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말은 자신 없다는 듯이 흘러나왔다. 바론은 초크센보다 부유한 왕국이니까, 개인이 데리고 있는 사병의 숫자도 많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아서 노미텐의 얼굴이 시무룩해졌다.
그와 반대로 실마리를 풀어나갈 증거를 찾게 된 에리한은 좀 더 가뿐한 얼굴이 되었다.
“아닙니다. 바론 역시 아무리 백작이라 해도 매일 몇 명씩 교대시킬 병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뭔가 있는 게 분명합니다.”
에리한의 말에 노미텐 역시 얼굴이 환해졌다. 그는 에리한의 팔을 잡고 부탁했다.
“제, 제가 잘못한 건 맞습니다. 초크센을 버리고 도망친 건 분명히 잘못한 일이에요! 그에 따른 벌은 받겠습니다! 하지만 반역이라니…… 그런 일은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동생에게 해가 가는 일은 없겠죠? 제 동생 좀 잘 부탁드립니다!”
고개가 땅에 닿을 듯이 상체를 숙인 노미텐이 울부짖었다.
평소 오빠 취급도 안 해줬던 동생이었지만, 다시 만나니 너무 좋았다.
자신 때문에 동생이 안 좋은 일을 당한다면 정말 고통스러울 것이었다.
노미텐의 어깨를 두드린 에리한은 걱정 말라는 말을 남기고 감옥에서 빠져나왔다.
오늘은 날이 흐려서 달빛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이런 날에는 소리오닌의 얼굴이 더욱 더 보고 싶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빛이니까.
결국 에리한은 마구간으로 달려가 말 한 마리를 끌고 나왔다. 소리오닌의 얼굴을 보지 않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갑작스런 왕자의 행동에 다들 놀란 얼굴이 되었지만, 빠르게 사라지는 그를 잡을 수는 없었다.
***
이제 막 잠에 들려고 누운 소리오닌의 귓가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간에 누가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훅 풍기는 에리한의 향기에 소리오닌이 깜짝 놀랐다.
“에리한 님?”
“소리오닌 님.”
에리한이 그녀를 꽉 껴안았다. 소리오닌은 얼결에 에리한을 마주 안았다. 그의 불안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소리오닌은 에리한의 넓은 등을 토닥였다. 거칠게 숨을 내쉬던 그가 점점 안정되는 것이 느껴지자 소리오닌은 고개를 들어 에리한의 얼굴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세리한테 얘기는 대강 들었어요.”
“아, 세리가 왔다 갔습니까?”
“네. 미안해요. 저 때문에 항상 에리한 님만 고생하고…….”
“그게 어떻게 소리오닌 님 탓입니까? 아닙니다. 괜찮아요.”
에리한이 소리오닌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도 소리오닌은 미안한 듯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소리오닌 님, 저는 소리오닌 님의 오라버니가 그런 일을 하지 않았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꼭 진범을 밝혀낼 겁니다. 너무 걱정 마십시오.”
“진범……. 누가 했는지 짐작 가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도, 자하만 백작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증거를 찾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백작의 저택을 조사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고…….”
에리한의 말을 듣던 소리오닌은 고개를 끄덕였다. 에리한은 왕자이기 때문에 백작의 저택에 들어가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물론 그의 측근들 또한 얼굴이 다 알려져 있기에 쉽지 않을 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