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02
오늘은 서은의 드레스를 피팅하는 날이었다. 이미 결혼에 관해 양가의 뜻이 확고하니 약혼식은 생략하고 곧장 결혼을 시켰으면 한다는 뜻에 따라, 날을 받은 지 세 달이었다.
이제 초록을 벗어 내고 온 계절이 무르익어 가는 가을, 해승원의 정원에도 가을빛이 물들기 시작했다.
조명 빛이 환히 내려오는 해승원의 드레스룸에 웨딩과 관련된 갖가지 소품과 장신구, 그리고 드레스가 이동형 행거에 걸려 있었다. 태한은 커튼이 가려진 드레스룸 소파에 앉아 조용히 생각에 잠겨 있었다.
“상무님, 혹시 드레스가 마음에 안 드세요?”
“아니요. 예쁩니다. 근데 마저 보고 싶어서.”
태한은 조심스럽게 묻는 이 대표를 보며 느긋하게 대답했다.
얼마 전 드레스 취향과 관련해 꼼꼼하게 조사하던 이 대표는 각 브랜드와 디자이너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드레스를 엄선해 10벌을 골라 왔고, 그중 다섯 번째 피팅이었다.
이제까지 완벽에 가까운 모습으로 신부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심각하게 하나하나 따지면서 살피는 시선이 매서워, 아무래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까다로운 해신 그룹의 안목에 맞추기 위해 몇 달을 고생하며 공수해 온 드레스인데도, 남들은 못 입어 안달 난 드레스를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으니 이 대표로서는 피가 바짝바짝 타는 일이었다.
“다음, 보죠.”
“예, 알겠습니다.”
나직한 태한의 목소리는 부드러우나 힘이 느껴졌다. 이 대표가 조심스럽게 탈의가 이루어지고 있는 커튼 뒤로 모습을 감추었다.
첫 번째는 볼륨감이 느껴지는 벨 라인의 단아한 미카도 실크 드레스였고, 두 번째는 반짝거리는 비딩이 돋보이는 A라인의 드레스였다. 세 번째는 단정한 앞모습과 다르게 등이 훤히 보이는 백리스 디자인의 심플하고도 관능적인 두 가지 매력이 공존하는 드레스였다.
이제껏 서은이 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고, 모조리 패스했던 건 솔직히 말하자면 태한의 개인적인 욕심이었다.
첫 번째 드레스는 예쁘지만 다른 모습을 보고 싶어 패스했고, 두 번째는 너무 화려한 비딩이 그의 취향이 아니었다. 서은은 꾸미지 않아도 본연의 아름다움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렇게 화려하게 빛이 나는 것들보다는 조금 더 단아하고 우아한 이미지를 살릴 수 있는 드레스이길 바랐다.
세 번째 드레스는 서은의 등이 허리까지 파여 있는 모습에 고개를 저었으며, 네 번째 드레스는 머메이드 라인에서 서은의 볼륨감이 고스란히 느껴져 잠시 흥분했지만, 그는 또 한 번 다음을 외쳤다.
“신부님 나오십니다.”
커튼이 열리며 다섯 번째 드레스를 피팅한 서은이 모습을 드러냈다. 풍성한 퍼프 소매를 가진 비숍 슬리브 드레스였다. 하얗고 동그란 어깨를 완전히 드러냈으나, 가슴을 경계로 시작된 쉬폰 소재의 소매가 여리여리한 느낌의 볼륨감을 제대로 살리는 디자인이었다.
“어떠세요?”
이제껏 팔짱을 끼고 자리에 앉아 매서운 눈으로 서은을 살피던 태한이 마침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거운 조명 아래 거추스러운 웨딩드레스를 여러 벌 갈아입느라 그새 지쳐 버린 서은이 의사를 묻듯 곧게 허리를 펴고 대답을 기다렸다.
“이것도 별로예요?”
“음.”
그건 아니지만.
아직 남은 드레스가 다섯 벌이나 더 있으니, 나머지도 입혀 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이제껏 여러 디자인의 드레스를 입혀 보며 색다른 서은의 모습 하나하나를 눈에 담는 내내 즐거웠다. 그런 즐거움을 여기서 끝내기엔 조금 아쉬운 감이 있었다.
태한과 다르게 서은은 여기서 멈출 수만 있다면 포대 자루라도 고를 기세였지만, 평생에 단 한 번뿐인 즐거움을 태한이 포기할 리 없었다.
“예뻐요.”
“그럼 이걸로 해요.”
“아니.”
긍정적인 반응에 서은의 눈이 동그래졌다가, 이내 가라앉았다.
“왜요. 예쁘다면서.”
“예쁘지. 다 예뻐.”
그래서 곤란했다. 벗겨 놔도 안 예쁜 구석 없이 다 예쁜데, 생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이 어떻게 아름답지 않을 수가.
서은의 몸을 감싸고 있는 풍성한 퍼프 소매를 가진 비숍 슬리브 드레스는 서은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렸다.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소매 부분은 쉬폰 소재로 가녀린 느낌을 우아하게 살려 낸 디자인은 잘록한 허리를 따라 떨어지는 발레리나의 튜튜 드레스를 연상케 한다.
