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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61화 (189/191)

61화. 수인, 아릴

나는 마멜라와 공놀이를 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들어 꿈자리가 뒤숭숭했다. 캄캄하기만 한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만 들리는 꿈을 자꾸만 꾼다.

‘그것도 웅얼거리는 게 다고…….’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기억나는 것이 바로 누군가의 이름으로 추정되는 것이었다.

<아펠리아 님.>

아펠리아…… 누구의 이름일까.

마멜라가 굴려 준 공을 덥석 문 나는 문득 바깥에서 다가오는 요나의 기척을 느꼈다. 곧이어 요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아가씨…….”

“응? 왜?”

“그게, 신전에서 수의가 찾아오셨습니다. 지난번의 그분이요.”

나는 물고 있던 공을 떨어트렸다. 지난번 그 미역처럼 머리가 길던 그 인간?

공을 내팽개친 나는 마멜라의 옷자락을 물고 당겼다.

마멜라, 돌려보내! 그 인간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대낮에 왜 남의 집을 찾아오는 거야!

마멜라 역시 갑작스러운 방문이 달갑지 않은 건지 눈가를 좁혔다.

“뭐? 그 사람이 갑자기 왜 와?”

“주기적으로 건강 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불러 주지 않아서…… 직접 왔다고 합니다.”

“……건강 검진?”

마멜라의 눈빛이 변했다.

나는 느껴지는 불안감에 마멜라에게 눈빛 신호를 보냈다. 아니야, 나 그런 거 필요 없어. 내가 건강한 거 마멜라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러나 그녀는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어차피 기왕 오신 거 돌려보낼 수도 없고. 요나, 들어오라고 해 줘.”

나는 삐쳤다. 마멜라와 이렇게 안 맞을 줄이야.

일부러 마멜라를 등지고 앉아 내 입 안을 확인하는 인간에게 입을 벌렸다.

여전히 기다란 검은 머리칼과 심오한 녹색 눈을 가진 인간이 내 입을 들여다보더니 생긋 웃었다.

“양치질을 꾸준히 시켜 주었나 보네요. 구강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등 뒤에서 마멜라가 헤실헤실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까부터 왜 저렇게 수줍어하는 것인지. 나는 눈앞의 인간을 마주 봤다.

‘이름이…… 아슐란이었지?’

그만 내 입을 다물려 준 아슐란은 이번엔 내 포동포동한 살집을 보더니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가 내 등과 배에 살짝 손을 가져다 댔다.

아슐란은 머뭇거리다가 시한부 선고라도 내리듯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비만입니다.”

“네?”

마멜라가 놀라 되물었다. 나는 아슐란의 오진에 발끈했다.

내가 어딜 봐서 비만이야! 아니거든! 난 매일같이 이딜로스와 똥개 훈련도 해서 살이 찔 틈 같은 게…….

내 몸을 내려다보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어쩌면 조금 비만일지도 모르겠다.

‘뭐야, 나 왜 이렇게 살집이 생긴 거지?’

며칠 거울을 안 봤다고 포동포동을 넘어 토실토실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난 사료도 정량으로 먹고 간식도 마멜라가 쥐 톨만큼 줘서 잘 먹지 못하는데…….

그러다 문득 이딜로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시도 때도 없이 내게 간식을 주곤 하던 이딜로스……. 그게 내가 이딜로스를 좋아하던 이유 중 하나였지, 참.

“어떻게 해야 비만에서 나아질까요? 충분히 활동적으로 놀아 주고는 있는데…….”

“지금은 내버려 두셔도 괜찮습니다.”

“내버려 두라고요?”

“아마 성장 중이어서 그런 것이겠지요. 아릴 님의 몸에 변화가 찾아오고 있으니 살집이 붙는 건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네……? 성장 중이라기엔 옆으로 커진 것 말고는 변화가 없는데요.”

아슐란이 말없이 웃었다. 나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아슐란을 바라봤다.

