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34화 (34/93)

34화. 꽁기꽁기한 술자리.

직원 휴게실.

퇴근 준비를 마친 은돈이 캐비넷 문을 열어 둔 채 멍하니 독현의 말을 떠올렸다.

‘만약. 이번 경연에서 별다른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한다면……난 차은돈을 해고 할 생각이야.’

‘보여줘. 다신 아무도 널 내 세컨드 취급하지 못하도록.’

지독현은 정말 내가 대회에서 일등을 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건가.

아니면, 직원들 앞에서 말 그대로 똥배짱을 부리고 있는 건가.

“뭐가 됐든. 일 났구만……”

경연에서 3등 안에 들지 못하면 레스토랑을 그만둬야 한다.

은돈의 눈앞으로 피시방 16번 자리에 앉아 알바 천국을 뒤적이는 자신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안 돼. 기필코 3등 안에 들어야 해.

“그래. 그 어떤 요사스럽고 치사스러운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초조한 듯 혼잣말을 지껄이며, 은돈이 직원 휴게실을 벗어났다.

“누나.”

벽에 등을 기대고 섰던 지세가 막 휴게실을 박차고 나오는 은돈을 발견하고 몸을 곧추세웠다.

“어, 많이 기다렸어?”

“아뇨. 갈까요?”

그가 은돈을 출구 쪽으로 에스코트하며 씽긋 웃어보였다.

“근데 오늘 불금 아냐? 그 선술집 자리가 남아 있을까?”

“그래서 미리 예약해뒀어요 거기 사장님이랑 꽤 친하거,”

“여기 사장이랑도 좀 친해져보지 그래.”

일순, 복도 끝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에 은돈이 고개를 들었다.

거기엔- 아니나 다를까. 삐딱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주시하고 선 독현이 있었다.

***

일본식 선술집.

비좁은 내부에서 불금을 즐기러 나온 남녀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기……근데요……? 사장님은 굳이 왜, 저희랑 같이 이 협소한 공간에 낑겨 계신 건지……”

은돈의 물음에, 매우 꼿꼿한 자세로 맞은편에 앉아있던 독현이 입을 뗐다.

“주방 막내들이랑 친목도모나 할 겸 해서 말이야.”

친목도모? 지독현이가?

“거 참, 오지게도 신뢰가 가네요……”

“뭐?”

“아뇨. 제가 지금 뭐라고 그런 거죠?”

은돈이 독현을 향해 어색한 아빠 미소를 지어보였다.

“내가 당신들이랑 같이 술 먹어주는 게, 그렇게 불만인가?”

“말은 바로 하죠. 사장님이 먹어주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은돈이 말을 잇다말고 테이블로 다가선 지세와 30대 중반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누나 인사해요. 여기 사장님이세요.”

지세가 꽃무늬 두건을 쓴 남자를 가리키자, 은돈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안녕하세요, 지세랑 같은 주방에서 일하는 차은돈입니다!”

“하하, 반가워요.”

두건이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은돈이 긴장한 얼굴로 그의 손을 맞잡으려는 찰나, 독현이 먼저 두건의 손을 거머쥐었다.

“반갑군.”

다음순간, 모두의 시선이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는 독현에게 향했다.

“근데 이분은 뉘신지……”

“아……이분도 사장님이세요. 그……이를테면 밥집 사장님?”

은돈이 겸연쩍게 말을 잇자, 지세가 피식 웃었다.

그 모습에 독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그래. 여긴 뭘 잘하지?”

이윽고 시선을 내린 독현이 메뉴판을 훑으며 물었다.

그와 동시에 테이블 위로 먹음직스런 관자구이가 올려졌다.

“저희 가게 대표 메늅니다. 드셔 보시죠.”

“……관자잖아.”

독현이 고개를 비틀어 이번엔 은돈을 응시했다.

그러자 괜히 찔끔한 그녀가 냉큼 입을 열었다.

“왜요. 뭐요. 아까 회장님한테 내 관자 구이 빠꾸 먹은 게 서러워서 시킨 거에요. 유명한 집 관자는 어디가 어떻게 다른지 알아보려고요.”

“맘대로 해. 누가 뭐라고 했어?”

독현이 시니컬한 한마디를 뱉곤 앞에 놓인 사케 잔을 집어 들었다.

그때, 맞은편에 몸을 앉힌 지세가 독현의 잔에 자신의 잔을 쨍- 부딪쳤다.

“같이 드시죠.”

“……그러지.”

날 선 시선을 주고받으며, 두 남자가 동시에 잔을 들이켰다.

