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아, 아가씨……!’
좀 전 시종 하나가 찾아와 급히 손님이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사색이 된 시종의 얼굴을 보아하니 타데오가 서둘러 저를 데려오지 않으면 매질을 하겠다 호통을 친 게 분명했다.
타데오는 베이지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았다. 대신 베이지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그녀가 보는 앞에서 다른 이들을 폭력으로 처벌했다. 그 방법이 그녀에게 더 잘 먹히리라는 사실을 알아서였다.
베이지는 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제 옷차림을 살피며 흐트러진 부분을 바로잡았다.
저택을 방문한 손님을 기다리게 한 것에 더해, 옷매무새마저 단정치 못할 경우에는 진정 시종이 체벌을 받고 말 터이니 책잡히지 않고자 옷을 미리 정돈하는 것이었다.
베이지는 오늘이 무슨 날인지 익히 알고 있었다. 타데오가 자신을 홀로 오라 명한 이유는 새로운 사제를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타락한 신의 종을.
주기적으로 신전에서 사제들이 방문하고 연을 맺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든 백성들의 선망과 신뢰를 받는 헤이트리드 신전과의 교류로 스논 공작가에 좋은 겉모습을 덧씌우려는 것.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귀족들의 저택에 수시로 드나든들 아무런 의심도 사지 않는 사제의 신분을 각종 마약 유통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타데오는 한 사람을 오래 품지 않았다. 심부름 역할을 하는 사제조차 기한을 두고 주기적으로 바꾸는 편이었다. 그 누구도 완전하게 믿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지난 몇 달간 저택을 방문했던 사제는 이미 한몫을 챙겨 제국을 떴거나, 신전에서 높은 자리를 꿰찼을 것이었다. 스논 공작가의 뒤를 봐주는 일은 신을 섬기는 종들에게는 등용문이나 다름없는 역할을 했으니.
이번 사제는 조금 다르다고 들었는데…….
베이지는 얼마 전 타데오와 나눴던 대화를 떠올렸다.
‘카를로 백작의 양자다.’
새로 올 사제와 함께 진행하게 될 건에 대하여 말을 나누던 중, 타데오가 권태로이 덧붙였다.
카를로 백작은 해상 무역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벌어들이는 대부이자, 마약 사업 초창기부터 스논 공작가와 꾸준히 거래를 해 왔던 주고객이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카를로 백작이 나이가 찰 대로 찬 양자를 들였다는 보고를 받았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베이지의 머릿속을 스쳤다.
카를로 백작이 양자를 들인 목적 또한.
백작가의 평판을 쇄신하기 위함이었다. 카를로 백작의 하나뿐인 아들 셀가 카를로가 가문의 위신을 모조리 말아먹고 있는 판국이었으니.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셀가 카를로가 약에 찌들어 홍등가인 페르몬트 거리에서 한바탕 난리를 피웠다는 소식이 온 수도에 자자했다.
때문에 카를로 백작이 들인 양자는 망나니 친아들과는 전혀 반대되는 자라 들었다.
헤이트리드 교의 신실한 사제이자, 교외에 위치한 작은 신전에서 나고 자라 태어나서부터 쭉 신께 봉사하고 있는 선한 이라고…….
문득 머리에 툭 터지는 생각에 베이지의 붉은 입술이 작게 벌어졌다.
‘……설마.’
‘그래. 새로 올 사제 말이다.’
간단한 설명이었지만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충분했다.
카를로 백작이 사제인 양자를 들여 제 친아들이 해쳐 놓은 백작가의 평판을 회복하려 한다는 건 표면상의 이유였던 모양이었다.
본래 목적은 신분이 보장된 사제가 마약 유통을 돕게 하기 위함이고.
직접적으로 사업에 개입되어 있는 카를로 백작의 양자라면 이보다 믿음직한 이가 없기는 했다. 빈번하게 쓰고 버리는 사제들의 입막음과 후처리를 하지 않아도 되니 신경 쓰는 일도 줄 테고…….
그래도 꽤 번거로운 과정이었을 텐데, 품을 들여 판을 짜 놓은 걸 보면 이번 사제는 다른 사제들보다 조금 더 오래 쓸 생각인 듯했다.
신실한 사제라더니…….
베이지는 턱 막힌 듯 갑갑한 숨통을 트기 위해 작게 한숨을 뱉었다.
이렇게 쉬이 매수된 걸 보면 이번 사제도 신실함과는 거리가 아주 먼 자가 분명했다.
홀로 내려가기 위한 길고 긴 계단으로 발을 디디자마자, 베이지는 눈을 내리깔고 자세를 바르게 했다.
작은 대화소리가 오가던 홀이 일순 고요해지고 제게 시선이 쏠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예법을 지켜야 했기에 그녀는 마지막 계단을 내리밟는 순간까지 발끝에 시선을 고정했다.
부드럽고 붉은 융단 위로 두 발을 디딘 베이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려던 순간이었다. 그녀의 시선 끝자락에 새까만 구두코가 걸려들었고.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모래색 머리칼 위로 한없이 정적인 목소리가 묵직하게 떨어졌다.
“헤이트리드 님을 모시는 사제, 하이어드라고 합니다.”
귓가를 먹먹하게 두드리는 목소리는 소름 끼치도록 낮고도 탁했다. 짧은 순간 작금의 상황을 잊게 할 정도로. 자연스레 흘러가던 베이지의 몸짓이 움직임을 잊은 듯 멎어버린 것도 순간이었다.
멈칫거리던 것도 잠시, 그녀는 풍성하고 화려한 드레스 자락을 쥐며 인사를 올렸다.
“저야말로, 친히 공작저를 찾아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싶습니다.”
베이지가 겉치레를 하고 나자, 못마땅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타데오가 흐름을 이어받아 다시 자연스레 대화를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한 걸음 뒤로 물러선 베이지는 그제서야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올렸다.
방문한 사제는 총 여섯이었다.
정갈하게 검은 사제복을 갖추어 입은 이들의 좌우로, 일렬로 선 하인들이 고개를 숙인 채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들 모두가 공작저의 일을 도울 자들은 아니었다. 다섯은 불법적인 일과는 무관한 진짜 사제로, 그저 눈을 속이기 위한 방패에 불과했고…….
베이지는 펼쳐지는 상황을 바라보다, 한 사람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여섯 사제들 중 가장 앞에 선 사제이자, 노골적으로 타데오의 환대를 받고 있는 남자였다.
저 남자가, 진짜 스논 공작가의 일에 일조할 사내였다.
기골이 장대한 사내는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검은 사제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채였다. 그녀가 확인할 수 있는 건 그뿐이었다.
아무래도 지척에 서 있는지라 사내의 얼굴을 보려면 조금 노골적으로 고개를 들어 올릴 수밖에 없었고, 베이지는 구태여 그렇게까지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후에라도 그가 알아채지 못하게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은 많을 테니까.
구김 하나 없는 사제복 소매 아래, 뼈마디가 불거진 두툼한 손아귀를 물끄러미 응시하던 베이지는 별안간 측면에 선 하인들이 서로에게 눈짓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뜻 모를 눈길을 주고받던 그들의 시선은 이내 한 곳을 향했다. 제 앞에 선 사내에게였다.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그 시선의 방향을 따라 자연스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다른 이들에 비해 월등히 거대한 신장을 가진 사내 탓에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서는 턱을 치켜들어야만 했다.
연갈색 동공에 사내의 얼굴이 오롯이 담겼고, 은은했던 상은 점차 더 또렷이 번져 나갔다.
베이지의 붉은 입술이 앙다물렸다.
땅을 기듯 낮았던 목소리가 실체화된 듯한 형상이었다. 액자 속 멈춘 그림을 보듯, 목소리 주인의 얼굴 또한 몹시도 정적이었다.
굵고 거친 선으로 이루어진 얼굴은 시선을 빨아들일 듯 한없이 선명했다.
살짝 올라간 눈꼬리는 자칫 날카로운 인상을 자아낼 수 있었으나 자연스레 내린 검은 머리칼과 뒤섞여 설핏 부드러워 보였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앞머리 사이로 비치는 짙은 눈썹과 높게 뻗은 콧대 또한 무겁고 투박한 느낌을 풍겼으나 느슨하게 말려 올라간 붉은 입술이 시선을 끌어모아 그의 인상을 유순해 보이도록 만들고 있었다.
하인들이 눈짓을 보낸 이유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평소 남의 용모 따위에 관심을 두지 않던 베이지조차 홀린다는 단어를 떠올릴 만큼 조각같이 생긴 남자였다.
느릿하게 사내의 얼굴을 훑어 내리던 노란 동공이 남자의 눈가로 가 닿았다.
불거진 눈썹뼈 아래로는 어두운 음영이 져 있었고, 그 속에 자리한 검은 눈동자는…… 탁했다.
곡선을 그린 입매와 달리 웃음기 하나 없는 눈이, 짙은 괴리감을 일으킬 정도로.
그때였다. 그 새까만 동공이 불시에 베이지를 향한 것은.
갑작스러운 시선에 베이지가 작게 숨을 집어삼켰다. 속이 비치지 않는 컴컴한 시선이 닿자, 사내의 용모에 가려져 있던 묵직한 위압감이 순식간에 살갗으로 와닿는 느낌이었다. 아주 잠시, 그의 입매가 딱딱하게 굳은 듯도 했다.
검은 시선은 짧은 순간 머무를 뿐이었다. 맞은편에 선 타데오가 악수를 건네자 하이어드는 곧바로 시선을 거둬들였다.
“허허, 아무쪼록 앞으로 잘 부탁드리지요.”
타데오의 호탕한 웃음에 하이어드는 짧게 묵례하는 것으로 답했다.
오늘은 부득이하게 중요한 일정이 있는 관계로 타데오와 하이어드가 따로 자리를 갖는 일은 없었다. 환대는 이쯤에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시선을 떼어낸 후 꽤 긴 시간이 지나고서야 눈을 내리깔았다. 화합의 의미로 타데오와 하이어드가 맞잡은 두 손을 바라보며,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참고 있었던 숨을 천천히 내뱉었다.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감정을 온전히 드러내고 있던 그녀의 눈동자는 머지않아 평소의 건조한 것으로 돌아왔다.
다른 때와 달리 용모가 수려한 남자, 그 정도일 뿐이다. 일전의 그 사제와 마찬가지로 타락한, 흔한 사제에 불과하다.
베이지는 스스로에게 되뇌듯 그의 인상을 제 머릿속에 반복해 새겼다.
짐승만도 못한…….
베이지는 도톰한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지겨웠다.
그로부터 며칠간 공작저를 드나드는 하이어드를 몇 차례 마주쳤으나, 둘은 서로 간단히 눈인사만을 하고 지나칠 뿐이었다. 그러니 일전에 박혀 있던 베이지의 생각이 바뀔 리가 없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는 그저 주기적으로 바뀌던 사제에 불과했다. 의외의 장소에서 그를 맞닥뜨리기 전까지는.
홍등가로 순시를 돌고 공작저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해도 채 뜨지 않은 시각이라는 말이었다.
밤새 폭우처럼 쏟아진 비 탓에 거리는 온통 희뿌연 안개가 끼어 있었고, 모래로 덮인 길은 축축하게 젖어 걸을 때마다 모래가 부딪히는 까득거리는 소리가 났다.
애꿎은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홍등가에 방문할 때는 모르니티 광장의 상점가 부근에서 내려 직접 걸어가야 했고, 공작저로 복귀할 때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부와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다시 광장으로 돌아온 참인데…….
왜 이런 곳에.
베이지는 제 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하니 바라보다 눈을 가늘게 떴다.
뿌연 안개가 자욱한 거리의 한가운데, 까맣고 거대한 인영이 또렷이 그녀의 눈에 담겼다.
어쩌면 사람을 착각한 게 아닐까 싶었다. 사제들의 예복이 동일하니 진정 자신이 사람을 착각했을 수도 있었다.
베이지는 자신의 몸을 가리고 있는 골목의 벽을 살짝 움켜쥐었다. 손끝에 닿는 까끌까끌한 돌벽은 차갑고, 습했다.
맨살이 닿으면 일순 소름이 끼칠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으나, 몸에 딱 맞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사내는 외투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마차에서 내렸다. 새까만 구둣발이 묵직하게 땅을 디디며 젖은 모래가 짓밟히는 소리가 울렸다.
그는 모르니티 광장을 상징하는 사자 모양의 조형물을 지나 굳게 닫힌 상점들이 줄지어 늘어져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낡은 나무 상자가 가득 쌓인 상점 앞, 그곳에는 흙바닥에 쪼그려 앉은 노파 한 명이 있었다. 빗길에 넘어진 모양인지 그녀의 앞에는 갈색의 자루가 풀어 헤쳐진 채 바닥을 놔뒹굴고 있었고, 그 주위로는 자루에서 쏟아진 붉은 색채의 사과들이 흩뿌려져 있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귀에 익은 목소리에 베이지의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희미했다. 하지만 멀리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공작저를 드나드는 하이어드의 것이 맞았다. 여느 때처럼 낮게 깔린 저음으로 그는 의외의 말을 내뱉었다.
저택에서와 달리 살갑게 웃는 낯은 아니었다. 딱딱하게 굳어 일자로 다물린 입매가 본래 하이어드의 것인 듯, 일전에 가까이서 마주했던 그의 눈과 깊이 어우러졌다.
“아이고, 괜찮아요. 미안해서 안 돼.”
머리가 하얗게 센 노파가 손사래를 쳤지만 하이어드는 말없이 그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자신의 등을 내어 주었다.
밤새 비가 내린 탓에 바닥에 고여 있는 물웅덩이가 옷을 더럽혔으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진흙 바닥으로 더 단단히 무릎을 박아 넣었다.
“업히십시오.”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선행을 믿을 수 없다는 듯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는 밤새 순찰을 돌아 피로에 흠뻑 젖은 탓에 제가 잘못 본 게 아닐까 의심했다.
촉촉하게 코끝에 닿는 안개의 감촉이 이것이 현실임을 일깨워 주고 있었으나, 그녀는 부정했다. 분명 자국 내에 마약을 유통하는 것을 돕는 부패한 사제가 할 법한 행동은 아니었으니까.
“너무 미안한데…… 계속 거절하는 게 더 폐겠지요? 고마워요.”
노파가 조심스럽게 하이어드의 어깨에 손을 얹자 그는 노파를 가볍게 들쳐 업고 자신의 마차에 태웠다. 노파의 옷자락 또한 이미 빗물과 흙에 진창이 되어 있었지만 그는 마차의 좌석이 더러워지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거짓말.
베이지의 마른 흙색 눈동자가 주위를 훑었다. 사제복을 입고 있으니,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하는 행동일 지도 몰랐다.
그래야만 하는데…….
안개도 거둬지지 않은 이른 새벽, 거리를 거니는 이 하나가 없었다.
상아색 동공이 옅게 흔들렸다.
하이어드는 노파가 등받이에 기대도록 만든 후 다시 마차에서 내려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입이 벌어진 채 바닥에 떨어져 있는 사과 자루를 주워 든 하이어드는 진흙 위로 굴러떨어진 수많은 사과들을 줍기 시작했다. 그는 흙탕물과 진흙 범벅이 된 사과에 제 손이 더러워지는데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거대한 체구의 사내는 표정 하나 없는 얼굴로 말없이 사과를 자루에 주워 담았다. 누군가 시켜서 하기라도 하듯 감흥 하나 없는 얼굴이었다.
베이지의 고운 미간에 옅은 주름이 졌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하이어드가 노파를 도운 이유를 가늠할 수 없었다.
신전에 후원할 돈 따위는 없을 노파에게 선의를 베풀어 이 남자가 얻을 것이 무엇일까.
입양되기 전부터 교외에 위치한 헤이트리드 신전에서 사제직을 맡고 있었다고는 하나, 단지 그 신전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사제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동안은 환경이 받쳐 주지 않았지만, 태생부터 권력욕이 있었던 자라 카를로 백작의 제안을 수락한 줄로만 알았는데.
……본래 선한 자였지만 한순간 백작의 꼬드김에 넘어간 건가?
그게 아니라면…… 사제로 지낸 세월이 길어, 누군가를 돕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기라도 한 것일까.
베이지가 온갖 가정들을 해 보는 사이, 하이어드는 어느새 원상태로 돌아온 사과 자루를 동여매 일어섰다. 가죽 바깥으로 사과의 모양이 드러날 정도로 주욱 늘어진 자루는 꽤 무게가 나가 보였으나, 한 손으로 자루의 입구를 틀어쥔 그는 힘 하나 들이지 않는 사람처럼 예사로이 마차를 향해 걸었다. 마차 안으로 자루를 밀어 넣은 그가 짧게 일렀다.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아고, 고마워요. 그렇게 신세를 또 져도 되나 몰라……. 이거 보답을 해야 하는데.”
저릿한 등허리를 두드리며 하이어드를 기다리고 있던 노파는 과분한 도움에 소탈하게 웃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괜찮습니다.”
딱딱하게 굳어 있는 입매가 벌어지며 정중하고 무거운 목소리를 냈다.
팔을 뻗어 문 옆구리를 쥔 하이어드가 마차에 올라서려는 듯 보이던 순간이었다. 그의 입매가 보다 더 서늘히 굳어 들었고.
새까만 눈동자가 정확히 베이지가 선 곳을 향했다.
“아.”
등줄기를 타고 옅은 소름이 일었다. 베이지는 작은 탄성과 함께 황급히 고개를 틀고 몸을 벽에 바싹 기대었다. 본능적으로 숨을 확 들이켠 그녀는 쿵쿵, 뜀박질하기 시작한 심장을 달래려 애썼다. 귓가에 제 심장이 요동치는 소리가 선연했다.
이리 드넓은 곳에서 숨조차 죽이고 있던 저를 발견했을 리가 없었다. 기척을 죽이는 법을 몸에 익힌 자신의 존재를, 전문적인 훈련도 받지 않은 사람이 알아차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연이겠지.
등을 맞붙인 돌벽에서 스며 나오는 한기가 두꺼운 옷을 후비듯 파고들었다. 살갗을 적시는 서느런 냉기 탓인지 옅은 소름이 등골을 죽 타고 올랐다.
베이지는 같은 말을 되뇌면서도 저벅거리는 발소리가 저를 향해 걸어오는 듯한 환청은 지워내지 못했다. 비굴하고 정직한 심장이 쿵쿵 뛰었다.
짧은 시간이 억겁같이 흘렀다.
다행히 한참이 지나도 이곳으로 다가오는 발소리는 없었다.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야 긴장으로 가쁘게 뛰던 가슴을 가라앉힐 수 있었다.
베이지는 제가 왜 숨었는지, 그 이유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그저 자신의 존재를 들키지 않은 것에 안도했다.
……가셨을까?
가만히 숨을 몰아쉬던 베이지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불현듯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스스로도 놀란 것이었다. 구태여 다시금 확인할 필요가 없는데 말이다.
베이지가 눈을 깜박이며 굳어 있던 몸에 힘을 빼려던 찰나, 그녀의 옆에서 고저 없는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아가씨.”
베이지는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르며 그대로 주저앉았다. 쿵 내려앉은 심장은 멈출 줄 모르고 세차게 달음박질했고, 그녀의 얼굴은 희게 질렸다.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르지 않은 것만으로도 용했다.
베이지를 부른 이는 멀리서 그녀를 뒤따라오고 있었던 애브였다.
“……무슨 일 있으셨습니까?”
애브는 별안간 자신을 보고 놀란 베이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묵묵히 그녀가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갑자기, 나타나서 조금 놀랐어요.”
베이지는 태연한 체를 하며 변명했다. 감정을 얼굴 위로 드러내지 않도록 훈육을 받고 자란 그녀이기에 목소리는 물론이거니와 얼굴 표정의 변화 또한 없었다. 신체적 반응으로 핏기가 가셔버린 얼굴을 숨기지 못하긴 했지만.
원체 심약한 편인 베이지가 이런 식으로 놀라는 게 그리 드문 일은 아니었기에 애브 또한 별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차츰 동이 트고 있었다. 안개가 채 걷히지 않아 말간 햇빛이 거리를 어슴푸레하게 밝혔다.
“이만 돌아가요.”
베이지는 때마침 미리 불러 두었던 마차가 오는 것을 확인하며 서둘러 주제를 돌렸다.
일자로 굳게 다물려 있던 하이어드의 입매가 눈앞에 잔상처럼 맴돌았지만, 베이지는 신전의 마차가 사라졌는지는 다시 살펴보지 않았다. 않으려 했다.
그녀는 그저 한 가지 사실을 끝없이 되뇌었다.
설령 진심을 다한 선의를 베푼 것일지라도, 그가 신의 타락한 종임은 변치 않는 사실이라고.
* * *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이었음에도 집무실을 환히 밝힌 샹들리에의 불빛은 꺼질 줄을 몰랐다.
스논 공작가의 후계를 위한 공간이니만큼 구색을 갖춰야 한다는 타데오의 명 아래 베이지의 집무실은 온갖 값비싼 것들로 가득했다. 채도가 낮은 녹색 계열의 벽지에 가구 곳곳을 휘감은 금테는 화려하면서도 은근한 기품이 배어 있었다.
참으로 귀족적인 집무실이었으나, 베이지는 그 고상한 분위기와 더없이 잘 어우러졌다. 그녀는 지치지도 않는지 허리를 곧게 편 채 미동 하나 없이 몇 시간 째 서류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었다.
잿빛이 도는 머리핀으로 흙색 머리칼을 뒤로 틀어 올리니 고아하고도 청초한 베이지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그녀가 깃펜을 움직일 때마다 눈가로 부드럽게 떨어지는 짧은 옆머리가 얇고 단정한 속눈썹을 스쳤다. 그 옆으로는 풍성한 속눈썹이 느릿하게 깜박이며 유리알 같은 연갈색 눈동자를 드러냈다. 매끄럽게 떨어지는 콧대와 동그란 콧방울은 가녀린 사슴을 연상시켰다. 무릇 왕국의 모든 영식들이 데릴사위로 들어오길 자처하게 만든다는 외모였다.
고운 콧대가 왈칵 구겨졌다. 신경 써 확인해야 할 부분에 선을 죽죽 긋던 베이지는 깃펜을 손에서 놓지도 않고 남은 서류들을 흘긋 곁눈질했다.
베이지의 체구에 비해 길고 넓은 책상 위는 서류 뭉텅이가 그득하게 쌓여 있었다. 그녀가 정리 정돈을 잘 하는 편이 아니었더라면 진작 뒤섞였을 정도로 엄청난 양이었다.
마약을 약품으로 뒤바꿔 수입하는 데 필요한 서류들과 홍등가가 위치한 페르몬트 거리를 확장하기 위해 평범한 상점이었던 건물을 매입할 서류까지, 살펴야 하는 것이 수도 없이 많았다.
아무래도 오늘 밤잠은 이루지 못할 듯했다.
사실 이 모든 서류들을 베이지가 직접 처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하나 그녀는 항상 사소한 서류들까지 모조리 가져오라 명했다.
원치 않았는데 이러한 일들에 개입된 무고한 이들을 구해낼 수 있기도 했고, 이러한 불법 행위에 연루된 자료들 중 일부를 제가 몰래 빼돌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지, 저것들은 벌을 받을 거란다. 고작 부 하나를 얻기 위해 두 손 가득 핏물을 묻히는, 사탄과 다를 바 없는 저런 족속들은 벌을 받아야 해.’
어머니가 누누이 이르시던 말씀이었다.
베이지는 이 말을 지금껏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었다. 타데오의 손에 길러지면서, 제 의지라고는 없이 그가 시키는 대로만 살아오면서 사명감처럼 가슴에 품은 말이었다.
베이지는 이 또한 제가 원하는 바인지는 확신하지 못했지만, 이 목표가 그녀를 움직이게 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는 알고 있었다.
베이지는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회가 올지 안 올지는 모르겠지만, 언제나 혹시라도 내어질 기회를 준비했다.
구체적으로 벗어날 방도는 찾지 못했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마약 밀매와 유통을 암암리에 허락하는 분위기였으며 권력을 가진 특권층이 그것들을 누리고 있었기에 그 분위기는 쉬이 바뀌지 않을 터였다.
유일하게 마약류를 엄격히 금하는 나라가 있다면 가장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아트로테인 제국뿐일 테지만, 본국과 이를 드러내고 싸울 정도로 사이가 몹시 좋지 않았다.
제국 측과 접촉을 하려 했다가는 채 자리를 만들기도 전 타데오에게 뒷덜미를 잡힐 터였다.
