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후원에 어수선한 기운이 맴돌았다. 아름다운 후원의 조각상들 사이에 엎드린 여자는 손톱이 다 빠져 피로 범벅이 된 채 울음을 헐떡이고 있었고, 회랑에 선 하인들 중 몇은 견디다 못해 입을 틀어막고 소리 없이 구역질을 해대고 있었다. 입을 단단히 틀어막은 채 우는 이들도 또한 더러 있었다.
길을 비키듯 갈라 선 하인들의 중앙에 서 있던 하이어드는 제 앞에 펼쳐진 살풍경한 상황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무심히 잔디 위로 발을 내디뎠다.
하이어드의 얼굴은 더없이 무감했다. 일평생을 사제로 살아온 자로서는 다른 이가 고문당하는 이런 참혹한 광경을 처음 목격하는 것일 텐데도, 하이어드는 특별한 감흥 하나 보이지를 않았다. 그는 늘 그렇듯 느른하게 눈을 내리깐 채 주위 것들에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았다.
반면 베이지는 여전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평소였다면 하이어드가 나타난 순간 감정을 갈무리하고 일어섰을 터인데, 버티고 버티다 마침내 무릎이 꺾이고 나니 마치 다리가 제 신체의 일부가 아니게 된 것마냥 힘이 들어가지 않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베이지는 울음조차 멈추지 못했다. 땅으로 주저앉은 탓에 코앞에 메리엔의 얼굴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에 없이 선명하게 눈에 밟히는 메리엔의 얼굴은 그녀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호흡을 가다듬으려 노력하는 베이지의 입에서 투박하게 헐떡거리는 숨이 샜다.
그때 적막히 가라앉아 있던 흑색 동공이 처음으로 무언가를 담았다. 눈물에 서럽게 젖다 못해 희게 질려 있는 베이지의 얼굴이었다. 짧은 순간, 까만 눈동자에 언뜻 불쾌한 기색이 스치는 듯했으나 그저 착각일 뿐이라는 듯 삽시에 사라졌다.
베이지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인 하이어드의 긴 입매가 벌어지고, 둔중한 목소리를 냈다.
“아버님께서 긴히 필요한 차가 있다 제게 부탁하셔서 말입니다.”
에둘러 말했으나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급히 필요한 마약을 매입하러 온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저녁, 카를로 백작의 저택에서 작은 모임이 열릴 예정이라는 말을 들었던 듯도 했다.
멀거니 하이어드를 응시하던 베이지는 타데오가 선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그러셨습니까.”
예고 없이 찾아든 손님의 등장에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고 있던 타데오의 낯은 어느새 평온을 되찾은 후였다.
시종에게 손짓해 그를 불러들인 타데오는 제 손에 들려 있던 또 다른 쇠붙이를 트레이 위로 내려놓고는 하이어드를 향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런, 본의 아니게 좋지 못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백작께서 찾는 게 뭐라고 하시던가요.”
“희귀한 것이라 들었습니다. 아마 영애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은데.”
읊조리듯, 이런 꼴을 보고도 동요 하나 없는 묵묵한 목소리가 베이지를 향했다.
희귀한 품종의 마약은 베이지의 관리 아래 있었다. 그 수가 적고 천문학적 단위의 값인 만큼 마약을 보관하는 장소에 그녀가 직접 찾아가 빼 와야만 했다.
잠자코 대화를 듣고 있던 베이지의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싹텄다.
하지만 하이어드는 자신이 희귀 품종을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텐데…….
타를로 백작이 알려준 건가?
야트막한 의구심은 이내 지워졌다. 워낙 큰손으로 유명한 백작이다 보니 충분히 그가 알고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이어드의 시선을 따라, 타데오의 시선 또한 여전히 땅에 주저앉아 있는 베이지에게로 옮겨 왔다. 짧게 혀를 차는 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선득히 파고들었다.
귀가 아렸다. 단단하게 다져져 있던 제 땅을 밟다 못해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고, 좀 전 일은 까맣게 잊은 것처럼, 왜 여태껏 추스르고 일어나질 못했냐는 모진 매질이었다.
“백작께서 조금 후에 있을 모임에 필요한 것이라 했습니까?”
“예.”
베이지에게서 눈길을 거둔 타데오가 시간을 벌고자 형식적인 물음을 던졌다.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도 오늘 그 모임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니까.
