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등을 어루만지는 부드러운 손길에 비몽사몽 눈을 떴다. 부스스 고개를 들자 방긋 웃고 있는 마멜라가 보였다.
“아릴, 낮잠은 잘 잤어?”
“아옹.”
나는 마멜라가 뻗은 손에 얼굴을 비비며 그녀의 반대쪽 손에 들린 두꺼운 책을 바라봤다.
‘마멜라가 항상 들여다보던 거네.’
고양이라면 필수적으로 할 줄 알아야 하는 동거인의 일상 분석하기를 해 보았을 때 마멜라는 잠자기와 식사하기 등을 제외하면 책 읽는 시간이 가장 길었다.
‘저걸 보면 좋은 거라도 있는 걸까?’
호기심에 마멜라의 다리를 앞발로 짚고서 책에 시선을 던졌다.
웬 꼬부랑 외계어들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빽빽해서 징그럽기까지 한 글자를 보며 입을 벌렸다.
설마 저게 인간이 쓰는 문자인 건가?
‘저런 걸로 소통을 할 수 있다니…….’
내가 책에 관심을 보이는 게 웃겼는지 머리 위에서 풋, 웃음이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아릴, 책 읽어 줄까?”
잠시 책을 내려 둔 마멜라가 나를 번쩍 들어 올려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자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귀 사이를 어루만지는 기분 좋은 감촉에 나는 그녀의 무릎에 풀썩 엎드려 가르릉거렸다.
“아릴, 수인에 대해서 알아?”
“아옹?”
마멜라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이곳 크로델리아 신성 제국은 오래전부터 신을 섬겨 왔거든. 수인은 아주 옛날부터 백 년에 한 번씩 하늘에서 내려오는 존재였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반은 영적인 힘을 가진 동물이래.”
마멜라가 책에 그려진 그림을 짚었다. 가운데를 기준으로 절반은 인간의 모습이, 나머지 절반은 짐승의 모습을 한 생명체가 그려져 있었다.
그 해괴한 그림을 본 나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이렇게 생길 수가 있지…….’
애초에 짐승 반 인간 반이면 가운데를 기준으로 높낮이가 다르지 않나? 어떻게 살아가는 거야?
그다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비주얼이었다.
마멜라는 내가 헛생각을 하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이어 갔다.
“수인은 인간들에게 행복과 풍요를 전해 준다고 해. 그런데 어떤 불미한 이유로 몇백 년 전부터는 수인이 내려오지 않고 있대.”
마멜라가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마멜라는 조금 서운한 낯빛이 되어 있었다.
“사실 한 번쯤 만나 보고 싶었는데.”
“아옹.”
“어릴 땐 수인이 있을 거라고 믿었거든. 근데 오라버니가 그런 건 다 미신일 뿐이래. 그래서 나도 이젠 안 믿게 됐어.”
씁쓸하게 웃은 마멜라는 책의 그림들을 가리키며 조금 더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녀의 잔잔하던 목소리는 어느 페이지에 도달하자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내가 수인을 만나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이거야. 반려! 수인의 반려는 그 상대와 처음 마주친 한순간에 결정된대. 이게 얼마나 낭만적이고 운명적인 거냐면……!”
나는 마멜라의 들뜬 목소리를 잠자코 들었다. 다만 머릿속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 온통 의문투성이였다.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마멜라가 들고 있는 글자가 가득한 책을 바라봤다. 어쩐지 머리가 핑 도는 것 같아 눈살을 찌푸렸다.
‘왠지 조금 답답해…….’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애매한 기분이 들었다. 꼭 어딘가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것처럼…….
계속 생각해 보려 애써 보았지만 급기야는 머리가 아파져서 관둘 수밖에 없었다.
이상하기만 했다. 저런 징그럽게 구불대는 글자를 내가 어디서 본 적이 있기에 그런 기분이 들었던 걸까.
* * *
나는 조금씩 건강의 안정을 되찾아 갔다. 아직 무리해서는 안 됐지만 이젠 제법 활발하게 돌아다닐 수도 있었다.
나는 그사이 바뀐 내 밥을 노려봤다.
이전까지는 고소하고 맛있는 우유를 젖병에 넣어서 주더니, 이제는 나와 같은 발바닥이 그려진 노란 그릇에다 갈색의 사료를 부어 줬다.
“아릴, 배가 안 고파서 그래?”
내가 뚱한 표정으로 사료를 바라보고만 있자 마멜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릴?”
“아옹…….”
나는 마멜라의 시선에 못 이겨 사료를 와그작 씹었다. 씹자마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맛……. 먹을 때마다 충격을 줬다.
