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 수상한 골칫거리들
나는 너무 놀라서 얼음처럼 굳었다. 웬 남녀가 창가에서 엉켜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목에 팔을 감고 있었으며, 남자는 여자의 허리를 손으로 받쳐 지탱한 채 치마를 막 끌어올리고 있었다.
둘 다 붉은색 브로치를 달고 있었다. 귀족이다.
제국이 아무리 성에 개방적이라지만, 도서관에서 이런 짓을 하다니 믿기지가 않았다. 귀족문화가 얼마나 문란해졌는지 그 심각성을 일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남학생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쪽을 봤다. 평범한 얼굴이었다. 못생긴 건 아니었지만, 이렇다 할 특징이 없었다. 그나마 눈에 띄는 것은 콧잔등과 광대뼈에 퍼져있는 옅은 주근깨였다. 햇볕을 많이 봤는지 살이 조금 타 있었다.
눈 씻고 찾아봐도 특별한 매력이라곤 없는데, 무슨 일인지 여자는 황홀경에 젖어서 남자애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좀, 제정신으로 안 보이는데…….’
애초에 도서관에서 이러고 있는 게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이지만, 저건 그 전의 문제였다.
“이 시간대에 출입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학생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남자애가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린 채 말했다. 등골이 선득해졌다.
“어쨌든 너희 운이 안 좋아. 하필 재미보고 있을 때 들어오다니.”
남학생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손에 들린 짧은 막대 같은 물건에 복잡한 글자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마도구를 가지고 있군요. 마법진을 보니 기억을 건드리는 금기마법이에요.」
스노아가 텔레파시로 말했다.
「정신계열 방어마법은 마나의 흔적이 남을 텐데…….」
그가 곤란한 어투로 얘기하는 와중, 남자애가 한 걸음 다가왔다. 위기다. 저 마도구가 기억의 어느 부분까지 지울 줄 알고 얌전히 당해준단 말인가.
돌발 상황이라 그런지 도망가는 것 외엔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도망가는 게 최선인가?’
긴장하며 몸을 돌리려는 순간, 스노아가 내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자기에게 바짝 끌어당기며 말했다.
“욕심이 많으신 분이군요. 좋은 곳은 나눠 사용해야지요.”
평소처럼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지만 묘하게 비뚤어진 어조였다. 스노아가 사용하던 말투가 아니어서 눈이 크게 뜨였다.
고개를 들고 얼굴을 확인했다.
스노아가 귀족적이고 세련된 얼굴에 방자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양아치와 어울려 노는 모범생이 딱 저런 분위기일 것 같은 얼굴이다. 유능하지만 선도 악도 아닌 회색지대의 인간.
연기를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어울리는 모습에도 정도가 있는 법 아닌가.
‘사실은 이게 본 모습인 거 아니야?’
제 옷을 찾아 입은 것처럼 찰떡이니 의심을 안 할 수가 없다.
“음?”
남학생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가 스노아를 위아래로 훑어본다. 혹시나 싶어 브로치를 확인했다. 검은색이었던 우리 것이 어느새 붉은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스노아가 남자애와 마주치기 무섭게 마법을 건 모양이었다.
“그쪽은 내 과가 맞는 것 같은데.”
남자애가 스노아를 보다가 나를 지긋이 돌아봤다.
“저 여자앤 좀 애매하군. 마음 편히 믿어주기엔 영 담백해 보여서 말이야.”
「쓸데없이 감이 좋군요.」
스노아가 무심히 뇌까렸다.
간신히 시간을 벌었는데 여기서 발목을 잡히고 싶진 않았다. 나는 최대한 아르모어를 상상하며 귀족인 척 맞받아쳤다.
“무례하시군요.”
남학생이 어깨를 으쓱였다.
“교수님 귀에 들어가면 곤란한 건 나잖아?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아니면 증명해보든지?”
경박하게 키득거린 남자애가 자기에게 매달려있던 여학생의 입술을 훔쳤다. 상상을 초월하는 또라이였다.
‘여기서 애정행각을 해서 증명하란 거야?’
제정신이 아니었지만, 이대로 도망치기엔 얼굴까지 보인 마당이다.
가짜 붉은 브로치를 달고 있는 평민 신분이라 남학생이 마음먹고 소란을 피우면 약자는 필히 우리였다. 브로치야 얼굴에 철판 깔고 시치미를 떼면 그만이지만, 교수전용 열람코너로 출입한 건 핑계 댈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어쩔 수 없지.’
결국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나는 스노아의 목에 팔을 감았다. 최대한 여유롭게 미소 짓고 싶었는데 입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크게 뜬 눈으로 날 보던 스노아가 남학생의 시선을 의식한 듯 소리 없는 미소를 지었다. 허리에 팔이 감겨온다. 그가 기다란 속눈썹을 청초하게 깜박이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매끄러운 융단이 흰 피부 위에 새파랗게 펼쳐지는 것 같다.
‘장난 아니네.’
피부가 삶은 달걀처럼 매끈했다. 완만하게 튀어나온 눈썹 뼈와 오뚝한 콧날 덕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게 살아있었다.
예뻐도 너무 예쁘다. 하나의 예술품이었다.
이제 긴장해서 심장이 뛰는 건지 스노아가 꽃같이 아름다워서 뛰는 건지 알 수 없을 지경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허리를 숙인 스노아의 입술에 얼굴을 천천히 가져갔다.
긴장한 나머지 입술까지 딱딱해진 나와 달리, 스노아의 것은 서늘하고 말캉거렸다. 내 입술 위에 그의 살덩어리가 눈처럼 녹는 기분이었다. 눈을 감고 있으니 그게 더 생생하게 느껴져서,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스노아와 눈이 마주쳤다.
투명한 물빛 눈망울이 나를 야릇하게 들여다보고 있다. 선명하고 노골적인 시선에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고개를 뒤로 물리려는데, 한 손이 내 뒤통수를 잡아 고정시켰다.
허리에 감긴 팔뚝에 힘이 들어간다.
“으읍.”
그가 고개를 비틀어 더 깊숙이 입을 맞춰왔다. 숨이 확 막힌다.
기세에 밀려 뒤로 주춤 물러섰다. 스노아가 그만큼 성큼 다가왔다.
‘이, 이게 아닌데…….’
그는 얌전하고 청초한 분위기의 사람이어서 내가 주도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입을 붙이고 나니 따라가기도 벅찼다. 예민한 곳을 건드리는 통에 소리를 참기 힘들었다. 입을 붙인 지 얼마나 됐다고 내 입 안을 훤히 꿰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를 좋아하는지, 어디를 부담스러워 하는지…….
느긋하게 탐닉하는 그의 분위기에 휘말릴 것 같다. 그러나 보는 사람이 있다. 정신이 확 깼다. 페이스를 잃자 호흡을 놓쳤다.
“아, 흡.”
숨을 쉬기 힘들어졌다.
모자란 숨을 간신히 삼키며 그의 옷자락을 움켜쥔 찰나, 우리를 빤히 구경하던 남학생이 손을 흔들며 분위기를 깼다.
“야야야, 됐다 됐어. 그 정도면 충분해. 미안해질 정도네.”
남학생은 의외로 민망한 얼굴이었다. 왠지 알 것 같다. 방금 스노아는 남자가 보기에도 관능적으로 느껴질 법했다. 농염하게 키스하니 제 심장이 두근거리는 걸 느끼고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미안하다, 내가. 그만하고 저기로 가봐. 구경하는 건 취미가 아니라서.”
“그런가요?”
스노아가 제 입술을 핥으며 허리를 꼿꼿하게 폈다.
“함께 즐기면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쉽네요.”
“대단한 놈이구만…….”
남자애가 제 머리를 쓸어 넘기며 피식 웃었다.
“사과의 의미로 우리가 자릴 비켜주지.”
자기가 말해놓고 어이가 없는지 남자애가 킥킥 웃었다. 나는 그들이 지나가기 쉽도록 책장에 붙어 섰다. 남자애가 발걸음을 떼자, 조용히 서 있던 여자애가 그의 뒤를 졸졸 쫓았다.
그녀는 여전히 넋이 나가 보였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꼭 몽유병에 걸린 사람 같았다.
「여성분에게 정신착란 마법을 걸어놨어요. 목덜미 근처에 흔적이 있군요.」
스노아가 얼음처럼 차가운 어조로 이야기했다.
나도 모르게 여자애의 풀어진 옷깃을 흘긋 살폈다. 짙은 보라색 문양이 언뜻 보였다. 자동으로 얼굴이 찡그려진 순간, 남자애와 내 옷자락이 살짝 스쳤다.
별 거 아닌 일이었다. 옷끼리 스치는 건 사람 사는 곳에선 항상 벌어지는 일이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만 쓰레기가 스친 게 기분 나빠서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질 뿐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파지직―!
남학생과 스치는 순간 번쩍, 하고 빛이 터졌다. 그뿐만 아니라 그와 부딪힌 부분의 살갗에서 전기가 통한 것처럼 저릿한 통증이 퍼졌다.
“윽……!”
반사적으로 손목을 움켜쥐며 뒤로 물러섰다. 벌에 쏘인 것처럼 욱신거렸다.
정전기라고 생각하기엔 순간적으로 터진 빛이 너무 밝았고, 통증 또한 오래 남았다. 나는 어리둥절해서 남학생을 쳐다봤다. 그도 놀란 것처럼 보였다.
아니, 놀랐다기엔 기세가 이상했다. 표정 변화가 거의 없었다. 그는 커다랗게 뜬 눈으로 날 빤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그래, 의외의 일을 당한 사람처럼…….
“잠깐.”
남학생이 걸음을 멈추었다. 나는 책장에 등을 기대고 간신히 다리를 지탱했다. 밑으로 축 처져 있던 남학생의 눈매가 위로 높이 치솟아 있었다.
“방금 뭐야?”
난폭하게 말을 씹어 뱉은 그가 몸을 돌렸다. 남학생의 입술에 걸려 있던 적당히 친절한 미소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소름이 돋아 어금니를 악물었다. 남학생의 표정 없는 얼굴에 눈만 징그러울 정도로 크게 뜨여 있었다. 저주인형을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스노아가 황급히 허리를 받쳐주었다. 남학생이 가까이 다가왔다. 음영이 진 얼굴이 새까맣다.
