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3)

17.

『헌트 그룹의 핵심인사 알렉스 헌트의 결혼에 이상기류 포착.

작고한 전 회장 에드워드 C. 헌트의 손자이자 현 헌트 그룹의 대표이사 알렉스&노아 헌트 부부가 나란히 공식 석상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아무런 이력이 없는 노아 헌트와 비밀리에 결혼해 세간을 놀라게 했던 그들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는 중, 본지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노아 헌트가 완전히 모습을 감춘 것으로 파악되었다.

헌트가에 직접 취재 요청을 했으나 어떠한 답변도 들을 수가 없었다. 알렉스 헌트는 현재까지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며, 평소와 마찬가지로 출근해 일을 처리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알렉스 헌트의 배우자로 알려진 노아 헌트는 출신도, 가문도 제대로 밝혀진 바가 없으며….』

<20xx년 6월 8일. 투데이 프리뷰지>

『헌트 인더스트리의 대표이사 알렉스 헌트. ‘회의 도중 쓰러져.’

알렉스 헌트 대표가 당일 오후, 회의 도중 실신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과도한 업무와 혹독한 일정을 처리하느라 피로가 누적된 게 아니냐는 대수롭지 않은 반응을 보이는 한편, 알렉스 헌트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거 아니냐는 반응도 흘러나왔다.

그럴 것이 실제로 알렉스 헌트의 한 달 전과 현재의 사진을 비교하면 살이 많이 빠진 게 확인된다. 도드라진 얼굴 윤곽을 보아도 한 달 전보다 최소 10킬로그램 이상 빠진 게 아닌가 추측될 정도다.

불확실한 정보가 난무하던 가운데, 대표이사의 건강 적신호로 인해 증시 시장이 일시적으로 요동쳤으나 피로 누적이라는 공식 발표에 곧 안정세로 돌아섰다.

거대한 공룡인 헌트 그룹을 이끌어가는 알렉스 헌트에게 문제가 생기면 후계 구도에 심각한 혼란이 야기될….』

<20xx년 7월 1일. 이코노미 포커스 지>

* * *

노아는 천천히 눈을 떴다. 코를 간질이는 싱그러운 풀 냄새와 생기를 뽐내는 나무 냄새가 아침을 반겼다.

누웠던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일어나 가볍게 물 한잔을 마셨다. 습관처럼 아랫배를 살살 문지르며 노아는 이른 아침을 시작했다.

이곳에 온 지 벌써 두 달이었다.

처음엔 낯선 곳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일이 많았다. 간신히 잠을 청하고 나면, 다음 날 아침 베개가 축축하게 젖어 있었던 날도 많았다.

괜찮은 척해야 한다는 금기가 사라지자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것도 한 달이었다. 노아는 조금씩 이곳에 적응해 갔다.

이제는 눈을 떴을 때 매일같이 베개가 축축하게 젖은 걸 발견하는 일은 없었다. 아주 가끔 그럴 뿐이었다.

노아는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다소 황량하고 쓸쓸한 곳이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포근한 느낌도 들었다. 침대 머리맡의 작은 창으로는 아침마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고, 앞마당에는 작고 사랑스러운 다람쥐가 자주 찾아왔다. 가끔은 두더지를 목격하기도 한다.

집은 혼자 생활하기에 딱 좋았다.

쿡탑과 작은 냉장고, 그리고 2인용 식탁이 갖춰져 있고, 욕실도 있었다. 침대와 붙박이장만 있는 침실은 군더더기가 없었고, 벽난로가 있는 응접실에는 낮은 탁자와 2인용의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다. 무엇보다 바깥소식을 알 만한 전자 기기가 하나도 없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바닥에 깔린 카펫은 여기 도착한 첫날 묵은 먼지를 털어 내고 다시 깔아 두었다.

숲으로 둘러싸인 곳이라 여름인데도 아침나절엔 제법 쌀쌀했다.

노아는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를 시켰다.

바닥을 쓸고 곳곳에 내려앉은 먼지를 닦았다. 집 안 청소를 끝내고서야 몸을 씻고 아침을 챙겨 먹었다.

