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당연하게도 몸 상태는 악화되었다. 하이어드를 돌려보낸 후 당일 일정을 모두 취소한 베이지는 침실에 틀어박혀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녹초가 되어 버린 몸을 침대에 뉘인 것도 아니었다.
한바탕 울음을 쏟았으니 감정이 사그라들었어야 마땅하나, 정작 해결된 바가 하나도 없었기에 베이지는 불안감에 떨며 밤을 지새워야 했다.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밤새 베이지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일련의 장면들이 있었다. 하이어드가 등장하기 전, 그녀가 메리엔에게 쇠붙이를 휘두르던 상황 뒤로 이어지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벅찼다. 눈이 짓무를 정도로 울어댔으면서 당장 내일 아침 닥쳐올 메리엔의 죽음이 두려워 또다시 눈물이 흘렀다.
메리엔을 빼낼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다. 아버지께 비는 것이 통하지 않는다면, 그에 응당하는 대가와 교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했으나 그런 방법은 찾을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저를 강하게 한다는, 목적이 분명한 시점에서 사소한 것에 휘둘릴 사람이 아니었다.
밤은 짧았다. 메리엔을 휘말리게 한 죄책감과 타데오를 얕보고 방심했던 스스로에 대한 자책, 그리고 메리엔을 빼돌릴 능력조차 없는 자신의 무력감을 반복적으로 맛보며 베이지는 아침이 오지 않기를 기도했다.
……끝내 아침이 오고야 말았지만.
베이지는 아침 일찍부터 방 안을 초조하게 맴돌았다. 피로가 쌓일 대로 쌓여 한계에 다다른 몸이 바들바들 떨렸으나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만히 앉아 있기에는 견디기 힘든 생각과 감정들이 치솟아 발이라도 놀려야겠다는 결론에 다다른 것이었다.
베이지의 생각은 꽤 극단적인 곳까지 다다라 있었다. 메리엔에게 손을 댄다는 건, 그녀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때 별안간 작은 소음 하나 없던 바깥에서 웅성거리는 기운이 새어 들어왔다. 방 문 너머로 들려오는 부산스러운 소리에 베이지가 의아하다는 듯 문가로 다가갔다.
제 침실이 있는 건물에는 정해진 시간이 아니면 하인들조차 잘 드나들지 않았기에 이렇게 소란스러워지는 일은 드물었다.
착각인가.
혹시나 싶어 문을 열어 밖을 확인한 베이지가 얼어붙었다. 왜 착각이라 여겼을까 싶을 정도로 복도는 북새통이었다.
하인들 여럿이 서로에게 소리를 치며 분주하게 복도를 뛰듯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택의 주인인 타데오가 교양 없는 것들을 진저리칠 정도로 싫어하는 터라 아무리 급한 일이 있더라도 잰걸음 할지언정 절대 뛰지 않던 이들이, 바삐 뛰어다니고 있었다. 큰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심지어 그녀의 침실 앞은 하인들이 잘 다니지 않는 구역이기도 했다.
그들이 여기까지 올 일이 무엇이지?
베이지는 자신을 지나쳐 가려는 하인 하나의 팔을 쥐었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란 하인이 급히 멈춰 서며 뒤를 돌아보고는 놀란 듯 화들짝 어깨를 떨었다.
“분주해 보이는데, 본관에 무슨 일이 있나요?”
꽤 젊어 보이는 하인은 베이지와 눈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녀는 제 눈을 피하는 하인을 살피다 그의 눈에 깃든 공포심을 마주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인가?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베이지의 가슴에 알게 모르게 얕은 생채기가 났다. 저택에서 마주친 하인이 그녀에게 이런 표정을 지어 보인 것은 처음이나 다름없었다.
그래. 불과 어제 그런 일이 있었으니 제가 무서울 만도 했다.
하지만 이어 하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베이지가 예상했던 바와는 달랐다.
“그…… 혹시 모르니 주인 어르신께 제가 전해드렸다고는…….”
아. 베이지의 입에서 작은 침음이 샜다.
제가 아니라 아버지를 두려워한 것이었구나.
베이지는 내심 안도하며 입술을 우물대는 하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알겠어요. 걱정 말고 말해 보세요.”
걱정 말라는 듯 달래는 말에도 하인은 한참 발을 구르며 ‘그, 그것이.’ 하는 말만 흘려댈 뿐이었다. 기다리다 못한 베이지가 다시금 하인을 재촉하자 그제서야 그의 입이 트였다.
“그, 그게…… 사실은…….”
눈을 위아래로 한번 굴리며 마지막 순간까지 망설이던 하인은 결심한 듯 말을 뱉었다.
“어제 그분께서 사라지셨어요.”
“……어제 그분?”
베이지가 미간을 좁히며 하인의 말을 따라했다. 그녀의 머릿속에 말도 되지 않는 가정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가슴이 부풀었다.
어제라면…… 설마.
“메리엔을 말하는 건가요?”
“예……. 아가씨, 그, 주인 어르신께는 꼭…….”
하인이 베이지의 눈치를 살피며 마지막까지 부탁했으나 이미 그녀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메리엔이 사라졌다.
어떻게?
분명 메리엔은 공작저의 별관에 있는 지하에 갇혀 있었을 터였다. 그곳은 공작가의 사업에 방해되는 인물이나 타데오를 배반한 자들을 가둬 놓고 처리하는 곳이라 이루 말할 수 없이 경비가 삼엄했다. 항상 상주하는 기사들이 있을뿐더러 저택을 경비하는 기사들도 기습적으로 순찰을 돌고는 했으니까.
“아가씨, 송구하지만 저는 이제 그만 가 보아도 될까요? 급한 일이라…….”
하인의 눈썹이 축 처졌다. 베이지의 허락을 기다리는 중에도 발을 가만두지 못하고 동동 굴려대고 있었다. 그녀가 이 손을 놓으면 곧바로 달려 나갈 것 같은 모양새였다. 그러면서도 주위를 둘러보는 걸 잊지 않았다. 혹 누군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 초조한 사람처럼.
베이지에게는 이보다 희소식이 없었으나, 그만큼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어젯밤 수없이 헤아려 보았던 가정들을 떠올리고는 다시 하인을 바라봤다. 이 철옹성 같은 저택에서 나고 자란 그녀의 세상에서는 사람 한 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조금만 더…… 자세히 말해 주시겠어요?”
“네?!”
하인은 베이지가 더 깊이 캐물을 줄은 몰랐는지 크게 놀라며 곤란한 사람처럼 눈을 굴렸다.
“그, 그게…….”
“아버지께는 비밀로 할게요.”
베이지 또한 하인이 저 때문에 벌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주위에 보는 눈이 없기에 할 수 있는 부탁이었다.
다행히 그 또한 원하는 답이었던 듯, 하인은 그제서야 조금 편안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이시죠……? 그게 사실은…… 어제 새벽 주인 어르신께서 저택을 비우신 사이에 감쪽같이 사라져서, 많이 노하신 상태세요. 몇 시간 전부터 모두 찾고는 있는데……. 지금 제가 저택을 돌아보지도 않고 이렇게 서 있는 것만 들켜도 크게 꾸짖음을 들을 거예요. 그…… 아가씨도 조심하셔요.”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아…….
조심스레 베이지의 손아귀에서 제 팔을 빼낸 하인은 다시 바삐 다리를 놀리며 순식간에 저 멀리까지 사라졌다.
어느새 텅 비어버린 복도에 홀로 남은 베이지는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섰다.
진짜, 사라진 건가?
죽어 있던 베이지의 상아색 눈동자에 작은 희망이 싹텄다.
도망간 걸까?
저택을 몇 시간 째 뒤져도 나오지 않는 거라면 공작저 부지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높았다.
아직까지 붙잡히지 않은 걸 보면…….
혹 메리엔이 다시 붙잡혀 오게 되면 이런 기대가 독배가 되어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았으나 베이지는 기대를 멈추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정말 불가능한 이야기라는 사실이 다시금 되새겨졌다.
공작가에서 일하는 하인들 모두가 스논 공작의 잔혹한 성정을 뼈저리게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눈 밖에 났다가는 사지 멀쩡히 죽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뿐만 아니라 바로 어제, 그들은 주인의 잔인한 손속을 두 눈으로 목격했다. 메리엔이 도망가기 위해서는 고작 아랫것 한둘이 눈 감아야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만큼 어려운 일인데…….
일순 베이지의 머릿속에 새카만 눈동자가 떠올렸다. 무언가 불쾌한 듯 입매를 굳힌 채 저를 내려다보던 눈이었다. 그 무감정하고도 정적인 시선 위로 살쾡이가 사라졌던 때의 일이 연달아 겹쳐졌다.
설마…….
하이어드가 한낱 사제임을 알면서도, 참으로 허황된 생각임을 알면서도, 머릿속에 움튼 하나의 가정은 지워지지 않았다.
하이어드의 능력 밖임은 물론이거니와 그가 자신을 도울 이유부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더욱이나 메리엔을 건드리는 건 사소한 일 따위가 아니었다. 타데오의 심기를 완전히 거스르는 일이었다.
이런 큰일에 개입했다는 사실이 발각이라도 되는 날에는 공작가의 개로서 약을 날라 온 과거가 다 무소용이 되는 것이었다. 타데오는 하이어드를 용서하지 않을 테고, 그의 출세는 멀어질 게 분명했다.
“하.”
생각이 여기까지 다다른 베이지는 짧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생각을 멈추었다.
참……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자신을 그렇게 휘두르던 사내를 얼마나 좋게 보고 있는 건지.
건물을 다 훑은 것인지 하인들의 발길이 끊기고 복도 위로 늘 머물러 있던 고요가 내려앉았다.
왜인지 느른한 기운이 몰려와, 베이지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제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머리는 복잡했고, 몸은 고단했다.
지끈거리는 두통이 일자 베이지는 생각을 멈추고 가만히 숨을 골랐다.
며칠간 축적된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며 의식이 저 멀리로 가라앉을 무렵이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나.”
잔잔하던 표면 위로 무거운 돌이 떨어지며 적막이 깨졌다. 어둑한 목소리가 얼굴을 꽁꽁 감춘 엷은 황갈색 머리칼 위로 쏟아졌다.
갑작스레 찾아든 소리에 베이지의 몸이 움찔 떨렸다. 가녀린 팔에 묻혀 있던 말간 얼굴이 위를 올려다봤다. 그녀는 복도를 밟는 구둣발 소리가 전혀 들려오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그가 왜 이곳에 있는가에 온전히 놀랐다.
잠시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앞에 선 이를 올려 보던 베이지는 꽤 시간이 지나고서야 떨리는 목소리를 흘렸다.
“여긴, 어떻게…….”
건조하게 베이지를 내려다보는 남자는 오늘도 여전히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건장한 체구에 딱 맞는 사제복을 갖추어 입은 채였다.
그는 늘 같았다. 그를 뒤흔드는 일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는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시선으로 넋이 나간 듯 하이어드를 바라보던 베이지는 별안간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들키면 어쩌시려고……!
지금은 한 차례 하인들이 쓸고 지나갔다고 해도 언제 다시 그들이 찾아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베이지가 단단한 하이어드의 팔뚝을 그러쥐자, 그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뿐이었다. 하이어드는 베이지가 하는 바를 관망하며 순순히 그녀의 손길에 따라 움직여 주었다.
베이지는 서둘러 하이어드를 제 침실로 끌어 들이고는 문까지 꼬옥 닫았다. 마지막까지 복도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베이지를 지켜보던 하이어드의 미간이 좁혀들었다.
또…….
이 경계심 없는 맹한 행태를 제가 또 봐 주어야 하는 건가.
저도 좆 달린 사내인데.
한편 하이어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베이지는 그저 입술만 잘근잘근 씹을 뿐이었다. 어제 그의 앞에서 눈꺼풀이 부을 정도로 엉망으로 울어댔던 일이 생각나서였다.
그때 거대한 손이 베이지의 턱을 낚아채더니, 굵은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붉은 입술을 가르고 들었다. 그새 딱지가 앉아 거칠하게 말라붙어 있는 표면은 물론이거니와 입술 아래 말랑한 속까지 굳은 손가락에 의해 뭉그러졌다.
“흣.”
일순 입술에서 올라오는 아릿한 고통에 베이지의 몸이 움츠러들었다.
“씹창 났네.”
꺼질 듯 낮은 저음이 조롱했다. 베이지는 그제야 간밤에 겨우 아물었던 입술이 다시 터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이어드의 딱딱한 손가락은 상처 난 입술을 비집고 들어 제게 날을 세우는 베이지의 메마른 아랫니를 툭툭 건드렸다. 그러다 보다 깊숙이 파고 들어 벌건 속에 감춰져 있던 뭉클한 혀를 짧게 깔짝였다. 그녀의 혀가 놀라 그 손길을 피하듯 둥글게 말렸다.
“으.”
본의 아니게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입에 물게 된 베이지가 발음이 불명확한 신음을 뱉었다.
어느새 하이어드를 향해 위로 한껏 들린 베이지의 턱은 그의 손가락을 씹지 않기 위해 힘을 주느라 발발 떨리고 있었다.
혀가 말리며 채 삼키지 못한 타액이 고이기 시작했고, 얼굴이 비스듬히 기운 탓에 목구멍 부근에 고여든 타액은 들들 끓기 시작했다.
“으…….”
목소리를 낼 수조차 없었다. 성대를 울려 소리를 흘리면, 발간 점막 위에 고여 있는 타액이 옅은 진동에도 끓어오르는 감촉이 느껴졌다. 입을 닫지도 못한 채 애써 침을 삼켜 보려는 베이지의 목구멍에서 꼴딱대는 물소리가 울렸다.
베이지가 발간 목구멍을 조였다 풀어대며 투명하고 끈적한 타액을 조금씩 삼켜내는 와중에도 하이어드의 엄지는 도망간 혓바닥을 찾아 그녀의 입속을 누볐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타액이 그득하게 고인 입속을 잠시 휘젓자, 쩔걱거리는 물소리가 옅게 퍼졌다.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집요하게 제 입속을 내려다보는 새까만 시선을 받아내던 베이지는 끝내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가 보고 있을 광경이 두려웠다.
눈을 감은 베이지의 속눈썹이 당황한 듯 파들댔다. 시야를 가리자, 입속에서 울리던 쩌걱대는 물소리가 귓속뿐 아니라 얼굴 전체를 울린 탓이었다.
“흐…….”
작은 입에서 우는 듯한 신음이 샜다. 그 목소리를 담은 하이어드의 입매가 길게 늘어졌다.
베이지의 예상대로 하이어드가 내려다보는 광경은 꽤 볼만했다.
