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0. 프롤로그 (1/47)

0. 프롤로그

……어째서일까. 난 그저 금지된 숲을 조금 살펴보려 한 것뿐인데.

“컹컹컹!”

사나운 울부짖음은 오로지 울타리로 올라간 나를 노리고 있다.

상대는 거대한 개였다.

이빨의 견고함은 이미 책 하나를 통째로 씹어 삼키는 모습을 보며 익히 실감했다. 칼처럼 뾰족한 발톱을 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살갗쯤은 아무렇지 않게 파고들 것처럼 보인다. 결국 조금 뒤 일어날 결과야 보지 않아도 빤했다.

“……이럴 땐 꿈이라고 믿고 싶다.”

모든 것이 말이야. 당장 뇌의 개조라도 받아서 기나긴 환상을 보고 있다거나. 눈을 감고 있을 때 전부 사라지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젠장, 내 인생 왜 이러냐고.

환생하기 전 세상이 그립다. 눈을 뜨면 아무렇지 않게 침대에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지긋지긋하던 회사로 출근할 준비를 할 수 있다면.

“젠장.”

그러나 섬뜩한 귀기가 그럴 수는 없다며 침체하는 정신을 낚아 강제로 끌어 올렸다. 꿈이 아니다. 뺨을 꼬집어 봐도 선명한 통증이 느껴진다.

죽을지도 몰라.

이대로 있다간 정말 죽고 말겠지. 하지만 방법이 보이지 않는데 어떤 방법으로 도망간단 말이야?

환생해서 좋은 건 하나도 없고, 어째서 늘 이딴 것들과 엮이는 일상일까? 종교에 귀의했던 지인이 환생은 신의 선물 어쩌고 했는데, 순 다 뻥인 것 같다. 뭐 이런 거지 같은 선물이 다 있단 말인가.

한숨을 쉬던 그때, 황소만 한 개가 휙 몸을 세웠다.

“으악!”

깜짝 놀라 다리를 일으켰지만, 끝자락이 부욱, 찢어진 뒤였다.

“컹! 컹컹컹!”

약이 바싹 오른 개가 울타리를 발톱으로 박박 긁기 시작했고, 기둥이 기울어졌다. 억. 기겁하며 울타리에 매미처럼 찰싹 달라붙는다.

“저, 저리 가! 가라고!!”

“크앙!”

개의 몸통 박치기에 말뚝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젠장! 대체 개에다가 무슨 짓을 하면 이렇게 어마어마한 크기가 되는 건데!”

저게 개새끼라뇨.

말티즈, 시추? 그런 거 없다. 날뛰고 있는 저 개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크기부터가 위협적인 ‘저건’ 이곳을 지키기 위해 엄선된 괴물이었다. 뒤로 보이는 숲의 문지기로서 침입자에게 가차 없었으며 ‘금지된 숲 파수꾼’이라는 별칭을 가졌을 만큼 사납다.

고로 개보다는 개의 성질만 뚝 떼어 낸 다른 개체에 가깝다 할 수 있었는데, 총평을 내리자면, 자비 없는 도살자란 이름이 어울릴 것이다.

“크르르…….”

보기만 해도 소름이 오싹 돋았다. 기우뚱 기우는 기둥을 느낀 순간 온몸이 뻣뻣하게 굳는 것을 느꼈다.

‘위험해. 뽑힐 것 같은데?’

뿌리째 흔들리기 시작한 울타리가 위기를 느끼게 한다. 짖어 대는 주둥이 사이로 어금니가 보였다.

‘도망, 도망쳐야 해……!’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사람 흔적 하나 없었고, 풀들은 고요하기만 했다. 내가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소리라도 질러 볼까 싶지만, 이미 도망칠 때 마구잡이로 비명을 질렀다. 누가 왔어도 한참 전에 왔어야 했다.

손을 파르르 떨었다. 고개를 돌려 반대쪽, 아득한 땅을 한번 쳐다본다. 저 밑으로 숲이 보인다. 뛰어내리면 어떨까……?

‘아니, 안 돼.’

아무리 봐도 이건 만용의 영역이다. 저기로 뛰어내리면 보기 좋게 다리가 부러질 거야.

“어쩌란 말이야!”