임신하면 입덧으로 고생하는 일이 허다하다는데 다행히도 노아는 입덧 증세가 전혀 없었다. 때때로 조금 어지러운 것 외엔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배 속 아이가 자신을 배려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임신했다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입덧이 없어서 그런가.

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밖으로 나갔다.

덱에 놓인 의자 위에 견과류를 담아 놓아두었던 바구니를 확인했다.

“다 비었네.”

혼자 중얼거리다 노아는 피식 웃었다. 가까이에 사는 이웃을 제외하곤 사람 흔적이 극히 드문 곳이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되었다.

“이것도 버릇 들면 안 될 텐데….”

뭐 상관없으려나. 어깨를 으쓱하고는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갔다. 바구니에 남은 견과류를 탈탈 털어 채우고는 다시 바깥 의자에 놓아두었다. 숲속을 노니는 작은 동물들이 조금이나마 배가 부르길 바라며 노아도 아침 준비를 시작했다.

달걀로 두툼한 오믈렛을 만들어 접시에 담아 두고 묵혀 둔 빵을 꺼내 썰었다. 쨈과 버터를 꺼내고 주스도 컵에 따랐다.

요리가 서툴러 처음엔 식재료를 많이 버렸다. 그래도 꾸준히 이것저것 시도하다 보니까 이제는 그럭저럭 먹을 만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입덧이 없는 대신 최근에 식욕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항상 배가 고파 먹고 돌아서면 두 시간도 안 되어 무언가를 먹어야만 허기가 가셨다.

예전보다 두 배나 많은 양의 빵과 두툼한 오믈렛을 내려다보며 노아는 제 아랫배를 부드럽게 문질렀다.

“아무래도 내 배에 든 게 애가 아니라 돼지가 아닐까.”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다가 노아는 자리에 앉아 아침을 먹기 시작했다. 버터와 우유를 섞어 만든 오믈렛은 부드러웠고 빵은 고소했다. 빵에 잼과 버터를 듬뿍 바르고 입을 크게 벌리고 앙 베어 문 노아는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눈 깜짝 새에 눈앞의 음식들이 사라졌다. 비어 있는 접시를 매우 아쉬운 눈으로 보던 노아는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재빨리 접시를 씻어 버렸다.

오늘은 세탁할 예정이라 빨랫감을 모았다. 노아의 오두막에는 세탁기가 없어서 샘의 신세를 져야 한다.

처음엔 어색해서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작은 욕실에서 쭈그리고 앉아 손빨래하다가 그날 밤에 아랫배가 아파 끙끙 앓은 후부터 노아는 부끄러움 따위 생각할 때가 아니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2주에 한 번씩 이브가 들러 노아에게 자꾸 옷을 사다 주는 통에,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옷이 제법 늘었다.

혼자 노아를 이곳에 두는 게 신경 쓰였는지 이브가 자주 이곳에 들렀다. 일이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될 텐데, 그녀는 자꾸 빚진 사람처럼 도와주지 못해 안달을 냈다.

오두막에 없는 가전제품을 채워 넣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노아가 그것만은 거절했다. 어차피 이곳에 있는 동안 외부와는 완전히 끊고 싶었다.

알렉스는 대기업의 대표이고, 무심코 TV로 그를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우연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만약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보게 된다면, 굳건한 결심이 흔들릴지도 모른다.

노아는 슬금슬금 밀려드는 그의 생각을 날리듯 가볍게 머리를 흔들고는 빨랫감을 담은 바구니를 들고 샘의 오두막으로 걸어갔다.

싱싱한 풀숲을 걷는 건 기분이 좋았다. 오늘도 하늘이 더없이 새파랬다. 싱그러운 숲의 향기를 만끽하며 걷는 시간이 좋았다.

노아는 일부러 산책하듯 느릿하게 걸었다.

십여 분을 걷자 샘의 오두막이 보였다. 노아의 오두막보다 훨씬 큰 샘의 오두막은 그가 직접 지었다고 한다.

현재 목수로 활동하는 샘은 주문받은 가구를 오두막 옆 거대한 작업 창고에서 직접 만들었다.

그가 만든 가구는 투박하지만 아름다웠고 매우 견고하고 편했다.