베이지는 눈을 질끈 감은 채 제 자그마한 입속에 이질적이도록 두꺼운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받아내고 있었고, 그의 나무토막 같은 손가락이 벌그숙숙하고 녹녹한 점막을 건드리며 입속을 휘저을 때마다 그녀의 끈끈하고 희뿌연 타액이 그의 손가락에 척척 들러붙으며 휘감겼다.
“으, 으.”
무자비한 손길에 참다못한 베이지가 혀에 힘을 푼 순간, 기어코 하이어드가 그녀의 눅눅하고 새빨간 살덩어리를 잡아냈다. 혀에 묻은 타액을 제 엄지에 바르려는 듯 그는 뭉툭하게 내리깔린 혓바닥 중앙을 쩌걱쩌걱 눌러 비볐다.
“끄, 으.”
굳은살이 박인 손끝의 거칠한 감촉이 혀 위에서 느껴졌다. 굵직한 엄지가 힘을 줘 미끌한 혓바닥을 짓누르면 여리고 도톰한 혀는 속절없이 뭉개지며 바짝 엎드려야 했다.
하이어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미련 없이 제 손가락을 빼냈다. 붉디붉은 입속을 반쯤 차지하고 있던 손가락을 빼내자, 투명하고 점도 있는 타액이 길게 늘어지며 그의 손가락에 붙어 딸려 나왔다.
베이지의 침은 쉬이 끊어지지 않고 포물선을 그리며 검질기도록 하이어드의 엄지에 눌어붙었다. 긴 실이 끝내 끊어지는 꼴까지 눈에 담아내고서야 그는 그 손가락을 그녀의 입술 위로 올렸다. 그새 살짝 불어버린 촉촉한 손가락이 딱지가 말라붙어 거칠어진 그녀의 입술 위로 제가 정성껏 퍼 온 침을 바르듯 움직였다.
“제가 빨아라도 드려야 합니까.”
고저 없는 저음이 낮게 울렸다.
또 아린 고통이 올라왔다. 베이지는 엄지로 느릿하게 제 입술을 뭉개는 하이어드를 올려다봤다. 꽤 박정하던 그의 손길은 그녀가 저를 바라보고 나서야 움직임을 멈추었다.
이어 핏물이 배어 나오는 도톰한 입술에 붙박여 있던 시선이 끌어 올려지며 내리깔려 있던 새까만 속눈썹이 천천히 움직였다.
유리알 같은 검은 동공이 저를 향하는 순간,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내내 생각하고 있던 바를 입 밖으로 흘려보냈다.
“……사제님께서 빼돌리신 거죠?”
베이지는 제가 질문을 던지고도 놀라 몸을 굳혔다. 터지듯 새어 나간 문장은 확신에 찬 어조였다.
왜. 자신은 그의 무얼 믿고, 그가 했으리라 생각하는 걸까.
스스로도 질문을 던진 의도조차 파악할 수 없었다. 대체 그에게서 무슨 대답을 기대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밖으로 내고 나니 분명해졌다. 물증 하나 없더라도, 적어도 자신은 그가 했으리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았다.
베이지가 주제넘는 자신의 질문에도 동요 하나 없이 여상하기만 한 하이어드의 얼굴을 샅샅이 훑었다. 이토록 태연스러운 얼굴을 지을 정도로 그녀가 던진 말은 별것 아닌 질문이 아니었다. 자칫 반측자로 낙인찍힐 수 있는 질문이었음에도 그는 느긋하기만 했다.
어떻게 그는 항상 이토록 무서운 것 하나 없는 사람처럼 굴 수 있은 걸까.
“아니라고 하면, 믿을 건가?”
답이 나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건조한 어조로 긍정도 부정도 아닌 답을 내놓은 하이어드는 하룻밤 사이 야위어 있던 얼굴이 더욱 파리해져 있는 꼴을 훑어 내렸다.
되바라지게 저를 추궁하듯 물어놓고는 본인이 놀라 가뜩이나 작은 몸을 더 작게 말기나 한다.
또 무얼 기대하는 건지 집토끼 같은 꼴로 저를 빤히 올려다보는 게 마치 씹질을 할 때처럼 그 속이 훤히 보였다.
제게서 모호한 답이 나오자 맥이 빠졌는지 어깨까지 늘어뜨린다.
그런 일을 겪은 탓인지 이건, 꽤…… 나쁘지 않았다.
그때 미미하나 분명한 발소리 하나가 베이지의 귓가에 잡혔다. 좀 전 빠르고 쟀던 하인들의 걸음걸이와는 달랐다. 그녀는 제 침실에 찾아올 만한 이들을 꼽아 보았다.
애브인가?
하지만 애브는 베이지가 일정이 없는 오전이면 공작가의 기사들과 새벽부터 정오까지 훈련을 하고는 했기에 그녀의 방에 찾아올 리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용건이 없는 이상 그녀의 침실에 찾아와서는 안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베이지는 바삐 머리를 굴리느라 제 머리꼭지 위로 와닿는 선득한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하이어드는 저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숨을 바짝 죽인 채 바깥에 온 신경을 쏟는 베이지를 말없이 지켜보다 긴 입매를 죽 끌어올렸다. 커다란 손이 불시에 가느다란 팔목을 낚아챘다.
“읏……!”
베이지가 얇은 천 위로 닿는 뜨거운 손바닥을 채 인지하기도 전, 그녀의 몸이 좁은 옷장 속으로 박혀 들어갔다. 푹신한 옷감들이 옷장 속으로 거칠게 떠밀린 그녀의 볼을 마구잡이로 문댔다.
그리고 암전이었다. 옷장 문이 소리 없이 닫히고 시야가 새까맣게 막혔다.
반항할 새도 없이 옷장 속으로 밀려 들어간 베이지는 눈을 깜박이며 더듬더듬 상황을 따라갔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놀라 힘없이 주저앉은 다리 아래로 단단한 무언가가 맞닿아 있었다.
이게…….
방 한 켠에 놓인 옷장은 작았다. 가볍게 걸치는 외투 따위를 넣어 두는 터라 크기가 그렇게 크지 않았다. 특히 기골이 장대한 하이어드가 그 거대한 몸집을 욱여넣기에는 더더욱.
때문에 작은 옷장 속에 긴 다리를 구겨 넣은 하이어드의 두툼한 허벅지는 기울어 있었고, 그녀의 몸은 그 기운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상태였다.
어둠 속 보이지 않는 베이지의 목덜미가 달궈졌다. 본의 아니게 하이어드의 허벅지를 제 샅 사이에 품은 그녀는 음부 아래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를 지워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여기는 왜……?”
베이지가 더듬거리며 물었다. 당장 자리를 박차고 나가기에는 큰 소리를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신의 방은 제 허락 없이는 그 누구도 드나들 수 없었다. 제멋대로 드나들 수 있는 이를 구태여 셈 해 보아도 저택의 주인인 스논 공작 하나뿐이었다.
실상은 채 하나라고 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사용하던 이 방에 단 한 차례도 발을 디딘 적이 없으셨으니까.
이 사실을 알 리 없는 하이어드가 옷장으로 몸을 숨긴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왜 자신까지……?
베이지는 하이어드에게 괜찮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 입을 열고자 했다.
그리고 베이지가 입술을 떼려던 순간, 하이어드가 틀어쥐고 있던 가는 손목을 놓아 버리며 그녀의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흣…… 읍.”
몸이 불안정하게 기울자 베이지는 황급히 손을 뻗어 벽을 짚었고, 그와 동시에 거대한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꺼칠한 손바닥이 여린 살결을 긁었다.
그 순간 예견이라도 한 듯 선명한 발걸음 소리가 침실 앞을 스쳤다.
그 억겁과도 같은 시간 동안, 바깥에 온 신경을 집중한 베이지의 눈이 둔하게 감겼다 뜨이길 반복하며 까맣게 막혀 있던 그녀의 시야가 트이기 시작했다.
베이지는 숨을 몰아쉬며 제 앞의 형체를 눈에 담았다. 어렴풋이 굵은 선이 눈에 밟혔다.
손수 빚기라도 한 듯 오뚝하게 솟은 콧대와 길게 늘어진 입매가…….
코앞에 있었다.
마치 입이라도 맞출 듯, 생각보다 배는 가까운 거리감에 베이지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물리려 했다.
그런 베이지의 움직임을 알아챈 하이어드가 낮게 웃는 듯하더니, 남은 한 손으로 봉긋한 엉덩이를 낚아채 터뜨릴 듯 꽉 움켜쥐었고.
“읍.”
괄괄한 손길이 베이지의 몸을 단숨에 죽 끌어당겼다. 하이어드에게로 미끄러져 내려간 그녀의 하체가 그의 고간을 깔고 앉은 건 순식간이었다.
두터운 손바닥이 부드럽게 물크러지는 엉덩잇살을 두어 차례 쥐어짜더니 이내 강하게 쥐고는 좌우로 가볍게 흔들었다. 덩달아 베이지의 하체 또한 흔들리며 그녀의 외음부가 두둑한 하이어드의 불알을 뭉갰다.
하이어드가 보란 듯 사타구니를 비벼대고 나서야 베이지는 제 가랑이 사이에 위치한 묵직한 살덩어리의 존재감을 알아차렸다. 그의 허리를 감싸듯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사제복 하의 속에 갇힌 그의 성기가 뜨겁게 열을 내뿜고 있었다.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오른쪽 허벅지 안쪽부터 엉덩이 뒤편까지 뻗어 있는 길고 두꺼운 살덩어리 탓이었다. 물컹하던 살덩어리에 혈류가 몰리며 발기하는 과정이 얇은 옷감을 사이에 두고 노골적으로 닿아 왔다.
“저를 숨겨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이어드는 느긋하게 말을 내뱉으며 당혹스러운 눈길로 저를 올려다보는 베이지를 빤히 응시했다.
이제야, 저를 본다.
촘촘히 난 베이지의 속눈썹이 깜박일 때마다, 그녀의 눈만을 드러내 놓고 얼굴 반절을 다 덮어버린 하이어드의 손바닥 윗부분을 간질였다. 꽤 거슬리는 감촉이었음에도 그는 끝까지 손을 떼어내지 않았다.
베이지가 저를 붙박은 새까만 눈동자에 숨 쉬기를 잊고 입을 다물자, 하이어드가 허리를 털어 제 왼쪽 허벅지를 그녀의 다리 사이로 밀어 넣었다. 그녀의 갈라진 음순 사이로 딱딱하게 선 그의 자지가 끼워졌다.
자신의 침실에서 얇은 네글리제 한 겹만을 걸치고 있었던 베이지는 겨우 몇 겹의 천을 사이에 둔 채 서로의 성기가 빈틈 하나 없이 맞물리자 놀라 몸을 퍼뜩 떨었다. 아래에서 흉흉하게 차오른 부피감과 감촉이 더없이 선연하게 전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 베이지의 엉덩이를 움키고 있던 하이어드의 손바닥이 옷자락을 들추더니 새하얀 속살을 파고들었다. 나무토막처럼 딱딱하고 뜨거운 손가락은 얇다란 등허리를 느릿하게 더듬어 올랐다. 그리고 그 색스러운 손길 끝에 닿은 단추가 툭, 툭 풀어지는 작고도 말초적인 소리가 울렸다. 굳은살이 박인 손가락은 겉으로 드러나 차가운 공기와 마주한 그녀의 살결을 마치 달래기라도 하듯 그 위를 두어 번 두드리더니 이내 깊이 팬 등골을 타고 손끝을 옅게 그어 내렸다.
“흣……!”
발끝을 타고 소름이 죽 올랐다. 본능적으로 하이어드의 손길을 피하려는 베이지의 허리가 앞으로 둥글게 말리자 그녀의 입을 가로막고 있던 그의 손이 모로 비스듬하게 틀어지며 부드러운 볼을 감쌌다. 발끝을 치고 올라온 저릿한 감각에 무너진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그 손길에 얼굴을 기댔다.
“냄새가 나.”
육욕이 꺼무죽죽히 묻어나는 목소리가 짧게 일렀다.
냄새?
베이지가 되묻기도 전, 하이어드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느슨히 고개를 틀었다. 그의 각진 턱이 불거지고 엷붉은 입술이 벌어지더니 축축한 혀가 비어져 나와 무언가를 핥아 올렸다. 젖은 혀와 무언가가 마찰하는 사각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설마…….
베이지는 눈을 가늘게 뜨며 하이어드가 빨아 올린 것의 형체를 확인하려 했다.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제 슬립이었다.
차마 말을 잇지 못하게 하는 하이어드의 변태 성욕적인 행태에 베이지가 가쁘게 새는 숨을 눌러내리는 동안, 하이어드는 부드러운 옷감 사이로 제 코끝을 깊숙이 박아 넣고는 숨을 들이켰다. 천에서 묻어나는 그녀의 체향을 들이마시는 우람한 흉부가 부풀며 그에게 딱 맞는 사제복이 팽팽하게 늘어났다. 그녀의 말랑한 허벅지 살에 짓눌린 검붉은 자지가 한 차례 껄떡였다.
“베이지.”
느른하게 토해지는 숨과 함께 새어 나온 꺼끌하고 탁한 목소리에 베이지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이 빌어먹을 단내가…….”
저를 발정 난 수캐로 만듭니다.
하이어드의 두 손이 베이지의 골반을 완전히 휘감았다. 허릿짓 한번에도 낭창거리는 허약한 몸을 붙든 그가 제 허리를 쳐올리며 습윤한 기운이 감돌기 시작한 속옷에 제 성기를 비벼댔다.
외설적인 정사의 전조에 베이지의 심장이 달음박질했다. 얇은 속옷을 뚫고 전해지는 홧홧한 열기가 견디기 힘들 만큼 벅찼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그녀는 바깥에서 느껴지던 기척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베이지는 저를 찾아온 손님이 아니었음에 안도할 정신도 없이 서둘러 이 상황을 피하기 위해 몸을 일으키려 했다.
“이, 이제 나가도 될 것 같아요.”
베이지가 옷장 문을 열고자 손을 뻗으려던 차, 흉흉한 목소리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안 되겠는데.”
그새 살짝 열려버린 문 틈새로 새어 들어온 빛이 베이지의 가느다란 손목을 비췄다. 그것도 힘줄이라고, 가는 뼈대 위로 얇게 돋은 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이어드가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제게로 가져갔다.
“자지가 서버려서.”
정욕이 번들거리는 숨결과 함께 척척한 혀가 베이지의 손목 위로 와닿았다.
