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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하고 불온한 (19/41)

불안하고 불온한

“쉬다 가는 거유, 하룻밤 묵고 가는 거유?”

작게 난 창문 너머로 늙은 여자는 우리를 수상한 눈길로 훑어보며 물었다. 나는 얼굴도 제대로 들지 못하고 비스듬히 돌아선 채 우물거렸다.

그런 내 왼쪽 손목을 꼭 움켜잡은 무진이 ‘내일 나갈 겁니다.’ 대답하며 한 손으로 지갑을 꺼내었다. 그러나 현금이 없었는지 ‘아.’ 당황한 소리를 내곤 허리를 굽혀 작은 창으로 고개를 내밀며 초조한 음성으로 묻는다.

“카드 됩니까?”

“이런 데선 뭔 카드래?”

“아, 나 현금 있어.”

여주인의 짜증 섞인 되물음에 나는 얼른 호주머니를 뒤지며 말했다.

오른쪽 포켓은 비어 있어, 다시 왼쪽 포켓을 뒤지기 위해 그가 움켜쥐고 있는 왼손을 흔들었는데, 무진은 내 손목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시선을 스치며 대신 내 왼쪽 호주머니를 뒤져 현금을 빼내었다.

“…….”

홑겹의 옷감 위로 짧게 내 허벅다리를 스치는 그의 손길에 나는 딸꾹질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얼핏 그의 입매가 휘는 것이 느껴졌지만, 방 키를 비롯해 일회용 칫솔과 요구르트 따위를 챙겨 주는 여자가 다시 창문 너머로 우리를 빤히 쳐다보는 것에 얼른 고개를 돌리느라 달리 따져 묻지 못했다.

쟁반을 통째로 건네받은 무진은 ‘고맙습니다.’ 인사말을 흘리곤 바쁜 걸음으로 내 손목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 방이 있는 2층의 복도를 말없이 걷는데, 문득 저 끝의 방문이 훌쩍 열리더니 늙수그레한 사내 하나와 속옷이 다 보일 만큼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자가 팔짱을 끼고 나오는 것이다.

“어험, 어험!”

한쪽 팔에 달싹 들러붙은 여자를 끼고 위풍당당하게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던 사내는 마주 오는 우리를 노골적으로 힐긋거리며 혀를 찼다.

무진의 걸음 속도는 달라지지 않았고, 그들과 좁은 복도를 스쳐 지나가며 나는 애써 벽 쪽으로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가 복도 맨 끝에 위치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는 것을, 계단에 서서 빤히 쳐다보았다.

열쇠를 돌려 문을 연 무진은 나를 먼저 방 안으로 들여보낸 뒤, 무표정한 얼굴로 계단 쪽을 한번 획 하니 돌아보곤 뒤따라 안으로 들어와 섰다.

“…이런 데 싫으면 그냥 나가고.”

먼저 들어서고도 아직 신발을 벗지 않고 있는 나를 보며 무진은 머쓱한 태도로 물었다. 서너 평 남짓한 여관방에는 침대도 없이 한쪽 구석에 두꺼운 이불이 곱게 접혀 있었다.

뭐가 그리 급했을까. 우리는 인공호흡처럼 키스를 나누다가 바로 다음에 서는 역에서 곧장 내려 버렸다. 그곳이 어디인지, 역 이름도 확인하지 않았다.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법한 모텔―이 근처에선 도무지 호텔 급의 숙소는 없을 것 같았다―을 찾는 것도 포기하고, 역을 나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허름한 여관으로 곧바로 들어와 버린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물론 전혀 상의를 하지도 않았다.

“나는…….”

우리가 동시에 무엇으로 그리 갈급했는지는 너무도 자명했다. 그러나 차곡차곡 접혀진 이불 어딘가에 분명 누군가의 꼬불꼬불한 음모가 하나 이상 발견될 것만 같은 장소는, 내게도 충분히 불결한 분위기인데, 하물며 모텔 구경도 안 해 봤을 권무진에게는 얼마나 충격일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래도 이렇게까지 하는 건 아니다 싶어 신발도 벗지 않은 채 기다렸다가 그가 직접 방 안의 상황을 확인한 뒤 무어라 말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마침 내 의견을 묻는 것에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여는데,

“…….”

마주한 그의 시선은 오롯이 나 하나만을 담고 있었다. 포식자만이 가진 그 느긋한 태도에서 오직 초조한 열망으로 형형한 눈동자가 짙게 번들거렸다.

이 아이러니한 남자 앞에서 덩달아 멍청해져선, 나는 고개를 저으면서도 홀린 듯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올라서 버렸다.

그런 나를 보며 무진은 만족한 듯 씩 웃었다. 그리고 성큼 따라 방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당연한 이치인 듯 곧장 재킷을 벗어 던지고, 자신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그는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아, 씻으려면 빨리 씻고.”

그러다 문득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어정쩡하게 서 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챘다는 듯 셔츠를 벗다 말고 채근했다.

“…너는.”

발꿈치에 밟히는 이불자락을 슬그머니 뒤로 물리며 불퉁한 목소리로 되묻자, 무진은 셔츠를 마저 벗어 던지며 희롱조로 대답했다.

“이제껏 내가 했던 말을 어떻게 들은 거야, 난 네 냄새 좋아한다니까. 토악질한 입에서 나는 냄새까지.”

“그건 네가 상종 못 할 만큼 변태니까… 읏…….”

생각만으로도 구역질나는 소리에 잔뜩 인상을 찌푸린 채 대꾸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성큼 다가온 무진이 곧장 입을 맞추며 내 뒷말을 삼켰다. 그대로 뭔가 이어 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는 다만 내 혀와 입술을 차례대로 아프지 않게 질근 물었다 놓으며,

“…못된 입.”

속삭이고 떨어졌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서툴게 이불을 펴는 것에, 나는 얼른 무릎을 꿇고 그의 손길을 내치며 이불을 반듯하게 펴 냈다. 무진은 내 손이 닿지 않는 이불 끝자락의 돌돌 말린 부분을 발로 툭툭 차며 거들었다.

베개 두 개를 양 끝에 나란히 놓고, 덮는 이불까지 펼까 어쩔까 고민하는 사이, 뒤에선 그가 바지 버클을 푸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새 벗은 바지를 또 아무렇게나 툭, 던져 둔 무진이 곧바로 이불 위로 무릎을 딛고 앉으며 내 발목을 끌어당겼다.

“아…….”

풀 바른 듯 반들반들한 이불 위에서 내 몸은 그가 당기는 대로 주룩 미끄러져 그의 품 안으로 갇혀 버렸다.

“잠깐, 옷…….”

“나더러 벗기라고 쭈뼛대며 기다렸던 거 아니었어?”

