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성수동은 생명력이 넘쳤다. 한가한 오전을 지나, 북적이는 오후를 보내는 동안 소란한 발걸음이 정겹게 모이는 곳. 젊음이 모였다 흩어지고, 추억이 고여 남는 길목으로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불을 밝힌 작은 꽃집 앞에서 걸음을 멈춘 태한은 고개를 들어 영업을 알리는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7 o’clock.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오래된 건물 외관. 네모난 하얀 간판 속 또박또박 선명하게 디자인 된 가게 명이 노란 유성처럼 반짝거렸다.
가게는 다시 봐도 작고 단출했다. 일곱 개의 나무 계단 끝에 민트색 격자무늬 창을 낸 출입문.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유리창에는 오픈과 클로즈를 알리는 영업시간이 안내되어 있었다. 그 앞으로 다육 식물이 심긴 작은 화분과 오늘 하루 동안 사력을 다해 꽃망울을 틔웠을 꽃들이 화병에 꽂혀 있다.
가게에 대한 인상은 다시 봐도 아기자기하다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주서은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그런 곳이었다. 입구에 놓인 소소한 소품들로부터 이곳을 찾아오는 내내 품었던 기대치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한눈에 보아도 사람 손이 꽤나 많이 간 듯한 공간이었다. 매일 아침 정성으로 가꾸었을 계단은 그간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출입구로 이어지는 난간 손잡이는 사람들의 손이 가장 많이 닿는 자리가 닳아 반짝거렸다.
차근차근 공간을 눈에 담던 태한이 통유리창 너머로 시선을 옮겼다. 불을 환하게 밝힌 실내, 정돈된 공간에 앉아 골몰히 랩톱의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적고 있는 서은의 모습이 보였다.
모니터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빠르게 화면을 넘기고, 이내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 넣는 모습은 퍽 학구열에 들끓는 수험생을 떠올리게 했다.
픽, 하고 입가로 웃음이 스치는 것도 잠시 태한은 얼마 전 민정과 함께 방문했던 매장에서 우연히 서은을 마주쳤던 때를 떠올렸다.
처음 그를 보고 부드럽게 웃던 때부터 민정과 마주하고 싸늘하게 굳어 버린 모습.
주서은의 양면을 본 것 같은 날이었다.
다리는 다 나았느냐는 민정의 물음에 몹시 흔들리던 눈빛이 잊히지 않았다. 인사도 없이 도망치듯 주서은이 매장을 빠져나간 이후로 줄곧 그 얼굴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민정의 말로는 대학 시절의 동기였던 서은이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쳤고, 이후 자퇴와 동시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했다. 당시 만나던 남자와 동행했던 자리인 건 확실하나 자세한 건 모른다며, 전도유망했던 서은의 추락을 안타까워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단순한 궁금증은 흥미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얄팍하고 단순한 호기심은 또다시 이곳까지 걸음 하게 만들었다.
알고 싶었다. 영빈관 앞에서 다급하게 뛰어 들어가던 모습과 꽃다발을 만지며 희미하게 웃던 모습 말고 또 어떤 모습이 있는지. 주서은에 대한 정보를 끌어모으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타인의 시각으로 왜곡되지 않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그러려면 직접 만나 확인하는 것만큼 확실한 건 없을 테니까.
딸랑.
경쾌한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작업에 열중하던 서은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환한 미소로 맞이하던 서은은 곧 안으로 들어서는 태한을 보고 흐려졌다. 웃고 있던 눈가가 언뜻 굳은 걸 보니 갑작스러운 등장이 마냥 반갑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태한은 개의치 않고 내부를 가로질렀다. 짧게 동요하던 눈동자에 다시금 상냥한 미소가 어렸다.
“또 오셨네요?”
처음 가게를 찾았을 때 몹시 놀랐던 것과 다르게 오늘은 조금 부드러운 태도였다.
“요즘 부쩍 꽃에 관심이 많아져서.”
“지난번에 가져가신 건 어떠셨어요?”
“아아. 선물 받은 사람이 아주 만족스러워했습니다.”
집으로 곧장 돌아가 어머니에게 프리지어 꽃다발을 전해 드렸을 때, 서정주는 봄이 왔구나, 하며 활짝 웃었다.
“오늘도 선물하실 건가요?”
금세 친절한 미소를 담아낸 얼굴이 태한을 보며 묻는다. 그는 고개를 짧게 한 번 끄덕였다.
“이왕이면 향이 좋은 꽃으로.”
“꽃은 다 향기가 좋아요. 잠시만요.”
서은이 대답과 함께 빙긋 웃으며 돌아섰다.
실내에는 싱그럽고 푸릇한 꽃 내음이 진동했다. 그중에도 가장 짙은 향은 달큼하고 크리미한 꽃향기. 뽀얗고 하얀 꽃잎을 떠올리게 만드는 향 속에서 서은이 짙은 녹색의 원피스형 앞치마를 입고 사뿐사뿐 움직였다. 작은 동선 안에서 춤을 추듯 가볍게 움직일 때마다 녹색 앞치마 아래로 살구색 시폰 재질의 원피스가 나선을 그리며 가라앉았다.
살랑살랑, 바람에 꽃잎이 흔들리는 것처럼 나긋한 모습이다. 어쩐지 손바닥 안쪽을 강아지풀로 살살 긁어내는 것처럼 피부 안쪽이 간지러웠다. 시야를 밀고 들어온 낯선 여자에게 느꼈던 전율. 그것과 같은 울림이 속을 은근하게 울렸다.
“요새는 작약이 예뻐요.”
여러 종류의 꽃을 진열해 둔 쇼케이스에서 아직 봉우리가 트이지 않은 분홍색 작약 한 송이를 빼 들고 서은이 다가왔다.
“맡아 보실래요? 이게 5월의 여왕인데, 장미 말고도 꽃의 여왕이라 불리는 애예요.”
마치 친구를 소개하듯 코끝으로 슥 밀려온 꽃망울에서 싱그러운 향기가 났다. 그러나 충분히 향긋한 꽃향기에도 태한의 표정은 미동도 없었다.
마음에 안 드나?
그런 얼굴로 가만히 응시하는 서은을 태한은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대답을 기다리는 서은의 하얀 뺨이 차츰 긴장으로 굳었다.
