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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5 헤르난데즈 디볼로 (22/47)

13.5 헤르난데즈 디볼로

남자는 어두운 골목길을 걷고 있었다. 제법 비틀거리던 걸음은 차차 제대로 된 걸음이 되었다. 상처가 낫고 있었다. 흘끗 내려다보자, 엉망이 되었던 팔이 반 이상 재생되었다. 무섭도록 빠른 치유력은 그가 가진 짐승의 힘 중 하나였다.

차츰 줄어든 팔에서 뻑뻑하게 난 하얀 털이 사라지며, 새하얀 피부가 돋아났다. 짐승의 팔에서 사람이 것이 된 팔을 바라봤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움직이는 데 문제없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그의 품속에는 소녀가 고이 잠에 빠져 있었다. 계약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기절했으니, 소녀가 깨어나려면 이틀은 걸리리라. 아실리가 자면서 끙 미약한 신음을 흘렸다. 그는 소녀를 한번 보고는 꼭 안아 보았다.

작다. 그리고 따뜻하다. 모진 풍파를 견디기에 너무나도 가녀린 몸이었다.

“……황녀님.”

헤르난은 고개를 들었다. 조금 전부터 찌를 듯한 살의가 느껴지고 있었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 한 남자가 보였다. 짙은 남색 머리카락, 검정으로 보이는 남빛 눈동자. 레이였다. 헤르난은 이미 수 분 전 레이의 기척을 알아챘지만, 모른 척했다. 소녀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기에.

마지막이니까.

“레이 아퀴타 플레람.”

소녀의 기사에게 소녀를 넘긴 헤르난이 천천히 말했다. 나긋하고 단조로운 목소리는 읊조리는 것에 가까웠다.

“황녀님을 잘 부탁합니다.”

그답지 않은 우울한 어조에 남자는 흘끗 헤르난을 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말 안 해도 알아서 해. 내 의무니까.”

희미하지만, 레이가 끓어오르는 분기를 참는 것이 느껴졌다.

헤르난은 피식 웃었다. 이 순간 레이 아퀴타는 알아 둘 것이 있고, 헤르난은 말해야 했다.

“말해 둘 것이 있습니다.”

그는 돌아서는 등을 향해 뇌까렸다.

“다음에 나를 볼 때, 우리는 적입니다.”

“……언제는 아니었던 것처럼 말하는군.”

경계 어린 레이의 말에 헤르난은 다시 웃었다.

“당신이 나를 아직 한때의 친우로 여긴다면, 망설임 없이 나를 찌르세요.”

멈칫, 헤르난이 낮게 지껄이는 그 말에 멈추고 만 등이 보였다.

“아니. 온 힘을 다해 죽이는 것이 좋을 겁니다. 더는 내가 아닐 테니.”

바라본 눈에 레이는 할 말이 많아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벌어지던 입술은 끝내 말을 머금는 일 없었고, 남자는 성큼성큼 멀어졌다. 대꾸 없는 등은 그것으로 헤르난에게 답이 되었다.

‘정말이지…….’

헤르난은 웃음을 터트렸다. 참으로 언제 봐도 고지식한 남자라고.

쥐 죽은 듯 고요한 골목, 레이마저 빠져나간 골목에 홀로 남았다. 헤르난의 고향, 짐승의 도시 마지막은 지금과 같이 고요했다. 모두가 축제의 장으로 떠난 지금 이곳은 사람이 없는 폐허나 다름없었다. 적어도 헤르난에게는 그랬다.

헤르난은 쏟아지는 아련한 기억들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어느새 헤르난은 고향 위에 서 있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 모두가 살해당한 뒤 폐허가 된 도시에서 기억은 용솟음쳤다.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등을 기대어 고개를 젖힌 헤르난이 자신의 눈을 가렸다. 하늘에 뜬 달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제, 그의 세상에 달은 없으니까.

‘황녀님. 아니 내 「동반자」.’

그는 오늘 스스로 안녕을 고했다.

돌고 돌아, 그는 자신의 세상이 시작했던 최초의 기억을 떠올렸다.

* * *

짐승의 도시, 브루툼.

이곳은 수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음에도 척박한 도시였다. 황폐한 땅과 거대한 암벽, 앙상한 숲만이 존재했고 이 때문에 그리 많은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이 없고 넓은 땅은 짐승의 신관들에게 더없이 좋은 땅이었다. 그들은 충동에 못 이겨 부수곤 했으니까.

고대, 거대한 짐승이었던 것을 주신이 아껴 하늘로 데려와 신으로 삼은 반신半神이 짐승의 신이었다. 반신이란, 절반의 신과 절반의 신이 아닌 부분으로 이뤄진 신.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짐승의 힘을 이어받은 신관들의 힘은 불안정했다. 이 때문에 신은 인간과 짐승 사이에서 미쳐 버리는 이들을 위해 「동반자」라는 존재를 제약으로 걸었는데, 「동반자」와 함께하면 온전히 인간으로 살 수 있도록 안정된 신관의 삶을 위해서였다.

