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그놈과 춤추지 못한 이유 (1)
“흐읏, 응, 아, 애쉬, 하악!”
“쉬이. 소리 내면 들켜요.”
“그럼, 좀, 아, 적당히, 커져……!”
안을 꽉 채우며 빠듯하게 들어오는 페니스는 피스톤질하면 할수록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익숙해질 만하면 더욱 팽창하는 흉기 때문에 식은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좆이 끊어질 것 같아요. 후우.”
퍽!
뭉툭한 끝이 깊숙한 곳의 어느 지점을 강하게 찔러왔다. 눈앞이 하얗게 탈색되며 몸이 바르작 떨린다.
“아악! 읍, 흐읍.”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신음을 어떻게든 막기 위해서 팔목을 입에 물었다.
내 신경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더 예민해져 있었다. 울퉁불퉁한 외벽, 어슴푸레한 저녁을 담은 서늘한 공기. 멀리서 들려오는 조잘거리는 목소리와 풀이 짓이겨지는 작은 소리까지. 전부 나를 예민하게 긁어댔다.
“하아……. 이벨린, 좋아. 죽을 때까지 이러고 싶어.”
“끔찍, 한, 소리 할래? 아!”
나와 애쉬가 끈적하게 몸을 섞고 있는 이곳은 기숙사 건물의 외벽이었다.
내가 어쩌다 여기서 이런 짓을 하고 있는 건지……. 내 인도적인 사고에 회의가 밀려온다.
야외에서 섹스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도 물론이거니와 혹시나 발각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과 그 후 밀려들 수치심에 심장이 콩닥콩닥거리는데 하물며 이곳은 아카데미 안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난 후 학생들이 기숙사로 돌아올 시간이라는 점이 모골을 송연하게 만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기숙사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샛길에 숨어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흔히 알고 있는 골목길처럼 좁은 폭은 아니었고 성인 세 명이 나란히 손을 잡고 걸어도 될 만큼이나 넓었다.
샛길 정면에 절묘하게 들어서 있는 가로수 덕에 몸을 가릴 수 있어서 다행이었으나 누군가 마음먹고 이곳으로 들어서고자 한다면 단번에 걸릴 위치였다.
“그냥, 조금만, 참, 으라니까, 아읏.”
폐건물에 들어간 이후 줄곧 식지 않았던 페니스는 아무리 손과 허벅지로 문질러도 잠잠해지기는커녕 더욱 정욕에 휩싸일 뿐이었다. 애쉬를 달래주면서 나 또한 달아올라 버렸다.
녀석의 기숙사 방으로 장소를 옮기기로 하고 치미는 성적 충동을 참으면서 겨우 폐건물 밖으로 나왔는데 기숙사 건물 안으로 한 발 들어서려는 그 순간 애쉬가 폭발해 버렸다.
못 참겠다면서 허겁지겁 달려들어 입술과 목에 키스를 퍼부었다. 행여나 사람들이 볼까 봐 황급히 녀석을 데리고 숨은 곳이 바로 이곳이었고 그 결과 우리는,
“너무 기, 깊어.”
“여기까지, 찔러주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계획에 없던 스릴 만점 야외 섹스를 하게 돼버렸다.
“아읍! 읍, 하아, 그렇게, 하지, 마하, 아아!”
내가 느끼는 지점을 꾸욱 누른 채로 애쉬가 허리를 뭉근하게 돌려댔다. 고르지 못한 외벽에 이마가 닿았다. 등 뒤로 조금의 틈도 없이 달라붙어 있는 애쉬와 벽 사이에서 짓눌리고 있었다. 애쉬의 손바닥이 이마 아래로 들어와 얼굴이 뭉개지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농밀한 열기가 녀석의 손바닥에서도 여실히 느껴진다.
“키스해 주세요.”
턱이 잡힌 건 바로 다음 순간이었다. 고개가 돌아가고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자리한 애쉬의 얼굴이 보였다. 습관처럼 녀석에게 키스하기 위해 고개를 앞으로 내밀었는데 애쉬가 얄궂게도 얼굴을 살짝 뒤로 물린다. 서로의 뜨거운 숨이 느껴질 만큼 가까운 거리는 유지하면서 입술은 닿을 듯 닿지 않았다.
