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충동적인 키스
생각지도 못한 기습적인 입맞춤.
달콤하기보다 알싸한 지독현과의 키스.
당장이라도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소리치며 그를 거부해야 옳았지만, 어쩐지 은돈은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돼. 내가 지독현이랑 키스를?
그것도 내 쪽이 아니라 저쪽에서 먼저 입을 맞춰왔다는 게, 이게 말이 돼?
은돈은 혼란스러운 듯 커다란 눈을 깜박였고, 그즈음 피식 웃으며 독현이 그녀에게서 떨어져나갔다.
“감겨줘?”
“네?”
“네 눈 말이야.”
낮은 어조로 뇌까리며, 그가 다시 은돈에게 입을 맞춰왔다.
재차 포개진 두 사람의 입술과, 혀끝에 엉키는 차고 부드러운 감촉.
은돈은 애를 태우듯 자신의 아랫입술을 가볍게 깨무는 독현을 보며 질끈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마치 찰나와도 같은 몇 분이 흘렀다.
“사장님……이거 범죈 거 알아요? 좋아하지도 않는 여자한테 키스하는 거…….”
은돈이 자신에게서 떨어져나가는 독현을 보며 말했다.
“글쎄. 모르겠는데.”
여전히 그녀에게 몰두한 채. 독현이 나직한 음성으로 대꾸했다.
“…….”
“…….”
이어서 찾아온 침묵의 순간.
아아, 머리가 찌릿찌릿. 이제야 현실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한다.
은돈은 터질 듯이 달아오른 얼굴을 가만히 수그렸다.
“사장님. 저 딱 한번만 물어볼게요. 사장님 말이에요. 정말 나 안 좋아해요?”
“…….”
“물론 아니라고 몇 번이나 말했고. 나도 아닌 거 아는데요. 그래도 이상해서요. 다른 남자 앞에서 못 웃게 하는 것도 그렇고. 나한테 자켓을 벗어주거나, 요상한 친절을 베푸는 것도 그렇고. 특히.”
“…….”
“특히 지금 이 키스는……좋아하는 게 아니면, 대체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
직선적이다 못해 저돌적인 그녀의 물음에, 독현이 갈등하듯 고개를 비틀었다.
이윽고 그는 뭔가를 말하려는 듯 다시 은돈에게 시선을 고정했고, 그 순간. 그녀가 양 팔을 휘저으며 외쳤다.
“잠깐만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마세요!”
차은돈을 좋아한다. 혹은 좋아하지 않는다.
독현의 입에서 어떤 대답이 나오든, 은돈은 그걸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아니, 없어졌다.
“너무 추워서, 우리 둘 다 머리가 어떻게 됐었나 봐요. 방금 그 키……뽀뽀는, 그냥 충동에 의한 접촉사고였어요. 네! 사고!”
“…….”
은돈은 독현의 시선을 회피한 채 벌떡 몸을 일으켰다.
“으, 진짜 여기서 얼어 죽는 건 아니겠죠?”
어설프게 화제를 돌리는 그녀를, 독현은 특유의 표정으로 바라봤다.
그때.
쾅쾅! 출구를 두드리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안에 사람 있습니까!?”
난데없는 구원의 목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출구를 향했다.
“여기요! 살려주세요!”
스프링처럼 자리에서 튕겨 오른 은돈이 목청껏 소리쳤다.
그때 툭, 하고 그녀의 어깨위로 독현의 재킷이 걸쳐졌다.
“입고 있으랬잖아.”
스윽, 그가 은돈의 곁을 지나쳐 출구로 걸음을 옮겼다.
“…….”
은돈은 자신이 걸친 자켓을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래. 어쨌거나 상황은 넘겼어.
조금 전 그 키스에 대해서 더 이상 아무 생각도, 아무 추측도 하지말자.
지독현도 나만큼이나 그 편을 바라고 있을 거야.
아까 그건 말 그대로 ‘충동적인’ 사고에 불과하니까.
“같! 같이 갑시다!”
그즈음, 출구가 열리며 경찰 몇과 창고 관리자가 모습을 드러냈고, 은돈은 일부러 더 쾌활한 소리를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차은돈 환자, 입원실이 어디죠?”
평택 인근 종합병원.
급하게 데스크로 뛰어든 지세가 간호사를 향해 물었다.
“아 차은돈 씨, 좀 전에 응급실에서 2인실로 옮겼어요. 508호요. 다행이 이상소견은 없,”
간호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세가 몸을 돌려 시야에서 사라졌다.