요즘 노아는 그가 하는 작업에 흥미가 생겨 괜히 울적한 날이면 작업실을 기웃거리곤 했다.

점점 오두막이 가까워지자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도 작업 중인가 보다.

노아는 바구니를 현관에 놓아두고 작업실로 걸어갔다.

위잉. 기계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빼꼼 고개를 내밀어 보니 샘이 거친 나뭇결을 다듬는 중이었다.

목공용 장갑을 낀 샘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혀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이브의 친구라던 샘은 40대 중반의 베타 남성이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은데 몸 전체가 근육질로 몸통이 엄청 굵었다. 반팔 티셔츠 아래 보이는 어깨와 팔근육에는 빼곡하게 새긴 문신이 이따금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완전히 다른 타입의 사람이라 이브와 어떻게 친구가 된 건지 궁금했지만 노아는 굳이 묻지 않았다.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아 내던 샘이 얼굴을 들고는 노아를 발견했다. 그는 곧장 기계를 껐다.

“왔나?”

“네. 일하시는 중에 죄송해요. 세탁하려고요….”

“마음껏 쓰라니까. 굳이 허락받을 필요 없어.”

“그래도요….”

남의 집에 말도 없이 들어갈 수는 없었다. 아무리 샘이 괜찮다고 해도 노아는 매번 꼬박꼬박 샘에게 물었다.

“작업 방해한 건 아닌가요? 저 세탁기만 쓰고 돌아갈게요.”

“아니야. 마침 쉬려고 했어.”

노아는 신경 쓰지 말라면서 땀을 닦아 내던 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신세를 또 져도 되는 걸까. 잠시 망설였다.

“뭔가?”

힐끔힐끔 노아의 시선이 닿자 샘이 물었다.

“저, 혹시 언제 마을에 가세요? 저도… 그때 따라가면 안 될까요?”

좀처럼 부탁하는 일이 없던 노아가 웬일로 부탁이지? 샘이 묵묵히 노아를 바라본다.

“같이 가는 거야 상관없지. 볼일이 있나 보군.”

“네. 병원엘 좀 다녀와야 할 것 같아서요.”

이곳에 온 후 딱히 몸에 별다른 이상은 없지만, 그래도 검사는 받아 봐야 할 것 같았다. 여기에도 오메가 전문병원이 있겠지.

“어디가 아픈가? 하긴. 그렇게 먹어 대는데 나무꼬챙이처럼 마른 걸 보면 안 아픈 게 이상한 일이긴 하지.”

“아, 그게 아니라…, 정기검진이에요. 초음파도 좀 찍어야 하고.”

슬쩍 샘이 미간을 찌푸렸다.

“초음파? 어디가 안 좋길래 초음파를 찍어?”

그건 아니고…. 아직 임신했다는 말을 그에게 하지 않았다. 하지만 굳이 숨길 일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어차피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을 테니까.

“아직 임신 초기라 점진 받아야 해서요.”

라고 대답하는 순간, 샘의 얼굴이 굳었다.

“임신했나?”

무서운 표정의 샘에게 놀란 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연하게 땀을 닦아 내던 그의 얼굴에 노기가 서리는 듯하더니,

“이브 레너드!”

불같이 소리 지른 샘이 오두막으로 달려갔다.

“샘?”

갑자기 변한 그의 태도에 놀라 어깨를 움츠릴 사이도 없이 이미 샘은 집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따라가도 되는 걸까.

왜 갑자기 샘이 화를 내는지 알 수 없어, 노아는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혹시, 임신한 것 때문에 부담스럽다고 생각한 걸까.

저도 모르게 시무룩해진 노아는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

“미친 거냐?! 어떻게 임산부를 산에 내팽개쳐? 네가 사람이야?!”

머뭇거리며 안으로 들어간 노아는 응접실 전화를 붙들고 누군가에게 소리치는 샘을 발견했다.

“네 놈 자식이 이딴 쓰레기였는지 내가 미처 몰랐군! 넌 부모 자격도 없는 놈이야!”

부모 자격이란 말에 노아는 저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설마, 알렉스에게 전화를 건 걸까? 아니, 샘이 알렉스를 알던가?

