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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밥해주기-23화 (23/93)

23화. 지독현 납치사건 Ⅱ

“아침들 드세유!”

막 냉동 창고로 들어선 사십대 초반의 여인.

남자와 한패인 듯 마스크를 쓴 그녀가 바닥에 버너와 라면을 세팅하는 모습을, 독현과 은돈이 황당한 시선으로 응시했다.

“뭣들해유? 날 밝았는디, 와서 밥들 자셔유!”

“이, 이 여편네가! 지금 뭐 하는 거야!?”

쇠파이프를 치켜 든 괴한이 갑작스런 아내의 출현에 고성을 내질렀다.

“아니 인질극이고 나발이고, 저 사람들 밥은 먹여야 할 거 아녀~”

“시끄러! 세상에 어떤 덜떨어진 납치범이 인질들 끼니까지 챙겨줘!?”

“그래도 다 먹고 살자고 허는 짓인디…….”

뒷머리를 긁적이는 아내를 보며, 괴한이 거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때, 빼꼼! 엄마 뒤에 서있던 여자아이가 얼굴을 내밀었다.

“아빠!”

“혜, 혜진아! 아…….”

저도 모르게 딸의 이름을 외친 괴한이 슬쩍 독현의 눈치를 살폈다.

“얼른 엄마랑 같이 집에 가 있어!”

“싫어! 나, 라면!”

“그려. 이왕 온 거 이것만 후딱 먹고 갈께!”

털퍼덕. 돗자리 위에 몸을 앉힌 괴한의 아내가 본격적으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괴한은 자신에게 쪼로로 와 안기는 딸을 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쇠파이프를 내려놓았고…….

그로부터 십분 후.

“한 젓가락씩들 해유. 자.”

여자가 은돈과 독현에게 다가와 라면이 담긴 종이컵을 내밀었다.

“미안혀들. 우리가 첨부터 나쁜 맘먹은 건 아닌디. 이럴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었슈.”

두 사람을 향해 재잘대던 여자가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여보! 이 사람들 잠깐 손 좀 끌러주믄 안 되나? 밥은 멕여야지.”

“왜? 아주 도망가라고 택시도 한대 불러주지!”

“헤헤…….”

남편의 말에 여자가 민망한 듯 웃어보였다.

그리곤 라면 한 젓가락을 집어 은돈의 입가에 들이밀었다.

“이렇게라도 좀 먹어 봐유. 솔찮이 배고플텐디.”

“아……그럼 사양 않고.”

후루룩. 후룹! 은돈은 울며 겨자 먹기로 여자가 건넨 라면을 빨아 올렸다.

여기서 이 사람들 심기를 거슬렀다간 어떤 사단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녀는 두려움에 젖은 채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라면을 흡입했다.

“이 상황에 그게 넘어가?”

어떤 의미로는 대단하군.

독현이 등 뒤의 은돈을 경이로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여보! 애 약 가져왔어!?”

그때, 숨이 넘어갈 듯 콜록대는 아이를 부둥켜안은 채. 괴한이 소리쳤다.

“아이구! 우리 딸 또 시작했네!”

바닥에 종이컵을 내려놓은 여자가 한달음에 딸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그러게 아픈 앨 왜 데리고 나와!”

“안 떨어지려고 하는디 어쩐대 그럼!”

잠시 후. 창고 내부엔 납치범 부부의 오가는 고성만이 들려왔고, 은돈은 바짝 숨을 죽인 채 그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에휴. 나 아픈 후로 맨날 싸운대니께. 오빠랑 아줌마가 이해 좀 해유. 내가 죽을 날이 얼마 안 남아서 저려.”

그때, 곁으로 다가선 여자 아이가 나이를 초월한 염세적인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은돈은 핏기 없이 멀건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저기……근데 왜 이쪽은 오빠고, 난 아줌마니?”

“나보다 나이 많으니까 아줌마쥬.”