“다른 꽃을 보여 드릴까요?”
“그걸로 주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서은은 곧장 작약과 그린 계열의 잎사귀를 꺼내 왔다. 테이블 위에 차분한 베이지 톤의 포장지를 올려 두곤 손을 놀리는 움직임이 분주했다.
“요새 날이 많이 더워졌죠? 바깥 날씨가 얼마나 변덕스러운지 금방 싸늘했다가 한여름 같았다가 종잡을 수 없어요.”
“그러게요.”
“벌써부터 이러면 올여름은 정말 덥겠어요.”
“더위 많이 탑니까?”
“여름을 좀 타요.”
슬쩍 시선을 들었다 내리까는 서은의 눈 밑으로 기다란 속눈썹이 음영을 만들어 냈다.
“음, 여름을 좀 타는 체질. 그리고 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에 서은이 빙긋 웃었다.
“저에 대해 궁금한 게 많으신가 봐요.”
“귀찮습니까?”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서은은 찌르듯 파고드는 태한의 시선을 힐긋 쳐다보곤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보통 관심이 많을수록 궁금한 것도 많은 법이죠.”
“관심이요?”
“그렇게 질색인 표정을 할 필요까지 있나.”
태한은 무심코 미간을 찌푸리며 난감하게 웃는 서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뭔가 좀 이상하잖아요.”
“뭐가?”
느긋한 시선에 웃음이 스몄다. 이 남자가 왜 이렇게 집요하나, 그런 표정으로 말을 고르는 서은의 눈썹이 작게 꿈틀거렸다. 서은은 곧 꽃가위로 줄기를 조심스럽게 잘라 내며 대꾸했다.
“꽃집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닌데, 근래에 두 번이나 방문하신 것도 그렇고. 느낌에 앞으로도 계속 오실 것 같고요.”
눈치가 아예 없는 편은 아닌 듯 서은은 기척만으로 태한의 반응을 살피면서도 조곤조곤 제가 할 말은 다 했다.
“그래서 혹시….”
“혹시?”
잠시 뜸을 들인 서은이 초록색 플로랄 폼에 가지런히 꽃을 꽂아 넣었다. 능숙하면서도 과감한 움직임. 가늘고 흰 손가락 끝에 단정하게 손질된 가지런한 손톱. 하얗고 말간, 그러면서도 깨끗한 주서은의 이미지 같은 손이었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 중이신 건가. 그래서 시장 조사 차원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해 봤어요.”
“네?”
단조롭게 되묻는 음성이 어이없단 듯 허공을 울리자, 서은이 눈동자를 들었다. 아닌가 가늠하는 눈빛은 완벽하게 잘못 짚었음을 깨닫고 입술을 잘근 물었다.
“아님 말고요.”
민망한 듯 싱긋 짧게 웃으며 다시 눈을 내리깐다. 태한은 한 박자 늦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보니 눈치가 아예 없구나.
주서은에 대한 첫 번째 호기심이자 잔상인 향기. 평소 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서은의 주변에 은은하게 떠다니는 향이 무엇일까 궁금했던 적이 있다.
꽃을 만지는 사람이란 걸 알고 난 뒤에는 바로 납득해 버렸지만. 그러나 단지 향기에 끌렸냐 하면 그건 아니었다. 향기는 그저 주서은을 기억하는 단편일 뿐이었다.
그보다는 주서은을 본 순간 가슴 한가운데 일어난 파동. 제 안의 호기심을 건드릴 때마다 이따금 진폭이 거세지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발레는 왜 그만뒀어요?”
뜻밖의 질문에 서은의 손끝이 잠시 멈췄다. 천천히 고개를 든 서은의 눈동자가 당혹스럽게 흔들렸다.
“궁금해서. 민정이하고도 잘 아는 사이 같고.”
“그냥, 이런저런 일들이 있는 거죠.”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지만, 친절한 목소리 끝이 미약하게 갈라졌다.
“민정이하고는 오래 만나셨어요?”
“예?”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듯한 얼굴로, 사람을 가늠하듯 던져 본 질문. 이번에 미묘하게 뺨이 굳어 버린 쪽은 태한이었다.
아닌가.
한숨 같은 침묵 속에서 무구한 눈동자가 태한을 살피기 시작한다. 태한은 저도 모르게 삐딱해진 눈으로 서은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설마 지금 한민정과 내 사이를 오해한 겁니까?”
“아니에요?”
허, 하고 탄식 같은 헛웃음이 짧게 스쳤다. 태한이 피곤하단 듯 손을 들어 얼굴을 쓸어내렸다.
“민정이는 내 친구 동생이에요. 그 전날 친구들과 과음을 했다고 하더군요. 난 그날 매장에 함께 가 달라는 부탁을 받고 선물을 골라 주러 간 것뿐입니다.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한민정의 연년생 오빠인데, 이번에 승진했거든.”
쉬지 않고 할 말을 끝까지 다 한 태한이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이는 서은에게 덧붙였다.
“왜 이런 걸 나한테 설명하나, 그런 얼굴인데.”
“네, 필요 이상으로 친절하셔서요. 조금 의아하긴 해요. 보기엔 되게 다른 사람 일엔 크게 관여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었거든요.”
“나에 대해 오해하는 게 싫습니다.”
반듯한 시선이 곧게 이어졌다. 류태한은 처음부터 호불호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닌 건 아니라 말하고, 잘못된 건 그 자리에서 고쳐야만 하는 분명한 성격의 사내였다. 이런 부류의 사람은 처음엔 조금 어려울 수는 있어도, 선만 잘 지키면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서은은 왜인지 모르게 아버지 주형국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이해해요. 저도 겉만 보고 판단하는 거 정말 싫어하는데, 혹시 제 오해로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해요.”
그런 뜻은 아니었음을,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내고 사과하는 서은을 보며 태한은 나지막한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눈치가 쥐뿔도 없는 여자다. 뜻이 분명한 눈빛 끝에서 서은이 눈치를 살피며 슬쩍 물었다.
“그래서 꽃을 선물할 분은 다른 분이시라는 거죠.”
“주고 싶은 사람이 있는 건 맞는데 받아 줄지는 모르겠네. 주서은 씨는 무슨 꽃 좋아해요?”
