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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61화 (151/191)

161화

이딜로스는 참았던 숨을 나직하게 내뱉었다.

날카로운 동공을 보고서 아릴이 호랑이의 모습이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다.

그는 아릴의 흐트러진 머리칼과 차림을 훑어보다가 반사적으로 신음을 흘렸다. 아릴이 그의 목을 손으로 내리누르고 있었다.

이딜로스는 당황했다. 아릴의 손에 점점 힘이 실렸다.

설마 멋대로 들어왔다고 화내고 있는 건가?

“아릴, 잠깐…….”

“…….”

“아릴…… 님, 윽.”

미간을 찌푸린 그는 뭔가가 이상함을 느꼈다. 그를 내려다보는 아릴의 눈이 멍했다. 찰나에 그는 간담이 서늘해졌다.

황급히 아릴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곤 그녀를 말리기 위해 그 손을 단단히 감싸 쥐었다.

그는 괴로움을 견디며 목소리를 쥐어 짜냈다.

“그만해, 아릴……!”

그러자 아릴의 손이 움찔하더니, 불이라도 덴 것처럼 그에게서 손을 똈다.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이딜로스?”

오감을 간지럽히는 낮고도 청아한 목소리였다. 흔들리는 아릴의 눈빛이 또렷해졌다.

이딜로스는 죽다 살아났음을 느끼며 몇 번 기침했다.

아릴은 당황한 것처럼 잠시간 어쩔 줄 몰라 하며 이딜로스를 보더니, 뒤로 조금 물러났다.

이딜로스는 목을 매만지며 아릴에 의해 강제로 깔렸던 몸을 일으켰다.

아릴은 경계하며 말했다.

“왜, 왜 여기…….”

“감기에 걸리신 걸까 봐, 약을 챙겨 온 거였는데……. 괜찮으십니까?”

그의 염려 섞인 목소리에 아릴의 눈썹에 큰 파문이 일었다. 이윽고 갑작스레 그녀가 소리쳤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지! 잡아먹히고 싶어서 환장했어?”

아릴은 한바탕 목소리를 높이고선 씩씩거렸다. 마치 제 분에 못 이기는 것처럼 보였다.

아릴이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몸을 부들부들 떠는 걸 본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괜찮으신 겁니까? 식은땀이…….”

이딜로스가 무심코 아릴의 이마로 손을 뻗었다. 아릴은 눈을 크게 뜨더니 화들짝 놀라 말했다.

“소, 손대지 마!”

그녀의 예민한 반응에 이딜로스는 손을 멈췄다. 그러나 그는 곧 아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손을 움직여 그녀의 흥건한 이마를 직접 닦아 냈다.

그리고 이딜로스는 조금 화가 난 눈빛으로 아릴을 붙잡고 물었다.

“아릴 님. 대체 어느 곳이 안 좋으신 겁니까? 말하지 않으면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알 수 없습니다.”

정면으로 시선을 마주하자 아릴의 눈이 겁먹은 것처럼 흔들리기 시작했다.

아릴은 그를 떨어트리고 싶은 듯, 그의 옷자락을 쥐고서 꾹 밀어냈다.

“아릴 님.”

“손대지 마, 손대지 마…….”

“왜 그러시는 겁니까.”

“제발……, 나한테 손대지…….”

그 순간 이딜로스의 몸 위로 무게가 짓눌렸다. 동시에 눈 깜짝할 새에 그의 입술 위로 온기가 들이닥쳤다.

하던 말을 마무리 짓지도 않고, 이딜로스에게 대뜸 입술을 겹쳐온 아릴은 그의 옷자락을 꽉 쥐었다.

이딜로스가 당혹스러워 얼이 빠진 사이, 아릴은 몇 차례 끙끙 신음을 흘렸다.

“이딜로스…….”

입술 새로 그의 이름을 부르던 그녀는 그에게 제 몸을 의지하듯 기대었다.

이딜로스는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알 수가 없어 그녀의 장단에 어울려 주지 못했다.

그러자 한참을 비비적대던 아릴이 입맞춤을 멈추고 울상으로 고개를 들었다.

“왜…… 키스 안 해 줘?”

“아릴 님, 지금 대체…….”

“입 맞춰 줘, 이딜로스. 제발…… 참기 힘들어. 아파…….”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아릴의 눈은 아무리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릴이 애걸복걸하자 이딜로스는 마지못해 그녀를 당겼다.