잠시후. 엘리베이터 앞에 선 그가 초조한 듯 버튼을 누르다 옆 비상구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은돈, 차은돈. 차은돈. 머릿속엔 온통 그 이름 뿐.
한달음에 비상구 계단을 오른 지세가 5층 복도를 가로질렀다.
“누나……!”
……508호.
벌컥 문을 연 지세가 한달음에 안으로 들어섰다.
“어? 이지세.”
환자복 차림으로 누워있던 은돈이 상체를 일으켜 지세를 맞았다.
지세는 살짝 가쁜 숨을 고르며 그녀에게 다가섰고, 그때, 맞은편 침대에 걸터앉은 독현의 입에서 냉랭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넌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아, 제가 연락했어요.”
은돈이 독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지세가 경찰에 신고해주지 않았더라면, 사장님이랑 전 지금쯤 냉동인간이 되서 생선박스 옆에 묻혀 있었,”
“시끄러.”
그녀의 말을 가차 없이 잘라낸 독현이 창가로 시선을 비틀었다.
평소의 그 싸가지로 돌아왔군.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라고 해야 할지.
젠장. 아직도 독현이 자신에게 입을 맞춰오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눈앞을 어지럽힌다.
은돈은 복잡한 머리를 감싸 쥐었고, 그때 지세의 따뜻한 손이 그녀의 이마를 짚었다.
“왜요? 열나요?”
“아, 아니야.”
은돈이 조심스레 그의 손을 거둬냈다.
‘열나는 것 같으면 말해.’
제길. 냉동 창고에서 자신의 이마를 짚어주던 독현의 모습이, 순간 지세의 모습과 오버랩 되어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진다.
은돈은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위의 독현과, 눈앞의 지세를 번갈아 바라봤고, 그때였다.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무리가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흠……큼큼!”
“아, 저 나가있을게요.”
양복 무리 중 우두머리의 곁눈질에, 지세가 눈치껏 몸을 일으켰다.
그로부터 오분 후.
독현의 침대 맡에 선 우두머리가 마치 브리핑을 하듯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다.
“이름은 최만복. 나이는 44세. 아내와 딸이 하나 있고, 의 전 대표입니다. 도련님을 납치한 이유는 회장님에 대한 원한 때문,”
“만복 부대찌개?”
독현이 우두머리의 말을 끊으며 눈썹을 치켜 올렸다.
만복 부대찌개. 어쩐지 낯이 익은 상호였다.
“계속해 봐.”
“예. 최만복은 3년 전부터 꾸준히 회장님의 를 상대로 손배소 청구를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가 의 대표메뉴인 갈비부대찌개의 제조법을 무단 도용해, 본인이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래. 기억나는군. 최만복.”
“꽤나 지명준 회장의 골치를 썩인 인물이죠.”
“그래서 최만복은? 지금도 가게를 운영 중인가?”
“아닙니다. 저희 쪽에서 부정경쟁 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으로 소송을 걸었고 승소했습니다. 가 역으로 무단도용을 걸고넘어진 거죠.”
검은 양복의 말에 독현이 잠자코 시선을 떨궜다.
“그러니까, 더 이상 장사를 못하게 막아 버린 거군.”
“네. 아마 최만복의 입장에선 회장님에 대한 원한이 클 겁니다. 의 프랜차이즈화를 앞둔 시점에 갑자기 모든 걸 잃었으니까요. 도련님도 조심하십시오. 그간 행적으로 봤을 때 꽤나 위험한 인물입니다.”
……위험 인물이라.
“그 남자. 딸이 좀 아픈 것 같던데.”
난데없는 한마디에, 검은 양복이 살짝 인상을 구겼다.
“아……최근 데이터는 아직 입수중입니다. 어쨌든 걱정 마십시오. 최만복은 저희 쪽에서 수배 중,”
“됐어. 그냥 내버려둬.”
“……네?”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내자고.”
“그래요, 그렇게 해요!”
불쑥 끼어든 은돈의 외침에, 검은 양복과 독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부터 이불을 쓴 채 자는 척을 시전하던 은돈이 어느덧 침대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 아저씨, 정말로 뭔가 해코지할 생각은 없었던 거 같아요. 우릴 창고에 두고 갔을 때도 경찰이 곧 구하러 올 거란 걸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좋게 좋게,”
“도련님!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이번에 제대로 본보기를 보이셔야 합니다.”
검은 양복이 제 말에 동의를 구하듯 독현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곧 주인의 입술 새로 떨어진 말은 전혀 의외의 것.