순간적으로 심장이 쿵쾅거렸다. 잠시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러나 이내 노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 샘이 오두막으로 달려가기 직전, 이브의 이름을 외쳤다는 걸 기억해 내고는 그제야 어깨에 힘이 빠졌다.

“제 자식을 가진 오메가를 내팽개치는 놈하곤 상대하지 않아! 넌 인간쓰레기야, 이 자식아!”

쾅! 샘이 부서질 듯 전화기를 내려쳤다.

깜짝 놀라 절로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샘이 뭔가 대단한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저, 샘…. 그 전화, 이브예요?”

“제 자식 버린 놈 따윈 이름을 불러줄 가치도 없어!”

아. 역시 이브였구나.

“저기, 오해가…. 샘. 아니에요. 애 아빠는 이브가 아니….”

“천하에 나쁜 놈이야! 제 애를 가진 오메가를 버리는 놈은 알파든 뭐든 살 가치가 없는 놈이라고!”

버럭 내지른 소리에 노아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아, 미안. 애가 놀라겠어. 그리 서 있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샘이 커다란 덩치로 어쩔 줄 몰라 하더니 의자를 끌어다 노아를 앉혔다.

“아픈 데는 없고? 몸은 괜찮나? 임신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내가 좀 더 신경 써 줬을 텐데.”

샘은 안절부절못하며 불편한 곳은 없는지, 당장이라도 병원엘 가야 하는 건 아닌지 물어 대며 쩔쩔맸다.

단단히 오해한 샘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노아는 그저 웃었다. 본래도 자그마한 노아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하던 그가 한층 더 조심스러운 태도로 바뀌었다.

노아는 그가 조금 더 마음을 가라앉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사실을 말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브가 이곳으로 달려온 건 불과 3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모양인지 이브의 짧은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상의는 제법 구겨져 있었다.

몇 시간 전에 이브에게 욕을 퍼부어 댔던 샘은 사정을 안 후라 흠흠 헛기침을 하며 이브에게 다소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이 얘기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 줬다.

의도치 않게 욕을 들어먹은 이브는 샘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녀는 이 충격적인 소식을 듣자마자 이곳으로 달려왔다.

“어떻게 그걸 숨길 생각을 해요!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죄, 죄송해요. 딱히 숨길 의도는 없었는데….”

의자에 앉아 얌전히 두 손을 무릎 위에 모은 노아는 이브에게 혼나는 기분을 느끼며 그녀의 눈치를 보았다.

기가 막힌 표정으로 이브는 집 안을 서성거렸다. 때때로 천장을 올려다보며 탄식을 토하기도 했다.

쿵쾅거리며 서성대던 그녀가 딱 걸음을 멈췄다.

“이거, 알렉스는 알아요?”

“네? 네….”

죄지은 기분으로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인 노아는 힐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돌아가라고 하면 어쩌지.

“잠깐. 내가 얘기를 좀 정리할게요. 당신은 임신했고 알렉스도 당신 임신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런데 당신은 알렉스에게서 도망쳤다. 이거죠?”

“네.”

또다시 노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두 사람 사이에 생긴 문제에 대해 시시콜콜 물을 생각 없었어요. 하지만 물어야겠어요. 대체 왜 도망친 거예요? 물론 알렉스가 잘못한 게 있겠죠, 그렇죠?”

이브의 머릿속이 바쁘게 돌아갔다. 이브가 겪은 노아는 이런 엄청난 일을 마음대로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 생긴 것과는 다르게 엄청 소심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다. 노아가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겠다고 결심하기까지 엄청난 고민을 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두 달 전, 노아가 도움을 요청했을 때, 이브가 망설이지 않았던 이유는 절박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 절박함이 거짓이 아니었다면…. 이브는 설마, 하며 노아에게 물었다.

“아이 때문에 도망친 거죠?”

노아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설마…, 알렉스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대요?”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이브가 말을 꺼내는 순간, 노아의 푸른 눈동자에 물기가 어렸으니까.

“이런 개새…!”