베이지의 몸이 얼어붙었다. 그녀는 제 살갗 위로 축축한 침을 바르는 덩어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틈새로 들어온 기다란 빛줄기가 하이어드의 도톰한 혀를 가로지르며 새빨간 살덩어리의 일부를 비췄고, 이내 혀가 피부에서 떨어져 나가며 진득하게 늘어지는 투명한 타액을 조명했다.
베이지는 숨을 죽인 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고, 하이어드는 그녀의 반항이 멎은 틈을 타 그 손을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악스럽기까지 한 손길에 속절없이 끌려간 베이지의 손은 맞붙어 있는 두 사람의 사타구니 사이를 억지로 파고들어야 했다.
왼쪽 허벅지에 수납되어 있던 성기는 발기할 대로 발기해 사제복 천 바깥으로 툭 불거져 있었다. 작은 손을 두둑하게 솟은 살기둥 위로 강제로 눌러 내리자, 곱고 가느스름하게 뻗은 손가락이 하느작거리며 구겨졌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뜨끈한 허벅지가 어미새처럼 따뜻하게 품고 있던 길쭉한 덩어리에 그녀의 손이 닿을 때까지 이끌고 나서야 만족한 듯 느른한 숨을 토했다. 그는 그대로 그녀의 어깨 위로 제 얼굴을 묻었다.
“하…….”
좀 전 하이어드가 단추를 끌러 버린 탓에 베이지의 목덜미를 감싸고 있던 네글리제는 이미 반쯤 풀어헤쳐진 상태였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허연 살결 위로 제 눈꺼풀을 비비는가 싶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올려 제 입술을 파묻었다. 보얀 속살에서 풍기는 달큰한 향내에 그의 도드라진 목울대가 한 차례 울렁였다. 부드러운 살결 위를 배회하는 그의 입술 새로 발음이 잔뜩 뭉개진 거친 욕지거리가 샜다.
뭉클한 입술은 고운 빗장뼈 위를 느리게 오가며 습하고 뜨거운 숨결을 발라대고도 모자랐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축축한 혀를 제 입 안에서 빼냈다.
하.
짧고 탁한 한 번의 숨소리와 함께 누진 덩어리가 빗장뼈 위 푹 팬 공간을 쑤시고 들었다. 베이지의 뽀얀 살결 위를 쑤시는 하이어드의 시뻘건 혀가 이리저리 뭉그러졌다. 힘을 주었다 뺐다, 베이지의 손이 제 성기를 주무르도록 종용하는 억센 손길에 맞춰, 하이어드의 혀는 마치 삽입질이라도 하듯 그녀의 살갗을 쏘삭거렸다. 쩌걱거리는 물기 어린 소리가 옅게 퍼지고 그의 굵은 숨통 아래 걸걸한 신음이 들끓었다.
베이지는 제 목 아래에서 느껴지는 원색적인 움직임에 숨을 편히 내쉴 수가 없었다. 미끌거리고 뜨거운 덩어리가 살갗 위를 문지르고 그에 따라 부드러운 하이어드의 머리칼이 턱 바로 아래를 반복적으로 스쳤다. 간지러웠다.
베이지의 빗장뼈 부근을 돌아다니던 하이어드의 입술이 별안간 힘이 바짝 들어간 그녀의 가는 목줄기를 타고 올랐다. 이어 비어져 나온 축축한 혓바닥이 그녀의 턱선까지 묵직하게 훑어 올리며 젖은 물길을 만들자, 그의 성기를 쥐고 있던 그녀의 손바닥에 힘이 들어갔다.
하. 하이어드의 침으로 번들대는 베이지의 목 위로 흥분해 거칠어진 그의 숨이 쏟아졌다.
욕정이 번들거리는 숨 한 번에 옷장 벽을 짚어 제 몸을 지탱하고 있던 베이지의 손에서 일순 힘이 빠졌다. 그녀의 손바닥이 옷장 벽을 죽 미끄러져 내렸다.
금세 다시 힘을 주기는 했으나, 그 작은 소리를 잡아낸 하이어드가 낮게 웃으며 베이지의 손을 제 어깨 위로 이끌어 주었다.
“잡아.”
선심 쓰듯 제 어깨를 내어준 하이어드는 직전 베이지에게 도움을 내어준 그 손으로 네글리제가 반쯤 벗겨져 드러난 그녀의 부푼 윗가슴을 한 차례 쓸었다. 까끌한 손바닥이 말랑한 둔덕 위를 스치며 그 모양이 닥치는 대로 뭉그러졌다.
“읏……!”
가슴께를 오가는 투박한 손길에 베이지가 저를 보호하듯 몸을 옹송그렸다. 하이어드는 이러한 하찮은 반항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고 설게 손을 옮겼다.
“……흡.”
하이어드는 베이지가 채 마음을 놓을 새도 없이 그녀의 어깨 위로 걸쳐져 있던 네글리제를 잡아내렸다. 옷감이 어깨를 타고 내려가는 감촉에 반사적으로 몸을 움츠려 막으려던 베이지는, 꼭지까지는 내놓지 않았음을 깨닫고 저도 모르게 몸에서 힘을 풀었다.
그런 베이지를 비웃듯 하이어드의 커다란 손이 네글리제 윗부분을 단숨에 파고들었다. 고인 모래를 파내듯 억센 손길이 소복한 젖가슴을 받쳐 올리더니 뽀얀 살덩어리를 바깥으로 꺼냈다.
“아……!”
순식간에 서늘한 기운이 가슴께에 와 닿자, 베이지가 급히 제 가슴을 가리려 했다. 그것은 시도에서 그쳤다. 그녀에게는 애초에 남는 손이란 게 없었다.
하이어드의 어깨에서 손을 떼어 내면 몸이 미끄러져 내릴 터였고, 그의 사타구니에 얹어진 제 손을 더욱 강하게 깔고 앉게 되는 꼴이었기에 도저히 손을 떼어낼 수가 없었다.
베이지가 고민하는 이 순간에도 그녀의 손아귀에 쥐인 살덩어리는 빠듯하게 부피를 키워가고 있었다. 뜨거웠다.
베이지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굳은 사이, 하이어드는 여상히 제 손을 움직였다. 큼지막한 손이 젖가슴을 죽 쓸어내리니 영근 젖꼭지가 그의 손바닥에 툭 걸리며 탄력 있게 끌려 내렸다.
“흐으……!”
첨단에서 전해지는 지릿한 기운에 베이지의 얇은 손목 힘줄이 도드라졌다. 손 하나가 없어 제 입조차 가리지 못하는 그녀의 입에서 흐릿한 신음이 샜다. 하이어드의 손에 마구잡이로 쓸리는 젖꼭지가 왜인지 간지러워 미칠 것 같았다.
“꼭지가 섰는데.”
아래도 젖으셨습니까?
두어 차례 손바닥을 위아래로 비벼대며 제 손 아래에서 메마른 젖꼭지가 꾸들꾸들하게 퉁기다 꼿꼿이 서는 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하이어드가 입매를 끌어 올리며 음담패설을 속삭거렸다.
꼬들꼬들한 유두가 판판한 손바닥을 가로지르는 촉감이 썩 기꺼운 듯 몸을 바싹 세운 꼭지를 털어대듯 비비는 하이어드의 손장난은 꽤 긴 시간 이어졌다.
제가 옹골차게 여물도록 만든 젖꼭지를 중지로 가볍게 퉁긴 하이어드가 만족한 듯 탐스러운 유방을 받쳐 올려 완전하게 감싸 쥐었다. 그가 여린 가슴살을 손아귀 가득 모아 쥐고 두어 차례 가볍게 주무르자, 그녀의 한쪽 가슴이 형체를 잃고 뭉개지며 뼈마디가 굵은 그의 손가락 사이로 살이 비어져 나왔다.
껄껄하고 뜨거운 손바닥이 예민한 앞가슴을 찰흙 주무르듯 멋대로 짓뭉개자, 참아내듯 입을 꾹 다물고 있던 베이지의 입에서 억눌린 목소리가 터졌다.
“으흐…… 읏.”
가슴을 희롱당하는 중에도 베이지의 손은 하이어드의 손짓에 의해 바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어느새 돌 같이 딱딱해진 양물은 사제복 위로 두둑하게 솟아나 긴 원통형인 제 모양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었다.
베이지는 제 손 아래에서 살아있는 양 뛰어대는 살기둥을 애써 외면했다. 모른 체하고 싶었으나 열기를 뿜는 성기에서 맥이 뛰는 감촉이 더없이 선연했다. 끼쳐오는 열기만으로도 벅찰진대 손바닥을 둥둥 울리는 맥박은 견디기가 힘들었다. 이미 몇 번이나 쥐어 보았음에도 손에 쥐여질 때마다 벅찼다.
인간이 이런 것을 아래에 달고 다닐 수 있다는 게…….
저도 모르게 아래로 향하던 시선을 끌어올린 베이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반면 그녀의 손아귀에 부여잡힌 하이어드의 성기는 착실히도 제 쾌락을 좇았다.
후, 으…… 하.
베이지의 목덜미에 흥분이 묻어나는 푸석한 신음이 떨어졌다.
그때 하이어드가 제 허리를 가볍게 쳐올렸다. 힘이 들어간 하이어드의 엉덩이가 꽉 죄며 꼿꼿하게 발기한 물건이 베이지의 손바닥을 짓누르자, 그의 성기와 그녀의 손바닥이 맞물리며 서로의 살을 눌러 얕게 꺼졌다.
하이어드는 한번에서 그치지 않고 시범을 보이듯 제 허리를 흔들며 베이지의 손가락을 제 사타구니에 멋대로 비볐다.
“흣, 그래. 그렇게…….”
문지르십시오.
괄괄한 하이어드의 목소리가 끊어지듯 울렸고, 짧은 순간 그의 판판한 복부가 쾌감을 받아들이다 못해 얕게 수축했다. 동시에 사제복 하의에 갇혀 있던 양물이 천을 뚫고 제 대가리를 들이밀듯 크게 꺼떡이자 놀란 베이지가 무의식적으로 손을 떼어내려 했다.
“계속.”
하이어드는 얇은 손바닥이 제 성기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그녀의 손을 힘 줘 누르며 짧게 일렀다. 작은 손바닥이 발정 난 좆대가리를 짓누르며 찌그러지는 것을 확인한 그의 손이 떨어져 나갔다.
베이지의 손을 본인의 것마냥 부려대던 하이어드의 손길이 사라지자, 앙증맞은 손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몸통을 하의 위로 치받아 올리며 제 대가리를 문지르라 독촉하는 기둥 위에 덩그러니 내버려진 그녀의 손은 잠시간 발발 떨어대다, 그저 가만히 놓인 상황이 더 창피스럽다고 생각했는지 이내 슬며시 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베이지가 고뇌 끝에 마지못해 제 자지를 문지르기까지의 과정을 가만히 지켜보던 하이어드는 웃음기가 섞인 묵직한 신음을 내뱉으며 제가 원하던 것으로 손을 뻗었다.
“흐응……!”
일순 가슴께에서 느껴지는 자극에 베이지의 입에서 채 막지 못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하이어드가 기어코 그녀의 나머지 한쪽 젖가슴까지 끄집어낸 탓이었다.
하이어드는 네글리제 위로 툭 끌려 나온 살덩어리를 양손 가득 쥐고는 뭉글한 덩어리를 마음껏 뭉갰다. 불그스름한 유륜과 유두 주위는 건드리지 않고 말랑하고 흰 젖 살만 장난질하던 그가 별안간 고개를 숙여 그녀의 가슴으로 입을 묻었다.
하이어드가 턱뼈가 벌어지며 딴딴하게 발기한 베이지의 젖꼭지를 한입에 물어 삼키더니, 벌건 입 속에서 질척한 혀를 빼내어 빳빳한 꼭지를 휘감아 올렸다.
“흡!”
베이지의 입에서 높은 신음이 터졌다. 하이어드의 입으로 삼켜진 부위 위로 축축한 입김이 닿아왔다. 축축하게 달궈진 그의 입 안 점막이 쫀득하고 부드럽게 가슴을 감싸는 감촉이 더없이 선연했다.
뭉클하고도 뜨거운 혀는 꼬들거리는 젖꼭지 주름을 피려는 듯 통통하게 솟은 유두 둘레를 핥아 올리기도, 티 안 나게 팬 젖 나오는 구멍을 쑤셔 대기도 했다. 하이어드의 입 속에서 그의 혀가 바지런히 움직이며 쩔걱거리는 물소리가 울렸다.
동굴 속에서 소리가 먹먹히 울리듯,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젖꼭지를 빠는 질척한 침소리가 자신의 입 안에 고이며 귓가를 척척히 적시자 만족스러운 듯 선이 굵은 턱을 더 빠듯하게 벌려 그녀의 젖을 한껏 빨아들였다.
통통하게 수축한 하이어드의 혀가 살짝 까끌한 구멍을 쑤시며 근질거리는 쾌감을 흘려보내자, 베이지가 참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다.
“으, 흐…….”
얕게 팬 유두의 첨단에 베이지의 모유 대신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끈적하게 흘러나온 그의 침이 고여 들었다. 구멍에 고인 투명한 타액은 이내 주름진 살점을 갈라지듯 타고 내렸다.
침이 꼭지를 타고 흘러내리는 감촉마저 선명했다. 베이지는 몸에서 가장 높이 솟은 양가슴의 끝에서 저릿하게 전해지는 쾌감에 몸 둘 바를 모르고 발끝을 꼬았다. 간지러웠다. 꼭지 끝을 손으로 마구 긁어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 쭙, 무언가 추지게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하이어드의 침으로 푹 젖은 젖꼭지가 한 차례 바깥으로 드러났다. 그의 입 속에서 그새 퉁퉁 불어버린 유두가 허공으로 퉁기듯 드러나며 비교적 찬 공기에 꼬들하게 제 몸통을 세웠다.
말없이 억눌린 숨을 흘리는 하이어드의 목빗근이 바짝 섰다. 아기가 젖이라도 빠는 마냥 한참을 열중해 베이지의 젖꼭지를 물고 빨았던 그의 목은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두툴한 핏줄이 돋은 목줄기로 툭 불거져 있던 울대뼈가 한 차례 울렁였다.
색욕에 진탕 빠져버린 시꺼먼 눈동자가 느릿하게 아래로 굴렀다.
바깥으로 노출되자, 자신의 타액으로 너덜하게 젖은 유륜조차 뭉쳐들며 주름이 지는 꼴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하이어드가 다시금 얼굴을 묻었다.
……씨발.
“꼭지 빨아달라 보채기는.”
“흐읍……!”