이끼 맛인가? 아니, 내가 발바닥을 핥았을 때의 맛이 난다.
비릿하고 씁쓸한 것이……. 분명 냄새는 고기인데 맛은 왜 이렇단 말인가.
마멜라가 눈을 초롱초롱 뜨고 보고 있어 도로 뱉을 수도 없었다. 나는 참고 와작와작 먹었다.
이런 걸 음식이라고 만들다니.
‘인간들은 미각이 발달하지 않은 편인가 봐…….’
나는 그릇에 있던 사료를 억지로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러곤 얌전히 앉아 마멜라를 바라봤다.
내가 맛없는 사료를 꾸역꾸역 먹은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 옆에 쪼그리고 있던 마멜라가 방긋 웃었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잘했어, 아릴. 남김없이 다 먹었으니까 오늘은 간식 줄게.”
마멜라가 서랍장에서 말린 고기가 담긴 봉지를 꺼냈다. 부스럭대는 소리만 들어도 방금 먹은 사료가 쑥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언제부턴가 그녀가 챙겨 주기 시작한 간식. 사료는 맛이 없어도 저 고기만큼은 황홀한 맛이었다.
“자.”
“아옹!”
나는 해맑게 울며 마멜라가 건네는 고기 조각을 덥석 물었다. 자그마해서 입에 넣으면 금방 사라졌기에 야금야금 아껴 먹어야 했다.
‘맛있어!’
금세 기분이 좋아진 나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입 안에 퍼지는 훈제의 향과 고기의 식감이 천상의 맛을 불러왔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있었다. 바로 마멜라가 간식을 주는 패턴이 너무 무작위라는 점.
게다가 오늘처럼 운 좋게 받아먹더라도 양이 내 발톱만큼 작았다.
‘마멜라는 가난한가 봐.’
더 먹고 싶지만 보챌 수가 없었다. 마멜라는 늘 식사도 빠르게 하고 돌아오던데 설마 그것도 먹을 게 없어서 그런 거였나?
깊은 깨달음을 얻은 나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마멜라의 손등을 토닥였다.
다친 곳이 다 낫고 나면 마멜라에게 맛있는 걸 많이 물어다 줘야겠다.
꿀꺽. 자그만 고기는 순식간에 입에서 사라졌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으나 눈앞에 둥글둥글 털실 공이 굴러가자 고기 같은 건 단숨에 잊어버렸다. 나는 홀린 듯이 달려가 공을 와락 껴안고 뒹굴었다.
마멜라는 내 등을 가볍게 쓰다듬고는 말했다.
“아릴, 난 숙제하고 있을게. 혼자 놀고 있어.”
혼자서도 잘 노는 나를 두고 마멜라는 책상으로 갔다. 뒤이어 펜으로 뭔가를 서걱서걱 적는 소리가 났다.
나는 공을 이리저리 굴리며 해맑게 놀았지만 금세 싫증이 찾아왔다. 설렁설렁 공을 차 대다가 끝내는 털실 공을 내팽개치곤 물고기 인형을 찾아 나섰다.
물고기는 내 잠자리인 쿠션 더미 위에 있었다.
‘여기 있었네!’
나는 달려가 물고기의 머리를 와앙 물고는 소파로 갔다. 구석에 자리를 잡고 인형을 열심히 깨물어 대기 시작했다.
앞발로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하게 꾹 누르기까지 했더니 인형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해묵은 스트레스가 싹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헤헤.
머리에서 타깃을 바꾸어 꼬리를 마구마구 씹어 대기 시작할 때였다.
“휴, 어젯밤에 많이 해 둬서 다행이네.”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린 마멜라는 잠시 후 뭔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내 옆자리로 왔다.
‘뭐야? 뭘 가져왔어?’
호기심이 넘쳐 물고기의 꼬리를 문 채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투둑, 하고 뭔가가 뜯기는 소리가 났다.
무슨 소리지?
무심결에 소리가 들린 아래쪽을 바라봤다. 멀뚱멀뚱 상황 파악을 하며 눈을 두 번 깜빡였다. 곧 멍하니 입이 절로 벌어졌다.
툭, 입에서 놓친 물고기가 떨어지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렸다. 뒤이어 밀려오는 충격에 앞발을 입에 넣었다.
“……!”
물고기의 꼬리가 뜯겨 몸통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었다. 이게 왜 뜯긴 거지? 아니, 그전에 이거 뜯겨도 괜찮은 건가?
나는 마멜라의 눈치를 재빠르게 살피고는 자세를 바꿔 그녀를 등지고 앉았다.
