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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13화 (103/191)

113화

시선이 멍하니 그의 손을 따라갔다. 나는 뒤이어 들린 낮은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묻히고 먹지 마.”

“아, 내가 묻히고 먹었구나…….”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오르는 기분이라, 나는 당황한 낯을 숨기기 위해 서둘러 수프를 입에 떠 넣었다.

옆에 놓인 석류 주스를 한 모금 마시고서 식사를 마친 나는 말끔히 차려입은 이딜로스를 바라봤다.

다른 건 그다지 당기질 않아 수프만 먹고 끝낸 나와 달리, 이딜로스는 여전히 식사를 이어 가고 있었다.

마멜라의 말로는 이딜로스가 씹는 횟수까지 일정하게 맞출 정도로 주도면밀하다던데. 마흔 번이랬나, 여든 번이랬나…….

또 한 번 내 시선을 느낀 이딜로스가 발사믹 소스가 묻은 토마토를 입에 넣으려다 말고 나를 바라봤다.

“……또 왜?”

“그거 맛있겠다.”

“네 앞에도 있어. 먹어.”

이딜로스가 내 앞에 놓인 잘 익힌 토마토와 부라타 치즈가 있는 접시를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거 말고.”

“그거랑 이건 같은 거야.”

“이딜로스가 들고 있는 게 맛있어 보여.”

그가 조금 어이없다는 듯 나를 바라봤다. 나는 배시시 웃으며 입을 벌렸다.

“아.”

“그냥 먹지 마.”

이딜로스는 쌀쌀맞게 대답하곤 자기 입에 토마토를 쏙 넣어 버렸다.

나는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고양이일 때는 내가 먹다 뱉은 것도 받아 줄 것처럼 좋아했으면서.’

고양이 모습을 편애하는 이딜로스의 태도가 괘씸하게 느껴졌다.

식탁이 치워지자 이딜로스가 사용인들을 불러와 내게 옷을 입혔다.

옷을 두툼하게 껴입고 난 후 그가 흘러내린 내 머리칼을 쓸어 넘겨주며 말했다.

“피곤할 텐데 마차에서 한숨 자. 도착하면 깨워 줄게.”

안 그래도 몸이 묵직하고 피로했던 나는 그의 귀신같은 말에 깜짝 놀라 물었다.

“내가 피곤하다는 걸 어떻게 알았어?”

“원래 다 그러니까.”

“원래 다 그렇다니?”

이딜로스는 말없이 나를 밖으로 이끌었다. 아까부터 이딜로스가 나도 모르는 내게 일어난 일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내가 대체 어제 뭘 한 거지?’

이딜로스를 따라 마차에 오르며 곰곰이 기억을 더듬었다.

생각이 날 듯 말 듯한데…… 결론적으로는 머리가 아파 떠올리는 걸 포기했다.

나는 맞은편에 앉은 이딜로스를 바라보다가 흔들리는 마차에서 엉덩이를 뗐다. 이딜로스의 시선이 창밖에서 내게로 넘어오자 나는 잽싸게 그의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왠지 모르겠지만 이딜로스는 지금 내 몸이 성치 않다는 걸 안다. 실은 그렇게까지 안 좋은 것도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더 붙어 있고 싶었던 내게는 이만한 핑계도 없었다.

나는 이딜로스의 어깨로 힘없이 고개를 푹 떨궜다.

“이딜로스…… 나 머리 아파.”

그 한마디에 나를 밀어내려는 이딜로스의 손이 멈칫하는 게 보였다. 이딜로스는 이런 모습에 마음이 약해지는 게 확실했다.

나는 가여운 눈으로 시선을 들어 코앞에 있는 이딜로스의 얼굴을 마주했다.

“어지러워.”

“……많이?”

“응……. 열도 나는 것 같아. 이것 봐.”

가지런히 놓여 있던 이딜로스의 손을 끌어와 뺨에 가져다 대었다. 그의 손바닥에 얼굴을 슬쩍 기대며 말했다.

“안 그래?”

“……어서 자.”

이딜로스는 내게서 손을 빼내며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그러나 목소리며 나를 밀어내지는 않는 행동을 보니 내 꾀병에 넘어간 게 분명했다.

나는 힘이 없는 척 이딜로스의 팔에 기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눈을 조금 감고 있다가, 잠이 안 온다며 응석을 부리려 했다.

그런데…… 곧바로 잠들어 버릴 줄은 몰랐다. 알았더라면 이딜로스의 손에 호텔에 옮겨지고 나서야 일어나지는 않았을 텐데.

낯선 방에서 눈을 뜨고 눈동자를 도르륵 굴리는 내 앞에 물컵이 불쑥 나타났다.

“마셔.”

침대 옆에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선 이딜로스가 아까처럼 물컵을 내밀고 있었다. 이번에도 내 곁에 계속 있어 준 걸까?

마침 목말랐던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걸 받아 마시고는 물었다.

“나 오래 잤어?”