베이지의 허리가 꺾이며 그녀의 손가락이 오그라들었다. 온 신경이 앞가슴이 쏠려 있는 기분이었다. 간지럽고, 괴상야릇했다.
하이어드는 제 입안에 들어차는 양으로는 모자랐는지 양손으로 살진 젖무덤이 제 눈앞까지 받쳐 올렸다. 부드럽고 흰 유방이 한데 우그러지며 그가 연한 가슴살을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이미 번들거리는 침으로 적셔져 있던 그녀의 가슴은 타액이 그득하게 들어차 녹녹한 그의 입 안 점막에 빈틈없이 감싸였다.
쭙쭙, 베이지의 동그란 유방을 빨아 당기는 외설스러운 소리가 좁은 옷장 안을 가득 메웠다. 하이어드의 볼이 움푹 패며 짙은 음영이 질 때마다 그의 볼 안 여린 점막이 입 안에 들어찬 살덩어리를 쥐어짜려는 듯 달라붙었다.
베이지는 몸을 굳힌 채 젖을 빠는 아이처럼 제 가슴에 바싹 붙은 검은 머리통이 작게 흔들리는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으, 흐응…….”
베이지는 목구멍을 간질이다 툭 번져 나오는 신음을 참지 못했다. 반사적으로 허리를 꺾으며 몸을 젖히자 빛 한 줌 없는 공간에 시야가 막혔고, 몸에 닿는 촉감들이 보다 더 선명해졌다.
“하, 읍.”
하이어드의 입 속은 물기로 가득했다. 그의 볼 점막이 살결 위를 눅진하게 감싼다 싶다가도 뾰족하게 말린 혀끝이 꼭지 끝을 턱턱 쳐대며 제 존재를 알렸다. 그때마다 몸을 세운 젖꼭지가 허공에서 달랑거리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이 선연했다.
하이어드의 입에 물려진 가슴은 녹을 듯 뜨거웠고, 입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든 젖꼭지 위로는 데워진 입김이 끊임없이 와닿았다. 뾰족하고 물컹한 혀끝이 바짝 선 젖꼭지를 느리게 털자 맥없이 휘둘리는 유두가 탄력 있게 허공을 휘저었다.
그때 쭙, 빨판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하이어드의 입술이 떨어져 나갔다. 하이어드가 입을 떼는 그 순간조차 보란 듯 유두를 힘껏 쫍 빨아버리는 바람에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벌건 살점이 그 반동으로 세차게 덜렁였다.
“흐읏……!”
아릿한 고통은 옅은 쾌감으로 닥쳐왔다. 베이지가 신음을 삼켜내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하이어드는 거무죽죽하게 익어버린 손으로 그녀의 가슴을 둥글게 굴렸다. 그의 손등 위에 징그러울만치 사방으로 뻗어 있던 핏줄이 맥동하더니, 그의 굵은 검지가 제가 발라댄 침으로 윤이 나는 그녀의 젖꼭지를 가볍게 퉁겼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베이지의 허리가 휘며, 옷장 틈새로 새어 들어오고 있던 빛이 위치를 옮겨 갔다. 그녀의 눈꺼풀 중앙을 가르고 있던 기다랗고 얇은 빛은 어느새 그녀의 벌어진 입술 사이를 관통하고 있었다.
하이어드는 빛이 조명하는 베이지의 시뻘건 입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커다란 손은 그녀의 몸을 더디게 타고 올랐다. 뜨겁고 사나운 온기는 가슴을 벗어나 빗장뼈를 훑고 가느다란 목줄기를 휘감았다. 그의 거칠한 손바닥 결이 그녀의 부드러운 살갗 위를 할퀴듯 스쳤다.
베이지는 제 목을 부러뜨릴 듯 감싸오는 커다란 손의 존재에 가만히 숨을 죽였다. 왜인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들었다.
베이지의 목줄기를 느리게 타고 오르는 하이어드의 곧게 뻗은 손가락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그 손가락이 금방이라도 제 숨통을 조일 듯해, 그녀는 반항 한 번 하지 않고 제 목을 내어줄 뿐이었다.
“읏.”
억센 손끝이 발 내린 곳은 베이지의 도톰한 입술 위였다. 거칠게 마른 하이어드의 손가락은 뭉클한 베이지의 입술을 짓뭉개듯 눌러 비볐다. 그는 모양이 예쁜 입술이 제 손길 아래 흐무러지는 꼴을 빤히 바라보더니 이내 그녀의 입술을 가르고 굵은 손가락 하나를 밀어 넣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다른 한 손이 그녀의 목덜미를 타고 오르더니 퇴로를 막았다. 목 뒤가 뜨거웠다.
낯선 이물질의 침입에 베이지의 혀가 본능적으로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밀어내려 했으나, 그는 그조차 달가워하며 검지로 축축하고 작은 덩어리를 달래듯 얽었다.
얽으려 했다. 하이어드는 저에게서 벗어나려 안으로 숨어드는 살덩어리를 느끼고는 짧게 혀를 찼다. 친히 마중 나와 줄 때는 언제고 다가가니 놀라 몸을 숨기는 게 제 주인을 닮았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입 속으로 손가락을 하나 더 밀어넣어 기어코 그것의 머리를 휘감아 제게로 당겼다. 뭉클한 혀가 딱딱한 손가락 사이에 끼였다.
“그, 그망…….”
전혀 예상하지 못한 쪽으로만 흘러가는 하이어드의 행동에 놀란 베이지가 두 손을 모조리 뻗어 금방이라도 제 입을 쑤실 듯한 그의 굵은 팔뚝을 갈급히 잡아챘다. 하나 잡아챘다 보다는 잡았다는 표현이 옳았다. 자그마한 그녀의 두 손이 그의 팔을 붙들어 제게서 떼어 내려 힘을 준들, 단단한 팔뚝은 조금의 미동도 보이질 않았으니까.
고작 손가락 두 개였으나, 베이지의 입은 이미 한계치까지 벌어진 상태였다. 베이지는 입 안을 가득 메운 하이어드의 두 손가락에 입을 채 여닫지도 못했다.
그 상태 그대로 버티지조차 못하는 베이지의 혓바닥이 주인의 뜻을 거스르며 속으로 들어가려고도 했으나, 실패했다. 하이어드의 사나운 손가락이 침이 밴 그녀의 혀를 잡아챌 때마다 미끄덩거리는 통에 끈적한 타액이 그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발렸다.
“으, 으…….”
말을 내뱉으려는 목울대를 울리는 베이지의 입 속에서는 정체 모를 소리들만이 샜다. 그녀는 침조차 제대로 삼킬 수 없었다.
베이지가 항의하듯 희미한 소리들을 내어도 하이어드는 그저 다채로운 표정을 짓는 그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는 설핏 즐거워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흐르며 베이지의 입 안으로 착실히 침이 고여들었다. 꼴딱꼴딱 목구멍 너머로 침을 삼켜보려 하지만 입을 벌린 상태에서는 끝내 목 뒤로 넘어가지를 못했다. 괴로웠다.
“흐으…….”
베이지가 침을 삼키려 목구멍을 꼴딱거릴 때마다 반사적으로 그녀의 입 안 공간이 조여들었다. 그리고 작은 입이 조여들 때마다 붉고 눅눅한 점막이 본의 아니게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따뜻한 속살이 제 손가락을 쫍쫍 빨아당기자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얕은 그르렁거림이 샜다. 그의 팔뚝에 붙은 근육이 움지럭대며 검지와 중지를 교차시켰다. 그 사이에 끼여 있던 베이지의 빨간 혀가 이리저리 물크러지며 쩔걱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어으, 으…….”
침이 기도로 넘어갈 것만 같았다. 베이지가 불안함에 몸부림쳤다. 꽤 오랜 시간 목구멍에 그득히 고인 침을 넘기지 못하고 있는 그녀의 눈꺼풀이 괴로움에 바르르 떨렸다. 혹 기도로 넘어갈까, 그녀는 숨조차 마음 편히 내쉬지 못했다.
견디다 못한 베이지가 하이어드의 팔뚝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둥그렇게 말아 쥐고는 퍽퍽 쳐대기 시작했다. 솜방망이 같은 주먹은 아프기는커녕 간지러울 수준도 되지 않았다.
하이어드가 꿈적도 않자 연갈색 눈동자에 습기가 은근하게 들어찼다. 그는 기어코 그녀의 눈을 보고 나서야 미련 없이 조그마한 혀를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울기는.”
둔탁한 목소리와 함께 하이어드는 손가락을 구부려 베이지의 볼 아래 점막을 어르듯 문질렀다. 숨이 차 평소와 달리 살짝 발개진 그녀의 볼 위로 그의 손가락 모양이 툭 불거져 나왔다.
하이어드가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베이지의 볼이 불거져 나오는 모양이 달라졌다. 그는 그녀의 무른 살가죽이 제 손길 한 번에 툭 튀어 나오는 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타액이 물처럼 고여 미끌거리는 점막과 제가 손가락으로 입을 들쑤실 때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다 이내 닿는 자그마한 혀가 축축하고, 꼴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굳게 다물려 있던 하이어드의 입매가 느슨히 벌어지며, 야트막한 웃음기가 섞인 저음을 떨어뜨렸다.
여기…….
“보짓살 같네.”
하이어드의 굵은 검지가 그의 목소리에 맞춰 베이지의 볼을 푹 파고 들었다. 사슴과 같은 그녀의 말간 얼굴에서 볼이 이질적으로 툭 튀어 나오며 꽤 어여쁜 낯을 만들어 냈다. 그는 그 얼굴을 적막히 내려다보다 한 번 더 예의 그 여상스러운 목소리를 흘렸다.
“좆 잘 빨게 생긴 게.”
둔탁한 저음이 베이지의 귓가를 때렸다. 얄궂은 언사에 놀란 베이지가 고여 있던 침을 꿀떡 삼키자 그녀의 목구멍이 꽉 조이며 덩달아 입 안과 입술이 모두 좁혀들었다.
침이 베이지의 목구멍으로 꼴딱 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목젖 부근의 붉고 눅눅한 점막이 조여들며 그 안에 박힌 거친 손가락을 빈틈없이 감쌌다 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하이어드의 아랫도리가 크게 꺼떡였다.
쭙. 일순 제 입에서 만들어낸 소리에 베이지의 몸이 흠칫 떨렸다. 그녀의 목덜미가 엷붉게 물들었다. 침을 삼킴과 동시에 입 안에 박혀 있던 하이어드의 두 손가락을 마치 사탕 빨 듯이 당겨 빨아버린 것이었다.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신체적인 반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베이지는 창피스럽다는 감정을 지워낼 수 없었다.
베이지가 별것도 아닌 일로 수치를 느끼고 있던 차, 잔뜩 억눌린 목소리가 그녀의 위로 내려앉았다.
씨발.
“자지 잘 빤다고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베이지의 뒷덜미를 받치고 있던 하이어드의 손이 순식간에 얇다란 목을 타고 오르며 그녀의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모래색 머리칼을 헤집고 들어간 그의 굵은 손가락이 그녀의 머리칼을 단단히 얽었다.
하이어드는 제 손아귀에 움킨 그 작은 머리통을 본능적으로 제 아랫도리를 향해 잡아 눌렀다. 별다른 의도 없이 습관적으로 행한 짓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그 작은 손길에 베이지가 민감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짙은 자극에 혼미하게 풀어져 있던 연갈색 동공에 옅은 이채가 도는가 싶더니, 별안간 베이지의 두 손이 하이어드의 도드라진 장골 위를 짚었다.
예민하게 달궈져 있던 부위 위로 갑작스러운 무게가 가해지자 하이어드의 등허리가 일순 얕게 굽어들었다.
“하.”
나른한 침음이 하이어드의 목을 성기게 긁고 쏟아졌다. 열기에 무겁게 젖은 먹색 동공이 느리게 아래로 떨어지며 갓 성교를 익힌 여자가 움직이는 모양새를 주시했다.
베이지가 하이어드의 장골 부근을 양손으로 짚어 몸을 들어 올리자, 그는 그녀가 하는 바를 지켜보아 주겠다는 듯 침으로 눅진하게 젖은 제 손가락을 입속에서 빼내어 주었다. 조그맣고 붉은 베이지의 혀가 함께 딸려 나가려다 자신의 행동을 깨닫고는 황급히 제 집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베이지의 좁은 입에서 뻑뻑하게 빠져나온 하이어드의 손가락에서는 그녀의 투명한 타액이 기다랗게 포물선을 그리며 늘어지다 뚝 끊겼다. 미처 그의 손가락에 다 묻어가지 못한 침이 다시 그녀에게로 되돌아오며 조그마한 턱에 착, 추지게 달라붙었다.
베이지는 차마 무시할 수 없는 그 물기 어린 감촉에 움직임을 멈추었고, 하이어드는 크게 개의치 않고 제가 원하는 바를 행했다. 그는 눅눅한 점막에 끼여 푹 익어버린 제 손가락을 바깥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 아래로 갖다 댔다. 선명한 빛줄기 아래 불어 버린 그의 손가락 주름이 드러나고, 그 위를 한 겹 덮은 그녀의 타액이 반들거리며 비쳤다.
하이어드는 제 검지와 중지에 끈끈히 얽혀 붙은 타액 주위로 일어난 기포를 말없이 내려다보다 그것을 터뜨리듯 손가락을 맞비볐다. 몽실하게 올라 있던 기포들이 으깨지고 그의 손가락 주위에서 찔걱이는 물소리가 퍼졌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침이 제 손가락 사이사이로 어느 정도 스며들고 나서야 아직 얼어붙어 있는 그녀를 달래듯 타액이 말라붙은 손가락으로 턱을 쓸어 올려 주었다. 이미 그녀의 턱 또한 말라버린 터라 그의 손가락은 손수건 역할은 해내지 못했으나, 재촉의 역할을 하기에는 충분했다.
하이어드의 손길에 퍼득 정신을 차린 베이지가 제 아래턱에 찜찜하게 남은 습기 어린 느낌을 지워내며 그대로 자신의 하체를 하이어드의 종아리 위로 물렸고.
읏.
베이지의 머리채를 쥔 하이어드의 굵직한 뼈 마디마디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하얗게 셌다. 붉은 입매 바깥으로 탁한 신음이 새고 그의 목울대가 크게 울렁였다.
후…….
베이지는 제 위에서 쏟아지는 신음성에 이상하게 가슴께가 차오르는 것을 느끼며 조심스레 손을 놀렸다. 베이지의 자그마한 손이 뜨끈한 열기를 뿜고 있는 하이어드의 고간 위를 짚어 그 위를 살살 문질렀다. 방황한다는 표현이 조금 더 옳기는 했다. 버클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으니까.
