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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63화 (191/191)

63화

입을 벌린 나는 곧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그때 조금 당혹스러운 일이 일어나긴 했지만 이딜로스가 이상해질 정도의 일은 아니었지 않은가. 애초에 나는 이딜로스가 시키는 대로만 했을 뿐인데.

안셀은 서글프게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요즘 전하를 찾아뵙기만 하면 가장 먼저 그 약혼녀란 분을 찾았냐고 물어보십니다. 그것도 하루에 마주칠 때마다 여러 번 물어보시는데 저는 없던 강박 증세도 생길 것 같습니다…….”

“하아. 나는 지난번에 오라버니랑 저녁 식사할 때 오라버니가 너무 아무런 말도 없어서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도 모르겠더라니까. 내가 말 걸어도 대답 한 번 안 해 주고…….”

설마 그날 마멜라가 체했던 게 그래서였나?

나는 뻣뻣하게 앉아 두 사람의 푸념을 들었다. 들을수록 이딜로스가 정말 이상해졌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게 진짜 나 때문인 것 같다는 것도…….

아무래도 이딜로스가 나에 대한 원한으로 방방곡곡 수소문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 그날 보였던 이딜로스의 싸늘한 눈빛과 태도를 떠올려 보면 확실했다.

‘무섭다……. 인간의 모습으로 이딜로스를 또다시 마주치면, 그땐 정말로 날 죽이려 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그날 붙잡혔었던 목이 서늘해져 앞발로 목을 더듬었다. 이딜로스는 상상 이상으로 적개심이 강했다.

그의 집념에 오한이 들려는데 문득 언젠가 이딜로스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황제 폐하를 말하는 거다. 분명 내게 해를 끼치라고 돈을 쥐여 줬잖아, 안 그래? 나 말고 또 누구에게 뭘 하라 지시했지?>

그러고 보니 이딜로스는 여태 나를 자신을 해하러 온 못된 인간으로 취급했다. 그의 그런 태도는 줄곧 숱하게 위협을 받아 온 사람처럼 경계심이 드세고 날 서 있었다.

……어쩌면 이딜로스에겐, 갑자기 나타난 내게 적개심과 정체를 캐물으려는 집착을 가지는 것이 당연할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이딜로스를 불안하게 만들었나 봐.’

적이라고 여긴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약혼녀의 자리까지 희생했는데 또다시 나를 놓쳐 버렸으니 얼마나 불안하고 무서울까. 무척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멜라가 테이블 위로 양 팔꿈치를 올려 손깍지를 꼈다. 그녀는 그 위로 제 턱을 괴며 쓰게 말했다.

“일단 오라버니가 기운이 없으시니까 우리라도 힘내자.”

“예, 저희마저 처져 있으면 전하의 기분은 더 가라앉겠지요. 저도 좀 더 수소문해서 그분을 찾는 데 힘쓰겠습니다.”

나는 서로를 격려하고 다시금 기운을 차리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정말로 내가 안셀의 손에 잡혀가기라도 해야 하는 걸까,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편의 상황을 상상해 봤다.

잠시 인간으로 변해서 내가 그 이딜로스를 괴롭힌 나쁜 인간이라고 자백했다가, 혼자가 되면 고양이로 변해서 남몰래 쏙 빠져나오는 그런 상황…….

아니지. 잡은 줄 알았는데 또 사라지면 더 불안할지도 모른다. 계속 잡힐락 말락 하면 그게 더 이딜로스를 괴롭히는 것이겠다.

그리고 애초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

나는 그간 밤새 인간화를 연습한 성과를 떠올려 봤다. 기분이 침울해졌다.

내가 상상한 상황을 이루려면 자유자재로 인간이 되었다가 고양이가 되는 것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되어야 말이지.’

분명 나는 며칠에 걸쳐 밤새 수십 번도 넘게 인간이 되는 것을 연습했다.

그러나. 딱 한 번.

……딱 한 번 성공을 거머쥔 것 외에는 모두 실패했다.

나는 도저히 인간이 되는 것을 내 뜻대로 조절할 수 없었다.

사실 인간이 되는 것에 성공한 그 한 번도 내가 내 힘으로 이뤘다고 하기엔 조금 어색했다.