욕설을 내뱉으려다 말고 이브는 눈시울을 붉히는 노아 앞에서 입술을 꽉 깨물었다.

“미안해요. 애 앞에서 욕하면 안 되겠죠?”

이브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이려고 심호흡을 했다. 하지만 화를 참을 수 없어 응접실을 정신없이 서성거렸다. 견디다 못한 그녀는 샘의 소파를 발로 퍽퍽 찼다.

으악! 소리를 내지르며 그녀는 머리카락을 거칠게 쓸어 넘겼다.

이내 자리에서 멈춰선 이브는 이를 부득부득 갈며 목소리를 떨었다.

“그 새, 아니 알렉스 놈은 대체 무슨 생각이야? 어떻게 제 애를 외면할 수가 있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브는 분통을 터트리며 속으로 알렉스 욕을 퍼부어댔다.

임산부 앞에서 거친 욕설을 하고 싶진 않았다.

“그딴 놈한테서 잘 도망쳤어요. 그놈은 아빠 자격도 없는 놈이에요! 알렉스를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군요. 상종 못 할 쌍…, 미안해요. 도저히 욕을 안 할 수가 없네요.”

“아니에요. 알렉스 잘못이 아니에요. 그로선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노아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알렉스를 변호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어딨어요? 노아! 그딴 놈 변호하지 말아요.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든, 애를 가진 오메가를 홀대하는 놈은 상대해 줄 가치가 없는 놈이에요.”

어쩐지 샘이랑 똑같은 말을 하는 게 우스워, 노아는 울먹거리는 와중에도 웃었다.

“지금 웃음이…, 아니에요. 됐어요. 어차피 기왕 이렇게 된 거 과거 얘기하면 뭐 해요? 그보다 짐 챙겨요. 당신을 여기 둘 순 없어요.”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던 노아는 그녀의 말에 멈칫했다.

“이브?”

“어서 일어나요. 임산부가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요? 시내에 빈 스튜디오를 수배해 놨어요.”

재촉하는 이브의 말에 노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안 가요. 전 여기 있을 거예요.”

“노아! 안 돼요. 여긴 임산부가 지낼 곳이 못 돼요. 몰랐을 땐 상관없지만, 제가 알게 된 이상 당신을 여기에 머물게 할 순 없어요. 일단 시내로 나가요. 그다음 어떻게 할 건지 다시 생각해요.”

이브는 노아가 임신한 게 무슨 큰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이라도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걱정했다. 염려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져 고집부리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이브. 전 괜찮아요. 여기가 마음이 편해요. 번잡하지 않고 아무 생각할 필요도 없고요. 걱정하시는 거 충분히 이해합니다. 지금은 임신 초기라 위험한 것도 없어요. 어차피 배가 불러 오면 싫어도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전엔 그냥 여기 있고 싶어요.”

이브가 몸을 숙였다. 한쪽 무릎을 굽힌 채로 맞은편에 앉은 그녀가 조심스레 노아의 손을 잡았다.

“노아. 내가 당신을 돕게 해 줘요. 책임감 따위 개나 줘 버린 알렉스라면 모를까, 나는 그런 어중간한 마음으로 당신을 도와준 게 아니에요. 말했잖아요. 은혜는 두 배로 갚는다고. 아직 내 빚은 다 갚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내 말대로 해요, 네?”

다정한 초콜릿 색 눈동자가 예쁜 색으로 일렁거렸다. 무조건 말을 들어줘야 할 것 같았다. 굳건한 결심이 순간 흔들릴 뻔했다. 그러나 노아는 고집스레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은 충분히 절 도와주셨어요. 이 정도로도 전 만족합니다.”

“혹시, 알렉스 때문에 그래요? 혹시 그 자식이 찾을까 봐?”

잠시 멈칫했다. 그가 자신을 찾을까? 벌써 두 달이나 지났는데?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속 시원해하지 않을까.

꾹꾹 닫아 두었던 마음이 술렁거렸다. 이브가 잡은 손을 잡아 빼며 노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요. 벌써 이만큼이나 시간이 지난걸요. 알렉스는 절 찾지 않을 거예요. 그게 걱정되는 건 아니에요. 그냥, 지금은 이렇게 지내는 게 좋아서 그래요.”