그 엉성한 손길에도 두툼한 살덩어리에는 착실히 혈류가 몰리고 있었다. 들들 끓고 있던 자지가 보다 더 빠듯하게 부풀었다. 피가 몰리다 못해 빳빳한 사제복 하의에 좆대가리가 눌려 통증마저 일 지경이었다.
가느다랗고 작은 손가락이 부푼 좆 위에서 꼬물거릴 때마다 굵은 성대 아래에서 짐승의 번식욕이 우글거렸다. 땅이라도 파는 것처럼 거친 천 위를 긁어대는 소리가 귓바퀴로 흘러들자, 하이어드의 턱뼈에 심지가 굳게 섰다.
왜.
“자지 빨아보려고?”
속된 말을 서슴없이 내뱉는 하이어드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같이 예사로웠다. 베이지의 수치심을 자극하려 부러 이런 말을 입에 담는 게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저 이런 말버릇이 그에게 익숙한 것이었다.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 드디어 손끝에 닿은 하의 지퍼를 꾹 쥐고 그대로 끌어내렸다. 그녀 또한 자신의 행동이 이해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그저 제가 이렇게 하기를 원했다.
베이지는 깊은 생각을 하지 않고 행동을 이었다.
옅은 쇳소리와 함께 갇혀 있던 살덩어리가 툭 튀어나왔다. 검은 드로즈를 찢을 듯 좆대가리를 빳빳이 치켜들고, 반동으로 크게 고갯짓하는 성기의 두툼한 양감에 베이지가 저도 모르게 입을 다물었다.
옷장 틈새로 설핏 새어 들어오는 한 줄기의 빛이 전부인 깜깜한 공간에서도 부피감이 뚜렷한 성기는 그 형체를 선명히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고 베이지가 숨을 삼키는 그 작은 반응에도 두꺼운 살덩어리는 제 대가리를 들이밀듯 껄떡이며 물을 쌌다. 드로즈 첨단을 뚫을 듯 천을 바싹 짓누른 귀두가 제가 뱉어낸 물로 푹 젖었으나, 온통 새까만 탓에 베이지의 눈까지는 닿지 않았다.
그저 길고 두둑한 성기 몸통이 위아래로 흔들리며 드로즈가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장면만이 베이지의 시야에 가득 메워졌다. 그녀는 그 위협적인 움직임에 차마 더 이상 손을 대지 못했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움직임이 멎자 열락에 젖은 속눈썹을 나릿하게 내리깔았다. 꺼멓게 탄 그의 눈동자가 제 앞에 옹송그린 여체에 가 닿았다.
제 다리 위에 가랑이를 벌리고 앉은 여체가 가뜩이나 작은 몸을 동그랗게 말고는 자지를 빨겠다고 자신의 고간에 얼굴을 들이민 모습이 썩…… 꼴렸다.
좀 전까지 베이지의 젖꼭지를 물고 빨았던 하이어드의 혀가 제 입 안을 한 차례 구르며 그의 볼이 불거지다 푹 꺼졌다.
살을 맞붙일 수밖에 없는 좁은 공간은 꽤 마음에 찼으나, 공간을 밝힐 불이 없는 것이 못내 언짢은 것이었다.
어느 정도 눈이 어둠에 적응되었다고 한들 빛이 존재하지 않으니 세세한 부분까지 담을 수가 없었다.
제 침에 흠뻑 젖어 허공에서 덜렁거리고 있을 젖꼭지를 보아야겠는데.
잠시 문을 열어젖힐까 고민하던 하이어드는 이내 생각을 접으며 손아귀에 힘을 줘 베이지의 머리를 가볍게 눌러내렸다.
문을 열었다가는 어린 짐승 새끼처럼 놀라 몸을 일으킬 게 뻔하니.
강해진 아귀힘은 독촉이었다. 베이지는 제가 손을 대지 않아도 달을 대로 달았는지 드로즈에 대가리를 쑤시듯 꺼떡이는 굵은 덩어리의 위압감에 잠시 머뭇거리다, 결심을 마쳤는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하얗고 고운 손가락 끝이 드로즈 속을 파고들고, 결이 거친 하이어드의 음모가 여린 살결을 갉았다. 손가락 등을 간질이는 그 적나라한 감촉에 베이지의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며 오그라졌다.
베이지의 손길이 제 생각보다 더디자, 힘을 빼고 그녀의 머리칼 속을 느른히 헤집고 있던 하이어드의 거대한 손아귀가 대번에 태도를 달리했다. 그녀의 머리칼에 느슨하게 얽혀 있던 그의 손가락이 구겨지더니 상아색 머리칼을 움켜쥐고는 잘게 젖혔다.
하이어드에게는 무르기 그지없는 아귀힘이었으나 베이지에게는 위협적으로만 느껴지는 힘이 가해지고, 놀란 그녀가 저도 모르게 생명줄을 붙잡듯 드로즈 끝자락을 꼭 쥐었다.
벗기라는 제 의도와 달리 소중하게 쥐는 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던 하이어드가 낮게 헛웃음을 흘리며 일렀다.
“꺼내야 빨지 않겠습니까.”
내가 내 좆도 까 줘야 하나.
타박보다는 유한 빛을 띠는 저음과 함께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손을 겹쳐 잡고 직접 제 살덩어리를 끌어내어 주었다.
“흡!”
제 눈앞을 스치는 커다란 덩어리에 베이지가 급히 숨을 들이키며 얼굴을 물리려 했으나, 알아챈 순간에는 이미 늦었다.
단숨에 퉁겨 나온 검붉은 덩어리는 베이지의 턱끝을 후려치고 허공으로 빳빳이 올라섰다. 이미 제가 싸재낀 선액으로 범벅이 된 살덩어리가 그녀의 턱 아래를 때리는 찰진 소리가 컴컴한 옷장 속을 울렸다. 마치 둔기에 얻어맞기라도 한 듯 웅대한 소리였다. 그녀의 턱 아래에 진하고 비릿한 물길이 남았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베이지의 눈동자가 그새 하이어드의 배꼽으로 한껏 올라붙은 길쭉한 덩어리를 바라보았다. 하필 어둠 속에서도 빛 한 줄기가 괴물 같은 그의 성기를 가로지르듯 드리워 있었다.
징그러우리만치 검붉게 익은 살덩어리에는 얼기설기 얽힌 핏줄이 두툴하게 뻗어 있었고, 그 표면은 말간 액으로 젖어 번들거리기까지 했다.
베이지의 눈길이 닿자, 흉기와도 같이 길고 두툼한 살덩어리가 보란 듯 굼틀거렸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저것이 내뿜는 열기가 입가까지 홧홧하게 전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일전에 보았을 때랑은 조금 달랐다.
분명 끝머리에 동그랗고 부드러운, 거무죽죽한 기둥의 색보다는 조금 옅고 불그스름한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성기의 첨단이 뾰족했다. 마치 살이 말려 있는 모양새였다.
살아있는 양 꺼떡대며 몸집을 부풀리는 양물을 눈앞에 두고, 베이지의 시선에 의문이 깃들자 그 깜찍한 꼴을 내려다보던 하이어드의 거친 손끝이 느리게 그녀의 두피를 문지르며 타일렀다.
“자지 껍질을 벗겨야 귀두를 빨지.”
무지근하게 가라앉아 옅은 쇳소리를 띠는 저음이 짧게 이르자, 베이지는 그제야 하이어드의 귀두를 감싸고 있는 것이 제가 일전에 만졌던 살 껍질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전 제가 손을 위아래로 옮길 때마다 함께 딸려 오던 그 뭉클한 살가죽 말이다.
복도에서 하이어드의 성기를 용두질했던 그날이 떠오르며 베이지의 발끝이 살살 말려들었다.
하지만 정체를 알았다고 해도 섣불리 손을 대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더 어려워진 걸지도 몰랐다. 흉측하고 낯선 생김새에 다짐이라도 하듯 잠시간 살기둥을 바라만 보고 있던 베이지가 마침내 손을 뻗었다.
뻗으려 했으나, 그 순간 지켜만 보고 있던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손을 낚아채며 일갈했다.
“입으로.”
생각지도 못한 하이어드의 말에 베이지의 얼굴이 불쾌함이 아닌 의문으로 구겨졌다.
입으로 어떻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 하이어드의 말에 머릿속에 장면을 덧그려 보던 베이지는 조금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가 시킨 바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녀의 목덜미가 엷붉게 달아올랐다.
이전이었다면 고개를 흔들었을 테지만 베이지는 왠지 오늘은 거부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이유는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그저…… 그러고 싶었다.
베이지의 망설임은 짧았다. 그녀의 손이 제 앞에 꼿꼿하게 선 살기둥의 뿌리를 향해 뻗어져 나갔다. 이 순간에도 제가 살아있음을 드러내듯 자지가 불규칙적으로 헐떡대고 있었기에 입을 대기 위해서는 밑동을 잡아야 했다.
뿌리 아래 굵은 심지가 설 때마다 사제복 상의 위로 올라붙은 비대한 살덩어리가 크게 고갯짓했고, 첨단에 거멓게 팬 요도구는 벌름대며 투명한 물을 뱉었다.
베이지의 손길이 내려앉으려던 순간, 살기둥의 뿌리가 뻐덕하게 튀며 그녀의 손바닥을 철썩 내리쳤다.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고간에 빳빳하게 서 있던 살덩어리가 살아 있기라도 한 양 제 손바닥을 척척히 때리고 떨어져 나가자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선액으로 젖어 미끈했던 덩어리가 제 손바닥에 남기고 간 차진 감촉에도 애써 의연한 체를 하며 다시금 제 손을 벗어난 기둥으로 손을 갖다 댔다.
맥박이 뛰는 거대한 덩어리가, 뜨거웠다.
“흣.”
베이지의 손이 시뻘겋게 데워진 자지 위로 와 닿자, 하이어드의 도드라진 울대가 울렁이며 그의 허벅지 근육이 크게 수축했다.
베이지는 기둥 위로 불거진 핏줄에서 둥둥 전해지는 맥에 강하게 쥐지도, 그렇다고 놓지도 못한 채 손끝을 떨었다.
역시 아직 제게는 무리가 아니었을까.
베이지가 망설이고 있는 순간에도 그녀의 손길에 허덕이며 제 구멍을 벌린 요도구는 끈적한 물을 뱉고 있었다. 새로 뱉어진 물이 고여 있던 선액을 밀어내자, 밀려난 액이 빠듯하게 팽창한 기둥을 타고내리더니 그 밑동을 쥔 그녀의 손바닥을 비집고 들었다.
베이지는 제 손바닥 한가운데를 비집고 들어와 가로질러 내리는 점도 있는 선액에 놀라 가만히 그 감촉을 느끼고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서둘러 고개를 숙였다. 차라리 이 거대한 덩어리를 입에 무는 게 나을 것만 같았다.
베이지가 고개를 숙이며,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이 열이 오를 대로 오른 하이어드의 허벅지 위를 쓸었다.
흣.
하이어드의 허벅지 근육이 불퉁하게 솟음과 동시에 그사이 길쭉하게 서 있던 성기가 고갯짓했다.
아무래도 이 작다란 몸에는 저를 자극하는 것밖에는 달려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서.”
물어 보십시오.
하이어드가 제 자지에 코를 갖다 대고 숨을 내뱉는 베이지의 머리채를 보다 더 단단히 감아쥐었다. 그의 턱이 불거지며 그녀의 머리를 눌러 내렸고.
베이지의 붉은 입술이 벌어지며 절절 끓고 있던 뭉툭한 첨단이 새빨갛고 촉촉한 입속으로 삼켜졌다.
“하.”
귀두를 감싸는 따뜻하고 물기 가득한 점막의 감촉에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짧은 숨이 끓었다. 좆뿌리부터 아랫배까지 자글자글하게 닳게 하는 끔찍한 쾌락에 그의 고개가 젖혀지며 새까만 머리칼이 옷장 벽에 비벼졌다.
베이지는 제 머리칼을 얽은 하이어드의 손아귀 힘이 보다 더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제 입속에 가득 들어찬 귀두에 집중했다. 이제 겨우 첨단만 삼켰을 뿐인데 턱이 더는 벌릴 수 없을 만큼 빠듯하리만치 벌어져 입 안의 것에 집중하기에도 버거웠다.
입으로, 껍질을…….
베이지는 제가 잘못해, 단순하게 머리를 다 삼켜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고 입을 조금 물렸다. 그 작은 행동조차 자극으로 받아들인 하이어드의 목울대가 꿈틀댔다.
비대한 귀두를 입에서 빼낸 베이지는 제 입을 오므려 다시 고개를 천천히 내렸다. 동그랗게 모은 입술을 귀두 위로 내리자, 입술 둘레에 얇은 살가죽이 닿더니 조금 징그러운 그 살이 제 입과 미끄러지며 벗겨지는 것이 느껴졌다.
계속해서 머리를 내려 입 안에 들일 수 있는 한계치까지 살덩어리를 담아내고 나자 입술 주위로 좀 전 성기에 돋아 있던 울퉁불퉁한 핏줄이 닿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어 무디고 미끈한 귀두가 혓바닥 위로 닿아왔다. 비린 물 냄새가 입속을 파고들었다.
껍질을 벗기고 귀두를 무는…….
하이어드의 귀두를 입에 물고 있다는 사실이 사방에서 전해지자 베이지의 귓바퀴가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껍질을 벗기고 귀두를 무는 데 성공했다는 기쁨도 잠시, 물기 그득한 척척한 베이지의 입이 번들거리는 귀두를 완전히 감싸자 그녀의 머리채를 쥐고 있던 하이어드의 손등에 핏줄이 돋았다.
씨발.
기대보다 더 거센 자극에 하이어드의 우람한 흉부가 부풀고 그의 엉덩이 근육이 꽉 죄었다.
“하…….”
열기를 식히려는 듯 비교적 찬기가 맴도는 옷장 벽에 머리를 비비던 하이어드가 느른하게 시선을 내리깔아 제 샅에 머리를 처박은 여체를 훑었다.
제 종아리에 익은 보지가 눌리는 것도 모르는지, 자신의 다리에 엎드리듯 작은 몸을 웅크린 채 있는 힘껏 입을 벌려 자지를 삼켜내는 행태에 동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다 삼킬 듯 발칙하게 굴어놓고 반절은커녕 좆머리만 겨우 받아먹는 꼴을 보고 서지 않는 쪽이 병신이지.
