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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꿈(5) (14/18)

“이제 막 동이 튼 시각인데 무슨 헛소릴 하는 것이냐?”

진예의 말 자체는 꾸짖는 말이었지만, 어조는 그렇지 못했다. 무건의 품에 안겨 그의 눈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차마 모질게 떼어 내기가 어려웠다.

주인에게 낑낑대는 강아지처럼 무건이 매달려 오자 정말로 곤란했다. 한동안 그들 사이의 뜨거운 기류를 억제해 줬던 영이 이 자리에 없으니 더더욱.

“폐하께서 이리 저를 먼저 찾으시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까. 설마 내외하시려는 겁니까. 설마 이젠 길일이 아니면 이 연무건은 폐하의 침소에 발조차 들일 수 없습니까?”

“그런 말은 안 했다. 그리고 최근에 그대가 언제 짐의 침전에 누구 눈치를 보고 들었더냐?”

“그렇다 해도 허락 없이 폐하를.”

무건이 일부러인 듯 말허리를 끊었다.

그렇게 제 말에 주목해 달라는 뜻을 전한 그가 진예의 오른쪽 귀에 입을 바짝 갖다 대고는, 숨소리만큼 작게 속삭였다.

“멋대로 안은 기억은 없습니다.”

“…….”

그녀에게만 들리도록 말하는 걸 보니 연무건도 염치는 있는 모양이다. 황궁에 처음 들었을 때와 비교하면 장족이 발전한 수준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둘째는 천천히 생기도록 조절할 터이니. 폐하께서 고생하시는 것은 저도 싫습니다.”

“무건아, 네 너무 흥분한 듯하다.”

“지극히 이성적입니다. 그러니 황궁 침전에 본 후를 어서 들여 주시지요.”

이성적이긴. 아무도 안 믿을 거짓말이었다.

하지만 진예는 그를 한번 흘기고는 무건의 팔을 붙잡았다. 손 아래로 행여나 그녀가 도망칠까 싶어 무건의 팔이 긴장으로 꿈틀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이렇게나 매달려 오는데 진예도 마냥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더해서, 기왕 분위기가 이렇게 흘러갈 거라면 제가 주도권을 가져와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에게 끌려다니는 건 질색이니까.

진예가 무건을 가마 앞으로 이끌었다. 먼저 올라타 안쪽에 자리를 잡자 무건도 따라 들어왔다.

눈치 빠른 박 태감이 얼른 문을 내리자마자 이번엔 진예가 먼저 무건의 목덜미를 쥐고 확 끌어당겼다.

둘의 얼굴이 곧 겹쳐질 것만 같이 가까워졌다. 진예는 무건의 눈동자에 가득 자신이 비치는 것을 보면서 웃었다.

이 남자의 맹목은 늘 그녀에게 즐거움을 주었다.

그런 무건이 싫을 리 없었다. 거부하고 싶지 않았다.

진예는 책이 쥐어져 있는 무건의 왼손 위에 제 손을 겹치며 작고 도톰한 입술을 열었다.

“방금 이깟 게 도발이라 했느냐, 무건아.”

“잔뜩 불 질러 놓고 아니라 부정할 생각이십니까.”

“그럼, 당연히 아니지.”

반문하는 소리를 듣고 진예가 눈웃음을 그리며 대꾸했다. 그때에야 맥락을 파악했는지 무건의 눈동자에 이채가 돌았다.

그것을 확인한 진예가 가느다란 손끝을 무건의 옷깃 밑으로 밀어 넣어, 아침에 내관들이 분주히 입혀 주었을 그의 단정한 옷을 흐트러뜨렸다. 그리고 무건의 목을 끌어당겼던 손을 올려 그의 관모 위에 꽂힌 비녀를 뺐다.

“무건아.”

“예, 폐하…….”

그녀의 손에서 떨어진 무건의 옥비녀가 달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진 순간, 진예가 진짜 도발을 입에 올렸다.

“짐의 머리가 무겁구나. 네가 어서 비녀를 뽑아 주어야겠다.”

가마가 들어 올려져 움직이기 시작했다. 무건은 어느새 제 옷깃 깊숙이 진입해 윗가슴을 간질이는 진예의 손에 마치 추위를 맞이한 사람처럼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무리 그래도 보는 눈이 있는데 난장을 부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진예는 그의 얼굴이 희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살며시 입술을 겹쳤다가 떨어뜨렸다. 그때였다. 무건이 제 옷을 파고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더니 한숨을 토했다.

“……틀렸습니다.”

무엇이 틀렸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진예는 제 손목을 잡은 손마저 미세하게 떨리는 것에 무건이 허세를 부리고 있음을 바로 간파했다.

진예가 하얘졌다가 다시 양 뺨을 붉게 물들이는 무건이 제법 귀엽다고, 새삼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그를 놀렸다.

“표정은 다른 말을 하고 있는데?”

그러자 무건이 살며시 비껴 있던 시선을 맞추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게 아니라, 요망함은 제 역할이란 뜻입니다.”

“뭐라?”

무건이 책을 자리에 내려놓고는 손을 올려 엄지로 진예의 볼을 쓰다듬다가 귓가로 올라갔다.

모양이 선명하고 예쁜 귀에 걸린 귀걸이가 짤랑, 하는 소리를 내며 그의 손안에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그러고 귀의 모양을 따라 움직이는 조심스러운 손길이 기묘한 간지러움을 일으켜 진예의 귀 끝이 붉어지자 무건이 그녀의 몸을 확 끌어당겼다.

