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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05화 (95/191)

105화

“……뭐?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내 말에 잠시 굳어 있던 그가 미간을 설핏 찌푸렸다.

“모르겠어. 주체도 안 되고, 자꾸 두근거리고…… 아무래도 나 널 잡아먹고 싶나 봐.”

“…….”

“이대로면 널 한입에 넣어서 먹어 버리고 말 거야.”

말을 끝마쳤을 때, 불편한 자세로 내게 깔려 있던 이딜로스의 안색은 전에 없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이딜로스의 질린 표정을 보곤 나는 시무룩하게 눈꼬리를 내렸다. 조명을 받아 반짝이는 그의 햇살 같은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얽으며 매만졌다.

“그런데…… 널 잡아먹어 버리면 앞으로 못 보게 되잖아. 그럼 난 어떡해?”

그가 짐승을 무서워한단 사실을 알기에 당연히 진심으로 잡아먹고 싶어 한 말이 아니었다. 그저 참을 수 없는 마음에 해 본 말이었을 뿐.

눈썹을 축 내리자 이딜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너…… 그런 소리는 장난으로라도 하지 마.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먹어?”

“난 고양이이기도 하잖아.”

“고양이도 사람은 못 먹어.”

“난 육식 파야.”

이딜로스가 입을 다물었다.

저런 표정은 짓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이딜로스는 아마 모를 터다. 그가 무방비한 표정과 순한 양 같은 얼굴을 할 때면 나는 더한 충동이 든다는 걸. 알면 저런 얼굴을 할 리가 없었다.

나는 비장한 마음으로 눈물을 한 번 훌쩍인 후에 말했다.

“나도 어쩔 수 없어. 이대로면 더는 참지 못할 것 같아. 그냥 맛 한 번만 볼게. 그럼 괜찮아질 거야.”

내 말에 이딜로스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대로 몸을 숙이자 아래에 깔린 이딜로스가 뒤로 물러나려는 듯 소파를 짚었다. 그러나 내가 그의 손을 붙잡아 누르고 있었기에 이딜로스는 이도 저도 못 했다.

“아…… 인간일 때는 송곳니가 뾰족하지 않으니까 고양이가 될까?”

처음엔 제법 침착한 것 같던 이딜로스가 점차 당혹스러움을 드러냈다.

“잠깐만, 아릴…….”

“왜?”

“진심으로 그러는 건 아니지? 이런 장난은…….”

“난 진심이야.”

붙잡아 누르고 있던 이딜로스의 손을 들어 올렸다. 입에 가져가려고 하자 이딜로스가 다급히 말했다.

“이미 먹어 봤잖아.”

“……내가? 이딜로스를?”

멈칫한 나는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이딜로스를 먹어 본 기억은 내 머릿속에 없는데?

내가 언제 먹어 봤냐는 물음을 눈빛으로 보냈다.

이딜로스는 어째선지 시선을 피하더니 곤란한 낯을 했다. 그의 귀가 조금씩 붉어지는 것 같아 나는 어리둥절했다.

“지난번에, 눈밭에서.”

머뭇거림 끝에 대답한 이딜로스의 목소리는 소심했다.

‘아, 그 이상했던 뽀뽀.’

이딜로스의 반응을 보니 그걸 떠올리는 것만으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걸 먹은 걸로 칠 수 있는 거야? 뽀뽀는 잡아먹는 게 아니라던데.”

“……입에 들어가면 다 먹은 거지.”

이딜로스의 말이 일리가 있었다. 디저트나 음식은 혀만 닿아도 맛을 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딜로스의 말대로라면…….

나는 심각한 눈으로 그를 내려다봤다.

“별로 맛은 없었는데……. 왜지? 이딜로스는 먹음직하게 생겼는데.”

“…….”

“아, 그렇지만 기분은 좋았어. 말랑하고, 따뜻하고, 몽롱해서 또 먹어 보고 싶을 정도로 느낌이 좋…….”

이딜로스가 내 입을 막았다. 처음 보는 표정을 짓는 이딜로스의 눈빛에는 수치스러움이 한가득 묻어났다.

“그걸 꼭 말해야 해? 그리고 넌 그때 말고도 날 먹어 본 적이 있잖아.”

이딜로스가 내 입을 막고 있어 나는 눈으로 물었다. 이번엔 또 언제?

“고양이 때. 내 손에 묻은 케이크 크림을 네가 핥아 먹었으면서.”

이야기하는 이딜로스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듣고 보니 생각이 났다.

마멜라와 이딜로스, 고양이인 나까지. 셋이서 함께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때가 아니던가.

