, 독현이 은돈을 잡은 손에 더욱 힘을 주었다.

“아우 아파요! 사장님!”

막무가내 독현에게 질질 끌려가며 은돈이 목소리를 높였다. 멀어지는 그들을 향해 지세가 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소라의 음성이 들려왔다.

“저 두 사람, 그냥 내버려두죠.”

“……?”

“마지막인데, 즐기게 두자구요.”

마지막? 지세가 소라의 말에 살짝 눈썹을 치켜 올렸다.

그 사이, 저 멀리 끌려간 은돈의 입에서 쉴 새 없는 잔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악! 제발! 손 좀 놔요! 사장님 연애도 안 해봤어요!? 이렇게 제 멋대로 고집부리면요,  아무리 그런 얼굴 달고 있어도 여자들이 싫어 한다구요!”

“싫어해도 돼. 너한테만 미움 받지 않으면 돼.”

“그, 그런 말을 어떻게 눈 하나 깜짝 않고 그렇게 뻔뻔하게 해요!”

“……? 그러는 너야말로 왜 얼굴이 빨개지지?”

“제, 제, 제가요? 하! 무슨 소리에요 빨개지긴!”

“뭐야. 왜 그렇게 허둥대지? 정말 날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 같잖아.”

“되도 않는 소리 하지 마요!”

향토음식 전시회장 앞.

붉어진 은돈의 얼굴을 의아한 듯 바라보던 독현이 곧 고개를 돌려 향토음식 진열대를 가리켰다.

“구경이나 해. 너 여기 와보고 싶다며.”

“누가 사장님이랑 오고 싶댔어요. 지세랑 오려고 했단 말이에요. 여기서 약고추장을 팔거든요. 그거 사서 지세랑 반씩 나누려고,”

“일부러 내 질투심을 유발하려는 게 아니라면.”

“……?”

“내 앞에서 그 자식 이름 자꾸 꺼내지마.”

적잖이 지세를 의식하는 듯, 한껏 날이 선 독현의 태도. 잠시 벙 쪄 있던 은돈이 곧 큼큼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전환했다. 상당히 어색한 몸짓으로.

“어라!? 사장님 우리 저기 한번 가볼까요! 무슨 행사하는 것 같아요!”

그녀가 막무가내로 독현의 팔을 잡아끌었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거대한 인형 탈을 쓴 알바생 앞.

“환영 합니다 여러분! 지금부터 박람회 특별 복불복 이벤트가 실시됩니다! 여기 보이는 제주 특산물 오메기 떡 안에는 일정 확률로 팥 대신 와사비가 들어있는데요! 두 분이 한조가 되서 열 번 연속 진짜 오메기 떡을 고르시면, 소정의 상품을 드리고 있습니다!”

소정의 상품?

갑자기 은돈의 눈이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반대로 독현은 미간을 좁힌 채 탈바가지를 쓴 알바생을 지그시 노려보았다.

“‘소정’이라는 말이 거슬리는군. 상품이 뭐지?”

“네! 한식박람회 기념 로고가 박힌 티셔츠 입니다!”

알바생이 범상치 않은 무늬가 새겨진 티셔츠를 펼쳐보였다. 티셔츠 가슴팍에는 웬 뚝배기 모양 캐릭터가 엄지를 치켜든 채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됐어. 가지.”

독현이 가차 없이 은돈의 팔을 잡아끌었다.

“왜요 사장님. 우리 시간도 많은데 이거 한번 도전해 봐요!”

“뭐?”

“저 이 티셔츠 무지 맘에 든단 말이에요.”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네! 귀엽잖아요!”

“장난해? 뚝배기에 눈코입이 달렸잖아.”

독현이 상당히 불쾌하다는 듯 티셔츠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래도 갖고 싶은데……이렇게 큰 대회에 참가한 기념으로 꼭 갖고 싶어요……”

못내 아쉽다는 듯 말을 잇는 은돈을 남겨둔 채 독현이 거침없이 돌아섰다.

“그렇게 갖고 싶으면 너 혼자 해. 난 이런 유치한 게임에 시간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가 이벤트 장을 벗어났다. 그리고 몇 발짝쯤 걸었을까.

