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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꿈(6) (15/18)

“설마 본 후가 너무 입맞춤을 많이 해 부어서 꼼짝도 못 하시는 겁니까?”

여유가 밴 말투에 진예는 울컥했다. 지기 싫어하는 성미이니 당연하지만, 그에게 놀림받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런’ 방면으로 따지면 무건이 한 수 위였기에 억울한 측면도 있었다.

“말 많기는.”

짧게 평한 진예가 무건의 턱을 쓰다듬다가 똑똑히 들으라는 듯 귓불을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

“내가 너 같은 줄 아느냐.”

“제가 어떤 놈이길래요?”

“처음 보고 얼굴에 홀린 건 네놈인 주제에. 아니 그러냐, 응?”

진예는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러니까 자신의 명인자가 황궁의 빈청에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곳으로 향했을 때를 떠올렸다.

내관들에게 둘러싸여 억지로 예를 갖춘 뒤 갑자기 고개를 드는 바람에 눈이 마주치자마자 무건은 그야말로 넋이 나간 표정을 지었었다.

누가 봐도 첫눈에 반한 사내의 눈이었다. 심지어는 진예조차 눈치챌 수 있을 만큼 아주 선명한 감정이었다.

당시에 아주 발칙하고 가소롭다고 생각했었다. 아니, 사실은 당시뿐만이 아니라 지금도.

그런데 무건이 돌연, 얼굴에서 장난기를 거두더니 낮은 목소리로 호소해 왔다.

“……연모합니다.”

갑작스럽게 분위기가 전환되었다.

그렇지만 무건은 저 말을 할 때는 늘 진심이었기에, 진예는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그러니까, 무건은 단 한 마디로 무마한 것이었다. 시작은 그렇게 가벼웠을지 몰라도 지금은 결코 아니라고.

진예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건은 첫눈에 반해 버린 그때의 상황을 과오 내지는 오점이라고 여기는 것 아닌지.

돌이켜 보면 무건은 첫 만남 때 하늘의 뜻이니 뭐니 멋대로 지껄이며 각인해 달라고 했었지만, 돌아온 후엔 각인을 막무가내로 조르진 않았다.

만약 무건이 그랬으면 혐오스러워하며 어떻게든 제거하려 했을 텐데, 그의 요구 사항은 단지 진예에게 가까이 올 기회를 달라는 것이었다. 증명을 하고 싶다고.

이제야 생각해 보건대, 무건이 자신의 앞에서 진정 증명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스스로의 쓸모였을까.

아니면 제가 품은 연정의 진정성이었을까.

진예는 그간 당연히 전자라고 간주했었지만, 이제 와 곰곰이 짚어 보니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아 보였다.

진예는 제가 가득 비치는 무건의 눈을 바라보며 왜인지 가슴 한편이 자르르 울림을 느꼈다.

요즘은 시시때때로 이랬다.

무건은 수다스럽거나 엉덩이가 가벼운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무게를 싣는 쪽이라 해야 할까.

그렇다 보니 당시엔 굉장히 단편적이고 직설적으로 다가왔던 말과 행동이 후에 가 돌이켜 보면 이상하게도 다른 의미로 와닿을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진예는.

그녀는…….

“부디 제 앞에서만 여인이 되어 주십시오. 그리고.”

지금처럼 자신을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옥을 다루는 듯 조심스럽게 쓰다듬어 주는 그의 다정함이.

“그리고……?”

아니, 그렇게 다정한 그가.

“숨이 멎을 때까지 늘, 만인의 황제로서 살아가 주셨으면 합니다.”

좋아서.

“이 연무건, 폐하께서 가시는 길에 깔린 비단이 되겠습니다.”

비록 그의 마음에는 아직도 한참 못 미치겠지만, 점점 더 연무건이라는 사내가 좋아져서.

태어나 처음으로, 사람이 행복해도 가슴이 아플 수 있음을 깨달았다.