베이지는 때때로 자신의 무능함에 죄스러움을 느끼기도 했다. 마약으로 인해 삶이 무너져버린 사람들을 볼 때면 마음 한 켠에 자리한 죄책감은 보다 더 극심해졌다.
하지만 그러한 기분에 잠식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보다는 나을 테니까…….
잠시 뻐근한 어깨를 작은 손으로 꾹꾹 주무르던 베이지는 다시금 업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서둘러 끝내야 했다. 내일 일정을 위해서 두어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야 했으니까.
깃펜이 종이 위를 오가는 사각거리는 소리만이 집무실을 메웠고, 베이지가 자리에서 일어난 건 그로부터 두 시간이 훌쩍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추후 일정에 대해 상의하고자 타데오를 만나러 가기 위한 것이었다.
제가 독단적으로 정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아버지를 만나 봬야 했다.
베이지는 오늘 저녁 즈음 저택을 방문한 신전의 마차를 떠올리며 응접실로 걸음을 옮겼다.
아마 지금 즈음 접대를 하고 계시겠지.
낮과 달리 서늘하게 식은 복도는 하인 한 명 오가지 않았다. 한적한 복도에 곧은 구두 소리만이 선명하게 울려 퍼질 뿐이었다.
베이지는 대리석으로 된 바닥이 청량하게 밟히는 소리를 귀담아들으며 복잡하던 머릿속을 정리했다. 머리를 비워내며 걷다 보니 어느새 벽 너머로부터 새어 나오는 듯한 먹먹한 소리가 귓가를 두드리고 있었다.
마약을 구매해 줄 스논 공작가의 돈줄이자, 후원자인 그들은 성별은 물론이거니와 신분조차 불문하고 공작저로 모여들었다. 때문에 복도까지 울려 퍼지는 소리는 각양각색이었다.
간드러지는 여자의 웃음소리부터, 주체하지 못하고 쏟아내는 신음 소리, 허풍을 떨며 목청껏 소리치는 목소리까지.
인상을 찌푸릴 법도 하건만, 베이지의 얼굴에는 이렇다 할 변화 하나가 없었다. 불유쾌한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였으나 그렇다고 특별히 인상을 찌푸릴 만큼 저런 소리들이 크게 다가오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타데오의 개인 응접실 앞에 다다르자, 그 앞을 지키고 있던 기사 하나가 익숙한 일인 듯 베이지에게 짧게 묵례하며 문을 열었다. 금테로 휘감긴 문에는 비늘이 굵은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는 형상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육중한 문이 열리고, 문 하나가 가로막고 있던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버글거리는 소리들이 그녀를 덮쳤다.
베이지는 열린 틈새로 새어 나오는 희뿌연 연기를 맞으며 응접실로 들어섰다. 방으로 한 걸음을 내딛자마자 콧속으로 불쾌한 향이 파고들었다.
방문 사실을 따로 알릴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이 방 안에 있는 자들은 모조리 약에 찌들어 사리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드넓은 응접실은 오직 이러한 접대만을 위해 꾸며진 방이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크리스털이 촘촘하게 박힌 샹들리에가 뿜어내는 은은한 빛은 화려하게 산란되어 방 곳곳을 장식한 진귀한 세공품들을 밝혔다. 하나 그렇다고 모든 것을 밝히지는 않았다. 적당히 욕정을 일게 할 만큼, 은근하게 시야를 틔워 줄 뿐이었다.
중앙에는 방의 끝과 끝을 잇는 긴 테이블이 위치했고, 널찍한 소파 여러 개가 그 주위를 둘러싸듯 놓여 있었다. 대화를 나누면서도 각자에게 딸린 남녀와 재미를 보라는 뜻이었다.
베이지는 그 어느 곳에도 시선을 두지 않은 채 평온한 얼굴로 상석에 앉은 타데오에게로 향했다.
애초에 시선을 둘 수도 없었다. 많은 양의 약을 한 번에 태운 탓에 방 안 가득 뿌연 연기가 끼어 있었으니까.
어려서부터 각종 약물들에 수도 없이 노출되어 강한 내성이 생긴 베이지는 의연할 수 있었으나, 다른 이들은 숨만 한 번 들이켜도 진탕 취할 정도의 양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은 생각에 걸음을 보채던 중, 작은 목소리 하나가 그녀의 발목을 잡아챘다.
베이지의 얼굴이 이유 없이 얼어붙었다.
“아흑. 빨리, 넣어 주세요.”
자욱한 연기 새로 느른하게 소파에 몸을 기댄 남자는 옅게 미간을 찌푸린 채 제 머리칼을 쓸어 넘겼다. 베이지에게도 몹시 낯이 익은 사내였다.
정사를 부추기는 흐릿한 조명이 하이어드의 형체를 희미하게 드러냈다. 무엇 하나 또렷하게 보이지 않는 이 심해 같은 곳에서, 꾸며진 외형에 가려져 있던 그 특유의 분위기가 도드라졌다.
신전에서 나고 자란 고고한 사제라기보다는, 묵직하게 눌러앉아 진창으로 끌고 갈 듯 어둡고도 탁한 분위기가.
여느 때처럼 단정한 사제복을 차려입은 하이어드는 옷 한 꺼풀 벗지 않았으나, 왠지 평소와 달리 흐트러진 듯 보였다. 그의 위에 올라탄 채 허리를 흔들어 대는 여자가 그런 분위기에 큰 몫을 한 걸지도 몰랐다.
마치 정사라도 나누는 것처럼 하이어드의 하체에 제 음부를 바싹 밀착시킨 여자는 계속해서 그를 졸랐다.
속이 훤히 비치는 얇은 천을 입은 여자는 그마저도 제대로 걸치고 있지 않았다. 그녀는 약에 흠뻑 취한 듯 비틀거리는 몸짓으로 한 손으로는 훤히 드러난 제 젖가슴을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가슴을 쥐어 보라는 듯 하이어드의 소매를 끌어당기며 보챘다.
베이지의 시선이 소파 등받이에 느른하게 걸쳐진 하이어드의 팔에 닿았다. 그의 팔은 돌덩어리라도 되는 양 미동도 않고 있었다.
베이지는 그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쩌면 그녀는 본인이 걸음을 멈췄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지도 몰랐다. 상아색 동공이 단 한 번도 정사를 치르지 않은 듯 깨끗한 사제복을 눈에 담았다.
……그쪽으로는 관심이 없으신 걸까?
그때였다. 음탕한 여자의 몸짓에도 내내 건조하게 내리깔려 있던 새까만 눈동자가 일순 느릿하게 들려 올라가며 베이지가 선 곳으로 향했고, 순식간에 두 시선이 허공에서 단단히 얽혀들었다.
베이지의 심장이 저 아래로 처박혔다. 그녀는 자신을 얽어 들어오는 검은 동공에서 눈을 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숨을 멈췄다. 하얗게 점멸해 버린 머릿속에서는 간단한 단어들조차 흐르지 않았다.
먼저 움직임을 보인 건 하이어드였다. 그는 늘쩍지근한 몸짓으로 제 앞에 앉은 여자의 머리칼을 잡아챘다.
핏줄이 두툴하게 돋은 거대한 손아귀가 가느다란 은색의 머리칼 사이를 파고들어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기는 형상이 전에 없이 선명했다.
베이지는 헐벗은 여자의 형체가 하이어드의 위로 겹쳐지는 것을 시선에 담다, 급히 눈을 떼어 냈다. 제가 시선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저를 따라붙던 꺼먼 동공이 잔상처럼 맴돌았다.
어…….
베이지는 제가 눈을 돌린 것임에도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몇 차례 눈을 깜박였다.
숱하게 보아 왔던 남녀의 정사 장면 중 하나일 뿐이었다. 새삼스레 부끄러울 것도 없었고, 입을 맞춘 것조차 아니었다. 그저 여자의 몸이 허물어지는 형체만을 본 것뿐인데…….
타액이 오가는 질척거리는 소리가 꾸역꾸역 귓속으로 새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그들로부터 파생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베이지는 확인하고자 눈을 다시 돌리지 못했다. 그녀는 집요하게 자신을 따라붙는 것 같은 시선 또한 제 착각이라 치부했다.
왜인지 목구멍이 꽉 죈 듯 숨 쉬기가 벅찼다.
“거기 서서 무얼 하는 게냐.”
갑작스레 날아든 엄한 꾸짖음이 혼란하던 베이지의 정신을 수면 위로 끌어 올렸다.
베이지가 응접실로 들어선 순간부터 그녀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었던 타데오가, 기다리다 못해 그녀를 부른 것이었다.
상석에 앉은 타데오는 굼뜬 딸의 행동을 꾸짖듯 짧게 혀를 찼다. 그의 목소리는 몽롱한 기색 하나 없이 또렷했다.
그 또한 소량씩 흡입해 가며 약물들에 내성을 만든 상태이기도 했고,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는 절대 약을 입에 대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베이지는 제 잘못을 시인하듯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곧바로 타데오에게로 다가갔다.
추려진 일정을 보고하고 타데오의 의견을 물으면서도,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앉은 방향을 향해 단 한 차례도 눈길을 던지지 않았다. 이상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단 한 번도.
그녀는 끝내 그곳을 다시 바라보지 않고 집무실을 벗어났다. 내내 긴장했던 이처럼, 밖을 나설 무렵에는 이미 온몸에 진이 다 빠져 있었다.
제가 보기 전까지 몇 시간을 옷깃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앉아 있던 사내가 왜 저와 눈을 맞추자마자 보란 듯이 그런 움직임을 취한 것인지 그녀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마치 일말의 기대를 품었던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실은 그가 선한 사람일 수도 있지는 않을지, 헛된 망상을 한 제게 본인이 타락한 사제라는 사실을 새겨주듯이.
베이지는 이내 모든 생각을 떨쳐내며 돌아섰다.
착각이겠지. 그가 제게 구태여 저런 모습들을 보여 줄 필요는 없었다. 다른 속뜻이 있지 않고서야.
그는 그저 평범하게 권력과 부를 탐하길 원하는 남자였다.
짙은 피로감 때문인지, 밤이 몹시도 길 듯했다.
* * *
죽이거라, 어서.
어둠 속이었다.
달빛을 받아 더 샛노래진 눈동자는 선택을 종용하기 시작했다.
못 하겠느냐? 안타깝구나.
이 아이는 내 친히 손 봐 주도록 하마. 네 어미는 고통에 허덕일 텐데…… 미련한 네 탓이니 곁에라도 있어 드리거라.
베이지 스논. 똑똑히 듣거라. 네가 지금 해내지 못한다면, 이 아이는 너 때문에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란다.
끊임없는 메아리가 웅웅 머릿속을 울리고 몸속을 가득 채워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 하게 했다.
매번 같은 협박이었고, 알면서도 넘어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의 손아래 들어가면 이 아이는 평범하게 죽지 못할 테고 어머니는 진통제 하나 없이 이 길고 긴 밤을 나셔야 했다.
손에 쥔 단도는 무거웠다. 몸이 축축 늘어졌다.
눈물에 젖어 퉁퉁 부은 눈으로 아래를 확인했다.
작다. 보송하고 새하얀 털은 제 죽음을 아는 것처럼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증거였다.
눈을 감았다. 손아귀에 전해지는 칼자루의 감촉이 따가웠고, 지하실 가득 배어 있는 쇠냄새가 콧속으로 훅 끼쳤다.
한 번에 성공해야 한다.
손끝이 떨리고, 심장이 뻐근할 정도로 세차게 박동했다.
천천히 칼을 쥔 두 손을 들어 올렸다.
솨악.
눅눅한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리고…….
헉!
꼭 감겨 있던 베이지의 눈꺼풀이 들어 올려지며 공포에 잠식된 모래색 눈동자가 드러났다.
……또 꿈이었다.
베이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손안에 가득 쥐여 진 이불을 쥐었다 폈다 반복하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귀에 담았다.
그곳이 아닌 이곳이 현실이라, 스스로에게 상기시키기 위함이었다.
“아니, 아니야…….”
처음 동물을 죽였던 날의 꿈이었다. 작고 가냘픈 토끼였다.
베이지는 심약하고 담력이 없다는 이유로 주기적으로 짐승들을 죽여야 했다. 겨우 열댓 살을 먹었을 무렵부터 대여섯 달에 한 번씩 동물을 죽여야 했으나, 그녀는 지금까지도 그런 행위에 전혀 익숙해지지 못했다. 일을 마친 후 토악질을 하는 것은 물론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더욱 절망적인 건, 앞에 놓이는 짐승들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종국에는 그 앞에 사람이 놓일 테다.
베이지는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바깥은 노르스름한 달빛이 새까만 밤 위를 뒤덮고 있는 적요한 풍경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침이 오지 않았으면 했다. 벌써 내일이었다. 자신이 다섯 달간 기른 살쾡이가 지하실로 끌려가는 날이.
“하…….”
베이지의 붉은 입술이 꾸물거렸다. 도저히 죽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작게 한숨을 내쉬던 베이지는 얇은 로브를 집어 들었다. 그녀는 두텁고 검은 로브로 제 몸을 폭 덮으며 탁상 위에 놓여 있던 열쇠를 집어 들었다.
혹시 그 근처를 지키는 경비병이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다면…….
멋대로 행동했다가는 종잡을 수 없는 타데오의 처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었다.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할 걸 알면서도 베이지는 살쾡이의 우리가 있는 별관으로 향하는 걸음을 멈추지 못했다.
미련하게도 처음에는 아버지가 힘들어하는 저를 위해 동물을 내어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작은 토끼가 자신의 잔혹성을 기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동물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부터 베이지는 제 앞에 내밀어지는 생명들에게 정을 주지 않고자 부단히도 노력했다.
당장 이 짐승을 죽이지 않으면 다른 것의 목숨이 흐무러지니 죽이는 건 피할 수 없었다. 그러니 숨통이라도 트기 위해 정이라도 붙이지 않으려 애쓰는 것이었다.
하나 타데오는 그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간은 바깥 우리에 가둬두고 주기적으로 방문하도록 명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하지만 베이지가 멀찍이 서 있다 돌아온다는 걸 보고받은 순간부터 타데오는 동물들을 억지로 그녀의 방에 들여놓기 시작했다.
생명이었다. 소리를 내고 움직일 줄 알았고, 눈길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나 이번 살쾡이는 어디에서 데려온 것인지, 경계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사람을 좋아하고 잘 따랐다.
두 손바닥만 한 털뭉치는 제가 시선 한 번 주지 않아도 곁을 맴돌았고, 다리맡으로 와 머리를 비비기도 했다. 무릎을 타고 올라와 태연히 몸을 누이던 살쾡이의 부드러운 감촉과 따뜻한 온기가 아직까지 선연했다.
그 후로도 애써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단단히 정이 들어버린 상태였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베이지는 당장 몇 시간 후 제 손에 쥐여질 단도를 떠올리다 머리를 흔들었다. 머릿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장면들을 떨쳐내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그녀가 별관 뒤의 창고에 다다를 즈음이었다.
베이지의 회황색 동공이 사방을 훑었다.
이상했다. 순찰을 도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별관은 베이지의 침실이 있는 건물과 가까이 붙어 있었다. 층계를 내려가 작은 분수대가 있는 정원을 가로지르는 동안 최소한 한두 명은 마주쳤어야 하는데,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정말 아무도 보이지를 않았다.
베이지는 건너편에 있던 긴 회랑을 따라 걸으면서 계속해서 주위를 살폈다. 머지않아 길이 뚝 끊기는 구간이 나타났다. 이곳에서 우거진 수풀을 밟고 왼쪽으로 꺾으면 살쾡이가 갇힌 큰 철창이 바로 보일 것이었다.
고로롱…….
멀리서 들려오는 살쾡이의 울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베이지는 속에서 차오르는 기대를 눌러 내리지 못했다.
만약, 만약 살쾡이가 도망갈 수 있도록 몰래 빼돌릴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지?
처음에는 분명 보기만 하고 돌아갈 생각이었다. 제가 풀어준들, 공작저의 외벽이 높은 탓에 살쾡이가 타고 올라갈 수도 없을뿐더러 제 얼굴을 모르는 이가 없는 저택에서 정문을 통해 데리고 나가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방법을 떠올려 보고 있었다. 만약 살쾡이가 무사히 도망가게 되면 그 대가로 타데오가 다른 목숨을 거두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녀는 몽글몽글하게 솟는 생각을 멈추지 못했다.
은은하게 내려앉은 어둠 속, 베이지는 차가운 돌벽을 더듬더듬 매만져 가며 걸음을 옮겼다. 의지할 데라고는 달빛뿐이었는데 그마저도 건물에 가려져 시야가 선명하지 않았다. 손가락 끝에 직각으로 꺾인 벽이 닿아왔다. 철창으로 향하는 마지막 모퉁이였다.
그 순간, 소름 끼치도록 낮은 음성이 베이지의 귓바퀴를 훑었다.
“살쾡이라.”
굵은 저음이 막힌 곳 하나 없이 드넓은 풀숲 위로 퍼졌다.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한순간에 베이지의 몸이 바짝 얼어붙었다. 그녀는 벽에 한껏 몸을 붙인 채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어 상황을 엿봤다. 엷은 황갈색 눈동자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깃들었다.
저 사내가 왜 이곳에…….
하이어드가 공작저에 있는 것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접대 자리가 있는 날과 같이 필요한 때에 저택에서 머물곤 했으니까. 하지만 그가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곳은 별관 뒤에 위치한 창고였다. 별관 자체도 공작저의 본관과는 거리가 꽤 있는 편이었으니, 본관에 머무는 하이어드가 길을 잘못 들었을 확률은 몹시 희박했다.
아주 만약에 하인들의 대화를 들었다면, 이곳에 살쾡이가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살쾡이를 보기 위해 하이어드가 걸음 할 이유는 없었다.
불길한 생각이 꾸물꾸물 베이지의 몸을 타고 올랐다.
우거진 나뭇가지 사이를 뚫고 새어 들어오는 노르스름한 달빛이 철창 위를 비추었다. 살쾡이는 여느 때처럼 낯선 이에게 이도 세우지 않고 하이어드에게로 다가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하이어드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자, 살쾡이는 베이지에게 했던 것처럼 창살 사이로 조그마한 앞발을 내밀어 그에게 닿을 때까지 휘저었다. 작은 발이 새까만 구두 위를 툭툭 쳐댔다.
잠자코 그 모습을 내려다보던 사내의 입에서 탁하고 무거운 목소리가 짧게 울렸다.
“겁도 없군.”
검고 거대한 형체가 움직임을 보였다. 베이지는 숨을 죽인 채 하이어드가 하는 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이어지는 그의 행동에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끼이익, 녹슨 철창문이 열리는 소리가 귀를 찢었고, 품에서 꺼낸 열쇠로 자물쇠를 끄른 하이어드가 열린 철창 사이로 살쾡이를 안아 들었다. 한 손으로 집어 들었다고 해야 맞을 만큼 투박한 손길이었다.
베이지의 상아색 눈동자에 여러 감정들이 뒤섞여 맴돌았다.
그가, 왜? 살쾡이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거지? 설마…… 아버지가 명한 일일까? 살쾡이를 죽이라고?
아니, 아버지가 일개 사제에게 살쾡이를 죽이라 명했을 리가 없었다. 오히려 제게는 직접 죽이는 것보다 덜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니.
살쾡이가 남의 손에 죽는다면, 효율을 중시하는 타데오에게는 몇 달간의 노고가 물거품이 되는 격이었으니 그는 틀림없이 몹시 분개할 것이었다.
그렇다면 왜?
그때 그간 있었던 일들이 혼란한 시야 사이로 스쳐 지나가며 베이지의 머릿속에 하나의 가정을 남겼다.
흙물에 옷이 더럽혀지는 것도 개의치 않으며 노파를 돕고, 본능에 눈이 먼 짐승들의 우리에서도 홀로 정절을 지키듯 앉은 모습이…….
그때 하이어드가 발길을 돌리려는 듯 움직임을 보였고, 베이지는 그대로 황급히 자리를 벗어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잠기운이 모조리 달아난 상태였지만, 베이지는 침실로 돌아와 억지로 몸을 뉘었다. 손과 발이 바깥으로 나오지 않도록 이불 속으로 꼼꼼히 밀어 넣은 그녀는 눈을 감았다.
소리 하나 내지 않았으니 분명 들키지 않았겠지만, 왜인지 하이어드라면 제가 엿보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자리를 벗어났음에도 베이지의 정신은 아직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날 밤 내내,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 날 베이지가 예견했던 대로 별관의 우리에 갇혀 있던 살쾡이가 사라진 사실이 밝혀져 공작저가 발칵 뒤집혔다.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린 살쾡이의 존재에 타데오가 분개하며 경비를 강화하라 일렀다. 하지만 다행히 그 외에는 별다른 피해가 발견되지 않았고, 살쾡이가 홀로 우리를 벗어났으리라는 쪽으로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본관과 별관을 잇는 회랑은 사방이 뚫려 있어 정오의 환한 햇살을 모두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러한 회랑 위를 가로지르는 작은 인영 하나가 있었다. 꼿꼿이 걸음을 옮기던 작고 가느다란 여체는 별안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하…….”
베이지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몸을 웅크렸다.
살쾡이가 없어진 것에 대한 의심의 화살은 베이지에게로 돌아가지 않았으나, 살쾡이를 죽이지 못하게 된 대신 그에 응당하는 훈육은 행해야 한다며 타데오가 그녀를 고문실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그래도 그 살쾡이를 죽이는 것에 비하면 나았다. 봐도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잔혹스러운 광경에 여느 때처럼 토기가 치밀었으나 오늘만큼은 참을 만했다.
다만 예고 없이 불려가는 바람에 미리 속을 비워 놓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아침에 먹은 거라곤 고기 수프와 빵 몇 조각이 전부였으나 그것도 음식이라고 속에서 메스꺼운 기운이 올라오고 있었다.
어찌저찌 밀려오는 토기를 눌러 내리며 본관 근처까지 왔지만 더 이상은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마침 회랑을 지나는 이가 아무도 없어, 베이지는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갈 요령이었다.
기둥 사이로 몰아닥치는 바깥바람을 쐬니 속이 조금 괜찮아지는 듯도 했다. 베이지가 그렇게 숨을 몰아쉬며 잠시간 앉아 있던 때였다.
묵직한 구둣발 소리가 고요한 복도 위로 내려앉았다.
잔잔히 바람 부는 소리만이 고여 있던 회랑 위로 끼어든 기척에 베이지가 고개를 들자, 새까맣고 거대한 그림자가 그녀의 눈에 비쳤다.
대리석으로 된 복도 위로 내려밟는 검은 구두코와 빳빳한 사제복 바짓단, 흰 성직 칼라가 차례로 상아색 눈동자에 담겼다.
하이어드……?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얼굴까지는 확인하지 못하고 급히 턱을 내려야 했다. 머리를 들자 다시금 구역질이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흡…….”
베이지가 작은 손으로 주먹을 말아 쥔 채 입가에 꾹 대고 있던 도중이었다. 까만 구둣발이 그녀의 앞으로 와 멎었다. 그녀는 시야 끄트머리로 닿는 구두코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체면치레를 할 만한 몸 상태가 아니었다. 하지만…….
공작저의 사정을 모르는 이에게 이런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보이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몰랐다.
내심 하이어드가 모르는 체 지나쳐 주기를 바랐던 베이지는 속을 가다듬으며 일어서려 했다. 그녀가 다리에 힘을 주려던 찰나였다.
“괜찮으십니까.”
다듬어지지 않은 투박하고 굵은 목소리가 베이지 위로 떨어졌다. 그에 반응하듯 저도 모르게 시선을 들어 올린 베이지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 떨렸다. 어느새 몸을 숙인 하이어드의 꺼먼 시선이 바로 코앞에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
그 버겁도록 집요한 눈길에 베이지의 곧은 손끝이 얕게 말려들었다.
언제부터 보고 있으셨던 거지…….
서로의 숨결마저 느껴질 법한 거리감에 베이지는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꾹 물어 숨을 삼켰다. 상아색 동공에 선명한 상이 맺혔다.
거칠게 조각된 하이어드의 얼굴 위로는 아무런 감정도 엿보이질 않았다. 무감하기 그지없는 하이어드의 얼굴을 눈 안 가득 담아내던 베이지의 시선은 그의 무채색 눈동자에 닿고서야 멈추어 섰다. 수면 아래 미동도 않고 고여 있는 물처럼 검은 동공은 순식간에 그녀를 옭아맸다.