이놈의 황성은 어떻게 생겨 먹은 건지, 황제가 자신에게 살랍시고 내준 궁 근처에 이런 해악한 짐승들이 버젓이 돌아다니는데 지키는 사람 하나 없다. 내가 사는 궁전이 저기 코앞인데 뒤는 금지된 숲이라니!

이 개들은 궁 후원이 아니라 저 뒤쪽 금지된 숲을 지키는 거겠지만 알 게 뭐야. 궁도, 그곳에 살고 있는 나도 버려진 인형처럼 방치되어 있을 뿐인데!

암담하게도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가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오, 신이시여.’

울타리 너머는 절벽과도 같은 내리막이었다. 그 아래는 무시무시하기로 이름 높은 ‘금지된 숲’이었다. 내가 아무리 무모하기로서니 다리를 부수고 싶진 않았다.

“그런데…….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거지…….”

마트 타임 세일이 임박한 양 주어진 시간은 얼마 없는 듯했다. 울타리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컹! 컹컹! 컹컹컹!”

미친개에게 물려 갈기갈기 찢어진 인형 꼴이 되고 싶지 않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금지된 숲 쪽으로 뛰어내려야겠지.

자세를 잡았을 때였다.

“어, 어어?!”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소름과 함께 부유감이 느껴진다. 아뿔싸. 개가 나무에 몸을 부딪친 건가? 나는 떨어지고 있었다.

순식간에 기울어진 하늘과 키 작은 풀, 다시 검은 개. 눈을 질끈 감았다. 등과 허벅지가 아렸다. 풀이 접히는 소리가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죽으려고 악착같이 살아온 게 아닌데.’

육중한 무게가 날 덮치고, 죽음이 거친 필체로 뇌리에 새겨졌다. 꼼짝도 할 수가 없다.

―이번엔 ‘진짜’ 죽는가 보다.

마침내 비명이 튀어나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유모에게 한마디 다정하게 말해 줄걸. 나와의 마지막 기억이 말싸움이라면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텐데. 너무 잔인하지 않느냐고.

제발. 내가 또 다른 시간에서 살아난다고 해도.

“크흡…….”

얼굴로 툭툭 따뜻한 것이 떨어졌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눈을 떴을 때 더 참혹한 걸 보게 될까 봐 차마 그러지 못했다.

“거 보세요. 여기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네.”

눈을 뜨자, 개를 막고 있는 인영이 보였다. 나는 눈을 깜빡였다.

“황녀님은 안 될 곳만 골라가신다니까요.”

천천히 개가 쓰러진다. 그것을 바라보면서 천천히 얼굴을 닦아 낸다. 사람이 아닌 것의 피가 묻었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을 때, 나는 고개를 들어 개의 시체를 아연하게 바라봤다. 자연스레 보고만 방향에는 고어 영화보다 더한 장면이 생생했다.

“……보지 마십시오. 뭐 좋은 거라고 보십니까.”

개를 가뿐하게 해치운 남자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나는 그제야 날 찾아온 구조대의 얼굴을 확인했다.

“황자님. 아실리 님의 눈을 가려 주시겠습니까.”

“기꺼이.”

꿈틀거리던 사체가 사라진 눈 위로 말캉한 감촉이 느껴졌다. 앞이 깜깜해졌다. 눈을 덮은 이 손바닥의 주인은 익히 아는 사람이었다.

“한참 찾았어. 아실리.”

“데인.”

“응. 나야.”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를 가진 남자는 데인. 내 둘째오라버니였다.

“저쪽으로 갈까? 조심히.”

그는 천천히 나를 이끌었다. 참혹한 광경을 보지 않도록 감싸는 온기는 황홀하도록 다정했다.

나는 덜덜 떠는 몸을 진정시키며 뒤를 휙 돌아보았다.

“아…….”

느긋하게 이쪽을 보고 있던 검사, 레이 경은 나를 보더니 한쪽 눈을 가늘게 찌푸렸다.

“진정되셨습니까.”

그가 검을 탁탁 털었다.

“하여간 이런 곳에 있으니, 한참 찾아도 없죠.”

그렇게 말하며 위아래로 나를 천천히 훑는다. 날 보며 이럴 줄 알았다는 태도였다.

“……죽는 줄 알았어.”

“저희가 딱 10초만 늦었어도 스틱스강을 건너셨을 겁니다.”