“키스해 달라며……. 으으.”
안을 꾹꾹 누르며 자극하는 페니스 때문에 온몸이 찌릿찌릿 울린다. 작은 전기들이 팟팟 터지는 것 같다. 자꾸만 눈가에 힘이 풀리고 입이 벌어지는 것을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그런 나의 모습을 애쉬가 면밀히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의 온도가 높았다.
“…애쉬.”
퍼억!
“아윽!”
머물러 있던 페니스의 끝이 귀두에 걸릴 만큼 쑤욱 빠져나가더니 강하게 밀고 들어왔다.
풀려있던 눈이 크게 떠짐과 동시에 애쉬가 키스했다.
퍼억! 퍽!
전신이 녀석의 허리 짓에 따라 세차게 흔들렸다. 젖은 살덩이가 혀를 휘감는 감촉에 녹아버릴 것만 같았다.
츄읍.
타액이 턱 밑으로 흘러내리자 녀석의 혀가 그것을 쓸며 내 입안으로 꼼꼼히 넣어주었다.
“으음……. 음! 읍! 잠, 깐.”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녀석은 미친 듯이 아래를 쑤셔댔다. 억누른 신음 소리보다 젖은 살이 부딪치는 소리가 더 크게 울린다.
“안 돼. 들켜, 아, 아! 아, 진정, 으음…….”
자제하지 못하고 치고 들어오는 녀석을 피하려고 허리를 움직여가며 발버둥 쳤다.
그러나 바람 앞의 촛불, 계란으로 바위 치기. 녀석은 아주 완벽하게 나를 옭아매었고 내가 벗어나기 위해 몸을 꿈틀대는 것을 더한 자극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지나치게 붉은 입술이 떨어지면서 점액질의 타액이 길게 늘어뜨려졌다.
“더 느끼게 해줄게요.”
“이미 충분……. 읏! 아, 나 주, 죽어! 아, 아! 빠르다, 고! 아!”
“선배 안이, 후, 제 걸 씹어 먹고 있어요. 꽉 물고 놔주질 않아.”
“닥치고, 읏, 그만, 좀!”
“이렇게 줄줄 흘리는데도, 뻑뻑해서 미쳐 버리겠다구요.”
“진짜, 나, 어떻게 될 것, 아, 아흐, 제발, 아!”
목 끝까지 무언가가 차올랐다. 들키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옅은 색으로 증발해 버리기 시작했다.
입을 막아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비명과도 같은 신음을 내지르고 말았다. 쾌락의 한계까지 거침없이 몰고 가는 애쉬의 몸짓에 나는 제대로 된 저항도 한번 하지 못하고 힘없이 끌려가 버렸다.
쾌락의 정점에서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결국 지독한 오르가슴을 느끼고 말았다.
“하으……. 아. 나 죽어, 진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애쉬가 허리를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곧바로 바닥에 무릎이 닿았을 것이다.
절정의 여운을 느끼는 동안에도 애쉬는 내 안에서 빠져나가지 않았다. 목 뒤로 뜨거운 숨이 간헐적으로 닿는다.
“아, 움직이지 마.”
철벅.
애쉬가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야한 물소리가 났다. 허벅지 아래로 떨어질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너 혹시 안에다 쌌어?”
“싸도 돼요?”
“죽고 싶냐? 아윽!”
살짝 뒤로 빠졌던 페니스가 거칠게 파고들었다. 몸이 덜컹거릴 정도로 강한 피스톤질에 벽에 얼굴을 갖다 박았다. 애쉬의 손이 내 얼굴보다 빠르게 벽에 닿지 않았더라면 우스운 혹이 이마 한가운데에 생겼을 거다.
고개를 뒤로 돌려 애쉬를 노려봤다. 그 위에 다정한 입맞춤이 내려앉았다.
“밑에 질퍽거리는 거 다 선배 거예요.”
“…….”
한마디 쏘아주려고 했는데 내 생각을 읽힌 기분이 들어서 말이 목구멍 안으로 먹혀들어 가버렸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건데… 내가 흘린 것들이 맞구나. 화끈.
애쉬가 헤벌쭉 웃으며 다시 입을 맞췄다.
“윽! 아, 너무 빠르게, 하진, 마.”
