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 모두의 밤
머리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모두와 동침하는 날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긴장은 되고, 오랜만에 날것으로 느끼는 발정기 때문에 몸은 뜨거운, 그런 혼란스러운 아침.
나는 다섯 남자와 마주 보고 있다.
“맨 처음은 스노아가 나을 거라니까?”
“처음부터 스노아와 하면 그다음은 어쩌려고? 너는 인정사정없이 할 거잖아. 중간에 카카나가 쉴 시간은 있어야지.”
“그럼 제가 두 번 하는 건 어때요?”
“욕심 부리지 마, 스노아. 그건 안 돼.”
경험해보지 못한 성관계라면 누구나 환상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모든 건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이어지고, 서로 버벅거리는 건 조금도 없으며, 첫 관계부터 끝내주게 좋고 황홀한 경험을 할 거라고 말이다.
미리 말하자면, 그런 건 없다.
물론 처음부터 기분이 좋을 순 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거니까. 그러나 사소한 부분까지 전부 만족스러울 순 없다.
서로 다른 인간이지 않은가. 부부는 끊임없이 노력하는 관계고 밤일도 피해갈 순 없는 법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맞물리는 톱니바퀴처럼 굴러가기는 어렵다는 거다.
나도 안다. 알고는 있는데…….
“일단 아다르와 할릭의 순서는 떨어트려 놓는 게 좋겠어요.”
“그건 나도 동의해.”
“그러면 맨 처음은 누가 해? 카카나가 제일 쌩쌩할 때.”
서로 하이에나처럼 눈을 빛내고 있는 남편을 보고 있자면 아무래도 회의감이 든다.
‘오로라도 남편을 여럿 둘 작정인 것 같던데 전력으로 말려야 하는 게 아닐까.’
아니면 매일 아침 옥신각신하는 남편을 보게 될 수도 있었다.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왜 처음부터 하나하나 따지려고 해? 분위기 타서 되는대로 하면 되잖아. 어색하게 버벅거리는 것도 다 추억이야.”
“버벅거리는 데서 끝나면 다행입니다만…….”
첼러스가 탐탁지 않게 말끝을 흐렸다.
“저희는 신중해야 하는 처지입니다. 카카나의 몸에 무리가 가게 해선 안 되지 않습니까. 혹 이런 대화가 불편하십니까?”
“그냥,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어서.”
“저희는 카카나보다 체력이 월등히 좋고, 침대 위에선 이성을 쉽게 잃으니까요.”
첼러스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지난 닷새의 기억을 떠올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첼러스의 말이 가슴 깊이 이해된 나머지 더 말릴 마음도 들지 않았다.
“음……. 그러면 내가 정해주는 게 나을까?”
“그게 최선입니다만, 부담스럽지 않으십니까?”
“부담스러워.”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첼러스가 곰곰이 따져보다가 조심스럽게 제안했다.
“그러면 원하는 사항을 저희에게 말하고 자리를 비우는 건 어떻습니까? 저희끼리 조율해보겠습니다.”
“그래, 그럼.”
나는 어떤 점을 말해야 하나 고민하면서 턱을 괴었다. 발정기 때는 이성적으로 사고하기가 꽤 버거웠지만 하고자 하면 못 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경험해보기도 전인데 뭘 주의하라고 해? 아는 게 있어야 말하지.’
내 상상력은 그들처럼 풍부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어떤 식으로 뒹굴게 될지 떠올리려고 했지만 뻔한 관계만 생각났다.
그들은 간혹 내 예상을 뛰어넘는 기상천외한 짓을 저지르곤 했다. 따라갈 수 없는 영역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결국 이게 다였다.
“내가 신호를 보낼 때 멈춰주는 거?”
“그건 당연한 거잖아.”
아다르가 다른 건 없냐고 보챘다. 나는 까다롭게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자세히 보니 들뜨는 동시에 나와 비슷한 정도로 불안해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얘네도 긴장하고 있는 거야.’
이런 경험이 처음이기는 서로 마찬가지였다.
당연한 건데 왜 몰랐을까. 나는 조금 웃음이 나오는 것 같아서 손으로 입을 가렸다.
“음, 생각해보니까 같이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어.”
“자리를 비우는 게 아니었어?”
나는 턱을 괸 채 싱글싱글 웃었다.
“너희에겐 내 도움이 필요하잖아. 한 명이 빠지면 부부의 대화라는 의미가 없어지기도 하고.”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사실 좀 설레.”