바르작거리며 웅얼대는 내 흐린 말에 무진은 히죽 웃으며 능청스럽게 대꾸했다. 그리고 기함을 하고 뻣뻣하게 굳은 나를 두고 인형 놀이를 하듯 손쉽게 차곡차곡 옷을 벗겨 냈다.

휑한 허벅다리에 그의 단단한 페니스가 문질러지는 감각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주먹으로 그의 턱을 툭 하니 밀어냈다.

“감질나게 굴지.”

“…착각이야.”

“아하.”

무진은 입매를 휘며 고개를 숙여 왔다. 그리고 내 짧은 머리카락부터 이마까지 천천히 입술을 맞추었다.

그 느리고 다정한 입맞춤에 어쩐지 눈 안쪽이 화끈 달아올라, 나는 뒤척이는 척을 하며 손등으로 얼굴을 가려 버렸다. 그러나 무진은 내 손목을 붙들어 얼굴에서 손을 떼어 내고, 손가락 끝부터 또 천천히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가 이윽고 내 손목 안쪽의 상흔에 입술을 겹치는 순간, 우리는 한동안 물끄러미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무진은 혀로 내 지네 같은 흉터를 핥으며 무어라 작게 속삭였으나, 무슨 말인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는 다시 내 손목을 가득 움켜잡은 채 내 얼굴로 고개를 숙여 왔다. 뜨거운 눈가를 핥고, 아이처럼 콧등을 깨물고, 앞니로 턱 끝을 긁으며 곧장 목덜미로 입술을 내리는 것에 나는 아쉬워 몰래 입맛을 다셨다.

무진은 다른 한 손으로 내 한쪽 귓바퀴를 장난감처럼 주무르며 가슴께까지 천천히 핥아 내렸다. 그러는 동안 그가 배를 싣듯 느릿하게 내 허벅다리 위에서 사타구니를 비벼 대는 것에 나는 물결처럼 잔잔히 흔들렸다.

“아……!”

그러나 앞니로 내 딱딱해진 유두를 앙 무는 것에는 바짝 긴장한 몸으로 신음을 터트려야 했다. 무진은 그런 나를 달래듯 혓바닥 전체로 가슴을 핥으며 진득하니 허리를 내리눌러 팔딱이는 내 몸을 누그러뜨렸다.

어느새 빳빳이 발기한 내 성기가 그의 복부에 짓눌려졌다. 숨이 가빠 왔다. 본능처럼 허리를 위아래로 움직이며 그의 몸통에 성기를 비벼 댔지만, 무진은 콧바람을 내며 작게 웃으면서도 모르는 척 내 유두를 사탕처럼 빠는 것에만 열중이었다.

“아…….”

언뜻 손을 내려 나는 그의 머리카락을 가득 움켜쥔 채 은근슬쩍 당겨도 보았지만, 그럴 때마다 그는 복수처럼 내 유두를 잘근 물어 댈 뿐이었다.

결국 신경질적으로 두 팔을 이불 위로 털썩 내려 두자, 그제야 무진은 좀 더 아래로 내려가 혀를 뾰족하게 세워 내 배꼽을 핥았다.

“아, 읏!”

근질근질한 욕망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이제 내 성기는 그의 목덜미에 비벼지고 있었다. 그러나 무진은 어느새 잡초처럼 뻣뻣하게 자란 내 음모를 코끝으로 헤집으면서도, 한껏 발기해 선단이 축축하게 젖은 내 페니스만은 귀찮다는 듯 쳐다보지도 않았다.

애가 달아, 나도 모르게 끙끙 앓는 소리가 콧등으로 새어 나왔다. 내 한쪽 무릎을 세워 허벅다리 안쪽으로 얼굴을 묻은 채 연한 살집을 쩝쩝 소리 내어 물고 빨던 무진이 ‘흐흥.’ 하고 웃었다. 그러나 끝내 애달픈 내 성기는 모른 척하는 것이었다.

기어이 나는 손을 내려 직접 내 것을 쥐어 잡았다. 그러자 무진은 엄한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당장 그런 내 두 손목을 잡아 떼어 내게 했다.

나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팩 하니 그의 손길을 내쳐 버렸다. 그러나 그의 매서운 눈길에 다시 내 성기를 붙들지는 못했다. 안 하면 되잖아, 애욕에 끓는 짜증이 치밀었다.

손으로 겨우 얼굴이나 벅벅 긁어 대는 나를 확인하고 무진은 다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내 무릎과 정강이에 차례로 입을 맞추고 발목과 발등, 끝으로 발가락까지 핥는 것에,

“아, 그……!”

나는 또 한 번 기함을 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어깨를 떠밀었다. 그러나 무진은 내 다리를 더 번쩍 들어 나를 뒤로 넘어뜨리곤, 고집스럽게 발가락을 하나씩 핥아 나갔다.

“하, 하지 마……!”

두 손을 내저으며 만류하다가, 더 이상 볼 수 없어 팔등으로 눈가를 덮어 버렸다. 가슴 속에서 수천 마리 지네가 뜨거운 프라이팬에서 지글지글 끓으며 툭툭 튀어 올랐다.

울고 싶었다. 내가 그의 발가락을 핥아야 했다. 이렇게 모두 그에게 미뤄 두어도 괜찮은 걸까.

“얼굴 보여 줘.”

으으, 끔찍한 신음을 흘리며 가슴을 들썩이는 동안 무진이 내 몸을 가득 덮으며 다시 엎드려 안아 왔다. 맞닿은 가슴 사이에서 심장이 북소리를 내며 둥둥 울렸다.

“보여 달라니까, 쭈글쭈글한 얼굴.”

얼굴에서 팔을 거두지 않자, 결국 그가 내 손을 붙들어 치웠다. 그리고 마주한 내 얼굴에서 무진은 언뜻 ‘어.’ 소리를 냈지만, 왜 그러는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는 또 씩 웃어 보이며 드디어 입을 맞추어 주었다.

나는 허겁지겁 그의 입술을 물고 혀를 빨았다. 그의 입안에 고인 침을 꼴깍꼴깍 빨아 삼키자, 무진은 칭찬하듯 내 짧은 머리카락을 천천히 쓸어 넘겨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래로 손을 내려 팽팽하게 긴장해 있는 내 성기를 가득 움켜쥔 채 엄지로 선단을 긁으며 희롱해 왔다. 물에서 갓 건져진 생선처럼 허리가 벌떡였지만, 그는 온몸으로 나를 내리누르고 있었다.

“먼저 갈래?”

내 입술을 쪼듯 키스하며 그가 물었다. 그의 몸 아래에 깔린 채 의미 없는 발버둥을 치며 나는 신음으로 대답했다.

“아… 으, 응….”