진예가 무건을 지긋한 시선으로 바라보다가 손을 목덜미 쪽으로 뻗어 무건을 제 쪽으로 가까이 끌어당겼다. 그러자 팔꿈치로 침상을 짚어 몸 지탱하고 있던 무건은 순순히 가까워졌다.

무건은 자연스레 진예의 눈두덩이며 볼에 연신 입술을 맞댔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며 특유의 듣기 좋은 따뜻한 말씨로 속삭였다.

“강해지고 싶은 이유도, 똑똑해지고 싶은 이유도 전부 폐하입니다.”

진예는 간지러워 얼굴을 살며시 피하며 무건의 머리를 껴안았다. 그에 무건이 하는 수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려 나란히 누웠다. 진예는 그가 저를 애정이 묻어나는 눈동자로 바라봐 오는 것에, 괜히 가지런한 눈가를 만지며 물었다.

“그래서 그런 꿈도 꾼 것이란 말이냐.”

잔망스럽게.

꿈이 처음 비쳤을 땐 의미를 알 수 없어 뭔가 싶었지만, 꿈속의 사내가 무건이라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 그저 귀엽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무건은 부끄럽다는 듯이 양 뺨을 붉히며 민망함이 담긴 웃음을 지었다.

“폐하께 어울리는 사내가 되고 싶으니까요. 하지만 아직도 너무 부족하지 않습니까.”

그리 말하며 무건이 진예를 깊게 안았다. 그녀의 다리 사이로 자신의 다리를 밀어 넣어 엇갈리게 했다.

두 마리의 뱀이 꼬인 것처럼 그들의 몸도 꼬여 하나처럼 겹쳐졌다. 턱 끝까지 올라온 무건이 숨이 진예의 매끄러운 목을 타고 뜨거운 기운을 퍼트렸다.

무건의 입술이 귀에 닿았다가, 턱을 훑고, 목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그에 따라 진예도 그의 머리를 붙잡고 더 깊이 품에 들였다.

“갈증이, 조금도 채워지질 않아요.”

“아……!”

이로 살짝 깨물어, 약간의 따끔함이 일었다. 목 아래의 깊은 계곡에 얼굴을 묻은 무건이 쪽, 쪽, 연신 입을 맞췄다.

“도저히…….”

희미한 중얼거림을 끝으로 무건이 허벅지에 힘을 넣었다.

단단한 다리의 움직임에 따라 어설프게 입은 것도, 벗은 것도 아닌 진예의 옷이 사그락거렸다. 아침의 햇살이 비치는 평화로운 침전에 불순한 신음 소리가 섞이기 시작했다.

무건은 천천히, 그러나 진예의 몸을 충분히 뜨겁게 달구었다. 고운 살결에 흔적을 남기다가 안달이 나 시선을 맞추고 입맞춤을 할 때마다 숨이 점점 거칠어졌다.

깊게 서로를 포옹하고 있던 무건과 진예는 더욱 틈 없이 달라붙으며 본래 한 몸이었다는 듯이 엉켰다.

커다란 몸을 안은 가는 팔, 탄탄한 다리를 붙잡고 올리는 굳센 손, 땀에 서서히 젖어 가는 머리칼 사이로 파고드는 유연한 손가락, 유려한 곡선을 그리는 허리를 지탱하는 강건한 팔까지.

“하아, 하…….”

숨이 점점 차올랐고, 배 아래가 뻐근해져 오기 시작했다. 버겁게 압박해 오는 것에 진예가 몸을 튕겼으나 땀에 젖은 무건의 몸은 떨어지기는커녕 더 끈적하게 붙어 왔다.

“읏, 응……!”

물기 섞인 소리가 금세 침방을 가득 메웠다. 거기에 거칠게 부딪치는 소리가 섞이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점점 분위기가 고조되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두 사람은 서로를 강하게 속박했다.