“아니.”

이딜로스의 대답을 듣고, 창밖을 확인한 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거짓말. 저녁이 되어 버렸잖아.”

“몸은 좀 괜찮아?”

이딜로스가 말을 돌렸다. 나는 못마땅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내가 막 깨었을 때는 일어나 물 잔을 건네고 있었지만, 그의 뒤편에 보이는 의자를 보니 내가 잠들어 있을 동안에도 계속 곁을 지킨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욕심스럽고 얄궂은 마음이 들었다.

눈앞에 있는, 그것도 아까까지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줄곧 곁에 있어 주었을 이딜로스를 이대로 보내기 싫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기왕이면 같이 끌어안고 좀 더 자면 좋잖아. 포근하고 따뜻할 테고…… 정말이지 기분 좋을 것 같았다.

빠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나는 곧이어 끙끙 앓는 불쌍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아파……. 목도 따갑고 머리도 어질어질하고, 열도 계속 나는 것 같아.”

일부러 기침을 콜록콜록 내뱉자 이딜로스의 표정이 안 좋아지는 것이 보였다. 이윽고 심각한 낯이 된 그가 막막하게 말했다.

“넌 대체 뭘 마신 거야? 앞으론 아무거나 받아먹지 마.”

그리 말하곤, 그는 침대 옆 테이블에서 뭔가를 부스럭대더니 내게 들이밀었다. 시야에 쑥 들어온 이딜로스의 손에는 웬 작고 둥그런 경단 같은 것이 있었다.

“먹어.”

“이게 뭔데?”

나는 일단 이딜로스가 먹으라기에 그걸 손으로 받아 킁킁 냄새를 맡았다. 코를 찌르고 들어오는 고약한 냄새에 오만상을 썼다.

나는 겁먹은 눈으로 다시 한번 물었다.

“이게…… 뭔데?”

“약. 먹으면 좀 괜찮아질 거야.”

“뭐? 싫어.”

애초에 난 진짜로 아프지도 않을뿐더러 꾀병을 부리는 마당에 약을 먹고 괜찮아지고픈 마음은 없었다. 안 괜찮고 싶어서 아픈 척을 하고 있는걸!

하지만 이딜로스는 단호한 얼굴로 내게 계속 약을 먹으라고 보챘다.

꾀병이 이렇게 안 좋은 참사를 불러올 줄은 몰랐는데……!

나는 눈가를 찡그리다가, 스멀스멀 올라오는 약의 냄새에 결국엔 약을 쥔 손을 멀찍이 밀어내며 도리질했다.

“싫어, 안 먹어. 이거 냄새가 이상해!”

이건 분명, 입에 넣자마자 오만상이 찡그려지고 한순간 살기 싫어질 정도의 역한 맛이 날 게 분명했다.

그런 나를 지켜보던 이딜로스가 성가시다는 듯이 표정을 굳혔다. 나는 의사를 완고하게 내비치기 위해 눈에 힘을 주고 이딜로스를 바라봤다.

난 이런 약보다, 네가 옆에서 끌어안아 주기만 하면 다 나을 병에 시달리고 있단 말이야.

하지만 입 밖에 냈다간 꾀병인 걸 들키고 말 내 마음을 이딜로스가 알 리가 없었다.

그는 내 고집스러운 눈을 마주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다가와 침대에 무릎을 걸치며 몸을 기울였다. 이딜로스의 한 손이 침대 헤드를 붙잡으면서, 나는 그의 팔 아래 갇힌 꼴이 되었다.

당황한 나는 몸을 뒤로 움츠리며 그를 올려다봤다. 그사이 이딜로스는 내 손에 쥐어져 있던 약을 빼앗아 가 제 입에 가져갔다.

내가 먹어야 할 약을 왜 자기가 먹는 것인지, 그러한 의문이 반짝 떠올랐지만 가라앉은 것도 금방이었다. 의문에 대한 답을 해 주듯 이딜로스가 고개를 내렸기 때문이다.

약을 머금은 입술이 맞닿아 왔다.

딱딱한 감촉이 입술에 닿았다가, 그대로 벌어져 혀를 타고 쓴맛이 넘어왔다.

그 맛이 강렬하게 미각을 때렸지만, 너무 놀란 나머지 그런 맛 따위는 느낄 새도 없이 꿀꺽 약이 넘어가 버렸다.

나도 모르게 삼킨 약이 신경 쓰이지도 않을 정도로 오랜만에 느낀 감촉이 주는 자극은 거셌다.

그간 이딜로스가 날 밀어냈던 걸 알기에 다급히 그의 옷자락을 쥐었다.

이대로 떨어지지 말라고, 부디 이 녹을 듯한 온기를 조금만 더 맞대어 주고 있어 달라고.

터질 듯한 심장이 간절히 그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이 순순히 떨어졌다. 이딜로스는 지척에서 잠시 멈추어 내가 붙잡은 옷자락을 보더니 말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네가 먹지 않을 거니까 그런 것뿐이야.”

