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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의 꿈(3) (12/18)

“연모하는가.”

“세상 누구보다 아끼고 있나이다.”

질문에는 꼬박꼬박 거짓 없이 대답하는 위장군을 보면서 무건이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비쳤다. 그러고는 자신의 앞에 엎드려 있는 그의 어깨를 짚었다.

“본 후 또한 그리해. 폐하를 연모하고, 또한 아끼네. 폐하께서 진심으로 행복해지시길 바라고 있어.”

손길에 은근한 압박감을 느낀 위장군이 몸을 잔뜩 긴장시켰다.

무건은 여우같이 교활하지는 않지만, 묵직하게 질러와서 결국 사람을 흔들어 놓는 자였다. 순도 높은 진심, 그것이 다른 사람들은 가지지 못하는 무건의 가장 큰 무기였다. 그리고 위장군은 본래 그런 유형에 취약했다.

“여태까지는 그분께서 본 후가 아무것도 모르길 원한다면 그리하기로 하였었네. 하지만 이제는 그러지 못할 것 같아.”

무건에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흘린 놈이 대체 누굴까. 조서엽일 리는 없으니, 홍 내관인가? 그도 아니면 황궁에 있는 누군가가 뒤에서 비밀을 떠벌리고 다니는 걸까.

어찌 되었든 범인이 색출되면 반드시 출궁시켜 버리겠노라고 속으로 다짐하며 위장군은 지그시 어금니를 물었다.

그런 위장군을 내려다보던 무건이 다시 타이르는 어투로 물었다.

“위장군, 본 후의 말뜻을 이해하나?”

“예.”

“그래, 어렵지 않을 것이야. 그리 한마디씩만 하면 되니.”

무건은 위장군에게서 적당한 진실을 캐낼 수 있음을 알아채고는 본격적인 질문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하나 최근 저를 괴롭히고 있는 악몽에 대해 애써 떠올리려 하자니 저절로 표정이 굳는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꿈속에 비쳤던 진예를 닮은 여인. 분노와 서글픔이 뒤섞여 죽으라고 저주의 소리를 내뱉던 황실의 사람.

무건은 진예의 감정이 어째서 그리도 메말랐었는지 감이 잡혔다. 그러나 꿈이란 날조가 있을지도 모르니 제 짐작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위장군을 부른 것이었다.

“폐하께서 어렸을 적에 모후에게 목이 졸린 일이 있던가.”

무건이 첫 질문을 던지자 위장군이 한숨을 토해 내듯이 단 한 마디만 내놓았다.

“……예.”

“하면 폐하께서 부황을 죽인 것이 맞던가?”

그걸 진예가 죽였다고 할 수 있나.

위장군은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머릿속에 떠올리다가 질문에 답할 시간을 놓쳤다. 그러자 무건이 한 발짝 더 다가서며 질문을 바꿨다.

“아니면 조 후가 목을 베었던가?”

순간적으로 위장군의 표정이 확연히 굳었다.

선황제의 목이 조 후에 의해 베였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극히 일부였다. 진예와 조서엽이 당시 그 자리에 있는 이들을 대부분 죽여 없애 버렸기 때문이었다.

대체 이 사실을 아는 이가 자신 외에 또 누가 있는지 떠올리며 위장군이 다시 침묵하자 무건이 그의 대답을 채근해 왔다.

“위장군.”

그렇지만 위장군은 눈을 질끈 감고 그의 앞에 머리를 깊게 조아리며 대꾸했다.

“더 하문하실 것이 있으실지요.”

대답은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황후에게 더없는 무례이지만 이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이런 반응 자체가 명확한 긍정의 표시라는 사실을 아는 무건이 픽 웃었다.

“그만하라는 소리군.”

“심히 송구하옵니다, 황후 폐하. 하나 소장에게는 아무런 권한이 없나이다.”

“알겠네.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군.”

그제야 한숨 돌린 위장군이 허리를 세워 무건을 올려다보았다.

“하면 이번엔 소장이 한 말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하게.”

“그 이야기를 황후 폐하께 드린 자가 누구인지요.”

제법 날이 선 질문에 무건이 눈매를 휘었다. 사람을 잘 믿지 않는 진예가 어째서 위장군을 유독 가까이하는지 알 만한 대목이었다. 무건 또한 위장군의 이런 면모가 좋았다.

“왜, 누구인지 밝히면 그자를 죽이려 하는가.”

“감히 천자께서 내리신 함구령을 어긴 자이옵니다. 마땅히 그 죄를 묻는 것이 법도이오니, 황후 폐하께서도 그를 비호하셔서는 아니 되리라 감히 말씀드리옵니다.”

무건이 그에 흠, 하고 짧은 감탄사를 냈다. 위장군은 어서 답을 내놓으라는 듯이 그런 그를 지긋한 눈으로 응시했다.

제 악몽에 관한 이야기는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는 않았지만, 말을 안 하면 위장군이 범인을 색출하겠다며 나설 일이라 무건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꿈을 꾸었네.”

“꿈, 말입니까?”

설마 숨겨 주려는 거냐는 듯이 위장군이 미심쩍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제 말에 거짓은 없었기에 무건은 주저함 없이 말을 이어 갔다.

“미마이가 말하기를 동조 현상 탓이라 하더군. 하여 본 후가 꾸었던 꿈은 폐하께서 꾸고 계시고, 반대로 폐하께서 꾸셨던 듯한 악몽은 매일 밤 본 후의 침전으로 찾아들고 있지.”

진예가 꾸었던 악몽.

일전에 그에 대해 들은 바 있는 위장군이 조금 놀란 얼굴이 되었다. 무건은 눈앞의 바른 사내가 다행히 제 말을 믿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하지만 순간적으로 위장군의 표정에 깃든 걱정의 빛에 무건이 먼저 고개를 흔들어 주었다.