좋아, 대꾸하며 그는 웃었다. 그리고 다시 눅진하게 입을 맞춰 오며 빠르게 손을 놀렸다. 손바닥 전체로 쓸어 올렸다가 선단에서부터 찌부러뜨리듯 누른 뒤, 뿌리에서 손바닥 가득 잡아 쥐고 뒤흔드는 손장난엔 까무러칠 것만 같았다.

두 손을 그의 등허리에 휘감고 비닐봉지처럼 온몸을 바르작거리자, 그 역시 흥분되었는지 짐승처럼 그르렁 목울음 소리를 내며 손을 더 빨리 움직였다.

“흐, 으, 응……!”

나는 얼마 가지 않아 그의 혀를 잘근 문 채 부르르 몸을 떨며 토정했다. 내게 여전히 혀를 내어 준 채 무진은 수고했다는 듯 내 짧은 머리카락을 슥슥 쓸어 넘겼다. 그리고 사정의 여운으로 혼몽한 나를 천천히 떼어 내며 내 양쪽 무릎을 접어 올렸다.

내가 쏟아 낸 정액을 손끝에 모아 묻힌 그가 자연스레 벌려진 내 아래 입구를 부드럽게 침범하기 전까지 나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그것은, 오랫동안 짝이었던 아귀가 잘 맞는 문짝처럼 단단하게 아물리는 느낌이었다. 낯선 침입에 거북스러운 기분조차 전혀 없었다. 그동안 얼굴에 퍼부어지는 부드러운 키스 덕분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물결처럼 천천히 앞뒤로 움직이던 손가락이 갑자기 안쪽에서 갈고리처럼 굽혀져 휘젓는 것에는 발가락이 태아처럼 잔뜩 옴츠러들었다.

“여승재.”

혀로 내 입술을 핥던 무진이 문득 내 이름을 불렀다. 어깨를 잔뜩 웅크린 채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마주하자, 그는 본격적으로 무릎을 꿇고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으며 칼칼하게 쉰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해 줄까.”

“…뭘 어떻게 해. 이런 것도 주문 가능해? 레어, 미디움, 웰던, 이렇게 하는―”

“됐어, 못된 입.”

당황스러워 주저하다 어색한 기분을 물리기 위해 아무렇게나 떠들자, 무진은 질책하듯 내 뒷말을 자르며 고개 숙여 잘근 입술을 물었다.

축축하고 짧은 키스를 끝내고 그는 내 한쪽 무릎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며, 동시에 내내 발기해 있던 성기의 귀두를 아래 입구에 맞추어 왔다.

이제 한다, 어쩐지 긴장되어 흡 숨을 들이마시자 무진이 그런 나를 힐긋 쳐다보곤 눈살을 찌푸리며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곧이어 허리를 꾹 밀고 들어왔다.

“응… 아…….”

좁은 틈을 가르며 굵다란 것이 가득 와 박히는 기분에 나는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러나, 달랐다.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도착한 곳이 어디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내 손목을 끌어 잡고 열차에서 내려, 또 곧바로 보이는 허름한 여관방으로 들어와 새카만 눈동자로 나를 깊이 응시하던 것에서 느껴지던 그 위험스러웠던 욕망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는 들들 끓는 애욕을 억누르는 대신 내 이마에 입을 맞추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또 내 발가락을 핥았다. 그리고 이렇게나 부드럽게 삽입을 해 오는 것이었다.

“아, 아…….”

또다시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뿌리까지 삽입한 채 한동안 가만히 그렇게 껴안고만 있던 무진이 그런 나를 보며 놀란 얼굴로 ‘아파?’ 물었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아플 만큼 느껴 그런다, 대답할 수 없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그 또한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참을 수 없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지루할 만큼 천천히 움직이는 것일 테였다.

“그럼 왜 울어, 좋아서?”

사나운 욕망을 억누르느라 내 얼굴 가득 훅훅 가쁜 숨을 내쉬는 주제에 무진은 짐짓 여유로운 목소리를 꾸며 내며 물었다. 그리고 여전히 입술을 꼭 물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듯, 절반쯤 삽입한 상태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듯 허리를 저으며 ‘그래?’ 되물었다.

“으, 으… 응… 아아…!”

“대답이야, 신음이야.”

결국 턱을 늘어뜨리며 모호한 소리를 터트리는 나를 향해 그는 희롱조로 속삭이며 천천히 허리를 실어 왔다.

구석구석을 탐하듯 끝까지 삽입한 채로 허리를 흔들어 안쪽을 휘젓는 것에 아랫배는 물론이고 명치까지 가득 차올라 할딱할딱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무진은 멍청하게 벌려진 내 입술에 입을 맞추고 인공호흡을 하듯 숨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는 내 뺨을 매만지며 기분 좋은 얼굴로 웃었다. 그런 순간에도 부드러운 허리 짓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문득 내 양쪽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 둘러 감싸도록 했다. 그가 더 깊이 들어왔다. 목 안에서 방울이 울리고, 나는 끊임없이 눈물을 쏟아 내면서도 포르노 배우처럼 끔찍한 신음을 흘려야 했다.

천천히 움직이는 만큼 사정감이 아직 한참인지 무진은 그런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짤막한 머리카락 속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기도 하고 귓바퀴를 매만지기도 하며 여유를 부렸다.

차라리 난폭하게 굴어 줬으면 싶었다. 두 손으로 그의 등허리를 슥슥 긁어내자, 무진은 가슴을 들썩이며 웃었다.

“간지러워, 여승재.”

그가 말하고 움직일 때마다 그의 굵직한 성기가 안쪽에서 묵직하게 진동했다. 다급해져, 나는 먼저 그의 머리통을 내리눌러 입을 맞추었다.

내 혀를 빨며 조금 흥분이 돋우어졌는지, 무진은 내 양쪽 다리를 더 넓게 벌려 잡으며 철썩 허리를 쳐올렸다. 히쭉 이불에 밀려 몸이 위로 따라 올라가자, 그는 받침대처럼 내 머리꼭지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채 좀 더 허리에 힘을 실었다.

나는 바닥에서 허리를 띄우며 그와 박자를 맞추었다. 으으…, 무진이 미간을 찌푸리며 낮은 신음을 삼켰다. 그의 등허리에 둘러진 손바닥으로 불끈하는 근육의 긴장이 느껴졌다.

“이제 안 울어?”

얕게 추삽질을 이어 하며 언뜻 고개를 들어 올린 무진이 내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이제 조금 진정이 되었다, 웅얼거리며 답하자 그는 조금 무안한 얼굴을 하곤 쭈뼛대며 말해 왔다.

“그럼 좀… 할게.”

“…응… 아, 아!”

그리고 내가 또 신음처럼 모호한 대답을 슬쩍 흘리자마자, 이번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내 양어깨 옆으로 손을 딛고 기대어 체중을 가득 실어 왔다.