베이지의 입술이 의미 없이 달싹였다. 이번에는 하이어드의 시선이 그녀를 느릿하게 훑어 내렸다. 느리게 굴러떨어지는 시꺼먼 동공의 움직임이 왜인지 색스럽게 느껴졌다. 이미 발을 뺄 때를 놓친 흙색 동공은 그 도색적인 움직임에 가만히 박혀 있을 뿐이었다. 목구멍이 조여들었다. 그녀는 왠지 모를 압박감을 느꼈다.
그날, 안개가 자욱한 거리에서 선의를 베풀던 사내와는 전혀 달랐다. 지금 베이지의 앞에 선 사내는 축축하고 음습한 기운만을 품은 채였다.
어제 몰래 지켜보았던 하이어드의 모습이 이 위로 겹쳐져, 베이지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대체 무엇이 진짜인지 저 눈동자 속을 헤집어 보고 싶었다. 어제 왜 살쾡이를 구해 준 것이냐 묻고 싶은 마음 또한 치솟았다.
살쾡이는 왜 구해 주신 걸까. 사체가 발견되지 않은 걸 보면 공작저를 나설 때 함께 데리고 나가신 듯한데, 혹 들키기라도 했다면 분명 쉽게 무마될 만한 일은 아니었다.
왜 위험을 무릅쓰고…….
그때 아득한 기운에 젖어 있던 베이지의 정신 위로 걸걸한 저음이 쏟아졌다.
“땀을.”
많이 흘리셨습니다.
푹 꺼진 저음이 눈꺼풀 위로 내려앉으며 베이지의 몸이 반사적으로 굳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코끝으로 묵직한 체향이 훅 끼쳐왔다.
하이어드의 커다란 손바닥은 주저함 없이 베이지의 귓가로 뻗어져 나갔다. 베이지의 손과 달리 그 크기가 가히 얼굴을 다 뒤덮을 만큼 두텁고 거대한 손아귀가 그녀의 시야를 가득 메웠다.
“읏…….”
굳은살이 박인 딱딱한 손끝이, 땀에 젖은 베이지의 머리칼을 그녀의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인형의 것처럼 얇다란 머리칼에 비해 뼈마디가 도드라진 손가락이 더없이 굵은 탓에 손짓은 투박했다. 동그란 이마 위로 흐트러져 있던 얇은 모래색 머리칼이 조그마한 귀 뒤로 넘어가며 말간 그녀의 얼굴을 드러냈다.
자신이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베이지는 몸을 움츠리며 얌전히 하이어드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숨을 제대로 내쉬질 못해 머리가 상황을 더디게 따라가고 있었다.
베이지가 가뜩이나 작은 몸을 더 작게 마는 모습에 그녀의 위에서 푹 꺼진 웃음소리가 흘렀다.
베이지가 그 웃음을 채 인지하기도 전, 뜨겁고 거친 무언가가 축 늘어져 있던 그녀의 손바닥을 감싸 왔다. 그녀는 갑작스럽게 닿는 것에 놀라 눈을 아래로 확 내렸다.
베이지의 손을 감싼 건 다름 아닌 하이어드의 손이었다. 신전에서 나고 자란 사제의 손처럼 느껴지지 않는 그의 손은 굳은살이 가득 박여 꺼끌했다. 그로서는 가볍게 쥔 것일 테지만, 그녀에게는 고통으로만 느껴지는 강한 악력에 그녀가 옅은 신음을 흘렸다.
그때 둥글게 오므라든 작은 손아귀에 부드러운 무언가가 놓였다.
자수 하나 박히지 않은 흰 손수건이었다.
“쓰십시오.”
귓바퀴로 내려앉는 목소리는 버겁도록 무거웠다. 직선적으로 내리꽂히는 하이어드의 둔중한 눈길을 받아내던 베이지는 견디지 못하고 눈을 내리깔았다.
붉고 도톰한 입술이 짧게 달싹였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감사의 말을 전하려 입을 떼던 순간이었다.
“감…….”
진한 나무 냄새가 베이지에게서 멀어졌다. 사내는 베이지의 감사 인사 따위는 관심 밖이라는 듯, 제 용무가 끝나자 기다림 없이 몸을 일으켜 자리를 떴다.
자칫 무례하다 여겨질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베이지의 미간은 구겨지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미련 없이 몸을 떼어 내고 사라지는 하이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제 손에 쥐어진 손수건으로 고개를 내렸다.
코끝에 탁하게 남은 체향에 어느새 울렁거리던 속이 가라앉아 있었다. 숨을 내쉬는 것도 잊은 채 오롯이 하이어드의 시선을 마주하기 바빴던 베이지는 그제야 색색,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알 수 없는 사내였다.
베이지의 손끝에 밴 무거운 나무 냄새는 며칠이 지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 * *
이른 오후부터 세차게 내리기 시작한 비는 저녁 즈음이 되자 차츰 사그라들기 시작했고, 완연한 어둠이 내려앉을 무렵이 되어서는 부슬부슬 잔디를 적시는 수준으로 그 기세가 꺾여 있었다.
며칠간 쌓인 피로에 일찍 잠에 들었던 베이지는 자정을 알리는 괘종시계 소리에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는 잠에 취한 몽롱한 눈으로 창밖 너머를 내다봤다.
푸릇푸릇한 잎으로 휘감긴 거대한 고목은 이 층에 위치한 침실까지 제 가지를 뻗고 있었다. 빗물에 젖은 나뭇잎이 평소보다 더 짙은 녹빛을 띠었다.
그러고 보니 비가 왔었지.
깨닫고 나니 작지만 나뭇잎 위를 후두둑 두드리는 빗줄기 소리가 귀에 담겼다.
베이지는 활짝 열린 창 너머로 새어 들어오는 한기를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작은 테이블 옆 의자에 걸쳐져 있던 모포를 집어 든 그녀는 곧바로 후원으로 향했다.
베이지는 비 오는 날 밤의 후원을 그 무엇보다 좋아했다. 후원은 그녀가 유일하게 자유로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축축하게 젖은 잔디 위로 발을 디디자 머금고 있던 물기가 쥐어짜지는 듯 빠득거리는 소리가 퍼졌다.
온통 빽빽한 나무들로 둘러싸인 후원은 빗물에 젖어 여느 때보다 녹음이 더 짙었다.
베이지는 사시사철 푸릇한 잎을 매다는 나무들이 싱그러운 녹색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숨을 들이켰다. 그녀의 작은 코가 움찔거렸다.
그녀는 모포로 몸을 더 단단히 휘감으며 손바닥을 펴 그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을 눈에 새겼다. 비를 머금고 한층 더 선선해진 바람이 두 볼을 차갑게 스치는 느낌이 좋았다.
베이지는 작은 돌들을 이어 만든 길을 따라 걸으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은 외부 일정 탓에 하이어드가 방문하는 시간에 맞춰 그를 맞이하지도, 그의 얼굴을 보지도 못했다.
베이지는 그 바닥이 보이지 않던 하이어드의 짙고 검은 눈동자를 머릿속에서 덧그렸다. 그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의 뒤를 좇는 것이었다.
베이지는 자신의 하얀 뒷목이 발갛게 물드는 것 또한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모포를 꼼꼼히 둘러싼 탓에 조금 따뜻하구나 여길 뿐이었다.
그렇게 모포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찬찬히 번지는 달빛을 따라 후원을 거닐던 때였다.
읏…….
갑작스레 들려오는 짙은 신음성에 베이지가 주위를 훑었다. 그때 그녀의 시야 끝자락에 무언가 걸려들었다. 굵은 나무 기둥의 뒤, 검은 인영이 얼핏 비쳤다.
……하이어드?
오르락내리락 숨을 내쉴 때마다 탄탄한 등의 윤곽이 드러나는 검은 사제복을 입은 이는, 하이어드였다.
뜻밖의 인물을 발견한 베이지의 동그란 눈이 더 동그랗게 뜨였다.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거지?
나무뿌리에 걸터앉아 짙은 숨을 내쉬고 있는 하이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던 베이지는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갔다.
“사제님? 여기서 뭘 하고 계시는…….”
촉촉하게 젖은 잔디를 밟으며 다가오는 발소리와 낯익은 베이지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하이어드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로 향했다.
하이어드의 짙은 속눈썹이 나른하게 위아래로 왕복했다. 그 아래로 자리한 검은 동공은 한없이 탁했다. 그가 그녀에게 처음으로 드러내는, 날 것 그대로의 시선이었다.
“……영애.”
잔뜩 메말라 거칠게 갈라지는 목소리가 베이지의 귓가를 간질였다.
하이어드의 얼굴을 정면으로 마주한 베이지의 볼이 옅게 달아올랐다.
가슴께가 뻐근하리만치 색정적인 모습이었다. 식은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있는 검은 머리칼은 평소보다 더 짙었고, 열기로 인해 붉게 달아올라 있는 귓가와 퍼런 핏줄이 불거진 목은 정욕을 자극했다.
한쪽 무릎을 접어 그 위로 팔꿈치를 걸친 하이어드는 커다랗고 투박한 손으로 자신의 머리칼을 느릿하게 쓸어 넘겼다. 정신을 또렷이 하려는 행위였으나 손아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베이지는 홀린 듯 천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언제나 주름 하나 없이 단정하기만 하던 검은 하의는 팽팽하게 솟은 둔덕을 중심으로 그의 왼쪽 다리를 타고 선명한 주름이 져 있었다. 감출 수 없이 불룩 튀어나온 무언가는 길고 두꺼웠으며, 한껏 휘어 있었다. 마치 처음부터 그 안에 수납이 불가능한 물건이었던 것처럼.
“영애께서, 신경 쓰실 바가 아니니.”
돌아가십시오.
베이지의 시선을 알아챈 하이어드는 뒤늦게 이를 악물고 문장을 토해냈다. 잔뜩 쉬어 있는 저음에는 숨기지 못하는 욕정이 자글거렸다. 언행조차 평소와 달리 상당히 거칠었다.
몸을 틀 기력조차 없는지 하이어드는 말을 뱉어낸 후 그저 입술을 깨물 뿐이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치열이 붉은 입술을 베어 무는 모습이, 음심을 자극하는 줄도 모르고.
파삭. 베이지는 홀린 듯 밤이슬을 품은 풀을 밟고 한 발 더 다가섰다. 노골적인 그녀의 시선에 하이어드의 아래가 더 부풀어 올랐다. 희미한 달빛 아래 두툼한 그것의 윤곽이 더욱 또렷이 드러났다.
“……하.”
그 순간 하이어드가 꽉 다문 잇새로 억눌린 신음을 뱉었고, 그의 전신이 움찔 떨리며 단단한 등허리가 곱아들더니 까만 하의의 한 부분이 더욱 새까맣게 물들었다.
……젖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베이지의 머릿속에 낮에 타데오가 시종에게 명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 건 특별히 더 효능이 강한 특상품으로 골라서 가져오도록 하거라. 귀한 손님들께 대접할 예정이니.’
잔뜩 발정 난 하이어드의 하체를 바라보던 베이지가 시선을 들어 올렸다. 음욕이 번들거리는 그의 검은 동공이 올곧게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애락초인가?
타데오는 본격적으로 약을 유통하기 전 아직 희귀한 물건이라는 사실을 내세워 접대 자리에서 태워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 대우받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였다.
베이지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눈길로 하이어드를 바라봤다.
접대 자리였다면 타데오가 매춘부와 매춘남을 부르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는 이곳에 있을 것이 아니라, 지금쯤 욕정에 휩싸여 질펀한 정사를 벌이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어째서…….
“하.”
베이지의 머릿속을 배회하던 아주 작고도 사소한 의문은 짙게 터지는 하이어드의 한숨 한 번에 바삭 꺼졌다.
그녀의 시선이 검은 동공을 삼킨 눈꺼풀과 곧게 뻗은 콧대, 붉은 입술을 차례로 맛본 후 악다물어 거칠게 모양이 드러난 턱뼈와 힘줄이 도드라진 굵은 목을 타고 흐르는 땀방울을 훑어냈다.
애락초는 그 효능이 몹시 강했다. 그리고 그 효능이 강한 만큼 부작용 또한 심했다. 애락초로 인해 차오르는 성욕을 해소하지 않는 경우 그것은 그 어떠한 독약보다 극심한 고통을 유발했다.
모래색 눈동자에 고민스러운 기색이 스몄다.
평소라면 그 어떤 누가 괴로워하고 있더라도, 특히 이 집안에 머무는 이라면 더더욱 개의치 않고 모른 척 지나쳤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왠지 눈길을 뗄 수 없었다.
분명, 괴로우실 텐데.
언제나 무감하던 하이어드의 얼굴은 고통으로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열이 올라 벌겋게 물든 그의 목덜미를 말없이 바라보던 베이지는 이내 결정을 내린 듯 걸음을 옮겼다.
사실 반쯤은 충동이었다. 베이지는 태어나 지금껏 제가 원해서 무언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학대받고 자랐을뿐더러 고작 해 봐야 홍등가나 드나들며 자란 마당에 그녀의 마음을 동하게 하는 일이 존재할 리도 없었다. 그런데 일순, 이 사내의 고통을 꺾어 주고 싶은 마음이 피부에 스미듯 차오른 것이었다.
페르몬트 거리를 거닐면 발길에 수도 없이 치이는 게 널브러진 남녀였다. 헐벗은 육체가 길바닥에서 서로 얽혀 있은들 이제는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그 광경이 익숙할뿐더러 타데오 또한 후계자의 역할만을 강조할 뿐 정조 따위를 강요하는 일은 없었다.
이러한 이유들로 본래부터 성에 개방적이었기에, 하이어드에게로 향하는 베이지의 걸음에는 망설임이 묻어나지 않았다.
파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다디단 체향이 훅 끼쳐 오자 하이어드는 이를 악물었다. 어느새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곁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였다.
하이어드는 발기한 자신의 아랫도리가 베이지에게 드러난 것에 대한 수치스러움 따위는 느끼지 않았다. 그저 이성의 끈을 갉아 내리는 욕구를 눌러 내리는 데만 집중할 뿐이었다. 아래가 뜨거워 미칠 지경이었으니까.
하이어드는 두 눈을 꽉 감았다 뜨며 힘겹게 말을 내뱉었다.
“돌아가시라 말했…… 흣.”
베이지의 하얀 손이 두툼한 허벅지를 스쳤고, 하이어드의 미간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는 흐려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손을 뻗어 베이지를 저지하려 했고, 속절없이 실패했다.
굳은살이 박인 손끝에 닿아오는 보드라운 살결에 순간 아찔한 감각이 그의 척추를 타고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바짝 힘이 들어간 두꺼운 허벅지 근육이 그 모양을 쥐어 짜내며 울퉁불퉁하게 솟았다.
울컥. 또다시 토해진 액이 검은 하의 위로 보다 더 새까맣게 그 형상을 드러냈다.
하이어드는 작은 침음을 삼키며 서둘러 베이지에게서 손을 떼고 거친 잔디를 손아귀 가득 움켜쥐었다.
매 순간 몸을 들이치는 충동질에 앓고 있는 하이어드를 확인한 베이지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녀는 팽팽하게 솟아오른 그의 사타구니로 손을 뻗었다.
하.
“그만. 그만, 하십시오.”
하이어드의 하체가 살짝 뒤로 물러나며 우람한 상체가 앞을 향해 기울었다.
베이지의 하얗고 곱게 뻗은 검지가 까맣게 물든 둔덕의 중앙을 닿을 듯 말 듯 천천히 스쳤다.
순간 하이어드의 하체가 붕 뜨며 이를 악문 그의 턱이 뒤로 젖혀지자, 벌겋게 물든 목이 드러났다. 얼마나 힘을 준 것인지 그의 목 위로 굵은 힘줄이 두툴하게 불거져 있었다. 마른침을 삼키는 목젖이 크게 한 번 울렁였다.
빳빳한 천 하나를 사이에 두고 물렁하고도 딱딱한 촉감이 전해져 오는 그 위를 살살 문지르자 아주 천천히, 천 위로 스며 나온 액이 베이지의 손가락을 더럽혔다. 목구멍을 간질이는 뜻 모를 감정에 그녀의 손길이 점점 더 과감해졌다.
손길 몇 번에 완벽히 딱딱해진 살덩어리는 그 크기를 더욱 부풀리며 자신의 위치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꾸욱.
“하.”
베이지의 작은 손바닥이 길고 두툼하게 솟은 부위를 완전히 덮어 그 위를 뭉근하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힘으로 베이지의 행동을 저지해야 했으나 현재의 하이어드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정신을 부여잡고 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다. 밀어내려다 손끝이라도 닿으면 그대로 뒤통수를 잡아 제 좆을 처넣고 허리를 흔들 듯했다. 두터운 손에 가득 쥐여진 잔디가 그의 손아귀 힘에 의해 형체도 없이 으스러졌다.
“하…… 으.”
하이어드가 숨을 뱉자 잔뜩 부풀어 있던 거대한 흉부가 내려앉으며 그의 복부가 꿈틀거렸다. 숨을 내쉴 때마다 달큰하게 콧속을 파고드는 베이지의 체향조차 자극적이었으니, 그가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한없이 퇴폐적인 하이어드의 모습에 베이지는 제 심장이 뻐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귓가를 채우는 억눌린 그의 신음과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뜨겁고 단단한 살덩어리의 감촉이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할 만큼 자극적이었다.
자신의 손바닥에서 뛰는 것인지, 그의 그곳에서 전해지는 것인지 모르겠으나 쉬지 않고 꿈틀대는 맥박이 손아귀에 가득했다. 그리고 그곳을 문지를 때마다 움직임을 돕는 미끌거리는 점액과 찐득거리는 소리는 서서히 아랫배를 뭉치게 만들었다.
베이지는 자신도 모르게 붉은 혀를 빼내 입술을 한 번 훑었고, 그 모습을 눈에 담은 하이어드가 눈을 질끈 감았다. 무겁게 젖은 그의 속눈썹이 파들거렸다.
베이지의 손길이 뚝 멎었다. 그녀는 순간 자신의 손바닥 아래에서 한 번 크게 수축한 성기가 뜨끈한 액을 내뱉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베이지가 천천히 손바닥을 떼자 불투명하고 끈끈한 액체가 죽 늘어졌다. 정액이 아니었다. 선액이 이렇게, 많이 흐른다는 경우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베이지의 입매가 일자로 꾹 다물리며 심각해졌다.
……미약의 효과가 이렇게 강할 줄은 몰랐다. 그만큼 괴로우실 텐데.
적어도 한 번은 빼내야 조금이나마 진정이 될 텐데, 하이어드는 사정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자극이 부족한 건가.
바짝 힘이 들어간 굵은 허벅지와 괴로운 듯 찌푸려진 하이어드의 미간을 봤으면서도 베이지는 단단히 착각하고 말았다.
베이지는 달뜬 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상체를 숙였다. 가느다란 모래색 머리칼이 하이어드의 바지춤으로 쏟아졌고, 그녀는 한 손으로 시야를 가로막는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붉은 혀를 내밀었다.
따뜻하고 축축한 혀가 천 너머로 딱딱하게 부푼 하이어드의 성기를 훑어 올리자 사아악, 젖은 혀가 천 위를 방황하는 소리가 고요한 밤을 파고들었다.
낮고 짧은 침음과 함께 불퉁한 핏줄이 가득한 하이어드의 손이 베이지의 머리를 감쌌다. 그녀의 머리를 쥔 손아귀 힘을 풀기 위해 손가락 마디마디까지 바짝 힘이 들어간 그의 손은 하얀 뼈마디가 도드라졌다.
쪼옵.
베이지의 작은 입 안으로 두툼한 성기의 첨단이 삼켜졌다. 고작 해 봐야 성기의 아주 작은 일부였으나, 가장 예민한 부분이기도 했다.
질척하게 젖은 천과 함께 베이지의 여린 점막 속으로 귀두가 빨려 들어가자 하이어드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아……, 흣, ……으.”
하이어드의 하체가 살짝 허공으로 떠오르며 그의 허벅지가 잘게 경련했고.
“하.”
그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탁하고 짧은 숨이 토해졌다.
베이지의 머리칼 사이로 비치는 하이어드의 손끝은 하얗게 핏기가 가셔 있었다. 그는 깊은숨을 토해내며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덮었다.
쌌다. 하이어드의 엉덩이 근육이 꽉 죄였다. 조금만 긴장을 놓아도 후희를 즐기기 위해 발정 난 개처럼 허리를 흔들 것 같았다. 그는 욕구를 눌러 내리려 하체에 힘을 바짝 주고 버텼다.
베이지는 자신이 입술 안쪽에 머금고 있던 뜨거운 살덩어리가 간헐적으로 크게 맥동함과 동시에, 천에 바싹 붙인 혓바닥 위로 꿀렁꿀렁 액이 솟으며 입 안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베이지는 자신도 모르게 액체가 입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입술을 오므렸고, 사정 직후 한층 예민해져 있던 귀두를 자극받은 하이어드의 신음이 또다시 그녀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윽…….”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성기가 좆물을 다 뱉어내 꿈틀거림이 완전히 잦아들고 나서야 잔디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베이지가 자신이 머금고 있던 것을 확인하기 위해 입술을 벌리자 그녀의 붉은 혀에 엉겨 있는 하얀 정액이 투명한 침과 뒤섞여 실처럼 늘어졌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혀를 빼내니 그 안에 고여 있던 끈적한 백탁액이 주욱 아래로 떨어지며 어느새 바닥으로 흘러내려 있던 모포 자락을 더럽혔다.
베이지는 갈색의 모포 위로 눌어붙은 하이어드의 우윳빛 정액을 눈으로 확인하자마자 얼어붙었다. 절정의 흔적이었다.
“아…….”
베이지는 작게 침음했다. 알고 저지른 짓이라 생각했으나 하이어드의 씨가 담긴 백탁액을 눈으로 확인하자 또 달랐다. 갑작스럽게 현실이 살갗 위로 닥쳐오며 온몸을 차갑게 깨웠다.
그저, 도와드리고 싶었다. 분명 끔찍하게 고통스러울 걸 알았으니까.
하나 정신을 차리니 그저 호의만으로 다가갈 수 있는 선을 넘어버린 후였다. 베이지라고 모르지 않았다.
당혹스러움에 입이 말라 침을 삼키자 무언가가 끈끈하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제 앞에 앉은 사내의 것이었다.
하지만…… 후회는 일지 않았다.
베이지의 얇은 피부 위로 순식간에 붉은 열꽃이 피어올랐다. 모포의 끝자락을 말아 쥔 손바닥 안에서는 쿵, 쿵 그녀 스스로도 느낄 만큼 빠른 맥박이 뛰고 있었고, 심장은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거세게 박동했다.
솨아아아. 밤바람이 나무를 훑고 지나가는 소리와 후끈한 뺨에 닿아오는 서늘한 밤공기가 꿈이 아닌 현실임을 일깨웠다.
그리고 그 현실 속에서, 코끝을 스치는 짙은 밤꽃 냄새와 지척에서 반복적으로 터지는 하이어드의 낮고 열기 어린 신음은 한없이 생생했다.
“아, 그게…….”
말을 뱉기 위해 입술을 움직일 때마다 주위에 묻어 있던 정액이 찐득하게 늘어졌다 떼어졌다를 반복했다. 예민한 입술 위로 선연하게 닿아오는 감촉에 베이지의 볼이 더욱 발갛게 달아올랐다.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 해, 머뭇거리며 시선을 든 베이지가 마주한 것은 하이어드의 굵은 목에 돋은 핏대와 투박하게 도드라진 턱뼈였다.
하이어드는 여전히 손으로 자신의 눈을 덮은 채였다. 가빠지는 호흡을 진정시키려는 듯 팽배한 그의 흉부는 작게 파들거리며 느른한 움직임을 반복했다.
베이지는 보지 못했으나, 잠시 그녀에게 시선을 두었던 하이어드의 아래는 이미 다시 단단하게 발기해 있었다.
씨발.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그르렁거리는 소리가 끓어올랐다.
하이어드는 버거운 듯 이를 악물고 결이 거센 나무기둥에 등을 한 번 마찰시켰다. 그의 머릿속에는 베이지가 자신의 허연 좆물을 붉은 입술 사이로 뱉어내는 장면이 반복되는 중이었다.
“지금이라도, 후. 기회를 드릴 때, 돌아…… 하. 가십시오.”
하이어드는 호흡을 가다듬는 데 집중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파고드는 베이지의 체향에 코끝이 얼얼했다.
이 정도 했으면 알아들었으리라.
하이어드는 힘겹게 눈을 뜨고 베이지를 살폈다. 작고 여린 짐승이 죽음의 공포를 느껴 바들바들 떠는 것처럼, 마주한 베이지의 모래색 동공이 잘게 떨렸다.