“이럴 리가 없는데…….”
그가 음울하고 고약한 어조로 혼잣말을 했다.
근거리에서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번들거리는 고동색 눈에 시뻘겋게 핏발이 서고 있었다.
“그래, 이럴 리가 없어. 너 같은 애가 있을 리가…….”
내게 얼굴을 바짝 들이민 남학생이 기괴하게 소곤댔다.
심장이 귀에서 뛰고 있는 듯 요란하게 쿵쾅거렸다. 뒷목이 싸해지고 기온이 내려간 듯 추워졌다. 구울들의 소굴에 들어갔을 때와 비슷했다. 사기가 숨통을 틀어막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남자애, 눈을 안 깜박여.’
정말로, 징그러운 인형처럼.
“아무래도 호신용 마도구가 오작동했나 본데요.”
스노아가 급하게 내 앞을 막아서며 이야기했다.
“호신용 마도구?”
남학생이 크게 뜬 눈 그대로 고개를 기울였다. 어찌할 새도 없이 소름이 우수수 돋았다. 도무지 사람처럼 안 비쳤다. 뒤집어쓴 살가죽 아래 이질적인 것이 느껴졌다.
내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사이, 스노아가 미미하게 눈썹을 구기며 말을 지어냈다.
“그녀는 호신용으로 마도구 목걸이를 차고 있어요. 전기 계열 마법이 걸려있는 것으로 알아요.”
스노아가 있어 다행이었다.
나는 혼자 지낸 세월이 길었다. 사람이 엮인 일엔 쉽게 우왕좌왕했고 마음먹지 않는 이상 표정을 감추는 데 서툴렀다. 당황을 추스르지 못해 남학생의 의심을 더 샀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현상이 벌어진 것 같군요. 살짝 따끔한 정도셨을 것 같은데, 대신 사과드리죠.”
“대신?”
“그녀가 많이 당황한 것 같아서요.”
남학생이 대답 없이 나를 응시했다.
그러자 스노아가 역으로 남자애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남학생이 조금 놀란 것처럼 고개를 뒤로 물렸다. 한기 서린 스노아의 음성이 싸늘하게 이어졌다.
“무슨 문제라도?”
남학생이 침묵했다. 그러다 이내 눈썹을 추켜세우며 대답했다.
“아니, 아니다.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
“그런가요?”
그러나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처럼 의미심장한 시선이 내게 머물렀다. 스노아가 걸음을 옮겨 그의 시선을 막았다. 쯧, 혀를 찬 남학생이 마지못해 우릴 지나쳤다.
나는 남학생의 뒤통수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그가 코너를 완전히 벗어나고 나서야 참고 있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몸에 힘이 없었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책장을 잡고 무릎을 짚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끈적끈적했다.
“평범한 사람은 아니군요.”
스노아가 말했다. 하얗게 질린 아랫입술을 혀로 핥다 말고 물었다.
“무슨 뜻이야?”
“마법부에도 그와 비슷한 기운을 두른 귀족이 있었어요.”
“사기 비슷한 걸로 날 압박하던데, 그거 얘기하는 거야? 살기 아니었어?”
스노아가 내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살기는 아니에요. 정확히는 마나가 풍기는 기운이에요. 정결한 마나가 아닌 것은 확실하고, 흑마법사의 것처럼 변질됐어요. 굳이 말하면 마물이나 몬스터와 더 흡사하네요. 이런 건 처음 느껴보는데…….”
“마나에도 성질이 있어?”
“그럼요. 사제의 마나도 신성이라는 속성이 있지요.”
스노아가 남학생과 스쳤던 내 옷깃 아래의 살결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여전히 화끈거리는 통증이 남아있었다. 손목 근처였는데, 피부가 조금 부어 있었다.
그가 심각한 표정으로 내 손을 바라보았다.
“…….”
그러고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의 침묵이 위험을 감지한 것처럼 무거워서 겁이 나기 시작했다.
“왜, 왜 그래?”
“카카나.”
“응?”
“잠시 이리로.”
그가 코너 깊숙한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걷자 원형 테이블과 소파가 구비되어 있는 휴식공간이 나타났다. 나는 고동색 가죽 재질의 체스터필드 소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옆자리에 앉은 스노아가 차가운 손끝으로 손목의 열기를 식혀주며 말을 걸었다.
“아직 아픈가요?”
“조금…….”
스노아가 뭔가를 생각하듯 가만히 눈을 깜박이다가 나를 불렀다.
“카카나.”
“응?”
“정말 죄송하지만, 통증이 사라지기 전에 꼭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그래도 될까요?”
나는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내가 도와줘야 하는 거야?”
“네. 엄청.”
“뭔데?”
스노아의 물빛 눈망울이 갈 길을 잃고 일렁였다. 대체 뭐기에 이렇게 뜸을 들이는 건지 궁금했다.
“아까 빛이 튄 이유를 알아내려 해요. 그러려면 제 마나를 카카나의 몸에 주입해야 해요. 마나로 느껴야 하는 거라…….”
“몸에 해로운 거야?”
“그렇진 않아요.”
“그럼 뭐가 문제야? 원인을 알아내주면 나야 감사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 해.”
그러나 스노아는 가볍게 떨어진 내 허락이 못 미더운 모양이었다. 난감하게 웃은 그가 말을 고르는 듯 눈을 굴리다가 얘기했다.
“느낌이 많이 불쾌할 거예요.”
스노아가 검지로 내 손등을 쿡 찔렀다.
“억지로 제 마나를 집어넣어서, 이렇게.”
그러더니 손가락을 내 팔뚝까지 그대로 스윽 끌어올리며 피부를 긁었다. 느낌이 이상해서 어깨를 움츠렸다. 스노아가 나를 똑바로 들여다보며 말을 이었다.
“카카나의 몸 안을 헤집을 거거든요.”
조금 무섭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나는 기가 죽어서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스노아가 작정하고 엄하게 얘기하자 심상치 않은 일로 느껴졌다. 나는 잠깐 고민했다. 상상해보려 했지만 무슨 느낌일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기분이 나쁘다 해도 뭐 얼마나 나쁘겠냐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심지어 몸에 해롭지도 않단다.
‘잠깐 참으면 되지 않을까.’
그냥 의문으로 남기기엔, 남학생의 태도가 가슴 한구석에 찜찜한 채로 남아있었다. 성격상 이런 건 가만히 두고 보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것도 불길하게 느껴지는 흔적이라면.
‘그 정돈 참을 수 있겠지. 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느낌이 이상할 뿐이잖아. 먹으면 느낌이 이상한 약은 수도 없이 많아. 그래도 다 도움이 되는 약들이잖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그런지, 약물과 비교하자 별 거 아닌 일처럼 느껴졌다. 이런 걸 망설이고 주춤거리기엔 밝게 터진 빛이 잔상처럼 머릿속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이유를 알아야 해.’
나는 가장 중요한 것을 물었다.
“아파?”
스노아가 고개를 저었다.
“고통이랑은 거리가 있어요. 하지만 아예 아프지 않다고 하기에도 애매해요. 마땅한 말이 생각나지 않네요. 죄송해요.”
“아니야. 그 정도면 참을 수 있을 것 같아. 해봐.”
스노아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말뚝을 박았다.
“그럼 우선, 방음마법부터 칠게요.”
내 단단한 결심에 갑자기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다. 기분이 싸해졌다.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그리고 스노아가 대충 설명한 것보다도 더 힘든 시련이 다가오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낀 탓인지도 몰랐다.
‘방음마법?’
나는 스노아가 마법을 시전하는 걸 보며 몸을 긴장시켰다.
마나를 몸에 주입하는데 시끄러운 소리가 날 리는 없었다. 그런 소리를 낼 수 있는 건 내 얼굴에 달린 주둥아리뿐이다.
‘소, 소리를 지를 정도인가?’
대체 어떤 느낌이기에 방음마법까지 친다는 건지 두려워졌다. 스노아의 부드러운 표정을 본 나는 마른입술을 핥았다. 무언가를 연상시키는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인지 곧 떠올렸다.
몹시 쓴 약을 산 어머니가, 제 자식에게 약을 먹이기 전에 안심시키기 위해 짓는 표정이었다.
손발이 차갑게 식었다.
내 망설임을 눈치챈 사람처럼, 스노아가 서둘러 내 손을 틀어쥐었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강한 악력이었다.
이제 와 말을 물리기엔 늦었다. 나는 상황이 단단히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자, 잠깐…….”
“시작할게요.”
그 순간, 시린 얼음물 같은 것이 피부를 뚫고 손가락 끝으로 쑤욱 들어왔다.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괴상한 느낌에 입을 뻥긋거렸다.
뜨거운 몸속에 얼음으로 이루어진 실지렁이가 꿈틀거리며 기어 올라오는 것 같았다. 나는 뒤통수를 후려 맞은 사람처럼 눈을 커다랗게 뜨고 굳었다. 소름이 돋아서 자동으로 허리가 꼿꼿하게 펴졌다.
“헉…….”
“괜찮아요, 카카나. 얼른 끝낼게요.”
스노아가 조급하게 위로했다.
그의 마나가 훑고 지나간 부위가 시큰거리고 저렸다. 신경을 살짝살짝 건드리는 것처럼 소름이 돋고 오싹했다. 자동으로 어금니가 악물렸다.
뭐 어떻게 표현하든 간에, 사람이 맨 정신으로 견딜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님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스노아의 짙푸른 마나가 손부터 시작해 몸 구석구석을 확인하며 위로 올라왔다. 거대한 나무뿌리에 몸이 잡아먹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금니를 악물고 참아보다가, 허리를 비틀어보다가, 손을 떨쳐내듯 안으로 잡아당겨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눈앞이 금세 그렁그렁해졌다.
등허리를 최대한 소파 등받이에 붙이고 멀어지려 노력했다. 스노아가 한쪽 무릎을 내 다리 사이의 소파로 얹으며 멀어진 만큼 거리를 좁혔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의식이 희미해진다.
그는 오래 끌어서 좋을 게 없다고 판단한 것 같았다. 불현듯 내 이마에 자기 이마를 가져다대었다.