땀과 정액으로 더러워진 하체가 쩍쩍 소리를 내며 맞붙었다 떨어지고 또 쳐올려지는 것이 반복되고, 둘이 내뱉는 달뜬 숨과 열기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적셨다.

몽둥이질처럼 끊임없이 쳐 대는 추삽질에 엉덩이가 얼얼해져 왔고, 무진은 내 귓불과 입술을 정신없이 물고 빨다가 문득 내 이마로 코끝을 꾹 누른 채 허리를 뒤로 최대한 빼내었다. 그러곤 한순간에 뿌리까지 관통해 오는 것에 나는 소리도 없이 턱을 늘어뜨려야 했다.

그는 몇 번을 더 반복해서 그렇게 나를 꿰뚫었다. 어느 순간, 그것이 그가 사정감을 참기 위해 하는 행동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문득 심통이 나, 그가 빠져나가는 것에 맞추어 아래를 조여 버리자, 무진은 윽!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가득 껴안은 채 빠르게 허리를 쳐 댔다. 그리고 내 귓바퀴를 잘근 깨물며 둥글게 허리를 굽힌 채 비로소 내 안에 정액을 쏟아 냈다.

“하아……!”

직장 가득 뜨겁게 차오르는 것으로 충만해진 기분과 함께 나는 온몸으로 털썩 쓰러지는 그를 받아 내야 했다.

내 몸 위에서 축 늘어진 채 무진은 조금이라도 더 내 안을 채우겠다는 듯 잘게 허리를 흔들었다. 안쪽이 들쑤셔질 때마다 나는 숨통이 끊어져 가는 가젤처럼 경련하듯 몸을 떨었다.

그리고 또다시 추적추적 흐느낌이 새어 나왔다. 나는 정말 머저리가 되어 버린 것 같았다.

“어린애 같아.”

그러나 무진은 다른 걸 떠올렸는지 여전히 가슴을 맞대고 누운 채 웃음기 담긴 목소리로 그런 나를 평했다. 꼴깍 침을 삼키며 울음을 억누르려 하자, 그는 갑자기 뒹굴 몸을 굴려 순식간에 위치를 바꾸어 나를 제 몸 위에 올려 안은 채 등을 쓰다듬으며 달래듯 말했다.

“네가 그러니까 내가 꼭 범죄라도 저지른 것 같잖아.”

“…….”

“그래도 좋은데, 신선해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얼굴을 하고선.”

그가 장난기 어린 희롱조로 지껄이는 것을 들으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꼴깍꼴깍 침만 삼키고 있었다. 우리는 여전히 아래가 붙은 채였다.

무진은 도무지 아래를 비킬 생각을 않는 듯 내 귓바퀴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간지러워, 흐느끼며 손을 치우게 하면 그는 못된 장난질을 좋아하는 개구쟁이처럼 이내 다시 손을 뻗어 왔다.

이렇게 어린애처럼 굴어도 되는 걸까. 나는 이제 열아홉도 아닌데 이렇게 순간의 충동에 휩싸여, 좋을 대로만 행동해도 되는 걸까. …나는, 정말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걸까.

“여승재.”

그의 몸 위에 새끼 코알라처럼 엎드려 누운 채 혼란스러운 생각들로 어찔어찔한 나를 알고 있다는 듯, 무진이 또 문득 내 이름을 부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

“그 자식, 어릴 때 많이 아팠어. 워낙 약해서 외부 접촉도 어려웠던 터라 유리 인형처럼 자랐지. 당연히 공동체 생활 같은 건 꿈도 못 꿨고. 그러다 보니 머리 굵어질 때까지 거의 집 안에서 손끝으로만 사람 부리면서 교육받고 책으로 감정을 배운 인간이야. 것 때문인지… 말 그대로 진짜 나쁜 걸 몰라. 장난인지 악행인지, 구분을 못 해. 아니, 안 하지.”

“…….”

“어릴 때는 그 자식 그러는 거, 일부러 나 골탕 먹이려는 건 줄 알았어. 보통은 그렇잖아, 뭐 따지자면 나도 개새끼지만, 지랄 패악을 떨 때는 상대방 엿 먹이기 위해서든 단순히 내 기분이 더러워서든, 스스로도 인식은 한다고. 그런데 크면서 보니까, 그 새끼는 아무것도 없어. 순간적인 재미, 그것밖에는. 그런데 거기에 필요 이상으로 집요하지.”

“…….”

“그게 끔찍하고 소름 끼쳐서 노골적으로 피해 다니고, 마주치면 욕이나 퍼부어 주고 그랬어. 굳이 이해해 보려면, 나는 어릴 때부터 무식하게 튼튼했고, 그러니까 저 딴에는 부러우면서도 친해지고 싶었던 것 같은데… 같이 안 놀아 주니까 유난히 나한테 더 장난질이었어. 저 입장에서는 장난질이었겠지만 악독했지, 진짜 죽을 뻔했던 적도 여러 번이었어.”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 사건에 어떤 음모가 숨어 있었으며, 내가 미리 계획된 덫에 발부리가 걸려 넘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에게 아무런 책임도 묻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면죄부는 그런 식으로 다른 이에게 책임을 모두 전가시키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은 채 말끝을 흐리다 결국 입을 꾹 닫고 고개를 내젓자, 무진은 답답하다는 듯 ‘아아―’ 하고 소리를 내며 손끝으로 내 얼굴을 들어 올려 시선을 마주쳐 왔다.

그는 몰래 사탕을 숨긴 아이처럼 어딘가 겸연쩍어하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이마를 긁적이며 ‘그게…’ 하고 조심스레 말을 잇는다.

“사실은…, 그때 카메라에서 컴퓨터로 옮긴 영상 파일, 그거, 지운 거 아니었어.”

“…뭐…, 뭐야?!”

뜨악한 내용에 순간 어리둥절했다가, 뒤늦게 제대로 입력이 되는 것에 나는 당장 그의 가슴께를 철퍽 두드리며 허리를 곧추세웠다. 그러나 이내 저릿한 근육통에 ‘으으……’ 신음하며 그의 몸 위로 다시 털썩 엎드려 누워야 했다.

애초에 그의 형이 이미 지워진 영상을 어떻게 알아 복구까지 하며 일을 꾸몄다고는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무진의 입으로 직접 처음부터 파일을 지우지 않았다는 고백을 듣는 것 또한 꽤나 충격이었다.

씩씩거리며 자신의 몸 위에 엎어져 있는 내 등 뒤로 손을 둘러 뭉친 근육을 살살 눌러 주며 무진은 한국말을 배우는 외국인처럼 어눌하게 주절주절 변명을 이어 왔다.

“그냥, 어릴 적 치기도 컸고… 내가 들쑤시는 대로 반응하는 널 보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고, 좋고… 계속 보고 싶었고…….”

“…….”