눈치도 없는 주제에 자꾸만 남의 눈치를 살펴서 뭐 한다고. 서은의 시선이 설핏 닿을 때마다 늑골 아래가 갑갑하게 팽창했다. 제게는 아무 관심도 없는 상대를 두고 속단하듯 가속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커다란 몸속 가득 뜨겁고 끈적한 어떤 것이 빽빽하게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마치 처음 회사에 입사해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굳게 마음을 먹었을 때처럼. 이성을 향해 이런 감정이 드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끝내는 목적한 바를 이룰 그 순간의 성취감이 태한을 들끓게 만들었다.
“꽃은 다 좋아해요.”
꽃을 만지는 일을 업으로 삼을 정도니 그걸 모를 리 없었다. 적당히 대답하려는 의도가 빤한 서은을 읽어 내곤 태한이 질문을 바꿨다.
“꽃이 왜 좋습니까?”
“식물은 배신을 안 해서요.”
“사람은 배신하고?”
느긋한 물음이었지만 시선은 달랐다. 이곳에 들어선 이후로 줄곧 서은을 관찰하던 눈동자가 깊어졌다.
“네.”
서은은 짧게 대답했다. 절대로 경계를 넘지 않는 서은의 반응에서 문득 알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오늘은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듯한 얼굴의 서은을 볼수록 더욱 그랬다.
어이가 없는 일이긴 했다. 고작 이런 말장난 같은 몇 마디를 나누고자 주서은의 빈틈을 공략하는 스스로가 생각해도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럼에도 의식했으면 했고, 꾸역꾸역 자리를 지키며 구질구질하게 이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을 늘리는 자신의 존재를 눈치챘으면 했다. 어느 순간 주서은의 단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제 하루처럼.
태한은 동요하지 않는 서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한 걸음 물러섰다.
깔끔한 화이트 톤의 내부는 ㄷ자 형태로 테이블이 마련된 공간과 한쪽 벽면으로는 바로크풍 화장대와 거울이, 그 앞으로 오늘 손질해 둔 듯한 싱싱한 꽃이 화병에 풍성하게 꽂혀 있었다. 아마도 개인 수업과 판매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인지, 그 아래 보드에는 플라워 수업에 대한 안내가 적혀 있었다.
“여기서 수업도 합니까?”
“네, 원데이 클래스도 진행하고요. 정규 수업도 하고 있어요. 관심 있으세요?”
“남자들도 많이 합니까?”
“그럼요. 배움에는 성별이 필요 없으니까요.”
“꽃에 대해선 문외한인데. 알다시피.”
잠시 조팝나무에 대해 설명하는 순간을 떠올렸는지, 서은이 입술을 깨물고 웃었다.
“꽃이야 워낙에 종류가 많고 이름이 어려운 꽃들도 많아서 다 알기는 어려워요. 그래도 배우다 보면 차츰 익숙해지실 거예요.”
“그래도 그건 너무하다고 생각했죠.”
좆밥.
나직한 목소리를 부인하지 않는다. 부드럽게 웃음이 어린 시선이 태한에게 닿았다. 그제야 태한은 편안하게 웃었다.
“모르니까 배우는 건데요.”
“일정은 어떻게 돼요?”
“주중에는 월, 목에 두 타임씩. 주말은 토요일에만 진행하고 있어요. 일요일은 쉬는 날이라서요. 관심 있으시면 스케줄 잡아 드릴까요? 아, 영업하는 건 아니에요.”
조곤조곤 설명하는 목소리가 나긋하다.
“왜요. 듣기 좋은데.”
또다시 멈칫, 정지했던 시선이 난감하게 흐려졌다.
“집중해요. 손 다칠라.”
멍하니 태한을 바라보고 있던 서은이 황당함을 지우고 또박또박 말했다.
“수업은, 관심 있으시면 연락 주세요.”
꽃다발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베이지색 포장지에 어울리는 연한 하늘색 리본을 매듭짓는 손길이 빠르고 정교했다. 서은이 시선을 내려 매듭짓는 사이 갸름한 턱 아래로 머리카락 몇 가닥이 흘러내렸다. 새끼손가락으로 살짝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긴 서은은 이쪽에는 도통 관심이 없었다.
꽃이 그렇게나 좋은 모양이다. 곱창 밴드로 단정히 묶은 머리카락 아래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를 보던 태한은 문득 속에서 치솟는 어떤 뜨거움에 고개를 돌렸다.
자꾸만 마음이 간지러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런 사실 따윈 까마득하게 모르는 여자가 점점 눈에 들었다. 닿지 않는 시선 끝에서 태한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미동했다.
“다 됐습니다.”
경종 같은 음성과 함께 서은이 사뿐사뿐 다가와 태한의 품에 꽃을 안겨 주었다.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퍼 올린 것 같은 분홍색 작약 사이에 초록색 열매가 다닥다닥 맺힌 하이베리쿰과 연한 핑크색 장미 곁을 하트 모양의 푸른 웹스테리아나 이파리가 조화롭게 감싸고 있었다.
“예쁘네요.”
태한은 꽃다발을 품에 받아 들고 서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말했다.
“마음에 들어요, 아주.”
시선 끝에서 주서은의 눈동자가 아주 잠시 떨렸다. 이곳에서 본 이후로 제일 마음에 드는 반응이었다.
“계산은 카드로 하시겠어요?”
“그러죠.”
태한의 카드를 받아 들고 서은이 돌아섰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조잡한 기계 소리 사이로 요동치는 어떤 것. 서은은 영수증과 함께 낱개로 포장된 노란 장미 한 송이를 뽑아 함께 건넸다.
“이건 서비스예요. 또 오시라구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업이라는 듯, 서은은 보기 좋게 활짝 웃었다.
“그래요.”
태한의 입매가 휘어졌다. 그는 카운터 옆에 놓인 서은의 명함 하나를 집어 들고 가게를 나섰다.
***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상가 건물 2층 계단을 올라,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자 발레 교습소의 정돈된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주영아. 나 왔어.”
바스락거리며 들어서는 서은의 기척에 안쪽 복도 끝에서 주영이 청소기를 밀며 나왔다.
“금방 끝나. 들어와서 기다리고 있어.”