어느 한쪽만이 일방적으로 빠져드는 행위가 아니었다.

서로의 안에 각자가 갈구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다른 곳에선 결코 찾을 수 없는 그것을 잡는 데 도취된 진예와 무건, 두 사람은 단단히 결속하며 하나가 되었다.

* * *

환하게 들어오는 낮의 햇살에 먼저 눈을 뜬 건 무건이었다. 진예가 예고 없이 불쑥 찾아와 분위기에 휩쓸려 예정에 없던 합방까지 하고, 한 발 더 나아가 늦잠까지 늘어지게 자 버렸다.

무건은 먼저 몸을 조심조심 일으켰다. 눈을 감고 잠든 진예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저절로 웃음이 났다.

그는 그녀와 다시 나란히 눕고 싶었지만 고개를 흔들었다. 햇살이 강한 것을 보니 벌써 정오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황궁 생활에 점차 익숙해지면서 무건이 깨달은 점이 하나 있다면, 황궁에서의 게으름은 죄라는 것이었다.

무건은 침상 밖으로 몸을 빼고 벗어 던졌던 옷을 도로 걸쳤다. 괜히 헛기침을 해 진예까지 깨우기보다는 직접 밖으로 나가 수랏상을 들이라 할 참이었다.

한데 옷가지 사이에서 진예가 썼다는 책을 발견하고는 무건이 멈칫했다.

〈꿈속에서 그대가 사서삼경을 읽고 있더군.〉

하필 진예에게 옮겨 간 제 꿈이 그런 민망한 꿈이라니 몇 번을 떠올려 봐도 얼굴에 열이 몰렸다.

그렇지만 무건은 그녀의 정성이 담긴 책을 다시금 펼쳐 보았다.

황제로서 진예가 얼마나 바쁜 삶을 살고 있는지 무건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쓴 글자들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괜히 간질거리고, 숨까지 벅차올랐다.

무건의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맺혔다.

연모한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은 욕망도, 솔직히 없다고는 못 하겠지만 이걸로 충분히 알 수는 있었다.

진예에게 있어서 연무건은 꽤, 아니 사실은 아주 많이 특별한 존재라는 걸.

그야, 그녀가 한사코 안 된다고 했던 각인까지 해 주었으니 이미 표현은 넘치도록 되었다고 보는 것이 맞았지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선 원래 누구나 갈증이 나는 것 아니겠는가.

한데 그리 생각을 이어 가던 도중이었다. 그의 뒤에서 옷을 슥 걸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곧 뻗어 온 작은 손이 가슴에 닿았다.

“닳도록 보거라.”

이어 등 뒤에 무게가 실렸다. 진예가 그에게 기댄 것이었다. 어깨에도 얼굴이 기대어지는 것을 느끼며 무건이 돌아보자 진예가 아직 졸음기가 배어 있는 눈으로 올려다보며 물었다.

“꿈에서도 사서삼경을 읽을 정도로 그리 똑똑해지고 싶었더냐.”

무건은 책을 허벅지 위에 내려놓고는 쓰게 웃었다.

“……제가 폐하의 옆에 서기엔 너무 많이 부족하지 않습니까.”

솔직히 말하면 무건은 아직도 불안했다. 자신이 황궁에서 얻은 전부가 실은 모래 위에 선 누각 같은 것들이다.

진예의 떠나라는 말 한마디면 연무건은 모든 것을 잃을 터였다. 각인을 했다지만, 또 어디선가 불쑥 각인을 해제하는 방법이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근거 없는 불안감이지만 진예 앞에선 절대적인 약자일 수밖에 없는 자의 필연적인 고뇌였다.

그런데 진예가 갑자기 픽 웃었다.

“아직도 그런 생각을 하는가, 나의 황후는.”

그런 고민을 하는 그를 조금 귀여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증거로 진예가 방금 일어나 부스스한 무건의 머리를 강아지 대하듯이 쓰다듬어 흐트러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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