노아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그 말을 내뱉는 입술이 살짝 떨렸다.

이브는 가만히 노아를 응시했다.

아니요. 당신이 틀렸어요. 지금 알렉스는 백방으로 당신을 찾고 있어요.

이브의 귀에 들어온 얘기는 노아의 말과는 달랐다. 알렉스는 경찰에 실종 신고까지 낸 상태였다. 물론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입단속을 철저히 하고 있으나 외부에 알려지는 건 시간문제였다.

중요한 사실은 알렉스의 상태가 시시각각으로 나빠지고 있으며, 확인한 바로는 그는 심각한 각인부작용을 겪고 있다는 거였다. 회의 도중 쓰러진 게 기사로 날 정도로 더는 외부에 숨길 수 없을 지경에 도달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나서 이브는 한동안 고민했었다. 노아에게 사실을 알려야 하는 게 아닌가,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오해가 있어 일이 이 지경이 된 거 아닌가 하고. 그래도 친구라고 걱정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오늘 그 이유를 알게 되자, 알렉스에 대한 분노가 솟아올랐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각인 상대의 임신을 반기지 않을 수 있지?

미친 새끼. 그러니까 노아가 도망쳤지! 어떻게 이미 임신한 노아한테 그렇게 굴 수가 있냔 말이야!

“좋아요. 당신이 정 그렇게 말한다면 어쩔 수 없죠. 무엇보다 당신 마음이 제일 중요하니까.”

“감사합니다.”

안도하는 노아를 올려다보며 이브는 사실을 숨기기로 했다. 임산부에게 스트레스를 줄 순 없지 않은가. 때마침 이곳은 외부 소식과 철저히 단절된 곳이니 노아가 일부러 찾아보기 전까진 알렉스 소식을 듣지 못할 것이다.

“그럼 일단 당신 사는 오두막부터 좀 손봐야겠어요.”

“예? 그게 무슨….”

“임산부가 쓰기엔 너무 위험하잖아요. 걸려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샘에게 부탁 좀 해야겠다.”

말릴 틈도 없이 이브가 벌떡 일어나더니 샘을 부르며 밖으로 달려갔다.

어쩌지…. 왠지 이브를 더 귀찮게 한 거 같은데….

곤혹스러운 얼굴로 노아는 밖으로 나갔다. 일을 더 키우기 전에 적당한 선에서 잘라야겠다고 생각했다.

* * *

주치의의 얼굴에 깊은 시름이 드리워졌다. 환자의 바이탈 체크를 마친 닥터 리건은 한숨을 쉬었다.

환자가 날뛰는 통에 어쩔 수 없이 안정제를 놓은 터라, 난동을 부리던 환자는 깊이 잠이 든 상태였다.

“어떡하죠?”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어조로 조엘이 물었다.

“이미 한계에 도달했어요. 다른 사람보다 빨리 부작용이 찾아오고 있는 데다 헌트 씨 스스로 이 상황을 못 견디니 버티질 못하는 겁니다.”

“해결책은요? 노아 씨 말고는 없는 겁니까?”

“네. 현재로선 그거 외엔 답이 없어요. 약은 임시일 뿐이라고 전부터 말씀드렸잖아요. 더군다나 헌트 씨는 불면증에 아예 식욕까지 잃은 상황이라 더욱 안 좋습니다. 수액으로 버티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두 달째 아닙니까.”

조엘의 시선은 곧 죽을 것처럼 창백한 얼굴의 알렉스를 바라보았다.

두 달. 할 수 있는 한 모든 걸 다 했다. 실종 신고도 냈고, 전국 각 병원에 노아의 사진까지 뿌렸다. 노아의 핸드폰 통화 내역을 뽑아 수상쩍은 연락처를 확인하고 추적까지 했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해외로 나간 정황은 포착되지 않았다. 알렉스는 그거로도 모자라 실종자 찾기에 도가 튼 전문가도 별도로 고용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오는 소식에 알렉스는 하던 일도 내팽개치고 직접 찾아갔으나 매번 허탕이었다.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사람이 전국에 그렇게 많은지 조엘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물론 그들 모두 실제 노아의 아름다움에는 발끝에도 미치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알렉스는 무너졌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한 모습이었다. 살이 빠진 얼굴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날카로웠고, 슈트를 입고 있어도 단단하던 육체는 쇠꼬챙이처럼 말라 갔다.