친구 주영이 운영하는 발레 교습소는 동네 아이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규모는 그리 크지 않고, 소소하게 운영된다.
저녁이 되자 원장실을 제외한 모든 곳의 불이 꺼졌다. 하필이면 오늘 떡볶이와 순대가 당긴다며 얼굴 좀 볼까, 하는 주영의 말에 얼마 전 아버지 선물로 고른 넥타이를 전하기 위해 본가에 들렀던 서은이 곧장 날아왔다. 배를 채우고 맥주까지 한 캔 홀짝이며 두 사람은 청첩장을 함께 접었다.
“벌써 청첩장이 나오다니. 너 상견례 했다고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남의 일은 원래 금방이야.”
“양이 꽤 많다?”
“오빠네 하객이 많아서.”
3주 후면 유부녀가 되는 주영은 스무 살에 만난 교회 오빠와 7년의 연애 끝에 결혼한다.
“결혼 준비는 어때? 정신없지?”
“그래도 굵직한 건 다 끝나서 바쁜 건 뭐 거의 정리됐지. 정신없어 죽는 줄 알았는데 이젠 무념무상이야.”
“신혼집에 가구는 다 들였어?”
“그것도 계속 들어가고 있고. 뭐, 신행 갔다 오면 다 차 있지 않을까?”
남의 일을 말하듯 대충 얼버무린 주영이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너는? 아버지는 요새 좀 괜찮으셔?”
“그냥저냥.”
무슨 날도 아닌데 서은에게 선물을 받은 주형국은 오랜만에 흐뭇한 얼굴로 오랫동안 행복해했다.
“그래. 사회생활이 다 그래. 사람 갈아 가면서 인격 말살되면서 노동하는 거, 그거 얼마나 힘든 일이야?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어도 홀로 감내해야 하는 게 얼마나 많아. 살아 보니 그렇잖아. 나도 가끔은 확 이거 다 정리해 버릴까 싶은데.”
“너도?”
“그럼. 눈물이라도 한바탕 쏟아 내고 비워 내면 후련한데 어른이 되니까 또 쉽지 않아. 눈물도 자리를 가려야 하잖냐.”
그래서 힘들면 그냥 아버지 뜻대로 하세요, 말씀드렸더니 묵묵부답이었다. 그게 더 마음에 걸렸다. 서은은 반듯하게 접은 청첩장을 봉투에 밀어 넣으며 꼬리를 무는 기억을 복기했다.
올 초, 서은의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밤이었다. 치매를 앓다 맞이한 외조부의 영면 끝에 아버지 주형국은 처음으로 목 놓아 울었다.
낳아 준 친부 얼굴도 모르고 자라 부정이란 걸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아버지는 서은의 외조부이자, 희숙의 친정아버지를 제 부모처럼 섬겼다. 평생을 아버지라 여겼던 이를 떠나보내고, 장례식장에서 한껏 취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모습을 보고 난 후에는 한동안 마음이 안 좋았다.
아마도 무언가, 아버지의 삶의 축을 바꿔 놓은 게 있다면 올 초에 외조부를 잃은 상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근데 제일 예뻐하는 첫정인 내가 아직도 이렇게 철부지 같아서.”
서은은 자조와도 같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창립 기념 행사 이후 자신의 존재가 화제가 되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니 아버지 주형국에게도 분명 어떤 부담감으로 작용했을 것이었다. 그럼에도 식탁에 나란히 앉아 희숙이 전하는 말에 마음이 많이 이상했다.
“그래도 네 아버지는 거기서 네가 제일 예뻤다더라.”
팔불출이 따로 없다며 흡족하게 웃는 희숙의 곁에서 주형국은 뚝뚝하게 중얼거렸다.
“뭘 해도 내 자식이 제일 예쁘지.”
받는 게 전부인 자리가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젠 받는 게 당연했던 아홉 살도, 열아홉도 아닌 스물아홉이었다. 나이가 서른이 가까워지면 생각이 많아진다던데. 겨우 앞자리 숫자 하나가 바뀌는 일일 뿐인데도, 이제 반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괜스레 마음이 조급해졌다.
서두른다고 인생이 더 잘 살아지는 건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아직 뚜렷한 목적이 없는 일을 무엇이든 이뤄야겠다는 생각만이 앞섰다.
이런 게 혼란이겠지만.
넘어서려면, 이겨 내려면 우선은 겪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서은은 차곡차곡 쌓아 올린 청첩장을 한 손에 쥐고 탁탁 모서리를 맞춰 정리했다.
“이참에 부모님 모시고 해인이랑 여행이나 다녀와야겠어.”
“여행 좋지. 나도 이번 주에 엄마랑 둘이 제주도 가. 승원이가 제주도 맛집 엄청 알려 주더라.”
“어머니는 좀 어떠셔? 너 결혼 앞두고 어머니가 많이 섭섭해하시겠다. 너 엄마하곤 유난히 사이좋았잖아.”
“안 그래도 요새 하루걸러 하루 눈물 바람인가 봐. 언제는 빨리 치워 버렸으면 좋겠다더니, 요새는 좀 애틋하다?”
겪어 보진 않았지만 어쩐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친구인 자신만 해도 주영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기쁨 이상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일생에서 가장 축복받는 시간을 준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저 좋은 것만, 좋은 일만, 좋은 길만 걷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된 진심이었다.
“나도 올해 안으로 누구라도 데려오래.”
“데려갈 누가 있긴 하고?”
“음.”
평소라면 없다고 딱 잘라 말했을 서은이 뜸을 들이자, 주영의 눈이 휘둥그레 벌어졌다.
“뭐야, 너 남자 생겼어?”
“생긴 건 아니고, 그냥 좀 신경이 쓰이는 사람이….”
“뭐야, 누군데! 빨리 말해!”
주영이 말을 다 잘라먹고 재촉했다. 하던 것을 멈추고 두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주영을 보니, 서은은 문득 웃음이 터졌다.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당연한 거 아냐? 네가 남자 얘기하는 거 얼마 만인 줄 알아? 토픽감이야.”
주영이 연애를 시작하고 끝을 내며 몇 번의 사랑을 경험하는 동안, 20대의 주서은은 고목처럼 말라붙었다. 마치 스스로를 유폐하고 그런 감정을 제 손으로 도려내 버린 사람처럼, 세상에 발을 내디디고 나가는 대신 감정만큼은 문을 꼭 닫아 두었다.