한잔, 두 잔, 연달아 세 잔.

마치 경쟁하듯 잔을 들어 올리는 그들을 보며 은돈 역시 질 수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

“자, 자! 건배! 사장님! 지세야! 마쎠! 마씨고 죽는 거야!”

그릇된 술주정의 대명사 은돈이 큰소리로 외쳤다.

……그로부터 정확히 한 시간 삼십분 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은 독현이 맞은편에서 딸기코를 훌쩍대는 은돈을 지그시 응시했다.

“……루돌픈가.”

“넹?”

“아냐. 됐어.”

넹이라니. 독현이 머리를 내저으며 은돈 앞에 놓인 술잔을 자신의 앞으로 쭉 끌어당겼다.

“뭐하는 짓이에요 싸장님!”

“너 혀 꼬이는 거 알아? 그만 마셔.”

“쳇. 좋아요. 그럼 제가 벌칙으로 노래 한 곡조 뽑죠.”

게임이라곤 가위 바위 보조차 한 적이 없거늘 벌칙이 웬 말이요, 노래는 또 무슨 망발인가.

이 여자, 또 시작이군.

독현이 지끈거리는 이마를 살며시 거머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은돈은 자신이 아는 모든 노래를 관자로 개사해 부르기 시작했다.

“관자야~ 내 관자야~ 아 싸랑해 싸랑해!”

윤종신의 팥빙수를 시작으로,

“관자는 아무나 하나~ 관자는~ 아!무나 하나!”

트로트를 거쳐,

“관자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가만히 놔두다간 끊임없이 덧나. 사랑도 사람도 너무나도 겁나, 관자인 게 무서워! 난 덜 익을까 두려워!”

선술집에 모인 모두의 귀때기에 랩까지 때려 박아준 후……

그녀가 마지막으로 선택한 곡은 금세기 최고의 아이돌 빅뱅의 루저.

“관자~외톨이~ 센 척하는 겁쟁이~ 관자~ 양아치~ 거울 속에 넌! 자, 에블바리! 맥썸 노이즈으으!”

“차은돈.”

“사장님! 자, 세이 호오!”

순간 마이크를 대신해 디밀어진 은돈의 숟가락. 독현이 어이없다는 듯 픽 웃었다.

“너 아까부터 왜 자꾸 관자 타령이야.”

그의 물음에 은돈이 의지에 불타올라 말했다.

“그야 이번 경연에 들고 나가려고 그러죠. 지명준 회장님 앞에 꼭 다시 내보일거에요 내 관자요리!”

“……바본가?”

“네?”

“너 바보냐고.”

독현이 의아해하는 은돈을 보며 재차 말을 이었다.

“경연 공지문, 안 읽어 봤나?”

“네? 아뇨. 읽었,”

“경연 참가 시 반드시 지켜야할 키워드 두 가지.”

“……?”

“vegan(채식주의자), Sugar ban(설탕금지).”

“……??”

“말 그대로 넌 채식 주의자를 위한 요리를 해야 해 차은돈. 설탕은 단 1그램도 첨가하지 않은.”

“그, 그럼 해산물은요? 사용 못하는 거에요? 내 관자요리는요?!”

“니 관자는 밭에서 나나.”

“허……”

멘붕에 빠진 은돈이 고뇌하듯 머리를 붙들었다.

지회장 앞에서 기세 좋게 경연 참가를 선언 한 이후, 줄곧 절벽 끝에 서 있던 그녀가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난 망했어, 난 잘릴 거야……3등은커녕 경연에서 뻘 짓만 하다 쫓겨날 거라고. 그리곤 피시방 16번 자리에서 알바천국을 뒤적이면서……”

혀 꼬인 소리로 푸념하는 그녀를, 독현이 잠자코 바라보았다. 그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소주잔에 빠진 은돈의 머리칼. 그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손대지 마요.”

그때, 낯익은 목소리가 그의 손길을 제지했다.

“손대지마.”

“……취했군.”

독현이 고개를 떨군 맞은편의 지세를 우습다는 듯 주시했다. 그때, 다급한 은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장님 나 속이 안 좋아요 토 할 것 같아요……!”

“뭐? 넌 왜 술만 먹으면,”

“웁! 잠깐만요!”

양손으로 입을 틀어막은 그녀가 다급히 몸을 일으켜 카운터로 달려갔다.

하.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독현의 입에서 옅은 한숨이 뱉어졌다.

이윽고 다시 테이블로 눈길을 돌린 그가 술에 취한 지세를 응시했다.