‘설마…….’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정수리로 찬물이 쏟아지듯 마나가 폭포처럼 나를 비집고 들어왔다. 이걸 어떻게 참냐는 수많은 생각들이 순식간에 아득하게 멀어졌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아, 윽. 스, 스노아…….”
마침내 참지 못하고 칭얼댔다. 고개를 가로저으니, 스노아가 다정한 말투로 달랬다.
“조금만요, 카카나. 조금만…….”
“시, 싫…….”
“쉬이.”
식은땀을 잔뜩 흘렸는지 공기가 차게 느껴졌다. 덜덜 떨면서 이를 악물었다. 체감상 한 시간은 지난 것 같았다.
대체 언제 끝나는 거냐고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내 몸 안을 온통 헤집고 다니던 차가운 마나가 단숨에 쑥 물러났다. 스노아에게 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덩달아 내게 남아있던 마지막 기력과 영혼까지 한꺼번에 빨려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스노아의 어깨에 이마를 박고 쓰러졌다. 그가 내 몸을 꽉 끌어안으며 등을 쓸어주었다.
“기분이 별로죠? 미안해요.”
기분이 별로죠?
이를 아드득 갈았다. 힘이 없는 탓인지 소리를 크게 내고 싶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 정도가 아니잖아! 조금 거칠게 느껴지는 수준이 아니었단 말이야!”
“카카나의 몸이 몹시 예민한 편인 것 같아요. 정말 미안해요.”
나는 푸르르 한숨을 쉬었다.
“됐어. 네가 일부러 나 괴롭히려고 한 것도 아니고……. 알아낸 건 있어?”
“알아내긴 했어요.”
심히 찜찜한 대답이다. 나는 이마에 맺힌 진땀을 닦아내다 말고 미간을 구겼다.
“뭔데?”
“그런 빛이 터지는 건 보통 마법 시전에 실패했을 때 일어나는 사고예요.”
스노아가 내 떨리는 등을 연신 쓸어주며 설명했다.
“마나배열이 뒤죽박죽되어서 대기 중으로 발산하거나, 상쇄되어 소멸해버리거나.”
“나는?”
“카카나는 후자예요. 상쇄돼서 일부 마나가 소멸했어요. 꼭 물든 것처럼, 그 남학생의 이상한 마나도 조금 묻어 있고요.”
“왜 상쇄된 건데?”
“마나의 성질이 상극이면 상쇄되기도 해요.”
스노아가 미간을 문지르며 혼잣말을 했다.
“마나에 속성이 부여된 건 사제의 신성마나나 아르모어의 마나 이후로 처음인데…….”
“아르모어?”
“네. 그의 마나는 번개처럼 전류가 흐르거든요.”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그럼 내가 특이체질인 거야?”
“간단하게 말하면, 그래요.”
나는 후들거리는 무릎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지 허리에서 우두둑거리는 소리가 났다. 으으, 죽는 소릴 내며 뺨에 묻어있는 눈물자국을 없앴다.
“뭐야. 그럼 그냥 체질이 안 맞아서 그런 거야? 별일 아니구만 걘 왜 그렇게 정색했대?”
“…….”
“기숙사로 돌아가자. 죽을 것 같다.”
코너의 출구로 걸어가는데 뒤따라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고개를 돌렸다. 스노아가 자리에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스노아?”
불러도 대답이 없다.
‘왜 저러지?’
혼자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모로 기울이며 스노아에게 다가갔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스노아가 고개를 든다. 표정이 묘하게 딱딱했다.
“왜 그래. 무슨 문제라도 있어?”
“아니에요.”
스노아가 고개를 저으며 평소와 같은 미소를 지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코너를 벗어났다.
근처에 서서 책을 보고 있던 이블라가 우릴 발견하고 다가왔다. 성큼성큼 걸어오던 그녀가 문득 사나운 낯을 했다.
“울었어?”
안타깝게도 나는 울면 티가 많이 나는 타입이었다. 눈이고 볼이고 죄다 빨개지는 인간 있지 않은가. 그게 나다.
새삼 내 몸뚱어리에 환멸을 느끼며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손을 흔들어보지만 이블라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이 스노아를 추궁했다.
“아까 귀족 두 명이 안에서 나오던데. 그들이 한 짓인가? 마주친 거야?”
“마주치긴 했지만, 그들 때문에 운 건 아니에요.”
스노아가 설명했다.
나는 이곳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았으므로 이블라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그녀가 불만 어린 눈을 했지만 내가 지쳐 보이자 성질을 억눌렀다.
우리는 나란히 도서관을 벗어났다. 둘을 쫓아가다가 마지막으로 도서관 안을 바라보았다. 별 의미 없이 한 행동이었다. 그런데 누군가와 시선이 마주쳤다. 갈색 머리가 보였다.
나는 헛숨을 들이켰다.
아까 보았던 걔였다. 또라이 남학생. 잘못 본 줄 알고 눈을 깜박여봤지만, 아무리 봐도 걔가 맞았다. 그가 나를 조용히 응시하고 있었다.
남자애가 천천히 웃는 순간, 도서관의 문이 닫혔다.
***
검술부의 우등생 소렉트는 아직까지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이번 학기에 입학한 건방진 신입생 때문이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듯이 검술부 저학년들의 군기를 잡으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평소 애용하던 비열한 수법이 특정 신입생 세 명에겐 통하지 않았다. 소렉트는 문제의 신입생을 혼내주라고 부하들까지 불렀지만 웬걸, 부하가 되레 멍을 달고 돌아왔다.
소렉트 지퍼는 흔히 있는, 양아치에 가까운 귀족이었다.
검술 실력이 우수한 건 물론이고 재력이 강한 자작 출신이어서 웬만한 귀족이나 평민들은 괜히 그를 건드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그가 새로 입학한 평민 검술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롱에 가까운 환영행사를 치르는 것은 이미 다른 학과에까지 소문이 자자했다.
일부 귀족들은 즐거운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검술부의 수련장까지 찾아오곤 했다. 이번에도 별다른 건 없었다. 검술부에 막 들어온 1학년짜리 검은 브로치들을 전부 불러 모아, 수련장이 떠나가도록 고기방패가 되겠다는 구호를 복창하게 만들었다.
그러다 뒤늦게 인원수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는데, 문제의 그 삼인방이 4학년 소렉트의 소집명령을 감히 무시하고 참여하지 않은 것이었다.
그 삼인방은 지극히 평범한 놈들이었다.
할리프란 놈은 덩치가 몹시 크긴 했지만, 뚜렷한 특징이 없었다. 이미 기사라도 된 양 딱딱한 말투를 구사하는 체스라는 놈과, 거칠고 포악하게 행동하는 이블이라는 여자애도 특징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뮤나스엔 어떻게 입학한 건지, 그들의 뒤를 봐주고 있는 사람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았다. 괘씸함을 느낀 소렉트는 당장 친구들을 불러 모아 그들을 응징하기로 했다. 사람이 별로 드나들지 않는 수련장 뒤편으로 끌고 와서 개 패듯 구타하려고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람이 없는 곳으로 장소를 잡은 건 천만다행인 일이었다. 소렉트와 그 일당들이 삼인방에게 역으로 당했기 때문이었다.
굴욕적이게도 그들은 검조차 뽑지 않았으며, 소렉트가 명백하게 비아냥대며 어깨를 밀쳐도 건물 기둥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주먹으로 턱주가리를 날렸는데도 똑같았다.
되레 소렉트는 제 손이 부러진 줄 알았다. 그래서 우스꽝스럽게 낑낑 대며 손을 후후 불기까지 했다.
소렉트가 무슨 의도로 불렀는지 알아챈 할리프는 대놓고 살기를 뿌렸다. 소렉트는 현장실습으로 몬스터를 토벌하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 그렇게 강한 살기를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잘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 살기는 결코 입학생이 뿜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니란 것이었다.
할리프는 전방을 향해 포효하듯, 사나운 송곳니로 검술부 학생들의 간담을 꽉 물고 있었다. 이블은 이미 화가 나서 저 녀석들의 방자한 입술을 썰어버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허세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는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여자였다.
우등생 소렉트마저 겁에 질릴 정도였으니 일당들이 자지러지는 건 당연했다.
개중 심하게 겁을 집어먹은 한 명이 견디지 못하고 검을 휘두르고 말았다. 더 웃기는 일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체스가 검 날을 맨손으로 잡은 것이었다. 목검 따위가 아니었다. 그들이 들고 있는 건 진검이었다! 그런데 어린애 장난감 대하듯 맨손으로 잡고선, 여유로운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이런 시시한 장난은 그만두는 것이 좋습니다, 소렉트 지퍼 공. 할리프와 이블은 저보다 인내심이 없는 자들이니까요.”
체스가 검을 나뭇가지 부러트리듯이 두 동강 내며 말했다. 그 말은, 만약 할리프나 이블을 향해 검을 겨눈다면 걷잡을 수 없을 거라는 정중한 경고였다.
소렉트와 일행은 그 기행을 맨눈으로 목격하자마자 꽁지가 빠져라 도망쳤다. 할리프의 수준 높은 살기에 이미 반쯤은 정신이 나가 있었다.
다행히 소렉트가 건방진 1학년들을 훈계했다는 쪽으로 소문이 돌았지만, 그는 매일 불안에 떨어야 했다. 실상이 다르니 삼인방이 언제 입을 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만약 일이 커져서 대련 신청이라도 받았다간 모두 앞에서 창피를 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소렉트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들을 괴롭혔다. 그러나 먹히기는커녕 무시당하거나 똑같은 수법으로 당하기만 했다.
그는 교수들에게 ‘평균’ 정도의 평가를 듣는 삼인방이 어떻게 자기를 이길 수 있는 건지 도통 이해하지 못했다. 삼인방이 본 실력을 숨기고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그는 몸은 쓸 줄 알았지만 머리는 쓸 줄 모르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의 오만하고 경솔한 판단은 결국 최악의 수단까지 끌어들였다.
약제조학과의 콜리나 살라소나의 제안이 그 방아쇠였다.
그녀의 사랑스러운 외모와, 우아하고 귀족적인 행동거지에 혹한 소렉트는 콜리나의 은근한 유도를 피할 재간이 없었다.
“그러니까, 그들을 쥐락펴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이 말입니까?”