다시 입술이 겹치자, 이번엔 확실하게 숨이 뒤섞였다.

아릴은 그에 잠시 만족하는가 싶더니, 곧 자꾸만 안달이라도 난 것처럼 정신없이 굴었다.

하도 입술을 빨아 당겼다가 깨물었다가 하는 통에 이딜로스는 참다못해 그녀의 턱과 양 뺨을 한 손으로 단단히 붙잡았다.

그러곤 줄곧 어정쩡하던 자세를 바꿔, 아릴을 제 위에 완전히 앉혔다. 그는 아릴이 욕심껏 굴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그녀의 바람대로 해 주었다.

아릴의 팔이 이딜로스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한참이나 서로를 머금고 있다가, 입술이 마찰음을 내며 떨어졌다.

“흑…….”

그리고 그제야 마주 보게 된 아릴은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울고 있었다. 이딜로스는 잠시 당황하다가 아릴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 줬다.

“아릴 님, 왜 우시는 겁니까.”

“싫어……. 나한테 말 높이지 마. 날 수인으로 대하지 마.”

울음이 뒤섞인 말을 토해 내고서, 그녀는 이딜로스의 품에 안겼다. 이딜로스는 아릴이 겪는 감정의 흐름이 평소와 너무 다르다고 느꼈다.

“울지 마.”

그는 아릴의 등을 감싸 토닥였다. 아릴은 마치 격랑에 휩쓸리듯 울면서 말을 토해 냈다.

“난…… 싫어, 도무지 널 밀어내고 싶지가 않아.”

“……밀어내지 않으면 되잖아.”

이딜로스의 가라앉은 대답에 아릴은 계속 울었다.

“안 돼……. 난 인간을 사랑해선 안 된대……. 그게 내 천명이야. 난 그렇게 태어났어. 누구도 사랑할 수 없도록.”

숨을 헐떡이는 아릴의 어깨가 크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신격체가 천명을 어기면…….”

“……재앙이 따른다고?”

아릴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휘둥그레져 있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들었어. 삼 사제님께.”

“…….”

“말해 줘, 아릴. 여전히 날 사랑해?”

“여전히 난…….”

“응.”

목이 메인 건지 아릴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녀의 눈에 슬픔에 의한 건지 괴로움에 의한 건지 모를 눈물이 차올랐다.

이딜로스는 아릴을 바라보며 그녀의 말을 천천히 기다려 주었다.

“널 사랑해……. 단 한 번도 이 마음 변한 적 없어. 난 널 미워한 적 없어. 널 밀어내고 싶었던 적 없어. 너에게 모진 말 하고 싶었던 적도 없어……. 난, 난 정말로, 정말 단 한 번도…….”

“알아.”

이딜로스가 아릴의 머리를 감싸 품으로 당겼다.

“알고 있었어. 처음부터 그런 편지 따위 안 믿었어.”

“…….”

“네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없으니까.”

이딜로스는 아릴을 꽉 끌어안은 채 그녀의 머리에 고개를 묻었다. 아릴의 떨림이 온전히 전해졌다.

“네가 나로 인해 일어날 재앙이 두려운 거라면 내가 모두 감당할게. 넌 걱정하지 마.”

“…….”

“대신 날 밀어내지만 마.”

이딜로스의 부탁에 아릴은 더욱 흐느꼈다.

“네가 내 곁에 있으면…… 넌 위험해지고 말 거야.”

“상관없어, 그런 거. 내가 널 지키듯이 너도 날 지켜 줄 게 분명하니까.”

아릴이 품 안에서 꼼지락거렸다. 그녀가 고개를 들고 싶어 한다는 걸 눈치챈 이딜로스는 아릴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아릴은 물기에 비쳐 투명하게 빛나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딜로스…….”

“응.”

“안아 줘.”

그녀가 먼저 입을 맞춰 왔다. 이딜로스는 기꺼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아릴은 그와의 모든 접촉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위치가 뒤바뀌어 그녀가 침대에 눕게 되는 순간까지 아릴은 몇 번이고 오싹함에 떨었다. 눈물을 잔뜩 머금은 그녀는 꼭 물기에 흐드러진 꽃 같았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이 찾아올 때까지, 그들의 시간은 끝없이 이어졌다.

“……이딜로스.”

“응.”

아릴의 눈이 나른하게 깜빡였다. 이딜로스는 아릴의 이마에 긴 입맞춤을 남겼다.