희귀한 품종을 피워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를 즐기는 백작이 이처럼 갑작스레 마약을 구하러 오는 상황 또한 흔히 벌어지는 일이라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타데오는 시간을 확인하며 옷을 정돈했다. 흥이 꺼지기도 했고 옷을 갈아입고 출발해야 할 시간이 다 되어 가기도 했기에, 메리엔을 지금 당장에 죽일 생각을 접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단번에 끝내는 것보다야…… 홀로 자신의 신분과 제가 머리에 지고 있는 것들을 되새기며 상황을 더 생생히 체감할 시간을 주는 것도 괜찮을 듯했으니.
타데오가 무슨 사람 같지도 않은 생각을 하며 웃는 줄도 모르고, 온몸을 굳힌 채 그를 주시하고 있던 베이지는 그가 옷깃을 바로잡는 모습을 눈에 담고는 바르르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안도한 것이었다. 지금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임시방편에 불과할지라도, 적어도 지금 당장의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으니까. 막다른 절벽 끝에 내몰려 있던 그녀는 그 사실만으로도 족했다.
혹여라도 다시 타데오의 심기를 거스르는 일이 없도록 일어서야만 하는데…….
“흣.”
베이지는 수차례 헛발질을 반복했다. 그녀는 제 것이 아닌 양 전혀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다리를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봤다. 힘만 주어도 발발 떨리는 통에 제대로 설 수조차 없었다.
또 한 번 베이지가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가하고, 맥없이 허물어지려던 순간이었다.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분명 멀리서 들려와야 하는 거무죽죽한 목소리가 코앞에서 떨어졌고.
일순 단단한 힘이 베이지의 팔을 붙들더니 축 늘어져 있던 그녀의 몸이 가뿐히 일으켜졌다.
하지만 땅에 발을 붙였다고 해서 온전히 설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금 쓰러지려는 베이지의 허리춤으로 딱딱한 팔뚝이 파고들었고, 이어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앞으로 들이밀어졌다.
베이지는 제 앞으로 내밀어진 커다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홀린 듯 그 위로 제 손을 얹었다. 뼈마디가 딱딱한 손가락이 자그마하고 흰 손등을 덮었다.
……뜨거웠다.
잠시 이를 악 물고 서 있던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지탱할 곳을 내어주자 간신히 한 걸음을 내디뎠다.
피에 젖은 드레스 자락이 잔디 위를 짓누르고 지나가는 모습을 잠자코 내려다보던 무채색 눈동자가 느리게 그 위를 타고 올랐다.
갓 태어난 사슴 새끼도 아니고…….
하이어드는 제 몸에 바싹 붙은 여체에서 잘게 전해지는 떨림을 느끼며 얼굴을 구겼다.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베이지의 몸은 떨림이 잦아들지 않고 있었다.
얇다란 허리에 둘러져 있던 굵은 팔뚝이 그녀의 품으로 더 깊숙이 얽어 들어갔다.
하이어드의 부축을 받으며 걸음을 옮기던 베이지가 타데오의 곁을 스치던 찰나, 음습한 목소리가 그녀의 신경을 갉았다.
“베이지 스논. 내일 조찬에는…… 일찍 드는 게 좋겠구나.”
내일, 조찬. 두 단어가 베이지의 귀로 와 박혔다.
하이어드의 손 아래 숨어 있던 베이지의 작은 손이 눈에 띄게 떨렸다. 평소 온몸에 휘두르고 있던 단단한 껍질이 깨진 그녀는 작은 자극에도 연약하게만 반응하고 있었다.
작지 않은 목소리였으니 하이어드 또한 타데오의 말을 들었을 터였다. 하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베이지를 끌었다.
회랑에 몰려 눈만 굴려대고 있던 하인들이 한껏 고개를 수그리며 길을 텄고, 하이어드는 젖은 속눈썹이 축 내려앉아 한 치 앞조차 보지 못하는 베이지에게 길을 만들어 주었다.
서늘한 기운만이 맴도는 본관 복도는 고요했다. 공작저의 그 많은 하인들이 모두 후원에 불려가 있었다는 뜻이었다.
쥐새끼 하나 오가지 않는 복도 위로 묵직한 구둣발 소리와 깨질 듯 흔들리는 청명한 구두 소리가 뒤섞여 울렸다.