“너. 설마 차은돈의 저런 모습이 좋은 건가?”

독현의 가시 돋친 물음에 지세가 어지러운 듯 한손으로 머리를 지탱했다.

“저런 모습이 좋은 게 아니라, 어떤 모습이라도 좋아요.”

“……”

“그냥……차은돈이기만 하면 돼요.”

지세의 한마디에 독현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사장님은요.”

“?”

“사장님은 어떤 차은돈이든 다 사랑할 자신 있어요?”

“굳이 대답해야 하나.”

“……만약 차은돈 씨가 예전처럼 뚱뚱했다면. 사장님은 절대로 차은돈 씨에게 끌리지 않았을 겁니다.”

지세의 입에서 떨어진 말에 독현이 질린다는 듯 웃었다.

“내가 뚱뚱하고 못생긴 차은돈을 좋아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 본의 아니게 자주 듣는군. 왜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지 잘 알겠어.”

그가 약간의 텀을 두고 다시 입을 열었다.

“사실이거든. 차은돈이 여전히 못생기고 뚱뚱했다면 내가 거들떠나 봤을까.”

그의 냉기어린 미소에 지세가 시선을 조였다.

독현이 자신을 자극하기 위해 일부러 더 모진 소리를 뱉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왠지 묘하게 열이 받았다.

“그럼 차은돈 씨 마음. 흔들지 마시죠.”

“난 갖고 싶은 건 손에 넣어야 직성이 풀리거든. 그 여자, 지금은 뚱뚱하지도. 못생기지도 않았잖아. 그래서 갖고 싶어졌어, 미치도록.”

은돈을 장난감 취급하는 독현의 태도. 지세가 얼굴을 굳혔다.

“다시 옛날로 되돌아가면요.”

“뭐?”

“차은돈씨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버리는 겁니까?”

지세의 말에 독현이 픽 웃었다.

“그건 모르겠는데.”

“……쉽네요 사장님한텐.”

“왜. 내가 그 여잘 버리면, 뒤늦게 고백이라도 하려는 건가?”

“이미 했는데요, 고백은.”

“……!”

“대답. 기다리는 중입니다.”

태연하게 말을 잇는 지세를 보며 독현의 입가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자신에게는 없는 한결같고 순수한 모습. 그 모습이 독현을 초조하게 만들었다.

이지세는 다정했고, 잘 웃었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했다.

은돈이 그런 지세를 굳이 밀어낼 이유가 없었다.

“……”

“……”

“실례지만, 두 분 눈싸움 하세요? 제가 심판 볼까요?”

그때였다. 시선을 주고받는 독현과 지세의 사이로 은돈이 불쑥 끼어들었다.

‘토 받이용’ 검은 봉다리를 귀에 걸친 채.

“어우 피곤해 죽겠어요. 너무 과음 했나 봐요. 으쭈쭈쭈-!”

자리에 앉아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는 은돈을, 독현이 황당한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뭘 봐요? 사장님도 얼른 주무세요. 저 더 못 놀아드려요. 낼 출근하려면 그만 눈 붙여야 죠.”

“뭐……?”

“그럼, 잘 자요.”

성시경 톤으로 굿나잇 인사를 마친 은돈이 그대로 정신 줄을 깩 놓았다.

동시에 테이블 위로 무섭게 처박히는 그녀의 고개.

독현이 재빨리 그녀의 뺨 밑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아 따뜻해……”

가까스로 독현의 손바닥 위에 착지한 은돈이 베시시 웃었다.

그녀를 대신해 테이블에 손등을 찍힌 독현이 살짝 미간을 찡그렸다.

그러나 태평하게 잠이든 은돈을 보자 이내 허무한 웃음이 솟았다.

어이가 없기도 했다가, 황당하기도 했다가, 귀엽기도 했다가.

‘차은돈 씨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면. 버리는 겁니까?’

문득 지세의 한마디를 떠올리며, 독현의 눈빛이 옅게 일렁였다.

“……”

생각에 잠긴 그가 핑그르르 잔을 돌리는 모습을, 맞은편의 지세가 물끄러미 응시했다.

“사장님이 어디로든 가버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차은돈 씨가, 아니 누나가, 아니……그 여자가 나도 좀 봐줬으면 좋겠어.

예상외의 취기 어린 한마디를 뱉은 지세가 곧 은돈과 마찬가지로 테이블 위에 엎어 졌다.

“꼴사납긴.”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엎드린 두 사람을 보며 독현이 손에 쥔 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

“헙……?! 나 어제 어떻게 들어왔어?!”