“기뻐요. 선배가 저 때문에 이렇게 질질 흘릴 줄이야.”
“그 입 좀… 흐응, 닥치고, 해!”
“하아, 이벨린. 사랑해요.”
“아, 아! 읏, 잠깐… 못 버텨. 으, 흣!”
그때였다.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인기척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희미한 수다 소리가 점점 또렷하게 들리며 그 내용까지 선연하게 귀에 들어올 정도다.
“잠, 잠깐! 진짜, 애쉬. 안 돼, 안 된다고! 아! 읏! 으흥!”
양손으로 벽을 짚어 애쉬를 밀어내려고 했는데 애쉬가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잡아채고는 내 등 뒤로 돌려 힘주어 눌러버렸다.
“덧나요.”
“아, 씨팔, 잠깐, 사람이 온다고, 으! 아! 애쉬!”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는데 그랬다간 꼼짝없이 들키는 꼴이 되어서 그러지도 못했다. 꼬챙이에 꽂힌 것처럼 애쉬에게 박힌 채로 오도 가도 못 하는 상황이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냉정해져야 할 머리는 내 의지를 배반하고 다시금 쾌락을 좇고 있었다. 아흣, 젠장!
사락―
나뭇잎이 걷히고 잔디 밟히는 소리가 천둥처럼 크게 들려왔다.
“파티 때 입을 턱시도를 보여줄게, 르왕의 디자이너가 작년부터 제작한 거야.”
“이야… 역시 베레길라 후작 가문은 차원이 다르네.”
“아버지가 힘 좀 쓰셨지. 너네 것도 가져와 봐.”
“르왕이 제작한 턱시도가 있는데 기죽어서 입을 수나 있겠어?”
들리는 목소리는 못 해도 세 명이었다. 이 장면을 들킨다면 교내에 소문나는 건 우습고 제국 내를 떠들썩하게 하다 못해 어쩌면 다른 나라까지 퍼져 나갈 스캔들 거리였다.
절대 안 돼!
아무리 몸을 비틀어 봐도 애쉬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더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이 자식은 내일이 없어? 위기의식을 좀 느끼란 말이야!
“야, 애쉬! 진짜, 으, 읏, 이거, 위험… 하악, 으.”
발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진다.
샛길 입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정말 끔찍하게도 네 명의 학생들이 우리 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내가 저쪽이 보인다면 저쪽도 우릴 볼 수 있을 터. 몇 걸음만 더 가까워지면 얼굴까지 드러날 것이다.
난 황급히 고개를 아래로 처박았다.
“으, 읏!”
퍼억! 퍽!!
“이 새끼, 진짜, 으읏, 응.”
…우려하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학생들의 수다 소리가 내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리 없다.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고민했다.
“으헉!”
그러는 와중에도 애쉬는 피스톤질을 멈추지 않았다.
“선배, 눈 떠요.”
“닥쳐. 변태 새끼야. 으, 읏.”
“갔어요.”
“아, 앗, 그래, 평화로운 내 스쿨 라이프가, 으윽! 가버렸…….”
“선배가 걱정하던 것들이 지나갔어요.”
뭐?
그러고 보니 주위가 잠잠했다. 아래에 고정되어 있던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학생들이 샛길 반대편으로 유유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애쉬가 웃으면서 내 뺨에 입을 맞추었다.
“차기 대마법사 후보가 누구인지 잊으셨어요?”
“…….”
사고 정지. 다른 의미에서 열이 올랐다.
이 자식, 너 지금 날 가지고 논 거야?
녀석은 처음부터 마법으로 우리 모습을 감출 생각으로 야외에서 이런 짓을 벌인 것이다. 그러면서 조용히 하라느니 들킨다느니 이딴 말을 해?
“아흑!”
“이젠 저한테 집중해 주세요, 선배.”
“아, 응! 너, 이따 두고 봐, 으, 아…….”
“네, 빨리 끝낼게요.”
휘익.
몸이 돌아갔다. 잠시 빠져나간 페니스의 공허함을 느끼기도 전에 다시 안이 들어찼다. 벅찰 정도로 빠듯하게 비집고 와서는 제집이라도 되는 양 내벽 이곳저곳을 쑤셔댔다.