그 모습이 또, 간신히 눌러 내렸던 욕정을 자극해 하이어드는 다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한 번 정액을 빼냈음에도 하이어드의 양물은 전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보다 더 딱딱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다시 자신의 몸이 끓어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낀 하이어드가 곧 찾아올 고통을 감내하기 위해 이를 악물던 찰나.
“……애락초는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거예요. 그다음은 더 괴로우실 테니.”
제가 도와드릴게요.
언뜻 여려 보이나, 그 사이로 굳은 의지가 묻어나는 베이지의 목소리가 또박또박 들려왔다.
“하…… 뭐?”
하이어드의 짙은 눈썹이 일그러졌다. 길고 도톰한 그의 입술 사이로 헛웃음이 흘렀다. 이미 이성이 한번 날아갔던 하이어드는 더 이상 베이지에게 예의를 차리지 못했다.
하지만 베이지는 이미 결단을 내린 후였다.
애락초는 한 번 빼내면 그 순간부터 더 거세게 달아오르는 미약이었다. 두 번째는 전보다 더 고통스러울 것이다.
베이지는 그 욕구를 참는 게 생살을 찢는 고통과 맞먹을 정도라 서로 단단히 주의를 주고받던 아랫것들의 대화를 떠올렸다.
“이곳으로는 아무도 오지 않을 거예요.”
베이지는 혹여 하이어드가 이 때문에 불안해할까 싶어 작게 일렀다.
베이지가 밤 산책을 즐기기 시작하고 난 후부터 하인들은 암묵적으로 이곳으로 걸음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베이지와의 사적인 대화와 접촉이 금기시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고립시키기 위한 타데오의 명이었다.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어떠한 행동을 취하기도 전, 손을 뻗어 사제복 하의의 지퍼를 천천히 내렸다. 지퍼를 내리는 부분이 단단히 발기된 기둥 탓에 울퉁불퉁한 굴곡이 져 뻑뻑했다.
지이익. 빳빳한 천이 한 꺼풀 벗겨지자 잔뜩 압박되어 있던 하이어드의 자지가 검은 드로즈 안에서 꼿꼿하게 서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얇고 늘어지는 재질의 드로즈는 그의 기둥 모양을 따라 한껏 솟아 있었다.
베이지는 말없이 자신의 팔뚝만 한 하이어드의 아랫도리를 내려다봤다.
고결한 사제복이 하이어드의 천박한 욕정을 감추어 주고 있었던 것처럼, 그의 것은 억압되어 있을 때보다 더욱 비대했다.
그때 톡, 나뭇잎에 고여 있던 굵은 빗방울이 하이어드의 콧잔등 위로 떨어졌다.
하이어드가 콧잔등을 찡그리자 뜨겁게 열을 머금은 물방울이 한껏 상기된 그의 볼을 타고 땅으로 추락했다.
온몸에서 들끓는 열기에 서서히 잠식되고 있던 하이어드는 정신을 또렷이 하기 위해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흉부가 크게 부풀어 올랐다. 검은 사제복 아래 그의 가슴 근육이 노골적으로 그 모양을 드러냈다.
하이어드는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공기 아래 훤히 드러난 자신의 것을 내려다보고 있는 베이지의 얼굴을 훑다 입술을 짓씹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나, 아래가 동했다. 굵은 좆이 한 차례 꿈틀거렸다.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하이어드의 목소리는 잔뜩 쉬어 있었다. 그의 몸은 한번 사정하기 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사지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사이 베이지는 완벽히 결심을 마친 듯, 치아로 입술을 살짝 물었다 떼며 손을 가져다 댔다. 그녀의 작은 두 손이 불룩 솟은 하이어드의 기둥을 쥐고 쭉 훑어 올리다, 그 첨단을 부드럽게 쥐었다.
흐, 읏.
하이어드의 목을 긁고 낮은 신음이 간헐적으로 터져 나왔다.
베이지는 쥐기도 버거운 하이어드의 남근을 뿌리부터 귀두까지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다. 손바닥에서 불퉁한 힘줄과 뜨겁고 단단한 살기둥의 감촉이 선연하게 전해졌다. 그리고 그 끝에서는…….
베이지가 요도구를 누르고 있던 검지를 떼자, 점성이 있는 액체가 끈적하게 딸려 올라오다 끊어졌다. 어깨를 덮은 모포를 뚫고 새어 들어오는 새벽의 한기와 하이어드가 쥔 잔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현실임을 일깨워주는 것 같아 심장이 뻐근했다. 무엇보다 손아귀에 쥐어진 그의 살덩어리가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릴 때마다 아래가 간질거렸다.
베이지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남자의 물건을 본 적도, 손댄 적도 없었다. 그저 뒷골목에서 듣고 본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 광경이 음탕하기 그지없었기에, 사실 이런 것쯤은 별것 아니라 여겼었다.
하지만…….
머리칼에 가려진 베이지의 귀는 어느새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이어드는 알아챌 수 없는 미약한 것이었지만.
여느 때와 다름없이 큰 변화가 드러나지 않는 베이지의 얼굴은 그녀를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는 이처럼 보이게 했다. 잠시 풍성한 속눈썹이 파들거리고 마는 게 동요의 전부였다.
혓바닥에 남아 있던 정액이 목구멍을 눅눅하게 파고들자 베이지는 침과 함께 그것을 삼키며 계속해서 손을 움직였다. 하이어드의 씨물이 착상이라도 하려는 듯 목구멍으로 꾸역꾸역 넘어갔다.
턱턱, 한번 토해낸 사출액과 쿠퍼액이 눌어붙은 천이 좆기둥에 엉겨 쓸리는 감촉은 참을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켰다. 두툼한 하이어드의 하체가 느릿하게 바르작거렸다.
“으……, 후.”
하이어드는 눈을 감고 입을 악다문 채 견디기에 급급했다. 금방이라도 저 하얀 손아귀에 제 좆을 꼽고 허리를 털 것 같았다.
“그만…… 하.”
베이지의 손길이 서서히 빨라져 가고 있었다.
베이지가 손을 놀릴 때마다 좆물에 범벅이 되어 새까매진 드로즈의 첨단에 공간이 생겼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쯔벅거리는 소리를 자아냈다.
하이어드의 짙은 눈썹은 한껏 일그러졌고 그의 너른 흉부는 거칠게 오르락내리락하며 거친 숨을 토해냈다.
탁탁, 한 겹의 천에 쌓인 하이어드의 딱딱한 살기둥을 쥐고 흔드는 데 집중한 베이지의 도톰한 입술은 굳게 일자로 다물려 있었다. 손끝까지 전해질 정도로 그녀의 맥박은 세차게 뛰고 있었고 호흡이 가쁜지 드문드문 입술을 작게 벌렸다.
숨쉬기가 버거웠다.
“으…… 흣.”
악다문 하이어드의 입술 사이로 잔뜩 가라앉은 신음이 흘렀다. 핏줄이 우둘투둘 돋은 목이 시뻘겠다.
턱턱턱. 질퍽한 정액에 젖어 천끼리 뭉쳐진 탓에 하이어드의 속옷이 베이지의 손길에 딸려오기 시작했다. 굵은 뼈가 도드라진 장골이 드러나고 그 아래로 정돈되지 않은 새까만 털이…….
베이지는 숨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동시에 그녀의 손아귀에 힘이 바싹 들어가며 하이어드의 귀두를 꽉 죄었다.
“흣!”
갑작스러운 자극에 하이어드의 허리가 꺾이고 각진 턱이 끝까지 젖혀졌다.
절정이었다. 베이지는 자신의 손에서 하이어드의 양물이 간헐적으로 꿈틀거리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참았던 숨을 조심스레 내쉬었다.
“하…….”
하이어드의 엉덩이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허벅지가 몇 차례 경련했다. 끝나지 않은 절정 속에 남은 액을 느른하게 토해내는 것이었다.
베이지가 쿵쿵 세차게 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바지런히 호흡을 가다듬고 있던 찰나였다.
“베이지 스논.”
걸걸하기까지 했다. 평소보다 더 거칠어진 목소리가 베이지를 향했다. 그 속에는 식지 않은 육욕이 거무죽죽하게 깃들어 있었다.
분명 스논이라는 성을 붙이는 게 끔찍하기만 해야 하는데, 이상하게 목구멍이 간지러웠다.
베이지가 제 앞에 앉은 사내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던 순간.
베이지의 시야와 몸이 확 반 바퀴를 돌았다.
“돕는다라.”
톡. 하이어드의 관자놀이 부근을 타고 턱 끝에 고여 있던 그의 땀방울이 창백한 베이지의 눈꺼풀 위로 떨어졌다.
반사적으로 눈을 감은 베이지의 속눈썹이 담뿍 젖은 채 파들거렸다. 그녀는 그것을 닦아낼 수 없었다. 베이지의 두 손목은 하이어드의 두툼한 손아귀 속에 곧 부러질 나뭇가지마냥 단단히 결박되어 있었으니까.
하.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나 하는 말입니까.”
하이어드의 뜨거운 숨이 베이지의 얼굴 위로 쏟아졌다. 땅을 긁듯 낮은 목소리에는 비릿한 웃음이 섞여 있었다.
“제 좆대가리를, 당신 가랑이 사이로 처넣는다는 뜻입니다.”
할 거면 제대로 하지.
아랫도리에 번식의 욕구가 두둑이 들어찬 짐승 하나가 헐근 댔다.
저는 분명, 기회를 드렸습니다.
숨 막히는 정적이 둘을 감쌌다. 풀이 바람을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만이 간간이 숨통을 텄다.
베이지의 모래색 동공은 떨리는 것 같기도, 얼핏 정적인 것 같기도 했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의중을 파악하고자 미간에 굵은 주름이 팰 정도로 눈에 힘을 주었으나, 욕정에 절여진 시야가 희뿌옇기만 해 그 답을 알아낼 수 없었다.
흐트러지자 더욱 그 매혹적인 얼굴이 부각되는 베이지의 얼굴만이 어렴풋이 담길 뿐이었다.
잿빛이 도는 노란 머리칼이 젖은 잔디 위로 무방비하게 흩뿌려져 있었으며 그중 몇 가닥이 베이지의 하얀 얼굴 위로 곱게 내려앉은 채였다. 고운 곡선을 그리는 눈썹과 깊게 팬 눈썹뼈 아래에 짙고 풍성한 속눈썹이 팔락댔고, 둥글고 높은 콧대 위에 놓인 모래색 머리칼이 붉은 입술 위까지 농염하게 늘어졌다.
……요부가 따로 없군.
잠시 베이지의 얼굴을 훑던 하이어드는 뚝뚝 물을 뱉어대는 제 좆구멍이 한 차례 벌름거리자 몸을 물렸다.
유일하게 하이어드가 알아차릴 수 있었던 건, 그가 숱하게 보아 왔던 작고도 거대한 공포였다.
“지금이라도 돌아가십시오.”
도무지 수그러들 줄 모르고 뻐근할 정도로 솟은 아랫도리를 간수하기가 버거웠다. 한계에 다다라 있었다.
“……제가 실수를 하는 거라면 죄송하지만, 역시 도움을 드리고 싶어요.”
하이어드가 허리를 틀어 몸을 완전히 빼내려던 순간이었다.
공포에 질린 이라고 여길 수 없을 만큼 또렷하고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오더니 동시에 서툴고 억센 손길이 채 여미지 못해 풀어 헤쳐진 하이어드의 허리춤 부근을 확 낚아챘다.
천에 달린 차가운 지퍼가 베이지의 손가락을 거칠게 긁었다. 천 위로 검붉은 피가 뱄다.
파삭, 반사적으로 잔디를 짚은 하이어드는 가까스로 아주 얕은 간격을 확보해 냈다.
순식간에 둘 사이의 거리가 좁혀들었다. 하이어드의 시야에 베이지의 눈동자만이 가득 들어찰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그래도, 저를 취하세요. 도와드릴게요.”
베이지가 마디마디를 뱉을 때마다 달큰한 여인의 향이 하이어드의 욕정을 들끓게 했다.
“하.”
하이어드의 붉은 입술 새로 짧은 숨이 흘렀다. 조소였다. 한기마저 감도는 서슬 퍼런 그의 얼굴은 알량한 사제 따위의 것이 아니었다.
“제정신인가?”
혼잣말에 가까웠다. 답을 바란 게 아님이 뚜렷한데도 도톰한 입술을 앙다문 베이지는 제 의지가 확고하다는 듯 고개를 까딱였다.
지금까지 얼굴 위로 이렇다 할 감정을 떠올린 적이 없던 하이어드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처음으로 뚜렷한 감정을 드러냈다. 경멸과 불쾌함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이어드가 제 허리춤에서 미세하게 느껴지는 기운을 모를 턱이 없었다. 옷자락을 꽉 거머쥔 채 바들바들 떨리는 앙증맞은 베이지의 주먹은 그 누가 보아도 두려움을 집어삼킨 이의 것이었다.
좀 전 물을 빼내 덜렁거리며 베이지의 두 다리 사이로 파고들던 하이어드의 자지는 다시 혈류가 몰려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진 채 그의 배꼽 부근으로 올라붙은 지 오래였다. 아마 베이지도 느끼고 있을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하이어드는 더 이상 마다할 생각이 없었다.
“……제가.”
하이어드의 두툼하고 꺼슬꺼슬한 손바닥이 얇은 슬립 위로 봉긋하게 솟은 베이지의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읏!
베이지의 입술 사이로 단발성의 신음이 터졌다. 그 순간 하이어드의 좆기둥이 위아래로 껄떡였다.
“무슨 짓을, 할 줄 알고.”
피가 쏠려 검붉어진 채 흉측하리만치 두툴한 핏줄이 돋은 하이어드의 손이 베이지의 젖가슴을 둥글게 문지르며 움켜쥐었다. 그 반동으로 위태롭게 그녀의 어깨 위에 걸쳐져 있던 끈이 팔뚝으로 떨어져 내렸다.
하이어드가 사정을 봐주지 않겠다는 듯 젖가슴 아래 몽우리가 느껴질 정도로 베이지의 가슴께를 짓눌러 돌림에 따라, 가뜩이나 깊이 팬 네크라인이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 그녀의 하얗고 말랑한 유방을 드러내 그의 손아귀에 쥐여 주었다.
“흐으……!”
베이지가 자신이 낸 소리에 놀라 서둘러 제 입을 틀어막으려 했고.
“아래를 허락하십니까.”
하이어드는 간단히 베이지의 움직임을 막아냈다. 어느새 그의 남은 한 손이 다시 그녀의 두 팔을 머리맡으로 포박한 후였다.
“아…….”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손아귀 아래 어찌 움직이지도 못하고 열띤 신음만 뱉을 수밖에 없었다.
하이어드는 말캉하게 뭉그러지는 베이지의 젖가슴을 진흙 뭉치듯 투박한 손길로 거칠게 주물러 댔다.
“흐…… 으응.”
베이지는 집요하게 자신을 좇으며 발라내 먹는 듯한 하이어드의 검은 동공을 더 이상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갈 곳 잃은 베이지의 시선이 하이어드의 얼굴 위를 방황하다 무심코 아래를 향했다.
……세상에.
그곳에는 살아 있는 생물처럼 간헐적으로 꺼떡이며 자신의 허벅지 부근을 스치는 딱딱한 살덩어리가 웅대히 존재했다.
베이지는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아버렸다.
하나 이미 목격한 이상 그 잔상을 지울 수 없었을뿐더러…… 느껴지기 시작했다. 상처를 보게 되면 그제야 고통을 느끼는 것처럼, 아플 정도로 그 감촉이 거대하게 다가왔다. 더불어 가슴에 얹어진 하이어드의 손바닥이 마구잡이로 움직이는 감촉까지 더욱 선연해졌다.
어느 것 하나 사이에 둔 것 없는 맨살이었다. 훤히 드러난 허벅지 위를 축축하게 젖은 하이어드의 귀두가 닿았다 떨어지는 감촉이, 굵은 그의 손가락이 누구도 손댄 적 없었던 자신의 젖가슴을 단단히 쥐고 주무르는 느낌이 미치도록 야했다.
눈을 감으니 까만 시야 속에서 검붉은 그의 좆대가리가 살아 있는 양 움직이며 요도구에서 물을 흘리는 장면이 반복되기까지 했다.
뜀박질하듯 세차게 박동하는 심장이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하이어드도 베이지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었다. 그녀의 가슴을 차지한 손바닥이 둥, 둥 울렸으니까.
베이지의 젖가슴을 비비며 쥐어짤수록 그녀의 젖꼭지가 옹골지게 솟아올라 자신의 손바닥 중앙을 간질이는 바람에, 하이어드의 아랫도리는 단단히 약이 올라 있었다.
하이어드는 자신의 다리 사이에 갇혀 몸을 이리 움직이지도, 저리 움직이지도 못하고 입술을 앙다문 베이지의 색스러운 꼴을 훑다 천천히 몸을 숙였다.
“그럼,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하이어드의 두툼하고 긴 혓바닥이 그의 붉은 입술 사이를 가르고 빼내어지더니, 살짝 안으로 말려 들어간 베이지의 도톰한 입술 위를 질척하게 문지르고 지나갔다.
“읏!”
“보짓살이 불어 터질 때까지.”
갑작스럽게 입술 위를 쓸고 사라지는 축축하고 뜨거운 덩어리의 감촉에 베이지의 두 눈이 단번에 뜨였다. 그녀의 시야 내에 하이어드는 없었다.
그때, 잔뜩 쉬어 걸걸하기까지 한 하이어드의 저음이 베이지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물 좀 싸 보십시오.”
하이어드는 제 것과 똑같이 열기를 머금기 시작하는 상아색 눈동자를 만족스러운 듯 바라보며 제 입술을 훑어내다 다시금 얼굴을 숙여 혀를 내밀었다.
사아악, 눅눅한 덩어리가 베이지의 목덜미를 쓸어 올렸다. 하이어드는 이어 느른하게 혀를 제자리에 들이고 입구를 닫으며 가지런한 치열로 그녀의 목을 무는 듯하다 이내 젖은 입술로 뭉근히 빨았다.
“으응…….”
베이지의 가는 목에 핏대가 솟았다. 목덜미에 닿는 끈적한 혀 위로 하이어드의 뜨거운 숨이 쏟아졌고, 그가 쓸고 지나가는 부위마다 남겨진 타액이 차디찬 바람에 말라붙었다. 이 모든 것이 소름 끼치게 생생해 감당하기 버거웠다.
베이지의 목덜미를 피멍울이 질 정도로 빨던 하이어드가 자신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그곳에서 얼굴을 물렸다. 쩌억, 입술이 떨어지는 소리 위로 그의 원색적인 신음이 뒤따랐다.
하…….
하이어드는 어느새 가리는 것 하나 없이 노출된 제 남근을 베이지의 배꼽 부근에 갖다 대 바짝 붙이고 있었다. 당장 그녀의 뱃가죽과 씹질을 할 모양새였다.
하이어드의 손이 슬립 끝자락을 들춰 올리며 베이지의 비부로 파고들었다. 딸려 올라간 슬립은 더 이상 베이지의 하체를 가려주지 못했다. 차가운 밤바람까지 스미자 그녀의 살갗에 작은 소름이 돋았다.
하이어드는 시각적 자극을 덜기 위해 베이지의 하얀 목덜미만 연신 두툼한 혓바닥으로 훑고 빨았다.
고작 목덜미에도 발정 난 개마냥 욕정하는 참인데 달빛 아래 훤히 드러난 허연 허벅다리를 볼 수 있을 턱이 없었다. 눈에 담았다가는 금방이라도 제 자지를 들이밀어 이 여자의 자궁에 좆물을 쏟아부을 것 같았다.
“하읏!”
굳은살이 박인 거친 손바닥이 그대로 허벅지 안쪽을 침범하자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힘을 바짝 주고 낯선 이의 손길을 거부했다.
하나 하이어드의 손은 베이지의 허벅다리를 가볍게 열어젖혔다. 깔깔하고 열기 가득한 손이 느릿하게 그녀의 다리 위를 기었다.
“아…… 응, 흐으!”
베이지의 입가로 울음기가 섞인 신음이 샜다.
생경한 느낌이었다. 아랫배가 뭉치고 그보다 더 아래가…… 이상했다.
하이어드는 한 손에 쥐어지는 베이지의 허벅지 안쪽 살을 여러 차례 주무르다 순식간에 손바닥을 위로 뒤집어 그녀의 가랑이 아래로 쑤셔 넣었다.
“하으!”
갑작스러운 침입에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하체를 꽉 죄었다. 바짝 죈 것이 하체인지 그보다 더 아래인지 알 수 없었다. 본능이었다.
때문에 베이지의 엉덩이 사이부터 음부까지 이어진 깊은 골이 하이어드의 중지와 엄지를 빨아들였다.
베이지의 엉덩이를 받치듯 손을 집어넣은 하이어드의 굵은 엄지가 습한 기운이 감도는 그녀의 얇은 속옷 위로 안착했다. 그리고 이내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베이지의 음문이 위치한 곳 바로 위를 꾸욱 눌렀다.
축축하게 젖은 천이 하이어드의 엄지와 함께 딸려 올라가며 구멍을 얕게 파고들었다. 젖은 천이 빈 구멍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질퍽한 소리가 울렸다.
“응……!”
동시에 베이지의 하체가 들썩였다.
쯔벅, 뻑. 하이어드의 굵은 엄지가 베이지의 질구를 얕게 몇 차례 쑤셨다. 축축한 천과 질구 사이의 빈 공간 사이를 메운 애액이 비벼지는 소리였다.
베이지는 자신의 몸 위를 짓누르는 하이어드의 묵직한 체향과 간간이 귓전을 긁어 올리는 잔뜩 억눌린 그의 신음에 온몸이 아릿했다.
“흐…… 읍.”
척, 쩍, 쩍. 베이지도 알고 있었다. 제 아래가 뻐끔거리며 개폐를 반복하고 계속해서 끈적거리는 액을 뱉고 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하이어드의 숨소리에 섞여 귓전으로 흘러 들어오는 찔걱거리는 물소리가 너무나도 또렷했다. 얇은 속옷과 함께 베이지의 질구를 쑤시는 그의 엄지가 끈적거리는 그녀의 보짓물을 연신 퍼내 올렸다.
속옷 위로 배어 나온 애액이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퉁퉁 불게 했을 무렵이었다. 별안간 하이어드의 엄지가 베이지의 질구를 보다 깊게 파고들더니, 위아래로 가볍게 털기 시작한 것은.
“으응…… 흡.”
얇은 속옷이 애액에 범벅이 된 채 마찰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다리를 움츠렸다. 수치스러웠다.
베이지가 다리를 죈 탓에, 하이어드의 굵고 두툼한 손이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끼어 움직임이 더뎌졌다.
베이지의 변화를 알아차린 하이어드가 너른 숨을 뱉으며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의 높은 콧대가 그녀의 하얀 목덜미를 스치며 뭉그러졌다.
흥건히 젖은 베이지의 속옷을 배회하던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빠져나오는 듯싶더니, 그대로 옹그려져 있던 그녀의 넓적다리를 엄지와 중지로 눌러 벌렸다.
“제 좆대가리가.”
걸걸한 저음은 육욕에 절어 있었다.
베이지는 허벅지가 벌어짐에 따라 물기에 젖은 채 맞붙어 있던 제 소음순이 떼어져 쩌억 벌어지는 선연한 느낌에 눈을 꽉 감고 턱을 치켜들었다.
예상한 상황이었다. 제가 선택한 일이었다. 하나 각오했던 것보다 더 버거웠다. 처음 경험해 보는 일들이, 낯을 붉히게 했고 심장을 미친 듯이 뛰게 했다.
“파고들 구멍은 뚫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벌리십시오. 더.
말을 끝마친 하이어드는 질액으로 축축해진 베이지의 속옷 아랫면을 중지로 밀어 젖혔다. 적당히 솟은 베이지의 둔덕과 허벅지 사이에 그녀의 속옷을 걸어 둔 하이어드는 제 손바닥에 닿는 까슬거리는 감촉을 알아차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베이지의 새하얀 둔덕 위로 까만 음모가 자리했고, 그 위를 흉측하게 핏줄이 불거진 제 손이 덮고 있었다.
머리카락 색과 판이한 새까만 아래 털이 하이어드의 자지를 더욱 빳빳하게 세웠다. 두둑하게 씨가 들어찬 그의 고환이 딴딴하게 영글어 꿈틀댔다.
그리고…….
“아읏!”
순간 베이지의 허리가 바들바들 떨렸다.