그의 앞으로 한 쌍의 커플이 지나쳤다.

“자기야. 저기 봐! 복불복 게임 이기면 티셔츠 준대!”

“오 잘됐다! 우리 저거 받아서 커플 티처럼 둘이 맞춰 입을까?”

“어머 자기 짱!”

요란하게 손을 맞잡은 커플이 이벤트 장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멈춰 선 독현이 가만 응시했다.

“……커플티.”

사뭇 진지한 눈빛을 빛내며 그가 읊조렸다. 잠시 후. 홀로 탈바가지 알바생 앞에 서 있던 은돈이 등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엥? 사장님? 왜 다시 오셨어요?”

눈이 똥그래진 그녀의 물음에 독현이 시크하게 대꾸했다.

“해보지.”

“……?뭘요?”

독현이 대답 대신 알바생 앞으로 다가섰다.

“엑? 두 분 다시 오셨네요! 도전하시는 건가요!?”

“시작해.”

그 어느 때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독현의 눈빛. 그가 잠자코 셔츠의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가슴 깊은 곳에 봉인 돼 있던 승부욕의 고삐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좋아요 사장님! 그럼 우리 시작해 볼까요!”

독현을 따라 팔을 걷어붙인 은돈이 앞으로 나섰다.

“차은돈. 저리가. 방해 돼.”

“네? 그치만……”

“구경이나 해.”

단호하게 말을 마친 독현이 자신의 앞에 세팅된 오메기 떡 판을 바라보았다. 약 오십 여개의 떡들이 그를 향해 앙증맞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머잖아 독현이 그들 중 하나를 망설임 없이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으악! 퉤! 이거 뭐야! 와사비잖아!”

그때, 옆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 독현과 함께 복불복 게임에 도전했던 커플이 와사비 떡을 입 안 가득 머금은 채 헛구역질을 시전하고 있었다.

“사, 사장님. 괜찮아요? 제대로 고른 거에요?”

은돈이 태연하게 두 번째 떡을 집어 드는 독현을 응시했다.

“난 이런 게임에 강해.”

말을 마친 독현이 두 번째 떡을 입에 넣었다. 그리곤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이후 세 번째, 네 번째, 그리고 마지막 열 번째 떡을 집어 들 때까지도 그는 일관된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뭐야 지독현. 왜 이렇게 운이 좋아?

“사장님. 어떻게 열개 중에 단 하나도 와사비가 안 걸릴 수 있어요?”

은돈이 혀를 내두르며 마지막 떡을 삼키는 독현을 응시했다.

“와, 와우! 축하드립니다! 열개 모두 성공 하셨네요!”

순식간에 떡을 모조리 클리어 한 독현을 보곤 알바생이 재빨리 두 장의 티셔츠를 내밀었다. 홱- 낚아채듯 독현이 그것을 받아들었다.

“자.”

그가 티셔츠 한 장을 은돈에게 건넸다.

“와, 감사해요. 진짜로 받을 줄 몰랐는데……어때요? 어울려요?”

은돈이 배시시 웃으며 티셔츠를 제 몸에 갖다 댔다.

“뭐, 나쁘지 않아.”

티셔츠 속 뚝배기 캐릭터와 은돈이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하며 독현이 피식 웃었다.

“그만 가지.”

“네! 이번엔 우리 어디 가볼까요? 어 사장님! 저기요! 까나리랑 수정과 복불복 있네요!”

“그만해.”

신이 나서 재잘거리는 은돈과 함께, 독현이 이벤트 장을 벗어났다.

남겨진 알바생이 뒤집어쓴 인형 탈을 벗어 든 채, 멀어지는 두 사람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또 다른 행사 진행요원이 알바생에게 다가서며 독현을 가리켰다.

“뭐야! 드디어 첫 미션 성공자가 나온 거야!? 운도 좋네. 어떻게 와사비 떡 하나가 안 걸려 ?”

진행요원에 말에, 알바생이 멍하니 독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세상에……저 남자분요. 와사비만 골라 먹고 가셨어요……”

티셔츠가 미치도록 갖고 싶었나 봐요.