“너, 너 몇 살인데?”

“여섯 살.”

“하하. 여섯 살치곤 쓸데없이 성숙 하구나.”

그녀가 억지웃음과 함께 말을 이었다.

그즈음, 쪼르르 독현에게 다가선 꼬마가 양 뺨을 붉게 물들였다.

“오빠. 오빤 잘생긴 만큼 마음도 넓겠쥬? 우리 엄마 아빠 너무 미워하지 말어유. 나 아퍼서 그러는 거니께.”

포다닥. 말을 마친 꼬마가 괴한을 향해 달려갔다.

독현은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자코 입을 다물었고, 잠시 후.

“싫어어-! 아빠가 데려다 줘! 나 아빠랑 갈껴!”

칭얼대는 딸아이를 품에 안은 남자가 난감한 듯 입을 열었다.

“나 다녀올 동안, 허튼 짓 말고 얌전히 들 있어.”

“넵! 여부가 있겠습니까!”

남자는 칼답을 내놓는 은돈을 보며 몸을 돌려세웠고.

……그렇게 세 가족이 떠나고 난 후.

“사장님! 여기요, 여기!”

은돈이 한쪽 히푸를 들어 올리며 독현을 향해 다급히 소리쳤다.

“뭐야?”

“뭐야가 아니라! 여기 제 핸드폰이요!”

“……?”

독현은 의아한 듯 은돈을 따라 시선을 내렸고, 아뿔싸.

곧 그녀가 깔고 앉은 핸드폰과 떡하니 마주쳤다.

“속았죠? 지금까지 깔고 앉아 있었어요! 자 얼른 집어요!”

“…….”

독현은 고개를 떨군 채 그녀의 핸드폰을 바라보았고, 순간-

대퇴부의 온기를 받아 따끈해진 핸드폰이 그를 향해 이렇게 외치는 듯 했다.

‘어서 나를 집어들어 형씨!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단 살고 봐야할 거 아냐?’

“뭐해요 사장님! 얼른 112에 신고해요. 난 손이 안 닿아서 그래요!”

“……112보단 119가 빨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독현이 등 뒤의 은돈을 향해 자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119보다 112가 낫지 않을까요?”

“이럴 땐 119야. 넌 tv도 안 봤어?”

“그러는 사장님은 어릴 때 경찰청 사람들 안 봤어요? 이럴 땐 112죠!”

두 사람은 다소 유치하게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고, 그때였다.

부웅- 핸드폰이 진동하며 액정에 낯익은 이름 하나가 떴다.

-이지세

이지세?

멈칫. 움직임을 멈춘 독현이 건조한 시선으로 액정을 응시했다.

“사장님! 뭐에요? 스팸이죠? 빨랑 끊어요! 밧데리도 없는데!”

“…….”

독현이 묶여 있는 손을 뒤로 뻗어 은돈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막 통화버튼을 누르려는 찰나,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뭐 핸드폰을 깜빡해?”

출구에서 들려오는 괴한의 음성에 은돈이 기함하며 고개를 돌렸다.

“이 쥐새끼 같은 것들, 가만 안 둬!”

은돈이 뭐라 변명하기도 전에 괴한이 두 사람의 곁으로 달려들었다.

그는 핸드폰을 뺏기 위해 독현과 거친 실랑이를 벌였고, 잠시 후.

휙 하고 날아간 핸드폰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졌다.

동시에 실수로 눌린 스피커폰에서 지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여보세요? 누나?

이 목소리는……지세다!

은돈이 그에게 구조요청을 하기 위해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나 곧 괴한이 들이댄 칼에, 그녀는 다시 뻐끔뻐끔 입을 다물어야 했다.

-여보세요? 이거 차은돈 씨 번호 아닌 가요……?

“…….”

“…….”

정적 속에 울려 퍼지는 지세의 음성.

은돈은 초조한 눈빛으로 핸드폰을 응시했고, 그때 갑작스런 한마디가 귓전을 울렸다.