“아, 으으,”
애쉬가 위로 쳐올릴 때마다 발꿈치가 떨어졌다. 몸이 점점 위로 올라가더니 결국은 애쉬에게 완전히 기대어 안긴 상태가 되어버렸다.
“꽉 잡아요.”
골반이 두 손에 붙잡혔다. 뭉툭한 끝이 내가 느끼는 곳을 사정없이 찔러댔다. 나를 안고서도 애쉬는 지치지도 않고 거칠게 몸을 움직였다. 자세 때문인지 이전보다 더욱 깊게 들어와 박히는 페니스 탓에 정신이 없었다.
“흐으! 아, 으, 나 어떡, 으.”
“하아, 윽, 읏… 아아.”
여유가 없는 건 나보다 애쉬가 더했다. 짐승 같은 숨을 토해 내며 내 목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곧 절정에 도달해 가는지 애쉬도 색이 짙은 신음을 자제 없이 터뜨려갔다.
“아, 애쉬, 나 또, 으읏, 응! 이거, 아, 못 참……!”
“하아, 이벨린, 사랑해, 읏, 사랑해, 사랑해.”
애쉬의 가슴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완전히 흥분해 버린 건지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행위에만 몰두했다. 골반에 놓여있던 손이 허리로 옮겨갔고 얼굴은 내 입술을 찾았다. 비비고 빨고 씹어 대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아흣, 으, 음, 아아……!”
또 한 번 눈앞이 새하얗게 변했다. 생명줄처럼 감고 있었던 손에 힘이 풀리고 몸이 갸우뚱 뒤로 넘어갔다. 단단한 팔이 내 등을 잡아주었다.
묵직하게 들어있던 페니스가 빠져나가고 곧이어 내 옷 위로 질퍽한 액이 튀었다.
여운을 느끼며 서로에게 한참이나 안겨있었다.
“하아… 하아.”
쪽, 쪽쪽, 쪽.
힘들어서 제대로 눈도 떠지지 않는 얼굴 위에 자잘한 입맞춤이 퍼부어졌다.
애쉬가 천천히 내 몸을 바닥에 내려놓았는데 다리가 후들거려서 녀석의 팔을 잡고 서야만 했다.
“선배, 지금 엄청 야한 거 알아요?”
녀석이 입술을 축이며 목을 긁는 소리를 내었다.
“액을 뚝뚝 흘리면서 옷은 제 정액 범벅이에요. 목덜미는 왜 그렇게 빨개요? 예쁘게. 얼굴도 번들거리고. 고개 좀 위로 더 들어봐요. 닦아줄 테니까.”
여기가 밖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이대로 쓰러져 잠들고 싶었다. 애쉬가 희미하게 보인다.
“…너, 나한테 죽을 줄 알아.”
들킬까 봐 불안에 떨었던 감정이 몹시도 억울했다. 그것도 나 혼자만. 머리라도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은데 지금은 손가락 까닥할 힘조차 없었다. 고개가 자꾸만 떨어지고 몸에 힘이 풀린다.
“일단 지금은 좀 자고, 나중에 혼내주세요.”
애쉬의 목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다. 희미했던 시야가 완전히 어둠으로 물들면서 겨우 붙들고 있었던 힘이 빠져버렸다.
* * *
아이고, 삭신이야.
허리를 퉁퉁 두드려봐도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목은 또 어떤가. 잔뜩 쉬어 가지고 쇳소리가 났다. 목이며 팔에 찍힌 얼룩덜룩한 자국들을 보며 침음을 삼켰다. 어제 애쉬와의 정사가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고스란히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아서 뺨이 뜨거워졌다.
강의를 들으러 가기 위해 결국 겨울용 목도리를 둘러매야만 했다.
“이벨린, 어디 아파?”
“…감기.”
“어머, 목 쉰 것 봐. 수업 들을 수 있겠어?”
“많이 아픈 건 아니야. 콜록, 콜록.”
억지로 기침 소리를 내었다. 강의실로 가는 내내 학생들이 힐끗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아직 목도리를 할 정도로 추운 날씨는 아닌데……. 하는 의미에서.
“이벨린, 파트너는 정했어?”
“아, 맞다.”
“아, 맞다라니! 바로 내일이 개교기념일이야!”