소렉트가 답지 않게 정중한 어투를 사용하며 물었다. 콜리나가 입을 가리고 웃으며 가증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그저 그들에게 예의를 가르쳐주고 싶을 뿐이랍니다.”
“그래요, 예의. 그 건방진 놈들은 도무지 예의란 게 없어요. 귀족에 대한 존경심이 없다 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방법이란 게 대체 뭡니까?”
콜리나가 홍차를 우아하게 한 모금 들이켜며 말을 이었다.
“카니 페테라스. 약제조학과의 평민 학생이에요. 들어본 적이 있으시겠죠?”
“예, 압니다. 미친개 비브로스가 그렇게 끼고돈다고 하던데…….”
소렉트의 경박한 어투에 반사적으로 눈가를 찡그린 콜리나가, 애써 미소를 유지하며 턱을 치켜들었다.
“알고 보니 검술부의 체스, 할리프, 이블과 절친한 사이더군요.”
“정말입니까?”
“그래요.”
홍차를 내려놓은 콜리나가 상체를 앞으로 깊숙이 기울이며 목소리를 낮추었다.
“저는, 그 여자애가, 정말정말 마음에 안 들거든요.”
그녀의 보석처럼 아름다운 눈이 소렉트를 빤히 바라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넋을 놓고 콜리나를 바라본 소렉트가 꿀꺽 침을 삼켰다.
콜리나가 은밀하게 속삭였다.
“그 애를 잘 가르치면, 삼인방도 자기들 잘못을 잘 알게 될 거예요. 그렇죠?”
“물론이죠. 당연하고말고요.”
고개를 끄덕이며 과하게 맞장구를 쳐주던 소렉트가 돌연 의아한 낯을 하며 말했다.
“그런데 그 카니 페테라스라는 여자, 참으로 이상한 평민인가 봅니다.”
콜리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무슨 말씀이시죠?”
“전에도 역사학과의 알렉 브래든 영식이 절 찾아왔었습니다. 영애와 비슷한 말을 하더군요.”
알렉 브래든이라면, 그럭저럭 성적은 봐줄 만하지만 여성편력이 더러운 귀족으로 소문이 난 영식이었다. 듣자 하니 취향도 망측하여 도서관 같은 공공장소에서 애정행각 하기를 즐긴다고 했다.
갈색 머리에 주근깨, 처진 눈. 매력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자를 왜 좋아하는 건지 이상하게 여자가 끊이질 않았다.
콜리나가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자가 뭐라고 하던가요?”
“예. 카니 페테라스를 유인해달라고 하더군요.”
딱딱하게 굳었던 콜리나의 얼굴이 기분 좋게 풀어졌다. 그 더러운 귀족이 자기 상대라면 짜증 나겠지만, 적에게 들러붙는다면 나쁘지 않았다.
“흐응…….”
콜리나가 티스푼으로 홍차를 저으며 만족스럽게 콧소리를 냈다.
“괜찮네요. 그래서 그때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생각해보겠다고 했습니다만, 영애가 이리 나서서 부탁해주시니 아무래도 그러겠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머, 신사적이기도 하셔라.”
소렉트가 콜리나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콜리나가 그의 머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차가운 눈에 느긋하게 저열한 웃음이 걸렸다.
***
문제의 남학생이 도서관에서 보낸 기괴한 웃음은 지독한 후유증을 낳았다.
나는 악몽을 꾸고 일어난 사람처럼 복도를 걷다 말고 뒤를 돌아보곤 했다. 남자애가 서 있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막상 주위를 살피면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 주 정도 지나자 서서히 나아졌다. 비브로스에게 허락을 받아 약초를 만질 수 있게 된 덕택이었다.
나는 일주일 내내 약초손질만 했다.
비브로스는 약물을 만들기엔 내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제조도구를 건들라치면 귀신같이 나타나서 손질이나 하라며 타박했다.
비브로스를 쫓아 각 학년의 수업을 따라다니면서 얼굴을 보인 탓인지, 정신 차려보니 내 이름은 학생들 사이에서 이미 유명해져 있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카니 페테라스는 약초도 구별 못 할 것처럼 맹숭맹숭하게 생겼지만 실력만은 손에 꼽는 귀재라는 것 같았다. 덕분에 소문을 들을 때마다 카니 페테라스가 나라는 사실을 상기해야만 했다. 괴리감이 심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은 아직 나에 대한 경멸과 무시를 모두 내려놓지 못했다. 그러나 깨어있는 자들은 나를 실력자로서 대우해주었다. 시간이 흐르자 ‘카니 페테라스’는 어느새 평민들의 완벽한 우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 발생했다.
‘내가 실력으로 귀족을 짓눌렀다고?’
안 그래도 위태로웠던 내 정신 상태는 강렬한 주먹을 맞고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저주인형 같던 남학생의 시선 때문에 연약해진 심장마저 터질 듯이 뛰어댔다.
‘그럴 리 없어.’
처음엔 부정했다.
귀재니 천재니, 용사들에게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늘 그랬듯이 코웃음을 치며 무시했다. 그러나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수업의 수준이 내 기준에서 하나같이 시시했기 때문이다. 그건 최고학년인 4학년의 수업도 마찬가지였다.
그쯤 되자 머리는 아예 기능을 멈춰버렸다.
나는 새끼오리처럼 비브로스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며 기계적인 대답만 했다. 오늘은 3학년 수업의 보조를 맡기로 되어 있는 날이었다. 주제는 ‘마나회복제’였다.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채 3학년 교재를 읽었다. 마나회복제는 내가 막 약제조를 배울 때 만들었던 약이었다. 서적엔 고등과정이라고 나와 있었지만 옛날 책이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여태껏 말이다. 내가 귀재였기 때문에 쉽게 만들 수 있었던 거라곤 상상조차 해본 적 없었다.
“비브로스 교수님.”
“응, 왜?”
비브로스가 친절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내 얼굴은 단언컨대 새파랗게 질려 있을 것이 뻔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 비브로스가 걱정스러운 눈을 했다.
그가 의외로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낯을 한 채 손마디가 굵은 울퉁불퉁한 손으로 내 이마의 열을 재려고 했다.
다행히 접촉을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챙길 정신은 있었다. 즉시 뒤로 물러섰다. 이런 일이 잦았던 터라, 비브로스는 딱히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내 걱정부터 했다.
“너 어디 아프냐? 얼굴이…….”
“저 똑똑해요?”
비브로스가 잠깐 말이 없더니 되물었다.
“뭐라고?”
“제가 약초의 귀재여서, 지금 교수님 곁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비브로스가 한쪽 눈썹을 위로 슥 들어올렸다.
그가 픽 코웃음을 치려다 말고 내 창백한 안색을 보더니 심각한 표정을 했다. 그가 나를 복도로 끌고 나왔다. 주위에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한 비브로스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너 설마 자각이 없었냐?”
쐐기다. 이제 빼도 박도 못한다.
나는 숨 쉬는 것마저 잊고 그를 멍하니 올려다봤다.
“그럼 내가 널 왜 내 곁에 붙여놓고 있다고 생각한 건데?”
나는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었다. 그리고 고심 끝에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웃기는 녀석이어서.”
“…….”
“웃기는 녀석이라면서요.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그냥 제가 교수님 마음에 든 거라고만 생각했어요.”
비브로스가 나랑 똑같은 표정을 했다. 그러니까, 어이가 없어서 넋이 나간 얼굴 말이다.
그가 떨리는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압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널더러 괴물이라고 한 건?”
“그건 교수님이 이상한 사람이어서 헛소리하신 줄 알았죠.”
“아하하! 미치겠네, 정말.”
비브로스의 입에서 기어코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답지 않게 다정한 어조로 설명을 이었다.
“얘야, 카니 페테라스. 내가 아무리 너보고 웃기는 놈이라 했다지만, 그걸 진담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하냐?”
“제가 재능 있는 애일 리가 없잖아요.”
비브로스가 돌연 입을 다물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뭔가를 곰곰이 따져보던 비브로스가 흠, 하고 침음을 삼켰다.
“이상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네.”
“네?”
“아니, 됐다.”
그가 손을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이었다.
“카니, 네가 그저 그런 실력자였으면 논란이 되고도 남았어. 내가 지금 널 좀 특별취급하고 있냐?”
“…….”
“잠잠한 이유는 네가 모든 항의를 묵살할 만큼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내가 2차 입학시험 때 냈던 문제지를 팔랑거리면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고. 이해돼?”
“아니요.”
칼같이 대답했다. 비브로스가 기어코 한숨을 쉰다.
그가 마른세수를 하더니 문득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곤 어안이 벙벙한 어조로 말문을 텄다.
“설마, 설마 했는데. 2차 시험이 너무 쉬워서 부정행위를 한 사람이 있을 리 없다고 한 거, 그거 진심이었냐?”
“…….”
“세상에, 맙소사군.”
그게 뭐 어떻단 말인가.
약초 이름을 쓰는 것뿐인 하찮은 시험인데 누가 커닝을 한단 말인가. 일일이 찾아 베끼기가 더 어렵겠다. 자연스럽게 외워지는 걸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나는 즉시 생각하는 것을 멈추었다. 내 기준에서 다른 사람들의 수준을 단정 짓는 건 또 다른 형태의 오만일 뿐이다.
“알고 보니, 헛똑똑이었구만?”
비브로스가 스스럼없이 일갈했다.
“카니, 자기가 특별한 인간이라는 걸 자각하면 보통 좋아하지 않냐? 근데 왜 그렇게 죽상을 하고 있냐? 내가 지금 도통 이해가 안 돼서 그래. 설명을 좀 해봐라.”
“저, 저는 여태껏 제가 평범한 줄 알았고…….”
“그게 뭐? 아닌 걸 알았으면 된 거지. 근데 넌 사형 선고라도 받은 사람처럼 침울해졌잖아. 이게 평범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거냐?”
나는 입을 다물었다.
고개를 숙이고 발등을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비브로스가 문득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카니.”
진지하고 중후한 음성이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게 느껴졌다.
“뮤나스에 입학하기 전에 누군가에게 약초를 배운 적이 있나?”
“…….”
