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남자 밥해주기-20화 (20/93)

20화. 웃지마. 그 자식 앞에서.

“대답해줘? 정말 듣고 싶어……?”

공간을 잠식해버리는 독현의 낮은 음성에, 소라의 낯빛이 굳어졌다.

“뭐야? 너 진짜 차은돈한테 맘 있는 거야? 그래?”

초조한 듯 되묻는 그녀를 보며 독현이 냉랭한 조소를 머금었다.

“……정말이지 재밌어 넌.”

“지독현. 돌리지 말고 말해. 차은돈에 대한 네 맘. 뭐야? 단순한 호기심이야? 아니면,”

“호기심…… 그래. 그런 것 같군.”

독현이 시니컬한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치켜세웠다.

“궁금해. 내 말 한마디 한마디에 차은돈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너완 달리 놀려먹는 재미가 있는 여자야.”

“…….”

나와 다른 여자. 지독현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여자.

소라가 분한 듯 경직된 시선을 곧추세웠다.

“결국 지독현도 별 수 없구나?”

“……?”

“그렇게나 무시하던 차은돈이 살 빼고 예뻐지니까, 뒤늦게 맘이 혹하니?”

“뭐?”

“니가 차은돈을 달리 보기 시작한 시점. 그 여자가 예뻐진 직후부터잖아. 아냐? 내가 사랑하는 남자지만, 지독현 당신 정말 위선적이야.”

소라가 도톰한 입술을 달싹이며 차갑게 말했다.

그녀는 어떻게든 독현의 자존심에 생채기를 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너도 나만큼 아파 봐. 나만큼 비참해져봐 어디.

“상대할 가치가 없군. 내려.”

그러나…… 독현은 이미 소라의 의중을 간파한 듯 싸늘한 한마디를 내놓을 뿐이었다.

“하. 차은돈에 관해선 말을 아끼시겠다?……좋아. 나도 너랑 더 이상 입씨름하기 싫어.”

백을 집어 든 소라가 그대로 차에서 내려섰다.

이윽고 탁! 보조석 문이 닫히자마자 독현이 액셀을 밟으며 거칠게 핸들을 꺾었다.

……뭐야. 진짜 가는 거야?

갓길에 선 소라는 굉음을 내며 멀어지는 페라리를 빨개진 얼굴로 응시했다.

지독현……지독현, 지독현!

“내가 널 너무 풀어 줬지.”

기대해. 조만간 날 무시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테니까.

니가 싸고도는 그 차은돈 앞에서 말이지.

덩그러니 남겨진 소라가 초조한 듯 손톱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

같은 시각. 주방에서 감자를 손질하던 은돈이 멍하니 허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나 차 안가지고 왔는데. 좀 데려다 줄래?”

‘따라와.’

……뭐지. 지독현이 자기 애인을 에스코트 해주는 건 당연한 건데, 왜 내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거야.

“나도 참. 별스럽다, 별스러워.”

은돈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감자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때 저만치서 정신없이 프라이팬을 흔들던 부주가 외쳤다.

“어이! 거기 신입! 이지세! 차은돈! 물품 리스트 들고 창고 좀 다녀와!”

“아 넵!”

부주의 외침에 은돈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그때, 그녀의 등 뒤를 지나는 지세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어, 같이!……가…….”

은돈은 이미 출구로 나선 지세를 보며 멋쩍은 듯 입을 다물었고…….

그로부터 삼십분 뒤. 지하에 위치한 대형 창고.

“흠. 다 챙긴 건가?”

리스트를 든 은돈이 앞에 놓인 재료들을 차례대로 훑어 내렸다.

“소고기 안심, 가리비, 돈족, 머쉬룸, 징코넛(은행)……좋아. 써진 건 다 챙겼고, 이제 그릴용 참숯만 옮기면 되나?”

그녀가 발 앞에 쌓인 묵직한 박스들을 응시하며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옆에 서있던 지세가 허리를 수그려 박스를 들어 올렸다.

“제가 옮길 테니까 누난 먼저 올라가요.”

“뭐? 아냐. 이 많은 걸 어떻게 혼자,”

“괜찮아요.”

은돈의 말을 딱 자르며 그가 몸을 돌려세웠다.

“저기! 잠깐만…….”

후다닥. 지세의 앞을 막아 선 은돈이 쭈뼛대며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거 받아.”

“……?”

지세는 난데없이 그녀가 내민 츄파춥스를 의아한 얼굴로 받아들었고, 이에 은돈이 주절주절 말을 잇기 시작했다.

“내가 당 떨어질 때 대비해서 들고 다니는 건데 너 줄게.”