그냥 그깟 자존심 좀 버리고 게시판에 메모지라도 붙여놓을걸. 늦은 후회가 밀려들었다.
지금이라도 써놔야겠다 싶어서 곧장 게시판 쪽으로 달려갔다. 구비되어 있는 펜과 메모지를 들어 한 자 한 자 아주 열심히 적었다.
개교 기념 파티 파트너 구합니다. ―이벨린.
아주 담백한 내용으로.
두 번 확인할 것도 없이 메모지를 게시판에 붙였다.
그러나 곧바로 그것이 떨어져 나갔다.
“파티 나랑 가자.”
메모지가 레드릭의 손아래에서 나풀나풀 흔들리고 있었다.
레드릭이라니. 이전에 나눴던 거짓투성인 대화 때문에 겸연쩍은 마음이 있었다. 레드릭이랑 같이 파티에 가게 되면 웬 변태 놈들을 파트너로 두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긴 했지만… 아무래도 조금 불편하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려고 입을 여는데 레드릭이 더 빨랐다.
“다른 애들은 사교댄스 수업 때 다들 파트너를 정했나 봐. 사교댄스 수업을 듣지 않는 건 너를 포함해서 다섯 명도 안 될 것 같은데.”
“…….”
어쩐지. 올해에는 유독 외톨이들이 없다고 했어!
이럴 줄 알았으면 사교댄스를 들을 걸 그랬나. 성적 반영이 미비한 학점일뿐더러 졸업하고 나서도 도무지 쓸 데가 없을 것 같아서 과감히 신청을 안 했던 강의이건만… 이렇게 뒤통수를 칠 줄이야. (딱히 뒤통수를 친 건 아니다.)
“너희 가문 일을 내가 알아버려서 망설이는 거라면 괜찮아. 이미 다 잊었으니까.”
“…….”
“본인이 싫다는데 나까지 귀찮게 괜히 간섭하고 싶지도 않아.”
레드릭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하아. 속 깊은 숨이 터졌다.
나에게는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다. 껄끄러운 마음을 안고 끝끝내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레드릭이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나는 불편하게 그것을 마주 잡았다.
* * *
오지 않았으면 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나를 제외하고 교내의 모든 이들이 기다렸을 개교 기념 파티가 시작되었다. 아침 댓바람부터 울려 퍼지는 오케스트라의 우아한 선율이 가장 먼저 파티의 전조를 알렸다.
아, 붕대도 풀러 가야 하는데.
피곤한 일들이 겹쳐있다.
주름이 지지 않도록 반듯하게 걸어놓은 교복을 다시 꺼내 입고 계절에 맞지 않는 목도리를 둘둘 맸다.
기숙사 방을 주욱 둘러보았다. 파티 기간 동안에는 네 방 내 방 할 것 없이 교내의 모든 공간이 공공재가 되기 때문에 행여나 도둑맞을 위험이 있거나 손상될 우려가 있는 귀중품들은 감춰놓는 것이 좋았다. 돈이 많고 교양이 넘치는 귀족 집 자제들이 모인 이곳이라 하더라도 파티 기간 중 귀중품을 도난 맞는 일들이 있었다.
내 방은 딱히 도난이라는 범주 안에 해당되지 않는 곳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방이 무사한 건 아니다.
이불이나 침대 시트가 더럽혀지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책상에 올려놓은 교재가 정액 범벅이 되거나 옷장 문 하나가 떨어져 나가 있거나 창문이 깨진 적도 많았다.
도대체 이 안에서 무슨 짓들을 하는 걸까.
창문은 매년 깨져 있었기 때문에 나도 반쯤은 포기했다. 옷장 문은 끈으로 단단히 묶어서 열지 못하도록 고정해 놓았고 교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잘 치워두었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이대로 방을 나가기가 어쩐지 떨떠름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곧 파티가 시작된다.
힐끗 창문을 내려다보니 기숙사 건물 앞에 값비싼 턱시도를 빼입은 남학생들이 우글우글 몰려있었다. 다들 제 파트너를 기다리는 것이다.
기숙사 밖으로 사람이 한 명 나갈 때마다 수십 개의 머리가 일제히 돌아갔다. 자신의 파트너가 맞다 싶으면 정중하게 다가가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고는 유유히 기숙사를 벗어난다.