밤공기에 노출되어 차갑게 식어 있던 배꼽 부근에 갑작스레 뜨거운 액이 뚝, 뚝 떨어진 탓이었다.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내린 베이지는 다시금 황급히 시선을 틀어 올렸다.
이보다 더 커질 수 없으리라 여겼던 하이어드의 검붉은 기둥이 보다 크게 부푼 채 물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의 자지가 껄떡댈 때마다 흉측하리만치 우둘투둘 불거진 핏줄이 거칠게 제 뱃가죽을 훑고 지나갔다.
“흐으…… 응.”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베이지의 신음에 악 다물린 하이어드의 턱뼈가 빠득거렸다. 단단히 발기한 아랫도리가 홧홧하다 못해 고통스러울 지경에 이르렀다.
어느새 다시 몸을 숙인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목덜미에 콧대를 바싹 붙인 채 호흡을 가다듬고자 숨을 들이켰다. 그의 흉부가 두툼하게 팽창하며 까끌한 사제복 상의가 딴딴하게 여문 베이지의 젖꼭지를 스쳤다.
“아……!”
하이어드의 중지가 베이지의 아랫구멍 부근을 살살 문지르자, 무언가가 미끌거리며 아래를 간질이는 자극에 그녀의 작은 구멍이 벌어지며 질액을 밖으로 밀어냈다.
“벌름거리기는.”
베이지의 쇄골 부근을 배회하던 하이어드의 축축한 입술이 벌어지며 느른하게 긁히는 웃음을 토해냈다.
“아…… 흣. 거기서 말씀을, 하시면.”
꽉 감은 두 눈을 뜨지도 못한 채, 베이지는 작은 불만을 토로했다. 짙은 열기에 메말라 한껏 거칠어져 있던 입술이었다. 물렁거리고 뜨거운 입술의 감촉도 견디기 힘들진대 부분부분 표피가 뜯긴 입술이 목덜미를 훑자 소리를 참기 힘들 정도로 자극이 심했다.
“아!”
그때였다.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목덜미에 단단히 이를 박아 넣었고.
“하아…….”
그와 동시에 하이어드의 중지가 베이지의 비좁은 입구를 뚫고 구멍 깊숙이 파고들었다. 순식간에 손가락을 휘감는 축축하고 뜨거운 점막의 감촉에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성마른 숨이 헛돌았다.
무언가 드나든 적이 한 번도 없던 곳이었다. 갑작스러운 삽입에 질겁한 베이지가 허리를 들썩이며 엉덩이를 뒤로 물리려 하자, 베이지의 손목을 쥐고 있던 하이어드의 손이 단번에 그녀의 골반을 꽉 잡아 아래로 눌렀다.
“아흣!”
하이어드의 투박한 손길로 인해 그의 손가락이 남는 것 없이 모조리 베이지의 음부에 삽입되었고, 이어 굳은살이 밴 손끝이 질 깊숙한 곳을 찍어 누르자 베이지의 허리가 파득 튀었다.
아래에 뭉툭하고 두툼한 것이 빠듯하게 들어차는 느낌이 생경하고도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일게 만들었다.
하이어드는 제가 구속을 풀자 잠시 허공을 휘젓다 이내 제 목을 두 팔로 힘껏 끌어당기는 베이지의 몸짓에 순순히 몸을 내어 주었다.
자신의 목에 팔을 휘감았다는 사실도 인지하지 못 한 모양인지, 하이어드는 눈을 감고 입술을 말아 문 상태로 긴 속눈썹을 파들거리는 베이지의 얼굴을 훑었다.
“아…….”
하이어드의 성대를 긁으며 진한 신음이 토해졌다.
“이런 얼굴을, 보여 주면.”
내가 물을 싸지를 것 같은데.
검붉은 귀두 가운데 깊이 팬 요도구가 뻐끔거리며 한 차례 비릿한 물을 뱉었다.
하이어드의 거대한 상체가 아래로 굽었고, 굳게 다물려 있던 그의 입술을 가르고 두툼하고 선홍빛을 띠는 살덩이가 기어 나왔다.
사아악, 축축한 습기를 머금은 하이어드의 혀가 베이지의 눈꺼풀을 벗겨 낼 듯, 그녀의 눈을 훑어 올렸다.
“아.”
베이지가 제 눈을 핥고 지나가는 축축한 덩어리를 볼 새도 없이, 또 다른 자극이 그녀를 덮쳤다.
“흐읏!”
하이어드는 제 중지가 빠듯이 박힌 베이지의 구멍 위를 엄지로 꾹꾹 눌러댔다. 더 삼키려는 건지 꿈틀대며 액을 쏟아내는 내벽을 알아차린 하이어드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씹질을 즐기진 않는데.”
하이어드는 본능적으로 골반을 들썩거리며 벗어나려 하는 베이지의 잘 익은 엉덩이를 달래듯 뭉근히 문질렀다. 흉터로 가득해 겨울이면 종일 깔깔하고 거친 제 손바닥과는 달리 매끈하고 보드라운 살결이 입맛을 돋웠다.
일순 하이어드의 넓적한 손바닥이 베이지의 엉덩이를 모조리 그러쥐었다.
읏!
“아래가 빳빳해지는 게.”
몹시, 동하는군.
베이지의 질액으로 퉁퉁 불어버린 하이어드의 엄지가, 찬바람을 맞아 그새 오그라든 그녀의 소음순을 아래에서부터 가르고 올라갔다. 그의 손가락이 미끈거리는 액을 퍼다 나르며 깊게 팬 골을 타고 위로 움직이자 베이지의 다리에 힘이 바싹 들어가며 허리가 꺾였다.
“으흐…….”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질구도 음핵도 아닌 살덩어리 사이를 문지르자 몸에 전해지는 자극이 덜해졌고, 아득해졌던 베이지의 이성이 서서히 돌아왔다.
이게 더 괴로웠다. 제가 하이어드의 아래에 깔려, 다리를 활짝 벌린 채…….
숨을 할딱거리는 베이지는 잿빛이 도는 제 노란 동공을 어디에도 두지 못했다. 제 팔이 하이어드의 목을 강하게 두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알아차렸다. 그의 단단한 팔뚝이 저 아래에서 무엇을 하는지 강하게 움직일 때마다 제 몸이 따라 흔들리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베이지는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한 심장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쩌벅, 찔걱. 뿐만 아니었다. 구멍에서 뱉어낸 냄새 나는 물이 하이어드의 손가락에 의해 오그라든 살덩어리 사이를 왕복하자 찌벅거리는 소리가 그 어느 때보다 요란했다.
분명 전보다 자극이 덜한데도, 아랫배가 당기고 온몸에 열이 퍼졌다. 아래가 간질거렸다.
그 순간이었다.
“아흑!”
하이어드의 엄지 끝이 점점 위로 타고 올라오더니 옹골지게 여문 베이지의 음핵을 튕기듯 거세게 스치고 다시 아래를 향했다.
짧았으나 전에 없던 자극이었다. 젖은 잔디 위에 축 늘어져 있던 베이지의 다리가 달달 떨리며 그녀의 무릎이 크게 굽었다.
베이지가 숨을 채 가다듬기도 전, 다시금 하이어드의 손길이 찾아들었다.
“이렇게, 질질 싸면.”
하이어드의 엄지가 단단하게 솟은 음핵을 버려둔 채 그 부근을 미끄러지듯 꾹 눌렀다 이내 힘을 빼 살살 문지르기를 반복했다.
“아…… 으, 흣!”
베이지의 입에서 높은 신음이 터졌다. 아래에서 참을 수 없는 쾌감이 일었다. 온몸이 움츠러들었고 찬바람에 노출된 다리와 팔에 소름이 돋았다.
“내 손에.”
하이어드는 제 목에 둘러진 베이지의 팔을 향해 입을 벌렸다. 목을 뻗어 얇은 피부를 빨아 삼키자 달큰한 체향이 올라와 허기를 달랬다.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피부 위를 뭉툭한 혀끝으로 훑고 입술로 빨아대자 금세 벌건 자국이 피어났다.
하이어드는 제 욕구를 달래며 베이지의 음핵을 엄지로 툭, 툭 내리쳤다.
“아, 으!”
한껏 발기한 돌기에 전해지는 강한 자극에 베이지의 고개가 꺾이고 하체가 파득거렸다.
하아. 느른 숨을 뱉어내며 고개를 든 하이어드의 입술에 투명한 실이 탄력 있게 늘어지다 뚝 끊겼다.
“당신 보짓물 냄새가 밸 텐데.”
하이어드의 엄지가 가차 없이 베이지의 음핵을 짓눌러 거칠게 비볐다.
“아, 아, 으!”
베이지의 그곳이 조여 들며 연신 보짓물을 뱉어냈다.
벌겋게 충혈된 베이지의 음핵이 하이어드의 손안에서 무참히 뭉그러졌다.
점성이 있는 애액으로 범벅된 손가락이 작은 음핵을 비벼대자, 찔걱거리며 허연 거품이 일었다.
“아흐…… 흣!”
반사적으로 허리가 튀고 다리가 굽었다. 베이지는 고통스러울 정도의 쾌감에서 벗어나려 엉덩이를 몇 차례 뒤로 빼려 했고, 단단히 골반을 틀어쥔 하이어드의 손아귀에 의해 제자리로 끌려오기를 반복했다.
“하, 하지 마…… 앙!”
그때 하이어드가 질 속에 삽입해 놓았던 중지를 거칠게 뺐다. 꽉 물고 있던 것을 놓친 베이지의 질이 거세게 수축하며 그녀의 아랫배가 작게 경련했다.
하이어드는 이어 검지와 중지로 음핵의 양옆으로 난 깊은 골을 힘 줘 누른 채 파고들더니, 손가락 사이에 음핵을 끼워 비틀었다.
“흣! 으, 응! 제, 제발…… 아!”
온몸이 곱아드는 쾌감에 베이지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미칠 것 같았다.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어 그의 손길을 제지하려 했으나, 온 힘을 다한 그녀의 몸부림은 하이어드에게 그저 하찮은 바르작거림에 불과했다.
하이어드의 양어깨를 힘껏 밀어내던 베이지는 이내 힘을 풀었다. 그의 단단한 상체는 제 억센 손길에 조금도 미동이 없었다.
“딱딱하게 섰네.”
그때 베이지의 귓가에 낮고 건조한 음성이 흘렀다. 하이어드는 검지와 중지 사이에 단단히 발기한 공알을 끼운 채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렸다.
음핵을 쥐어짜는 행위였다. 탱탱하게 발기한 음핵이 미끄러지듯 애액이 묻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아아!”
하체를 관통하는 저릿한 감각에 베이지의 팔이 다시 매달릴 것을 찾아 하이어드의 목으로 찾아들었다. 개구리처럼 벌어진 그녀의 넓적다리가 바르르 경련했다.
쯔벅, 쯔벅. 음핵을 놓은 하이어드는 소음순과 공알 사이의 좁은 틈을 손끝으로 눌러 빠르게 마찰하기 시작했다. 음핵의 줄기가 이어진 곳을 자극할 때마다 베이지의 하체가 튀었다.
“흐으…… 응, 으응……!”
베이지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상체를 들썩일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빳빳이 선 젖꼭지가 까끌거리는 하이어드의 상의 위를 스치면.
“응!”
베이지는 부푼 유방을 숨기려 몸을 물려야 했다. 하나 그곳도 안전하지 않았다.
“하윽……!”
땅 위로 몸을 누이려던 베이지의 몸에 다시 힘이 바짝 들어갔다. 찬 이슬에 젖은 잔디가 드러난 맨살을 따갑게 할퀴어 힘을 풀 수 없었다. 베이지가 의지할 데라곤, 아직까지 흐트러짐 하나 없이 옷을 갖춰 입은 하이어드의 상체뿐이었다.
베이지가 숨을 헐떡이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온몸을 퍼덕거리는 순간에도, 하이어드의 손은 쩔걱거리며 집요하게 그녀의 음부만을 훑어댔다.
“잠시…… 잠시만…… 흐응!”
베이지의 목이 꺾이며 그녀의 가느다란 목덜미 위로 솟은 뼈대가 도드라졌다. 하얀 목덜미는 열이 올라 발그스름하게 달궈져 있었다.
벅차게 숨을 삼키는 베이지의 흉부가 빠르게 떠올랐다 가라앉으며 그녀의 젖가슴이 하이어드의 단단한 가슴팍 위로 뭉그러졌다. 도드라지게 발기한 젖꼭지가 몽글한 유방 속으로 온전히 숨어들었다, 베이지가 숨을 뱉으면 다시 튕겨져 나와 딱딱하게 일어섰다.
하이어드의 투박한 턱뼈가 벌어지며 그의 볼이 팼다. 물컹거리는 살덩어리가 입 안에 가득 담긴 베이지의 목덜미 위를 둥글게 빨아대며 허연 살결 위로 흐무러졌다.
축축한 살덩어리가 제 목을 빨고 배회하는 감촉에 베이지가 그에 벗어나고자 움직였고, 하이어드의 거대한 손이 그녀의 가는 목덜미를 잡아채 제 입에 더 가까이 붙여 빨았다. 그의 딱딱한 코끝이 구기질렸다.
맥박이 펄떡대는 베이지의 목덜미를 연신 핥아 삼키던 하이어드가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뗐다. 무른 입술이 제 모양을 되찾으며 투명한 가닥이 짧게 늘어지다 끊어졌다.
그리고 동시에 하이어드의 손힘이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아래로 물리자 절로 오그라드는 소음순 새를 다시 파고들어 빠르게 문질렀다. 하이어드의 손끝이 음액으로 번들거리는 공알 위를 스치기도, 닿기도 전에 아래로 내려가기도 하며 베이지의 음부를 달궜다.
쩌걱, 쩌걱, 쩌걱.
“아흐! 으, 흣!”
모자랐다. 땡땡하게 부어오른 음핵 부근만 오가는 게 아니라, 그 위를 짓눌러 주었으면 했다.
흠뻑 젖은 소음순 새에 끼워진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희락을 퍼다 날랐다.
“하, 아, 응……!”
하이어드는 엄지로 뻐끔거리며 물을 뱉어내는 질구를 얕게 쑤셨다.
“보지가 흥건한데.”
하이어드는 퉁퉁 불어버린 껍질을 검지와 약지로 벌리고 중지로 베이지의 공알을 밀어 올렸다.
“아흣!”
베이지의 허리가 또다시 튀어 오르며 자극을 회피하려 하자, 하이어드가 번거롭게 한다는 듯 투박한 손길로 다시 그녀의 허리를 쥐어 단단히 고정시켰다.
거칠거리는 굳은살이 박인 하이어드의 중지가 벌겋게 된 음핵을 빠르게 비비기 시작했다.
“잠시…… 응! 나, 나올 것, 같……!”
어느새 베이지의 노란 눈동자에는 물기가 맺혀 일렁이고 있었다. 계속해서 몸을 찾아드는 쾌감과 저도 모르게 튀어 오르는 몸이 체력을 따라가지 못해 고통스러웠다.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차고 성긴 웃음이 긁듯 터졌다. 그는 부러 아래에서 애액을 길어 올려 보란 듯 찰박댔다.
“이게, 지금까지 영애가 싸지른 물소리인데.”
새삼스럽게.
하이어드의 긴 입매가 일자로 굳어 들었다.
“싸.”
쯔걱거리는 물소리만이 고요한 밤을 갈랐다.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혈류가 몰려 부풀어 오른 공알을 으깰 듯 힘줘 문대자, 베이지의 아랫구멍이 벌름거리며 물을 줄줄 토해냈다.
“아, 아, 아……!”
베이지의 하체가 발발 떨리며 그녀의 음핵이 더 딴딴히 속을 부풀려 가던 순간이었다.
“으응!”
베이지의 허리가 거칠게 꺾였다. 하이어드의 상체에 바싹 붙은 제 유방이 뭉개지는 것도 모르고 그녀의 하체가 달달 떨렸다.
공알 바로 옆에 끼워져 있던 그의 손가락이 수축으로 인해 꽉 죄여 왔다. 물 먹은 손가락이 쥐어짜지는 옅은 소리가 그녀의 숨소리에 섞여들었다.
“하으, 흐윽…… 하.”
베이지의 질이 경련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구멍 밖으로 애액을 울컥 뱉었다.
베이지의 몸이 잔디 위로 축 늘어졌다. 옷이 말려 올라간 탓에 드러난 허리 부근이 따끔거렸으나, 그런 사소한 것을 신경 쓸 기력은 없었다. 그저 숨을 할딱이며 호흡을 가다듬을 정도의 아주 작은 힘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사타구니가 저렸다. 좀 전까지 사방으로 튀어대던 몸에는 어떤 행동을 취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고, 어찌나 힘을 주었는지 아리기까지 했다.
하이어드의 목을 둘렀던 팔마저 힘을 잃고 툭 풀어지자, 하이어드가 상체를 세운 채 베이지를 내려다봤다.
“내 자지를 당신 보지에 쑤시게 해 준다 하지 않았나.”
하이어드는 제 커다란 손바닥으로 두둑이 씨가 들어찬 고환을 가볍게 쥐었다 놓더니 흉측하리만치 핏줄이 불거진 제 기둥을 강하게 쥔 채 쓸어 올렸다.
하.
베이지의 질액에 젖어 불어버린 두툼한 하이어드의 엄지가 방울방울 물이 맺혀 떨어지는 제 요도구를 꾹 눌렀다 뗐다.
솨아아. 나뭇잎을 날카롭게 가르는 소리 새로 찐득거리는 작은 소음이 침범하며 간헐적으로 토해지는 하이어드의 신음을 감췄다.
하이어드는 자신의 좆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베이지의 모래색 시선을 즐기며 자지를 주무르다, 이내 손을 거뒀다.
다시금 몸을 숙인 하이어드는 제 요도구가 뱉어낸 물이 밴 엄지로 툭 튀어 오른 베이지의 젖꼭지 끝을 쓰는 듯싶더니, 순식간에 베이지의 질구에 손가락을 쑤셔 넣었다.
“이따위로 비좁아서야.”
“아흑!”
딱딱하고 뼈마디가 굵은 손가락이 갑작스럽게 파고들자, 베이지의 허리가 다시금 휘었다.
“자지는 받아먹지도 못할 것 같은데.”
하이어드는 제 기둥에 비해 턱없이 작은 손가락을 끊어먹을 듯 죄는 베이지의 구멍이 탐탁지 않다는 듯, 얼굴을 숙여 그녀의 유두를 이로 긁었다.
“흐응!”
몸이 퍼뜩 뛰어댈 정도로 찌릿거리는 감각이 가슴께를 타고 온몸을 훑었다. 축 처져 바닥을 구르던 베이지의 팔이 서둘러 하이어드의 행동을 저지하고자 바지런히 움직였다.
익히 말했다시피 하찮은 바르작거림이었다.
일개 사제의 몸이 아니었다. 하이어드의 어깨를 툭툭 쳐대는 베이지의 손이 고통을 느낄 정도로 곳곳에 근육이 붙은 그의 몸은 딱딱했다.
다행인지, 새하얀 치열의 끝은 유두의 껍질 부분만을 할퀴고 아쉬울 게 없다는 듯 떨어졌다.
허공에 노출된 젖꼭지는 좀 전의 감각을 잊지 못해 더 탱탱하게 부어올랐고, 하이어드는 중지를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중지가 굽어들며 여린 점막을 헤집기 시작했다.
“하읏!”
베이지의 말간 볼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굳은살이 박여 나무껍질처럼 꺼칠거리는 하이어드의 손가락 끝이 축축한 제 아래를 누비는 감촉이 선연했을뿐더러 제 아래가 그의 손가락을 우물거리며 씹어대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응!”
그때 하이어드의 엄지가 이미 팽창할 대로 팽창한 베이지의 음핵 위를 스치더니 닿을 듯 말 듯 살살 돌려댔다.
“아…… 흐응……. 아니, 하, 하지…….”
덩달아 달아오른 베이지의 붉은 입술이 오물거리며 말을 뱉어내려 하자 하이어드가 제 상체를 바싹 갖다 붙였다. 단단한 그의 가슴팍이 빤빤히 선 베이지의 유두 끝을 쓸고 지나갔다.
아!
베이지는 다급히 하이어드의 어깨를 양손으로 쥔 채 힘껏 밀어내려고 했으나, 꿈쩍할 턱이 없었다.
“응?”
뜨거운 숨에 의해 건조해진 하이어드의 목소리는 베이지의 의중을 묻고 있었다.
베이지의 아래에 박힌 하이어드의 중지가 내벽을 쑤석대며 빠져나오려는 듯 뒤로 물러나다 다시 깊게 삽입되었다. 어루어 달래는 듯 느릿하고 묵직한 손길이었다.
“읏!”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몸을 밀어내는 것을 포기하고 그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검은 사제복이 그녀의 손아귀 안에서 잔뜩 구겨져 주름을 잡았다. 끈적한 물소리가 뭉툭하게 울렸다.
“내 손가락을 빨아 삼키는 꼴을.”
“아흐…….”
하이어드가 중지를 둥글게 돌리며 빼내자 안에 고여 있던 덩어리진 애액이 손가락에 들러붙은 채 밖으로 끄집어내졌다.
이게 세상의 전부인 양 하이어드의 옷자락을 그러쥐고 있던 베이지의 손아귀 힘이 풀리며 툭, 그녀의 팔이 다시 젖은 잔디 위로 떨어졌다.
“좋다는 뜻으로 이해하면 되는 건가.”
하이어드는 팔을 들어 올려 희끄무레한 월광에 아래 번들거리는 제 손을 훑었다.
퉁퉁 불어버린 손가락을 벌리자 베이지가 뱉어낸 물이 끈적하게 늘어나다 끊어지며 물비린내를 풍겼다.
좀 전 손끝으로 퍼내 올렸던 질액이 하이어드의 두툴한 뼈마디를 타고 사제복 소매로 꿀렁이며 흘러내렸다. 그의 긴 입매가 벌어지며 가지런한 치열 새로 빨간 살덩어리가 튀어나왔다.
탈진한 사람처럼 몸을 축 늘어뜨린 채 노곤한 시선으로 하이어드를 바라보던 베이지의 입술이 말려들었다. 베이지의 빽빽한 속눈썹이 파들거리며 그녀의 감정을 드러냈다.
하이어드의 혓바닥이 제 손목을 타고 흘러내리는 질액을 뭉근하게 눌러 덮었고, 쩌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떼어졌다. 점도 높은 애액이 투명한 실처럼 늘어져 그의 혓바닥으로 옮겨 갔다.
“그걸…….”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베이지의 귀가 새빨갰다.
하이어드는 제 입 안에서 혀를 굴리며 입맛을 다시는 듯하다 훅 상체를 굽혔다. 그의 딱딱한 콧대가 베이지의 동그란 코끝을 뭉그러뜨렸다. 그녀의 흉부가 꺼지며 훅 숨을 들이켰다.
“보짓물만 흘려댈 게 아니라.”
베이지는 섣불리 숨조차 내쉬지 못했다.
묵직하게 목구멍을 긁고 토해지는 저음이 귓가를 둥둥 울렸고, 거친 입술이 숨을 뱉어낼 때마다 턱끝을 간질였다.
하이어드의 까칠한 손바닥이 무릎을 타고 허벅지 안쪽까지 파고들 때조차 바들거리며 숨을 계속해서 들이삼킬 뿐이었다.
핏줄이 두툴하게 돋은 하이어드의 손등이 꽤나 꺼끌한 베이지의 음모 위를 쓸었고.
“구멍도 좀 벌려 보지.”
하이어드의 엄지와 검지가 베이지의 아랫구멍을 쑤시더니 힘줘 벌렸다.
“흣…….”
갑작스러운 손길에 베이지의 아래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절로 구멍이 벌름거렸다. 그녀의 질구가 벌어질 때마다 그 안에 골차게 웅그러져 있던 애액을 게워냈다.
“아!”
하이어드의 날카로운 이가 베이지의 턱끝을 가볍게 물고 떨어짐과 동시에 손가락 두 개가 그녀의 구멍을 쑤시고 들어갔다.
“으흥……!”
하이어드는 눅눅하게 젖은 채 뜨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내벽을 어루만지며 더 깊게 삽입했다.
“힘 빼.”
하이어드의 한쪽 눈이 찡그려지며 얼굴 근육이 움직이자 그의 새까만 머리칼에서 뚝 떨어진 땀방울이 베이지의 볼을 스치고 땅으로 스몄다.
명령조의 말을 건조하게 뱉어낸 하이어드의 얼굴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 베이지는 불안감을 느낄 새도 없이 목구멍으로 치닫는 신음을 삼켜내야 했다.