“갑자기 웬 사탕이에요?”

“그게……약소한 사과의 표시랄까…….”

“?”

“아까 문소라 씨 앞에서 말이야. 기껏 니가 내 편들어줬는데…… 난 사회생활 운운하며 타박이나 해대고, 생각해보니 맘에 걸리더라. 사과할게.”

처덕. 다음 순간 은돈이 내민 오른손을, 지세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지세. 너 그러다 잘린다.’

‘사회생활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게 아니야. 앞으론 절대 내 편 들어주지 마. 아까 같은 자리에선 그냥 가만히 있으라구. 다 널 위해서 하는 소리야.’

“……누나.”

테라스에서의 일을 회상하던 지세가 가만히 입을 열었다.

“나 누나가 사회생활 운운해서 화난 거 아니에요.”

“응……?”

“사회생활이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건 잘 알아요. 그러니까…… 날 너무 애 취급하지 말아줬으면 해요.”

“…….”

“우리 네 살 차이 밖에 안 나거든요. 고작.”

불쑥 튀어나온 지세의 진심에,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단호한 그 눈빛에.

은돈이 약간 당황해 목소리를 높였다.

“애, 애 취급? 누가 누굴 애 취급해? 야! 너처럼 키 큰 애가 어디 있냐! 너 한 184되니?”

오바에 육바를 더해 외치는 그녀를 보며, 지세가 슥- 손을 뻗었다.

이윽고 그의 커다란 손이 은돈의 정수리 위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누난. 한 백육십 돼요?”

“뭐? 나 이래봬도 백육십사,”

“많이 먹고 더 커야겠네요.”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지세가 씽긋 웃어보였다.

은돈은 민망함에 휙 고개를 젖혔고, 곧 시야에 그의 오른손이 들어왔다.

젠장. 손등위로 살짝 불거진 저 핏줄을 보라.

저건 소년이 아닌 남자의 손이야. 완벽해. 섹시해.

꿀꺽. 그녀는 무의식중에 마른침을 삼키며 지세를 올려다보았다.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고. 잠시 후 먼저 고개를 돌린 쪽은 은돈이었다.

아오 내가 왜 이래. 굶었냐 차은돈.

새파랗게 어린 영계보이를 상대로 음슴한 상상을 하려 하다니.

“으차!”

창피해진 은돈이 냉큼 바닥에 놓인 박스를 집어 들고 출구로 돌아섰다.

“하여간, 난 널 애 취급 한 적 없어. 그니까 기분 풀어.”

말을 마친 그녀가 달아나듯 포다닥 걸음을 옮겼다.

지세는 그런 은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곧 손바닥 위의 츄파춥스로 시선을 떨궜다.

“애 취급. 하고 있으면서…….”

사과의 의미로 사탕이라니. 피식, 그가 허무한 실소를 터뜨렸다.

분하지만, 이미 은돈에게 서운했던 마음은 사르르 녹아 없어진지 오래.

“누나, 박스 이리 줘요. 무거워요.”

지세가 개구진 미소를 머금은 채 재빨리 은돈의 뒤를 쫓았다.

***

그날 저녁. 프레지던트 룸.

째각. 째각. 째각. 정적 속에 울려 퍼지는 초침소리…….

은돈이 이제 막 일곱 시를 가리키는 벽시계를 힐끔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고개를 내려 소파 협탁 위로 차려진 음식들을 응시했다.

“자……잘 먹을게요. 사장님.”

점심에 이어, 독현과 함께하는 두 번째 식사.

기어이 이 어색뻘쭘한 순간이 오고야 말았군.

그녀가 어색한 표정으로 밥 한술을 떠 입에 가져갔다.

“…….”

맞은편에 앉은 독현은 아까부터 그런 은돈의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중이었다.

말 그대로 뚫.어.져.라.

“……저기.”

몇 분 후.

묘한 긴장감속에 젓가락질을 하던 은돈이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운을 뗐다.

안되겠어. 저러다 저 인간 눈에서 빔 나오기 전에, 무슨 얘기라도 해야지.

“사장님. 몸은 좀 어때요? 열은 내렸어요? 아직 감기기운 있는 거 아니에요?”

속사포로 이어진 그녀의 물음에 독현이 고개를 젖힌 채 낮은 어조로 뇌까렸다.

“멀쩡해. 보다시피.”

“아……난 또. 아까부터 뭐에 홀린 사람처럼 나만 쳐다보길래. 어디 아픈 가 했죠.”

“신경 쓸 거 없어. 계속 식사해.”

어떻게 신경을 안 쓰냐! 그렇게 숨 막히는 시선으로 쳐다보는데!