그날은 밤에 연습하기 전부터 유독 몸이 으슬으슬한 것이 느껴졌었기 때문이다.

‘난 아무래도 인간화를 조절하는 데 재능이 없나 봐.’

잠시 기가 죽은 나는 오라버니를 위해서라도 힘내자고 기운을 차리고 있는 마멜라를 바라봤다.

나는 앞발을 꾹 말아 쥐었다.

‘아니야,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겨우 몇 번 실패했다고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지 않은가.

이래 봬도 나는 동물이라면 기겁을 하던 이딜로스도 내 매력에 함락시킨 전적이 있는 몸이었다. 끝까지 가 봐야 아는 것이다.

그렇게 밤, 마멜라가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시간.

자는 척 쿠션에 얼굴을 묻고 있던 나는 비몽사몽 고개를 들었다. 정신이 제대로 차려지지 않아 재빠르게 고개를 털었다.

마멜라의 눈을 피하기 위한 자는 척이었는데 솔직히 조금 졸았다.

나는 쿠션에 쓸려 그새 엉망이 된 털을 그루밍해 정리한 후에 창가로 다가갔다.

저택의 불도 대부분 소등되어 있었다. 아마 불이 켜져 있는 몇몇 방 중에는 이딜로스의 집무실도 있으리라.

마음 같아선 이딜로스의 집무실로 쳐들어가 그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침실로 질질 끌고 가고 싶었다. 잠 좀 자라고. 이러다 언제 한 번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창밖의 고요한 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걸음을 돌렸다.

새근새근 곤히 잠든 마멜라를 지나쳐 드레스 룸에 들어갔다.

여긴 침실과 분리된 또 다른 하나의 방이라서 이곳에서 인간화를 연습하면 들킬 일이 적었다.

‘……애초에 인간이 되질 않아 들킬 일이 없지만.’

오늘도 나는 한숨부터 내쉬고 자세를 잡았다.

인간화에 성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연습하면서 시행착오도 얼마나 많이 겪었던가.

처음엔 ‘인간이 돼라!’라고 하면서 엉덩이에 힘을 주었는데 인간이 되기는커녕 도리어 배만 아파졌었다.

그래서 그 다음번엔 ‘돼라, 인간!’이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면서 앞발에 힘을 주었더니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앞발로 바닥을 콩 찼다.

그날 아슐란을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니었다. 그 연습이란 걸 대체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거냐고 물어봤어야 하는 거였는데.

‘아슐란이 날 너무 과대평가한 게 분명해……. 연습은커녕 인간이 되는 것에 접근조차 못 하고 있는데.’

여태 인간이 될 때 몸의 변화라던가 규칙이 있던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그렇다 할 게 없었다.

정말 무작위로 인간이 되었던 건지, 머리가 핑 도는 불쾌함을 제외하고는…….

잠깐, 머리가 핑 도는 불쾌함?

그러고 보니 그건 내가 인간이 되기 전후로 느끼던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 느낌은 꼭, 아주 예전에 한 번 느껴 본 것과 비슷했다.

이딜로스가 여전히 나를 기피하고 나도 그가 동물을 무서워한다는 걸 몰랐을 때.

그때, 저택에서 탐험 놀이를 하다가 우연히 들어간 이딜로스의 방에서 악몽을 꾸며 끙끙 앓고 있던 이딜로스에게 많은 기운을 밀어 넣어 준 적이 있지 않던가.

나는 그때 앓아누웠다. 머리가 핑 돌고 열이 펄펄 나고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아팠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느꼈던 고통이 아주 대수롭지 않은 버전이 된다면 딱 인간이 될 때마다 느끼는 그 불쾌함일 것 같았다.

‘그럼 혹시…… 내 몸에 도는 이 기운과 관련이 있는 걸까?’

확실히 고양이에서 인간이 되는 마법 같은 일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런 특별한 힘이 필요할 것 같긴 했다.

하지만…… 이 기운을 어떻게 사용해야 인간이 될 수 있는 거지?

무작정 많이 뽑아내기만 하면 앓아눕기만 할 것이다. 그때의 일은 그다지 또 겪고 싶지 않았다.