“흐…….”
베이지의 등허리 쪽으로 손을 반쯤 집어넣어 그녀의 흉부 옆을 단단히 쥔 하이어드는 그대로 머리를 숙였다.
“으흥……!”
하이어드의 벌건 혀가 얇은 슬립 위로 도드라지게 솟은 베이지의 젖꼭지 위를 한 차례 쓸고 지나가더니, 이내 잔뜩 영근 유두만을 입술로 삼켰다.
“거, 긴, 읏!”
부어올랐다고 해도 자그마하기만 했다. 하이어드의 끈적한 침이 고들고들한 베이지의 젖꼭지 위로 쏟아져 그녀의 유두를 축축하게 적셨다.
얇은 슬립과 함께 하이어드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간 베이지의 젖꼭지는 뜨겁기만 한 그의 입술 안 점막에 마구잡이로 비벼지면서도, 녹녹한 그의 혀가 젖꼭지 첨단을 스칠 때면 동시에 이는 까끌한 옷감의 감촉을 견뎌내야 했다.
“흐으……!”
아기가 젖을 빨듯, 슬립에 쌓인 베이지의 유두를 연신 빨아대던 하이어드가 엄지로 슬립을 걷어냈다. 침에 젖은 천이 말려 올라가고, 땡땡하게 발기한 그녀의 유두가 찬바람을 맞아 더욱 꼿꼿이 섰다.
하이어드의 눅진한 혓바닥이 베이지의 유두 주위를 원을 그리듯 훑어내다 단번에 꼭지를 빨아 삼켰다.
“으읏! 으…… 흐!”
주름진 유두 껍질의 표면이 하이어드의 혀로 문질러지며 그의 입 안에서 더욱 흥건하게 젖어 들었다.
하이어드는 제 코끝과 입술에 의해 납작하게 뭉그러져 옆으로 흘러내린 베이지의 둥그런 유방 둘레를 엄지로 문지르며 그 굴곡을 훑었다.
노골적이지 않으나 느릿하게 우겨진 유방 둘레를 문지르는 감촉이 야릇해, 베이지의 목구멍에서 뜨거운 신음이 절절 들끓었다.
“흐으…… 아흣!”
쩌걱, 쩔걱. 하이어드는 점점 더 많은 물을 뱉어내는 베이지의 구멍이 제 손가락을 잘근잘근 물어대는 통에 아랫도리가 뻐근하다 못해 거무죽죽하게 몸집을 부풀리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아.
고작 두 개를 꾸역꾸역 먹어대는 꼴이 같잖았다. 전쟁을 치르고 온 병사들에게 몸을 팔던 창부처럼 자신을 꾀더니.
처녀라니.
모를 턱이 없었다. 제 손이 닿을 때마다 미세하게 굳는 몸과 손가락 하나에도 파득거리며 허리를 물리는 꼴을 보고도 모를 리가.
그래도…… 처음 치고는, 잘 삼키긴 하는데.
하이어드는 엄지로 음핵 위를 툭툭 치며 물을 튀기자 꾸물거리며 액을 뱉어 제 손가락을 녹녹하게 적시는 베이지의 질벽을 꾹 누르다, 음핵을 빠르게 비비며 삽입질하기 시작했다.
제 자지를 먹여 주려면 부족했다.
“아, 응! 응, 흐, 으, 으……!”
베이지의 고개가 젖혀지며 그녀의 목에 가는 핏대가 서 발갛게 물들었다. 쩔걱거리는 물소리가 질 내에서 쉴 새 없이 울리고 그녀의 아래에서 물이 줄줄 새어 흘렀다.
“하, 으, 으.”
베이지의 다리가 달달거리며 곱아들기 시작할 무렵, 하이어드의 엄지가 음핵을 세게 누른 채 위로 잡아 올렸다.
“아, 아…… 응!”
베이지의 하체가 또 한 번 꽉 죄며 절정으로 치달았다.
베이지의 몸이 힘이 죄다 빠진 채 축 늘어지자, 하이어드는 사정의 여파로 간헐적으로 제 손가락을 씹어대는 그녀의 질을 후벼파 애액 덩어리를 빼냈다.
“흐, 으.”
베이지의 음부가 게워낸 투명하고 끈적한 애액이 비에 젖은 잔디 위로 덩어리져 흘러 있었다.
“이렇게…….”
하이어드는 몸을 일으켜 그 꼴을 내려다보다 제 무릎을 베이지의 가랑이 사이에 욱여넣은 채 잔디를 비볐다.
“흔적을 남기면 어떡하나.”
하이어드의 굵은 다리통이 들어와 음부 바로 아래에서 놀려지며, 좀 전 절정을 맞아 한층 더 예민해져 있던 음핵을 간들간들 들이받았다. 더 이상 뱉을 것도 없어 보였던 베이지의 아래가 한 차례 더 울컥 액을 토해냈다.
“보지 간수를 잘 해야지.”
점잖은 하이어드의 목소리가 귓가를 묵직하게 빨았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보짓물이 그득히 묻어나는 무릎을 들어 그대로 그녀의 허벅지 위로 갖다 대 문질렀다. 채 바지 천 아래로 흡수되지 못한 질액이 베이지의 다리 위로 얹어졌다.
“많이도 싸질렀네.”
무릎으로 애액을 떠 베이지의 허벅지에 먹여 주기라도 한 듯, 뭉클거리는 감촉이 드러난 허벅지 위로 선연해 베이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감아도 딱딱한 하이어드의 무릎이 찐득하고 물컹한 액을 제 허벅지 위로 묻히는 행위가 또렷이 보이는 듯했다.
베이지는 입술을 말아 물며 감은 눈 위로 두 손목을 교차해 얼굴을 힘껏 가렸다. 평소와 달리 한껏 붉어져 감정을 드러내고 있는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치부가 훤히 드러난 듯 수치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회음부를 타고 엉덩이골까지 꿀렁거리며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애액의 감촉을 애써 지워내려 하던 중이었는데…….
축축하게 아래를 적신 이것이, 다 제 몸에서 나온 거라니…… 믿을 수 없었다.
다들 어떻게 매일같이 이런 행위를 했던 거지?
베이지는 제가 단단히 간과했음을 인정했다. 단순히 보아 왔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남자와 몸을 접붙이는 일이 이렇게 음탕하고 원초적인 줄은 몰랐다.
베이지는 제 볼이 더 달궈지기 시작하자 팔을 얼굴에 더 단단히 붙여 가리고자 부단히도 애썼다.
하이어드는 베이지가 제 얼굴을 가리려 애쓰는 그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다 얼굴을 찌푸렸다. 열기에 벌겋게 익은 그의 목 위로 땀방울이 떨어졌다.
잠시 내려앉은 정적 새로 베이지가 새근새근 숨을 고르는 소리만이 섞여 흐르던 찰나, 무언가 못마땅하다는 듯 불퉁한 숨이 비집고 들어섰고.
“흣!”
베이지는 숨을 들이삼켜야 했다.
하이어드의 손가락 끝이 여러 개 모여 울퉁불퉁해진 것이 흐물하게 풀어진 구멍 위를 어루만지자, 베이지는 그 야릇한 느낌을 견뎌내고자 주먹을 꽉 쥐었다.
“보지는 벌렁거리면서 물을 죽죽 싸는 속까지 훤히 내보여 주는데.”
하이어드의 묵직한 목소리가 천박한 말들을 지껄였다. 길거리의 시정잡배들이나 뇌까릴 법한 말본새였다. 그의 진한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가며, 동시에 베이지의 입에서 미처 참지 못한 신음이 터졌다.
“읏!”
하이어드의 손가락 세 개가 베이지의 구멍으로 강하게 쑤셔 박혔다.
베이지는 신음을 억누르려 입을 악다물며 더 이상 가까이 댈 데도 없는 팔을 얼굴에 더 바싹 붙였다.
하이어드의 미간 새에 깊은 주름이 지며 더욱 흉흉한 기운을 머금었다.
허리는 이리 꺾어대면서.
“흐응! 읏…… 흣.”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베이지의 질 속을 거칠게 누볐다. 손가락이 물이 흥건한 질벽에 마찰되는 찔벅거리는 소리 위로 간간이 베이지의 신음이 섞였다.
“으…… 흐!”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그 뿌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숙이 삽입되었다가도, 추진 물소리와 함께 단번에 뽑혀 나갔다.
꽤 고통스러울 텐데도 베이지는 제 얼굴에서 팔을 뗄 생각이 없는 듯했다.
하이어드의 한쪽 눈이 가늘어지며 투박한 턱이 벌어져 입을 다셨다.
얼굴이, 안 보였다.
열기에 달아오른 채 징그러울 정도로 두툴한 핏줄이 돋은 하이어드의 목 위로 솟은 그의 목젖이 한 차례 울렁였다.
하이어드는 제가 손가락을 빼내 꾸물꾸물 닫히기 시작하는 베이지의 구멍 위를 살살 쓸다, 다시 손가락을 삽입해 그녀의 질벽을 헤집기 시작했다.
쩔벅거리는 물소리가 점점 거세지고 하이어드가 손가락을 잡아 뺄 때마다 베이지의 벌어진 음부 주위로 점성 있는 애액이 튀었다.
“으, 으, 응……!”
하이어드는 엄지 끝으로 베이지의 시뻘건 음핵 위를 사정없이 튕겼고, 베이지는 고통을 수반한 쾌감에 사로잡혀 신음을 내지르며 허리를 파득거려야 했다.
젖은 돌기가 질액이 묻은 손가락에 의해 이리저리 튕겨지는 동안에도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얼굴을 집요하게 훑었다.
허연 손목이 고운 얼굴의 절반을 가렸고, 새하얀 잇새가 도톰한 입술을 머금어 감췄다.
뽀얗게 늘어진 젖가슴과 그 가운데 꼿꼿이 선 불그스름한 유두만이 하이어드의 손길에 의해 덜렁거리며 그의 시선을 반겼다.
후.
하이어드의 흉곽이 팽창하며 느른 숨을 토해냈다. 무엇이 그리 불만스러운지 판판한 이마 위로 도드라진 핏줄이 꿈틀댔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하이어드는 늘쩍지근하게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검은 음모 아래에 벌어진 틈을 감싼 돌출된 살 껍질은 마치 숨을 쉬듯 뻐끔거렸으며 그 밑에 자리한 구멍은 이미 한계치까지 벌어져 제 손가락을 꾸역꾸역 버겁게 삼켜내고 있었다.
베이지가 바르르 죽인 숨을 내쉴 때마다 빠듯하게 손가락이 들어찬 구멍 아랫면에서 아주 작은 틈을 비집고 물이 새어 흘렀다.
조금만 손을 움직여도 얕게 경련하는 판판한 복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이어드의 검은 동공이 위를 향했다.
베이지가 두르고 있던 얇은 슬립은 이미 하나의 끈처럼 말려 올라가 한쪽은 그녀의 유방 위에, 다른 한쪽은 유방 아래에 사선으로 걸쳐져 있었다.
제가 빨아대 퉁퉁 부어오른 젖꼭지를 말없이 응시하던 하이어드는 남은 손을 그녀의 부푼 유방 위로 얹었다.
“흣!”
베이지가 몸을 옹송그리며 신음을 쏟자 하이어드의 배꼽에 바싹 붙어 있던 성기가 꺼떡이며 그 첨단에서 물을 토했다. 검붉은 귀두의 중앙에 난 구멍에서 몽글몽글 덩어리진 쿠퍼액이 고이더니 이내 길고 두툼한 살덩어리의 옆면을 가르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 꼴리기는 하는데.”
저 바르작거리는 몸짓 새에 가려진 얼굴을 보아야 물을 쌀 것 같았다. 하이어드는 일순 베이지의 구멍 안에 박혀 있던 제 손가락들을 모조리 빼냈다.
“아흣!”
베이지의 아랫구멍이 굴곡진 질주름을 굵고 빠져나가려는 하이어드의 손가락을 한껏 빨아당겼다.
채 다물어지지 않아 고인 물을 뱉어내는 구멍이 꾸물대며 다시 수축하려던 찰나, 그녀의 발목 위로 뜨겁고 거친 체온이 내려앉았고.
“아!”
베이지의 몸이 순식간에 아래로 죽 끌려 내려갔다. 그녀는 제 몸이 어딘가로 끌려가며 옅게 등을 긁고 올라가는 잔디의 까칠한 감촉에 단말마를 지르며 손을 떼 상황을 살폈다.
하이어드의 허리를 가운데에 낀 채 제 양다리가 쩍 벌어져 있었고, 검은 사제복에 쌓인 단단하고 두꺼운 그의 허벅지 위로 얹어진 제 허벅지는 축 늘어져 살이 눌려 그 모양이 뭉그러져 있었다.
자신의 검은 수풀 위로 튄 투명한 애액이 달빛에 반사되어 너저분하게 빛나는 것이, 제 경박한 몸가짐을 나무라는 듯했다.
베이지는 그보다 더 아래를 보기 전 침을 꼴딱이며 세차게 뛰는 제 심장을 달랬다.
“후으…… 하.”
아래에서 육욕이 거무죽죽하게 묻어나는 하이어드의 신음이 베이지의 보지를 간질였다.
하이어드는 한 손으로는 베이지의 허벅지를 뭉그러뜨리듯 주무르고 있었고, 남은 손으로는 제 좆기둥을 훑어 올리며 밭은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흣…… 후.”
몸을 가리는 거라곤 말려 올라간 천 쪼가리 하나가 전부인 베이지와 달리 하이어드는 정결한 사제복을 오롯이 차려입은 상태였다. 단 한 부위만을 제하고.
풀어 헤쳐진 바지춤 새로 좀 전 베이지가 빨았던 하이어드의 드로즈가 한 꺼풀 벗겨져 그의 고환 아래에 자리했다.
고불거리는 음모가 무성한 가운데 툭 불거진 두 개의 살덩어리는 씨를 그득히 들어채운 채 하이어드의 사타구니에 딴딴히 올라붙어 제 씨를 뿌리기를 고대하는 듯했다.
“왜. 이제 먹여 줄까.”
베이지의 시선을 알아차린 하이어드가 눈을 내리깔아 그녀의 얼굴을 훑었다. 제 고간을 주무르는 손짓은 멎지 않은 채로. 욕정이 자르르한 그의 눈가가 벌갰다.
베이지의 얼굴에 열이 돌았다. 제가 지금, 뭘 그렇게 빤히 본 거지. 보지 않아도 제 볼이 붉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화끈거렸다.
화닥닥대며 시선을 튼 베이지는 달아오른 제 얼굴을 가리기 위해 또다시 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하이어드가 잠자코 그 꼴을 보고만 있을 턱이 없었다.
“보지가 이렇게 입을 다시는데.”
하이어드가 제 좆을 놓자 그의 손에서 빠져나간 자지가 탄력 있게 덜렁거리며 다시 솟았다.
베이지의 골반을 양손으로 틀어쥔 하이어드는 그녀의 몸을 그대로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베이지의 몸이 보다 더 아래로 끌려 내려가며 그녀의 하체가 하이어드의 허벅지 위로 맞물리듯 얹혀졌다.
육욕으로 인해 징그러울 정도로 핏줄이 돋아 시뻘게진 하이어드의 거대한 손등은 베이지의 허리를 모조리 가릴 정도의 크기였다.
바싹 긴장한 베이지의 판판한 아랫배가 제 손아귀 아래에서 움찔거리는 것을 알아차린 하이어드가 엄지로 그녀의 배를 살살 문질렀다.
“주인이 봐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천하기 그지없는 하이어드의 말소리에도 베이지는 숨을 죽이고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때였다.
“읏!”
발기한 음핵 위를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무언가가 한 차례 내리쳤다.
일순 치솟는 공포에 베이지가 서둘러 손을 떼 아래를 살피자, 하이어드가 기다렸다는 듯 다시 제 좆을 그녀의 공알 위로 툭툭 쳤다.
“흐읏…….”
머리가 삐쭉 서는 쾌감에 신음을 흘리던 베이지는 곧이어 아래에서 느껴지는 감촉에 힘이 다 빠진 몸을 다급히 일으키려 했다.
“으, 으, 안 돼요……!”
이런 자세에서 기력 하나 없는 베이지가 몸을 일으킬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베이지가 일으켜지지도 않는 몸을 일으키고자 바동거리고 있을 때, 하이어드의 요도구는 뻐끔거리는 그녀의 보지 앞에서 물을 죽죽 뱉어내며 꿈틀대고 있었다.
“아, 안 들어갈……!”
기둥 전면을 뒤덮은 검붉은 핏줄 탓에 겉표면이 우둘투둘한 살덩어리가 질을 비집고 들어오는 감촉이 선연했다. 길고 두툼한 것이 제 아래에 가득 들어차고 있었다.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행동을 저지하기 위해 허공에 손을 휘저었으나, 그보다 하이어드의 행동이 빨랐다.
베이지의 내벽에 있는 애액이 하이어드의 좆대가리에 의해 쭉 짜내지는 물기 어린 소리가 울렸다.
읏.
제 좆을 쥐어짜는 눅눅한 점막의 압박에 하이어드의 턱끝이 치켜들렸다. 벌겋고 두툴한 목 위로 인내의 과실인 땀방울이 흘렀고, 하이어드의 새까만 속눈썹이 파들거리며 그의 동공을 잠시 덮었다 드러냈다.
세 개로는 부족했군.
제 자지에서 허연 씹물을 빨아먹으려는 듯 꽉 죄는 뜨겁고 축축한 내벽에 하이어드의 목에서 낮게 허덕이는 소리가 들끓었다.
“아, 아파요…… 아파…….”
고통은 입구가 불에 덴 듯 쓰라리고 화끈거리는 정도에서 그치지 않았다. 베이지는 무언가가 들어온 적이 없던 곳에 거대한 살덩어리가 버겁게 들어차며 가랑이가 반으로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일자 고개를 저으며 애원했다.
하이어드는 바들거리면서도 제 아래를 다 삼켜내는 베이지의 아랫배를 향해 손을 뻗어 좀 전과 달리 툭 솟은 뱃가죽 위를 엄지로 꾹 눌렀다. 그의 잇새에서 그르렁거리는 신음이 샜다. 동시에 관자놀이 부근에서 흐른 땀방울이 그의 붉은 입꼬리 끝을 스치고 떨어졌다.
하이어드는 고불거리는 자신의 새까만 음모와 베이지의 음모가 얽힌 채 제가 숨을 내쉴 때마다 더 단단히 엉클어지는 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흐읏!”
베이지는 갑작스럽게 질 안에서 살아 있는 양 꿈틀거리며 제 존재감을 과시하는 하이어드의 자지 탓에 놀라 저도 모르게 아래를 꽉 죄었다.
흣.
일순 하이어드의 아랫배가 안으로 말려들었고 그는 사정감을 참는 듯 한쪽 눈을 찌푸렸다.
하이어드는 꾸물거리며 제 아래를 씹어 대는 베이지의 물컹한 내벽에 적응하려 하며 시선을 들었다.
베이지는 아래에서 치미는 얼얼한 고통과 제 몸의 일부가 된 채 맥동하는 거대한 살덩어리의 두둑한 부피감에 입도 다물지 못하고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하이어드는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난 베이지의 감정을 엿보다 골반을 타고 손을 내려 그녀의 봉긋한 엉덩이를 손아귀 안에 꽉 쥐었다.
“흐으……!”
낯선 손길에 겁먹은 베이지가 다시 한번 아래를 조이자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 뜨거운 숨이 터졌다.
씨발.
지리겠네.
제 자지가 비좁은 질 속에서 꺼떡거릴 때마다 그에 반응하듯 좆을 뜨듯하게 휘감아 올리며 제가 뱉은 물로 기둥을 적셔주는 비좁은 구멍은 음탕하기 그지없었다.
“후.”
우람한 흉부가 한 차례 부풀며 하이어드가 고개를 느른하게 돌려 열기를 식혔다.
사제복이 목을 꽉 죄어 옷자락이 구겨지는 소리가 퍼졌다. 백색의 성직 칼라 위로 이어진 굵은 핏줄기가 맥동하며 미약의 기운을 퍼 나르고 있었다.
다시금 베이지의 골반을 꽉 틀어쥔 하이어드의 탄탄한 엉덩이가 뒤로 물려지며 그녀의 구멍과 멀어졌다. 질액이 번들거리는 흉측한 살기둥이 외부로 끄집어내지는 듯하다가.
퍽. 다시 베이지의 구멍 속으로 틀어박혔다. 주름진 질이 온 기둥을 휘감아 짜내자 하이어드의 엉덩이 근육이 꽉 조여들었다.
제 몸에 비해 한 줌도 되지 않을 듯한 베이지의 가는 몸을 두 손으로 지탱한 하이어드는 그대로 제 좆을 사정없이 박아대기 시작했다.
“아, 읏, 응!”
기운 하나 없이 축 늘어진 베이지의 온몸이 흔들거렸다. 하이어드의 침이 반질반질하게 묻은 유방과 유두가 덜렁였고 매가리 없이 쩍 벌어진 그녀의 얇은 다리가 허공을 휘저었다.
턱, 턱, 턱. 젖은 살이 쉴 새 없이 부딪히는 차진 소리 위로 딴딴하게 영근 하이어드의 불알이 물이 그득한 베이지의 회음부를 두드리는 축축한 소리가 쌓였다.
“자지를, 얼마나, 먹고, 하, 싶었으면.”
“아, 응, 흥, 으!”
베이지의 모래색 머리칼이 찬공기에 섞여 나부꼈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해 꼴딱이다 남은 침이 목구멍 위를 겉돌아 입가로 줄줄 새어 흘렀다.
“이리 게걸스럽게, 읏. 씹어, 대는 겁니까. 후.”
베이지와 마찬가지로 하이어드의 목구멍에서도 삼키지 못한 신음이 절절거렸다.
오랜 인내 끝에 얻어낸 물구멍이었다. 구석으로 치받을 때는 질색해 제 좆물을 짜내려 하고 끄집어낼 때는 자지를 꽉 물어 놓을 생각을 않았다.
“으, 흣, 후.”
하이어드의 허리가 앞뒤로 왕복할 때마다 그의 입 밖으로 뚝뚝 끊어지는 숨소리가 허공을 달궜다. 그의 까칠한 음모가 베이지의 가랑이 사이를 할퀴며 좆 뿌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게 삽입되었다가 쩌적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빠져나왔다.
아래가 턱턱 빈틈 하나 없이 맞물릴 때마다 치미는 사정감에 하이어드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그의 새까만 머리칼이 바람과 함께 넘어갔다.
하이어드의 몸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검은 머리칼이 축 늘어진 채 어둠 속으로 섞였다.
“하…… 흣. 보지 힘 좀, 풀지.”
열기에 끓어 건조한 목소리가 살끼리 맞부딪히는 찰진 소리에 섞였다.
퍽.
“흐응!”
그 이상의 공간이 없을 것 같던 아래에 하이어드의 좆이 꽉 들어찼다. 베이지의 질액이 옮겨붙어 축축하게 젖은 그의 음모가 그녀의 회음부에 바싹 붙었다.
후.
물이 가득한 베이지의 질이 제 좆을 휘감아 짜자 하이어드의 엉덩이 근육이 바짝 수축했다.
하이어드의 상체가 뒤로 기울어지며 그의 턱뼈가 불거졌다. 벌겋게 달아오른 목 위로 솟은 목젖이 꿀렁이며 단내가 나는 숨을 삼켰고 그의 눈꺼풀은 무겁게 감겼다.
물이 가득한 베이지의 질이 제 좆을 쥐어 짜내는 느낌이 눈을 돌아가게 만들었다.
지금이라도 이 요부가 그토록 원하는 씨물을 그녀의 아기집에 싸갈기고 싶었다.
아래를 놀리지 않는데도 미끌거리는 점막이 꾸물거리며 좆기둥을 조이자, 굵은 성기가 정액을 게워 내고자 꿈틀거렸다.
파들거리던 하이어드의 검은 속눈썹이 올라가며 드러난 욕정에 절 대로 절어버린 새까만 동공이 베이지를 향했다.
다시 제 아래를 접붙이기 시작하는 하이어드의 하체가 느릿하게 왕복하며 두툼한 상체가 베이지의 몸 위로 겹쳐졌다. 그의 몸이 숙여짐에 따라 더 높은 허공으로 치솟은 그녀의 다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빨간 입매를 가르고 빼내진 긴 혓바닥이 베이지의 젖꼭지를 아래에서부터 쭉 훑어 올리자, 발기해 딴딴해진 살점이 딸려 올라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며 탱탱하게 흔들렸다.