나는 시선을 받는 것이 싫어서 혼잡한 정문과 극명히 대비되는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기숙사 건물을 빙 돌아가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음은 이쪽이 훨씬 편안했다.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과 다르게 뒷문에도 누군가 있었다.
“어…….”
태양이 눈앞에서 떠오르는 줄 알았다. 살랑거리는 금발 사이로 별이 부스러지며 떨어진다. 그 아래에 드러난 희고 고운 피부는 존재하는 그 어떤 색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청량한 하늘을 닮은, 유리알 같은 벽안이 나를 향한다.
“이쪽으로 오실 줄 알았어요.”
애쉬가 나를 보며 웃는다.
두근두근. 부끄럼 모르는 심장이 멋대로 뛰었다.
잘생긴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였던가?
푸른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검은 슈트를 빼입은 애쉬는 교복을 입었을 때와 사뭇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녀석의 신체에 맞게 적당히 라인이 잡혀있어서 넓은 어깨선과 그에 비해 잘록하게 들어간 허리, 탄력 있는 허벅지가 돋보였다. 은근히 드러나는 팔목 아래로 긴 손가락 마디마디가 주먹을 한 번 그러쥐었다가 폈다.
여자 남자를 불문하고 오늘의 주인공은 단연 애쉬가 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녀석처럼 아름답지 못할 것이다.
“선배한테 가장 먼저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저 어때요, 예뻐요?”
녀석이 수줍게 물어왔다.
“뭘 물어.”
대답이 뻔한 질문이었다. 스스로가 자각하다 못해 나르시시즘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애쉬는 초조하게 대답을 채근했다. 큰 손이 내 손가락을 얽으며 마주 잡아 온다. 오랫동안 밖에서 기다렸던 건지 손이 찼다.
“마음에 안 드시면 갈아입고 올게요.”
“응? 아니야. 너 지금 엄청 예뻐.”
녀석의 얼굴에 산뜻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숨김없이 기뻐하는 모습이 천진하다.
애쉬가 마주 잡은 손을 붕붕 흔들며 정말요? 얼마나요? 어디가 제일 예뻐요? 다다다 물어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수순이라 응. 많이. 전부 다, 라고 어려움 없이 대답했다. 무성의할진 몰라도 내 답은 진심이었다.
이런 내 마음이 애쉬에게도 닿았는지 녀석은 더없이 만족스러워했다.
“키스해도 돼요?”
“안 돼.”
“뽀뽀는?”
“지금 내 목도리 안 보여?”
“자국 안 남게 할게요.”
“그래도 안 돼. 벌이야.”
“…그럼 언제 해도 되는데요?”
“이거 자국 다 없어질 때까진 안 돼.”
청천벽력. 녀석의 표정을 보고 바로 그 말이 떠올랐다.
얼마간 얼어붙어 있던 애쉬는 한 번만 봐달라고 통사정했다. 온갖 불쌍한 척과 애교를 부려가면서 달라붙어 대니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하, 귀여운 자식.
그러나 이 날씨에 목도리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억울한 처지를 생각하면 그냥 봐주기는 또 싫었다.
“안 된다고 했어.”
통하지 않을 것을 깨달은 애쉬가 시무룩해하며 네, 하고 대답했다.
“이제 가봐. 파티 시작하겠다.”
“선배랑 같이 가면 안 돼요?”
“너랑 나랑 같이 입장하면 우리 둘이 파트너인 줄 알아. 로제타 공주는 어디 있어?”
“중앙 홀에 먼저 가있으라고 했어요.”
매정한 놈. 시종도 아니고, 파트너를 먼저 가있으라고 내보내는 사람이 어딨냐. 로제타 공주가 측은하게 느껴지는 건 아니다. 그냥 저놈의 막돼먹은 매너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이다.
쯔쯔. 혀를 찼다.
“빨리 가봐. 혼자서 뻘쭘하겠다.”
“괜찮아요. 혼자 잘 기다리는 애라서.”
“인마, 그건 매너가 아니지. 뭐가 됐든 난 너랑은 같이 안 갈 거니까 시간 아깝게 조르지 말고.”
