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100)

046.

화기애애했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카민의 부인, 사마린이 데리고 온 아이의 상태는 딱 봐도 심각해 보였다.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은 열 때문이라 쳐도, 아이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간 상태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하루나의 얼굴이 움직이지 않아요. 저를 보지 않아요! 흑, 흐흑…….”

“어, 어떻게 된 거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카민이 서둘러 하루나를 보았다. 그의 손이 덜덜 떨렸다.

조심스럽게 하루나의 고개를 정면으로 돌려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아기의 얼굴은 다시 옆으로 돌아가 버렸다.

난생 처음 보는 심각한 상황에 연회장 안에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소리오닌 역시 그들과 함께 유심히 아기의 상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예전 병원에서 근무할 때 몇 번 본 적 있던 케이스였다.

어린 아이들에게 자주 일어나는 것 중에 하나. 근육 긴장으로 인해 고개가 돌아가는 현상. 

“저기…….”

아기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며 가운데로 온 소리오닌이 카민의 옆에 섰다. 

“소리오닌 양? 아, 미안해요. 즐거운 연회에 이게 무슨 일인지.”

“아녜요, 괜찮아요. 저기, 그 아기. 제가 좀 봐도 될까요?”

“네?”

카민뿐만 아니라 여전히 울고 있는 사마린 또한, 갑자기 나타나 아기를 가리키는 소리오닌을 보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제가 예전에 공부를 좀 했거든요. 이런 증상의 아이들도 몇 번 고쳐준 적이 있어서. 아, 물론 억지로 보겠다는 건 아니에요! 카민 님이 저를 믿어주신다면 한 번 치료해 볼게요.”

“이, 이런 증상의 아이들이 또 있었다고요?”

“네. 많이는 아니지만 가끔 있어요.”

히튼이 카민의 어깨를 붙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본궁에 있는 의사를 부르러 갔으니, 그 전에 소리오닌 양이 잠깐이라도 보게 하는 게 어떻겠나?”

“저, 저야…… 사마린. 당신 생각은 어때?”

“전 상관없어요. 하루나의 상태가 조금이나마 좋아진다면요.”

사마린은 소리오닌에게 하루나를 넘겨주었다. 넓은 소파에 하루나를 눕힌 소리오닌이 아기의 몸을 감싸고 있던 담요를 내려 목과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역시, 맞구나. 사경.

목 근육을 만지며 딱딱해진 부분을 찾아낸 소리오닌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자신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았다. 아마 갑작스런 근육 긴장으로 생긴 거겠지. 

“저, 대체 왜 이런 거예요? 괜찮은 건가요?”

“아마 목 근육이 긴장되어서 그런 것 같아요. 몇 번 치료하면 다시 돌아올 겁니다.”

그녀의 말에 주위를 감싸고 있던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가트만이 그 사이에서 소리오닌을 보며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면 제가 치료해 볼게요! 힘든 치료는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소리오닌은 여전히 불안한 눈빛을 보내는 사마린에게 씨익 웃어 보였다. 그런 다음 하루나의 얼굴과 목을 감싸고 신중히 힘을 주었다.

아기들의 관절은 부드러워서 웬만하면 아프지 않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예전에 했던 치료를 떠올리면서 살살 목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기의 목은 많이 굳어 있지는 않았다. 처음에는 낯선 손길에 놀란 듯 크게 울었지만, 소리오닌이 살살 어깨를 만져주자 어느새 조용해졌다.

거의 어깨 너머까지 돌아가는 하루나의 얼굴을 보며 카민과 사마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다른 사람들도 저러다 더 큰일이 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소리오닌의 손과 하루나의 얼굴만 쳐다보기를 몇 분 째. 다급한 의사의 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 부르셨습니까, 히튼 왕세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루나의 고개가 갑자기 옆으로 돌아갔다. 대체 왜 이러는 거냐? 혹시 약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카민이 서슬 퍼런 눈으로 호통을 치자, 의사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하, 하루나 아가씨께서요? 제가 좀 보겠습니다!”

왕궁 의사는 치료를 하고 있던 소리오닌에게 양해를 구하고 하루나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그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숙이고 카민에게 보고했다.

“하루나 아가씨께서는 목의 근육이 일시적으로 굳어서 그러신 것 같습니다. 한두 번으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꾸준히 치료하시면 좋아지실 겁니다.”

카민은 소리오닌이 했던 얘기와 정확히 일치하는 의사의 말에 다시 한번 그녀를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왕궁 의사 역시 자신이 오기 전 하루나의 목을 치료하고 있던 소리오닌의 모습을 떠올렸다. 

“누구신데 이렇게 정확한 지점을 찾아서 치료하시고 있으셨습니까? 웬만하면 얼굴을 잡는 것도 무서워 하실 텐데.”

“아, 저도 좀 배운 적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우선 급한 대로 목이 더 굳어지지 않게 해 준 것뿐이에요.”

그래도 여기 의사는 하루나가 아픈 이유를 제대로 알고 있는지, 소리오닌의 뒤를 이어서 목 근육을 풀어주었다. 몇 십 분 동안 하루나를 치료해주던 의사가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직접 촉진해 보니 심각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매일 아침저녁으로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고, 고마워요!”

긴장이 풀린 사마린이 다시 눈물을 글썽이며 하루나를 받아 안았다. 살짝 떨리는 사마린의 어깨를 카민이 감싸주었다. 