그때 하이어드의 귀두를 가만히 물고, 그다음 행위를 어떻게 이어 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베이지가 끝내 그에게 답을 구하듯 고개를 들어 올리자 그 말간 얼굴에 그가 불명확한 욕지거리를 뇌까리며 조막만 한 머리통을 강하게 눌러 버렸다.
“욱!”
갑작스레 목구멍 끝까지 처박히는 덩어리에 베이지의 목구멍이 확 조여들었다.
처박혔다고 해봤자 좁은 입안에 들어찬 건 귀두보다 조금 더 깊을 뿐 기둥의 반절도 채 되지 않는 길이었으나, 쫀득한 목구멍 점막이 귀두를 휘감아 당기자 하이어드의 각진 턱 아래에서 걸걸한 신음이 들끓었다.
치미는 구역질에 베이지가 본능적으로 온몸을 버둥거리며 하이어드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녀가 급히 숨을 꼴딱일수록 그에게는 더 거센 자극을 퍼 날라 줄 뿐이었다. 그녀의 목구멍이 거칠게 꿈틀댈 때마다 잔뜩 달아 있던 귀두는 졸깃한 점막에 씹혀 대가리를 발발 떨었고, 제 머리를 더 욱여넣으려 안달이었다.
베이지의 뭉클하고 촉촉한 혀가 버둥대느냐고 딱딱한 좆가죽을 밀어내듯 성기 위로 돋은 핏줄 구석구석을 쑤셔대는 것조차 하이어드에게 미칠 듯한 쾌감을 이끌어내 주었다.
“으, 욱……!”
목젖을 짓누르는 커다란 성기의 부피감에 헛구역질을 반복하던 베이지는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하이어드의 몸을 밀어내려 그의 복부를 있는 힘껏 눌러댔다. 하필 좆 뿌리가 이어진 판판한 하복부 위라, 그에게 쾌락을 더해 줄 뿐이었지만.
처음 해 보는 이가 잘할 리 없었다. 억지로 긴 덩어리를 목구멍까지 밀어 넣자 정신이 나가버린 베이지의 이가 핏줄이 두툴하게 돋은 기둥 위를 긁었으나, 하이어드는 그조차 자극으로 받아들이며 자지가 들들 끓는 듯한 쾌감에 집중했다. 인내심 따위는 진즉 바닥난 지 오래였다.
베이지의 머리통을 움켜쥔 하이어드의 거대한 손바닥이 제 좆을 머금은 그녀의 머리를 좌우로 살살 흔들더니 이내 길쭉한 덩어리를 확 빼냈다.
“크흡!”
순식간에 목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공기에 베이지가 크게 숨을 헐떡이며 상체를 들썩였다.
“컥, 흐, 으…….”
숨을 들이마시려는 베이지의 입이 벌어지며 입 안에 들어찬 덩어리 탓에 채 삼켜내지 못해 그득히 고여 있던 타액이 덩어리째 흘러내렸다. 기포가 바글거리는 끈적한 침이 붉은 입술 아래로 길게 늘어지는 꼴을 바라보던 하이어드가 목을 긁었다.
아…… 씨발.
험악한 손길이 순식간에 베이지의 허리춤을 낚아채더니 제 다리에 엎어져 있던 작은 몸을 뒤집어 엎었다.
베이지가 한순간에 뒤바뀐 자세를 채 인식하기도 전 구렁이 같은 비대한 살덩어리가 그녀의 아래를 가르고 단숨에 처박혔다.
“아!”
예고 없이 배 속 깊은 곳까지 꽂히듯 삽입된 길고 두꺼운 성기의 부피감에 베이지의 허리가 반사적으로 꺾이며 그녀가 밭은 숨을 내쉬었다.
하이어드가 손가락 하나 쑤셔주지 않고 삽입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억지로 벌어진 구멍이 홧홧했고, 마치 몸이 달궈진 쇠꼬챙이에 꽂혀 있는 것만 같았다.
베이지가 제 아랫배를 더부룩하게 메운 성기에 적응하려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와중에도 그녀의 몸을 두 갈래로 쪼개듯 들이닥친 거대한 덩어리는 조그마한 뱃속을 후벼파며 제 몸을 더 깊숙이 들이밀려 안달이었다.
“하…… 흡.”
베이지가 갑작스레 늘어난 구멍을 달래기 위해 본능적으로 아래를 조였다 풀었다 반복하자 녹녹한 내벽에 휘감겨 있던 좆대가리가 꺼떡이며 쾌락에 몸부림쳤다.
몸통을 이리저리 씹어대는 눅진하고 미끈한 질의 감촉에 하이어드의 좆뿌리가 튀고 그의 잇새에서 성마른 숨이 토해졌다.
“이렇게 끊어 먹으려 들면.”
일순 질 속을 그득히 메우고 있던 살덩어리가 죽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퍽.
“응!”
단번에 제 대가리를 들이받았다. 베이지의 입에서 툭 터지듯 미처 삼키지 못한 신음이 샜고, 거칠고 두툼한 손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금방, 싸지 않겠습니까.”
힘 풀어.
메마른 숨이 베이지의 귀 바로 옆에서 쏟아졌다.
옷장 틈새로 드리운 빛이 베이지의 입을 틀어막은 커다란 손바닥을 가로질렀고, 혈류가 몰려 검붉게 물든 손등 위로 더덕더덕 올라붙은 핏줄들이 꿈틀대는 모양을 선명히 조명했다.
좁아든 질을 억지로 꿰뚫은 덩어리는 가만히 맥동하며 제 존재를 상기시켜주듯 몇 차례 껄떡였다.
베이지는 밭은 숨을 내쉬며 제 아래 빠듯하게 들어찬 딱딱한 토막에 적응하려 애썼다. 하지만 그조차 그녀의 입을 틀어막은 손바닥 탓에 여의치 않았다.
베이지가 살기 위해 호흡하며 그 반동으로 입술을 우물거리자, 제 손바닥을 문지르는 뭉클대는 입술의 감촉에 그녀의 구멍 속에 박혀 있던 성기가 더 뻑뻑하게 부풀었다.
발기할 대로 발기한 덩어리가 또 한 번 빠져나가는가 싶더니, 녹녹한 질을 때리듯 틀어박혔다.
“읍!”
하이어드의 손에 가로막혀 억눌린 신음이 찌르듯 뱉어지고, 제 샅을 가르고 드는 성기의 양감을 견디지 못한 그녀의 허리가 크게 꺾였다.
하.
“봐 주려고 해도.”
베이지가 놀라 아래를 조일 때마다 야들거리는 내벽이 제 성기를 꽉꽉 물어대자, 한계에 다다라 있던 하이어드의 치골이 얕게 경련했다.
얇다란 허리를 잡아챈 하이어드가 다시금 제 성기를 빼내더니 그대로 제 좆기둥을 처박기 시작했다.
“읍! 흐, 으!”
턱, 턱, 턱. 하이어드의 고간과 베이지의 엉덩이가 맞부딪히는 마른 살소리가 달궈진 옷장을 울렸다. 그가 제 성기를 삽입질할 때마다 흔들리는 마른 손길이 그녀의 얼굴을 비비듯 훑었다.
베이지는 제 입을 틀어막은 메마른 손바닥이 자신의 입가를 긁어내는 것 따위는 신경 쓰지 못했다. 배 속으로 흉기 같은 딱딱한 도막이 제 몸을 턱턱 치대자 아랫배 전체에서 거대한 진동이 이는 기분이었다.
“으, 흡, 흐!”
하이어드의 성기가 아직은 조금 말라 있는 질을 억지로 후벼파 들어갈 때마다 살을 때리기라도 하듯 철썩이는 살소리가 좁은 옷장을 메웠고, 억눌린 베이지의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하이어드가 허릿짓할 때마다 옷장 바닥에 꿇린 베이지의 무릎이 죽죽 미끄러졌다. 그녀의 무릎 아래 깔린 슬립 탓이었다. 옷장 벽을 짚은 그녀의 손 또한 들이 받치는 힘을 견디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였다.
뒤에서 아래를 찢을 듯 때려 박히는 덩어리와 벌어지는 무릎, 그리고 앞으로 쏠리는 몸까지. 베이지의 얕은 체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벅찬 것들이었다. 그래도 버티고자 안간힘을 쓰는 그녀의 온몸에는 바싹 힘이 들어가 있었다.
“읍, 흐!”
턱턱 좆뿌리에 엉클어진 새까만 음모가 하얀 엉덩잇살 위로 강하게 맞부딪힐 때마다 베이지가 앞으로 밀려나가지 않기 위해 힘을 주었고, 그녀의 아래에 힘이 들어갈 때마다 눅눅한 질이 물을 찍 뱉으며 안에 들어찬 기둥을 사정없이 조였다.
습하고 뜨거운 내벽이 제 좆물을 짜내듯 비틀어대자 치미는 성감에 베이지의 머리맡에서 낮고 거친 숨이 쏟아졌다.
턱, 턱, 턱.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사정 따위는 봐주지 않고 제 허리를 치대자 옷장을 짚고 있던 그녀의 손은 그의 삽입질 몇 번을 채 버티지 못했다. 하얗게 뼈마디가 샐 정도로 나무로 된 옷장을 짚고 있던 그녀의 손이 끝내 뻐덕거리며 벽을 미끄러져 내렸다.
“흐, 읍, 으, 으읍……!”
앞으로 밀려 나가는 몸을 손으로 받칠 수가 없게 되자 금방이라도 옷장 벽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머리가 부딪힐 것만 같았다. 베이지는 다급히 소리들을 내뱉으며 하이어드에게 제 뜻을 전달하기 위해 팔을 버둥거렸다.
하나 그새 질액으로 젖어버린 제 살덩어리를 푹푹 꽂아대는 하이어드의 추삽질은 멎지를 않았다.
하이어드의 침으로 범벅이 된 베이지의 유방이 허공에서 덜렁거리고 벽에 머리가 박을까 불안함을 느끼는 와중에도 착실히 아래에서 올라오는 쾌감에 붉은 유두 또한 옹골지게 뭉쳐 있었다.
“으! 흡, 응!”
어느새 마른 살소리는 쩔벅거리는 물소리로 변해 있었고, 흉측한 성기는 흥건하게 젖은 질에 제 몸통을 삽입질하며 베이지에게 발끝이 말려드는 저릿저릿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다리가 발발 떨리는 뭉근한 쾌감이 몸을 타고 오르고 이내 베이지의 몸에 힘이 완전히 빠져버린 순간이었다.
퍽.
“으!”
다시 한번 깊숙이 때려 박힌 성기에 베이지의 질이 요동치며 그녀의 몸이 앞으로 크게 밀려나갔다. 힘이 완전히 풀린 그녀의 무릎이 꺾이고, 굵은 팔뚝이 그녀의 허리춤을 받쳐 들었다. 축 늘어진 오밀조밀한 발끝이 맞이한 절정 탓에 살짝 떨렸다.
그리고 몸이 축 늘어지며 베이지의 머리가 벽에 부딪히려던 순간 두툼한 손바닥이 작은 머리통을 감쌌다.
베이지는 제 머리맡에 닿는 뜨거운 온기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올렸고, 불시에 베이지의 고개가 들려 올라가며 그 자리를 받치고 있던 하이어드의 손바닥에 부드러운 그녀의 속눈썹이 간질이듯 스쳐 닿았다.
일순 손바닥을 가로지른 속눈썹의 간질거리는 감촉에 하이어드의 아래가 더 뻣뻣하게 섰다. 시커멓게 가라앉은 동공이 힘 빠진 여체를 느릿하게 훑어내렸다.
“……요부가 따로 없습니다.”
거뭇한 저음과 함께 하이어드의 좆기둥이 느리게 구멍을 빠져나가더니 퍽, 단숨에 내리꽂혔다.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이 갇힌 옷장 모서리가 크게 흔들렸다.
“읍!”
베이지가 힘겨운 신음을 내지르든 말든, 또 한 번 추삽질은 시작되었다. 하이어드의 허리가 흔들림에 따라 그저 덜렁거리고 있을 뿐인데도 숨이 가빴다.
크게 옷장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베이지의 아래에서 울리는 쩔걱거리는 물소리를 잡아먹었다. 한번 고정이 풀린 옷장은 하이어드가 허릿짓하며 힘을 가할 때마다 쿵쿵 흔들렸다.
흐, 흡.
베이지는 더는 옷장이 흔들리고, 다른 이에게 들킬 수 있다는 생각 따위를 하지 못했다. 그저 바로 뒤에서 밀어붙이는 힘을 견디기에 급급했다.
얕게 숨을 몰아쉬던 베이지가 견디다 못해 늘어져 있던 손을 들어 올렸다. 베이지는 제 입을 막은 하이어드의 팔을 주먹으로 열심히 두드려댔다. 제 주먹이 솜방망이 같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베이지는 힘이 다 빠지도록 두드려도 통할 생각을 않자 직접 그의 손을 떼 내고자 했다.
얇은 손가락이 제 것에 비해 한없이 두꺼운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벗겨내듯, 한 손가락에 달라붙어 꽉 쥐어 당겼다.
“으, 읍……!”
제 성기를 받아내며 딴짓거리를 하는 것은 썩 마음에 차지 않았으나, 고작 한 손가락을 버겁도록 쥐고 바르작대는 하얀 손가락이 꽤 볼만 했는지 하이어드가 검지와 중지를 벌려 입만을 겨우 틔워주었다.
“흐읍!”
숨 쉴 구멍을 얻은 베이지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더니 하이어드의 손을 꽉 그러쥔 채 더듬더듬 말을 내뱉었다.
“사, 사제님. 으! 조, 흣! 조금만 천천히…….”
베이지의 애원에 하이어드의 눈썹이 구겨지며 그의 이마에 맺혀 있던 땀방울이 그녀의 맨어깨 위로 툭 떨어졌다. 그 뜨겁고도 차가운 감촉에 그녀의 얇다란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이름.”
“흐, 읏, 아!”
벌겋게 익은 귀두가 속살을 헤집어 퍼 올린 애액으로 푹 젖은 음부에서는 습한 물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기가 오갈 때마다 쩌걱거리며 비벼지던 애액은 어느새 허연 거품이 져 붉게 물든 음부 위를 더럽게 뒤덮고 있었다.
“이름으로 불러 보십시오.”
베이지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면서도 하이어드는 삽입질을 멈추지 않았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와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은 채 제 씨를 남기려는 종마처럼 삽입질했다. 봉긋하게 벌어진 엉덩이 사이로 허연 거품이 덕지덕지 붙은 거뭇한 성기가 왕복하고, 그 옆으로 자리한 그의 허벅지 근육이 꿈틀댔다.