‘일단 기운을 내 몸 바깥으로 밀어냈을 때 비슷한 기분이 들었던 거지.’

과감하게 도전하기엔 상당한 겁쟁이였던 나는 아주 적은 기운을 바깥으로 밀어내려고 해 봤다.

그러나 이딜로스나 마멜라 같은 내 기운을 받아 줄 상대방이 없기 때문인지 기운을 바깥으로 내보낸다는 게 아예 불가능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몸 안에서 그런 비슷한 느낌을 낼 수는 없나?

“아옹…….”

나는 긴가민가하게 기운을 배 한군데로 응집시켰다. 그러곤 혹시 몰라 아주 살짝, 기운을 바깥으로 밀어내듯 몸 곳곳으로 퍼트렸다.

내 몸에서 바깥이 아닌, 몸 중심에서 몸 곳곳으로 기운을 밀어낸다는 건 어느 정도 비슷…….

‘어……!’

나는 눈을 번쩍 떴다. 이 느낌, 이 기분!

표정에 환희가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이만한 직감과 확신도 없다. 이걸 응용해서 인간이 되는 것이 분명했다!

조금 전엔 겁쟁이 심보로 아주 찔끔 기운을 몸에 퍼트렸지만, 더 많이 한다면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

나는 다시금 기운을 배 한가운데로 응집시켰다. 그러곤 아까보다 대담하게 기운을 몸 곳곳에다 퍼트렸다.

눈을 질끈 감았다. 불쾌감이라 할 것도 없는 아주 가벼운 울렁임이 느껴졌다.

울렁임이 차츰 멎어 갈 때 나는 살며시 눈을 떴다.

“……!”

분명 코앞에 있던 서랍장이 어느새 시야 아래에 있다.

나는 다급히 앞발을 내려다봤다. 앞발이 아닌 투명하고 흰 피부를 가진 인간의 손이 보였다.

감격스러운 숨이 터져 나왔다.

이전 동안 시도했던 것을 모두 포함하면 무려 아흔세 번의 시도 끝의 성공이었다.

‘역시 포기해선 안 되는 거였어!’

몸이 제멋대로 변해 멀미를 느끼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훨씬 부드럽고 개운했다. 머리가 핑 도는 불쾌함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내 자의로는 처음으로 성공한 인간화. 느껴지는 쾌감에 마멜라의 방을 폴폴 뛰어다니고 싶은 걸 애써 참았다.

‘아슐란, 나 성공했어!’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어 머리카락을 양손에 한 줌씩 쥐어 잡아당겼다.

아프다! 꿈이 아니구나, 내가 정말로 인간화에 성공한 거야!

한참을 기쁘게 드레스 룸을 데굴데굴 굴러다녔다.

그러다 나는 난리를 치던 걸 잠시 멈추었다. 문득 드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고양이로는 어떻게 돌아가지?’

잠시 당황했으나 곧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난 참 별걸 다 걱정한다. 당연히 내가 했던 걸 그대로 뒤집으면 되는 것 아닌가?

내가 기운을 응집시켰다가 퍼트리면서 인간이 되었으니 그 반대로 퍼트렸다가 다시 응집시키면 되는 거다.

‘쉽네. 성공도 했겠다 피곤하니 어서 마무리 짓고 자러 가자.’

나는 조금 전 기운을 퍼트렸던 곳 위로 다시금 기운을 퍼트리며 그걸 갈무리하듯 응집시켰다. 이렇게 쉽다니.

나는 의기양양하게 네 발을 뻗어 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어째 시야가 많이 높네? 분명 고양이가 되었는데 꼭 여전히 인간인 것처럼…….

“…….”

나는 설마 하는 마음에 시선을 내렸다. 나도 모르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무릎을 꿇고 있는 새하얀 다리와 그 위를 덮은 옷만도 못한 짧은 천 쪼가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내가 뭘 잘못했나?’

다시 고양이가 되는 방법을 차근차근해 나갔다.

그러나 나를 맞이하는 건 아까와 같은 시야였다. 당혹스러움에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될 수 없네? 그러면 안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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