“네 실력이 너무 뛰어나서가 아니야. 그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그거 말고, 생각이 이상해. 네 생각 말이야.”
비브로스가 검지로 자기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아무리 따져봐도 어딘가 비틀린 데가 있단 말이야. 근데 난 그게 네 것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제 것이 아니라고요?”
이게 무슨 소린가. 나는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네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 네가 재능 있는 애일 리가 없다는 거. 그거 진짜 네 생각 맞는 거냐?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네 생각처럼 여기고 있는 거 아니야?”
머릿속이 하얘졌다. 견딜 수 없는 충격이 심장을 비틀었다. 굳건했던 믿음이 밑바닥부터 무너지고, 그 출처가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 불현듯 목젖을 치고 올라왔다.
분노인가? 슬픔인가?
혼란스러웠다. 그러나 그 무엇도 아닌 것 같았다. 모든 게 섞여있는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목구멍에 달라붙었다. 침을 삼켰으나, 무언가 걸린 것처럼 칼칼했다.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당혹스러워서 숨도 쉬지 못하고 얼어있자, 비브로스가 허리에 손을 얹었다.
“표정을 보니 알 만하군. 대답은 됐다. 그럴 정신도 없는 것 같고. 이 일은 내가 평생 기억하고 있도록 하마.”
“기억이요? 무엇을 위해서요?”
“난 어렸을 때부터 집요한 놈이었어.”
비브로스가 무서운 얼굴로 말했다.
“너처럼 훌륭한 싹을 보기 좋게 짓밟은 놈이 약제조 학계에 있다는 거 아니냐.”
혀끝까지 튀어나온 욕설을 도로 삼킨 그가 입을 가리고 큼큼, 목청을 가다듬었다.
“너 때문만은 아니야. 그런 놈이 같은 바닥에 있다는 걸 내가 참을 수 없을 뿐이야. 이 바닥이 좀 좁냐? 어디서든 만나겠지. 안 그래?”
“…….”
“그런 자 손에 감히 생명을 맡겨선 안 돼. 반드시 쫓아내고 말겠단 소리지. 그 김에 내 제자를 슬프게 하는 것들은 전부 불태워 없앨 생각이고.”
무엇이 더 중요하든,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비브로스가 이를 드러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의지하고 싶은 사나움이었다. 날 해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이상하게 최근 기대고 싶은 충동이 자주 인다. 의지하고 싶은 자들이 이미 곁에 다섯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경계도 차츰 허물어져서 점점 마음이 기울고 있었다. 나로선 익숙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그가 허리를 펴더니 문득 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카니, 실체도 없는 그림자에 계속 휘둘려선 안 된다. 생명을 다루는 사람은 자기 실력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해. 자기 분수를 모르는 상태로 약을 만들면 안 된다는 거야. 왜인 줄 알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사람은 제 손으로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조차 실감하지 못하거든.”
“…….”
“그게 뭘 의미하는지 무게를 모른단 말이야. 그러면 분수에 넘치는 약을 만드는 거야.”
분수에 넘치는 약. 떠오르는 일들이 여러 개 있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책임지지 못할 일을 벌이는 거지. 약은 네 손을 떠나잖아. 상대를 직접 목 졸라 죽이는 것도 아니고, 신성마법으로 직접 정화하는 것도 아니니 가벼운 마음으로 약을 뿌리는 건 쉬워.”
비브로스가 자신의 지난 과오를 생각하듯 픽, 비소를 터트렸다.
“너무 쉽지. 실력이 다가 아니야. 당연한 얘기다.”
명치가 꽉 조이는 느낌이 들었다. 혹은 비브로스 앞에 발가벗겨진 채 서 있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내 어리석음을 낱낱이 기록한 책을 활짝 펼쳐두고 코앞에서 읽는 기분이었다.
“너는 무엇을 해결할 수 있냐?”
비브로스가 문득 물었다. 나는 얼굴을 구기고 되물었다.
“무슨 말이에요?”
“아픈 사람이 널 찾아왔다고 생각해봐. 다른 사람은 모두 해결하지 못했던, 그런 환자가 왔다고.”
“…….”
“상상했어?”
아주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나는 용사들을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환자를 어디까지 책임질 수 있는지 감을 잡을 수 있겠어? 아주 곤란한 상황에 있는 환자라고 생각해봐.”
나는 한참 동안 생각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시인했다.
“모르겠어요.”
“왜 가늠이 안 되는 줄 알아?”
“아뇨.”
“다른 많은 이유들도 있겠지만, 가장 유력한 원인은 네가 스스로를 잘 몰라서 그래.”
할 말이 없었다.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그만큼 중요한 거야. 알짜배기 자신감은 자기를 정확히 아는 데서 출발하거든.”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봐라.”
“저만 살릴 수 있는 환자라고 가정해볼게요.”
비브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환자를 도우면 제가 위험해지는 상황이에요. 그러면 교수님은 어쩌실 거예요?”
비브로스가 생각에 잠겼다.
“네가 살릴 수 있는 환자인 건 확실하냐?”
“확실해요.”
“나라면 일단 살리고 봐.”
비브로스가 즉답했다.
“내가 살릴 분수가 되잖아. 그럼 살려.”
“왜요?”
“그게 내가 하는 일이니까.”
“…….”
“살리고 싶어서 이 직업을 가진 거고. 너라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데?”
나는 기운 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살려요.”
비브로스가 내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사람 다루는 직업이잖냐. 이것저것 복잡한 일에 말려드는 건 당연한 거야. 약만 잘 만든다고 되는 거였으면 내가 여기서 교수짓거릴 왜 하고 있겠냐.”
그가 자조적인 웃음을 터트렸다.
“너도 내가 교수직에 안 어울린다고 생각하지? 장담하건대 그 말에 가장 동의하는 사람은 나일 거다.”
“…….”
“오늘은 들어가서 쉬어라. 그렇다고 가서 잠이나 퍼질러 자라는 게 아니야. 생각을 해라. 너에게 상처 준 사람 말에 휘둘리지 않은, 너만의 생각.”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브로스가 등을 떠밀었다.
나는 복도를 터덜터덜 걸었다. 무슨 정신으로 건물 바깥까지 나왔는지 모르겠다. 멍하니 걷다가 분수대 근처에 털썩 주저앉았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생각에 잠겼다.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용사들이 내게 해주었던 말, 그동안 있었던 여러 일들, 그리고…….
“므리나 이소리하.”
그 여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나는 손으로 눈가를 가리고 한참을 웃었다. 이소리하가 내게 했던 숱한 개소리들이 환청의 형태로 머릿속에서 왱왱거렸다.
머리 위로 비수처럼 쏟아지던 독설과 협박, 필사적으로 날 깎아내리려고 했던 포악한 말투, 칼날처럼 예리했던 아픈 단어들.
모두 고스란히 박혀있다. 심장에, 머리에. 세뇌처럼. 내 안에 또 다른 그 여자를 만들어서 수없이 스스로를 죽였다. 귀를 막고 눈을 가렸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을 믿었다.
너는 멍청하다고.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벌레처럼 살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가장 도움이 되는 길이라고. 친구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눈을 떴다.
하늘에 뜬 태양을 바라보았다. 눈을 감고 따스한 햇볕을 한동안 즐기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마에 붙은 먼지를 털어내고 비브로스가 수업 중인 강의실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옆에 서서 원래 하기로 했던 약초 손질을 시작했다. 비브로스는 내게 다시 쉬러 가라고 하지 않았다.
***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학기의 절반이 가버렸다.
나는 전보다 안정된 상태에 접어들었다. 신학기의 설렘은 퇴색되고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이 남았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여전히 학생들의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사건이 한두 개쯤 남아있었다.
규모가 큰 현장실습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쩌면 교수들은 그런 점까지 모두 고려해서 커리큘럼을 짰는지도 모른다.
“너는 가지 않아도 돼.”
비브로스가 말했다.
조만간 약제조학과 실습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일러준 게 틀림없었다. 1학년 실습에 내가 참여하는 것은 중한 죄라도 된다는 태도였다.
“산행에서 약초를 찾는 실습이야. 뿌리 터럭만 봐도 종류를 가려내는 네게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실습이지.”
대신 나는 비브로스의 감독 아래서 약물을 만들 수 있는 권한을 허락받았다. 대부분 눈감고도 제조할 수 있는 시시한 물약이었다. 지혈제라거나, 수면유도제 같은 것.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었다. 비브로스의 진중한 시선을 느끼고 있노라면, 약물 하나하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중요성을 실감하며 만드는 약은 아무리 흔한 것이어도 내게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약물을 만들 준비가 됐군.]
비브로스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일주일 후에 검술부와 마법부의 합동 토벌 실습이 있을 거야. 나는 그 실습의 보조대열에 끼게 될 거고.”
“보조대열이요?”
“약제조학과는 뛰어난 학생 몇몇을 선발해서 검술부와 마법부의 실습에 따라가는 게 매해 규칙이었어.”
‘검술부와 마법부?’
그러면 용사와 이블라랑 만날 수 있게 된다.
“합동 토벌 실습은 인원이 많아서 교수들의 눈 밖에서 사고가 나기 쉽거든.”
나는 깜짝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너무 위험하지 않아요?”
심지어 학생 대부분은 귀족의 자제들이다.
‘그런데도 실습에 참가한다고?’
“그렇진 않아.”
비브로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정식 기사들이 조장을 맡으니까. 근데 말 그대로 보호야. 위험한 순간에만 도와주는 거지. 그러지 않으면 실습을 하는 의미가 없잖아?”
약 유리병을 테이블에 올려놓은 비브로스가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며 말을 이었다.
“약제사랑 치료사, 그리고 신성사제가 동행하는 건 그 때문이야. 자잘한 상처들이 많이 생기니까. 심하게 다치는 학생이 나타날 수도 있고.”
비브로스가 불현듯 나를 보았다.
“근데 너 약제사랑 치료사의 차이가 뭔지는 알지?”
“당연하죠.”
나는 뭐 그런 걸 묻느냐는 투로 대답했다.
“약제사는 주로 내상을 살피잖아요. 보조역할이랄까.”
“치료사는?”
“내상과 외상을 아울러 약제사가 할 수 없는 부분까지 전반적인 치료를 담당해요.”
“개념은 잡혀있네.”
