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화 (182/191)

1화. 주워 온 고양이

“정말로 죽은 게 맞겠죠?”

상처투성이의 새끼 고양이를 나무 밑에 던져두고서 사제 두 명이 속닥거렸다. 그들의 새하얀 사제복은 군데군데 붉은 얼룩이 묻어 있었다.

“아천타의 검에 찔리고도 죽지 않는 수인은 없다네.”

사제 하나가 길거리의 돌멩이를 대하듯 고양이를 발로 걷어찼다. 고양이는 미동도 없이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그는 고양이에게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짐승 주제에 감히 인간을 흉내 내려 하다니, 주제도 모르고.”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요?”

어리숙한 물음에 고양이를 발로 가지고 놀던 사제가 코웃음 쳤다.

“우린 수백 년 전부터 그래 왔다네. 정녕 잘못된 행동이었다면 신께서 진즉에 우릴 벌하셨지 않겠나?”

“…….”

“겁먹지 말게. 그분이 방관하시는 것은 곧 허락과도 같으니. 신께서는 이까짓 짐승보다 우리 인간을 더 위하시는 거라네.”

껄껄 웃은 그가 고양이를 또 한 번 걷어차자, 신발에 묻어 있던 흙이 걸레짝처럼 지저분한 털 위에서 바스스 흩어졌다.

고양이를 넝마만도 못하게 만들고서야 만족한 그가 돌아섰다.

“이만 가지.”

그들은 검은 로브를 어깨에 걸치며 근처에 있던 말 두 필의 고삐를 잡았다.

“늦었으니 서둘러야 할 게야. 이 귀한 날 우리가 늦으면 섭섭하지 않겠나.”

“예. 알겠습니다.”

다그닥, 다그닥!

빠르게 멀어져 가는 말발굽 소리가 울렸다.

머지않아 그 소리가 사라졌을 때였다. 줄곧 죽은 것처럼만 보이던 작은 동물이 움찔 몸을 떨었다.

바르르 눈꺼풀이 떨리더니 새끼 짐승이 눈을 떴다. 드러난 맑고 푸른 눈이 주변을 빠르게 훑었다.

고요한 숲에는 새의 날갯짓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드디어 혼자가 된 것이다.

‘도망쳐야 해.’

새끼 짐승은 주저 없이 조그만 발로 땅을 박차고 달음박질쳤다. 몸에 새겨진 숱한 학대의 흔적이 한 걸음 한 걸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배에 입은 상처는 타는 듯이 뜨거웠고 폐에는 숨이 가득 차 찢어질 듯이 피 맛이 돌았지만…….

‘쓰러지면 안 돼……!’

새끼 짐승은 바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고 중심을 잡았다.

‘다시 날 쫓아올지도 몰라. 그러니 제발……!’

짧은 다리로 쉼 없이 수풀을 밟았다. 그 조그만 몸으로 얼마나 달렸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새 숲의 끝자락이 보였다.

‘아, 드디어…….’

눈부신 햇살이 시야에 가득 차올랐다.

안도가 밀려오기도 잠시, 피고름이 진 발이 돌부리에 걸렸다. 의지할 기력조차 없었기에 새끼 짐승은 힘없이 수풀을 나뒹굴었다.

눈앞이 어지럽게 뒤집혔다. 상처에서는 도무지 멈출 생각이 없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시야에 이슬이 맺힌 풀 한 포기가 들어왔다. 점점 형체가 흐릿하게 어그러지며…… 눈앞이 어둠으로 물들어 버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 * *

“오늘이 벌써 떠나는 날이라니.”

올해로 열두 살이 된 카델라로트의 꼬마 아가씨, 마멜라는 들판에 쪼그려 앉아 별장 일대를 둘러봤다.

어릴 적 부모님과 현 공작인 오라버니, 넷이서 오곤 했던 이곳의 풍경은 변함없이 진귀하고 아름다웠다.

오른편에는 햇살을 머금은 눈부신 호수가, 왼편에는 신록이 가득한 울창한 숲이 있었다. 거기다 숲 너머 얼핏 기둥만 보이는 대신전의 모습까지.

이만한 절경이 없었다.

마멜라는 탄식을 섞어 중얼거렸다.

“그냥 계속 있고 싶다…….”

“가주님께서 부르시니 그럴 순 없지요.”

뒤에서 불쑥 목소리가 들렸다. 마멜라는 뒤돌아보지 않고도 그 상대가 누구인지 알았다.