단정하게 생긴 얼굴은 감흥 없고 고요해 보였으나, 눈동자 속에는 미묘하게 짜증이 어려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실종자가 들끓는 금지된 숲은 그다지 좋은 묫자리가 되지 못합니다. 아십니까?”

“레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습니까, 황자님.”

두 사람이 투닥이는 동안 나는 쥐가 난 손을 쥐었다가 다시 펴며 한숨을 쉬었다. 진짜 이번 생은 오늘로 마감하리라 생각했는데 질기게도 살아남았구나.

그런 나를 보며 심사가 뒤틀린 듯 레이 경이 쯧 혀를 찼다.

“도대체 황녀님은 어딜 그리 뻘뻘거리며 돌아다니시는 겁니까? 찾기 힘들게. 이번도 그렇습니다. 황자님과 제가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아십니까?”

그는 평소에 말이 없는 검사님이었다. 그러나 제아무리 무뚝뚝하고 초연한 남자라도 이번엔 크게 놀랐던지 평소보다 꺼낼 말이 많아진 모양이다.

“정말 목숨이 10개쯤 되는 게 아니라면 제발 황자님 얼굴을 봐서라도 얌전하게 지내 주세요. 예? 얼마나 염려한 줄 아십니까? 이번엔 정말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오셨지 싶은데요.”

나는 감흥 없이 대꾸했다.

“그러게. 내 목숨이 10개가 넘나 보지.”

“황녀님!”

“한 40개쯤?”

진실을 고할 생각이 없으므로 얼굴을 보는 대신 바닥에 떨어진 수첩을 응시했다. 보지 않아도 레이 경의 찌푸린 얼굴이 선했다.

“듣고 계십니까? 또 잔소리로 생각하고 계시지요.”

“아아아. 그만. 그만. 나 안 죽었어.”

“네. 저희가 와서겠지요.”

“응, 맞아. 죽을 뻔했지만 경 덕분에 안 죽었어. 그럼 된 거잖아?”

천천히 수첩을 주워 들었다. 손에 든 것을 쳐다보며 가늘게 눈을 떴다.

“설마하니 저나 황자님이 올 줄 알았다느니. 누군가는 와서 어떻게든 살았을 거라느니. 또 그 소리 하려거든 관두십시오. 여기가 얼마나 외진 곳인지 알고서 하는 소립니까?”

“안 죽을 줄 알고 있었어.”

“네?”

대꾸 대신 수첩을 살폈다. 내 손바닥을 두 개 합친 정도의 수첩이다. 딱 일기장으로 쓰기 좋은 크기랄까. 그러나 시선에 날붙이를 달았다면 지금쯤 나는 이 수첩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을 것이다.

‘더럽게 멀쩡하네.’

크게 한숨을 쉬며 열어 보려다가 문득, 여기 나 혼자 있는 게 아님을 알아차린다.

레이 경과 데인. 레이 경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었다. 지금 그게 눈에 들어오느냐는 얼굴이네. 나는 빤히 보는 시선들을 의식하며 흠흠 헛기침을 했다.

“음, 그래.”

릴랙스, 릴랙스. 나는 저들 앞에서 나름 얌전한 황녀다.

“무서웠으니까 너무 화내지 마.”

그러자 레이 경이 삐딱하게 이쪽을 쳐다보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가뜩이나 아니꼬운 인상이 더 더럽게 보였다.

“뭘 그렇게 웃으십니까. 걱정은 다 시켜 놓고.”

“여기까지 데리러 온 경이 좋아서?”

그가 삐딱하게 코웃음 쳤다.

“웃지 마십시오. 정듭니다.”

이후 데인과 경은 나를 궁까지 데려다주었다. 내가 지쳤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쉬라는 걸 보니 추궁은 뒤로 미룰 모양이었다.

하녀들마저 사라지고, 넓은 공간에 혼자 남았다.

“아……. 또 머리가…….”

습관처럼 머리가 지끈거렸다.

지겹도록 따라다니는 고통에 얼굴을 연거푸 쓸고 책상 한쪽으로 걸어갔다. 짐을 치워 버리고 수첩을 펼친다.

[823년 하베론의 달 7일

열다섯 살. 생일에서 딱 10일 지난 날, 숲을 지키는 사냥개를 따돌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