“이거 차은돈 핸드폰 맞아. 가서 신고해. 우리 납치됐으니까. 여기 경기도야.”

-사장님?

콰직! 그즈음, 괴한이 은돈의 핸드폰을 발로 짓이기며 살벌한 시선을 곧추세웠다.

아아……내 2년 약정 텔레뽕이…….

은돈은 허망한 눈길로 부서진 자신의 핸드폰을 바라봤고, 그와 동시에 괴한이 그녀에게 스윽 얼굴을 들이밀었다.

“너. 네 이름이 차은돈이냐? 저 핸드폰 니 꺼지? 재주도 좋네. 어디다 숨겼던 거야?”

“그게…….”

젠장. 둔부 밑이라고 하긴 좀 그렇잖아.

은돈은 최대한 가여운 표정으로 괴한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정치인의 혼이 쓰인 양 뻔뻔하게 대답했다.

“그 핸드폰은 제 것이 아닙니다.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제 이름은 차은돈이 아니라 박봉곤 입니다.”

박봉곤. 독현은 왠지 귀에 익은 그 이름에 기가 막힌 듯 실소했다.

여기서 다시 써먹을 줄이야.

“뭐, 박봉곤?! 이년이 지금 누굴 놀리나?!”

잔뜩 흥분한 괴한이 은돈을 한대 칠 듯 손을 치켜들었다.

그러나, 보다 더 좋은 생각이 난 듯 그가 곧 자세를 바로 했다.

“내가 토낄 땐 토끼더라도, 그냥은 못가지.”

괴한이 독현을 힐끗 응시했다.

“애초에 내가 널 납치한 목적은 돈이 아니라 복수였다. 뭐, 좀 있으면 짭새들이 들이 닥칠 것 같은데……그때까지 잘들 버텨봐.”

철컥. 괴한이 냉동 창고의 ON/OFF 레버를 아래로 힘껏 끌어당겼다.

그와 동시에 위잉-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천장 위의 모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뭐, 뭐야. 지금 이거 증발기 돌아가는 소리지? 당신 미쳤어!? 우릴 얼려 죽이려고!?”

당황한 은돈이 괴한을 향해 소리쳤다.

그러나, 그는 빠르게 내려가는 온도 측정기를 큭큭대며 바라볼 뿐이었다.

“니들이 여기서 얼어 죽든 말든 난 관심 없어. 그니까 목숨 구걸은 신께 하라구. 아. 그래도 최소한의 자비는 베풀어주지.”

툭. 그들의 발치로 커터 칼을 던진 괴한이 곧 출구를 향해 돌아섰다.

“잠깐만요! 이대로 가는 거예요!? 뭐야 이런 게 어딨어! 이봐요 아저씨! 아니 선생님!”

멘붕 상태로 부르짖는 은돈의 귀에, 쾅! 출구가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그녀가 오한이 이는 발끝을 내려다보며 멍한 혼잣말을 튕겨냈다.

그와 동시에 독현은 바닥에 떨어진 커터 칼을 응시했다.

일단 줄부터 끊어야겠군.

“차은돈. 하나 둘 셋 하면 움직여.”

그의 말에 반쯤 넋이 나간 은돈은 허망하게 고개를 끄덕였고, 잠시 후.

툭-! 커터 칼을 든 독현이 은돈을 휘감고 있던 밧줄을 능숙한 손길로 끊어냈다.

“고, 고, 고마워요 사장님. 그, 근데 조, 좀 춥네요? 나 지금 떠, 떨고 있어요?”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 은돈을, 그녀의 얼어붙은 입술을, 독현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응시했다.

뒤이어 그는 지훈의 말을 회상했다.

‘얌마. 사랑이란 건 말이지. 한 여잘 위해 니가 어떤 희생도 감수 할 수 있어야 하는 거야. 근데 너. 그 여자를 위해 희생 할 수 있어?’