“하, 하이어드…… 천, 흣! 천천히…….”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제게 무슨 요구를 하는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그저 그가 시키는 대로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아래에서 턱턱 올라오는 쾌감이 아랫배를 긁고 발끝이 저릿하게 말려들도록 만들었다. 제대로 된 사고가 어려웠다.
사위가 어둠에 틀어막힌 옷장 속, 아래에 깔려 제 이름을 부르짖으며 헐떡이는 여자의 목소리에 척척한 습지에 틀어박혀 있던 하이어드의 좆기둥이 일순 껄떡대며 물을 쌌다.
씨발. 이런 건 또 시키는 대로 잘 했다. 아주 저를 갖고 논다.
육욕에 절어버린 검은 눈동자가 아래에 깔린 몸을 잡아먹을 듯 좁은 질을 제 양물로 쑤셔댔다.
“흐! 으응! 아!”
코끝을 적신 달큰한 향내에 코가 절어버릴 지경이었다.
환기가 되지 않는 옷장에 고인 베이지의 진한 단내가 하이어드의 이성을 들쑤셨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굵은 목에서 성대를 긁듯 긴 침음이 샜다.
하이어드의 허릿짓이 빨라질수록 그의 손아귀에 쥐인 베이지의 작은 턱이 벌어지려 했다. 가쁘게 숨을 할딱대던 그녀가 일순 저릿하게 아랫배를 타고 오르는 감각에 눈을 꽉 감으며 몸에 바짝 힘을 준 순간이었다.
“아!”
질액으로 흠뻑 젖어 있던 질이 바르르 경련하고 그 안에 먹혀 있던 굵은 살덩어리가 거세게 주물러졌다. 축축한 내벽이 성기가 빠져나갈 수 없도록 구멍을 좁히며 좆물을 쥐어짜듯 요동쳤다.
흣.
그와 동시에 뻐덕하게 발기해 있던 성기가 꿈틀대며 꺼먼 요도구가 벌어졌고, 구멍이 벌름거리며 불알 속에 고여 있던 정액을 쏟아부었다. 방뇨와도 같은 백탁액이 질 속으로 들어차고, 씨물을 뱉어내는 불알이 간헐적으로 수축하며 물을 죽죽 짜냈다.
정사는 평소보다 짧았다. 먼저 끊어낸 이는 하이어드였다. 베이지가 흘려댄 보짓물로 불어버린 커다란 손바닥으로 옷장 문을 가볍게 밀어 젖힌 그는 열기에 묵직하게 젖은 몸을 일으켰다.
하이어드가 옷장 밖으로 나서며 좁은 공간 속에 드글거리고 있던 뜨거운 기운이 바깥으로 훅 빠져나왔다. 덩달아 옷장 속으로 바깥 공기가 몰아닥치듯 새어 들어오자, 그 확연한 온도차에 베이지의 데워진 살갗 위로 옅은 소름이 일었다.
포근한 융단 위로 발을 디딘 하이어드가 시뻘겋게 익은 목덜미를 느릿하게 돌리자 채 바지 속으로 담아 넣지 않은 길쭉한 살덩어리가 뻣뻣하게 선 채 제 대가리를 꺼떡였다. 그는 두어 번 좆물을 빼냈음에도 발기가 가라앉지 않는 제 물건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이어드는 투박한 손길로 흉흉하게 발기한 제 자지를 바지 속으로 욱여넣고는 뒤돌아섰다. 새까만 시선은 온 힘이 다 빠져 옷장 밖으로 걸어 나오지도 못하고 널브러져 있는 베이지에게로 뚝 떨어졌다.
그에 응답하듯 정사의 여운에 푹 절어 여느 때보다 부연 빛을 띠는 회갈색 눈동자가 하이어드를 올려다봤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눈동자 색과 같은 엷은 황갈색 머리칼이 땀으로 젖어 바싹 눌어붙은 그녀의 동그란 이마에 눈을 두었다. 뻐적뻐적 땀방울이 맺히고 흐르며 남긴 자국을 훑어 내리던 그는 찬찬히 시선을 미끄러뜨렸다.
깨끗한 상앗빛이 감도는 옷장 위에 몸을 늘어뜨린 하얗고 작다란 여체는 사내가 남긴 흔적으로 가득했다. 베이는 옷장 속으로 들어서기 전과 달리 고아한 귀족 영애의 차림새는 모조리 벗어 던진 채였다.
베이지가 걸친 네글리제는 잠옷의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 천이 밑가슴까지 죽 내려간 탓에 달랑거리는 젖가슴 두 덩어리를 온전히 내보이고 있었고, 배꼽 부근까지 끌어올려진 밑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글리제는 그녀의 배꼽 주위만을 간신히 감싸고 있을 뿐이었다.
하이어드의 눈길이 소복한 베이지의 유방 위로 가 닿았다.
격한 삽입질 탓에 옷걸이에 걸려 있던 슬립과 외투 몇 개가 베이지의 하야스레한 몸 위로 너저분하게 쏟아져 내려 있었다. 그중 슬립 하나가 본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뭉쳐진 채 그녀의 유방 위로 얹어져 있었다.
엷붉은 옷자락은 새하얀 유방 한 덩어리를 완전히 감싸 덮었으나, 나머지 한 덩어리에는 자락의 끄트머리만을 내어 주었다. 얇은 끝자락은 한 덩어리를 가로지르듯 놓여, 도독하게 솟은 젖꼭지를 위태로이 가리고 있었다.
베이지가 숨을 내쉴 때마다 봉긋한 젖무덤 위로 맺힌 젖꼭지가 제 위로 드리운 천을 밀어내며 바깥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다시 천 속으로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 뜻이 적나라한 하이어드의 시선이 제 젖꼭지 위를 배회하는 것을 베이지 역시 알아차린 건지, 정사가 끝났음에도 그녀의 유두는 옹골차게 뭉쳐 주름이 빳빳하게 서 있었다.
그 도색적인 광경 아래로는 야트막하게 팬 배꼽과 보다 더 원색적인 정경이 자리했다.
베이지의 체모는 옅은 색소로 인해 빛바랜 노란색을 띠고 있었으나, 빛 한 점 반사하지 않을 듯 새까만 음모만은 예외에 속했다. 다른 곳들보다 숱도 무성한 편인 그녀의 음모는 치구 위로 도톰히 솟아 있었고, 그 다복한 음모 위로는 채 닦아내지 못해 덩이진 하이어드의 정액이 덕지덕지 엉겨 붙어 있었다.
고부라진 까만 음모는 꾸덕한 백탁액으로 가닥가닥 뭉쳐 있었는데, 이 또한 베이지가 숨을 내쉴 때마다 가닥 사이가 벌어지며 정액이 얇게 늘어나 그 속이 비쳤다.
지저분하게까지 보이는 이 모든 광경에 하이어드의 사제복 하의에 갇힌 그의 불알이 딴딴하게 올라붙었다.
그때 축 늘어진 여체를 잠자코 내려다보던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앞으로 다가오더니 제 허리를 굽혔다.
의아함을 품은 베이지의 눈동자가 하이어드에게 닿고, 그는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희고 고운 얼굴 위로 달라붙은 흙색 머리칼을 그녀의 귀 뒤로 쓸어 넘겼다. 찬 바깥 공기에 식었을 법도 한데, 거칠한 손바닥은 여전히 뜨거운 열을 안고 있었다. 그의 손이 옷장으로 새어 들어온 바람에 식어버린 그녀의 귓불을 다시금 데웠다.
베이지가 고즈넉이 하이어드의 손길을 받아들이며 숨을 고르는 동안, 그녀의 흉부가 오르락내리락 대는 꼴을 내려다보던 그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벗어나고 싶다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까.”
생각지도 못한 하이어드의 말에 베이지의 심장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그의 입에서 이러한 말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한 데다가, 제 마음을 어찌 알아차렸는지에 대해 놀란 것이었다. 잠시 입술을 감쳐물었던 그녀는 이내 수긍했다.
바로 어제, 자신이 아버지 앞에서 나약하게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으니 알 수밖에 없을 터였다. 저만 몰랐던 것뿐이지, 하이어드 또한 소문을 들을 귀가 있으니 제 처지를 이미 알고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다지 보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베이지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에요.”
평소였다면 절대 입에 담지 않을 말이자, 다른 이에게 처음으로 털어놓는 말이었다. 물어오는 이도 없었을뿐더러 털어놓을 만한 사람도 지금껏 베이지에게는 없었다.
베이지 또한 제가 어째서 이런 말을 하이어드에게 털어놓는지 알지 못했다.
어쩌면 며칠째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한 탓에 쉬이 말을 흘리고 있는 걸 수도 있었다.
하고 싶지 않다 못해, 만일을 위해 집안의 범법 행위와 관련된 증거 자료들을 모으고 있다는 말 따위는 하지 못하겠지만, 이 정도쯤은 제게 허락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하고 싶은 일은.”
그때 둔중한 목소리가 베이지의 위로 내려앉았다. 말끝이 내려가 있기는 하나 질문의 빛을 띤 문장이었다.
하이어드의 질문에 답하며 저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았던 베이지가 다시금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이런 말을 내뱉는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미약한 기대가 무색하게 베이지가 마주한 시선은 더없이 무감했다. 거친 선으로 이루어진 하이어드의 얼굴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묵묵하고 서느런 인상만을 주었다.
흥미가 크게 깃든 목소리도 아니었으나,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제게 이런 것을 물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움을 느꼈다. 그간 그녀가 보아왔던 그가 체면치레를 하고자 이런 물음을 던지는 이도 아니었으니까.
베이지는 말없이 반듯한 하이어드의 얼굴을 훑어내렸다. 무채색 눈동자에는 자신만큼은 아니었으나 아직 미약한 열기가 깃들어 있었고, 오뚝하게 솟은 콧대와 일자로 굳게 다물린 입매는 꽤 냉담해 보였다.
그때 무엇이 그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하이어드의 가지런한 눈썹이 구겨졌다. 눈썹뼈가 불거지는 것 하나로 순식간에 살이 엘 듯한 위압감을 내보이는 얼굴이었으나 오늘만큼은 베이지에게는 그렇게 위협적으로 와 닿지 않았다. 무섭기는 했으나, 두렵지는 않았다.
베이지의 붉고 도톰한 입술이 달싹였다.
“평범하게 사는 거요.”
베이지는 제 가슴 위를 반쯤 덮은 옷자락을 살짝 쥐어 당겨 조금 드러난 자신의 젖꼭지를 가리며 짤막하게 답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신이 점차 또렷해졌기 때문이었다. 하이어드의 앞에서 맨몸을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는 사실에 뒤늦게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뜻 모를 두루뭉술한 답에 하이어드의 눈썹이 더 짙게 구겨지고, 베이지는 잔잔히 말을 이었다.
“정당하게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 돈을 사랑하는 가족들과 나누고 사는…… 그런 삶이요.”
허상과도 같은 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스논 공작가의 후계로서의 삶을 강요당하며 살아왔던 베이지가 유일하게 덧그려 보고, 꿈꿔 보았던 것이었다.
집안이 저지른 참혹한 행위들을 고발하여 그들이 벌 받도록 하는 일은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어머니가 염원해 온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녀에게 세뇌처럼 박힌 것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그중 가장 먼저 머리에 들어온 것이라 그게 옳다고 여기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일곱이었던가, 베이지는 처음 마차를 타고 수도 외곽으로 나서던 중 보았던 광경을 지금까지도 잊지 못했다. 산길을 올라가기 전 마부가 잠시 마차를 정비해야 한다며 멈춰 세웠던 때였다.
가파른 산턱에는 작은 오두막집 하나가 지어져 있었다. 오두막의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폴폴 솟았고, 작은 마당에서는 제 또래처럼 보이는 남자아이 둘이 서로를 쫓아가며 뛰놀고 있었다. 마당에는 듣는 이가 푸스스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활기찬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그러다 형으로 보이는 아이가 동생의 팔을 쥐며 두 아이가 흙바닥에 나동그라졌다. 동생이 꼬물꼬물 몸을 일으키더니 피가 비친 제 손을 보고 울음을 터뜨리고, 소란스러운 소리에 오두막 안에서 두 사람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가만히 아이들의 말을 듣던 어머니가 나무 주걱으로 형제의 엉덩이를 가볍게 때렸다. 잠시 훈계를 늘어놓는 듯하던 어머니가 다시 오두막으로 사라지고, 아이들 둘이 마당에 무릎을 꿇고 손을 들어 벌을 섰다.
형제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흐르다, 형으로 보이는 아이가 먼저 제가 넘어뜨린 동생의 눈물을 닦아주더니 서로 손을 맞잡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리고는 다시 벌을 섰다.
잠시 후 또 밖으로 나온 어머니가 둘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형제가 어머니의 품에 매달리듯 안겨 머리를 부비적댔다.
그들은 그렇게 함께 따스한 집으로 사라졌다.
베이지는 그날 처음으로 다른 가족의 형태를 보았다. 그녀는 그 포근하고 온화한 분위기를 처음 마주했던 때의 충격을 잊지 못했다. 그전까지는 다들 저와 같이 사는 줄로만 알았으니까.
“아이들이 잘못하면 꾸중하고, 가끔 벌을 주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쉽게 용서해 주고…… 별다른 일이 없어도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그런 집에서 살고 싶었어요.”
베이지의 입술이 그날 그 장면을 되짚어보듯 더듬더듬 움직였다.
베이지가 자란 곳은 자식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훈육을 한다며 다른 이들을 죽이거나 죽이는 것을 보여 주고, 공식적인 자리가 아닌 이상 웃음을 내보이지 않아야 하며, 살붙이를 대하는 따스함 하나가 없는 집이었다.
처음 그 장면을 눈에 담고 며칠간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했던 듯도 했다. 하지만 잠시였다. 그 평범한 집과 같이 살지 못하고 홍등가를 누비는 이들이 베이지의 눈앞에 펼쳐졌기에 그녀는 사치스러운 생각을 접었다.
접었음에도 마음 한 켠에 늘상 놓여 있기는 했지만, 그런 생각이 떠오를 때면 베이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일을 처리할 때면 무고한 이들을 빼돌려 주려 애쓰고 있기는 하나, 자의든 타의든 자신도 범죄에 동조한 것이었다. 제가 고발하여 집안이 스러지고 나면 저 또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정말이지 허황된 꿈이 아닐 수 없었다.
“평범한 삶이라.”
굵직하고 탁한 저음이 베이지의 상념을 갈랐다. 더듬듯 이어지는 베이지의 말에 한마디도 보태지 않은 채 가만히 그녀의 말을 듣고 있던 하이어드가 끝말을 따라 하듯 내뱉은 말이었다.