변화……. 나만 아는 걸 어떻게 저 인간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거지? 내가 생각하는 그 변화를 말하는 게 맞나?

아슐란은 단호한 말을 덧붙였다.

“대신 간식의 양은 줄이시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순간 화가 나서 아슐란의 손등을 앞발로 가격했다.

이 인간 하는 행동도 마음에 안 들고, 어딘가 수상해.

‘그러고 보니 신전에서 왔다고 했지. 수인은 신격체라고 했으니 신전과 관련이 있을 거 같은데……?’

나는 비장한 눈으로 아슐란을 바라봤다.

‘어쩌면 신전에서 온 인간이니 마멜라와 같은 평범한 인간과 다를지도 몰라.’

내가 열렬한 눈빛을 보내자 미소 짓는 아슐란의 친절한 얼굴에 의아함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옹.”

수인에 대해 아는 것이 있어?

“아옹아옹!”

신전에서 온 거라면 혹시 날 본 적은 없어?

“아오옹.”

나에 대해서 알고 싶어.

아슐란의 눈빛이 진지하게 변했다. 그가 내 말을 끝까지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뭔가를 아는 것 같은 인간을 만나자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감격에 찬 눈으로 아슐란을 바라봤다.

‘정말로 마멜라랑 다른가 봐……!’

그간 조금 나쁘게 생각했는데 전부 오해였구나.

아슐란은 여트막한 한숨과 함께 마멜라의 눈치를 살피다가 몰래 입을 가리고서 내게 속닥였다.

“배가 자주 아프시다는 거지요? 괜찮습니다. 가끔 변비에 걸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정말 듬직한 반려동물이십니다. 주인이 걱정할 걸 생각해서 이렇게 제게만…….”

야…… 아니야! 아니라고!

“아옹!”

“걱정 마십시오. 제가 공녀께서 걱정하지 않게끔 잘 말해 두겠습니다.”

아슐란은 안타까운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간 많이 힘드셨을 텐데. 저런.”

이 인간 알고 보니 완전 돌팔이였다. 내 구강 상태 좋다는 거랑 비만이란 것도 다 거짓말인 거 아니야?

나는 아슐란을 노려보다가 홱 고개를 돌렸다. 아슐란이 착한 고양이라며 나를 쓰다듬더니 마멜라에게 내 칭찬을 했다. 마멜라는 내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부쩍 커진 목소리로 맞장구를 치기 시작했다.

곧 충격을 받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변비요?”

“예. 아무래도…….”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눈을 올려 떴다. 진짜…….

‘왜 이렇게 다들 말이 안 통하는 거야…….’

이 답답함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그루밍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흘깃 마멜라를 바라보니, 뺨이 발그레한 것이 아슐란의 미모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최근 마멜라가 읽고 있던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공주님과 사제』였나…….

사실 인간들의 언어를 모를 때는 마멜라가 그저 견문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책을 접하는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웬 이상한 책을 읽는 거였다.

대체 어떤 책을 읽길래 운명이니 뭐니 말을 하는 거지?

그 둘을 흘겨보며 앞발을 핥는데 불현듯 마멜라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잠시 서고에 다녀올 테니 아릴이 좀 봐 주세요. 마침 아릴이가 사제님을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응? 나는 그루밍을 멈추고 마멜라를 바라봤다. 내가 잠시 다른 생각에 빠진 사이에 두 사람은 인사를 주고받고 있었다.

‘어디가? 마멜라, 어디 가는 거야.’

나는 문으로 향하는 마멜라를 쪼르르 쫓아가 기웃댔다. 발치에 알짱거리는 내게 마멜라가 밝게 웃더니 손을 뻗어 왔다.

“우리 아릴이 나 배웅해 주는 거야? 금방 다녀올게. 사제님이랑 잠시만 놀고 있어.”

“아옹……!”

마멜라가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웃었다. 나는 한차례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털에 정신이 혼미해지기도 잠시, 멀어지는 마멜라의 손을 바라봤다. 이내 그녀는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가 버렸다.