“아무래도 나 살이 좀 찐 것 같아.”
허리를 꽉 조인 탓인지 숨을 쉴 때마다 서은의 가슴이 봉긋하게 솟아올랐다. 핏줄이 푸르게 비치는 투명한 피부에 순백의 웨딩드레스라니. 이제야 서은이 자신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과 함께 속 안에 은밀히 감추어 둔 만족감이 팽창했다.
“나 좀 힘들어요. 그냥 우리 적당히 고르면 안 될까요?”
아마 웨딩드레스 투어를 했다면 다음 숍으로 이동하다 하루를 다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서은은 조심스럽게 태한의 의사를 물었다.
“조금 쉬었다 할까?”
나직한 물음에 서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자리 비켜 주시겠습니까.”
서은에게 다정하던 것과 다르게 깍듯하면서도 사무적인 음성에 이 대표와 피팅을 돕는 직원들이 자리를 비웠다.
비로소 단둘만 남자 태한이 커튼을 치고 서은에게 다가섰다.
“그렇게 힘들어?”
“태한 씨가 안 입어 봐서 그렇지. 한 벌 입는 것만 해도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데.”
그러니 이제 그만 하고 싶다 툴툴거리는 서은의 뺨이 귀엽게도 실룩거렸다.
“난 이거 마음에 들어요.”
“나도 마음에 들어.”
“그럼 이걸로 해요. 응?”
고개를 올려 묻는 서은의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났다. 태한은 시선을 내려 서은을 가장 아름답게 돋보이게 만드는 드레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이 천천히 발끝까지 내려갔다 되돌아온 순간, 한숨을 내쉬는 서은의 가슴에 머물렀다.
얼마나 세게 조여 놨는지, 가뜩이나 큰 가슴이 터질 듯이 부푼 상태였다. 서은이 숨을 내쉴 때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아찔한 곡선.
“역시 이건 안 되겠어요.”
태한은 고개를 저으면서도 아찔하게 진동하는 서은의 가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디가 이상한데요?”
“여기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거울을 보고 선 서은의 등 뒤에서 태한이 불룩 솟아오른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아, 하는 짤막한 소리에 태한의 몸이 크게 부풀었다. 그가 서은의 몸을 구기듯 뒤에서 거세게 끌어안고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미쳤어요? 곧 사람들 올 텐데. 찢어져요.”
그러거나 말거나 스커트를 둘둘 말아 올리는 태한의 손길은 거침없었다.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살짝 살결을 빨아들이자, 쪽 하는 소리와 함께 열감이 느껴진다.
“아….”
가늘게 흘린 신음에 태한의 하체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부풀었다.
“잠깐만요. 태한 씨….”
“나도 잠깐이면 돼.”
등 뒤에서 지익, 지퍼가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엉덩이까지 드레스가 걷어 올려졌다. 단순한 피팅일 뿐인데도 엉덩이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속옷에 새하얀 레이스 가터벨트가 허벅지 양쪽을 꽉 조이고 있었다.
“이 대표님, 칭찬해 줘야겠는데.”
태한은 서은의 엉덩이를 쥐어 벌리며 금세 바지 사이를 뚫고 나올 것처럼 치솟은 페니스를 서은의 허벅지 사이로 갖다 끼웠다.
“미, 미쳤어요? 태한 씨.”
허리를 감은 한 손에 거추장스러운 치맛자락을 뭉치처럼 칭칭 감아쥐고, 태한은 서은의 한쪽 다리를 들어 올렸다.
“…태한 씨. 흐읏.”
서은의 애원이 무색하게 그의 성기가 은밀한 틈새를 마구 문질렀다. 마찰이 느껴짐과 동시에 아래로 열기가 몰렸다. 질척하게 몸이 젖어 가는 느낌에 서은이 움찔, 정지하자 귓가로 웃음 같은 뜨거운 숨이 쏟아졌다. 동시에 단단하고 거대한 그의 성기가 서은의 질구를 꿰뚫고 밀려들었다.
“…하아!”
서은은 목소리를 죽여 숨을 들이켰다. 묵직하게 안을 채우며 빈틈없이 밀려드는 느낌에 눈앞이 아찔했다.
“아아, 서은아.”
나직하게 서은을 부르는 목소리에서 희미한 열기가 느껴졌다.
그는 느릿하고 정확하게 서은의 몸을 가르며 파고들었다. 꾸욱. 버겁게 벌어지는 살점을 비집으며 서은의 체온을 적나라하게 느끼는 건, 그가 아는 쾌락 중 가장 달콤하고 중독적인 것이었다.
“이런 순간을 어떻게 참겠어. 응?”
“흐읏, 으….”
서은은 뒤에서부터 밀려오는 고통과 쾌락에 눈앞이 깨어지는 것 같은 착각을 느꼈다. 서은의 몸이 겹쳐 오는 그의 몸을 견디지 못하고 중심을 잃는 순간, 태한이 재빨리 작은 몸을 포개며 중심을 낮추었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헐떡이는 서은의 머리 위에서 기껏 올려 둔 티아라가 챙강, 소리를 내며 굴러떨어졌다.