비브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약제사와의 차이를 만드는 건 치유연금술이야. 마법사의 포션, 마나석, 혹은 어떤 마법적인 처치를 추가해서 약초만으론 만들 수 없는 약물을 만드는 거지.”
단순히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만들기까지 해봤다.
소생약.
재미와 흥미 때문에 만들었고, 실제로 사용하기까지 했다. 얼마나 생각 없는 행동이란 말인가. 소리 없는 수치심이 턱을 아래로 잡아당겼다.
나는 고개를 떨어트린 채 제조서적의 글자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너는 앞으로 어떻게 할래?”
“뭐가요?”
“계속 약제사로 남을 건지, 아니면 치료사의 밑에서 전문적인 치유연금술을 배울 건지 묻는 거야. 약제학은 치료사가 되기 위한 초석이잖아.”
“검술부 학생들이 기사를 꿈꾸는 것처럼?”
“그렇지.”
나는 미간을 좁혔다.
“아직 생각해본 적 없어요.”
“왜?”
“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나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전문 치료사가 한 번에 양성하는 치료사는 많아봐야 세 명이에요. 경쟁도 치열하고 선발도 까다롭고 운도 있어야 하죠.”
비브로스가 묘한 눈으로 날 보더니 화제를 약간 비틀어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치료사가 되고 싶긴 해?”
“되면 좋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
그의 말은 무언가 암시하는 것이 있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 그가 내 안에 케케묵어있던 어떤 대답을 끌어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야 떠오른 사실이 하나 있었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교수님은 치료사죠?”
비브로스가 약간 무안한 듯이 서적을 들추며 대답했다.
“그래.”
‘아하…….’
나는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그는 내가 정식으로 자기의 제자가 되길 바라고 있는 것이다.
아다르가 이 장면을 봤다면 너의 구제할 길이 없는 대인관계 기술이 조금은 늘어서 기쁘다고 말할 법한 순간이었다.
“생각해볼게요.”
그가 멀거니 껌뻑이는 눈으로 날 봤다. 입꼬리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위로 씰룩거렸다.
‘내가 그렇게 좋나.’
여러모로 이해할 수가 없는 사람이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훈증된 약초를 빻기 시작했다 비브로스가 괜히 큼큼거리며 헛기침을 했다.
***
일주일 뒤, 예정대로 합동 토벌 실습이 시작되었다.
약제사 행렬엔 비브로스와 나, 콜리나 살라소나, 그리고 다섯 명의 약제학과 학생이 따라붙었다. 고학년 중에서도 신중하게 차출된 우등생들이다.
나는 까마득한 저학년이었지만, 비브로스의 조수라는 명목으로 따라가게 되었다.
‘콜리나 살라소나라니…….’
벌써부터 피곤해지는 기분이다.
그녀는 나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다. 부디 너무 곤란하게 만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주위를 살피자 검술부와 마법부의 깃발이 보였다. 그뿐만 아니라 요리학부의 깃발까지 있다. 많은 인원의 입을 책임질 요리학부의 학생들도 합동 토벌 행렬에 동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유일하게 빠져있던 한 사람, 아다르까지 전부 한 자리에 모이게 된다.
매번 어두컴컴한 밤에 좀도둑들처럼 모여서 작당하는 게 마음에 안 들었는데, 이런 기회가 오니 기분이 좋았다. 사람이 많아서 만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습은 닷새 동안 이루어졌다. 왕복 이동 시간만 나흘이었으므로, 실제로 토벌을 하는 건 하루 동안인 셈이다.
토벌 대상은 여섯 등급으로 나뉘는 공격형 몬스터 중에서 가장 낮은 일반 등급인 코볼트였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근방 코볼트의 번식 속도가 봄을 맞아 급증하고 있다.”
중간지점에 도착하자 검술부 교수가 나무 자재로 만든 임의적인 단상 위에서 연설을 시작했다.
“영역을 넓힌 코볼트 무리에게 발각된 어린아이가 살해된 사건은 이미 많이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놈들의 악행을 너희가 끊어 놓는 것이 이번 토벌의 주목적이다. 코볼트 영역을 케톨프 숲까지 좁혀놓는다. 알겠나?”
“예!”
검술부와 마법부 학생들이 짧고 분명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코볼트 주둔지는 엉성한 철제 담장으로 둘려 있다. 독성이 있으니 스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한다. 자세한 작전수행은 분대장의 지시를 따르고, 개인행동은 엄금한다. 점심을 먹고 바로 출발한다. 이상!”
검술부와 마법부 학생들이 흩어져 막사로 돌아갔다. 이제 요리학부 학생들이 바빠질 차례였다.
그들은 검술부 못지않게 일사불란하고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으로 주방용품과 마도구를 막사 근처에 설치했다. 요리는 하인이 하는 거라는 사고방식이 아직 뿌리 뽑히지 않은 탓인지, 약제조학과만큼 평민의 수가 많았다.
나는 막사 바깥으로 나와 주위를 한 차례 빙 돌았다.
갓 돋아난 파릇파릇하고 싱싱한 풀 냄새가 났다. 그 가운데 희미하게 화약 냄새가 풍겼다. 코볼트 특유의 지린내도 섞여 있었다.
여름을 끌어당기는 요란한 벌레울음소리가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멀리 나갈 수 없어서 약초를 찾기는 어렵겠는걸.’
문득 자기의 화려한 요리 기술을 못 보여줘 안타깝다며 깐죽거리던 얼굴이 생각났다. 나는 계획을 변경해 아다르를 찾기로 결심했다.
‘어디 얼마나 대단한 실력을 갖고 계신지 한번 볼까?’
고개를 쭉 빼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요리학과 막사 근처는 이미 구경하러 온 타과 학생들로 바글바글했다. 그래도 일정 거리 이상 다가가지 않고 있었다. 점수를 깎겠다는 엄포 때문이었다.
그때 한 막사 근처에서 익숙한 머리가 보였다. 아다르의 잿빛 머리카락이었다. 짙은 연기 때문에 발견이 늦었다.
그럼에도 구경하는 사람들이 유별나게 많아서 자연히 눈이 갔다.
‘왜 저렇게 사람이 많지?’
의아하게 여기는 찰나, 하늘을 나는 재료가 포착되었다.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그건 당근이었다. 당근이 미리 준비되어 있던 볼에 차례로 던져졌다. 잘못 빗겨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법이 없다. 정확하고 일정한 포물선을 그리며 볼에 착착 쌓였다.
그것을 자리로 가져온 아다르가 도마로 쏟아내고 큼지막하게 깍둑썰기를 시작했다. 와아, 하고 학생들이 감탄하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비단 학생뿐만 아니라 요리를 감시하던 교수들도 아다르를 곁눈질로 구경하고 있었다. 칼질이 어찌나 빠른지 눈을 깜박이면 재료가 해체되는 수준이었다.
‘누가 암살자 아니랄까 봐…….’
고기의 뼈와 살을 발라내는 솜씨마저 기행에 가까웠다. 누가 우스갯소리로 사실 칼쟁이 아니냐는 소리를 했다. 간담이 서늘한 농담이다.
오싹해져서 몸을 부르르 떠는데 아다르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뒤에서 날아오는 재료를 손으로 받아내기까지 했다.
누가 봐도 일반 요리사처럼은 안 보였다.
‘아니 좀 평범하게 썰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완벽한 입방체 모양이 되어 쌓여있는 재료들을 구겨진 얼굴로 지켜봤다. 대체 저것들로 음식을 만들긴 하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땅에 쌓아서 집을 지어도 되겠다 싶은 것이다.
다행히 다들 신기하게만 여기고 있었다.
그의 정체가 사실은 백년 이상 묵은 암살자라는 걸 추리해내는 건 애당초 무리겠지만, 칼쟁이 농담을 믿을 만큼의 상상력도 없는 모양이다. 고지식한 귀족들이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다르는 귀족 가운데 홀로 유일한 평민이었다. 놀랍게도 조원들과 사이가 좋았다. 그 모양이 꽤 기이하게 여겨져서 왜 그런가 한참을 쳐다보고 나서야 새삼스러운 사실을 깨달았다.
‘아다르 조원은 왜 모두 귀족이지?’
요리학부는 평민들이 많았다. 그래서 조마다 신분이 골고루 편성되어 있었는데, 아다르 조만 귀족 밭이었다.
게다가 귀족 조원들이랑 사이도 좋고.
‘아니 잠깐만.’
사이가 좋은 게 아니라…….
“다, 다다, 다르 씨. 불 확인하고 있어?”
한 귀족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아다르에게 물었다. 너무 더듬어서 알아듣기 힘든 목소리였다.
그러자 재료 썰기에 한창 정신이 팔려 있던 아다르가 멀리서 대충 흘겨보는데도 충분히 포악해 보이는 표정으로 그 귀족을 바라보았다.
“뭐야?”
‘너무 뒷골목 사람이잖아!’
평소에 풍기는 기운이 살기처럼 날카로워서 그런지 얼굴을 조금만 찡그려도 살인자의 느낌이 났다.
나는 당장 뛰어가서 붕대로 아다르의 얼굴을 감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그러니까, 부, 부부, 불이…….”
아다르의 얼굴을 보고 겁에 질린 남학생의 발음이 더욱 뭉개졌다.
“제기랄, 뭐래는 거야.”
아다르가 신경질을 내며 도마에 칼을 꽂았다. 남학생의 얼굴이 더욱 사색이 된다.
‘너무 뒷골목 사람이라고!’
나는 다리를 떨며 주위 학생들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뭐 하는 평민이냐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은 아다르가 손으로 입 모양을 만들더니 캐스터네츠처럼 움직이며 남학생을 쏘아붙였다.
“아가릴 좀 제대로 털어봐. 그렇게 말하면 이 난리 통에 들리겠냐?”
“부, 부부, 불…….”
“뭐?”
남학생은 말로 하길 포기하고 팔팔 끓고 있는 냄비를 손으로 가리켰다. 아다르가 그제야 알아듣곤 인상을 폈다.
“아아, 불. 미안, 안 알려줬으면 태울 뻔했다. 고마워!”
그가 남학생의 등을 두들기자 팡팡 소리가 난다. 억 소리를 낸 남자애가 비틀비틀 제 자리로 돌아갔다.