나를 보는 게 좋았고, 그래서 계속 보고 싶어 그러했다는 말에는 나는 씩씩거리다 말고 이제는 또 애처럼 징징거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시절이 아깝고 안타까워서 속상했다. 권무진이 누군가의 비위를 맞춰 주기 위해 입속 혀처럼 구는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기에, 더 그러했다.

“또 몰래 숨어들어 와선 내 물건이나 뒤지면서 놀다가 그걸 발견했겠지. 그러니까 나하고 그 자식 사이에 네가 말려든 것뿐이야. 우선 파일 안 지웠던 내 일차 책임이고… 네 잘못된 판단보다, 그 새끼 미친놈인 거 알면서도 그쪽 먼저 의심 안 해 봤던 것까지, 결국 내 책임이 더 커. …그땐 나도 우리 관계 혼란스러웠고 불안했으니까, 막상 일 터지니까 오히려 한편으로는 속이 편했을 만큼.”

“…….”

혼란스럽고 불안했다니, 내 기억 속에서 권무진은 마냥 거침없는 사내애였는데, 그 역시 열아홉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가 무심히 말을 잇는 동안 나는 바싹 타들어 가는 속을 어쩌지 못하고 마냥 그의 목덜미에 뜨건 얼굴을 비벼 대고만 있었다.

삭제하지 않은 영상 파일 때문에 내가 계속 화를 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무진은 그런 내 뒤통수를 슬그머니 매만지며 ‘여승재에….’ 하고 힘없이 내 이름을 불렀다.

“확실히 알아들었어? 너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었어. 그러니까 허튼 생각 하지 마. 나는 네가 무슨 생각하는지 훤히 다 알아.”

아니, 그는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것이다. 징그러운 백사 같은 그의 둘째 형에 대한 증오보다, 내가 기겁을 하며 싫어했던 영상을 기어이 지우지 않아 시초를 던져 준 그에 대한 원망보다, 잃어버린 12년에 대한 안타까움으로 어리석었던 스스로의 목을 조이고 싶은 심정을, 그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허튼 생각 하면, 네가 먼저 알아채고 그렇게 못 하게 할 거잖아.”

그러나 자신의 머릿속에서 마냥 어린애 같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다 안다며 단단히 으름장을 놓는 그에 대한 쑥스러운 애정이 무엇보다 더 커, 나는 그의 목덜미를 앞니로 긁으며 웅얼대듯 대꾸해 주었다.

“알아서 다행이네.”

무진은 개운한 음성으로 답하며 내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 은밀함이 담겨 있는 것은 여전히 내 아래에 담긴 그의 성기가 조금씩 부피를 더하고 있음을 먼저 알아챈 후였다.

“병원에선… 어떻게 했어?”

그러나 아무래도 전희 단계부터 눅진하게 힘을 빼 두어 한 번 더 맞추어 줄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벗어나기 위해 은근히 허리를 들추며 화제를 돌려 말을 걸었다.

무진은 정말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다 아는지, 다정히 내 등허리를 쓰다듬는 척하며 힘주어 다시 내리누르곤 태연히 대답을 했다.

“자식 보는 앞에서 그 부모 칠 수는 없잖아. 눈 돌아가는 중에도 그건 참자 싶어서 그냥 혼자 지랄 좀 떨었어. …답지 않게 착한 일을 했더니 혀에서 바늘이 돋았거든. 자, 핥아 봐.”

그리고 능청스럽게 혀를 내밀어 보이기까지 하는 것에, 나는 그의 혀를 빨기 위해 기어오르는 것처럼 슬금슬금 아래를 빼내었다.

그러나 무진은 직접 고개를 들어 짧게 입을 맞추곤, 다시 내 어깨를 내리눌러 제자리를 찾게 했다. 그리고 시무룩한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음산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한다.

“그 자식, 몇 대 치는 정도로 쉽게 안 끝내.”

“…….”

나는 그의 몸 위에서 팔꿈치를 괸 채 그의 서늘한 눈매를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형제간의 싸움에 부채질을 할 만큼 뻔뻔스럽지는 못하지만, 만류를 할 만큼 너그럽거나 착하지도 못했다.

“넌 그냥, 옆에 있어.”

이번에도 내 그런 복잡한 생각을 빤히 읽었다는 듯 무진은 힐긋 나를 내려다보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괴었던 팔을 풀고 도로 그의 가슴께에 축 하니 얼굴을 기대고 눕는 나를 바짝 껴안곤, 이윽고 아래를 진득하게 들쑤시기 시작했다.

“아…….”

천천히 허리를 쳐올리며 부드럽게 들락거리는 것에 옅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다리가 넓게 벌려졌다.

움직임이 쉬워진 무진이 두 손을 내려 내 엉덩이를 가득 움켜쥐며 좀 더 빨리 허리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젓다가, 나는 그의 가슴 돌기를 덥석 물고 핥았다.

“아, 승재야…….”

내 짧은 머리카락을 와락 움켜쥐며 그가 칼칼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혀를 떼고 힐긋 고개를 들어보자, 무진은 미간을 찌푸린 얼굴로 ‘허……’ 하고 웃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 치며 명령조로 지시한다.

“무겁다, 좀 비켜 봐.”

“…….”

빼내어도 되는 건가, 그의 눈치를 살피며 나는 조심스레 허리를 들어 옆으로 자리를 옮겨 엎드려 누웠다.

덜렁 빠져나온 자신의 성기를 손으로 슥슥 문지르며 무진은 곧장 내 등 뒤로 몸을 겹치고 누웠다. 그리고 내 복부 아래로 성마른 손을 집어넣어 몸을 들어 올리며 귓바퀴로 입술을 눌러 속삭여 왔다.

“성에 안 차. 뒤처리해 줄 테니까, 좀 더… 그냥 원래대로 할게.”

멋대로 자세까지 다 잡아 둔 주제에 애원조로 말하는 꼴이 우스워, 나는 무릎을 꿇고 엎드린 상태로 피식 웃어 버렸다.

허락이라고 생각했는지, 무진은 뒤쪽에서 퍼뜩 턱을 내밀며 내 볼에 ‘쪽’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힐긋 눈치를 살피며 다시 뒤를 맞추다 말고,

“여우.”

“…….”

“귀신.”

돌연 또 내 귓바퀴를 슬쩍 물었다 놓으며 심통스러운 목소리로 툭 하니 내뱉는 것이다.

“…나, 뭐, 왜.”

뜬금없는 소리에 찡그린 채 고개를 돌아보며 짧게 따져 묻자, 무진은 왜인지 시무룩한 얼굴을 하곤,

“몰라.”

뚱하니 대답하며 곧장 뒤를 꿰뚫어 왔다.

“흐, 읏……!”