분명 처음은 그랬다. 갈수록 변질되고 말았지만.

헤르난 듀르젤 폰 디볼로는 공작 아들이자 짐승의 신관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유스난은 짐승의 신전 대신관이었고, 그의 어머니인 크리샤는 유스난의 「동반자」였다. 짐승의 신관과 「동반자」 사이에 태어나는 아이는 대개가 짐승의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헤르난 또한 이 규칙에 따라 짐승의 신관이 되었다.

그리고 짐승의 신관은 이름처럼, 짐승으로 태어난다. 모습은 인간이나, 보통 인간의 몇 배에 달하는 힘과 함께 파괴와 살육의 본능과 함께였다. 그래서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크고 작은 사건을 일으켰다. 그들이 이 땅에 유폐되다시피 한 것은 그런 이유였다.

깜깜한 지하실, 문틈으로 희미한 빛이 새어 들어왔다. 빛은 차차 공간을 채워 가다가 곧 활짝 열린 문으로 빛이 쏟아졌다. 성큼성큼 들어온 남자가 창살 앞에 멈춰 섰다. 철컥, 쇠가 겹치는 마찰 소리 뒤로 방 중간을 나눈 창살이 열렸다.

유스난은 짐승의 신관이란 곧 떠돌이 개와 같다고 생각했다. 짐승의 아이는 야성을 가진 채로 본능의 광폭함과 함께 태어나기 때문에 격리될 필요가 있다. 인간처럼 말을 못하고, 본능만 남은 짐승을 길들이기 위해 그와 가문의 선조들이 택한 방법은 먹이와 약간의 훈육과 나머지 체벌이었다.

짝.

“음식은 손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나.”

그는 이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여겼고, 또한 그렇게 나고 자란 신관이었다. 짐승의 대신관이기도 한 공작은 제 아들이자 어린 짐승을 혹독하게 교육했다.

모든 짐승의 신관이 혹독한 체벌과 함께 자란 것은 아니었다. 유스난이 유별나게 혹독했을 뿐. 그러나 충동을 억제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린 시절 헤르난은 유스난마저 버거워할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그건 헤르난의 불행이었다.

“나오거라.”

그리고 몇 년의 교육을 거쳐 마침내 사회화가 되었다 여긴 유스난은 헤르난을 지하실에서 나가게 해 주었다. 물론 한시적인 외출이었다. 그리고 헤르난은 처음으로 바깥세상을 보게 되었다. 눈부시도록 밝은 햇살 아래 발을 디뎠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이분이 대신관 후보시군요.”

짐승의 신관들은 어린 후계자를 따뜻하게 맞이했다.

본디 짐승의 신관이란 언제 충동에 지배되어 죽을지 모르는 이들이었기에 서로에 대한 유대감이 각별했다. 건국 초부터 쭉 소수로 유지되어 온 신전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는 얼굴로 이 척박한 도시에 나타난 어린 짐승을 맞이했다.

“「동반자」가 태어난 날에 꽃이 필거야. 별이 떨어지기도 하지.”

“꽃이 뭔가요?”

“그날이 되면 알게 될 거란다.”

나이 많은 노신관이 말했다. 그는 신기한 것들을 얘기해 주었다. 꽃이니, 별이니. 척박한 짐승의 땅에서는 보기 힘든 것 중 하나가 꽃이었고, 또한 밤이 되면 다시 창 없는 지하실로 돌아가야 했으므로 단 한 번도 별을 보지 못했다. 그저 막연히 지금 바라보는 화창한 날처럼 기분 좋은 것이겠거니 생각했다.

헤르난이 밖으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자, 그의 모친은 대신관인 공작에게 빌었다.

“여보, 부탁이니 헤르난을 창이 있는 방에라도 넣어 줘요. 그 애는 아직 어린아이에요. 네?”

줄곧 지하실에서 지내는 아들을 안쓰러워했던 모친이 사정사정하여 헤르난의 방은 조금 큰 곳으로 옮겨졌다. 여전히 지하실이었지만, 작은 창이 있었다. 창살이 달린 사이로 하늘이 보였다.

그날 밤. 헤르난은 처음으로 밤을 보았다. 동그랗게 뜬 은색 구체를 바라보며 모친에게 물었다.

“이건 달이란다. 아름답지?”

새까만 장막을 가득 채운 별을 보았다. 이것이 밤이구나, 별이구나.

“별이 떨어지는 날에 소원을 빌면, 별의 신이 소원을 들어준단다.”