노아가 사라지고 난 후부터 알렉스는 불면증에 시달렸고, 이틀 내리 밤을 지새우다, 기절하듯 3~4시간 잠드는 게 다였다.

더군다나 말도 안 되게 임산부가 곁에 없는데 알렉스가 입덧까지 했다.

보통은 임산부의 호르몬에 영향을 받아 남편이 대신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산부인과 전문의에게 확인하니 알렉스의 경우 각인한 데다 하필이면 그 상대가 곁에 없으니 심리적 불안증이 도지면서 입덧을 하는 거라고 진단했다.

아주, 가지가지 하지. 그러게 진작 잘해 주시지. 이게 뭐야.

입덧도 아주 지독하게 앓는 터라 먹을 수 있는 거라곤 겨우 물 정도고, 거의 모든 음식을 입에 대기만 해도 토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술에 취하는 일은 드물었지만, 그게 다행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저러다 곧 장례라도 치르겠어.

조엘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병실로 해리스가 들어왔다.

“이게 대체 몇 번짼가.”

창백한 안색으로 잠든 알렉스를 내려다보는 해리스의 눈빛이 착잡했다.

“노아는 찾았나?”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대체 경찰은 뭐한다던가! 사람 하나 찾는 데 이리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야?!”

“백방으로 수소문하는 중입니다. 전국 각지에 파견된 전문가들도 있고요.”

“이러다 사람 찾기 전에 알렉스가 먼저 잘못되겠어. 잠든 지는 얼마나 됐나.”

“곧 깨어날 시간입니다.”

해리스는 혀를 쯧쯧 차며 알렉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다 죽어 가는 얼굴로 잠든 알렉스를 보니 해리스는 잊고 있던 아주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로버트 때는 이보다 심각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때 레일라는 로버트 곁에 있었으니까.

하루가 다르게 말라 가는 알렉스를 보니 심경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이 친구야. 이 일을 어쩔 건가. 이런 상황을 바란 게 아니었지 않나.

해리스는 먼저 간 친구를 원망했다. 마음 같아선 유언 집행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조용한 곳에서 편히 쉬고 싶었다.

설마 알렉스도 로버트와 비슷한 전철을 밟게 되리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노아는 레일라와 다르니 알렉스가 조금만 마음을 열면 관계는 좋아질 거라 믿었다. 그랬는데, 결과가 이리될 줄이야.

이렇게 되고 보니 에디를 끝까지 말리지 않았던 걸 후회했다.

“계속 노아를 못 찾으면 어떻게 된다던가.”

조엘은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큰일이군.”

표정으로 이미 미루어 짐작이 간 해리스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움푹 팬 눈가가 떨리더니 알렉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깨어나나 보군.”

알렉스에게 바짝 붙어 서며 해리스가 말했다.

눈이 부신지 몇 번 눈을 깜빡거리다가 이내 정신을 차렸다.

“왔습니까….”

약 기운이 남아서인지 알렉스의 말투가 느렸다. 움직임도 조금 굼뜬 듯하더니 쯧, 혀를 찼다. 알렉스가 일어나려고 상체를 움직였다.

“누워 있게. 이렇게라도 쉬어야 할 게 아닌가!”

“제가 쉴 틈이 어디 있습니까. 연락 온 데는 없어?”

질문은 조엘에게 향했다.

“네. 아직. 그보다 좀 더 누워 계세요. 무조건 안정을 취하셔야 한다고….”

“회의는 어떻게 됐어…?”

알렉스는 헝클어진 머리를 대충 손으로 정리하고는 침대 아래로 발을 내렸다. 편히 누워서 시간 보낼 생각 따윈 없었다. 회의 도중 쓰러졌으니 일이 걱정되는 건 당연했다.

“주주들 움직임은 어때? 혹시 이 일이 외부에 알려졌나?”