허리가 뒤틀리고, 축축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안쪽에서 이미 사정해 놓은 정액으로 질척해진 입구에 무진은 내 허리를 단단히 붙잡아 고정시킨 채 멋대로 찔러 대기 시작했다. 사나운 움직임에 허리가 무너질 때마다 그는 다급한 손길로 내 무릎을 세우고 복부 아래로 손을 둘러 받친 채 추삽질을 해 댔다.

“아, 아아!”

수직으로 내리꽂히는 굵은 몽둥이에 나는 기겁을 하며 팔꿈치로 기어 달아나려 했다. 그때마다 무진은 내 골반을 강하게 잡아당기며 그 반동으로 허리를 철퍽 쳐올리곤 했다.

반복되는 깊고 강한 삽입에 토악질마저 치밀어, 나는 결국 타인의 머리카락이 서너 올 정도 박혀있을 것 같은 베개를 가득 껴안고 가쁜 숨을 뱉어 냈다.

“네 안에서… 하… 죽고 싶어… 읏!”

깊게 박아 넣은 상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듯 손바닥 가득 내 아랫배를 문지르며 말을 잇던 무진은 급히 빼내어 또 한꺼번에 찔러 넣으며 이를 악무는 소리를 냈다.

“아으……!”

머리를 후려치는 강한 자극에 펄쩍 뛰어오르듯 온몸을 펄떡이자, 뒤에서 그가 내 엉덩이를 툭 건드리며 웃었다. 그리고 절반쯤 삽입한 상태 그대로 내 한쪽 다리를 들어 올리며 비스듬히 몸을 틀게 했다.

“아… 너무 깊어, 그건… 아!”

꽉 아물린 것이 속살을 비틀며 더 깊이 들어왔다. 나는 들어 올려진 한쪽 다리를 아예 그의 어깨 위로 털썩 걸친 채 우는 소리를 냈다. 신중한 얼굴로 접한 부분을 물끄러미 내려보고 있던 무진이 씩 웃으며 그런 나를 힐긋 쳐다보았다.

“네 속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쳐들어가고 싶어.”

그리고 어깨에 걸친 내 정강이에 짧게 입을 맞추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자연스레 그의 것이 빠져나갔고, 그러나 무진은 무릎을 딛고 선 채 다시 빠르게 질러 박기 시작했다. 끔찍한 신음이 터져 나왔고, 그는 손을 뻗어와 내 한쪽 손목을 꼭 붙든 채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한쪽 다리와 팔이 모두 그에게 붙들린 채 꿰뚫려 나는 차마 뒤로 내빼지도 못하며 허리를 들썩여야 했다. 훅훅 숨을 내뿜는 그는 간간이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그의 분노와 욕망이 맞닿는 부분, 그 어딘가에 내가 있을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붙들리지 않은 다른 한쪽 손등으로 얼굴을 덮은 채 마음껏 신음을 내질렀다. 문득 무진이 손을 뻗어와 내 얼굴을 덮은 손등을 치우게 했다. 내가 또 우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울지 않았다. 이제 다 울어 버렸고, 더 이상 울음을 터트렸다간 그건 자기 연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내 마른 얼굴을, 그러나 오직 욕망으로만 축축이 젖은 얼굴을 확인한 무진은 대신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곤 내 손목과 다리를 단단히 붙잡은 채 사납게 허리를 뒤흔들기 시작했다.

“씨발… 너 정말… 아, 죽겠어…!”

“아, 아, 아!”

비틀린 채 쳐올려지는 그 아득한 감각에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내가 그에 의해 난폭하게 흔들리며 정액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본 무진은 혀로 날름 입술을 핥아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여전히 삽입한 그대로 갑자기 내 몸을 끌어올려 자신의 위에 앉도록 했다. 속살이 엉망으로 침범당하는 기분에 나는 도리질을 치며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움직여, 움직여…!”

멍청한 코알라처럼 가만 껴안은 채 움직이지 않자, 언제 부드럽게 대했냐는 듯 무진이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사납게 쳐 대며 명령했다. 엉덩이가 화끈거려 나는 그의 등허리를 손톱으로 긁으며 허리를 흔들었다.

“아, 흐으… 읏! 아, 승재야… 여승재…!”

무진은 내 귓바퀴를 물어뜯으며 짐승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다 아무래도 부족했는지 이불 위로 다시 나를 넘어뜨린 채, 내 두 다리를 높이 들어 올리며 거칠게 삽입질을 해 댔다.

나는 그를 향해 두 손을 뻗었다. 훅훅 뜨건 숨을 내뱉던 무진이 그런 나를 보곤, 내 다리를 넓게 벌려 파고들며 상체를 내려 가득 몸을 껴안아 왔다. 그리고 우리는 허겁지겁 키스했다.

“아, 흐읏……!”

내 혀를 빨며 사납게 허리를 쳐올리던 무진은 한순간 머리가 얼얼해질 만큼 아래를 쿵! 박아 넣으며 사정을 했다.

안쪽을 가득 채우는 정액이 그가 이후 몇 번 더 추삽질을 하는 것에 엉덩이 골을 적시며 주룩 흘러나오는 것이 느껴졌다. 쩍쩍 소리가 나고, 그것을 즐기듯 무진은 한 방울까지 다 쏟아 낸 후에도 잘게 허리를 흔들었다.

“아… 그만해…….”

완전히 탈진한 상태에서 손을 들어 올리지도 못하고 나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삽입한 그대로 아래를 은근슬쩍 문지르며 무진은 귀찮아하는 내게 다시 입을 맞추어 왔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내 입술을 샅샅이 핥으며 빠져나갔다.

빼지 않고 연속으로 안에서 사정을 한 탓에 이불을 적실 만큼 아래쪽이 그의 정액으로 엉망이었다. 시트를 더럽힌다는 수치스러움으로 괄약근에 힘을 주려 했지만, 그것마저 되지 않았다.

무진은 내 다리를 벌려 그것을 물끄러미 구경하다가, 태연히 쟁반으로 손을 뻗어 요구르트에 빨대를 꽂아 내게 주었다. 나는 누운 채 그것을 쭉 빨아 마시고, 가슴을 들썩이며 손등으로 얼굴을 덮어 버렸다. 이대로 잠들고 싶었다.

무진은 남은 요구르트 하나를 역시 빨대를 꽂아 빨아 마시곤 ‘이거 맛이 왜 이래.’ 하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그 정도로 기력이 회복된 듯, 축 늘어진 내 몸을 번쩍 안아 들곤 좁고 더러운 욕실로 함께 들어갔다.

우리는 함께 샤워했고, 나는 그의 손가락이 내 아래를 부드럽게 휘젓는 것을 모른 척했다. 그리고 대충 몸을 닦고 나와선 발가벗은 그대로 이불 위에 누웠다.