모든 사람이 그 애 같지는 않아.
연애가 꼭 그렇지는 않아.
그러니 디뎌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에 발을 들일 때처럼 용기를 내라고. 서은에게만큼은 연애를 권유도 하고, 회유도 하며 종용도 했지만 서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망부석 같았다.
그렇게 돌처럼 부서지고 침식하는 것만이 숙명인 듯, 결국은 모래알처럼 바스스, 바스스 발밑에 깔려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던 서은에게 관심 있는 상대가 생겼다니. 지금은 청첩장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주영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이야기를 재촉했다.
“그러니까 어떤 사람이냐면….”
류태한을 떠올리는 서은의 머릿속에서 키가 크고, 덩치도 크고, 손이 크고, 그래서 그림자도 커다란 남자가 또렷하게 떠올렸다.
너르게 각이 진 단단한 어깨 아래로 균형 잡힌 체격과 긴 다리. 건장하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그 몸을 근사하게 휘감고 있는 스리피스 슈트. 새하얀 셔츠에 넥타이는 다소 화려한 색을 선호하고, 화려함을 누르듯 심플한 넥타이핀과 커프스단추를 꼼꼼하게 꿰어 낸 복식. 그 소매 끝으로 뻗어 나온 손목에는 파란 힘줄이 굵직하게 솟아 있다.
그렇게 듣기 좋은 목소리로 제가 왔음을 알리며 등장하면, 서은의 가슴으로 따뜻한 물결이 일었다.
항상 눈을 바라보는 사람.
반듯한 이마에 반듯한 콧날, 반듯한 입술과 반듯한 눈을 가진 남자의 시선은 때론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빛을 담곤 한다. 어떨 때는 조금 짓궂고, 어떨 때는 조금 얄밉게. 하지만 선이 분명한 붉은빛의 입술을 열어 말하는 모든 것들은 직관적인 시선만큼이나 솔직했다.
제 생각을 구태여 감추지도, 너무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하고 싶은 말은 반드시 하고 마는 사람.
그래서 간혹 등골이 뜨거워지도록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는.
슬쩍 시선을 들었다 내리깔고, 힐긋 스치듯 눈길을 건넬 때에도 그와 눈이 마주치지 않은 적은 없었다. 가게에 들어서면 류태한은 항상 서은을 보고 있었다. 서은이 무슨 말을 할 때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에도.
그래서 가슴이 자꾸만 뛴다고.
얼마 전 가게로 찾아온 류태한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모든 순간이 선명하게 펼쳐졌다.
“가게 이름은 왜 세븐 어 클락입니까?”
“제가 좋아하는 시간이에요. 저녁 7시 즈음, 여기서 보는 하늘이 되게 예쁘거든요. 오전 7시는 가게 문을 여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그런 대화를 한 다음 날부터였다.
류태한은 매일 저녁 7시가 되면 문을 열고 들어와 꽃을 한 다발 사 가지고 돌아갔다.
일주일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래서인가. 저도 모르게 오늘 저녁에도 그가 오길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어제까지 일주일 내내 꽃을 사러 왔거든?”
“대박. 야, 너 좋아하나 봐.”
“그런 건 아냐. 만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지만, 꽃을 주고 싶은 사람은 있다고 했거든. 선물하려고 들르는 거야.”
“그게 뭐야?”
갑자기 김이 샌 얼굴로 주영이 두 눈을 번득거렸다.
“그래서 잘 모르겠어.”
서은은 다시금 태한의 기억으로 가득한 머릿속을 뒤적였다.
꽃집으로의 두 번째 방문 날. 뭔가 이상하다는 낌새를 알아차린 날이었다. 류태한은 첫 만남부터 저돌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매사에 정중했고, 그 이미지가 아주 견고한 남자였다. 하지만 그날은 어째서인지 아주 조금 공격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민정에게 어디까지 들었을까.
생각에 잠긴 채 꽃을 만지는 데 신경을 쏟고 있을 때 뺨 위로 뜨거운 시선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눈을 보지 않아도 어떤 눈빛인지 알 것 같았다. 마주치면 잡아먹힐 것 같은, 전해지는 공기만으로도 그랬다.
서은은 내내 시선을 내리깔고 그의 눈길을 피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쩐지 그의 눈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가 가게에 들어서는 순간에도 아랫배부터 내장까지 단단하게 굳는 느낌이었다.
긴장감.
류태한은 한 공간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사람을 긴장하게 만드는 존재였다. 바스락거리는 포장지 소리와 날숨과 들숨이 어지럽게 교차하는 소리. 그 침묵 속에서 서은의 손이 삐끗, 미끄러진 찰나 귓가로 그의 음성이 쏟아져 들어왔다.
“집중해요. 손 다칠라.”
내내 아무것도 집중할 수 없게 만든 장본인이면서 그런 소릴 태연히 하는 남자가 야속했다.
그와 함께 있는 동안 의식하지 않으려 애를 썼다. 그럼에도 내내 그가 의식되었다. 꽃을 만져 온 이래로 그렇게 긴장을 해 본 건 가게 문을 열고 첫 번째 꽃다발을 만들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혹시 바람둥이 아니야? 진한이 불러서 물어보자.”
서은은 당장 휴대 전화를 집어 드는 주영의 손을 붙잡아 만류했다.
“왜. 너 지금 보니까 완전 끌리는데.”
그건 사실이었다. 알지도 못하는데 몇 번 봤다는 이유로, 매일 같은 시간 짧게나마 보는 게 전부인데도. 그때 나누는 몇 마디 안 되는 대화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이끌기도 했고,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런 호감쯤이야 무수히 받았을 사람인데.
“솔직히 끌려. 알지도 못하는데 그럴 정도로 매력 있는 사람이라서. 근데.”
서은이 간만의 기대감으로 들썩이는 주영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 사람은 아냐.”
“왜?”
“보면 알아.”
류태한은 사주의 아들이었다. 그것도 사장인 아버지의 라인이다. 그러니 관심이 생겼다 한들 우선 선을 긋고 볼 수밖에 없고, 그 관심은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어차피 사는 세계가 다른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는 그의 형과 그의 집안사람이 그렇듯, 철저하게 계산된 혼맥으로 맺어질 누군가가 있을 테니까.