“나도 오랜만에 오라버니가 보고 싶긴 해.”

“하물며 가주님은 오죽하실까요. 분명 아가씨가 걱정되어서 잠도 이루지 못하셨을 텐데요.”

“요나도 참, 과장은!”

유모의 진지한 반응에 마멜라가 맑은 웃음을 빵 터트렸다. 요나도 제 아가씨를 따라 웃긴 했지만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는 않았다.

공작이 제 여동생을 무척 애지중지한다는 것은 카델라로트의 담장을 넘어 다른 귀족들까지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정작 장본인인 그녀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아가씨, 이제 정말 가요.”

“응. 알았어.”

마멜라는 들판에서 풀잎을 털고 일어났다. 짐을 싣고 있는 마차에 다다라서는 아쉬운 눈길로 주변을 빙 둘러봤다.

불현듯 걸음을 옮기던 그녀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잠깐만, 요나.”

“왜 그러세요?”

눈을 가늘게 좁힌 마멜라가 숲의 어딘가를 바라봤다. 너무 멀어서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저 수풀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마멜라는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요나. 나 잠시만 저기에 갔다가 와 볼게.”

“네? 아가씨!”

마멜라가 갑자기 달려가자 요나는 붙잡을 새도 없었다. 호기심에 못 이겨 뛰쳐나간 아가씨의 걸음은 숲의 입구 부근에서 멈추었다.

그녀를 뒤따라 한참을 달린 요나는 넘어가려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아가씨, 어서 가야 한다니까요…….”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마멜라가 얼어붙기라도 한 듯 그 자리에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아가씨?”

“요, 요나…….”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 친 마멜라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앞을 가리켰다. 그제야 요나는 마멜라가 보려고 달려간 것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꼬마 아가씨의 손끝이 향한 곳엔 새끼 고양이가 있었다.

무언가에 찔린 커다란 상처 사이로 흥건한 피를 흘리고 있는 죽어 가는 새끼 고양이가.

* * *

“치료는 무사히 마쳤습니다.”

수의는 이마의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그는 땀을 찍어 낸 손수건을 품 안에 넣고서 둘둘 감싼 담요 뭉치를 건넸다.

그 안에 든 건 새끼 고양이였다. 마멜라는 조심스럽게 담요를 받아 품에 안았다.

수의와 인사를 나누고, 마멜라는 담요를 품 안에 소중히 안은 채 마차로 향했다. 그녀의 뒤를 따르던 요나가 조심스레 말문을 뗐다.

“저, 아가씨.”

“응?”

“그 고양이를 어쩌실 셈인가요? 혹 데려가시려는 건 아니겠지요?”

요나의 염려가 담긴 물음에 마멜라는 천진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내가 기를 거야.”

명랑한 대답에 요나는 귀를 의심했다.

카델라로트의 공작은 짐승을 싫어하다 못해 경멸하고, 경멸하다 못해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여동생인 마멜라가 그 사실을 모를 리가 없지 않은가.

새파랗게 질린 요나는 무례를 무릅쓰고 되물었다.

“진심이세요?”

“응.”

금색의 사랑스러운 눈이 품에 안긴 고양이에게로 향했다.

요나는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년 사시사철 기분이 언짢은 공작의 까다로운 심기에 고양이가 걸렸다간 큰일이 날 게 분명했다.

요나는 마멜라가 마차에 오르기 전에 서둘러 말했다.

“아가씨, 가주님은 분명 고양이를 쫓아내라고 하실 거예요.”

“그래서 고양이를 당분간 숨길까 해.”

“네? 그러다 들키기라도 하면 어쩌시려고요.”

“그땐 오라버니한테 부탁해야지. 어차피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잖아?”

태연하게 대답한 마멜라는 마차에 올랐다. 요나가 충격과 걱정이 뒤섞인 눈빛을 거두지 못하자 마멜라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라버니는 내 부탁이면 뭐든 들어주시잖아.”

말끝엔 세상 해맑은 미소도 함께였다.

* * *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나는 눈꺼풀을 부르르 떨다가 힘겹게 들어 올렸다.

서서히 정신이 돌아오자 배에 불에 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다.

‘아파……!’

끙끙 앓는 소리를 내자 시야에 어떤 얼굴이 불쑥 나타났다. 나는 놀라 비명을 지를 뻔했다.

“야옹아, 드디어 깼구나!”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는 겨우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애옹…….”

‘누구지, 저 애는?’