귀족들이 처음부터 아다르를 깍듯하게 대했을 리는 없다. 상대가 좀 사나워 보인다고 금세 자존심을 굽힐 부류가 아니었다. 게다가 아다르와 같은 조인 요리학과 학생들 모두 인상이 험상궂었다.
아무래도 아다르에게 크게 혼이 난 이력이 있어 저러는 것 같았다.
저런 애들은 평민뿐만 아니라 같은 귀족들도 괴롭히기 십상이었다. 교수가 일부러 아다르와 한 조로 묶어버린 게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타과 학생들 모두 거친 놈들이 왜 기를 못 펴서 저러고 있냐며 떠들어대고 있었다.
“카니?”
아다르가 멀찍이 서 있는 날 발견했다.
‘설마 나한테 오는 건 아니겠지.’
간절한 소망을 담아 두 손을 열심히 휘저어보지만 이미 늦었다. 그가 한달음에 달려왔다. 손에 들고 있던 과도까지 고스란히 들고서.
그의 심상치 않은 칼솜씨를 실컷 구경한 학생들이 혹여 배라도 찔릴까 질겁하며 좌악 갈라섰다.
자리를 비켜주는 속도가 반으로 쪼개지는 장작처럼 순식간이다. 구경꾼들의 관심은 당연한 수순으로 내게 집중되었다.
“더러운 평민들끼리 잘도 노는군.”
날 발견하기 무섭게 욕을 하는 귀족이 나타났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아다르가 내 주먹을 가볍게 감싸 잡으며 키득거렸다.
“왜 또 그렇게 화가 났어.”
“귀족 시선을 주렁주렁 달고 나한테 오면 어쩌자는 거야. 지금 여기서 평민은 너랑 나밖에 없다고.”
“그게 왜?”
아다르가 손에 들고 있던 과도를 불시에 뒤로 휙 던지며 물었다.
‘응? 방금 뭐 한 거지?’
텅, 하고 절대 무시할 수 없는 파열음이 들렸다.
나는 아다르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계속 내 욕을 하고 있던 귀족의 귀를 스치며 날아간 과도가 나무에 날아가 박혀 있었다. 그 귀족은 이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있다.
지루한 레퍼토리인 ‘내가 누군지 알고 감히 이런 짓을…….’로 시작되는 서두마저 떼지 않았다. 완전히 기절초풍한 낯이다.
검술부 소속의 귀족들이 멍하니 아다르를 본다. 다른 귀족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눈치도 채지 못했다.
‘이래도 되는 걸까.’
나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다.
“누가 너한테 뭐라고 해?”
아다르가 웃는 얼굴로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이런 녀석에게 뭐라 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면서 말했다.
“저 칼은 괜찮은 거야?”
“괜찮아. 교수들 눈 피해서 했어.”
“어떻게?”
“어떻게라니?”
“안 보는 걸 어떻게 아냐고. 넌 계속 날 보고 있었잖아.”
아다르가 골똘히 고민했다.
“감?”
그 끝에 나온다는 대답이 이거다.
‘역시 말을 말자.’
어차피 교수가 보지 못했다면, 검술부 애들이 아무리 입을 털어봤자 헛소리로 들릴 것이다.
‘요리학부 학생이 능숙한 검사 수준으로 과도를 던졌어요!’라니. 나라도 안 믿는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날 찾아올 줄은 몰랐는데.”
아다르가 싱글벙글 웃는 낯으로 말했다. 여전히 내 손을 꼭 잡은 채였다. 방금까지 물을 만진 손이라 차고 축축했다. 고개를 들어 시선을 맞췄다.
아다르의 검은 눈이 별이 총총 뜬 밤하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게 치료사를 권하며 제 곁에 있기를 바랐던 비브로스의 눈과 겹쳐 보였다. 묘한 감상이 들었다.
나는 시선을 피하며 물었다.
“오늘 점심은 뭐야?”
“고기 스튜.”
아무 생각 없이 물었는데 최악의 답이 돌아왔다.
“너는 고기 안 먹지?”
아다르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수인족은 자기가 속한 계열의 동물과 비슷한 습성을 가진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식습관이다.
나는 고기도 먹을 수 있긴 했지만 그러면 입맛도 버리고 대부분 배탈이 났기에 초식을 선호했다.
“토벌 실습이라 그런지 든든하게 먹일 생각인가 봐. 걱정 마. 내가 고기 아닌 재료들로 따로 식사를 차려줄게.”
“그래도 돼?”
“안 될 건 뭐야?”
아다르는 여전히 태연한 얼굴이었다. 뮤나스의 학생이라기엔 지나치게 자유로운 사고방식이다. 뮤나스를 자기 소유의 저택쯤으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매일 밤마다 아레사 나이제르를 찾기 위해 용사들과 뮤나스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러려니 하고 수긍했다.
요리는 금방 완성되었다. 나는 아다르가 특별히 내어준 음식을 먹었다. 보라색, 빨간색, 노란색의 알록달록한 야채에 향신료를 넣고 올리브 오일에 천천히 익힌 요리였다.
계란과 곁들어 먹자 짭짤하니 맛있었다.
정신없이 식사를 하고 나니 금세 출정 시간이 다가왔다.
조별로 빽빽하게 서 있는 학생들 사이에서 아는 얼굴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검술부는 덩치가 큰 사람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작은 내 시야를 온통 가려버렸다.
그들은 준비가 끝나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코볼트 주둔지로 떠났다.
나는 약제사 막사로 돌아와 필요해 보이는 약물들을 종류별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양이 많아서 족히 한 시간은 걸렸다. 지금쯤이면 최전방에서는 코볼트와 맞닥뜨렸을 것이다.
콜리나가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가 약품 목록을 확인하고 있는 날 보더니 댓바람에 얼굴을 구겼다.
나는 피곤한 일이 시작되었음을 알고 마음의 준비를 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그녀는 폐쇄된 공간에 나와 둘이 남으면 곧잘 포악해졌다. 평소에 곱게 내던 음성도 잔뜩 힘을 실어 찢어지게 만들었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자면 화가 잔뜩 난 멧돼지를 근처에 두고 있는 기분이었다.
“보면 몰라?”
재수 없게 물어보면 싸가지 없게 대꾸해줘야 하는 법이다. 여봐란 듯이 콧방귀를 뀌며 얘기하자 콜리나가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당장 그거 내려놔. 네가 뭔데 마음대로 약품을 만져?”
“그러는 너야말로 뭔데 이래라 저래라 해?”
이게 뭐라고 저렇게 거품을 물고 달려드는 걸까.
‘혹시 약품 정리가 비브로스의 조수만 할 수 있는 특권 비슷한 거라고 여기는 건가.’
나는 콜리나의 얼굴을 확인했다. 눈이 뒤집혀있는 꼴을 보니 높은 확률로 그런 것 같다.
‘질투의 화신이 따로 없네.’
“사용하기 편하게 정리하고 있는 거잖아.”
“교수님 허락 맡지 않고 이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니?”
조수라고 마음대로 다 해도 되는 줄 알아?
콜리나의 말이 자동으로 해석되어 들렸다. 나는 대놓고 한숨을 쉬었다.
“어차피 몇 분 후면 정리하라고 말씀하실 텐데 굳이 그때까지 기다려야 해? 너는 명령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해? 예습은 하니?”
이 지점에서 콜리나의 비루한 이성은 쉽게 끊겨버리고 말았다.
돌진을 준비하는 황소처럼 발을 구르며 걸어온 콜리나가 손을 위로 번쩍 올렸다. 손찌검을 하려는 것이다. 끝까지 고고한 척, 우아한 척 하지만 열이 뻗치면 폭력부터 나가는 게 보통의 귀족이다.
나는 코웃음을 치며 그녀의 팔을 잡아챘다.
“이거 안 놔?”
내가 팔을 잡을 줄은 몰랐는지 콜리나가 쩔쩔매며 말했다. 힘을 당해내기 버거울 것이다. 내 근육은 비록 용사들보다는 초라하긴 하나 죽음의 숲에서 오랜 기간 단련되어왔다.
‘게다가 수인족이고.’
온실 속 화초로 곱게 자란 살라소나 백작 영애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나는 콜리나의 등 뒤쪽을 바라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셨어요, 교수님?”
콜리나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내렸다. 당연하지만 교수님은 오지 않았다. 내 조롱을 눈치챈 콜리나의 눈이 과도한 분노로 촉촉해졌다.
“내가 널 가만히 놔둘 것 같아? 돈으로 네 정보를 사는 것 따윈 일도 아니야. 네 가족, 친구, 전부 알아내서…….”
씹어 뱉는 단어 하나하나에 어떻게든 날 짓밟고 싶은 심정이 꾹꾹 담겨 있다.
나는 얼굴에서 표정을 지웠다.
아무리 화가 나도 사람은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있었다. 콜리나는 그걸 넘었다. 본인도 그걸 퍼뜩 깨달았다. 그녀는 말을 하다 말고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해졌다.
내 눈은 진작 냉랭해졌다. 한겨울의 서릿발이 시선 끝에서 사납게 몰아치는 게 느껴질 정도로.
콜리나가 숨을 죽였다. 그 모습이 꼭 내가 뿜어내는 북풍에 얼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겁먹을 것 같아?”
그녀가 애써 소리쳤다. 나는 말을 아끼고 시선을 돌려버렸다. 콜리나가 못 이기는 척 제자리로 갔다.
원정대가 돌아왔다.
부축을 받거나 마차에 실린 많은 부상자들이 막사 안으로 우르르 밀려들어왔다. 어색한 공기가 만반했던 장소가 사람으로 가득 찼다. 콜리나와 나는 금세 정신이 없어졌다.
차라리 이편이 낫다. 불편한 속이 좀 나아졌다. 나는 치료에 집중했다.
예상대로 별 거 아닌 상처들이 대부분이었다. 바쁜 것을 제외하면 그다지 문제 될 건 없었다.
코볼트의 무기는 날카롭지 않지만 인체에 해로운 금속 재질로 되어 있고 비위생적이다. 상처를 치료하는 동시에 염증을 막기 위한 예방약물도 따로 처방했다. 간혹 독에 중독된 학생들도 있었지만 모두 단순하고 약한 독이었다. 이 돌산에 피어있는 독초가 다행히 순한 편이기 때문이다.
