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1권)
(1/41)
Prologue(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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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너는 나를 무참히 할퀴었다, 봄이 지나 시든 이름 모를 꽃처럼 내 모가지를 꺾고 오물처럼 내팽개쳤다.
우리에게도 한때 아름다움으로 번뜩이던 나날이 있었다.
모태의 부재와 함께 시작된 내 생은 꽁꽁 언 강물, 너는 콘크리트를 깨뜨리는 폭력처럼 나를 깨웠다. 내 새파란 입술 속으로 네가 욱여넣은 건 무엇이었던가.
그 이름을 알 수 없어 미련한 눈꺼풀을 슴벅일 때, 너는 날카로운 이빨로 내 탯줄을 끊었다. 내내 비어 헛헛했던 내 속으로 네가 가득 채웠던 것의 정체를 몰랐다.
그 경이로웠던 순간이, 우리에게, 아니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너는 나를 할퀴고, 달랑이는 내 모가지를 그저 내버려 두고 가 버렸다. 그 후로 나는 계속 허기가 졌고, 빈속으로 울었고, 이윽고 낮게 늘어뜨려진 몸뚱어리로 다시 한번 영하의 체온으로 결빙되어 갔다.
그리고 조소처럼 시간이 나를 퉤, 퉤, 뱉어 낼 때마다 나는 그저 힘없이 흐르기만 했다. 흘러, 흘러서 죽음처럼 살았고, 지금 다시 너를 만났다.
너는 나를 무참히 할퀴었다, 봄이 지나 시든 이름 모를 꽃처럼 내 모가지를 꺾고 오물처럼 내팽개쳤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흐르기만 했던 그 시간의 너머에서 다시 만난 네 앞에서 나는 오래전 네가 심어 놓은 열꽃의 씨앗이 번짐을 아프도록 느낀다.
죽음조차 나를 택하지 않았던 운명이 오롯이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는 듯, 마치 오랫동안 너에게 온전히 분질러지기만을 위해 기다렸다는 듯이, 또 한 번 내 속의 열꽃이 주둥이를 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