“소리오닌 양. 정말 감사드립니다. 의사와 똑같은 진단을 내리시다니, 정말 놀랐습니다.”

“아, 아니에요. 어떻게 저랑 의사선생님을! 예전에 봤던 거라서 그런 겁니다. 대단한 게 아니에요.”

“그, 그래도……. 정말 감사했어요! 하루나가 잘못되는 줄 알았는데, 초반에 너무 침착하게 치료해 주셔서…….”

하하, 소리오닌이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다시 한번 소리오닌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 카민과 사마린은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아니, 소리오닌 양. 엄청 똑똑한가봅니다!”

“네?”

처음부터 그녀를 주욱 지켜보고 있던 타만이 큰 소리로 칭찬했다. 소리오닌의 옆에 앉은 세리도 엄지를 치켜세우며 눈을 찡긋거렸다.

또다시 바론에서처럼 능력이 어떻고, 치료를 잘하고, 멋있고 등등. 식탁에 앉아 있는 소리오닌을 둘러싼 사람들이 그녀를 치켜세웠다. 

“가, 감사합니다. 저도 밥을 다 먹어서 이만 가 보려고 하는데. 괜찮을까요?”

“아, 그래요. 오늘 피곤했을 텐데 푹 쉬어요!”

“네.”

그들의 반응이 부담스러워진 소리오닌은 얼른 연회장을 벗어나고 싶었다.

식탁에 아직 음식이 많이 남아 있던 터라, 세리는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곧 소리오닌을 따라 연회장을 나섰다. 그러더니 얼른 소리오닌에게 열렬한 눈빛을 보냈다.

“소리오닌 님, 멋있으셨어요! 처음에는 정말 목 꺾어버리는 건 아닐까 좀 걱정했지만요.”

“그래? 나도 몇 번 안 해 봐서 좀 긴장이 되긴 했는데.”

“언제 또 해 보셨어요? 바론에 와서 해 보셨던 거예요?”

아, 맞다! 초크센에 있을 때는 이런 일 절대 안 했었다고 했지?

“으, 으응. 바론에 와서 같은 동네 애기들 몇 번 봐줬어.”

“그렇구나. 아무튼 소리오닌 님이 최고에요.”

“고마워, 세리. 이만 들어가 봐, 내일 보자.”

“네! 소리오닌 님도 안녕히 주무셔요!”

세리는 방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발갛게 물들은 얼굴로 재잘 거리다 문을 닫았다. 탁, 세리의 방문이 닫히는 걸 본 소리오닌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꾸 한국에 있을 때처럼 행동한단 말이지? 좀 자제해야 하는데 매번 깜빡하네. 그래도 뿌듯한 일을 한 가지 했다. 내심 실력이 죽지 않았다는 만족감에 속으로 웃은 뒤, 소리오닌도 방에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 때였다.

“웬 한숨?”

“으악!”

소리오닌은 뒤에서 불쑥 나타난 가트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언제 따라온 거야? 자신은 분명히 연회장에서 식탁에 앉아 있던 가트를 보고 나왔다. 이 건물에는 세리와 둘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놀라?”

“그럼 이렇게 갑자기 튀어나오는데, 안 놀라게 생겼어요?”

“나 계속 쫓아오고 있었는데?”

“분명히 저랑 세리랑 나올 때 의자에 앉아 있는 거 봤거든요!”

가트를 째려보는 소리오닌의 폼이 눈에서 뭐라도 쏠듯했다. 그런 소리오닌을 태연하게 마주보던 가트는 그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한 번 훑고 난 뒤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길이가 다르잖아. 다리 길이. 몇 걸음이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와, 씨. 와아.”

속에서는 온갖 육두문자가 춤을 추고 있었지만, 입 밖으로 나온 단어는 그저 어이없는 감탄사뿐이었다. 

“그래서 왜 쫓아오셨는데요?”

“물어볼 게 있어서. 근데 너, 둔하다는 말 자주 듣지 않나?”

“네? 그런 적 없는데요?”

정색하며 답하는 소리오닌을 보며 가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잠깐 뭔가를 생각하던 가트는 복도를 돌아 건물 뒤쪽으로 향했다. 

“어? 뭐, 뭐에요!”

소리오닌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사라지는 가트의 행동에 당황했다. 한참 목적지를 향하던 가트는 멍하니 서 있는 소리오닌을 보고 안 따라오고 뭐했냐는 듯이 그녀에게 손짓했다.

그가 손짓하는 그 짧은 사이에도 소리오닌은 심각하게 고민했다. 갈까, 말까. 그러다 가트가 또다시 손을 크게 휘젓는 것을 본 그녀는 찜찜한 마음으로 복도 뒤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뭔가 맘에 안 드는 듯한 표정을 한 채 건물 뒤쪽까지 따라온 소리오닌을 본 가트가 아무 말 없이 붉은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딱히 별 할 말이 없는 소리오닌 역시 그가 먼저 말을 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 보면 뭐 떠오르는 거 없어?”

오랜 침묵을 깨고 가트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 

“?”

뭐야, 갑자기 수수께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눈앞의 이 남자는 사브만에 와서 처음 본 얼굴이었다. 소리오닌이 전혀 감을 못 잡은 듯한 표정을 했다. 

“야옹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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