하지만 몇 걸음 가지 않아 크게 휘청이던 베이지의 무릎은 끝내 꺾이고 말았다. 하이어드는 예의 그 냉담한 눈길을 바닥으로 떨어트렸다.
“죄…… 죄송해요. 급하실 텐데…….”
제 치아에 갈가리 찢긴 붉은 입술이 벌어지고 베이지의 입에서는 사죄의 말이 흘러나왔다. 디디고 있던 발밑이 꺼져버린 사람처럼 수렁에 빠진 그녀는 더없이 유약해져 있었다.
베이지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져 내렸다. 조금 전까지 그녀가 흘리던 눈물의 의미와는 조금 달랐다.
이상하게, 긴장이 풀린 사람처럼…… 눈물이 쏟아졌다.
하이어드 또한 제게 거칠기만 했으나, 이상하게.
베이지는 눈 한 번 깜박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려댔다. 그간 속에 쌓아 놓았던 설움을 뽑아내듯 갖은 감정들이 뒤섞인 눈물이 방울져 떨어졌다.
새카만 동공은 제 앞에 주저앉은 작은 여자를 가만히 주시했다.
저 작자가 무어라고 이렇게.
밤새 보지가 다 헐도록 구멍을 뚫어대도 다음날 꼿꼿하게 허리를 세우고 돌아다니던 여자였다. 저도 이 여자를 이따위로 만들지 못했는데.
제가 아닌 다른 놈 때문에 이 지경이 된 꼴을 보니 생각보다 더…….
속에 벌레가 드글거리는 기분이었다. 본인의 몸은 챙기지도 않고 이 와중에도 제게 체면을 차리는 꼴이 같잖았다.
기댈 줄도 모르고.
하이어드의 턱뼈가 느슨히 벌어지며 다물린 입술 속에서 혀가 짧게 굴렀다.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충동질이었다. 가뜩이나 허연 얼굴이 못 봐줄 정도로 허옇게 질려 있던 꼴이 못내 거슬려, 신전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마부에게 말 머리를 돌리라 명했다.
충동에 의한 행위였으나 제가 오지 않았으면 어찌하려고 그랬는지 모를 일이었다.
상상만으로도 불쾌한지 까만 눈동자가 더 탁하게 가라앉았다.
회랑으로 들어서 처음 목도한 것은 여느 때와 같이 작디작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그 작디작은 얼굴이 눈물에 흠뻑 젖어 상기되어 있는 꼴을 보자 속에서 무언가가 뚝 끊어졌다.
하…… 씨발.
다시 생각해도 입 안이 비렸다. 저 작은 몸에서 눈물을 뽑아낼 데가 어디 있다고.
주위 것들 따위야 그가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이어드는 눈길을 돌려 상황을 설게 훑었다. 원흉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살쾡이가 아닌 사람이 놓여 저리 울음을 쏟는가 싶기는 한데.
하이어드는 확신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살쾡이나 사람이나 하등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는 이유를 알아야 달래든, 자지를 물려주든 할 게 아닌가.
애를 달래는 건 자신과는 먼 일인 줄 알았는데.
고여 있는 물이 모자라 더 이상 눈물을 흘려댈 수도 없을 것 같은 작다란 몸이 지치지도 않고 들썩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이어드가 입을 열었다.
“왜 우는 거지?”
작은 물음이 던져졌다. 뚜렷한 억양 하나 없는 목소리는 정말로 베이지가 왜 슬퍼하는지 알 수 없다는 듯 단순한 물음의 빛을 띠고 있었다.
울음소리를 참으려 입을 꾹 다문 채 둥근 눈꼬리에서 눈물을 뚝뚝 흘려대던 베이지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메리엔은, 착한…… 아이인데.”
드문드문 치솟는 헐떡임에 막혀, 목소리가 떨렸다.
평소였다면 절대 하지 않을 말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홀로 속으로만 앓다 지워낼 말이었다. 그런데 제 앞에 선 사내에게는 무의식적으로 말이 샜다.
“저 때문에…….”
스스로를 책망하는 말이 입 밖으로 새자 채찍이 되어 제 가슴을 때렸다. 입 밖으로 내고 다시 한번 제 귀로 듣고 나니, 더 절실히 이 모든 일이 제 탓인 게 실감이 났다.
하이어드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 베이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애초에 사람 하나 죽이는 것이 이렇게 고통스러워 할 일인지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범주의 것이었기에 위로의 말을 건네는 일 따위는 하지 못했다.