“일단 기사부터 막아. 납치극이니, 인질극이니 그런 없어 보이는 말 나오지 않게 해. 경찰 쪽에도 미리 사람을 붙이고.”
“……회장님께서 가만있지 않으실 텐데요.”
“그 쪽은 내가 알아서 처리하지. 나가 봐.”
독현이 은돈을 향해 시선을 비틀며 말했다.
그와 동시에 꾸벅! 머리를 숙인 검은 양복이 무리와 함께 병실을 빠져나갔다.
아, 안 돼. 가지마들!
“저기……저 음료수 좀 뽑아올게요!”
단둘이 남은 어색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은돈이 재빨리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곧 독현의 한마디가 그녀의 발목을 붙들었다.
“우린 아직 할 얘기가 남은 것 같은데.”
“할……얘기라뇨?”
짐짓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가 되묻자, 독현이 차가운 시선을 내리깔며 대답했다.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거야.”
당연히 모르는 척 하는 거지 이 자식아.
만약 이 자리에서 그 충동적이었던 키스에 대한 언급이 이어진다면, 난 쪽팔려 죽고 말거야.
은돈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어떻게든 상황을 모면하려했고, 그때였다.
독현의 입술이 나직이 벌어졌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아까 그 키스. 내가 널,”
“아아아-!”
순간 양귀를 틀어막은 은돈이 우악스런 고함을 내질렀다.
그녀의 초딩 같은 면모에 독현은 황당하다는 듯 미간을 좁혔고,
그즈음……병실 밖에 서있던 지세 역시 입을 다문 채 잡았던 문고리를 내려놓았다.
“앞으로 내 앞에서 키스의 ‘키’자도 꺼내지 마세요. 부탁할게요.”
“차은돈,”
“저 음료수 뽑아 올게요. 사장님 뭐 드실래요?”
“……식혜.”
빤히 은돈을 노려보던 독현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했다.
“시, 식혜요? 허구 많은 것 중에 하필이면 식혜?”
“그래. 하필이면 식혜.”
요리조리 빠져나가기만 하는 은돈을 골탕 먹이려는 수작일까.
독현이 다소 심술궂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후다닥- 빠르게 병실을 벗어나는 그녀를 보며, 독현이 삐딱하게 고개를 젖혔다.
적막감이 감도는 병실 내부.
그는 잠자코 냉동 창고에서의 입맞춤을 떠올렸다.
은돈은 그 키스를 두고 ‘접촉사고’였을 뿐이라며 일축해버렸지만, 독현의 생각은 달랐다.
충동적이긴 했지만, 그 키스엔 분명 자신의 진심이 담겨있었다.
변명의 여지없이 차은돈에게 끌렸고,
그냥 그 순간 차은돈에게 입을 맞추고 싶었다.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묻지도 않고 그냥.
어떤 논리도, 이해관계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냥 키스하고 싶었다.
그리고 독현은 그때 그 마음이 자신의 본심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
차은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인정하고 나자, 한꺼번에 피로가 몰려왔다.
온 몸의 기가 빨려나가는 기분이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이토록 체력소모가 클 줄이야.
독현이 옅은 한숨을 내쉬며 툭- 침대 프레임에 등을 기댔다.
***
“여보세요? 지세야?”
병원 앞 공원.
벤치에 앉은 은돈이 핸드폰을 귀에 댄 채 말을 이었다.
“너 왜 그냥 갔어. 내가 저녁 사주려고 했는데……혹시 무슨 일 있어?”
은돈의 물음에 핸드폰 너머에서 낮은 음성이 들려왔다.
-말도 없이 가서 미안해요. 부주한테 호출이 와서, 지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그래? 여기까지 와줬는데 밥도 못 먹고 어떻게 해.”
-……누나.
“응?”
-…….
뭐지……?
은돈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핸드폰을 귀에서 떼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아직 통화중인데?
"여보세요? 지세야?”
- 누나. 내가 너무 여유 부리고 있었나 봐요.
난데없는 한마디에, 은돈이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냥. 좀 무서워졌어요. 이대로 아무것도 못해보고 뺏기게 될까봐.
“그니까……그게 무슨…….”
-아니에요. 저녁에 비 온대요. 얼른 들어가요.
“…….”
뭐지. 얘 무슨 일 있나?
은돈이 말없이 툭 끊어진 핸드폰을 의아한 듯 응시했다.
같은 시각.
정류장 앞에 서있던 지세가 지그시 머리를 벽에 기댔다.
오늘, 이 병원을 찾는 게 아니었다.