몸이 부딪히자마자 귓가에서 따끔한 감각이 일었다. 그 뒤 무건의 혀가 뭉근하게 진예의 귀를 핥았다.

“읏…….”

간지러워 진예가 순간 목을 움츠렸다. 가슴을 만지거나 성애를 할 때완 다른, 처음 느끼는 감각이 얼굴로 확 퍼져 열기를 일으키자 진예가 눈을 크게 뜨고 무건을 올려다보았다.

눈을 반쯤 감은 무건은 어딘지 평소와 다르게 요요한 분위기를 띤 채 진예의 귓가에 숨을 불어넣었다.

“겉은 얼음장 같은 폐하께서 이리 민감한 줄 아는 이가 저 말고는 없다는 사실이 항상 이놈을 미치게 합니다.”

스며드는 숨결이, 그와 함께 밀려드는 밀어가 오소소하게 오감을 일으켰다. 그에 진예가 저도 모르게 흠칫한 때였다. 툭, 하고 바닥에 묵직한 것이 나동그라졌다.

검고 곧은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리자 무건이 그것을 손으로 살며시 쥔 채 쓸어내렸다. 그야말로 비단결 같은 머릿결을 만져 보던 그가 이내 그곳에 입을 맞추며 양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때였다.

“폐하, 인교전에 도착하였나이다.”

가마가 멈췄다. 무건도 진예도 체감상 너무 이른 것 아닌가 싶어 순간적으로 대답하지 못하고 있자 박 태감이 재차 그들을 불렀다.

“폐하.”

가마 안에서 난리 피우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듯한 어투였다. 무건은 하는 수 없이 진예와 살며시 거리를 벌렸고, 그사이 진예가 답했다.

“문을 열라.”

가마의 문이 올라가고, 박 태감이 미리 주의를 준 듯 두 사람을 쳐다보지 않으려 고개 숙인 이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건은 진예를 안은 채 가마에서 내려 곧장 침전으로 직행했다. 그의 마음만큼이나 발걸음이 급했고, 그에 호응하듯이 궁인들이 얼른 침방의 문을 여닫았다.

햇살이 들이치기 시작하는 긴 침방을 가로지르는 동안 둘은 어느새 입을 맞추고 있었다.

그렇게 너머가 비치는 붉은 천개를 밀어젖히며 들어선 무건은 진예를 침상 위에 내려놓으면서 자연스럽게 위로 올라갔다.

둘은 무어라 상의하는 말도 없이 서로의 옷깃을 파헤쳤다. 사그락사그락하는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하얀빛이 비스듬히 비치는 침방 안에 울려 퍼졌다.

진예가 무건의 옷을 젖혀 그의 상체를 조금씩 드러내자 무건이 답답하다는 양 곧 제 손으로 옷을 완전히 벗어 던졌다. 그러자 햇볕에 탄 다른 곳보다 환한 맨살이 비쳤다.

근육이 단단히 잡힌 팔과 가슴을 진예가 올려다보고 있자 무건이 눈웃음을 지으면서 상체를 숙였다.

그가 헐렁해진 진예의 옷깃 사이로 입술을 내리며 속삭였다.

“폐하께선 참으로 솔직하지 못하십니다…….”

“무어가 말이냐.”

“떠올려 보시지요. 제가 후궁이 되기 전부터 폐하께선 이미 절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습니까?”

무건이 예쁜 모양의 쇄골 밑, 골짜기에 입술을 묻었다. 목소리에 실린 진동이 살결을 타고 흘러들어 오자 진예가 미세하게 움찔하면서도 무건의 머리칼을 쥐며 핀잔을 주었다.

“어찌 그런 헛소리를 하지?”

그러자 무건이 쿡, 웃으며 얼굴을 슬쩍 들어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고동색 눈동자에는 약간의 장난기 같은 것이 맺혀 있었다.

“설마 기억 안 나시는 겁니까? 싫다, 싫다 하실 때도 제 얼굴은 봐 줄 만하다고 하셨었는데.”

“…….”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던가?

무의식중에 부정하려고 했던 진예는, 불행하게도 제법 좋은 기억력 탓에 금세 어떤 장면인지 떠올리고 말았다.

확실히 무건의 말대로 그를 싫어한다 느낄 때도 진예는 눈앞의 얼굴이 쓸 만은 하다고 느꼈다.

“폐하, 어찌 답이 없으십니까?”

“…….”

실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저를 올려다보는 선해 보이는 눈동자에 뱀 가죽처럼 매끄러운 살결, 남자답게 선이 굵으면서 시원시원한 이목구비는 제법 눈요기는 되는 것이다.

실은 더 마음에 드는 건 얼굴보단 몸이었다. 황궁에 들어오기 전엔 따로 훈련받은 적도 없을 텐데 근육이 곳곳에 잘 자리 잡은 몸은 단단하면서도 유연해 보였다.

실제로도 무건은 몸을 다루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이라도 있는 모양인지, 검을 다룬다든가 말을 탄다든가 하는 일은 누구보다 빠르게 배운다 들었다.

무건은 어쨌든 그런 제 장점이 진예에게도 유효하다는 걸 아는 모양이었다. 그녀의 가슴에서 입술을 떼고 눈높이를 맞춘 그가 차마 반박하지 못하는 진예의 입술을 한 번 빨았다.

“설마 본 후가 너무 입맞춤을 많이 해 부어서 꼼짝도 못 하시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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