곧장 상황부터 묻는 알렉스의 말에 조엘은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주식 변동이 잠시 있었습니다만, 누적된 피로와 과로라는 공식 발표에 지금은 안정세로 돌아섰습니다. 하지만 이것도 얼마나 갈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표님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얘기가 이미 파다하게 퍼졌으니까요.”

“지금 그게 중요한가! 몸을 우선 추슬러야지. 이러다 정말 무슨 일 나겠네.”

“저 아직 멀쩡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알렉스는 손등에 꽂힌 바늘을 잡아 뺐다. 대충 정신도 차렸고 잠깐 자서인지 심한 어지러움은 가신 상태였다.

보기에도 위태로울 정도로 바짝 말랐지만, 알렉스의 눈빛만은 흉흉했다. 그는 지금 어느 때보다 정신이 말짱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 있는 것만큼 지금 그에게 나쁜 건 없었다. 끝없이 머릿속을 헤집어 대는 나쁜 상상을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려면 한계까지 몸을 움직여야 한다.

“대표님. 잠깐이라도 더 쉬시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해리스도 조엘도 말려 보았지만, 알렉스는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잔뜩 구겨진 셔츠를 대충 손으로 쭉쭉 펴더니 상의를 꿰입었다.

“뭐 해? 계속 여기서 이러고 있을 거야?”

“주치의 선생님이라도 뵙고….”

“어차피 똑같은 얘기할 텐데 뭐 하러 봐?”

원인이 명확하니 딱히 의사를 만날 이유가 없었다. 보나 마나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으라는 소리나 할 테지.

이미 여러 차례 이런 일로 병원을 찾았던 알렉스는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자신에겐 1분 1초가 아까웠다. 지금 이 순간 노아가 어디에서 어떤 일을 당하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경찰 쪽 인력과 전문 인력까지 다 동원했는데도 머리털 하나 찾아내지 못했다.

이쯤 되면 실종이 아니라 사망한 거 아니냐는 말도 흘러나오는 상황이었다. 이 말을 한 조사원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그날 밤 알렉스는 노아 방에 틀어박혀 불안으로 덜덜 떨었다.

미친놈처럼 매일 밤이면 알렉스는 노아 방을 빙글빙글 돌아다녔다. 혹시라도, 그 수줍고 다디단 페로몬이 남아 있지 않을까, 하면서.

종종 노아가 앉아 있곤 하던 창가의 카우치에 앉아 창틀 모서리도 살피고, 노아가 누웠던 침대에 그대로 누워 시트에 코를 대고 맡기도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아니 빌어먹게도 노아는 너무도 충실하게 페로몬을 흘리지 말라는 약속을 지켰다. 노아가 몇 달을 살았던 방에는 조금도 그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았다.

하루하루가 지옥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피 흘리며 쓰러지는 노아가 떠올랐다. 옛날에 봤던 범죄 영화의 피해자 얼굴이 노아로 바뀌는 상상을 할 때마다 두려움이 목을 조였다.

간신히 잠이 들 때면 뺨을 흠뻑 적시며 우는 얼굴을 보았다. 어떤 날은 알렉스에게 원망을 쏟아 내는 노아를 꿈꾸기도 한다. 또 어떤 날은 어떤 놈의 품에 안겨 행복하게 웃는 노아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젠 용서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저 무탈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지냈으면 하는 바람뿐이었다. 제 눈으로 노아를 확인하기 전엔 정신을 놓을 수 없었다.

안간힘으로 버티는 이유는 오직 이거 하나였다.

“안 갈 거야?”

알렉스는 여전히 머뭇거리며 선 조엘을 돌아보았다.

“해리스도 이만 가세요.”

“자네, 정말….”

알렉스의 고집에 해리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휙 몸을 돌린 알렉스는 두 사람이 따르든 말든 먼저 움직였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벨이 울렸다. 조엘의 전화였다.

“네. 조엘 매디슨입니다.”

앞서가던 알렉스의 걸음이 멈췄다. 조사관들의 연락을 전담하는 조엘이었다.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다.

“네?! 포지아시요?!”

깜짝 놀란 조엘의 외침에 알렉스의 눈동자가 번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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