모친 크리샤는 신관의 자질을 가졌으나 신관이 되지 못한 여자였다. 그녀가 믿는 신은 여자를 신관으로 받아 주지 않았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동반자」로서 유스난에게 발견되어 팔려오다시피 이곳에서 결혼했다.

그러나 그들은 세간에서 말하는 운명적이며, 낭만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아들을 사랑했지만, 남편을 사랑하지 못한 여자였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외도가 잦은 공작을 보며 헤르난에게 이리 말하곤 했다.

“나는 네가 신관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언젠가 네가 「동반자」를 만나게 되더라도, 사랑은 아니라고 생각하렴. 그저 네 충동을 억제하게 해 줄 뿐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 건 아니란다. 사실…… 사랑이란 의미가 없는 거란다.”

헤르난이 본능을 스스로 어느 정도 억제할 정도로 성장했을 즈음, 그날은 오래지 않아 찾아왔다.

펑.

아주 먼 곳에서 들리는 불꽃의 소리. 하늘을 수놓은 저것은 무엇일까, 어린 짐승이 창살을 붙잡고 매달렸다.

<오늘은 건국제란다.>

건국제가 뭘까, 어린 짐승이 순진하게 눈을 깜빡거렸다. 건국제의 불꽃은 몹시도 크고 아름다워서 짐승의 도시에서도 보일 정도였다. 하지만 아름다웠던 것은 하늘의 불꽃만이 아니었다.

<네가 조금만 더 크면, 언젠가 황녀님의 아름다운 춤을 함께 보러 수도로 가자꾸나.>

그때였다. 그의 눈에 기묘한 환상이 보였다.

지금 보이는 화사한 불꽃보다 더욱 예쁘고 아름다운, 어떤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봄이 그날 지하실에 피어났다.

「동반자」

모두가 한입으로 말하던 꽃과 별과 하늘과 그리고 세상이 다시 시작되며 헤르난은 깨달았다. 누군가 심장 안으로 들어왔구나. 온몸을 간지럽히고 지나가는 감각은 포근했으며, 황홀한 속박이었다.

그 밤, 그날은 그의 세상이 뒤집힌 날이었다. 「동반자」의 생각에 심장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 순간 신력의 힘인 듯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동반자에 대한 힌트를 주려는 것처럼 선명한 이미지를 그려냈다. 눈앞을 물들인 보랏빛의 빛무리 속에서 어린 짐승은 인간이 되었다.

‘여자? 커다란 집 또…….’

바라본 환상을 중얼중얼 거려본다. 그가 갇힌 지하실의 창문으로 어렴풋이 불꽃이 보였다. 심장의 박동은 불꽃이 터지고 있는 도시를 가리켰다. 수도였다.

어린 짐승이 고개를 들었다. 선명한 심장 박동이 느껴졌다.

‘아아.’

저곳에 「동반자」가 태어났다.

* * *

후계자의 「동반자」가 태어났다.

헤르난의 「동반자」가 탄생했다는 소식은 공작에게도 전해졌다. 그리고 소식을 들은 즉시 움직였다. 한시 바삐 찾아 아들에게 안정된 삶을 안겨 주고 후계자로서 자리 잡게 할 생각이었다.

“이제 자유롭게 나가도 좋다.”

헤르난에게 동반자가 나타나자,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한 유스난은 헤르난에게 자유를 주었다. 유스난이 헤르난의 「동반자」를 찾는 동안 헤르난은 도시와 신전을 마음껏 돌아다니게 되었다.

짐승의 도시는 컸으나 비어 있는 땅이 많았고, 광활한 땅 대부분이 황무지였다. 헤르난은 다른 짐승의 신관들에게서 신력을 쓰는 법에 대한 조언을 받거나 그들에게 검과 병장기를 배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짐승의 신관들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하는 신관도 꽤 있었기 때문에 자식을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대부분 어린 그를 무척이나 예뻐했다.

‘이 방은 뭐지?’

유스난은 헤르난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을 허락했지만, 단 한 곳만은 출입을 금했다. 그곳은 자신이 갇힌 지하실보다도 더 아래에 위치한 방이었다. 이상했지만, 그는 기꺼이 아버지의 명을 따랐다. 오래 전 지하실에서 혹독한 체벌은 그를 순종하는 아이로 만들었으니까.

―커흑, 살려, 살려 주세요…….

그래서 간간이 예민한 오감에 들려오는 소리를 무시했다. 그 말은 자신이 아비에게 죽도록 맞아 가며 토해 냈던 소리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아비는 그 소리가 잘못됐다 가르쳤으니까. 너는 짐승이고, 이런 폭력이 당연하다고.