변명이라도 내뱉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단호하게 내 손을 떨어트리는 이딜로스에게 심통이 나 말했다.

“이렇게 기대하게 해 놓고 약만 넘겨주고 떨어지는 게 어딨어. 제대로 안 닿은 것 같아. 못 느꼈으니까 다시 해 줘.”

“그걸 말이라고.”

이딜로스가 손가락으로 내 이마를 꾹 밀어 버렸다. 그가 침대에서 일어나더니 말했다.

“이만 쉬어. 이상한 용건으로 날 찾아오지는 말고.”

“같이 자는 건…….”

“안 돼.”

“그럼 나중에 나 잠들기 전까지만 끌어안고 있어 주는 건…….”

“…….”

“알았어. 그냥 잘게. 왜 그렇게 무섭게 봐. 넌 너무 매정해. 마멜라였으면 날 끌어안고 토닥여 주기까지 할 텐데.”

나는 뾰로통하게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이딜로스의 표정이 한순간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이딜로스는 무슨 말이 하고 싶은 듯 눈썹을 살짝 찡그린 채 입을 달싹이더니 끝내는 입을 꾹 다물곤 등을 보였다.

“……갈게.”

그의 모습이 한순간 쓸쓸해 보였기 때문에 나는 이딜로스를 붙잡지 못했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거지?

* * *

다음 날, 카델라로트 공작저에 도착한 건 오후 무렵이었다.

편안한 차림으로 그리웠던 내 방 침대에 몸을 내던진 나는 침대를 데굴데굴 뒹굴었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더니. 황궁 연회에서 겪었던 살 떨리는 순간을 떠올린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게까지 많은 시선이 내게 향했던 건 처음이다. 수인에 대해 소개한 책의 삽화 중에는 수백이 넘는 인간들이 수인을 숭배하는 그림도 있었는데.

원래 난 그 시선들을 당연하다는 듯 받으며 살아야 할 존재였던 건가. 지금은 그런 대단한 숭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할지.

솔직히 말해 무서웠다. 이딜로스가 곁에 와 나를 이끌어 준 순간부터는 그러한 긴장도, 두려움도 모두 사라졌지만…….

이딜로스를 떠올리다 보니 자연스레 어제 그 짧았던 접촉이 생각난 나는 설렘에 못 견뎌 침대를 또다시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벌떡 일어났다.

‘바다! 바다 갈 준비를 해야지! 내일 당장 출발하면 되겠다.’

데이트할 생각에 신난 나는 조금 전까지 긴 여행으로 느꼈던 피로도 싹 잊어버렸다. 들뜬 나머지 내일, 아니 지금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었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이딜로스를 찾아갔다.

도착한 지 이제 두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이딜로스는 쉬지도 않고 일할 셈인지 냄새가 또 집무실로 향하고 있었다.

조금 탐탁지 않은 마음이 들었으나, 그와는 별개로 들떴기에 나는 집무실의 문을 힘차게 열어젖혔다.

“이딜로스!”

그러나 문을 여는 순간 날아든 시선은 이딜로스의 것뿐만이 아니었다.

옆에서 찻주전자를 들고 놀란 눈을 깜빡이는 한 쌍의 시선에 나는 뒤늦게 말을 덧붙였다.

“……공작님!”

“그럼 저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막 차를 내어 주고 가던 참이었는지 넬라가 쟁반을 챙겼다. 나는 내게 가볍게 묵례하고 지나쳐 가려는 넬라를 붙잡았다.

“잠깐만. 왠지…… 널 조금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마멜라가 떠난 후로는 처음 보네, 그렇지?”

“아, 네. 그동안 동생이 심한 고뿔에 걸리는 바람에…… 돌봐 줄 사람이 저밖에 없어 잠시 자리를 비웠었어요.”

“그래? 마음고생 많았겠다. 동생은 이제 괜찮아?”

“네. 이제는 말끔히 나아 곧잘 놀러 다니는 모양이에요.”

“그거 다행이네.”

내가 미소를 짓자, 넬라는 고맙다고 인사했다. 나는 넬라를 바라보며 두어 번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런데, 어디서 이상한 냄새 나는 것 같지 않아?”

“네?”

“……아니야. 내가 너무 오래 붙잡았지. 이만 가 봐.”

넬라는 의아한 눈으로 고개를 숙이더니 인사와 함께 집무실을 나갔다. 나는 넬라의 뒷모습이 문에 가려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봤다.

‘이딜로스, 솔레드로트…….’

그리고, 은은하게 스미는 쇳가루 같은 비릿한 냄새.

내가 지금 넬라에게 경계심을 느끼는 것은 그녀의 주머니에 있던 종이 속 글자가 꼭 그날 우리의 동선과 공교롭게 겹쳤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공교로운 부닥침 후로 장기간 자리를 비웠던 넬라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면, 그저 내 동물적인 직감이 날 선 경고를 주고 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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