행운빌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난 은돈이 미자를 향해 외쳤다.

그러나 돌아오는 건 허공에 부딪친 자신의 음성 뿐.

“미자야……? 오미자?”

깨질 듯한 머리를 받쳐 든 은돈이 비틀대며 거실로 나섰다.

그러자 간소한 밥상위로 미자가 써두고 간 쪽지가 보였다.

-너, 지각-

“이런 제길……”

은돈이 팅팅 불은 얼굴을 쓸어내리며 후다닥 화장실로 튀어 들어갔다.

……그로부터 약 사십분 후.

“이지수씨, 한지혜 씨! 정말 일 똑바로 못합니까? 이번 주 당신들 앞으로 들어온 컴플레인이 몇 갠 줄이나 알아요?”

다원정 홀. 총지배인이 몇 몇의 근무 태만을 지적하고 있는 사이, 발끝을 세운 은돈이 살금살금 직원들 틈으로 끼어들었다.

“지세야.”

덥썩, 그녀가 눈 앞에 보이는 지세의 어깨를 짚었다.

“누나……? 어떻게 된 거에요? 연락도 안 되고.”

“그게, 세상 모르고 잤어……사장님은?”

“아직요.”

후- 은돈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근데 어젠 어떻게 된 거야? 나 너랑 같이 집에 온 거야?”

“……아뇨.”

지세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그의 눈앞으로 어젯밤 영상이 스쳐지나갔다.

해파리처럼 흐물대는 은돈을 안은 채 다른 손으로 그녀의 핸드백을 집어 들던 독현의 모습이.

‘어디 가는 거에요.’

은돈과 함께 돌아서는 그의 팔목을 가까스로 낚아채며 자신이 그렇게 물었을 때, 독현은 분명 실소했었다.

‘네 몸이나 추스리지 그래, 보기 딱한데.’

‘어디 가는 거냐구요.’

‘내가 이 여자한테 무슨 짓이라도 할까봐 겁나나?’

‘사장님.’

‘걱정 마. 그 정도로 치졸하진 않으니까.’

“……”

지세가 눈앞을 맴도는 어젯밤 잔상을 물리치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초조한 낯빛의 은돈을 마주했다.

“어제 선술집 형님네서 잤어요, 저.”

“뭐? 우리 같이 집에 온 거 아니었어? 그럼 난 누가 ……헙. 제발 사장님한테 업혀갔다곤 말하지 말아줘……”

“미안해요. 내가 끝까지 챙겼어야 했는데. 어제 좀 취했었나봐요.”

“아, 아냐.”

젠장. 지독현 그 인간한테 결국 못 볼 꼴 을 보이고 만 건가.

“지세야, 어제 나 무슨 추태부린 거 없었지? 이, 있었나?”

은돈이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물었다.

순간. 관자 송을 부르짖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 지세가 입을 다물었다.

알면 창피해 하겠지.

그가 은돈을 위해 부드럽게 운을 뗐다.

“실수 한 거 없었어요.”

“진짜? 어렴풋이 내가 무슨 염불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염불이 아니라, 그냥 노랠 조금,”

“노래?!”

은돈이 경악하며 데시벨을 높이자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그때 다행인지 불행인지 독현이 홀 안으로 들어섰다.

스윽- 은돈의 곁을 스치는 독현의 입가에 어렴풋이 미소가 서렸다.

그 미소를 조롱으로 오해한 은돈이 푹 고개를 떨궜다.

망할, 내가 또 뭔 진상을 떤 거지?! 입에 관자 물고 스트립쇼라도 한 거 아냐?

“……아. 부주.”

직원들을 지나치던 독현이 뭔가 생각난 듯 멈칫, 돌아섰다.

“경연 팀은 꾸렸나. 어떻게 됐지?”

“아, 말씀하신대로 차은돈 포함 4인 구성에 어시 한명으로 꾸리긴 했는데요. 그게 저……”

“팀원들 데리고 내 방으로 와.”

“네, 넵.”

말을 마친 독현이 힐끗 은돈을 응시한 후 짐짓 태연히 걸음을 돌렸다.

***

프레지던트 룸.

업무 책상위에 걸터앉은 독현이 부주를 필두로 선 경연 팀원들을 매섭게 내리 훑었다.

“일단 들어볼까. 무슨 생각으로 이따위의 팀을 짰는지?”

그의 한기어린 음성에 부주가 마른 침을 삼켰다.

“보, 보시다 피시 팀장은 저, 팀원은 순서대로 차은돈, 김경훈, 이지세. 그리고 어시스트에 문소라씬데요,”

“문소라-”

독현이 부주의 말을 자르며 눈앞의 소라를 직시했다.

