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사자와 이리의 티 파티 ⑵ (12/47)

7. 사자와 이리의 티 파티 ⑵

언젠가, 의상을 전공했던 친구와 드레스에 관해서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시작은 술집 안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던 영화였다. 영화 속 키이라 나이틀리의 드레스는 몹시도 화려했다.

<와, 레이스며 리본이며 대체 얼마나 달아 놓은 거래? 저땐 저게 비싸고 좋은 거였겠지?>

화려한 드레스를 보고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더니 친구는 씩 웃으며 취기에 이런저런 말들을 꺼내 놓았다.

<야, 너 저거 코르셋이 얼마나 쪼이는지 모르지? 내가 실습하면서 한번 입어 봤거든? 사람 죽어, 죽어.>

저 시대는 머리를 엄청 부풀려 만든 스타일이 유행했단다. 머리 높이가 무려 반 미터가 족히 넘어서 목이 부러져 죽는 사람도 있었고. 이게 전부 사치의 말로라며 킬킬대며 웃었다. 너랑 나랑은 평생 관계없을 일이지. 나와 친구 사이에 소시민이란 공통점이 있었던 때였다.

‘그때 비웃던 옷을 내가 입었네.’

오늘 입은 드레스는 그날 영화에서 봤던 드레스를 생각나게 한다. 섬세한 잔꽃 무늬. 타이트한 디자인에 가슴은 봉곳한 선을 드러냈다. 풍성한 치맛단에 단추가 있어 이를 활용한 개더 주름이 잡혀 있다.

‘여기에 유리 구두만 있다면 신데렐라인데.’

동화 속 신데렐라에게는 백마 탄 왕자가 있지만 여기에는 없다. 화려한 나를 보고 있으니까 날 이런 지옥에 던져 버린 신이 생각날 뿐이다. 더는 이전에 꿈꿨던 드레스가 반갑지 않다.

‘꿈꿨던 로망이 만끽하지 못하는 만신창이일 때 실현됐으니 그저 담담할 뿐이지.’

도대체 몇 겹을 껴입었는지. 숨이 막힐 정도로 코르셋을 죄이던 순간에 나는 우아하게 숨을 참기는커녕 캑캑대며 헛기침을 토했다. 욕은 간신히 참았다.

“알려 드렸던 것은 모두 숙지하셨습니까?”

“으응.”

남색 드레스를 입은 레베카는 무척 아름다웠다. 이대로 그림으로 남겨 두어도 좋을 것 같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레베카는 전시된 보석같이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함을 뽐냈다. 빛 아래서 불길처럼 화사하게 빛을 난반사하는 붉은 머리칼은 그녀의 큰 특징이다.

“마차를 불러 두었으니, 잠시 기다리죠.”

“응.”

평소보다 제약된 행동에 불편을 느끼며 테이블 의자에 등을 기대고 있는데, 손등 위로 새까만 그림자가 아롱졌다. 고개를 들자, 뺨 위로 서늘한 촉각이 느껴졌다.

“레베카, 지금 내 뺨을 보고 있는 거지?”

“……예. 불편하신지요.”

“으응.”

레베카는 그저 나를 바라보면서 미미하게 인상을 찌푸린다. 물끄러미 나를 응시하는 시선에서 불현듯 생각이 들었다. 레베카는 한 번도 내 뺨에 대해서 지적한 적이 없었다.

“불편하지 않아.”

나는 고개를 젓고 대꾸했다.

“레베카가 궁금해하는 눈이어서. 알려 줄까?”

“주인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면요.”

이건 그녀 나름의 배려였을까? 사실 그녀는 제일 먼저 상처를 지적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하나…….’

걱정이 엉켜들었다.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던 것인지,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긴 내가 레베카였더라도 주인이 뺨에 혈선 같은 흉터를 지니고 백치처럼 해사하게 웃고 있으면 궁금할 것 같긴 했다.

“나도 자세히는 몰라. 내가 태어나던 시기쯤의 일이야. 아주 충격적이고 비극적인 일이 있었다고 해.”

“……비극 말입니까?”

“응. 천둥이 치던 날,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내가 사라졌대. 일주일 뒤인가 유모가 날 발견했을 때 이미 이 흉터가 있었다더라.”

“……주인님께서도 이유를 모르시는 거군요.”

“응. 유모와 하녀장은 쉬쉬하지만, 이건 아무도 고칠 수 없고 절대 낫지도 않는다고 해. 그래서 뭐라고 했더라.”

“「신의 저주」.”

“응, 그래. 「신의 저주」라고 했어.”

“어떤 치료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으며 치료 신관의 치료로조차 불가능한 상처…… 말이로군요.”

“맞아. 이런 걸. 신이 노하셔서 내리는 상처라고 그렇게 부른다며? 내가 태어나던 날에 무슨 일이 있던 걸까?”

내 얼굴의 삼분지 일을 가로지른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호기심은 어린 시절에서 그쳤다. 역병을 피해 도피한 동쪽의 영지에 있을 무렵의 기억도 이제는 희미할 뿐이다.

그곳에서 무수한 상처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누가 저 흉측한 것을 데려간단 말입니까?>

<황실에 저런 끔찍한 것이 태어나다니, 역시 이번 황제께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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