‘자, 우리 예를 들어 보자. 가스실에 너랑 차은돈이 갇혔어.’

‘이 방에 방독면은 하나뿐이고 지금 너한테 있어. 어쩔래?’

‘차은돈한테 네 방독면을 양보할 수 있냐고.’

“……어? 뭐, 뭐 하는 거에요?”

은돈이 날렵하게 재킷을 벗어드는 독현을 응시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머리 위로 그의 재킷이 떨어졌다.

“입고 있어.”

“사, 사장님 지금 미, 미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독현이 은돈을 제 품안으로 끌어당겼다.

헉. 지금……이 인간이 날 안은 거야?

“아니…… 대, 대체……왜…….”

그래. 말 그대로 대체 왜?

은돈은 파래진 입술을 달싹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움직이지 마. 체온 떨어져.”

"사장님……지금 뭐하잔,”

“말도 하지 마. 너 지금 몸이 얼음장처럼 차. 그러니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이대로 있어. 가만히.”

“…….”

정수리에 와 닿는 독현의 숨결.

은돈은 뭐에 홀린 듯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눈앞의  가슴팍에 살짝 얼굴을 묻었다.

정말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괜찮은 거지?

그래. 이건 남녀 간의 사심 섞인 포옹 따위가 아니라, 체온유지를 위한 일종의 몸부림이야.

살고자 하는 몸부림.

그녀가 콩닥거리는 제 심장소리를 못들은 척, 시선을 끌어올렸다.

그와 동시에 독현의 커다란 왼손이 은돈의 이마를 감쌌다.

“열나는 것 같으면 말해.”

“네…….”

여자에게 베푸는 친절이 처음인양 어딘가 서툰 몸짓.

그에 상반되는 다정한 목소리.

은돈은 도저히 종잡을 수 없는 눈앞의 독현을 바라보다, 멍한 한마디를 뱉어냈다.

“사장님. 그럼 잠시만……어쩔 수 없이 좀 안겨있을게요.”

생각보다 훨씬 넓고 따뜻한 독현의 품안을, 은돈이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주 시니컬한 향수냄새가 날 것 같았는데. 의외로 산뜻한 비누향이 난다.

비누라니, 귀엽잖아.……뭐? 귀여워?

순간 스스로에게 놀란 은돈이 핏 헛웃음을 터뜨렸다.

차은돈 너 미쳤구나. 그래.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

다원정 스텝 휴게실.

“누나. 경찰에서 위치 조회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그리고 이 메시지 혹시라도 듣게 되면, 꼭 연락해요.”

삑. 메시지 전송버튼을 누른 지세가 마른 한숨을 내쉬었다.

‘이거 차은돈 핸드폰 맞아. 가서 신고해. 우리 납치됐으니까. 여기 경기도야.’

아까부터 계속 귓가를 아른대는 독현의 음성.

납치라니. 짓궂은 장난이길 바라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정말 독현의 말처럼 두 사람이 함께 납치 된 거면?

"하.”

그가 목을 죄어오는 조리복 타이를 풀어 헤쳤다.

뒤이어 캐비넷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응시했다.

정말로 은돈이 위험에 처했을지 모른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그리고 내내 독현을 향해있는 묘한 질투심.

그 두 감정이 뒤엉켜 자신의 얼굴을 점령하고 있었다.

“……꼴사나워 이지세.”

그가 거울 속 자신을 향해 나지막한 한마디를 읊조리며, 콰앙-! 캐비닛을 닫았다.

***

“사장님. 타이타닉 봤어요? 왜 거기 보면, 잭이 로즈대신 얼음물에 빠져 죽잖아요? 나요. 이제야 잭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 생각만 해도 더럽게 춥네요.”

가동 중인 냉동 창고 안.

독현의 품에 안긴 은돈이 반쯤 정신을 놓은 채 헛소리를 우물대고 있었다.