내 온기로 따뜻하게 데워진 애쉬의 손을 떨쳐내었다. 잡았던 손을 만지작거리던 애쉬가 고개를 끄덕였다.
뭉그적거리는 녀석의 등을 밀었다. 훠이훠이. 어서 가.
애쉬는 마지못해 간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나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간다. 우울하게 접혀 들어간 등이 안쓰러웠다.
왼손을 둥글게 하고는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애쉬! 너 오늘 되게 멋있어! 나 조금 설렜다!”
애쉬가 멈춰 서더니 나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러곤 겨우 저만치 보냈던 노력이 무색하게도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단숨에 달려와서는 내 몸이 부서져라 안아버렸다.
“하아. 역시 못 가겠어요, 선배.”
또 한참이나 입씨름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 * *
끝까지 혼자 가지 않겠다고 우겨대는 통에 애쉬를 남겨두고 내가 먼저 자리를 뜨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후, 아침부터 진땀 뺐네.
이미 학생들로 북적북적한 중앙 홀로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나에게 쏟아지는 탐탁지 않는 시선들과 수군거리는 소리가 주변을 메운다. 내용은 뻔했다. 드레스도 없이 교복을 입고 온 점을 힐난하고 로벤스디 가문의 사생아라는 이야기와 함께 매몰차게 버려졌다는 것까지. 저들이 비아냥대는 레퍼토리야 다 거기서 거기지.
“이벨린.”
조심스럽게 어깨를 두드리는 손길에 고개가 돌아갔다. 레드릭이 하얀 치아를 보이며 웃고 있었다. 입고 있는 벨벳의 진한 보라색 턱시도가 고풍스러웠다. 레드릭에게 잘 어울리긴 했지만 애쉬처럼 빛나진 않았다.
“기숙사 앞에서 기다렸는데.”
“아, 미안. 뒷문으로 나왔어.”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네…….
비즈니스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딱딱하기만 했던 이전 파트너들과는 매번 중앙 홀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아쉬워라.”
방명록 쪽으로 향하면서 다시 한번 미안하다고 이야기했다.
“내 멋대로 기다렸을 뿐이야. 너에 대해서 조금은 알고 있다고 자만했는데, 허를 찔린 기분이긴 하지만.”
장난기 어린 말에 별 의미 없이 허허 웃어버렸다.
나에 대해 뭘 알고, 뭐에 허를 찔려?
그러나 레드릭의 심중을 깊게 파고드는 귀찮은 짓은 하기 싫었다.
방명록에 레드릭과 내 이름을 나란히 적었다.
파트너와는 파티의 시작 그리고 마지막에만 같이 붙어있으면 되었다. 그사이에 누굴 만나든 어디에 있든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었으니 일차 관문은 통과다. 교수들에게 적당히 얼굴을 비춘 다음에 배가 터질 정도로 음식을 주워 먹고 자리를 떠야겠다.
레드릭과 함께 지나가는 곳마다 내 교복 차림을 지적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나는 그렇다 치더라도 레드릭한테까지 피해가 가니 이 상황이 무안해졌다.
평소 다른 파트너들은 굳이 나라는 존재가 옆에 달려있지 않아도 무리에서 나가떨어진 속된 말로 왕따인 처지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받는 대미지가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레드릭의 경우 뼈대가 굵고 명망 있는 가문의 자식 아니던가. 성격도 좋고 얼굴도 반반해서 이성들한테 인기도 많은 놈이었다.
“교복을 입고 올 걸 그랬어. 나는 거추장스럽고 불편하기만 한데 이벨린 너는 편해 보인다?”
“일부러 그런 말 안 해도 돼.”
“진심이야. 바꿔 입을래?”
“좋아. 벗어.”
“워. 화끈한데.”
실없는 농담을 툭툭 주고받고 있을 때 주위에서 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 이건 그거다. 주인공 등장 전의 효과음.
이 파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기에 목이 저절로 길게 늘어났다. 까치발을 들고 사람이 몰린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쉽게 애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니, 굳이 보지 않으려 해도 녀석은 존재만으로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그래, 이 빛이다. 분명 같은 사람이 맞건만 녀석의 피부 위에선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 누가 애쉬 옆에 있건 그 빛에 가려져 어두운 그림자로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로제타 공주만 빼고.