알바생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미 저만치 멀어진 독현은 제 손에 들린 티셔츠를 내려다보며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그날 저녁.

룸 형식으로 된 고급 일식집에 모인 다원정 팀원들이 독현을 기다리며 수다 꽃을 피우고 있었다.

“우리 여기 회식비, 사장님이 내는 거 맞지? 나 무지 많이 먹을 거야. 막내야 너도 미리 허리띠 끌러 놔.”

폭탄머리 경훈의 말에 지세가 난감한 듯 살짝 웃었다.

그때 맞은편에 앉은 소라가 은돈을 힐끔 보며 운을 뗐다.

“티셔츠 예쁘네요? 설마 돈 주고 사 입은 건 아니죠?”

그녀의 비아냥에, 은돈이 멋쩍은 듯 자신의 티셔츠를 내려다보았다. 독현이 복불복 게임에서 승리를 거머쥐며 얻어낸 박람회 기념 티셔츠.

“예쁘기만 한데 왜요?”

“세상에. 애들도 아니고, 누가 그런 걸 입……”

드르륵.

소라의 말을 잘라먹으며 갑작스레 방문이 열렸다. 그리곤 직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독현이 들어섰다.

“헐……오, 옷이 똑같네.”

경훈이 독현과 은돈의 티셔츠를 번갈아 가리키며 말했다.

“꼭 커플 티 같네요, 두 사람?”

경훈의 말에 널찍한 룸 안이 묘한 침묵에 휩싸였다.

지세는 말없이 두 사람의 티셔츠를 바라보며 물 잔을 들이켰고, 소라는 쳐다보기도 싫다는 듯 고개를 비틀었다.

그때, 독현이 은돈의 옆자리에 몸을 앉히며 기다렸다는 듯 다소 자.랑.스.레 입을 열었다.

“커플 티라니. 말조심해. 그냥 둘이 맞춰 입은 것뿐이니까.”

“……?그게 커플 티 아닌가요?”

경훈의 벙찐 물음에 독현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그때, 또 다시 방문이 열리며 부주방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고! 씻고 온다고 좀 늦었습니다!”

일순, 모두의 시선이 부주가 입고 있는 박람회 기념 티셔츠를 향해 쏠렸다.

“헉……부주도 똑같은 티셔츠……”

“엉? 뭐가? 뭐?”

오자마자 손수건으로 까진 이마를 문지르며, 부주가 자리에 앉았다.

“헙!? 싸장님, 우리 커플 티……!”

문득 독현의 티셔츠에 시선이 머문 부주가 감격에 겨운 탄성을 내질렀다.

“하여간, 우린 텔레파시가 통한다니까! 사장님도 떡 드셨죠?! 오메기 떡!”

“……당신.”

“넵! 싸장님!”

“……아냐. 아무것도.”

독현이 눈썹을 꿈틀대며 말문을 닫았다. 그리곤 불편한 심기로 물 잔을 쾅! 테이블에 놓았다. 동시에 촤악! 부주의 면상위로 물방울들이 튀었다.

푸훗-! 그 모습을 바라보며 은돈이 가까스로 웃음을 참았다.

“……”

그 즈음, 은돈과 독현을 빤히 주시하던 지세가 몸을 일으켜 문 밖으로 나섰다.

개인적인 감정 때문에 자리를 망치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두 사람이 나란히 앉아있는 모습을 보는 게 힘들었다.

은돈이 독현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아팠다.

탁- 이내 문이 닫히며 지세의 모습이 사라졌다.

“……멍청하긴.”

소라가 닫힌 문을 바라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차은돈을 갖고 싶어 미치겠으면, 뺏으면 될 거 아냐. 패배자 같으니.

“그렇게 뒤로 물러나기만 해선, 절대 가질 수 없어.”

난 너처럼 두 손 놓은 채 내 껄 뺏기진 않을 거야.

그녀가 번득이는 시선으로 맞은편의 독현과 은돈을 바라봤다.

그리곤 곧 시선을 내려 자신의 핸드백을 응시했다. 살짝 벌어진 백 사이로 정체불명의 피로회복제가 보였다. 이내 소라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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