그렇기에 헤르난은 성에 갇힌 무수한 여자들을 모른 척했다. 그들이 신관의 자질을 가졌음은 눈치챘지만 그가 알 필요 없는 일이었다. 아니, 그 여자들이 이곳에 잡혀 와 어디로 가게 되는지 알지 못했다. 아주 가끔 탈출한 여자들이 짐승의 신관 손에 잡혀 와도 물끄러미 볼 뿐이었다.

“어머니, 저 여자들은 어디로 가나요?”

“글쎄다……. 몰랐으면 하고, 알았으면 싶기도 하구나. 아마도 네 아비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가게 될 곳이었을지 모르니.”

끔찍한 일이구나. 크리샤가 진저리치며 말했다. 헤르난은 무심히, 모친의 말로 이게 끔찍한 일이구나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뿐이었다. 때로 모친은 구슬피 울기도 했다.

<아가, 난 네가 신관이 아니었으면 했어. 이 나라는 너무나 끔찍하구나.>

어머니가 어린 자신을 잠재우며 했던 말은 머리에, 그리고 가슴에 오래도록 남았다.

* * *

“누님은 그게 문제요.”

“말투가 듣기에 거슬리는구나.”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황궁에서 마차가 도착했고, 도시에 귀한 손님이 방문했다는 소식이 도시에 파다하게 전해졌다. 그날도 신전을 활보하던 헤르난은 두 남녀와 만났다. 소년과 여인이었다. 헤르난을 눈치챈 쪽은 여자가 빨랐지만, 말을 건 것은 소년 쪽이었다.

“누님 저 애, 공작의 아이인가 본데?”

“……그렇겠지. 꼭 닮지 않았느냐.”

성큼 걸어온 소년이 불시에 헤르난을 번쩍 들어올렸다. 이야, 가벼운데? 하고 마치 아주 작은 어린아이를 어르듯 들어 올린 소년은 앳된 외모와 다르게 몹시 장신에 호수처럼 푸른 머리칼을 가지고 있었다.

“안녕? 난 3황자 아벨 클라우드 칼타니아스란다.”

“아벨.”

“저기 계신 아름다운 분은 내 누님 에리스 네베 네메시스 칼타니아스. 2황녀님이시지.”

황녀? 황자? 헤르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분명 도시를 방문한 귀한 손님이란 이들을 말하는 듯했다.

“아벨, 참고로 그 애, 너와 두 살 차이란다.”

“진짜?”

여자가 도도하게 고개를 돌렸을 때, 헤르난의 시선은 푸른 머리의 여자를 따라가 멀리서 걸어오는 여자를 보았다. 그 순간, 쿵. 커다란 울림이 귀를 두드렸다.

쿵.

‘……아.’

가시처럼 찌르는 감각 속에서 두근두근 심장이 뛰고 있었다. 어째서? 이유 없이 쿵쿵 뛰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걸어오는 여자 때문인가 하면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는 더, 더 가까운…… 그리고 여자가 안고 있는 아기에 닿았다. 그때, 황녀가 여자를 불렀다.

“아올레시아.”

“에리스.”

여자가 살며시 웃었다. 자색이 섞인 고운 은발이 하늘하늘 나부꼈다. 몹시도 아름다운 여자였으나 헤르난의 시선은 여자를 향해 있지 않았다. 여자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아기를 안고 있던 여자는 헤르난을 보고 놀란 듯 눈을 깜빡이다가 그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안녕? 어린 짐승의 신관님.”

“아.”

“내 아기에게 축복을 내려 주겠니?”

본능적으로 알았다. 심장이 아프도록 죄이는 감각, 이 사람이다.

“제국의 3번째 황녀란다. 이름은 아실리 로제 칼타니아스야.”

내 「동반자」라고, 본능이 외치고 있었다.

* * *

짐승의 도시는 유적지로 가득한 도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황궁에서 온 손님들도 유적지를 보러 왔나 하며, 그들이 잠깐 머무르겠거니 하고 사람들 대부분은 생각했다.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8후궁 아올레시아와 3황자와 2황녀가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리고 이들의 목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랐다.

‘우스운 일이지. 여자가 후계자의 힘을 지녔고, 그 힘을 봉인한다니 말이야.’

2황녀 에리스는 이 상황을 비웃었다. 그녀의 감정을 따라 커튼이 요동치기도 했고 테이블보가 공중에서 펄럭거렸다. 그녀의 옆에서 마찬가지로 바람의 신관인 3황자는 나이 많은 누이의 화를 곤란한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아올레시아, 네 딸도 내 언니와 같은 길을 걸을 거야. 열여섯 살이 되면 수정에 갇혀 평생 수정에서 신력을 충당하는 살아 있는 제물이 되겠지.>

<그럼, 열여섯 살이 되지 않으면 되겠구나.>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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