뜯긴 물고기의 꼬리를 초조하게 내려다봤다. 왠지 망가뜨려선 안 되는 걸 망가뜨린 것 같다.
그간 깨물고 긁어도 찢어지지 않아서 내구성이 좋은 줄로만 알았는데 이렇게 한순간에 가 버리다니!
‘어떡하지, 어떡해?’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마멜라를 힐긋 바라봤다.
침착해야 한다. 일단 방법을 생각해 보는 거야.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처참하게 뜯긴 인형을 바라봤다. 이걸 어떻게 다시 붙이지?
고민하던 나는 무작정 물고기 인형을 핥기 시작했다. 특히 끊어진 꼬리 부분을 집중적으로 그루밍했다.
‘이렇게 하면 다시 붙을지도 몰라. 제발……!’
한창 폭풍 그루밍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뒤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릴, 뭐 하는 거야?”
나는 깜짝 놀라 얼어붙고 말았다.
“아릴?”
“아, 아옹?”
뻣뻣한 고개를 돌려 마멜라를 바라봤다. 마멜라는 자신을 등지고 있던 나를 어리둥절하게 보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을 살피던 나는 문득 눈치챘다.
‘인형을 못 본 건가?’
나는 그새 인형을 슬쩍 품으로 끌어당겨 깔고 앉았다. 그러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 해맑게 울었다.
“아옹!”
마멜라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한 건지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이다…….’
속으로 안도하는데 갑자기 코앞으로 어떤 종이가 불쑥 나타났다. 나는 놀라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뭐, 뭐지?’
벌렁거리는 심장 소리를 들으며 대뜸 코앞에 내밀어진 종이를 쳐다봤다. 의문을 가지기가 무섭게 마멜라가 말했다.
“내가 그린 거야.”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게 흠이었다.
물고기 인형을 필사적으로 끌어안으며 나는 고개를 기우뚱 기울였다.
내가 그림을 유심히 들여다보자 마멜라는 뿌듯한 기색으로 말했다.
“우리 오라버니야. 잘 그렸지?”
그림을 손가락으로 콕 짚은 그녀가 말했다. 나는 여전히 아리송해서 그림을 한 번, 마멜라의 얼굴을 한 번 바라봤다.
“아옹…….”
열심히 그렸을 마멜라에겐 미안하지만, 무척 못 그린 그림이었다……. 분명 손으로 그린 것 같았는데.
‘……혹시 이것도 그림이 아니라 언어의 일종인 걸까?’
인간은 손으로 연필을 잡고 다양한 형상을 종이에 구현해 낼 수 있으니 제법 그럴싸한 생각이었다.
마멜라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아릴이도 우리 오라버니를 만나 보고 싶지?”
“아옹?”
“그림으로 봐서 알겠지만, 오라버니는 나보다 훨씬 커. 내가 좀 늦둥이거든. 다들 나랑 오라버니의 나이 차를 들으면 놀란다니까.”
마멜라가 배시시 웃으며 말하다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오라버니는 엄청 대단한 분이셔. 제국에서도 오라버니를 모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간첩일걸?”
나는 눈을 깜빡거렸다. 손을 저렇게 드는 것도 의미가 있는 걸까?
마멜라의 엄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나도 그녀를 따라 조그만 앞발을 들어 올렸다.
“으응? 지금 나 따라 한 거야?”
마멜라가 내 앞발을 덥석 잡았다. 갑작스레 잡힐 줄은 몰라서 깜짝 놀랐다. 앞발을 빼고 싶어서 끙끙댔지만 놓아주질 않았다.
마멜라는 그런 내가 귀여워 죽겠다는 듯 웃음을 흘리곤 말했다.
“아릴, 우리 오라버니의 이름은 이딜로스야. 나와 더불어 네 가족이 되어 줄 거니까 기억해야 해.”
마멜라는 흡족한 표정으로 내 앞발을 놓고 다시 형형색색의 색연필을 손에 쥐었다.
잠시 후 나는 마멜라를 흘깃 바라봤다. 마멜라는 그림에 몰두하고 있었다.
‘다행이다, 안 들켰어.’
나는 인형을 내려다봤다. 아까 그루밍을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도 반쯤 뜯긴 꼬리는 여전히 붙을 생각이 없었다.
‘내 털은 이렇게 하면 정리되는데…….’
나는 침잠한 눈빛으로 인형을 바라봤다.
내가 이걸 뜯었다고 마멜라가 나를 내쫓으면 어떡하지……. 날 못된 고양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분명 미움받을 거야.
나는 인형을 앞발로 꾹 누르며 생각했다.
‘……숨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