“하나 위장군이 우려할 일은 없네.”

“존체에 염려는 없으시옵니까?”

“확실히, 깊게 잠들지는 못하겠더군.”

특히나 최근에는 눈을 붙여도 한두 시간 만에 깨는 날이 잦아졌다 보니 몸이 좋지 못하다는 것이 체감이 될 정도였다.

도대체 이런 것을 진예는 어떻게 평생을 버텨 냈는지 모르겠다. 그녀가 강한 여인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단지 그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으니까.

무건은 머리가 지끈거려 오는 것에 손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최근 며칠간 수면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그것을 확인한 위장군의 미간에 슬쩍 주름이 갔다.

그에 뒤늦게 주먹을 꾹 쥐어 제 상태를 숨긴 무건이 슬쩍 미소 지었다.

“그러나 이편이 낫지 않겠는가? 본 후는 이렇게라도 폐하께 도움이 될 수 있어 기뻐.”

그 말에 위장군은 무건도 확실히 보통 사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예가 어디 사람에게 제 곁을 내주는 사람이던가. 그런데 그런 그녀가 평생 제 옆에 두었던 조서엽만큼이나 무건을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은 확실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위장군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지만.

“꿈을 바꿔 꾼다는 이야기는 폐하께는 물론이요, 모두에게 함구하게. 내 미마이와 위장군에게만 말한 것이니.”

바로 이런 면모 때문에.

무건의 마음엔 사심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진예를 위해서만 생각하고 움직였다.

무건은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가져다 바쳤고, 그녀가 원치 않는 건 전부 다 버렸다.

그런 절대적인 기준을 약간 벗어난 존재가 그에게 있다면 황녀인 진영이 유일했다.

그런데 위장군은 또한 알았다. 언뜻 달콤하게 보이는 무건의 사랑은 실은 지독한 집착과 맹목을 담보한 것임을.

진예를 절대로 잃지 않겠다는.

하여 위장군은 뻔한 답이 돌아올 것을 알면서도 일단 물었다.

“……문제는 없으시겠사옵니까?”

“전혀. 이로써 폐하께서 악몽을 물리치셨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내 머리가 맑아질 정도야.”

말은 저리 쉽게 하지만 위장군은 진예가 예의 악몽 때문에 얼마나 괴로워했는지 이미 들은 바 있었다.

〈짐은 혼자 있는 밤이 늘 싫었다. 밤마다 찾아오는 꿈속에서 내 어미는 내 목을 수백 번, 수천 번 졸랐어. 그러면 나는, 아비에게 달려가 그를 또 수백 번, 수천 번을 죽였다.〉

하지만 무건은 대수롭지 않다는 양 대꾸했다.

“이겨 낼 거네. 꿈 따위에 질 수는 없으니.”

어차피 동조 현상을 다시 끊지 않는 이상에야 피한다는 선택지도 없지만, 악몽 따위에 기죽어 산다면 연무건이 아니었다.

그에 위장군이 무어라 입을 열려던 찰나였다.

“황제 폐하 납시오.”

“……!”

딱히 밀회를 한 것도 아닌데 무건과 위장군이 진예가 행차했다는 말을 듣고 동시에 흠칫했다.

위장군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고, 무건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예고대로 황궁으로 이어지는 방향에서 진예가 소수의 내관을 이끌고 다가오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직 조회가 시작되기 전이라 약간의 틈이 있다고는 하지만, 해가 뜨기도 전에 진예가 후원까지 올 줄은 몰랐다. 하지만 당황하면 바로 수상히 여길 테니 무건은 급히 머릿속으로 위장군을 불러낸 변명을 떠올리며 그녀의 앞에 나아갔다.

“홍복을 누리소서, 황제 폐하.”

살며시 무릎을 굽히며 예를 올리고는 무건이 진예를 마주 보았다. 그러고는 저절로 지어지는 미소를 숨김없이 내보였다.

금색 용포를 입고, 이마가 훤히 보이도록 단정히 머리를 깔끔히 넘겨 나비 떨잠으로 예쁘게 장식한 진예는 오늘도 여전히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기만 했다. 괜스레 제 마음이 더 뿌듯해지는 광경이었다.

진예는 그런 무건의 마음을 읽었는지 모르겠으나, 아침부터 그녀를 보고 실실대는 그를 향해 눈썹을 슥 치켜세웠다.

지나치게 이른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무건과 위장군의 조합이 낯설었던 그녀가 곧장 그 부분을 지적했다.

“황후는 금원에서 위장군과 무얼 하고 있는가?”

무건이 무해한 인간이긴 해도 꿍꿍이가 없는 자는 아니다 보니 진예가 질문을 던지고는 제 황후를 유심히 살폈다.

“폐하께서는 이 시각엔 어인 행차이시옵니까.”

아니나 다를까, 무건이 슬쩍 말머리를 돌리려는 것에 진예는 확실히 뭔가 있구나 싶었다.

“짐이 먼저 하문하였다.”

“위장군에게 긴히 물을 것이 있어 불렀습니다.”

“무엇을?”

“최근 익재들의 서식지도 모두 사라지고, 각 지역의 복원 작업 또한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는데 군세를 줄이지 않는 폐하의 의중이 과연 무엇인지.”

무건의 답이 워낙 매끄럽게 나오자 진예마저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헷갈렸다.

그에 진예가 잠시 침묵하고 있는데, 무건이 태연히 눈을 맞춰 오는 것이었다. 마치 진실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주장하듯이.

‘정말이지.’

그래서 더 의심스러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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