남편들의 눈이 놀라서 동그래졌다. 나는 뜨끈한 김이 올라오는 차를 홀짝이며 요망하게 말을 끝맺었다.
“그러니 밤에 잘 부탁해, 내 사랑들.”
***
‘그때 그렇게 얘기한 건 잘못된 선택이 아니었을까.’
남편을 이 이상으로 자극해서 좋을 게 뭐가 있다고. 후회했으나 시간은 착실하게 흘렀다.
나는 넋이 나간 채 이리저리 돌려졌다. 스노아가 활동하기에 편하고 수수한 멋이 있는 원피스를 입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할 수 있다니까.”
습관적으로 중얼거렸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해가 기울수록 페로몬의 힘이 세져서 머릿속에 온통 안개가 낀 것 같았다. 새하얀 새벽하늘처럼 괜히 감성만 끌어올리고 이성은 저 어디 구석으로 처박혔다.
“트리포아에서 가장 유명한 별장을 예약해 두었어요.”
스노아가 수줍게 볼을 붉히며 얘기했다.
“별장이라고?”
이미 여기가 황가 사람이 묵는 별장이나 다름이 없었다. 나는 의아하게 물었다.
“굳이?”
“여기는 호화롭기는 하지만 특별하진 않으니까요.”
아무래도 장소를 따로 빌려서 색다른 분위기를 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곳은 그들의 말마따나 황가가 공식적으로 머무르는 공간이기에 사적이지 않고 퍽 대외적인 분위기였다.
“오늘 저녁은 아다르가 신경 써서 선정한 메뉴들로 진상될 거예요.”
“진상이라니…….”
“특별한 날이잖아요. 그리고 카카나의 말대로 분위기가 중요하기도 하고요.”
‘내가 왜 그랬을까!’
낙담한 표정을 봤는지 곁에서 지켜보던 아르모어가 뺨에 입을 맞추었다. 발정기 때는 이성의 페로몬이 도움이 되기에―긴급한 상황에선 조심해야 하지만― 줄곧 곁에서 지켜주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해도 좋다.”
“어떻게 그래요. 별장도 신경 써서 잡은 거잖아요.”
“그대가 좋아하길 바라서 한 일이니, 기쁘지 않다면 아무 의미 없지.”
“아니요. 기뻐요. 다만…….”
“다만?”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아르모어의 집요한 시선에 못 이겨서 토로했다.
“창피하잖아요…….”
나는 손에 얼굴을 파묻어버렸다.
대단한 일이라도 치르는 양 옷까지 골라 입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있는 장소에서 하룻밤 투숙이라니. 이게 부부의 전형적인 데이트라는 걸 알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이런 식으로 해 본 적이 없었다.
“갑작스럽기도 하고…….”
난생 이벤트를 해주지 않았던 연인이 갑자기 장미꽃과 폭죽을 준비해서 깜짝 이벤트를 해준 기분이랄까. 낯간지러웠다.
“그런 것치곤, 페로몬의 향이 짙어졌군.”
아르모어가 내 머리카락에 코를 묻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진득하게 빛나는 핏빛 눈망울을 보자 아랫배가 오싹해졌다. 나는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구,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대는 말로는 솔직하지 않은 편이니.”
아르모어가 나를 마차에 태우며 은근하게 속삭였다.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지 않나.”
나는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아르모어가 내 이마에 입을 맞춘 뒤 마부석이 있는 벽을 손등으로 툭툭 두드렸다. 그러자 마차가 부드럽게 출발했다.
첫 마차에는 아르모어와 나, 스노아가, 그리고 뒤에 따라오는 마차에는 할릭, 아다르, 첼러스가 탔다. 여섯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마차도 준비하자면 할 수 있었지만, 우리는 일부러 평범한 마차를 빌렸다. 사람들의 이목이 쏠리는 걸 피하기 위해서였다. 오늘은 오직 서로만을 위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선잠을 자다 정신이 들었을 땐 마차가 트리포아의 가장 유명한 시내를 달리고 있었다. 한밤인데도 불이 환하게 켜진 가게와 야외테이블이 있는 식당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우리는 지나쳐 온 그 어떤 건물보다 가장 화려하게 빛나는 별장 앞에 멈춰 섰다. 별장에는 총지배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깍듯한 자세로 서 있었다.
“환영합니다. 주문하신 음식은 거실이 아니라 방에 따로 차려두었습니다.”