그러니 이건 쓸데없는 호기심이었다.
그럼에도 류태한이 뇌리를 한번 긋고 지나면 잔상은 아주 오랫동안 남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순식간에 날카로워지던 눈매. 매섭게 굳은 눈매 속 눈빛이 얼마나 또렷했나. 화려하다 느낄 정도로 선명한 인상은 눈빛 하나만 달라져도 분위기가 확확 바뀌었다. 그래서 평소보다 말수가 줄어들 때도, 평소보다 더 횡설수설할 때도 많았다. 실수 같은 그 모든 광경을 찬찬히 눈에 담는 그의 시선이 두렵도록 끌렸다.
“근데 진한이 사촌들 되게 잘생기지 않았어? 예전 내 기억으론 그런데.”
“되게 근사해.”
근사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어떤 형용사를 갖다 붙여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근사하고 귀티가 나는 사람이었다.
“기품이 있지. 진한이도 그렇잖아.”
“진한이는 좀 반듯하게 잘 자란 도련님 상이고. 걔 사촌들은 좀 더…. 알지?”
주영이 손을 들어 짐승 같은 외모를 묘사하며 흡족하게 웃었다.
“그래서 연락은 해?”
“아니.”
“제길.”
주영이 아쉽다는 듯 제 허벅지를 손으로 내리쳤다. 눈앞에서 로또를 놓쳤어도 저런 표정을 짓진 않을 것 같았다.
“네가 왜 아쉬워해?”
“당연히 아쉽지. 주서은. 너 이렇게 남자한테 설렌 게 얼마 만이야? 야, 누구 만나는 사람 있다고 하면 내가 조용히 처리해 줄게. 그러니까 연락해 봐.”
실없는 소리에 서은이 헛웃음을 터트리자 주영이 진심이라며 진지한 얼굴로 쏘아붙였다.
“나라면 지금 당장 전화해서 술 한잔하실래요, 하고 불러내서 라면 먹고 가실래요? 하고 안 보내 줄 거야.”
“너 그렇게 재진 오빠 꼬셨어?”
“야, 주서은.”
정색한 주영이 아무도 없는 원장실을 힐긋거리더니 서은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건 영업 비밀이라고.
***
봄의 푸르름이 세상에 만개했다. 공기 중에 초록빛이 떠다니는 듯한 화창하고 싱그러운 날, 주영은 5월의 신부가 되었다. 초여름의 기세가 스미는 5월 마지막 토요일. 한낮의 영빈관이 새하얀 은방울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서은아, 나 어떡해. 벌써 울 것 같아.”
신부 대기실에서 고운 드레스를 차려입고 예쁘게 신부 화장을 마친 주영이 보기완 다르게 단단히 긴장해 있었다. 하얗게 질리다 못해 딱딱한 미소에 서은이 난감해질 정도로. 손을 잡고 달달 떨며 심호흡을 하는 주영에게 서은이 나긋하게 속삭였다.
“벌써 울면 안 돼, 주영아.”
“몰라. 그냥 갑자기 막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어떡하지? 나 지금 엄마, 윽, 그 단어만 생각해도 눈물 터질 것 같아. 윽.”
주영이 입술을 꽉 깨물어 차오르는 눈물을 참았다. 주영은 유난히 엄마와 사이가 돈독했다. 결혼이 다가올수록 매일 울다 지쳐 잠이 든다던 주영의 말에 그렇게 애틋한 누군가가 있는 건 축복이라고, 네 가정을 이루면 더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존재가 늘어날 거라 도닥였던 지난날이었다.
“나 결혼하기 싫어.”
“너 곧 있으면 식장에 들어가야 돼.”
“지금이라도 뛰쳐나갈까?”
“그러라고 내가 새벽부터 부케 만든 거 아니거든?”
주영의 결혼식에는 반드시 세상에서 제일 예쁜 부케를 선물해 주겠다며, 어제 하루는 온종일 주영의 부케를 만들 준비로 자정까지 가게에 있었다. 몇 시간 잠도 자지 못한 채로 새벽에 가게 문을 열고 나와 주영에게 늘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는 마음을 은방울꽃 부케에 정성스레 꾹꾹 눌러 담았다.
“나 시집가도 맨날 만나 줄 거지?”
“당연하지. 나 너 애기 낳으면 맨날 봐 주러 갈 건데?”
달달 떠는 주영의 손을 잡고 서은은 부드럽게 속삭여 달래었다.
“이따 눈물 날 것 같을 땐 날 봐. 내가 웃겨 줄게.”
서은이 입가에 손을 갖다 대고 활짝 웃었다.
가장 친한 친구의 결혼식.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를 보내는 게 섭섭하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부터는 주영이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하길 바랐다.
승원과 진한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신부 대기실을 나선 건 예식이 시작되기 20분 전이었다. 식장은 양가의 하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지난달 해신 그룹의 창립 기념 행사가 있었던 영빈관. 결혼식만큼은 신부의 꿈이라는 이곳 해신 호텔에서 하고 말겠다는 주영의 포부가 현실이 된 곳이었다.
문득 이곳에서 있었던 순간이 떠올라 서은은 걸음을 멈추었다.
“류태한입니다.”
사람들 틈에서 성큼성큼 다가와 손을 내밀던 그 순간,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서은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겨우 일주일을 매일 봤다고 그런 착각이 들 리가.
아무리 여기가 해신 그룹 소유의 호텔이라고 한들, 그를 그렇게 쉽게 만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참.
생각을 지우고 고개를 들어 감회가 새로운 장소를 다시금 눈에 담을 때였다. 소란하게 움직이는 하객 사이에서 누군가 서은을 향해 다가왔다.
“주서은?”
서은의 이름을 입에 담은 남자에게 시선이 닿았다. 말끔하게 슈트를 차려입고 여유롭게 웃고 있는 남자. 남자를 본 순간 서은의 심장이 거칠게 뛰었다.
한영웅이었다.
순간 머릿속으로 그날의 사고가 선명하게 펼쳐졌다. 눈앞에서 아무렇지 않게 웃고 있는 남자는 운전대를 잡았던 그때의 그 얼굴 그대로였다.