물결처럼 흐르는 금발에 반딧불같이 노란 눈을 가진 소녀였다. 나는 그 애를 경계하며 재빠르게 코를 킁킁댔다.

낯선 냄새. 온통 처음 맡는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다.

경계를 늦추지 못하고 있는데 소녀가 벌떡 일어섰다. 또다시 화들짝 놀란 나는 몸을 떨며 소녀를 노려봤다.

소녀는 그런 나를 빤히 바라보더니 나와 눈을 맞추며 웃었다.

“야옹아, 조금만 기다려 줘. 맘마 가져올게.”

소녀는 나를 두고 방을 나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은 나는 이리저리 눈을 굴리며 주변을 살폈다.

‘여긴 대체 어디지? 온몸은 또 왜 이렇게 아픈 거야?’

특히나 배 쪽이 무시무시하게 쓰려서 곧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설마 아까 그 애가 날 다치게 한 건가?’

몸을 파르르 떤 나는 소녀가 사라진 문을 노려봤다. 그게 정말이라면 이 틈에 얼른 도망쳐야 한다.

나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거렸다. 그러나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개를 내리자 이상한 이불 같은 게 내 몸을 꽁꽁 동여매고 있는 게 보였다.

‘움직일 수가 없어.’

한참을 끙끙대며 씨름하니 온몸에 힘이 빠졌다. 결국 나는 체념한 채 천장만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대로 죽어야 하나 봐. 날 때리려나? 설마 잡아먹지는 않겠지?’

겁에 질려 눈물이 차올랐다. 난 어쩌다 저런 무서운 애한테 잡힌 거야…….

죽음을 기다리며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나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미간을 찡그리는 찰나 멀리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귀를 쫑긋거린 나는 재빨리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했다.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기척이 다가왔다.

“으음? 그새 잠들었나?”

소녀가 기웃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경계심에 눈을 뜨지 않으려 했다.

그런데 어디서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기는 것 아닌가.

킁, 킁킁.

무심코 코를 벌름거리자 배 속에서 용 울음소리 같은 것이 울렸다. 나는 그만 참지 못하고 눈을 떴다.

소녀와 눈이 마주치자 아차 싶었다. 분명 자는 척하기로 했었는데!

“아, 깨어났네. 다행이다.”

방싯 웃은 소녀는 손에 든 병을 흔들었다. 나는 그 행동 하나하나를 경계하면서도 맛있는 냄새에 반응하는 걸 멈추지 못했다.

‘안 돼, 날 잡아먹으려는 속셈인 거야!’

그때 소녀가 내게 다가왔다. 잔뜩 기가 선 채로 사납게 하악질 하자 그 틈을 타 무언가가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소녀가 나를 달래듯 말했다.

“많이 배고팠지?”

입을 우물거리자 말랑하면서도 탄력 있는 감촉이 느껴졌다. 거기서 따뜻하고 고소한 액체가 넘어왔다.

꿀꺽, 삼킨 순간 나는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맛있어……!’

의심할 새도 없이 안에 든 걸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한순간에 바닥을 보인 젖병을 소녀가 다시 가져갔다.

온몸이 노곤해져 경계가 느슨해진 틈이었다. 담요째로 몸이 달랑 들어 올려졌다.

겁에 질려 바둥거리자 나를 안아 든 소녀가 내 등을 문질러 주기 시작했다. 곧이어 나는 끅, 하고 작게 트림했다.

소녀가 웃었다.

“잘했어, 기특하다.”

그 낯선 따스함에 멍해졌다. 손바닥에서 등으로 전해지는 온기가 이상하고도 낯선 기분을 들게 했다.

나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따뜻하고 맛있는 음식을 주는 걸 보면…… 착한 인간인 게 아닐까? 나를 다치게 한 것 같지 않아.’

그저 직감이었다.

더불어 이런 걸로 판단해도 될진 모르겠지만 생긴 것도 그런 쪽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해맑은 햇살 같았으니 말이다.

소녀가 손을 내밀었다. 나는 소녀의 손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다가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치자 소녀가 입을 열었다.

“난 마멜라야. 그리고 네 이름은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소녀는 조금 쑥스러운 듯 볼을 연분홍빛으로 물들이며 말했다.

“아릴.”

“…….”

“아릴이야.”

나는 소녀의 잔잔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빡였다.

뭔가를 굉장히 진중하게 말하는 것 같은데…….

‘대체 뭐라고 하는 거지?’

문제는 내가 그 말을 도무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다는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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