“으읍.”
그때였다. 아득히 멀어져 있던 감각들이 돌아오며 짙은 피 냄새가 베이지의 코끝을 스쳤다. 갑작스레 치미는 구역질에 그녀가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역효과였다. 발치로 눈을 내리자 메리엔의 피에 젖은 옷자락이 어지러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시야에 밟혀 그녀의 구역질이 심해졌다.
구역질 한 번 한 번에 힘 하나 없는 여체가 거칠게 흔들리고 밀려나던 차, 무거운 나무 냄새가 베이지의 코끝을 감쌌다.
제 앞을 가린 거대한 그림자에, 베이지가 물기 어린 눈을 들어 올리자 커다란 손이 입 앞을 틀어막고 있는 것이 보였다.
“토해.”
하이어드 특유의 묵묵하고 탁한 목소리가 떨어지며 나무껍질 냄새가 밴 묵직한 숨결이 땀에 젖은 베이지의 머리칼을 잘게 흔들었다. 그녀의 심장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이 남자는 또, 자신을 구한다.
물이 가득하게 괸 연갈색 눈동자가 이제 그 누구의 것보다 익숙한, 제 앞을 가로막은 투박한 손바닥을 내려 봤다. 그녀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얼굴을 다 가릴 법한 크기의 손바닥은 곳곳에 굳은살이 박여 몹시도 거칠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일평생 제 몸을 받쳐준 손이, 이 사내 말고는 없었구나.
하지만 더러울 텐데…….
“그럴 수는…….”
읍!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베이지가 거절의 말을 내뱉으려던 순간이었다. 이런 때에도 토기가 치밀어, 고갯짓하던 그녀의 머리가 다시금 아래를 향했다.
베이지가 다급히 제 입 앞을 가로막고 있던 하이어드의 손을 치워내려 그의 손목을 붙잡았으나 거대한 그림자는 힘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마냥 미동도 하지 않았다.
때문에 본의 아니게 베이지가 하이어드의 팔에 매달린 꼴이 되었다. 차마 버티고 있는 손을 치워낼 기력까지는 없었기에 그녀는 얌전히 그의 팔에 기대었다.
또 몇 차례 베이지의 몸이 들썩였으나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건 투명한 위액뿐이었다. 아침까지도 몸이 좋지 않아 식사를 물렸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짧은 시간이 흐르고, 힘이 다 빠져 바들대던 몸이 이제는 토악질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그때 베이지가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움찔거리는 광경을 잠자코 지켜보던 하이어드가 움직임을 보였다.
남은 한 손으로 베이지의 턱을 가볍게 받쳐 올린 하이어드는 그녀가 쥐고 있던 나머지 한 손을 끌어 올려 그녀의 상처 난 입술 위를 더듬었다.
뼈 굵은 손가락은 예고 없이 찾아들었다. 하이어드 특유의 진한 향이 밴 손가락은 베이지의 입술을 짓누르는 듯하다 이내 피가 비친 도톰한 입술을 기어코 가르고 들었다. 눅눅한 입 속으로 파고든 딱딱한 손가락이 갑작스런 손길에 놀라 오히려 공간을 좁혀드는 새하얀 치열에 긁혔다.
“입. 벌려.”
하이어드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벌건 입 속으로 제 손가락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곧게 뻗은 손가락이 이내 누진 점막에 닿고 베이지의 토악질을 도왔다.
처음에는 작게 반항하던 베이지는 어느새 눈을 꽉 감은 채 제 입 안을 헤집는 하이어드의 손을 양손 가득 간절히 부여잡고는 그에게 매달리고 있었다.
하이어드는 고작 손가락 두 개를 버겁다는 듯 좁은 입 안 가득 받아내고 있는 베이지에게서 한시도 눈을 떼어 내지 않았다. 제 손을 밀어내고자 그러쥐었을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자그마한 손으로 하나씩 쥐고서는 구역질의 반동으로 몸이 들썩일 때마다 힘주어 온몸을 의지하는 모습이 썩 싫지 않았다. 그는 눈물에 젖어 평소보다 조금 더 진한 빛을 띤 흙색 속눈썹이 떨리는 형상을 빤히 지켜봤다.
베이지는 그렇게 하이어드의 손을 꼭 그러쥐고서 울음을 쏟고 또 쏟았다. 요 몇 달 저를 뒤흔들던 유일한 이가, 저를 지탱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