“앞으로 난 한여름에도 오리털 파카만 입고 다닐 거에요. 목욕탕은 온탕 아님 안 들어가구요. 나중에 결혼하면 신혼여행은 꼭 아마존 열대 우림지역으로 가야지. 아. 그리고 365일 내내 주머니에 핫 팩을 넣고…….”

그리곤 제 어깨 위로 툭, 떨어진 독현의 머리를 응시했다.

“사장님……? 괜찮아요? 사장님?”

뭐지. 움직이질 않아……?

거듭된 자신의 부름에도 미동조차 없는 그를 보며, 은돈은 덜컥 겁이 나 외쳤다.

“사, 사장님! 정신 차려요! 네?”

찰싹 찰싹.

그녀는 독현의 뺨을 연달아 두드렸고, 그럼에도 반응이 없자 재빨리 자신이 덮고 있던 재킷을 벗어 들었다.

“이거 다시 줄게요. 정신 좀 차려 봐요!”

차게 식은 그의 몸 위로 재킷을 덮어주며, 은돈이 파르르 어깨를 떨었다.

순간 그녀는 독현과 괴한이 주고받던 대화를 떠올렸다.

‘마지막 경고야. 이 여자한테 함부로 손대지마.’

‘새꺄. 손대면 어쩔 건데? 왜. 뭐. 죽이기라도 하시게?’

‘궁금하면 건드려 봐. 차라리 지명준 회장 손에 넘겨달라고 빌게 만들어 줄 테니까.’

“난 진짜……진짜 사장님이 날 그렇게 생각해주는지 몰랐어요……싸장님-!”

감정에 북받친 은돈이 울먹이며 독현의 얼굴을 양손으로 부여잡았다.

“죽지 마요! 사장님은 내가 본 인간 중에 서른 마흔 다섯 번째로 좋은 사람이에요! 눈 떠 봐요! 그동안 내가 건방지게 군 거 사과할게요! 제발 죽지 마!”

은돈은 격앙된 외침을 부르짖으며 독현의 멱살을 잡아 흔들었고, 그때였다.

그녀의 귓가에 야트막한 한마디가 스며들었다.

“콧물 좀 닦아.”

“사장님?!……누, 눈물이거든요!”

얼굴에 화색을 띤 은돈이 소리쳤다.

독현은 자신이 그녀의 무릎 위에 기대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곧 상체를 일으켰다.

“뭐, 서른 마흔 다섯 번째?”

그가 뾰족한 시선으로 은돈을 응시했다.

“다, 다 듣고 있었어요? 다행이네요. 멀쩡해서…….”

하긴. 여기서 얼어 죽으면 지독현이 아니지.

은돈이 젖은 눈으로 허무한 실소를 터뜨렸다.

“아, 울다가 웃으면 안 되는데.”

“…….”

독현은 말없이 눈앞의 은돈을 응시했다.

그리곤 가느다란 엄지로 그녀의 젖은 눈가를 쓰다듬었다.

은돈은 고개를 들어 독현을 마주보았고, 이어서 감도는 미묘한 침묵.

뭐지, 이 분위기는……?

그녀는 자신을 향해있는 독현의 맹목적인 시선을 피해 살짝 고개를 돌렸다.

“차은돈.”

“네?”

“난 너 따위. 좋아하지 않아.”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에요? 누가 나 좋아해 달랬어요?”

하여간 이 인간. 지금 얼어 죽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에 웬 헛소리?

쯔쯧. 은돈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고, 그때 다시금 그의 입술이 벌어졌다.

“난 너 따위. 절대 좋아하지 않아.”

“아 글쎄 안다니,”

다음 순간-

비스듬히 고개를 꺾은 독현이 은돈의 입술위로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갑작스레 혀끝으로 밀려드는 독현의 숨결에,

자신이 거부하지 못하도록 목덜미를 끌어당긴 그의 손길에,

은돈이 커다랗게 눈을 치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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