은돈은 무언의 아우성을 속으로 내질렀고, 그 즈음 독현이 무심코 입을 열었다.

“차은돈. 어째서 널 보면…….”

“? 절 보면, 뭐요?”

“……아냐.”

독현이 뭔가를 말하려다, 창가로 시선을 비틀었다.

그의 귓가엔 아까부터 소라의 음성이 거슬리게 맴돌고 있었다.

‘결국 지독현도 별 수 없구나? 그렇게나 무시하던 차은돈이 살 빼고 날씬해지니까, 뒤늦게 맘이 혹하니?’

‘니가 차은돈을 달리 보기 시작한 시점. 그 여자가 예뻐진 직후부터잖아.’

“…….”

예쁘다고. 이 여자가……?

독현은 소라의 말을 부인하기라도 하듯 고집어린 시선으로 은돈을 응시했다.

“하하……사장님. 혹시 내 얼굴에 꿀 발라놨어요?”

은돈이 억지웃음을 머금은 채 그런 독현을 향해 말했다.

“웃지 마.”

“네?”

“지난번에 말했잖아. 내 앞에서 그렇게 웃지 말라고.”

“그렇게라니. 내가 어떻게 웃는데요.”

예쁘게.

순간- 독현은 저도 모르게 내뱉을 뻔한 말을 삼키며 입을 다물었다.

혼란스러웠다. 정말 차은돈 말대로 몸살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건가.

그는 말없이 한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약간의 미열.

그래. 저 여자가 갑자기 예뻐 보이는 건 아직 몸이 다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저 여자의 웃는 얼굴에 가슴이 일렁이는 것도…… 자신의 컨디션이 저조하기 때문이다.

“사장님. 어, 얼굴이 왜 그래요? 무슨 저승사자마냥 새파랗게 질렸어요.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은돈이 왼쪽 가슴을 부여잡은 채 충격에 빠진 독현을 보며 물었다.

“……차은돈. 다 먹었으면 나가 봐.”

“네? 아직 반도 안 먹었는데…….”

“나가.”

가차 없는 독현의 서슬에, 은돈이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하여간. 누가 와도 이 까탈스런 비위는 못 맞출 것이여.

이놈은 하다못해 세기의 배려쟁이 간디한테도 멱살잡이 당할 놈이라고!

은돈이 숟가락을 든 채로 쯔쯔 혀를 찼다.

“사장님. 갈 땐 가더라도 이건 마저 먹고,”

“나가라고 했잖아.”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독현이 그녀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곤 가차 없이 문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어, 어! 내 발로 나갈 게요 내 발로! 아 진짜!”

잠시 후. 꼼짝없이 내쫓긴 은돈이 상기 된 얼굴로 외쳤다.

“아니 이럴 거면 뭐 하러 같이 먹자고 한 거에요! 사장님 평소에도 이상했지만 오늘은 더 이상한 거 알아요!”

“…….”

밖에서 들려오는 은돈의 외침을 못들은 척, 독현이 문을 등지고 섰다.

이후 그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들었고, 곧 지식인에 ‘심장 질환’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의 글이 수두룩하게 쏟아졌다.

‘어떤 여자만 보면 자꾸 가슴이 뜁니다. 이거 심장질환 인가요?’

‘네. 협심증입니다. 의사와 상의 하세요’

‘아닙니다. 그건 심장질환이 아니라 님이 사랑에 빠졌다는 증거입니다. 짝사랑이요ㅋㅋ’

“짝사랑…….”

독현이 액정을 바라보며 기가 막히다는 듯 중얼거렸다.

짝사랑이라니. 정말 지독히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단어였다.

이렇게 가슴이 뛰는 이유가…… 차은돈을 좋아하게 됐기 때문에?

그것도 짝사랑?

일순 그가 초조하다 못해 갈급한 눈빛으로 타이를 느슨하게 풀어 헤쳤다. 답답했다.

은돈을 향한 이 낯설고 거추장스러운 감정을 빨리 떨쳐버리고 싶었다.

“내가 차은돈을…….”

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어.

마치 스스로를 세뇌시키듯 독현이 힘을 주어 읊조렸다.

그는 단호한 얼굴로 더 이상 은돈을 신경 쓰지 않으리라 다짐했고, 그로부터 불과 네 시간 후.

확고했던 그 다짐을 스스로 뭉개버리고 말았다.

“수고하셨습니다!”

“어~ 다들 내일보자!”

다원정 야외주차장.

부주와 직원들이 인사를 주고받으며 각자의 방향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가방을 둘러멘 은돈은 들뜬 얼굴로 콧노랠 흥얼이며 정류장으로 향했다.