“준비는 다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가구, 소품, 조명, 전부 말씀하신 곳에서 특별히 공수해와 조화롭게 배치했으니 만족스러우실 겁니다.”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첼러스가 총지배인에게서 열쇠를 받아들었다.
그녀는 우리가 열쇠를 넘겨받자마자 별장을 떠났다. 나는 이렇게 호화스러운 별장이 있다는 데에 놀라서 샹들리에만 주야장천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가 질리도록 비싸 보이는 별장이었다.
“속물적으로 들릴까 봐 조금 걱정되긴 하는데, 너무 좋다.”
“뭐가?”
아다르가 방문을 열며 말했다.
“이런 거. 지금 우리가 하는 거 다.”
황금빛이 번쩍이는 조각상이라든가, 우아한 선율이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복도라든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에게 맞춘 서비스라든가.
‘이게 돈의 맛인가…….’
박박 긁어서 약초를 사들이거나 모아둘 줄만 알았지, 이런 식으로 써본 적이 없었다. 달콤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걸 알았다면 진작 펑펑 썼을 것이다. 돈도 써본 사람이 쓸 줄 안다더니, 그 말대로다.
나는 신세계를 경험하며 방을 둘러보기 바빴다.
“마음에 들어서 다행이에요.”
스노아가 나를 부드럽게 식탁으로 이끌었다.
“카카나는 황실이나 아누비르 본부도 알잖아요. 그래서 마음에 찰까 걱정됐거든요.”
“그거랑 이건 달라.”
나는 눈이 부셔서 한 입 떠먹기도 아까워 보이는 음식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긴 너희가 날 위해 준비한 공간이잖아.”
갑자기 가슴이 벅차올라서 입을 다물었다. 내 취향에 맞춘 가구와 보드라운 크림색 벽지 등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부터 준비했어?”
“네가 발정기 때 같이 꽃이불 덮자고 얘기했을 때부터?”
아다르가 수프를 한 입 먹여주며 대답했다. 꼭 혀가 수프에 빠져 녹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말없이 식사만 했다. 발정기 땐 식사를 시간에 맞춰서 할 수가 없어서 건너뛰기 일쑤였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하는 식사였다.
음식을 전부 먹어 치운 후엔 달달한 디저트가 나왔다. 나는 장난기가 동해서 케이크의 크림을 떠서 옆에 앉은 아다르의 얼굴에 묻혔다.
그게 시작이었다.
“디저트를 충분히 즐기고 싶다는 거지?”
처음엔 아다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크림 덩어리가 내 쇄골 부근에 떨어졌을 때, 나는 벼락처럼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아차렸다.
“자, 잠깐!”
“그대는 딸기를 좋아하지.”
아르모어가 입에 딸기를 문 채 고개를 숙였다. 나는 입술을 쑤시고 들어온 차갑고 새콤한 딸기를 반강제로 으깨 먹었다.
와르르, 기다란 식탁 위의 식기들이 밑으로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어느새 식탁 위에 누워있었다. 그리고 뒤늦게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천장이 없었다. 하늘이 뻥 뚫려 있는 방이었다.
“네가 밤하늘을 좋아한 게 생각나서.”
할릭이 입술 주위로 흘러내린 딸기즙을 핥아먹으며 말했다.
“어때? 이러면 바깥에서 하는 기분도 나고 좋지?”
“이걸, 하루아침에, 어떻게, 말도 안 되는…….”
“마법은 인간의 삶 곳곳에 있죠.”
이번엔 스노아가 내 입에 키스했다. 그의 입술에서 진한 초콜릿 냄새가 났다. 의아하게 눈을 굴리자 근처에 나뒹굴고 있는 초콜릿 통이 보였다.
어느 순간, 첼러스가 날 휙 안아 들었다. 그리곤 목덜미에 입을 묻으며 침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힉!”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느낌이 들어서 눈을 굴리니, 그가 입에 문 얼음으로 내 피부를 자극하고 있었다.
“귀엽습니다, 카카나.”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의 선한 하늘색 눈망울에 이성 한 자락 없었다. 다른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지금부턴 우리들의 밤이야, 부인.”
다섯 남편이 내게 몸을 기울였다. 그들에게선 디저트처럼 끔찍하게 달콤한 맛이 났다.
앞으로도 질리게 맛보게 될 달콤함이었다.
[깨어나세요, 용사여 외전 F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