둘은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존재들 같았다. 보기만 해도 황홀해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의도치 않는 탄사가 이곳저곳에서 흘러나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내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려대던 녀석과 동일 인물이 맞는 건지 잠시 생각해 보았다. 환상 너머의 존재처럼 아득히 느껴진다. 내가 꿈을 꾼 건 아니었을까.
그때 애쉬의 푸르른 눈동자가 정확히 나를 향했다. 그가 눈을 접으며 웃는다. 주위에서 “헉!”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더라면 나도 헤벌쭉 따라 웃었을 것이다.
그 예쁜 눈동자가 시선을 틀었다. 그러곤 방금 지어 보였던 웃음이 존재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싸늘하게 굳어간다. 애쉬가 레드릭을 본 것이다.
“우리 막내 황자님이 원래 저런 이미지는 아니었지. 음. 아니었어.”
애쉬의 시선을 눈치채지 못한 레드릭이 속 편한 소리를 해댔다.
“머리를 자른 이후로 분위기가 바뀌었어. 이벨린, 이번 방학 내내 막내 황자님이랑 붙어 있었다면서 뭐 아는 거 없어?”
나는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제국사 과외를 조금 해줬을 뿐이야.”
“이 나라 황자한테 제국사 강의를 해줬다고?”
“그러게, 생각해 보니 웃기네.”
“과외 조금 해준 것치고는 둘이 많이 친해 보이던데. 저것 봐, 지금도 이쪽으로 오고 있잖아.”
“뭐?”
정말이잖아!
애쉬가 인파를 뚫고 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애쉬가 내 앞까지 바짝 다가와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로제타 공주도 함께 있었다는 것이다. 파트너까지 내버려 두고 온 거였으면 정말 아찔할 뻔했다.
“…….”
왔으면 뭐라고 말이라도 해야지, 입은 꾹 다문 채 나를 바라보고 있기만 했다.
1초. 2초.
침묵이 무겁게 느껴졌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로제타 공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눈을 깜빡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야, 그거 무슨 의미야?
“여긴 왜…….”
“나도 모르게.”
드디어 애쉬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내뱉는 말이 생뚱맞다.
“죄송해요, 저도 모르게. 선배가 싫어할 걸 아는데도 여기까지 와버렸어요. 찢어 죽이고 싶다고 생각만 했는데 왜 발이 멋대로 움직여서…….”
“찢어 죽여?”
레드릭이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그거 아마 네 이야기일걸?!
나는 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무 말이나 떠들었다.
“아! 그랬구나. 악몽을 꿨구나. 가끔 얘가 이렇게 악몽을 꿀 때면 꼭 나한테 털어놓고 싶어 하더라고.”
“…….”
“그런데 애쉬, 미안해서 어쩌지? 지금은 들어줄 시간이 없어. 파티를 즐겨야지. 자자, 켈스타니아 양이랑 왈츠라도 한 곡 추는 게 어때?”
애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던져대는 녀석의 말 때문에 나만 불안해 죽겠다.
애쉬가 낮게 숨을 뱉었다.
“다음에 꼭 들어주세요, 선배.”
참았다. 애쉬가 참았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녀석은 나를 보며 희미하게 미소 짓고는 시선만 들어 레드릭을 살폈다. 예리한 눈동자가 레드릭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쭈욱 훑어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팔등에 소름이 돋는다.
“그럼 어서 가봐.”
애쉬가 물러나자 몰려있던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야 숨통이 트인다.
“역시 친한 거 맞잖아.”
지나가고 있던 시종이 들고 있던 쟁반에서 샴페인 두 개를 집어 든 레드릭이 나에게 한 잔을 권했다.
“…그래, 몰랐는데 친한 사이가 맞았네.”
달콤한 과일 향이 나는 샴페인을 한 모금 마시어 입을 축였다.
오케스트라의 음악이 잔잔하게 줄어들고 높은 단상 위에 황가의 임명을 받은 총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의례적인 축사와 함께 따분하고 지루한 말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들리는 거라곤 마지막 한 문장밖에 없었다. “자랑스러운 미래들이여! 그대들은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다시 음악 소리가 홀 안을 가득 메워갔다. 본격적인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