더러워진 부분이 있어 싫다고 하자, 무진은 고민하는 얼굴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결국 이불을 뒤집는 것으로 간단히 문제를 해결했다.

속옷 한 장 걸치지 않고 서로를 껴안은 채 잠이 들었지만, 두어 시간 후에 둘 다 허기를 느껴 깨어나야 했다. 나가는 것이 귀찮아 중화요리점에서 볶음밥을 시켜 먹었고, 방문 밖에 빈 그릇을 내어놓고 들어오자마자 무진은 다시 내 발목을 붙잡고 끌어당겼다.

‘소리 한번 더럽게 요란하네.’

한 번 더 하자, 이제 못 한다, 한참 투덕거리다가 그럼 입으로 해 주는 것에 합의를 하고 그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펠라티오를 해 주는데, 사정 직전에 무진이 갑자기 빼내어 다짜고짜 바지를 벗기며 달려들었다. 주문한 것을 받느라 속옷도 없이 바지만 급하게 걸쳐 입은 채였다.

결국 어정쩡하게 선 채로 그에게 꿰뚫려야 했다. 급하게 찔러오는 것에 소리를 죽이지도 못하고 까무러치는데, 마침 빈 그릇을 가지러 온 배달원이 문밖에서 달그락거리며 한마디 툭 내뱉곤 쏜살같이 복도를 뛰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저게―!’

무진이 투견 같은 얼굴을 실룩이며 곧장 문밖으로 뛰쳐나갈 것처럼 구는 것에, 나는 얼른 아래를 조이며 옅은 신음을 흘렸다.

‘…….’

씩씩대다 말고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린 무진은 시무룩한 얼굴로 눈을 몇 번 끔벅이다, 결국 와락 덮쳐 오며 사나운 허리 짓을 시작했다. 그리고 사정할 때는 빼내어 달라는 내 부탁을 무시하고 기어이 이번에도 안쪽에다 정액을 쏟아 내며 허리를 철벅였다. 나는 그의 어깻죽지를 가볍게 물었다.

주홍색 싸구려 커튼 너머로 오로라 같은 새벽빛이 스며들어 왔다. 우리는 완전히 발가벗은 채 다리를 교차시켜 잠이 들었던 자세 그대로였다. 바닥 잠이 불편할 텐데 무진은 쿨쿨 소리까지 내며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그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며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앉았다. 발목부터 어깨 근육까지 결리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작은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기 위해 무릎걸음으로 기어가는 동안, 늙은이처럼 끙끙 앓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아…….”

그리고 차가운 물을 벌컥벌컥 마시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제야 무진의 엉망이 된 얼굴은 물론이고 어깨와 팔, 옆구리와 허벅다리의 울긋불긋한 멍이 눈에 들어왔다.

예순이 훌쩍 넘은 아버지가 아직도 정정하셔서 이제는 골프 대신 야구에 심취해 있다는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제 어린애도 아닌 다 큰 아들을 야구 배트로 때릴 것까지는 없지 않나.

울컥하는 마음에 나는 보는 사람도 없이 입술을 실룩였다. 그리고 품 안에서 내가 빠져나가자 이제 대자로 뻗어 편안히 눕는 그의 곁으로 주춤주춤 다가가 무릎을 쪼그리고 앉은 채 얼굴을 살폈다.

“…….”

급하게 반창고를 붙인 듯 피딱지가 흘러 굳은 눈썹 부근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 문득, 관계 도중 머리부터 발끝까지 내 속으로 들어오고 싶다 하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내게 자궁이 있다면, 너를 낳고 싶다. 소리 없는 대답으로 입술을 달싹이며 나는 손끝으로 조심히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으음…….”

그러다 문득 그가 잠결 소리를 내는 것에 화들짝 놀라 손을 떼고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그가 조금 뒤척이다 말고 다시 깊은 숨소리를 내며 잠드는 것을 확인하고, 조용히 반대쪽 벽으로 기어가 등을 기대고 앉았다.

창문 밖에서 누군가 자전거를 타고 가며 찌릉찌릉 벨을 울렸다. 전선주 위에 앉은 새들이 요란하게 지저귀고, 멀리서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그렇게 새벽은 가고 아침이 왔다. 작고 요란한 소음이 들릴 때마다 나는 흠칫흠칫 놀라며 무진의 얼굴을 살폈다.

그는 자신의 허물까지 드러내 보이며 내 죄를 덮어 주려 했지만, 나는 끝내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벗어낼 수 없었다. 다만 네가 너무 애처롭게 느껴져 고통스럽다 말하면, 그는 너털웃음을 지을 것이다.

아침 햇살이 환하게 밝아오는 것을 느끼며 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릎뼈가 우둑 소리를 냈다. 힐긋 무진의 얼굴을 계속해서 살피며 조심스럽게 속옷을 챙겨 입고 겉옷을 껴입었다.

그리고 지갑과 신발 한 켤레를 양손에 쥐고 살며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낡은 문이 끽, 소리를 낼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를 살폈다. 안전히 문을 닫고 복도에 나와 서서야 신발을 구겨 신을 수 있었다.

현관 입구의 작은 카운터 안에서 여관 주인은 초췌한 얼굴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똑똑, 창문을 두드리자 여자는 후다닥 놀란 기색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나를 발견하곤 ‘으응, 왜.’ 하고 좁은 창문을 열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저기… 이 근처에 약국이 있나요?”

“응, 있지. 나가서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다방 하나가 나와, 그거 끼고 또 오른쪽으로 돌면 곧바로 보일 거유.”

“예, 고맙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인 후 나는 곧장 건물 밖으로 나갔다. 좁은 창문 너머로 여자가 얼굴을 삐죽 내밀고 나를 빤히 훑어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힐긋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고개를 꾸벅이곤 걸음을 옮겼다.

단조로운 골목길에서 여자가 알려 준 길을 찾는 것은 쉬웠다. 꽃님 다방을 끼고 오른쪽으로 길을 꺾을 때에는 마침 경적을 찌릉찌릉 울리며 우유 배달원이 빠르게 자전거를 몰고 오는 것이 보였다.

“저기……!”

나는 그를 급하게 불러 세웠다. 끼익―,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자전거가 섰다. 아르바이트 중인지, 아직 고등학생도 되어 보이지 않는 소년은 200㎖ 우유 두 개에 삼천 원을 달라고 했다. 혼을 내려다 말고 번거로워 그냥 달라는 대로 줘 버렸다.

그리고 여관 주인의 말대로 곧바로 보이는 약국으로 들어가―마침 약사로 보이는 사람이 셔터를 올리는 중이었다― 상처 치료 연고와 반창고, 타박상에 잘 듣는 파스 등을 샀다.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는데, 돌아오는 길에는 어느새 길가의 상점들 모두 문이 열려 있었다. 그리고 다시 꽃님 다방을 끼고 왼쪽으로 발길을 꺾는데,

“야 이 새끼야!”