“누나-”

그때 사복차림의 지세가 한손으로 은돈의 어깨를 짚었다.

“어, 이지세! 지금 가? 정류장까지 같이 갈까?”

정시보다 이른 퇴근에 신이 난 은돈이 그에게 살갑게 어깨동무를 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그때, 끼익-! 거친 타이어 마찰음과 함께 페라리가 그들 앞을 가로막았다.

“아 깜짝아! 뭐, 뭐에요! 하마터면 치일 뻔 했!”

-으르렁 으르렁대~ 으르렁 으르렁♪♬

뒤로 물러선 채 소리치던 은돈이 울려 퍼지는 자신의 핸드폰을 내려다보았다.

뭐야. 지독현?

“여보세요……?”

그녀가 페라리 안의 독현을 바라보며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나야.

“네. 사장님인거 떡하니 보이네요. 아, 거 운전 좀 똑바로 할 수 없어요?”

-……잖아.

“뭐라구요?”

-웃지 말라고 했잖아, 차은돈.

이 인간이……진짜 함 해보자는 거야?

“아까부터 듣자 듣자하니까! 웃는 건 내 맘이죠! 그리구 사장님 앞에서만 웃지 말라면서요?”

은돈이 페라리 안의 독현을 정면으로 쏘아보며 외쳤다.

이에 독현 역시 그녀를 직시하며 나직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냥 웃지 마. 아무데서나. 아무 앞에서나.

아무 앞에서나. 하고 차갑게 말을 맺으며 독현이 지세를 응시했다.

지세는 자신에게 꽂힌 그의 시선을 의식한 듯 고개를 수그려 인사를 건넸고, 그 와 동시에 페라리가 그들에게서 방향을 틀었다.

-타. 차은돈.

“뭐야. 싫어요.”

-잔말 말고 타. 데려다 줄 테니까.

“글쎄 싫다니까요? 내가 고용주 차를 왜 타요? 가자!”

휙, 그녀가 지세의 팔을 끌어당기는가 싶더니 휘적휘적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

독현은 건조한 시선으로 차 창 밖의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그즈음 라디오에서 익살맞은 DJ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사랑에 빠진 남자는 바보가 된다고 하죠. 갑자기 안하던 짓을 하거나, 쓸데없는 심술을 부리거나, 그 여자 앞에서 괜히 좋은데 싫은 척 하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찐따 초딩이 돼버려요. 자, 오늘도 짝사랑에 가슴앓이 중인 초딩들을 위해 한곡 띄웁니다. 더넛츠의 사랑의 바보!”

뚝-

라디오를 끈 독현이 이글이글 불타는 눈으로 다시 핸들을 붙잡았다.

잠시 후. 나란히 걷고 있는 지세와 은돈의 옆으로 페라리가 쌩하니 지나갔다.

그와 동시에 촤악-! 도로변에 고여 있는 흙탕물이 은돈을 향해 튀었다.

“우왁! 퉤! 뭐야! 입에 들어갔잖아! 저거 저거! 저 싸가지 저거!”

은돈이 멀어지는 페라리를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뻗쳐들었다.

“에라 이거나 먹어라! 이 여름철 싸이 겨드랑이 같은 놈아!”

“누나! 괜찮아요!?”

”저거 봐! 지독현 저 자식! 지금 신호 바뀌었는데 무시하고 가는 거 봤어!? 와! 여기 씨씨 티비 안 달려있나?”

“…….”

자리에 우뚝 선채 고래고래 목청을 돋우는 그녀를 보며, 지세가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장님이랑 누나보면 신기해요. 사이가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야, 완전 나쁘지! 너도 봤음 알 거 아냐! 내가 아무리 잘 지내고 싶어도 나만 보면 저렇게 심술을 부린다! 왜 저러는 거야 대체! 꼭 찐따 초딩 같네!”

“……난 알 것 같은데. 왜 저러는지.”

“뭐? 왜 저러는데?!”

은돈의 물음에, 지세가 씩 웃어보였다.

“누나. 지금 진짜 몰라서 물어보는 거죠?”

“무슨 소리야?”

“아니에요. 그냥 말 안 해줄래요.”

이렇게 눈치가 없어서야.

지세가 피식 웃으며 은돈의 정수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빨리 가요. 버스 놓치겠어요.”

“뭐, 뭐야……?”

은돈이 앞서 걷는 지세의 등짝을 바라보며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자신에게 노골적으로 친절을 베푸는 한 남자와, 대놓고 심술을 부리는 한 남자의 마음을 지독히도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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