“넌 무슨 생각으로 경연에 나가겠다는 거야?”

“그러는 넌. 무슨 의도로 그런 걸 묻는 거야?”

조리복 차림을 한 소라가 싱긋 웃으며 독현을 마주보았다.

그때 눈치를 살피던 부주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어시는 조리사들 보조 역할만 충실히 수행하면 되니까 문소라 씨로 충분할 겁니다.”

“……그렇다 치고. 팀원은.”

“네?”

“이 팀엔 주방 막내가 둘이나 들어가는군.”

독현의 날카로운 시선이 은돈과 지세를 향했다.

“이지세가 이 팀에 들어갈 능력이 된다고 보나, 부주.”

“예. 이 녀석 꽤 잘합니다. 요리에 대한 감이 있어요. 분명 경연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뭣보다……”

“뭣보다?”

“경연에서 3등 안에 들지 못하면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른 녀석들이 몸을 좀 사려서……”

“그러니까 결국 남은 인원이 당신들뿐이란 건가.”

“팀원 체인지 할까요?”

“그대로 진행해.”

독현의 말에 부주가 감격에 젖은 얼굴을 쳐들었다.

“믿어주시는 겁니까?”

“내가 믿는 건 당신이 아니라,”

그의 시선이 언뜻 은돈을 향했다. 다소 긴장한 듯 경직 된 그녀의 얼굴.

독현이 다시 시선을 비틀어 모두를 응시했다.

“오늘부터 주방을 24시간 개방하도록 하지. 주재료, 부재료 전부 아끼지 말고 연습에 매진해.”

“넵! 싸장님!”

“전부 나가 봐.”

말을 마친 독현이 창가로 시선을 비틀었다.

탁- 잠시 후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룸 안에 정적이 깃들었다.

“저, 사장님……”

“?”

난데없는 음성에 고개를 돌린 독현이 곧 혼자 남아있는 은돈을 바라봤다.

“뭐지?”

“아뇨……혹시 어제, 제가 뭐 실수 한 게 없나 해서……”

“실수.”

독현이 그녀를 향해 완전히 돌아섰다.

“대체 그런 추태는 어디서 나오는 거지? 밤새 네 관자송이 아른거려서 한숨도 못 잤잖아.”

“관자송이요? 그게 무슨……아, 아니! 설명하지 마세요! 들은 걸로 칠게요!”

귀를 막은 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는 은돈을 바라보다 독현이 곧 짤막한 한숨과 함께 시선을 곧추세웠다.

“차은돈. 잘 할 수 있겠어?”

“……네?”

그의 진지한 눈빛을 마주한 은돈이 살며시 고개를 내렸다.

“네. 할 수 있어요.”

“잘 할 수 있겠냐고 물어 본거야 난.”

“……잘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다들 날 낙하산이니 사장 세컨드니 하면서 욕하는데 실은 그거, 내가 아니라 사장님 깎아내리는 말이잖아요. 차라리 잘 됐어요. 이참에 모두한테 본때를 보여주죠 뭐.”

나 열심히 해볼게요. 최선을 다해서.

은돈이 뒷말을 담담하게 덧붙였다. 그 순간, 내내 포커페이스를 유지해 오던 독현이 경직된 얼굴을 풀고 은돈의 양 어깨를 짚었다.

그리곤 그녀에게 의지하듯 몸을 맡긴 채 고개를 수그렸다.

“사장님?”

갑작스러운 상황에 은돈의 얼굴이 붉어졌다.

“……주방막내가 고백을 했다더군.”

“네?”

“너한테. 네가 좋다고.”

“아……그게요……”

은돈이 당황한 얼굴로 머뭇대는 사이, 독현이 다시 입을 뗐다.

“너랑 그자식이랑 닮은 거 알아? 예고 없이 훅 치고 들어오는 거.”

“……사장님도 지금 훅 치고 들어왔잖아요. 예, 예고 없이.”

은돈이 자신의 품에 고개를 묻은 독현을 내려다보았다.

“내 손으로 널 해고하는 일 없게 해줘.”

“……네.”

“다른 사람들한테 더 이상 무시당하지마.”

“네.”

“그래……나가봐. 오 분만 이대로 있다가.”

“이것도 네라고 대답해야 해요?”

“응.”

은돈이 두 뺨에 홍조를 띈 채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더 이상 그를 냉정하게 뿌리치지 못하는 스스로에게 뱉어진 자조적인 한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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