하이어드는 만족스러운 듯 한 손을 들어 올려 제 침이 흥건한 유두의 끝을 검지로 둥글게 문지르다 살점을 꾹 눌러 젖무덤 속으로 집어넣었다.
“흐으…….”
통통한 젖가슴 속으로 푹 파묻히는 듯하던 불그스름한 유두는 하이어드가 손을 떼자마자 볼록 솟아올랐고 그는 머리를 숙여 다시 제 침을 적셔 빨았다.
“흣, 으, 응.”
베이지는 잔디가 제 목숨줄인 것처럼 양손 가득 그러쥔 채 고개를 내저었다.
아래로는 제 젖무덤에 파묻힌 검은 머리통이 흔들리는 광경만이 가득했다. 가슴 끝에서 찌릿거리는 감각이 올라오는 것도 미칠 지경인데 가슴께 위를 간질이는 새까만 머리카락의 부드러운 감촉이 보다 외설적이라 견디기 힘들었다.
하이어드가 좀 전보다 느릿하게 허리를 흔들자 표면이 두툴한 기둥이 제 아래를 오가는 감촉이 더 선연하게 느껴졌을뿐더러 기둥이 아래에 꽉 들어찰 때마다 알 수 없는 두 개의 살덩어리가 제 아래를 거세게 때리며 추진 소리가 퍼졌다.
느릿하게 이루어지는 정사 탓에 모든 감각이 잊을 수 없이 선연해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듯했다.
쿵, 쿵 베이지의 심장이 뛰는 소리가 하이어드의 귓가조차 울릴 정도로 거대했다. 더 달궈질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녀의 볼은 열이 올라 화끈거리는 기운만을 자아내고 있었다.
턱, 턱. 엉덩이를 뒤로 빼다 깊이 처박기를 반복하던 하이어드가 몸을 일으키며 다시금 베이지의 골반을 단단히 틀어쥐었다.
베이지의 내벽은 어느새 녹녹하게 젖은 채 뻐끔거리며 무리 없이 하이어드의 좆을 삼켜 내고 있었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땀에 젖은 머리칼을 한 차례 쓸어 올렸다. 이마까지 핏줄이 돋은 채 불긋한 기운을 품은 그의 얼굴은 모든 이들의 육욕을 자극할 만큼 색정적이었다.
후.
너른 흉곽이 팽창하며 갈증에 찬 숨이 토해졌다.
실 한 오라기 수준의 끈만을 걸친 베이지와 달리 상의를 완벽하게 갖춰 입은 하이어드는 하의 또한 너저분하게 풀어 헤쳐진 고간을 제외하고는 평소의 고결한 사제의 차림새 그대로였다.
검은 사제복 아래 가려진 하이어드의 굵은 팔에 붙은 근육들이 수축하며 베이지의 몸을 제게로 끌어당겼다.
퍽.
“흡!”
베이지는 또다시 제 배를 뚫을 듯 끝까지 박히는 하이어드의 좆기둥을 꾸역꾸역 눌러 담으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
하이어드가 허릿짓을 할 때마다 땀에 젖어 더욱 새까매진 머리칼이 다시 앞으로 넘어오며 그의 콧잔등 위를 스쳤다.
자지가 물길을 뚫고 지나갈 때마다 물이 죽죽 짜지는 소리와 살끼리 철벅이는 소리가 채 다물어지지 않은 베이지의 입가로 흘러들어갔다.
“읏, 으, 천, 천천히…….”
베이지의 발가락 끝이 오그라들었다.
베이지는 제 온몸이 속절없이 흔들리는 것도 모자라 제 아랫구멍에 살덩어리가 강하게 처박힐 때마다 치미는 요의를 참아내느라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다리를 오므리지 않으면 무언가를…… 쌀 것 같았다.
턱, 턱. 하이어드의 자지가 베이지의 질 속을 마음껏 누비며 그녀의 아래를 강하게 자극했다.
“자, 잠시만…….”
베이지의 애원에 하이어드의 신음이 섞였다.
흣, 흐.
하이어드는 발정 난 짐승마냥 하체를 접붙이며 제 자지를 처넣는 데만 몰두했다. 하이어드의 헐떡거리는 뜨거운 숨소리가 베이지의 헐벗은 몸 위로 쏟아졌다.
점점 거세지는 배뇨감을 참고자 베이지가 아래를 꽉 조이자 하이어드의 허릿짓이 더욱 강해졌다.
“읏, 응, 흐, 잠, 깐……!”
“뭘.”
하이어드의 거대한 상체가 숙여지며 베이지의 코끝을 살짝 물고 떨어졌다. 그녀의 콧등 위로 거칠고도 낮은 웃음소리가 흩어졌다.
“좆질?”
하이어드는 베이지가 사정없이 조여대는 질 속을 억지로 파고들며 제 자지는 물론 불알까지 턱턱 치댔다.
“아, 응, 읏, 응!”
베이지의 아래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며 주름진 질이 더욱 조여들기 시작했다.
“싸, 쌀…… 것, 으, 흐윽…….”
베이지의 목구멍으로 숨이 꼴딱꼴딱 넘어갔다. 기어코 물기까지 감돌기 시작했다. 말을 하고 싶었으나 제대로 된 단어조차, 고른 숨조차 뱉어지지 않는 탓이었다.
하이어드의 좆이 깊숙이 박히는 순간순간 저릿한 아래에서 이상한 느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좀 전 하이어드가 음핵을 자극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턱, 턱, 턱.
“흣, 으! 흑…… 아, 응……!”
딴딴하게 영근 하이어드의 고환이 그의 사타구니에 바싹 올라붙어 번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순 하이어드의 자지가 베이지의 뱃가죽을 찢어 놓을 듯 깊숙이 삽입되었고.
“아, 아…… 흐응!”
절정을 맞은 베이지의 아래가 물을 쭉 토해내며 거칠게 요동쳤다.
“읏.”
동시에 절정에 치달은 하이어드의 엉덩이가 바짝 죄이며 그가 허리를 가볍게 털었다. 정액을 짜내는 그의 좆기둥이 껄떡대며 질을 두드렸고 걸쭉한 백탁액이 요도구에서 간헐적으로 쏘아져 나오며 애액으로 젖은 질주름 사이사이에 더럽게 꼈다.
후…… 읏.
하이어드의 턱끝이 젖혀지고 그는 절정의 여운을 즐기려 느릿하게 하체를 흔들었다. 척추로 저릿한 감각이 일 때마다 잇새로 잔뜩 억눌린 신음이 샜다.
절정이 지나간 후에도 불규칙적으로 수축하는 질이 하이어드의 자지 속에 고인 정액을 죽죽 짜냈다.
힘이 바짝 들어간 하이어드의 엉덩이 근육이 파들거리며 본능적으로 제 좆을 더 깊숙이 밀어 넣었다.
후.
하이어드는 물 먹은 듯 축 늘어진 베이지의 골반 위 여린 살결을 엄지로 문지르며 천천히 허리를 물렸고.
퍽.
“응!”
정액을 한 차례 빼낸 후 물컹해지는 듯했던 하이어드의 자지는 다시금 단단하게 솟아 벌겋게 달아오른 베이지의 내벽을 압박하고 있었다.
“흡…… 윽.”
햇볕에 그을린 흔적조차 없이 말간 피부를 가진 베이지가 하이어드의 체력을 따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이어드의 허벅지 위에 얹어진 베이지의 다리가 흔들거리기 시작하자 그녀의 상체도 힘없이 하느작거렸다.
견디기 힘든 쾌락이 아무리 달아나려 애써도 끈질기게 몸을 좇아 찾아왔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몸이 고됐다.
기어이 베이지의 눈꼬리에 고여 있던 눈물방울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렀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눈물을 보고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하체를 크게 물렸다. 그리고…….
퍽.
“흣!”
발끝이 곱아드는 쾌감에 베이지의 가느다란 목선이 드러나며 그녀가 참지 못한 신음을 토해냈다.
하이어드의 거대한 손이 뻗어지더니 베이지의 가는 목을 그러쥐었고, 그의 엄지 끝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베이지의 목 중앙을 쓸었다. 까끌하고 단단한 손끝이 부드러운 살결을 긁었다.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목을 쥔 채 허리를 흔들자 쭉 뻗은 그의 팔에 돋은 힘줄이 꿈틀대며 움직임을 보였다.
흣, 후.
“아, 하, 읏, 응!”
하이어드의 거센 허릿짓은 멎을 줄을 몰랐다. 정액이 들어찬 씨주머니가 찰진 소리를 내며 베이지의 음부를 세차게 두드렸다.
“조, 조금만 살…… 살.”
베이지는 제대로 된 문장조차 뱉어내지 못했다.
“왜.”
하이어드의 고개가 비스듬하게 기울었다.
“헐, 때까지. 흣. 쑤시라고.”
하이어드의 머리칼을 적신 그의 땀방울이 거친 삽입질에 의해 뚝뚝 아래로 떨어졌고, 차갑게 식은 채 베이지의 희고 고운 복부 위를 적셨다.
“내어 준 게.”
퍽.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아래에 제 자지를 꼽아 단단히 맞물린 채 허리를 돌리자 꼿꼿한 살기둥이 질 속을 긁어 팠다.
응!
베이지의 입가로 침과 함께 앓는 소리가 샜다.
“아니었나?”
베이지의 골반을 쥐고 있던 하이어드의 굳은살 박인 손바닥이 죽 미끄러져 올라가며 그녀의 살결을 긁었고, 종내 봉긋한 젖가슴을 강하게 움켜쥐더니 굴리듯 주물렀다.
“응, 흐, 읏, 아!”
베이지는 하이어드가 자지를 처넣을 때마다 억누르지 못한 신음을 토해냈다. 참고, 삼키고 싶었으나 손 하나 까딱일 기력이 없었다. 그녀의 눈꼬리 끝에 또다시 눈물이 맺혀 흘렀다.
물을 뱉어내는 하이어드의 귀두가 깊은 곳을 쑤석거리는 순간순간 저릿한 쾌감이 일어 몸이 절로 굽었다. 그의 허릿짓을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응! 흡…… 흐윽. 읏!”
먹먹한 울음소리와 섞인 신음이 벌어진 베이지의 입술 새로 흘러나왔다.
빤히 베이지의 얼굴을 훑던 하이어드의 삽입질에 속도가 붙자 살끼리 맞부딪혀 두들기는 듯한 소리가 베이지의 울음소리를 먹었다.
하이어드가 하체를 물려 베이지의 아랫구멍에서 좆을 뽑아낼 때마다 그녀의 투명한 질액뿐 아니라 끈적한 백탁액까지 뒤집어쓴 거무죽죽한 살덩어리가 드러났다.
후, 흐, 읏.
하이어드의 굵은 자지가 베이지의 구멍을 쑤시자 철벅거리는 소리와 함께 질액과 사정액이 뭉쳐진 물이 튀어 둘의 음모는 물론 허벅지와 사제복까지 더럽혔다.
퍽.
“흣!”
베이지의 허리가 꺾였다.
……윽.
짧고 낮은 신음과 함께 다시 한번 하이어드의 좆이 껄떡대며 물을 죽죽 쌌다.
주어진 조그마한 시간 안에 호흡을 고르기 위해 베이지의 흉부가 거칠게 오르락내리락 댔다.
그리고 그런 베이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하이어드는 다시금 허리를 뒤로 뺐다.
겨우 오늘 한 번 몸을 접붙인 것뿐이건만,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몸짓이 또 다른 정사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았다.
베이지는 다급히 손을 뻗어 하이어드의 팔을 잡아챘다. 그녀의 작은 두 손이 바들대며 굵은 그의 팔뚝을 목숨줄처럼 꽉 쥐었다.
“잠시, 잠시만요…….”
원치 않는 신음을 잔뜩 토해낸 베이지의 목소리는 갈라져 제대로 된 말을 뱉어내기조차 힘겨워 보였다.
하이어드의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한번 말해 보라는 뜻이었다. 잠시 허릿짓을 멈춘 와중에도 그의 자지는 꿈틀대며 쾌락을 좇기를 종용했다.
“아마 지금쯤, 흣. 순찰을 한 번 돌 거예요. ……제, 방으로 가요.”
베이지의 말이 무엇을 자극한 것인지 하이어드의 좆이 또 한 번 제 몸집을 부풀려 베이지의 뱃가죽을 밀어 올렸다.
으흣……!
“……원래 낯선 사내를 이렇게, 방으로 불러들이나?”
불퉁하게 가라앉은 하이어드의 목소리가 고요 속을 누볐다.
베이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부정해야 했으나 제가 문란한 여자가 되지 않으면 이 남자는 금방이라도 몸을 떼고 사라질 것만 같았다.
이미 제가 처녀라는 사실을 하이어드가 알고 있다는 걸 모르는 베이지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하이어드는 답을 하지 못하는 베이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상체를 숙여 가볍게 그녀의 젖꼭지를 혀로 빨아올렸다.
베이지는 축축하고 새빨간 하이어드의 혀가 딴딴한 살점을 휘감는 광경을 내려다보다 시선을 들어 올렸다.
흡!
하이어드의 하체가 뒤로 물러나며 정액과 질액으로 범벅이 된 그의 좆이 베이지의 아랫구멍에서 천천히 빠져나왔다.
우둘투둘한 기둥이 질벽을 긁으며 빠듯하게 빠져나가는 감촉에 베이지의 질이 수축하며 물을 찍 뱉었다.
하이어드는 잔디 위로 축 늘어진 베이지의 몸을 받쳐 안았다.
“안내해.”
흐, 읏.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말에 대답할 수 없었다.
하이어드는 한 손으로는 베이지의 어깨를, 한 손으로는 그녀의 다리를 받치고 있었다.
베이지가 낯을 붉히며 하이어드를 올려다봤으나 그는 그녀를 보지 않았다.
“보채는 건가.”
더 깊숙이 엄지를 밀어 넣을 뿐이었다.
“으흣!”
베이지의 다리 아래 가려진 하이어드의 우람한 팔뚝이 꿈틀대며 그녀의 보지 가까이 붙었다.
하이어드의 몸집에 비해 베이지의 체구가 작았기에, 그는 그녀의 한쪽 다리만을 받쳐 든 채 엄지로 그녀의 보지를 얕게 쑤시고 있었던 것이었다.
하이어드의 엄지가 아래로 꾹 눌리며 베이지의 보지가 벌어지자 불투명한 정액이 비져 나와 그의 손가락을 적셨다.
나체와 다름없는 베이지에게 흘긋 시선을 던진 하이어드는 오른손으로 둘둘 말린 옷을 대충 펴 그녀의 젖가슴을 욱여넣었고, 얇은 천 위로 도드라진 젖꼭지를 매만지며 걸음을 옮겼다.
추스르지 않은 하의 탓에 하이어드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피가 몰려 발기한 흉측스러운 살덩어리가 노골적으로 드러난 채 껄떡댔다.
* * *[S.D]
아, 응, 읏!
힘이 완전히 빠진 베이지의 몸이 하이어드의 하복부가 맞닿을 때마다 거칠게 흔들렸다.
베이지는 고개를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힘없이 옆으로 꺾여 있던 고개가 하이어드의 손길에 의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뒤통수를 받친 손을 거두지 않고 허릿짓을 계속했다. 그는 그녀의 시선이 제게서 떨어지는 꼴을 잠시도 보지 못했다.
하, 읏, 후.
번식기를 맞은 짐승과 같은 날것의 시선이 제게 닿자, 베이지는 견디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검은 시야 속, 자신의 몸 위로 쏟아지는 낮고 거친 숨소리와 젖은 살이 찰싹이는 소리가 그득했다.
할딱이며 코로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 깊숙이 하이어드의 묵직한 체향이 새겨졌고 간간이 정액의 비린내가 섞여 들어왔다.
암전이었다.
하, 흐. 잔뜩 가라앉은 신음 소리가 베이지의 귓전을 훑었다.
굳게 감겨 있던 베이지의 눈꺼풀이 뜨였고, 그녀는 정신을 차리자마자 다시 신음을 뱉어야 했다.
퍽.
“읏!”
더 들어올 수 없을 것 같던 공간을 기어코 비집고 들어온 자지가 질을 두드렸다.
베이지는 힘이 잔뜩 들어간 제 발가락이 달달 떨리는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온몸에 힘을 바짝 줘 제 아래를 죄었다.
베이지의 질이 요동치며 하이어드의 자지를 주물렀고 그의 아랫배가 잘게 경련했다.
하이어드가 몇 번째 사정을 맞는 것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배가 더부룩했다.
더 이상 질 속에 들어찰 공간이 없는 탓에, 하이어드가 정액을 누는 족족 베이지의 회음부를 타고 끈적한 백탁액이 새어 흘렀다.
이미 단단히 맞붙어 있는 하이어드의 하체가 더욱 깊게 밀고 들어오며 까끌한 그의 음모가 배를 긁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채 한쪽 눈을 찡그리며 씨물을 싸는 하이어드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베이지는 까무룩 정신을 놓았다.
* * *
베이지는 다리를 최대한 오므리려 애썼다. 걸음을 옮길 때뿐만이 아니라, 가만히 서 있는 순간에도 아래에서는 계속해서 무언가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이어드의 정액이었다.
실수였다. 일찍 눈치챘어야 했는데.
누군가와 잠자리를 해 본 적이 처음이었으니 이런 곤란한 상황을 맞으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침에 베이지가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이미 혼자였다. 어젯밤을 복기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언제 정신을 놓은 건지 기억을 더듬어 보던 그녀는 시계를 확인하고 모든 것을 잊었다. 점심 만찬이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한 것이었다.
난생처음으로 늦잠을 잤다는 사실을 깨달은 후 베이지는 서둘러 채비를 해 저택을 나서기 급급했다. 멍이 든 것처럼 뻐근한 몸에 신경 쓸 겨를조차 없이 바빴다.
잠시 하이어드의 안위를 염려하기도 했지만, 이내 머리에서 지웠다. 옛날부터 하인들은 정해진 시간에만 베이지의 침실에 출입할 수 있었고, 그녀의 침실은 애브조차도 방문이 금기시된 영역이었으니 아마 무사히 빠져나갔으리라 짐작하고 말 뿐이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시간 후, 베이지는 곤욕스러운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일을 보는 내내 아래가 조금 축축하고 달거리를 하는 것처럼 물이 비져 나오는 느낌이 일기는 했으나 주기가 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크게 개의치 않고 넘기려 했다. 베이지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확신을 얻은 건, 오찬이 끝나고 자리를 이동할 때가 되어서였다.
자리에서 일어나려 몸을 일으키던 중이었다.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어 냄과 동시에 덩어리 같은 것이 질을 비집고 나와 속옷 위로 후두둑 떨어졌다.
알아차린 즉시 아래를 조였으나 역부족이었다. 덩어리가 떨어지는 걸로도 모자라 눅눅한 물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흘러 허벅다리 안쪽을 죽 그어 내렸다. 차게 식은 피부를 타고 내리는 물이 뜨거웠다.
선득했다. 베이지의 머릿속에 지난밤의 잔상이 스쳤다. 간밤에 제 아래로 끊임없이 쏘아지던 물줄기와 빠듯하게 불러가는 제 아랫배를 지그시 눌러 내리던 투박한 손바닥이 아직까지 선연했다.
제 아래에서 쏟아지는 것은, 하이어드가 채워 놓은 그의 씨였다. 왜 깨닫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그토록 가득 부어 놓았으니 비져 나오는 것이 당연했다.
베이지는 새빨갛게 달아오른 목덜미로 애써 의연한 체 되뇌었다.
그보다 좀 전 마차로 이동하는 동안 처리했어야 했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한 탓에 마차에 오르면서도 애브를 떼어 내지 못했다.
베이지는 나지막이 한숨을 삼키며 돌이킬 수 없는 일에 대한 후회를 접었다. 서둘러 일을 보고 공작저로 돌아가는 길에 손수건이라도 댈 생각이었다.
“베이지.”
그때 불쑥하고 무뚝뚝한 목소리가 잔잔히 깔렸다. 베이지를 향해 고개를 숙이는 애브의 부드러운 백발이 흐트러졌다. 그는 베이지와 둘만 있을 때면 저도 모르는 버릇처럼 그녀를 이름으로 부르고는 했다.
“어디 불편하십니까?”
애브는 여느 때처럼 베이지의 표정에 미세한 변화가 인 것을 잡아냈다.
“아니요.”
베이지 또한 애브가 제 표정과 목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혹 그가 자신의 떨리는 목소리를 알아차릴까, 그녀는 짧게 답하며 대화를 끊어냈다.
애브는 베이지의 말에 그대로 시선을 거뒀고, 그녀는 그의 의심을 사지 않기 위해 다시 발걸음을 뗐다.
……아.
그 순간 베이지의 눈이 질끈 감겼다. 그녀의 긴 속눈썹이 파들거렸다.
제 아래가 뱉어낸 끈적한 액이 또 한 번 허벅지를 타고 흘러내렸다. 단숨에 종아리까지 가로지르는 한 줄기의 정액이 하이어드의 것이라는 생각에 낯이 절로 달아올랐다.
베이지는 시야를 차단한 상태에서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괜찮다, 괜찮았다.
사위가 캄캄한 이곳은 제 아래에 가득 들어찬 백탁액이 바닥에 밟히는 것이 흔하디흔한 홍등가였으니까. 희끄무레한 정액이 흐른다 한들, 들킬 리가 없었다.
베이지는 주위에서 몰려 들어오는 시끌벅적한 소음을 귀에 담으며 눈을 떴다.
벌건 등불이 흐릿하게 거리를 밝혔다. 다닥다닥 엉겨 붙은 낮은 층고의 건물들은 시뻘겋고 거멓게 물이 들어 있었다. 어둡고 음습한 골목에서는 갉작거리는 쥐새끼들이 튀어나오기도, 무절제한 신음 소리가 날뛰기도 했다. 헐벗다시피 한 남녀들이 길거리에서 웃음과 몸을 팔았다.
잔을 기울이는 소리와 욕지거리가 난무하는 이곳은 스논 공작가의 사업장 중 하나였다.
베이지에게는 한없이 익숙한 광경이었다. 약기운을 빼내기 위해 하이어드와 몸을 섞겠다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한편 베이지의 뒤에 선 애브의 짙은 녹안은 그녀를 고요히 훑고 있었다.
애브는 베이지가 다시 걸음을 멈추었음에도 입 한 번 떼지 않고 그저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킬 뿐이었다. 그는 아가씨가 괜찮다는 말로 저를 밀어낸 이상, 자신은 그녀의 일에 참견할 권한이 없는 한낱 호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때 얇은 목소리 하나가 베이지의 발목을 잡아챘다.
“베이지!”
저를 부른 이를 확인한 베이지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메리엔.”
간판 없는 가게 앞, 낡은 간이의자에 앉아 베렛잎을 둘둘 말아 피우고 있는 여자는 메리엔이었다. 내부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조명과 도톰한 입술에서 새는 희뿌연 연기가 뒤섞여 그녀의 화려한 얼굴을 비췄다.
타데오의 손길 아래, 저택의 그 누구와도 어울릴 수 없는 베이지가 유일하게 편안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이들이었다.
타데오는 홍등가를 무가치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 여겼다. 때문에 이곳은 유일하게 그의 손길이 닿지 않는, 그녀를 감시하는 사람이 붙지 않는 구역이었다.
이들은 저택에 있는 사람들처럼 베이지만 보면 몸을 떨지도 공포감이 서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지도 않았다.
베이지는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사람과 평범하게 말을 섞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오랜만이잖아! 그동안 잘 지냈어? 아! 그보다, 이리 와서 내 고민 좀 들어봐.”
무언가 떠올리는지 눈을 부릅뜬 메리엔은 자리에서 일어나 베이지를 데리러 직접 걸음 했다. 급히 일어난 탓에 가뜩이나 짧은 옷이 음부를 겨우 가릴 정도로 말려 올라갔으나, 그녀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베이지는 저를 붙잡으러 온 손길에 순순히 이끌려 갔다. 오늘은 가게 몇 군데만 확인하기로 했던 터라 시간이 꽤 여유로웠다.
메리엔은 가게 안으로 잠시 들어가더니 자그마한 나무 의자를 들고 와 제 옆자리에 놓고 툭툭 두드렸다. 의자 다리가 울퉁불퉁한 잿빛 돌길 위를 드르륵 긁었다.
“자, 여기 앉아 봐.”
베이지가 가까이 다가가자 가게 옆 골목에서 익숙한 인영이 불쑥 튀어나와 자연스레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베이지, 오랜만이네?”