사고가 난 직후 연기가 피어오르는 차 안에서, 정신을 차린 병원에서, 더 이상 다리를 움직일 수 없게 됐을 때 서은에게 무릎 꿇고 울며 용서를 빌던.
“내가 평생 책임질게. 내가 평생 네 곁에서 네 손발이 돼서 책임질 거야.”
하지만 진심은 1년도 채 가지 않았다. 어린 날의 사랑은 의리가 없었다. 다 자라지 못한 책임감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영웅은 반년 뒤에 서은의 곁을 떠났다. 점점 말수가 줄고 차츰 병원을 오는 날이 뜸해질 즈음 이별을 예감했다.
무릎이 골절되고, 엄지발가락이 으스러진 서은이 다시는 토슈즈에 발을 넣을 수 없게 되었음에도, 그래도 원망하진 않으려 했다. 그래도 곁을 지키며 걱정하는 가족이 있으니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괜찮다 다독이며 지난날은, 극도의 고통을 참으며 재활을 견디던 날은, 타인에게는 ‘지쳤다’는 한마디에 함축되는 성가신 시간이었다.
내가 짐이었구나. 너에게 짐이 되었구나. 사랑은 견디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짐이 되는구나.
진정한 좌절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마치 모든 게 서은의 잘못인 것처럼 느껴졌다. 불의의 사고를 당한 것도, 일어나 뛰지 못하는 것도, 이전처럼 함께 무대를 누비며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을 때까지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도. 마음대로 발끝을 꼼지락거리는 것도, 중심을 잡고 서는 것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 모든 것들이 제 탓인 것 같았다.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발목을 잡는다면, 다만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괴롭다면 놓아주겠다.
잡고 있던 끈을 놓았다. 그 뒤로 8년이었다.
눈앞을 가로막은 영웅은 그새 단단해져 있었다. 어릴 적 곱상했던 선은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영웅이 곧 결혼해.”
우연히 마주쳤던 한민정의 입에서 들었던 뜻밖의 소식과 함께 지금 얼마나 잘 살고 있는지, 증명하듯 웃고 있는 얼굴이 겹쳤다.
억지로라도 웃어야 하는데 입가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속에서 서은은 소매 아래로 드러난 팔을 쓸어내렸다. 정수리에서부터 뾰족하게 가시가 솟은 것처럼 뒤통수가 싸하게 지끈거림과 동시에 한기가 들었다.
“어떻게 지내?”
죽지 못해 살았던 시절을 지나서, 이제는 살고 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고 또 침착한 영웅을 보며 서은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잘 지내. 넌? 결혼한다는 소식은 들었어.”
“아, 들었구나. 안 그래도 민정이가 네 소식 알려 주더라. 꽃가게 하고 있다며.”
“응.”
역시 소문은 빠르구나. 또 어떤 이상한 말들이 오갔을까.
“넌 아직이야?”
“일하느라 바빠서.”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스스로 얼마나 형편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지 알 것 같았다. 쇼윈도에 비쳤던 그때의 모습처럼 아마 지금도 그렇겠지. 애써 웃어 보려 입꼬리를 당겼지만 웃음이 나지 않았다.
이제껏 한 번도 마주치는 일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이제껏 한 번도 이 좁은 서울을 살면서 스친 적도 없기에 아무렇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한영웅을 다시 마주하는 건 뜻밖에도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단지 잊고 있었구나. 괴로워서, 지운 거였구나.
그럼에도 의례적인 축하를 건네고, 어른스럽게 웃었다. 저도 모르게 두 다리에 힘껏 힘을 주고 선 줄도 모르고.
“안 그래도 가끔, 서은이 네 생각이 났거든. 많이 궁금했는데,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잘 사는 것 같아 다행이고.”
“그럼. 잘 살지.”
서은은 자조와도 같은 웃음을 씁쓸하게 흘려냈다. 이제 와 누구의 잘못인지 시비를 가리는 건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삭제해버린 원망을 다시 되새기는 일도 마찬가지다. 서은은 표정을 정돈하고 인사했다.
“이만 가 볼게.”
“다음에 밥이나 한 끼 해.”
“너 결혼한다며.”
“그러니까.”
“그 시간에 네 예비신부나 신경 쓰는 게 어때?”
끝내 참지 못하고 한 마디를 쏘아붙였다. 뭐 저딴 게 다 있어. 가슴 속에서 화르르 일어난 감정을 억누르며, 오늘은 주영의 결혼식이니 끝까지 좋은 일만 생각하자 생각했다.
“서은아.”
그러나 발뒤꿈치로 따라붙는 음성이 확고하다.
“내가 한 번 가게로 갈게.”
아니, 오지 마.
멀쩡한 내 인생에 다시 들어오지 마.
“미안하지만 부케 예약은 겨울 예식까지 다 차서.”
서은은 마지막으로 낼 수 있는 가장 온화한 미소를 보이고 돌아섰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영웅의 허탈한 웃음소리쯤은 무시했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다.”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날이었다. 우두커니 남겨져 주먹을 쥐고 서 있던 서은이 꽉 그러쥔 손에서 힘을 뺐다. 예식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주영을 축하하러 가야 할 시간이었다. 오늘은 그저 주영의 행복만을, 주영에게 축복만을 빌어 줄 날이었다.
예식은 예정대로 행복한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무슨 정신으로 주영의 결혼식을 끝까지 지키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영이 폐백을 올리고 허니문 카를 타고 호텔을 나서는 모습을 끝으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서은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사람들이 거의 지나다니지 않는 산책로였다. 야트막한 언덕 위 팔각정을 지나 해신 호텔이 정면으로 보이는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얼마나 시간을 흘려보냈는지도 몰랐다.
“하아.”
서은은 주영에게서 받은 부케를 내려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식장을 나오고 나서는 기분이 최악이었다. 아니, 한영웅을 만나고 난 뒤로 줄곧 그랬다.
제일 친한 친구의 결혼식에서 전 연인을 만나는 건 생각도 못 한 일이었다. 그것도 최악으로 끝을 맺은 사람을. 기분이 다시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불어오는 바람에, 발등으로 밀려오는 햇살에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소용없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은방울꽃. 제 손으로 곱게 만든 부케를 멍하니 보고 있어도 그랬다. 이제는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한숨을 푹 내쉬었을 때 등 뒤에서 인기척이 파고들었다.