그때 분명 이딜로스의 반응을 좀 더 보고 싶어서 일부러 입에 넣고 핥기까지 했던 것 같은데.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그걸 먹었다고 치는 건 좀……. 이딜로스는 살짝 핥은 것까지 먹었다고 칠 정도로 순수한 편인 건가?

나처럼 기억 회상을 마친 건지 이딜로스가 나를 원망스레 노려봤다.

“생각해 보니 너 그때 내가 얼마나 겁에 질렸었는지 알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조금 찔리는 게 있어 나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제 처지를 잊은 건지 이딜로스가 분한 눈빛으로 나를 쏘아봤다. 새침해서 귀엽기만 했다.

이딜로스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때도 케이크 맛 말고는 맛이 없었을 텐데.”

“그랬지…….”

“이미 맛본 적 있고, 맛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으니 나를 먹…… 그럴 필요는 없지 않나? 이제 그만 내려와.”

나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역시 잡아먹고 싶은 마음과는 조금 다른 걸까.

확실히 이딜로스를 먹어서 없애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아. 아니, 이딜로스가 없어지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그럼…… 대체 이 감정은 뭐지?

붙잡아 누르고 있던 그의 손을 놓았다. 하지만 나는 물러나지 않고, 더 가까이 다가갔다.

이제는 손이 자유로워진 그가 당혹스러운 눈으로 소파의 팔걸이까지 물러났다.

“마음 바뀐 거 아니었어? 설마, 한 번 더 먹어 보겠다는 건 아니겠지?”

“맞아. 역시 한 번 더 먹어 볼래. 그러면 알게 될 것 같아.”

“뭐?”

그의 눈에 경악이 서렸다. 내가 붙잡아 물어 버릴 수 없도록 손을 뒤로 숨기기까지 했다.

표정에 그렇게까지 티는 나지 않지만, 평소엔 하지 않을 행동을 보니 상당히 겁을 먹은 것 같았다.

나는 햄스터가 허둥대는 듯한 이딜로스의 귀여운 행동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놀리듯이 말했다.

“바보.”

이딜로스의 양 뺨을 붙잡았다.

정말로 바보같이. 내가 노리던 곳은 이렇게 무방비하게 내놓기나 하고.

‘난 네가 내 앞에서만 보이는 그 실수가 좋아.’

눈을 감자 머리칼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이딜로스의 맛없는 입술 위로 입을 꾹 내리눌렀다.

잠깐 동안 힘차게 포개어졌다가 떨어지는 입술에서 쪽 소리가 났다.

이딜로스는 어쩐지 이 상황을 피하고 싶은 것처럼 입을 굳세게 다물고 있었다. 나는 그를 내려다보다가 이마를 맞대며 말했다.

“이딜로스…… 지난번처럼 해 주면 안 돼?”

“…….”

“응?”

이딜로스의 눈빛이 점차 굳어졌다. 나는 그가 화낼까 봐 애써 간절한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이 통한 건지, 이딜로스가 감추고 있던 손을 꺼내어 내게 뻗었다.

지난번처럼 내 뺨을 감싸 줄지. 아니면 내 손을 가져가 깍지를 껴 줄지. 그것도 아니라면 턱을 살짝 눌러 입을 벌리게 해 줄지.

두근거리는 심정으로 그의 손이 향하는 곳을 바라봤다.

그러나, 그의 손은 그대로 내 어깨를 밀어냈다. 맞대고 있던 이마가 자연히 떨어졌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눈을 동그랗게 뜬 순간, 이딜로스는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

“뭐? 왜 안 돼?”

실망감을 담아 그를 바라봤다.

그런데 내 물음이 나도 모르는 안 좋은 의미를 담고 있기라도 했던 건지, 이딜로스의 표정이 점차 찌푸려졌다. 그의 구겨진 눈가가 나를 원망이라도 하듯 바라봤다.

나는 조금 당황스러워 붙잡고 있던 그의 얼굴을 살짝 놓았다.

“왜 그래?”

“앞으로 멋대로 입 맞추지 마.”

“그렇지만, 너한테는 해도 된다고 네가…….”

“이젠 나한테도 안 돼.”

“이딜로스……?”

“떨어져.”

그가 명했지만, 나는 옴짝달싹도 하지 못했다.

아까부터 이상했다. 이딜로스가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바라보는 걸까. 내가 아까 정말로 말실수를 한 건가?

확인하기 위해 입을 떼려는 순간이었다.

문밖에서 황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딜로스를 깔고 올라타 있던 자세를 바꾸지도 못하고, 문이 벌컥 열렸다.