“잘 자, 아릴.”

* * *

“이딜로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눈앞에 이딜로스가 보이는 건, 왜일까? 내가 환상을 보나? 이 망할 시기 때문에 정말로 정신이 이상해진 건가…….

‘꿈인가 보지. 이딜로스가 나오는 꿈이라니, 행복해…….’

입을 벌리고 크게 하품을 한 나는 이딜로스의 품에 파고들었다. 현실에서도 마음껏 그를 껴안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하지만 이딜로스를 끌어안기엔 내가 짊어지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하필 내가 신격체로 태어나서. 남들과 달라서. 나는 내가 느끼는 감정조차 마음 편히 누릴 수 없는 존재였다.

‘따뜻해. 좋은 냄새가 나…….’

나는 몇 없을 이 꿈을 온전히 누리고자 이딜로스를 꽉 안았다. 옛날처럼 이딜로스의 품에 뺨을 문질렀다.

그러자 머리 위에서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렇게 좋아?”

“응…….”

나른한 대답에 꿈속의 그는 내 머리칼을 느릿하게 쓸어 넘겨 주기 시작했다. 그 나긋한 행동에 졸음이 밀려왔다.

이상하기도 하지. 꿈속에서도 졸음을 느끼다니.

내가 묵직한 졸음에 잠겨 가고 있을 때, 장난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밤도 좋았고?”

“지난밤?”

“억양이 왜 그렇지? 기억이 안 난다는 투인데.”

“……으응?”

내 웅얼거리는 물음을 들은 이딜로스가 피식거렸다. 그러곤 내 양 뺨을 손으로 꾹 눌러 들어 올렸다.

강제로 고개가 들리자 잔잔하게 눈가를 휜 그와 시선이 마주쳤다. 이딜로스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기억이 안 난다면 어쩔 수 없지. 또 하는 수밖에.”

그러곤 갑자기 자신의 옷 단추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헉…….”

갑자기 번뜩이는 기억에 나는 입을 떡 벌렸다.

뭐지. 뭐야, 이 기억?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일들이 기억 속에서 되풀이되었다.

내가 기억을 되새기느라 넋이 나가 있는 사이, 이딜로스가 내 옷을 한 번에 걷어 올렸다. 상황 파악이 끝난 나는 다급히 이딜로스를 막았다.

“그만, 그만! 기억났어!”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정말로 기억났어!”

“그래? 그럼 우리가 뭘 했는지 말해 봐.”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벌렸다가 한참이나 뻐끔거렸다. 도무지 말로 나오지 않는 것들뿐이라 결국엔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재미있다는 듯 쳐다보고 있던 이딜로스가 입매를 씩 올렸다.

“기억 안 나나 보지. 어쩔 수 없군.”

이딜로스가 고개를 내려 내 배에 키스했다. 그로부터 천천히 위로 올라오는 것이 느껴져 온몸에 소름이 자르르 번졌다.

하지만 와 닿는 온기가 너무 좋아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평소라면 밀어낼 수 있었을 텐데, 하필 지금이 온몸이 민감해지고 감정 변화가 극심해지는 시기라서…….

“어제 그랬던 이유가 뭐야.”

“……응?”

“갑자기 화내고, 갑자기 키스하고, 갑자기 울고, 갑자기 사랑한다 말하고. ……이상했어, 너.”

“…….”

“알아. 어제 일이 내가 널 찾아가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라는 거. 넌 그걸 바랐으니 내게 오지 말라고 했겠지. 그래서 지금은 후회해?”

“……아니.”

이딜로스가 날 내려다봤다. 나는 고심 끝에 입을 열었다.

“너와 난 몸도 마음도 나눈 사이잖아. 그러니 우리는 서로를 반려로 인식하고 있어. 그런 상태로 난 너와 접촉도 없이 그간 떨어져 있었고.”

“응.”

“너도 알다시피 난 인간이기도 하지만, 반은 짐승이니까…….”

뭔가를 눈치챈 건지, 이딜로스의 눈빛이 조금씩 이상해지기 시작했다. 나는 소심하게 말을 이었다.

“너무 오래 접촉이 없으면 주기적으로 그런 시기가 찾아와. 그러니까 따지고 보면 어제도 내 발저…….”

이딜로스가 내 입을 손으로 탁 막았다. 마주친 시선은 그 단어를 굳이 입 밖으로 내지 말아 달라는 눈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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