“네. 오랜만이에요, 릴리.”
등 뒤 지퍼를 죽 끌어 올리며 골목에서 나온 릴리는 잔뜩 흐트러진 머리칼을 설게 쓸어 넘기며 벽에 등을 기댔다. 릴리는 베이지의 손을 꼭 쥐고 말을 시작하려는 메리엔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이미 그녀가 할 말을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 누구도 체면치레 하지 않는 상황에 베이지는 편안함을 느꼈다. 이들이 아는 것은 제 이름뿐인데도, 각자 저마다의 사연이 있기에 그런 것인지 이들은 호위를 데리고 주기적으로 페르몬트 거리를 방문하는 제 정체를 궁금해하지도 캐물으려 하지도 않았다. 입이 조금 걸걸하기는 하지만.
“나, 상사병에 걸린 것 같아.”
어마어마한 물건이었거든.
메리엔은 그녀의 성격답게 곧바로 본론을 꺼내며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메리엔에게는 그리 대수롭지 않은 주제였기에 베이지는 놀란 기색 하나 없이 그녀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었다.
“어제 길을 가다 남자 하나를 잡아서 잤는데 어쩜. 그곳이 그렇게 튼실할 수가…….”
메르엔은 침을 꼴딱 넘기며 두 손으로 기둥을 쥐는 시늉을 했다.
“굵기는 이 정도? 핏줄 두 줄기가 귀두까지 쭉 뻗었는데, 말도 못해. 아, 또 먹고 싶다. 근데 어디 사는지를 몰라서 미치겠어.”
태연스레 메리엔의 이야기를 귀담아듣던 베이지의 심장이 갑작스레 고동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모래색 머리칼 뒤에 숨긴 귓바퀴를 붉혔다. 그녀의 설명을 듣자 하니 하이어드의 음경이 떠오른 탓이었다.
검붉은 하이어드의 살덩어리는 메르엔이 쥔 빈 기둥보다 배는 굵었고 우둘투둘한 핏줄이 불거진 탓에 본래보다 더욱 비대한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검붉은 귀두를 꾸역꾸역 들이밀고 들어오면 닿지 않는 부분 하나 없이 아래에 빠듯하게 들어찼고, 성기가 살아 있는 양 껄떡댈 때마다 내벽 구석구석을 긁었다.
베이지는 자신의 아래를 죄었다. 하이어드의 정액이 고여 머무는 아래가 간질거리는 기분이었다.
그때 팔짱을 낀 채 방관하고 있던 릴리가 무료하다는 듯 피고 있던 베렛잎을 비벼 끄며 조곤조곤하게 말을 꺼냈다.
“못 찾지 않을까? 다른 남자 찾는 건 어때? 그보다, 애브.”
유리알 같은 릴리의 벽안이 애브를 향했다. 그녀의 부드러운 입매에 야살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오늘은 어때? 역시 나랑 잘 기분이 아니야?”
릴리의 제안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녀는 애브를 처음 본 날부터 그의 아랫도리를 탐하고 싶어 했다.
“오늘도 대답이 없네.”
릴리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생긋 웃으며 애브의 몸을 훑었다.
베이지가 이들과 알게 된 지도 삼 년이 훌쩍 넘었으나, 애브는 그동안 베이지 외의 사람들과 말을 섞은 적이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놔둬. 원래 베이지한테만 답하는 거 알면서.”
우직한 나무처럼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베이지의 곁에 곧게 선 애브의 외모는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까지 앗아올 만큼 반반했다.
눈썹과 비슷한 길이로 자란 흔하지 않은 백발의 머리칼이 정돈되지 않은 채 마구잡이로 흐트러져 있었고 진한 녹안이 전체적인 인상을 묵직하게 잡아 주었다.
무엇보다 남성성이 뚜렷한 투박한 턱뼈가 벌어지는 꼴을 보고 싶었고…….
릴리는 애브의 고간을 향해 턱짓했다.
“아래가 그렇게 두둑이 차 있는데…… 왜 안 써? 아깝게.”
기사인 만큼 애브의 거대한 몸에는 옷 위로도 드러나는 단단한 근육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애브의 몸 따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그의 아래에는 그 존재감을 지우지 못하는 두둑한 것이 자리했다.
애브는 자신을 빤히 바라보며 대답을 독촉하는 릴리에게 침묵으로 답했다. 그는 다른 여자들이 자신을 눈으로 맛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오롯이 베이지의 얼굴만을 눈에 담을 뿐이었다.
“……아가씨. 이제 일어나셔야 합니다.”
굳은 듯 서 있던 애브의 입매가 벌어지며 베이지를 재촉했다.
애브는 이들이 무슨 대화를 나눈들 베이지 외의 것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는 이미 그녀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고, 그것만을 신경 쓸 뿐이었다. 그녀와 어린 시절부터 함께한 만큼 기민하게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볼게요. 메리엔, 고민이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도. 답이 늦었다.
무디기만 하던 애브의 눈길이 벼려진 채 자리에서 일어나는 베이지를 훑었다.
저 자그마한 머리통에 무엇이 들어 있을까.
* * *
“아가씨. 공작님께서 부르십니다.”
타데오가 미리 지시해 둔 바가 있었는지, 베이지가 저택에 당도하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집사가 그녀에게로 다가와 말을 전했다.
“알겠어요.”
궂은 곳을 다녀왔기에 옷에 갖가지 냄새가 배어 있었다.
타데오도 베이지의 오늘 일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어지간히 급한 일인 모양이었다.
타데오가 제게서 풍기는 냄새를 맡고 인상을 찌푸릴 것을 알기에 베이지는 부러 옷자락을 흔들어 털며 타데오의 집무실로 향했다.
타데오의 아니꼬운 표정을 보는 것은 익숙했지만 핀잔을 받느라 그와 한 마디를 더 섞어야 한다는 사실이 싫었다.
애브는 어느새 평소와 같이 고아하게 걸음을 옮기는 베이지의 뒷모습을 보며 그 뒤를 따라 걸었다.
또, 좀 전과 달랐다.
‘애브, 괜찮으면 마부석에 앉아 줄 수 있을까요?’
마차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베이지가 결국 마차에서 다리를 벌려 제 손가락으로 하이어드의 정액을 끄집어냈다는 사실을 감히 상상하지 못할 애브는 끝내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짐승의 낯으로 세공된 쇠 손잡이가 나무 문을 두드리는 묵직한 소리가 울리고, 시종이 베이지의 존재를 알렸다.
“공작님.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들이게.”
타데오 역시 베이지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인지 안에서 곧바로 답이 돌아왔다.
조금이라도 흠이 잡히지 않도록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집무실로 들어서던 베이지의 손끝이 찰나의 순간, 작게 떨렸다.
“좋은, 밤입니다.”
무게감이 잡힌 목소리가 베이지의 귓가로 스미며 불과 하루 전, 몇 시간을 맴돌았던 낮고 탁한 신음으로 변모해 그녀의 심장을 두드렸다.
두툼한 체구에 딱 맞는 사제복을 바르게 차려입은 하이어드의 모습 위로 어젯밤 벌겋게 달아 아래를 흔들던 장면이 겹쳐졌다.
“베이지 스논.”
인사가 늦다.
손님 앞에서 자신의 수족이 책잡히는 꼴을 끔찍하게 여기는 타데오가 작게 베이지를 불렀다. 경고였다.
“……네. 좋은 밤이네요.”
베이지는 떨리는 손끝을 다른 손으로 꽉 쥐며 자리로 가 소리 없이 앉았다.
타데오는 잠시 본래대로 돌아갔던 서늘한 얼굴을 감추고 다시 하이어드를 향해 살갑게 웃어 보였다.
“시간이 없으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타데오는 테이블 중앙에 놓인 지도를 펼치며 검지로 정확한 위치를 짚었다.
“이곳, 그리고 이곳.”
타데오가 부가적인 설명을 일절 하지 않았으나, 베이지는 지도를 보자마자 대화의 요점을 단번에 파악했다.
선교 활동을 이용한 마약 밀수출. 스논 공작가에서 벌이는 가장 큰 사업이었다.
“이곳에서 테르무오네 왕국까지 두 개의 검문소가 존재합니다. 미리 손을 써 두었으니, 중간 크기의 마차는 신전의 물품이라 언질하십시오. 성스러운 신의 물건에 한낱 인간의 손때가 묻어서야 되겠습니까.”
중간 크기의 마차에는 마약이 들어 있을 터였다.
신성한 신전의 물품이라는 핑계는 검문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타데오의 손가락이 그보다 더 좌측을 가리켰다.
“두 번의 검문소를 통과한 후부터는 한 개의 마차에 실려 있던 것들을 ‘매’로 향하는 마차에 절반, ‘마가렛’으로 향하는 마차에 절반을 싣고 이동하면 끝입니다. 생각보다 더 간단한 일이지요?”
‘매’와 ‘마가렛’은 마약을 밀반입하는 가문을 칭하는 암호였다.
선교 활동을 구실로 각 가문에 방문하는 과정에서 마차가 반입될 예정이었다.
타데오가 각 가문의 영지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을 잇자 하이어드는 짧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이미 신전 측에서도 교육을 받았을 터였고, 출발 전날 구체적인 실행 방향을 더 명확히 하는 시간을 가졌기에 설명은 이 정도로 충분했다.
“아, 개떼들이 몰려들 수 있으니 그쪽을 가장 주의하는 게 좋을 겁니다.”
개떼를 조심하라며 주의를 주는 타데오의 얼굴은 왈칵 구겨져 있었다. 혐오감이 짙은 얼굴이었다.
개떼란 아트로테인 제국의 기사들을 칭하는 것이었다. 아트로테인 제국은 유일하게 마약 밀반입을 허용하지 않는 나라이기도 했고, 때문에 프라헨 왕국과 가장 적대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평소에도 자주 부딪히지만, 실제로 일전에 제국과 우호적인 국가를 방문했다 제국 측에 발각될 뻔했던 전적이 있었기에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이었다.
“그리고…….”
타데오가 지도에서 손을 떼고 몸을 곧게 폈다. 그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베이지가 미간을 작게 찌푸리며 타데오의 의도를 가늠하고 있던 찰나.
“이번에는 제 딸이 동행할 겁니다.”
베이지의 심장이 소리 없이 떨어졌다.
미리 전해 듣지 못한 바였다.
베이지는 놀란 기색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최대한 감정을 죽이며 타데오의 얼굴을 살폈다.
“본래 가끔 동행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에 선교 활동을 나가는 테르무오네 왕국은 따뜻한 손길이 많이 필요할 터인데, 제 딸도 손을 보태고 싶다고 해서 말입니다.”
거짓이었다. 제가 선교단과 동행했던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타데오는 베이지에게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았다. 노골적으로 하이어드의 얼굴만을 직시하는 걸 보니, 그의 의중이 어느 정도 가늠이 되었다.
타데오는 하이어드를 불신하고 있었다. 감시의 목적으로 자신을 붙이는 것이리라.
그때 타데오의 눈길이 베이지를 향했다.
베이지는 눈짓 한 번에 그 뜻을 알아차리는 제가 못마땅했으나 여느 때처럼 순순히 그의 뜻을 따랐다.
“잘…….”
인사치레를 하기 위해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띤 베이지가 하이어드가 앉은 곳을 돌아봤고 동그란 입매에 맺혀 있던 웃음기는 삽시에 걷어졌다.
무심코 시선을 던진 검은 동공은, 언제부터였는지 적요하게 가라앉은 채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까만 시선은 저를 삼켜내기라도 할 듯 뭉툭하고도 깊었다.
“……부탁드립니다.”
베이지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건지 하이어드의 입술이 완만한 곡선을 그렸다. 여전히 웃음기 하나 없는 눈은 그녀에게서 떼어지지 않았다.
“저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받아 내기 벅찬 집요한 눈길이 베이지를 좇았다. 마치 어젯밤, 강한 추삽질에 의해 그녀의 몸이 밀려날 때조차 끈질기게 따라붙던 그 시선처럼.
끝내는 베이지가 먼저 하이어드의 시선을 피했다.
하룻밤이었다. 그저 한 번 몸을 접붙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니 자신이 이렇게 위축될 이유는 없는데…….
타데오가 알 수 없도록 자연스럽게 몸을 틀어야 했으나, 보지 않아도 시선이 제 얼굴을 좇는 게 느껴져 자꾸만 몸이 얼었다.
“그러고 보니…….”
다행히 타데오가 둘 사이에 서린 미세한 긴장감을 알아차리기 전, 하이어드가 주제를 틀었다.
그 후로도 사업과 관련된 이야기가 이어졌다. 대화는 하이어드의 체향이 방 안에 밸 때까지 계속되었다.
후각이 예민한 베이지의 코끝에 하이어드의 체향이 스쳤다. 어제의 일을 기억하는 그녀의 숨이 차츰 가빠졌다.
익숙해지기는커녕 시간이 지날수록 어젯밤 잔상이 하이어드의 말간 낯과 단조로운 목소리 위로 겹쳐져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베이지는 의연한 체를 하기가 어려워 부러 하이어드가 있는 곳으로 눈길을 주지 않으려 했다.
그렇다고 하이어드가 앉은 방향을 숫제 보지 않기는 어려웠다. 베이지가 몇 차례 그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릴 때마다 처음 마주쳤던 것과 같은 새까만 동공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시선이 자신의 몸을 빨아올리는 것 같은 착각에 베이지는 입술을 말아 물며 몸을 움츠려야 했다.
베이지에게 한없이 곤욕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자리가 파할 무렵이 되자 그녀는 이미 진이 다 빠진 상태가 되어 있었다.
가뜩이나 전날의 격렬한 움직임 탓에 온몸이 욱신거렸었는데, 내내 긴장한 상태로 몸에 힘을 바짝 주고 있었더니 정신력으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다.
“공작님, 실례합니다. 잠시…….”
대화가 끝날 무렵이 되자 집사가 타데오를 향해 다가와 귓속말을 전했고, 그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하지만 급히 일이 생겨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마차를 준비해 두었으니, 부디 편히 돌아가시길.”
타데오는 하이어드의 답을 듣기도 전 자리를 떴다. 베이지의 곁을 스치는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지하실로 가는 게 분명했다.
타데오가 이 자리를 나서 벌일 일을 알기에 덩달아 굳었던 베이지의 얼굴은 그녀가 이 방에 하이어드와 자신, 오롯이 둘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한 순간 무너져 내렸다.
낮은 웃음소리가 옅은 적막을 덮었다.
베이지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애꿎은 의자를 손톱으로 긁어 댔다.
쿵, 쿵.
빈 공간에 둘만 남자 제 심장이 뛰는 소리가 더욱 또렷이 귀를 두드렸고, 알고 싶지 않았던 것 또한 귓속을 파고들었다.
응접실 안에 낮게 깔리는 숨소리가 하이어드의 존재를 지워낼 수 없게 했다.
그때 하이어드가 제 자리에서 일어나는 뻐적거리는 소리와 구둣발이 포근한 융단을 밟는 소리가 먹먹하게 울렸다. 이 모든 소리가 베이지의 목구멍을 죄였다.
“어디.”
잔뜩 가라앉은 저음이 둔탁하게 귓바퀴를 두드렸다. 베이지는 압박감에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보지에서 제 정액은.”
코끝으로 닿아 오는 하이어드의 체향이 더욱 진해졌다.
붉은 융단의 반복적인 무늬만이 차 있던 베이지의 시야에 하이어드의 무릎 한쪽이 굽어지는 장면이 메워졌고.
“잘 빼내셨습니까.”
투박한 하이어드의 손이 베이지의 희고 고운 치맛자락의 중앙을 정확히 비집고 들어섰다. 봉긋하게 솟아 있던 치맛단이 뭉개지며 순식간에 주름이 졌고, 그의 거대한 손은 기어코 닫혀 있던 그녀의 다리를 벌려 냈다.
“읏, 지금…… 무얼 하시는.”
베이지가 급히 몸을 물리려 했으나, 하이어드의 남은 손이 단숨에 그녀의 허리 뒤를 받쳤다.
하이어드는 베이지의 다리를 벌려 공간을 만든 뒤 그대로 손바닥을 밀어 올려 동그랗게 부푼 둔덕 위를 느릿하게 쓸었다.
사악, 사악.
천이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리고 베이지는 저도 모르게 아래를 죄었다. 여러 겹의 천을 사이에 두고 있었으나 하이어드의 손아귀 아래에 제 음모가 스치며 결을 달리하는 것이 선연했다.
이곳은 자신의 방이 있는 건물 뒤 후원이 아니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들어올 수도, 소리가 샐 수도 있었다. 더욱이나 바깥에는 애브가 대기하고 있을 터였다.
“……그만두세요.”
베이지는 하이어드를 향해 작게 읊조렸다. 조금이라도 큰 소리가 나면 제가 말린다 한들 애브가 들어올 것이었다.
베이지가 경고했으나, 둔덕을 문지르던 하이어드의 손은 보란 듯 더 아래로 내려갔다.
하이어드의 의도를 알아차린 베이지가 다시 한번 하체를 뒤로 빼려 했다.
“지금……!”
단연 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이어드의 손에 의해 퇴로가 막힌 베이지가 그의 어깨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 역시 불가능했다.
베이지가 하찮은 바둥거림을 지속할 동안, 하이어드는 이미 치맛단 끝자락을 들춰 그 속에 손을 집어넣은 후였다.
하이어드의 굳은살 박인 손끝이 베이지의 살결을 누른 채 느릿하게 그녀의 종아리를 타고 올라갔다.
낯선 이의 손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미칠진대 거친 감촉과 뜨거운 체온이 은밀한 곳을 타고 오르자 몸이 절로 퍼뜩 뛰었다.
베이지의 피부에 소름이 일었고, 고작 하룻밤에 몸이 길들여지기라도 한 것처럼 반사적으로 그녀의 아랫배가 수축했다.
응……!
베이지의 상체가 곱아들고 그녀의 허벅지 위로 바짝 붙은 하이어드의 얼굴을 품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하이어드는 제 뒷머리에 닿는 베이지의 기척을 알아차리고 손을 더 깊숙이 집어넣었다. 물컹한 유방이 기어코 그의 뒷머리를 스쳤다.
읏.
그제야 베이지도 제 가슴이 하이어드의 머리에 닿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는지 서둘러 상체를 꼿꼿이 세웠다.
베이지는 어느새 제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시선을 내리깔아 상황을 살폈다.
아무리 제가 힘을 줘도 하이어드의 어깨는 꿈쩍도 않았고, 긴 드레스는 잔뜩 구겨진 채 말려 올라가 다리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다. 우스운 모양새였다.
그리고…….
베이지는 제 치마 속에 완전히 숨어든 하이어드의 한쪽 팔을 바라보다 입술을 질끈 물었다. 마치 하이어드의 팔이 제 음부와 이어진 듯 보였다.
“그만…….”
한 풀 꺾여 빌듯 애원하는 베이지의 목소리에도 하이어드는 손을 놀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어제와 같은 얇은 속옷의 중앙을 느릿하게 문지르던 하이어드는 중지로 속옷을 젖히고는 그대로 검지를 밀어 넣었다.
아.
베이지의 입에서 작은 탄성이 흘렀다.
간밤의 정사로 인해 퉁퉁 부어 있던 아래에 굵은 손가락이 파고들자 격통이 치밀었다.
하이어드는 고통에 휘는 베이지의 상체를 제 어깨로 받치며 그대로 손가락을 빼냈다.
부푼 살점 새로 막대기와도 같은 딱딱한 것이 거칠게 빠지자 베이지는 제가 하이어드에게 기대어 있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에게 한껏 매달리며 고통을 감내하려 했다.
그때 웃음기가 섞인 걸걸한 숨소리가 그녀의 귓가를 두드렸다.
“빼내 줄까 했는데.”
하이어드는 제 예상과 달리 부분 부분만 축축한 액이 묻어날 뿐 전체적으로 건조한 검지를 엄지로 비비다 손을 뻗었다.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음부를 쑤셨던 손으로 그러쥔 것은 그녀의 손이었다.
“이 작은 손으로.”
베이지는 이어 제 손바닥 가운데 문질러지는 끈적하고 미끌거리는 촉감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렸고, 치미는 수치심에 눈을 감았다.
“직접 보지를 벌려서.”
하이어드가 엄지를 느릿하게 굴리며 베이지의 고운 손바닥 위에 펴 바르는 것은, 투박한 손톱 끝으로 긁어모은 자신의 정액이었다.
“제 정액을 빼낸 겁니까.”
건조한 하이어드의 목소리가 베이지의 귓바퀴를 긁어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하이어드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베이지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무언가를 끄집어냈다.
흰 손수건이었다.
“그건……!”
베이지가 제 아래에서 나온 손수건을 향해 급히 손을 뻗자 하이어드는 손을 뒤로 빼며 손수건 끝자락을 잡은 채 가볍게 털었다.
단번에 펼쳐진 흰 손수건은 일부만 보였던 때와 달랐다. 노출된 손수건 안면은 희지 않았다.
베이지는 입술 안 점막을 씹으며 방 안에 난 창을 투과한 빛이 손수건을 비추는 것을 지켜봤다.
빛을 통과시키는 얇은 손수건은 얼룩덜룩했고, 그 위로 걸쭉한 액이 말라붙은 탓에 면의 곳곳이 거칠어져 있었다.
하이어드는 제 정액을 닦아내 더럽혀진 귀족 영애의 값비싼 손수건을 흘긋 바라보다 손가락으로 그 끝을 접었다.
“이리 무방비하시면.”
하이어드의 손이 또다시 치마 끝자락을 들추자 베이지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꼭 붙들었다. 그녀의 목에 핏대가 서고 가는 팔에 얇은 뼈대가 섰으나, 그는 전혀 동요하는 기색이 없었다.
베이지의 손아귀 힘이 풀리는 게 먼저였다.
하이어드가 베이지의 밀지를 향해 팔을 뻗자 힘이 다한 그녀의 손이 그의 위팔로 쭉 미끄러졌다. 그녀의 손길이 닿은 그의 부푼 팔 근육이 꿈틀댔다.
습한 열기를 뿜는 베이지의 음부에 다다른 하이어드가 약지로 속옷을 젖혔고.
“다른 사내의 좆까지 서겠습니다.”
하이어드의 검지와 중지 새에 끼워진 손수건 끝자락이 베이지의 구멍을 비집고 들어갔다.
읏!
하이어드의 팔을 쥔 베이지의 손아귀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그의 검은 사제복이 구겨졌다.
“흐읏…….”
채 낫지 않은 아래에 이물질이 삽입되자 쓰라림이 심했다.
베이지가 고통 섞인 신음을 뱉든 말든 하이어드는 손가락을 쑤셔 손수건을 더 깊숙이 박아 넣었다.
“잘, 감추십시오.”
하이어드는 구멍 바깥에 남은 자락을 마치 꼬리를 쓸듯 매만지다 다시 중지를 구멍과 이어진 천 위로 갖다 대 꾹 눌렀다.
하읏……!
하이어드는 그대로 중지를 몇 차례 쑤석이며 베이지의 아랫구멍이 뭉쳐진 천을 집어 삼키게 했다.
아래에서 치미는 아릿한 통증에 베이지는 하이어드의 팔을 붙잡고 소리를 참아내는 게 고작이었다.
제 할 일을 마친 단단한 손가락은 이내 뻑뻑한 질에서 완전히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때, 치마폭에서도 빼내질 줄 알았던 하이어드의 손이 별안간 방향을 틀어 베이지의 거칠한 음모를 타고 올랐다. 그녀의 속옷이 늘어지며 소음순 가운데 팬 틈을 꽉 죄었다.
툭툭.
살이 묵직하게 맞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하이어드의 손가락이 도톰한 베이지의 둔덕 위를 두어 차례 두드리고 밖으로 빼내진 것이었다. 어린아이를 칭찬하며 엉덩이를 두드리기라도 하는 듯한 손길이었다.
멋대로 저를 농락하는 하이어드의 손길을 단 한 번도 막아내지 못한 채 신음만 삼키며 아래만 바라봐야 했던 베이지는 그의 손마저 보고야 말았다. 제 아래에서 빠져나온 그의 손톱에 끼어 있는 것은, 곱슬거리는 검은 음모 한 가닥이었다. 발갛게 달궈져 있던 그녀의 목덜미가 수치심에 더 새빨개졌다.
베이지는 숨을 몰아쉴 뿐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이어 까만 구둣발이 융단 위를 딛는 먹먹한 소리가 들렸고, 그 뒤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방 안에 홀로 남은 베이지의 심장 소리에 맞춰 달칵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