아니. 아까 병실에서 은돈과 독현의 대화를 엿 듣는 게 아니었다.
물론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어쨌거나 그들의 대화를 들은 건 크나큰 실수였다.
……두 사람이, 정말 입이라도 맞춘 걸까.
“미친놈.”
지세가 스스로를 향해 자조 섞인 한마디를 내던졌다.
은돈을 독현에게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독현에게 절대 뒤지고 싶지 않다는 데서 오는 묘한 오기.
그 두 가지 감정이 뒤섞여 지금 지세의 머릿속을 마구 헝클어놓고 있었다.
뺏기고 싶지 않아.
아니……뺏기도록 놔두지 않아.
지세가 다가오는 버스를 바라보며 말없이 갈급한 시선을 곧추세웠다.
***
공원 벤치.
의자 위에 과자 부스러기와 맥주 캔을 펼쳐놓은 은돈이 아까부터 딸기코를 치켜든 채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아오 어지러워. 세상이 아주 기냥 빙빙 도네.”
맨 정신으로 독현과 같은 병실을 쓸 자신이 없어 딱 한잔만 하려던 것이, 결국 이 사단을 만들고야 말았다.
“딸꾹!……아우.”
잔뜩 취기가 오른 은돈이 맥주 캔을 구겨버리며 고개를 푹 수그렸다.
그때, 툭, 투둑하고 그녀의 머리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아아, 그렇지. 저녁에 비 온댔지.”
으차,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그녀가 병원을 향해 비틀비틀 걷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약 삼십분 후. 어두침침한 병원 복도.
자판기 앞에 서있던 남자 하나가 묘한 인기척에 냉큼 뒤를 돌아보았다.
“? 뭐지. 분명 누가 있었……헉!”
순간, 남자의 동공 속에 비춰 보이는 건, 비에 쫄딱 젖은 귀신, 아니, 은돈이었다.
“뭐, 뭐야 당신?”
저벅, 저벅, 저벅.
자신을 향해 음산하게 다가서는 은돈을 보며 남자가 꼴깍 침을 삼켰다.
“……식혜.”
일순, 뜻 모를 한마디와 함께 은돈이 자판기의 버튼을 꾸욱 눌렀다.
달캉! 곧이어 음료 투출구에 떨어진 식혜를 집어든 그녀가 복도를 향해 돌아섰다.
물론 가기 전 남자의 손 위에 이천 원을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공포에 질린 남자는 은돈이 복도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후욱!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대체 뭐야 저 미친년은?!”
***
508호실.
창밖으로 번개가 반짝이며 어두운 병실 내부가 환하게 밝아졌다.
그와 동시에 음슴한 몰골로 독현의 침대 맡에 서있는 꽐라 은돈의 모습이 보였다.
툭. 그녀가 캔 식혜를 독현의 머리 위에 내려놓았다.
“드세요……딸꾹!”
벽 쪽으로 돌아누운 독현을 향해 은돈이 혀 꼬인 소리를 내뱉었다.
그러나 깊이 잠든 것인지, 독현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은돈은 말없이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가파른 등짝. 섹시하기도 하지.
하지만 이건 그림의 떡이야.
“함부로 먹었다간, 체하고 말 거야……그러니까 난. 절대 꿈도 꾸지 않을 거야.”
은돈이 비 맞은 생쥐 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즈음, 독현은 등 뒤로 느껴지는 기척에 살며시 눈을 떴다.
“사장님.”
그가 잠들었을 거라고 생각한 은돈이 우두커니 선채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나요. 아까 그 키스가…… 너무 헷갈려요.”
“…….”
“평소에 사장님을 남자로 의식했던 적, 단 한 번도 없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장님을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왜 좋아하지도 않는 남자랑 입을 맞춘 거죠? 난 대체 어쩌자고 그랬을까요?”
은돈이 어지러운 머리를 가볍게 거머쥐었다.
“진짜 모르겠어요. 아까 그 키스가 사장님한테, 그리고 나한테 대체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으면.”
순간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독현이 날카로운 시선을 치켜들었다.
창가로 스미는 달빛에 그의 얼굴이 비춰보였다.
깜짝 놀란 은돈은 입을 다물었고, 그 사이 들려오는 건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뿐.
잠시 텀을 둔 독현이 곧 그녀를 향해 입을 떼 열었다.
“그 키스가 무슨 의민지 모르겠으면…… 내가 다시 알려줄게.”
말을 마친 그가 강한 힘으로 은돈의 팔을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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