멀리서 무진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이쪽으로 헐레벌떡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조용한 골목에서 그의 목소리가 왕왕 울렸다.

아침부터 뜬금없는 욕설을 들어 먹고 어리둥절해져, 나는 제자리에 선 채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를 기다렸다.

“여승재 너!”

그리고 삽시에 내 앞으로 바짝 붙어선 그가 씩씩대며 또 컹컹 목소리를 높이는 것에, 나는 그저 비닐봉지 안에서 우유 하나를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어 보였다.

그런데 그것을 빤히 쳐다보던 무진은 돌연 ‘이씨……!’ 성질을 내며, 집어 든 것을 냅다 바닥으로 패대기를 쳐 버리는 것이다.

“…….”

나는 묵묵히 바닥에서 갑이 터져 하얗게 흐르는 우유를 쳐다보았다. 그동안에도 무진은 화를 억누르지 못하고 내 이마를 향해 훅훅 뜨건 숨을 뱉어 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다시 그와 곧게 눈을 마주하며 나는 봉지에서 남은 우유 하나를 또 꺼내어 들었다. 그리고 그가 했던 그대로, 반대쪽 바닥으로 냅다 그것을 던져 버렸다.

퍽, 갑이 터지며 우유가 바닥을 흥건히 적셨다.

“…….”

씩씩대던 그가 입을 꾹 다물고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눈길을 옮겨 내가 든 비닐봉지 속에 투명하게 비치는 파스와 연고 등을 훔쳐보며 무안한 듯 쩝, 입맛을 다신다.

나이 들어 조금 어른스러워졌나 싶은 생각을 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 그대로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나는 허탈감마저 느꼈다.

“너 그 성질 안 죽이면, 나 너랑 안 살아.”

쌩 하니 말하고 나는 무릎을 구부려 내가 터트린 우유갑을 주워들었다. 이미 바닥에 퍼져 흐르는 우유는 어쩌지 못하더라도 머물러 사는 곳 아닌 데에 와서 이런 행패라니, 누구 보는 사람이 없어도 창피스러웠다.

탈탈 우유를 털어 갑이라도 주워 다시 봉지에 넣고 돌아서는데, 뒤에서 무진이 머쓱한 얼굴을 한 채 이미 자신이 터트린 갑을 주워 들고 서 있었다. 제대로 털지 않아 아직 우유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놔두고 혼자 잰걸음을 옮겼다. 그가 말없이 뒤를 따라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여관방에 돌아올 때까지 나는 그에게 눈길을 주기는커녕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먼저 욕실로 들어가 늦은 세안을 하고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으며 나왔더니, 무진이 텔레비전을 켜 둔 채 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

자리에 앉아 한쪽에 놓아둔 봉지를 끌어와 연고 등을 바닥에 쏟아 내자, 무진은 얼른 텔레비전을 끄고 내 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그리고 자연스레 얼굴을 내맡기는 것에, 나는 말없이 피딱지가 앉은 부분에 소독을 해 주고 연고를 발라 주고 또 필요한 부분에는 반창고를 붙여 주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몇 번이나 내 손목을 끌어당기며 입술을 부딪치고, 나는 또 그런 그의 어깨를 밀치며 ‘하지 마, 하지 마.’ 같은 말을 반복해야 했다. 눈을 마주치지 않아도, 그가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계속해서 히죽 웃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웃지 마, 보기 싫어.”

“하룻밤 새에 또 냉랭해졌네.”

반창고를 떼어 내고 남은 포장 껍질을 돌돌 말아 구기다 말고, 그것을 그의 얼굴을 향해 획 하니 던지며 쏘아붙이자, 무진은 금세 시무룩한 표정을 만들어 보이며 대꾸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맞고 튕겨난 종이 껍질을 주워 다시 던지며 반박했다.

“네가 아침부터 한 짓을 생각해 봐.”

“…죽일게.”

“뭐?”

“성질, 죽여 준다고.”

“…….”

자신의 이마를 맞고 바닥에 떨어진 종이 껍질을 먼저 주워 든 무진이 그것을 손안에 꼭 감싸 움켜쥔 채 너그러운 음성으로 대꾸했다.

무려 죽여 ‘준다’고 하는 말에는 어떤 포용력까지 느껴져, 나는 잠시 그가 이제껏 성질을 부린 것이 타당한 일이었다는 착각이 들 뻔했다. 아연해져 입을 헤벌린 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를 힐긋거리며 무진은 쑥스러운 듯 비식 웃으며 이어 말했다.

“너 나하고 같이 산다 그랬어. 네가 먼저 그랬어.”

“…죽었다 깨어나도 넌 그 성질 못 고쳐.”

“네가 같이 산다 그러면 고쳐.”

“조건은 내가 먼저 내걸었잖아.”

“어쨌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것에 나는 결국 두 손을 들어 버렸다. 그리고 파스를 꺼내어 포장을 뜯는 것을 보며 무진은 또 얼른 웃통을 훌렁 벗어젖혔다.

“이거 엑스레이 찍어 봐야 되는 거 아니야?”

어쩐지 새벽에 봤던 것보다 더 퍼렇게 물들어 있는 어깻죽지를 꾹 누르며 근심 어린 목소리로 묻자, 통증이 심하지는 않은지 무진은 그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제 병원 먼저 잠깐 들렀다 왔어. 뼈가 부러진 건 아니야.”

“…너 갈비뼈는. 또 금 간 거 아니고?”

다행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럽게 파스를 붙여 주다가, 순간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몸통에 붕대를 감고 누웠던 것이 떠올라 놀란 목소리로 묻자, 그는 이번에도 그저 히죽 웃어 보이며―

“무식하게 튼튼하다고 했잖아.”

여상히 대답할 뿐이었다.

아아, 정말 다행이다,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저 파스를 붙여 주었다. 그리고 또 한 장을 떼어 그를 등 돌려 앉게 하고 푸릇한 곳에 맞추어 붙이려는데, 문득 퍽 유쾌하지 못한 생각이 불쑥 떠올랐다.

“너 아예 처음부터… 금 갔다는 것도 거짓말 아니야?”

“…처음에 진짜로 금 갔어.”

그의 어깨 너머로 빠끔 고개를 내밀어 의뭉스럽게 묻는 말에 무진은 조금 주저하며 대답했다. 얼굴로 서늘한 핏기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무식하게 튼튼한 덕에 회복도 금방 됐겠네?”

“…….”

회유하듯 속삭여 묻는 말에는 그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나는 파스를 마저 붙이며 그의 등짝을 철썩 후려쳐 버렸다.

“아흐으……!”

무진은 급하게 허리를 꺾어 앓는 소리를 내면서도 키득대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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