“전하, 큰일입니다! 방금 편지가 도착했는데……!”

예의도 모르고 문을 열어젖힌 안셀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소파에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안셀이 입을 벌렸다.

“무슨…….”

곧이어 안셀은 충격받은 얼굴로 소파로 달려왔다. 정확히는, 달려들었다.

“아릴 님! 괜찮으십니까!”

안셀이 나를 서둘러 이딜로스에게서 떨어트렸다.

나를 등 뒤에 감추고 선 안셀이 짐승을 보는 눈으로 이딜로스를 노려봤다.

달달 떨리는 입을 꾹 다물고 있던 안셀이 울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 파렴치한! 우리 아릴 님께 무슨 짓을 하려던 겁니까? 아릴 님을 덮치다니, 어떻게……!”

“……덮쳐진 건 나라는 걸 딱 보면 모르나?”

이딜로스가 성가시게 안셀을 흘겨보곤 소파에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손으로 흐트러진 옷을 정리한 그가 나를 흘기듯 바라봤다.

나는 아직 이딜로스가 왜 저러는지를 몰라 묻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그는 나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편지가 어쨌다는 거지.”

“말 돌리지 마십시오. 저는 일단 이 일부터…….”

“안셀, 잘리고 싶나.”

이딜로스의 이유 모를 분노가 뒤섞인 눈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안셀도 그의 이상함을 느낀 건지 입을 다물었다.

이딜로스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더니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본론만 말해.”

“아, 예……. 황후 폐하께서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배달부의 말로는 곧 황궁에서 겨울 연회가 열린다고 합니다…….”

그사이 이딜로스가 옆에 놓인 소파를 눈짓해 안셀이 착석했다. 얼떨결에 나도 안셀의 옆에 함께 앉게 되었다.

이딜로스는 편지를 잘 고정한 붉은 왁스를 보더니 비웃었다.

“설마 지난번에 갔다고 이번에도 올 거라 여기는 건가?”

이딜로스가 안셀에게 뜯지도 않은 편지를 다시 내밀었다.

“황제 폐하께서는 연회에 도통 참여하질 않으시지. 내게 조무래기들을 보내 놓고서 당당히 모습을 내보이신다면 나도 기꺼이 참여할 텐데.”

그럴 일은 없지 않나. 이딜로스가 싸늘하게 웃었다.

나는 이딜로스의 얼굴을 살피곤 살짝 주먹을 쥐었다.

그때,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에 습격당한 일이 떠올랐다. 황제를 마주칠 수만 있다면, 주먹을 날려 주고 싶었다.

옆에 있던 안셀이 이딜로스가 건넨 편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내저었다.

“배달부가 편지를 열어 보지 않으면 후회할 거라는 황후 폐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꼭 열어 보시라는 당부인 듯합니다.”

“후회? 내가?”

이딜로스가 코웃음을 쳤다. 곧, 그는 어울려 주긴 하겠다는 듯 편지를 뜯었다.

편지를 꺼내어 읽기 시작하는 이딜로스의 표정에선 점차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 표정 변화의 이유가 궁금해지던 차에, 이딜로스가 편지를 내렸다.

궁금한 건 나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딜로스의 심각한 분위기에 덩달아 긴장한 표정을 짓던 안셀이 조심히 물었다.

“어떤 내용이기에 그러십니까?”

“이번에도 날 연회에 초대하셨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습니다만, 이번엔 가지 않으실 테니 제가 미리 회신을…….”

“나만 초대된 게 아니야.”

이딜로스의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황제를 주먹으로 때리는 상상을 멈췄다.

그가 골칫거리에 맞닥뜨린 듯한 눈으로 말했다.

“내 약혼녀도 함께 오라는군.”

“아니…… 고귀하신 아릴 님을 오라 마라 했단 말입니까? 가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아릴 님!”

안셀의 극구 반대의 말에 이딜로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뭔가 풀리지 않는 게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유감스럽게도 사실이었다.

“황후 폐하께서 친히 언급하시더군. 마멜라의 입학을.”

“……예?”

“그리 쓰여 있더구나. 마멜라가 크로델 왕립 학교에 입학할 것이 무척 기대된다고. 한데 오라비인 내가 약혼녀와 함께 초대받은 겨울 연회에 불참한다면 실망할 것 같다고 말이지.”

이딜로스의 손에서 편지가 무참히 구겨졌다.

싸늘하게 식은 눈과 대비되게 이딜로스가 입매를 비틀어 매섭게 웃었다.

“망할 여자 같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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