베이지는 대단한 흥미가 없어 보이는 하이어드의 미온한 반응에 상처받지 않았다.
영 내켜 하지 않거나, 우습다고 생각하시는 거겠지.
평범한 삶이라니, 야망이 있어 공작가의 일을 돕고 있는 하이어드에게는 제 생각이 충분히 우스울 수 있었다.
베이지가 홀로 입가에 싱거운 웃음을 띠던 순간이었다. 별안간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오금 아래로 제 팔을 밀어넣더니, 그녀를 제 품으로 안아들었다.
“흣.”
갑작스럽게 몸이 허공으로 들려 올라가자 겁을 집어먹은 베이지가 몸을 말며 흐트러진 숨소리를 흘렸다. 그 작은 숨소리에 걸음을 옮기려던 하이어드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곱게 제 품에 안긴 베이지를 내려다보던 하이어드가 건조한 목소리를 쏟아냈다.
“일부러 그러는 건가?”
“네?”
“좆 꼴리게…….”
베이지는 제 종아리를 움켜쥔 하이어드의 손아귀 힘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말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번에는 그녀의 시선에 응답해 주지 않았다.
하이어드는 앞을 바라보며 덧붙여 주었다.
“보지에 물난리가 나서는…….”
나도 더 쑤시고 싶기는 한데.
베이지의 무릎 아래를 받치고 있던 하이어드의 팔이 옮겨가며 까끌한 사제복 천이 그녀의 살갗을 긁었고.
“아.”
마디 굵은 손가락이 정액에 절어 아직까지 녹녹한 보지로 단숨에 쑤셔박혔다. 예고 없는 삽입에 베이지의 아랫구멍에 바싹 힘이 들어가며 그의 손가락을 꽉 죄었다. 그가 싸재낀 좆물과 그녀가 흘린 질액으로 범벅이 된 질구가 벌름거리며 그 반동으로 안에 고여 있던 것을 뻐끔 내뱉었다. 뿌옇게 뒤섞인 점도 있는 액체가 허공으로 길쭉하게 늘어나다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제 엄지의 절반 즈음을 구멍에 집어넣고 쩌걱거리는 소리가 날 때까지 얕게 쑤시던 하이어드가 그새 정액과 애액으로 범벅이 된 제 손가락을 빼냈다. 그는 굳은살 위로 얇고 미끌한 막이 덧씌워졌음에도 조금 거칠한 엄지를 눅눅한 음순 사이로 죽 밀어올리더니, 이내 껍질을 벗고 통통하게 선 음핵을 가볍게 짓눌러 비볐다. 찔걱거리는 얕은 물소리가 울렸다.
“아! 흐, 읏.”
고통과도 같은 거대한 쾌감이 몰아닥치자, 베이지가 크게 숨을 집어삼키며 몸을 뒤틀었다.
하이어드는 몸을 웅크리는 베이지를 보지도 않고 짧게 일렀다.
“조찬 자리에는 드셔야 할 게 아닙니까.”
쾌감을 피하려 몸을 꼬던 베이지가 하이어드의 말에 모든 움직임을 멈추었다. 찬물을 맞은 듯 정신이 깼다.
잊고 있었다. 메리엔이 사라졌다고 해서 예정되어 있던 조찬이 취소되는 것은 아니었다. 타데오의 심기가 단단히 뒤틀렸을 이 시점에서 저까지 조찬 자리에 늦으면 그가 무슨 일을 벌일지 베이지는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던 베이지의 얼굴이 차게 식었다.
타데오와 함께 조찬 자리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다시금 두려움이 치민 것이었다. 메리엔이 도망갔다 한들 어제 머릿속에 박혔던 그 끔찍한 기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하이어드가 그런 베이지의 생각을 꿰뚫어보기라도 한 양 예사로이 말을 더했다.
“저도 조찬에 들 겁니다.”
조찬에?
아래로 푹 죽어 있던 베이지의 눈이 대번에 위를 향했다. 그러고 보니 하이어드가 왜 저택에 있는 것인지를 묻지 못했던 것이 떠올랐다. 물어도 되는 종류의 것인지 그녀가 잠시 고민하던 차, 그것을 읽어낸 그가 대답하는 것이 빨랐다.
“공작저에서 자리를 한 번 더 가졌습니다.”
하이어드의 말은 거기서 끊겼다. 하지만 베이지는 어렵지 않게 뒷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다른 귀족의 저택에서 모임을 가지다 자리를 옮겨 공작저로 오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손님으로 하루를 묵었으니 조찬에도 초대되었다는 뜻이구나.
베이지는 금세 수긍하며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궁금증을 해소하고 나니 새삼 하이어드의 품에 안겨 있다는 사실에 창피스러움이 느껴진 탓이었다. 그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받쳐주는 것 하나 없는 도도록한 유방이 흔들렸고, 그가 얼굴을 묻고 있었던 젖가슴에서 아직 습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잠시 음란했던 정사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고 가슴께가 간지러워지고 유두가 서는 것 같아 베이지는 급히 몸을 움츠렸다. 제 가슴을 덮은 슬립 뭉치가 젖꼭지를 가릴 수 있도록.
하지만 베이지가 숨기려 들수록 하이어드에게는 친히 내보여주는 꼴밖에 더 되지 않았다.
하이어드는 고개를 들 생각을 않는 베이지를 흘긋 내려다보았다.
정사 후에는 이리 표정을 읽어내기가 쉬운데.
어느새 드레스룸으로 통하는 문을 밀어젖힌 하이어드는 그곳에 베이지를 내려 주며 그녀가 감추려던 사실을 꼬집었다. 베이지가 땅으로 발을 디디며, 그녀의 가슴을 가리고 있던 천 뭉치가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빨아주고 싶어도 못 빨아주는데.”
노건하고 둔중한 목소리와 함께 하이어드의 메마른 손바닥이 바짝 서버린 베이지의 젖꼭지를 보란 듯 쓸어내렸다. 구들구들한 젖꼭지가 억세고 뜨거운 손바닥에 탄력 있게 긁히며 허공에서 한 차례 퉁기고는 제자리로 돌아왔다.
“시간이 없으니 옷만 갈아입고 나오십시오.”
하이어드는 더 딱딱하게 뭉친 젖꼭지에서 눈길을 떼어 내고는 베이지의 뒤로 손을 뻗었다. 그는 다급한 정사의 시작으로 인해 미처 완전히 풀어내지 못했던 단추 하나를 툭 풀어내었다. 굵다란 손가락이 그에 어울리지 않는 자그마하고 뻑뻑한 단추를 툭, 툭 풀어낼 때마다 베이지의 판판한 배 부근을 가리고 있던 네글리제가 조금씩 아래로 흘러내렸다.
베이지는 네글리제가 아랫배를 타고 흘러내리는 감촉을 느끼고는 서둘러 옷자락을 붙잡았다. 이미 침이 말라붙은 허연 가슴을 다 드러내고 있는데도 왜인지 하이어드의 앞에서 옷을 벗는 느낌이 들어 낯이 달아올랐다.
“제가, 제가 할게요.”
당황하는 바람에 더듬거리며 말을 뱉은 베이지는 서둘러 드레스룸 안에 딸린 방으로 뛰쳐 들어가 문을 닫아 버렸다. 열에 달궈져 있던 작은 발이 대리석으로 된 바닥을 찰팍거리며 밟고 뛰어가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홀로 남겨진 채 굳게 닫힌 문을 바라보던 하이어드는 말없이 벽에 기대었다.
힘도 없더니.
좀 전 베이지가 뛰어가며 희멀건 나신 위로 가늘게 흔들리던 상아색 머리칼이 하이어드의 망막에 진하게 맺혔다.
깨끗한 차림으로 환복한 후 정찬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베이지는 두어 번을 멈추어 섰다. 메리엔이 무사히 도망갔다고 해도 타데오가 그에 응하여 무슨 일을 더 저지를지 그녀로서는 가히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두려웠다.
그리고 베이지가 그렇게 걸음을 멈출 때마다 그녀의 허리춤으로 와 닿는 손길이 있었다.
하이어드는 베이지가 갑작스레 그 자리에 서면 잠연히 그녀를 지켜보다가 이내 눈썹을 치켜올리며 그녀의 등을 밀어 받쳤다. 그 마른 손길에 그녀는 걸음을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 손길이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든든했다. 숨김없이 말하자면 그러했다. 독촉의 뜻인 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손길에 버팀목을 곁에 둔 사람처럼 알게 모르게 의지했다. 성기기 그지없는 그 손길은 그녀가 걸음을 다시 내디딜 수 있을 정도의 힘을 주었다. 두려움을 가져가 주었다.
그렇게 몇 번의 망설임 끝에 베이지는 정찬장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그녀의 망설임이 무색하게,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평온했다. 정찬장 한쪽 벽면에 뚫린 거대한 창으로 부서져 들어오는 맑은 햇살은 공간을 웅장하고 평온해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 공간의 상석에 태연히 앉은 타데오는 한없이 의연한 낯으로 고기 조각을 썰고 있었다. 저택에서 묵은 여타 귀족들은 아침을 거르는 모양인지 보이지 않았기에 공간은 적막했다. 주위의 시종들 또한 평소와 다름없이 제 자리를 지키거나, 음식을 내 오고 있었다. 이상할 것 하나 없는 풍경이었다.
구태여 집어 보자면, 타데오가 둘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식기를 들었다는 것 정도일까.
일전에 살쾡이가 사라졌을 당시에도 그에 합당한 만큼의 훈육은 이루어져야 한다며 다음날 바로 베이지를 고문실로 불러들였던 타데오였다.
한낱 살쾡이를 잃었을 때도 분풀이를 했던 타데오인데, 오랜 시간 공을 들인 메리엔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의 성미가 온순할 리가 없었다.
아버지가 무슨 짓을 저질러도 버틸 수 있을 거라며 마음을 단단히 먹고 들어선 참인데…….
왜지?
맞닥뜨린 상황에 안심보다는 덜컥 불안함이 찾아왔다. 베이지에게 공간에 내려앉은 이질적인 고요함은 폭풍이 오기 전날 밤과 같은 선득함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설마…… 메리엔을 찾았다거나.
베이지는 일순 머릿속을 스친 불길한 생각을 곧바로 지워냈다.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곳으로 오는 길에 지나가던 하인 하나를 붙잡아 물어보았다. 분명 그가 아직 찾지 못했다고 말했을뿐더러 다른 하인들 또한 여전히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메리엔을 찾은 건 아닐 텐데…….
그때 베이지와 하이어드의 존재를 발견한 듯 상석에 앉아 있던 타데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와 꽂혔다.
아.
베이지는 제게로 내리꽂히는 선득한 금안에 그제야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바를 떠올렸다. 하이어드와 함께 정찬장으로 들어섰다는 사실이었다.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마침 사제님과 앞에서 마주쳐서요.”
변명과도 같은 말을 내뱉고 나서야 베이지는 입술을 사리물었다. 아차 싶었다. 타데오가 묻지 않았음에도 제 발 저려 해명한 것이 더 의심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못 했을까.
하지만 타데오는 베이지의 실언 따위에는 관심이 전혀 없는 듯 보였다. 타데오는 아침 인사조차 건네지 않고 제 할 말을 하는 베이지의 예의 없는 행태에 인상을 구기고는 그녀에게 보여주듯 하이어드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좋은 아침입니다, 사제님. 간밤에 불편함은 없으셨습니까?”
교양 없게 인사말조차 하지 않고 다른 말을 건넨 것에 대한 타박이었다. 하지만 지금 베이지에게는 그런 압박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베이지는 평소처럼 입가에 웃음을 머금은 채 하이어드를 상대하는 타데오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이어드에게 인사치레를 마친 후 타데오의 시선이 베이지에게 닿자, 그녀는 정해진 말밖에 할 수 없었다. 도톰한 입술이 야틈하게 벌어졌다.
“좋은 아침이에요, 아버지.”
인사를 받았다는 타데오의 눈짓을 끝으로 두 사람은 자리에 착석했다. 베이지는 차례대로 내어져 오는 접시들을 눈앞에 두고서도 음식에 집중하지 못했다.
불시에 타데오가 무슨 짓을 벌이지는 않을까, 조찬 내내 마음을 졸였던 베이지의 염려와는 달리 조찬 자리에서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비워지고 새로 내어져 오는 접시들로 시간의 흐름을 알 수 있을 뿐이었다.
베이지는 은식기 부딪히는 소리 하나도 흐르지 않는 잔잔한 정찬장을 가만히 올려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이 창을 뚫고 들어와 화려한 샹들리에를 빛냈다.
샹들리에에 박힌 보석들이 빛을 품고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모습을 들여다보던 베이지는 제 옆에 앉은 하이어드에게로 힐끔 시선을 던졌다. 불과 어제 일어났던 일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곧은 자세로 고기 조각을 써는 그는 언제나처럼 정적이었다. 고작 그 정도의 일은 그를 흠집조차 내지 못한다는 듯.
그날 정찬장에는 묵직한 정적만이 흘렀고, 불안과도 같은 고요 속에서 메리엔의 일은 그렇게 수면 아래로 묻혔다.
타데오는 그 후로도 메리엔의 일로 베이지에게 따로 책임을 묻거나 그에 마땅한 훈육을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다.
처음에는 타데오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했다. 하지만 메리엔에 대한 이야기를 들먹이며 저를 겁박할 만도 한데 그러기는커녕 그 일을 입에 담는 것조차 경멸적으로 꺼려 하는 타데오의 모습을 보며 베이지는 어렵지 않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존심에 금이 간 것이었다. 제가 호기로이 계획했던 일이 제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사실에.
모든 판을 제 손 아래에 놓고 늘 말들을 움직이는 입장에만 있어 왔던 타데오이니, 제 뜻대로 흐르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일지도 몰랐다.
더욱이나 배반자들을 속출하는 데 혈안이 된 요즘, 지하에 가두어 두었던 메리엔이 도망가기 위해서 필요한 이들이 한둘이 아니니 그 과정에 매수당한 이들이 꽤 된다는 사실에도 적잖은 충격을 받았을 것이었다.
어디까지나 베이지의 추측일 뿐이었지만.
베이지는 어렴풋이 타데오의 의중을 짚어 보며 메리엔의 일을 잊으려 노력했다. 밤이 되면 제가 쇠붙이를 허공으로 치켜드는 모습을 목격한 메리엔의 새빨간 동공이 찾아와, 그녀는 그것을 지우는 것만으로도 하루하루가 벅찼다.
그렇게 뇌리에 새겨질 만큼 강렬한 사건 이후, 베이지에게는 처음으로 안온함이라는 다디단 것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