“읏, 하아… 태, 태한 씨… 그만….”
혹여 누구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태한을 불러 보지만 짐승처럼 뒤에서 찍어 올리는 그의 움직임은 단호하기만 했다.
“후우, 오래 걸리진 않을 거야.”
“흐으읏… 빨리요.”
차라리 빨리 사정한다면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태한의 손이 웨딩드레스 앞자락을 뜯어내었다. 찌익, 거칠게 뜯겨 나간 드레스 앞섶이 벌어지며 안에 꽁꽁 감춰 두었던 젖가슴이 출렁하며 쏟아져 내렸다. 태한의 손가락이 서은의 젖꼭지를 꼬집었다.
“하앗…!”
이러면 안 된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이를 꽉 물고 되도록 삼키려 애쓰는 목소리가 입 안에서 들끓었다.
“소리 내도 돼, 서은아.”
“흐으, 싫어.”
“뭐, 어때. 우리 집인데.”
그래서 싫다고.
해승원의 식구들이 이용하는 드레스룸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믿고 싶지 않았고, 들키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몸속으로 느껴지는 쾌락은 거짓을 모른다.
“흐읏, 태한 씨… 아아….”
다리 사이에서 시작된 쾌락이 몸을 뚫고 목구멍까지 순식간에 차올랐다. 머리가 쭈뼛하게 설 정도로 내벽을 긁고 나가는 태한의 페니스는 단단하고 힘이 넘쳤다. 어디를 자극하면 서은이 반응하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의 하체가 다시금 엉덩이를 뭉개며 뒤에서 맞붙었다.
퍼억.
힘을 잃고 상체를 엎드리자 엉덩이가 더 위로 치솟았다.
“이러면 고맙지.”
낮게 속삭이며 그가 서은의 허벅지 사이로 제 다리를 밀어 넣었다. 단단한 그의 다리가 밀려들자 절로 다리가 벌어졌다. 몸이 열리는 느낌과 동시에 그는 움직임이 더 수월해진 듯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퍽, 퍼억. 퍽.
몸과 몸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음란하게 내부를 채우고, 신음하지 않으려 애쓰는 목소리가 그 위를 지났다.
“하아, 읏, 태한 씨. 빨리 끝내요.”
“아파?”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소리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금세 가늘어진 신음과 함께 삼켜졌다.
“왜 이렇게 뜨거운 거야.”
그는 허리를 돌리며 밀어붙이면서도 성기를 빨아들이는 적나라한 움직임을 고스란히 맛보았다.
“안 되겠어. 일단은 빨리 끝내고 나머지는 우리 집으로 돌아가서, 후우.”
길게 숨을 뱉는 그의 목소리 끝이 희미해지더니, 퍽. 더 강한 울림이 전신을 가르며 전해졌다. 아아. 좋아요. 미칠 것 같아요. 더 하고 싶어. 분명 머리로만 생각했던 것 같은데, 그가 쿵쿵, 몸을 부술 듯이 밀어붙이며 속삭였다.
“나도 그래. 나도 미칠 것 같아.”
“아아… 읏.”
일정한 간격과 속도로 끊임없이 몰아붙이는 태한의 품 안에서 서은이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던 서은의 안쪽이 왈칵, 태한을 짓씹으며 경련한다. 동시에 태한의 움직임이 더욱 거세졌다. 퍽퍽, 퍽, 퍽퍽. 희멀건 체액이 하얗게 늘어나는 것을 보며 얼마나 더 들쑤셨을까.
“크읏….”
태한이 낮게 신음하며 서은의 몸 위로 짓누르듯 감싸 안았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그의 목덜미까지 어느새 붉어졌다. 서은은 여전히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태한의 어둑한 눈을 보며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질척이는 몸이 끈적거려 불쾌한 기분이 치밀었다. 이러다 드레스를 더럽히면 어쩌지. 걱정도 잠시, 거울 속 모습은 이미 구제 불능이다.
“찢어졌어….”
가슴이 휑했다. 그토록 아름답던 웨딩드레스가 상의는 원래 없던 것처럼 인정사정없이 찢어진 상태였다.
“찢으면 어떡해요!”
서은이 고개를 돌려 원망스럽게 태한을 응시하자, 손수건을 꺼내 서은의 다리 사이를 닦아 주던 그가 싱긋 웃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마.”
“이제 어쩔 거야….”
시치미를 뗄 수도 없게 되어 버렸다. 태한이 바지 지퍼를 올리고 매무새를 가다듬은 뒤에야 서은을 일으켜 세웠다. 순간의 쾌락에 넘어간 이유로 순식간에 엉망진창이 된 서은이 울상인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며 투정했다.
“이제 어쩔 거예요, 정말!”
밉다는 듯 가슴을 한 대 퍽 내리치는 서은을 끌어안고 태한은 키득거리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