탁, 닫히는 문소리에 나는 망연하게 마멜라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봤다. 그러다 힐끔 뒤돌아봤다.

“…….”

“…….”

아슐란은 말없이 미소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신의 사자라 이건가 여전히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친절한 웃음이었다.

나는 꼬리를 바짝 세운 채 천천히 다가갔다.

“아아오옹…….”

이 돌팔이 인간…….

내가 못 미더운 눈길로 가느다란 울음을 흘리자 그가 사근사근 웃었다.

“말이 심하시군요.”

“……?”

말이 심해……?

잠깐만, 이 인간 설마.

“아옹.”

멍청이.

“아옹아옹.”

말미잘, 물고기.

아슐란이 눈을 부드럽게 접어 쿡쿡 웃음을 흘렸다.

“물고기는 고양이식 욕인 겁니까?”

나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지금 설마…… 내 말을 알아들은 거야?

아슐란이 신실한 미소를 띤 채 오른손을 가슴 위에 얹었다. 그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자 높게 올려 묶은 검은 머리칼이 어깨로 흘러내리고, 치렁치렁 매단 화려한 장신구들이 짤랑거리며 기울었다.

아슐란은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

“이제야 인사드립니다. 다시 만나 정말 반갑습니다, 아릴 님. 여전히 강녕하시기에 안심했습니다.”

나는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옹……?”

“예, 아릴 님의 말은 모두 알아듣습니다. 조금 전엔 속여 죄송합니다. 타인이 있기에 대답해 드릴 수 없었습니다.”

“아옹, 아옹?”

“……아릴 님에 대해 아는 것이 있냐고요? 지난번에도 설마 했는데 역시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아슐란의 표정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나는 잠시 그의 눈치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심각한 일인 건가……?

“역시…… 그런 거였군요.”

뭐가 그런 건데……. 혼자서만 알지 말고 나한테도 좀 알려 주면 좋을 것 같다. 내 일인데 왜 나는 모른단 말인가.

나는 아슐란에게 다가가 그를 올려다봤다. 아슐란은 유감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마주 봤다.

“아무래도 이전의 기억을 잃으신 것 같습니다.”

“……아옹?”

“그래도 아직 때가 되지 않은 것뿐이니,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기억을 떠올리시게 될 겁니다.”

때가 되지 않았다니. 내가 이곳 공작저에 온 지가 벌써 3개월이 지나가는데. 그 말은 내가 기억을 잃은 채로 생활한 게 적어도 3개월 이상이라는 거였다. 여기서 더 기다려야 한다는 건가?

좀 더 따져 묻고 싶었지만 그의 표정이 좋지 못한 것 같아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곧 다른 의문이 떠올라 그의 다리를 앞발로 짚었다.

수인에 대해서. 수인은 분명 수백 년 전부터 모습을 감췄다는데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있는 게 이상하지 않은가.

“아옹.”

“그것도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위와 같은 이유입니다.”

……그럼 나한테 뭐 다른 가족이 있었다거나 내가 태어난 곳이라던가 하는 건?

“그것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다 알려 줄 수 없다고 하면 대체 뭘 물어보란 말인가? 그냥 모든 걸 알려 줄 수 없으니 알아서 알게 될 때까지 얌전히 있으라고 말해 주는 게 나을 것 같다.

나는 자꾸만 불친절한 답을 내놓는 인간을 노려보다가 다른 의문을 떠올렸다.

내가 마구잡이로 인간이 되는 건?

나는 그게 가장 궁금했다.

물론 저 인간의 입에선 같은 답이 돌아올 것이란 걸 알지만 그냥 물어보는 거다. 이것도 보나 마나 때가 아니라고 하겠지.

그러나 이번엔 내 예상을 빗겨 나간 반응이 돌아왔다.

“……인간? 인간이 되셨다는 겁니까?”

줄곧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던 인간이 놀란 눈으로 되물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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