나는 타박상, 찰과상, 열상의 정도를 확인하고 그에 맞는 약물을 처방했다. 그러나 빠른 치료를 지속하던 나는 갑자기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었다.
한 환자의 상태가 이상했기 때문이다.
겉보기엔 간단한 타박상 환자처럼 보였다. 안쪽 손목에서 팔꿈치까지 쓸리고 눌린 상처가 죽 늘어서 있었다. 암적색 멍이 벌써부터 진하게 올라오고 있다.
나는 멍의 모양과 여학생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확인했다.
“뭘 보고만 있는 거야? 빨리 치료해.”
팔을 내밀고 있던 귀족 검술부 여학생이 짜증을 내며 말했다. 몸이 비쩍 곯은 학생이다.
날카롭고 얇은 시선은 마치 무언가에 오랫동안 쫓긴 사람처럼 신경이 곤두서 있었고, 피부색이 창백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초조한 사람처럼 습관적으로 아랫입술을 씹었는데 시선을 내게 똑바로 향하지 못하고 자꾸만 왼쪽이나 오른쪽을 흘끗거렸다. 자기 그림자에도 놀랄 것처럼 심약해 보였다.
‘과도한 불안 증세랑 식은땀. 심장도 엄청 빨리 뛰고 있어.’
“뭐 하고 있는 거니, 카니? 환자가 기다리고 있잖아.”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칠 리 없는 콜리나가 콧대를 높이며 끼어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약품 선반으로 걸어갔다. 수많은 시선이 등에 따라붙는 것이 느껴졌다. 눈을 크게 뜨고 선반을 찾아보거나 약품 목록을 살펴봤다. 당연히 내가 원하는 약이 있을 리 만무했다.
허락받은 개인소지품만 챙길 수 있었던 터라 마법가방도 기숙사에 있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
콜리나는 초조했다.
대체 뭘 꾸물거리는지, 고지가 눈앞인데도 카니가 이상한 행동을 했다. 선반을 기웃거리거나 약품 목록을 뒤지면서 다른 약물을 찾고 있었다. 마치 다른 학생들에게 처방하듯이 처방하면 안 된다는 걸 미리 알기라도 한 사람처럼.
‘그럴 리 없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콜리나는 그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녀는 이 순간을 위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비브로스 샥스가 눈치챌 수 없는 독이 지극히 한정적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약초에 관해 괴물 같은 자라지만, 가려낼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빠지는 독의 정체까지 알아낼 재간은 없었다. 콜리나는 이 독을 알아내기 위해 온갖 도서를 샅샅이 뒤졌다.
지금 카니 앞에 서 있는 여학생은 이곳에 돌아오기 직전 깜짝발열풀을 복용했다. 그렇게 하도록 미리 매수해둔 사람이었다.
깜짝발열풀은 해독약을 먹지 않고 다른 약을 먼저 복용하면 현기증을 느끼고 열이 오르는 독초다.
순한 독이어서 하루 이틀이면 가라앉는 종류였다. 아무리 빚을 탕감해준다 해도 생명에 위협이 될 정도면 여학생이 거래를 승낙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독을 잘 고른 덕분에 여학생은 콜리나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현재 약제조학과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약물들은 몇 종류를 제외하고 모두 자기가 직접 제조한 것들이다. 콜리나는 이 점을 노렸다.
교수가 검수를 거치긴 하지만, 카니 페테라스가 몰래 새 약을 만드는 것을 봤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콜리나의 계획은 이랬다.
매수한 여학생이 카니의 약을 먹자마자 현기증을 느끼고 쓰러진다. 오늘 밤부터 고열이 시작된다. 다른 이유는 찾아볼 수 없다. 이 근방에서 열을 일으킬 독초는 몇몇 있지만, 그를 증명해줄 증상이 없다.
원인은 카니 페테라스가 직전에 처방한 약으로 좁혀진다.
적절한 때에 콜리나가 나서서 카니의 약이 원인이 맞는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녀의 주장을 뒷받침해줄 증인이 나타난다. 미리 매수된 증인은 카니가 이상한 약을 만드는 것을 본 적이 있다며 거짓증언을 한다.
완벽했다.
할 말 못 할 말 구별도 못하냐고 묻는 듯, 차갑게 식었던 카니의 눈을 떠올린 콜리나가 이를 갈았다. 순간 기가 죽은 게 치가 떨릴 정도로 수치스러웠다.
그러나 그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코를 납작 눌러줄 생각을 하자 절로 웃음이 났다. 어서 속이 시원해지고 싶었다. 비브로스의 실망한 눈도 보고 싶었다. 그녀에게 빼앗긴 관심을 도로 가져오는 것도 머지않았다.
약제조학과의 톱이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다시 만족시켜드리고 싶었다.
제 뜻대로 상황이 흘러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콜리나는 이 계획을 세우면서 따르는 고행을 즐기기까지 했다.
‘그 고서에서도, 그리고 최근 연구에서도 발열 외에 깜짝발열풀을 특정 짓는 증상은 찾아볼 수 없다고 쓰여 있었어. 저 평민이 실력이 좀 있기로서니, 교수들의 연구보다 뛰어나진 않겠지.’
콜리나는 충분히 시간이 지체되었다고 판단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니, 지금 뭐 하는 거야? 어서 환자를 치료해주라니까.”
괘씸하게도 카니 페테라스는 콜리나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신중히 고민한 끝에 약물 네다섯 개를 고르더니, 혹시 몰라 챙겨온 다른 약재들과 유발을 꺼냈다. 뭔가를 만들려는 심산이었다.
콜리나는 그걸 보자마자 등골이 선득해졌다.
‘아니, 그럴 리 없어.’
그녀가 무슨 생각으로 유발을 꺼냈고 뭘 만들려고 하든, 콜리나는 저걸 당장 막아야 했다. 그래야만 했다.
그녀는 생각을 곧장 실행으로 옮겼다. 콜리나가 황급히 카카나의 팔을 움켜쥐어 막았다. 그녀의 흐리멍덩한 검은색 눈이 싸늘하게 콜리나를 향했다. 한심한 어린애를 쳐다보듯 했던 감정마저 깡그리 사라진 눈이었다.
콜리나는 섬뜩함을 느꼈지만 티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사교계에 데뷔한 영애였다. 그 정도 표정 관리는 할 줄 알았다.
문제는 카카나가 그런 식으로 연기하는 사람들에 한해선 감이 좋다는 점이었다.
“이거 놔.”
카카나가 냉랭하게 명령했다.
그녀는 콜리나에게 존댓말을 하지 않았다. 한 번도 그래본 적이 없었다. 다른 고학년에겐 깍듯하게 존댓말을 하면서 콜리나만은 예외였다.
그게 그녀의 화를 더 돋운 것은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
콜리나가 격앙된 어조로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여학생을 치료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자 대기하고 있던 귀족과 평민들이 웅성웅성 시끄러워졌다. 콜리나는 적당한 무대가 만들어졌음을 깨달았다.
약을 먹이지 않으면 깜짝발열풀은 아무런 효능도 보이지 않는다. 실패해도 일이 틀어지는 것 없이 무난하게 흘러갈 수 있지만, 이런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콜리나가 능숙하게 연기를 시작했다.
“카니, 꼭 이런 상황에서까지 네 멋대로 해야겠니?”
“뭐?”
“내가 이런 식으로 행동하는 거 싫어하는 줄 알아. 하지만 계속 막무가내로 굴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네가 아무리 규칙과 예절에 미숙한 환경에서 자랐다 하더라도 학교와 높은 사회에선 따라야만 하는 것이 있다고 누누이 말했잖니.”
“하.”
기가 찬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평민을 무시하는 방법도 가지가지였다. 저렇게 비꼴 수 있는 것도 능력이었다.
“이제 급한 환자들이 없는 건 맞아. 하지만 남은 사람들도 고통을 참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야.”
“교수님이 항상 강조하시는 말씀이잖아. 내 말은 듣지 않더라도, 교수님 말씀은 들어야 하지 않겠니? 교수님 앞에서만 깍듯하게 행동하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라고 여겼는데, 아니니?”
“지금 대체 무슨…….”
“날 도와줘, 카니.”
콜리나가 졸지엔 눈물까지 글썽이며 부탁했다.
“토벌로 지친 사람들을 어서 쉬게 해주고 싶어. 부탁이야.”
콜리나가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대며 안타까운 듯이 말꼬리를 늘이자, 그에 가담하듯 뒷줄에 서 있던 귀족 하나가 입을 열었다.
나뭇가지에 살갗을 베인 학생이었다.
“영애 말이 맞다! 지금 뭐 하는 거지? 우릴 이렇게 서서 기다리게 만드는 것도 마음에 안 드는데, 환자를 코앞에 세워두고 약물실험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러자 콜리나가 눈물이 촉촉하게 나온 선하고 가련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미안해요, 데쿠스 공. 많이 힘드실 텐데. 제가 얼른 달래볼게요.”
“크, 크흠. 살라소나 영애가 그렇게 말해주신다면…….”
카카나가 픽 웃었다.
“놀고들 있네.”
막사 안이 그야말로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이번만큼은 콜리나도 너무 놀라서 카카나를 내려다보았다. 이런 상황에서 오해를 더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을 할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리고 그녀는 잊고 있던 사실을 다시금 떠올렸다. 카니 페테라스는 다른 사람이 자기를 어떻게 보든 상관 않는 애다. 그 무엇도 거리낄 게 없고, 두렵지 않다는 듯이.
콜리나와는 정반대로.
“카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저 여학생은 독에 중독된 상태야.”
카카나가 콜리나의 말을 뚝 자르며 말했다.
“약을 따로 제조해야 돼.”
“해독제는 이미 만들어 왔잖니. 맞는 해독제를 먹이면…….”
“아니, 그 해독제를 먹이면 안 돼.”
“교수님이 허락하신 해독제를, 왜 네가 먹이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거니?”
카카나가 콜리나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러게. 나도 의문이네. 복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서 독에 중독된 건지. 이 척박한 돌산에서 토벌 중에 중독될 독은 지극히 한정적인데 말이야.”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