저벅, 저벅. 가까워지는 걸음이 어느 순간 멎었음에도 서은은 여전히 허공에 넋을 놓고 있었다.
산책로이니 사람이 다니는 건 당연한 일이고, 이제껏 스쳐 간 이들 중 하나처럼 발길이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때 인기척이 더 가까워지더니 시야로 새하얀 운동화 앞코가 밀려들었다.
“맞네. 주서은 씨.”
서은은 고개를 들었다. 뜻밖의 얼굴이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태한을 보자 갑작스럽게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서은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는 그럴 필요가 없다는 듯 손짓으로 만류하며 이야기를 이었다.
“운동하고 나오는 길입니다. 여기 피트니스 클럽에 다니거든요.”
그가 해신 호텔 쪽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해신 호텔이 소유한 피트니스 클럽은 회원권을 가진 고객만 입장할 수 있는 곳이었다. 국가 대표급 운동선수를 키워 낸 국내 트레이너들이 개인을 관리하는 시스템으로 고객보다 트레이너의 수가 더 많은 곳이기도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류태한의 복장이 매일 보던 평소의 슈트 차림에 비해 몹시 간편하다. 건장한 체격을 감추지 못하는 검은색 무지 티에 검은 치노 바지, 발목이 드러난 하얀색 슬립온은 그가 편안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는 걸 상기시켰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예전 생각이 나서요. 유관 부서에서 잠깐 근무할 때 간혹 오던 곳이거든요. 근데 왠지 주서은 씨 같은 사람이 죽치고 앉아 있길래.”
“…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그가 아버지의 계열사로 오기 전 여러 부서를 거치는 과정에 해신 호텔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언뜻 들었던 게 생각났다.
“주서은 씨는 결혼식?”
잠시 혼란한 머리를 정돈하는 사이 그의 시선이 서은의 곁에 가지런히 놓인 부케로 닿았다.
“제일 친한 친구가 오늘 결혼했어요. 영빈관에서.”
“음.”
팔짱을 낀 채로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그의 얼굴이 여유로웠다.
“근데 왜 혼자서 이러고 있어요?”
“바람 쐬는 중이라서요.”
“음, 그렇구나.”
의미 없이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 시선을 주는 표정은 그냥 이대로 돌아가진 않을 기세다. 눈이 마주치자 서은은 피식 헛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며 태한이 부드럽게 입술을 기울여 따라 웃었다.
연한 핑크색 원피스 차림에 옅게 화장을 한 주서은은 그녀가 내려놓은 은방울꽃 부케와 조화로웠다.
평소 곱창 밴드로 질끈 묶던 머리카락은 어깨 위로 세팅된 채 구불거리며 물결치고, 스커트 위로 공손히 포갠 손가락이 가지런하다. 반지 하나 끼지 않은 단정한 손끝에 펄감이 도는 진주 빛 매니큐어가 발려 있고, 그것과 같은 색의 진주 귀걸이가 귓불에 물려 있었다.
평소 보던 모습보다 단아하고 페미닌한 차림에 그의 눈길이 오래 닿았다. 피부가 하얘서 그런가, 연한 파스텔 계열의 색에도 얼굴이 화사하게 돋보였다. 원래 저렇게 예뻤나 싶기도 하고, 마음에 바람이 부는 것 같기도 하고.
“예쁘네.”
혼잣말처럼 흘려보낸 음성에 서은이 멈칫하고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왜인지 허망하게 비어 있던 눈동자가 천천히 동요한다.
“꽃은 항상 예쁘죠.”
“그러게요. 볼 때마다 예뻐.”
주어를 빼고 대답하는 태한의 시선이 서은에게 깊게 닿았다. 눈동자를 헤집는 것 같은 시선이 계속되었다. 엮인 시선 속으로 파문 같은 감정이 번지기 시작했다. 가슴이 어지럽게 뛰었다. 그 사실을 눈치챈 듯한 얼굴로, 태한이 입가에 미소를 걸고 쐐기를 박았다.
“오늘은 유난히 더.”
주서은 네가.
묻지 않아도 그렇게 말하는 시선 끝에 서은이 고개를 돌렸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울리고 있었다.
늘 장난처럼 툭툭 뱉어 내는 말들이 불시에 서은을 흔들어 놓곤 했지만, 오늘은 유난히도 장난이 짓궂다. 아무래도 적당히 넘어갈 생각은 없는지, 말을 받는 음성 끝에 웃음이 섞였다.
“근데 얼굴이 왜 그래요?”
“제 얼굴이 왜요?”
“안 좋은 일이 있었나 싶어서. 앉아도 되죠?”
그가 서은의 곁으로 슥 다가앉으며 물었다. 이미 앉아 놓고, 묻는 얼굴이 능글거린다. 아무렴 어떠냐는 듯 금세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태한의 존재에 서은은 조금 전까지 영웅을 만나 난감했던 기억을 곱씹으며 암울했던 기분을 잊어버렸다.
“친구가 결혼하는 게 퍽 섭섭했나 보죠.”
“그것도 그렇고.”
예식이 끝나고 해가 저물어 가는 동안 발길을 뗄 수 없게 만든 건 다른 이유라는 걸, 굳이 입 밖에 내고 싶진 않았다. 울렁이는 감정을 묵인하며 서은은 다만 불어오는 바람 속에서 그와 나란히 전방에 솟은 호텔을 바라보았다.
“잘 살겠죠?”
“잘 살아야죠.”
“그렇겠죠?”
“그럴 겁니다.”
묘하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오가는 대화는 모두 오늘 결혼식을 올린 주영의 축복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서은에게, 그리고 또 앞으로를 살아야 하는 서은에게,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면서 전한 위로였다.
따뜻한 품에 끌어안고 등을 쓸어 주는 것 같은 포근한 음성이었다. 그래서일까. 조금 더 같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칠 때였다.
“시간 괜찮으면 차 한잔할래요?”
태한이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넌지시 말을 건넸다.
“술은 어때요?”
담담히도 솔깃한 제안을 하는 서은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태한이 슬며시 입술을 기울였다.
“그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