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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104화 (94/191)

104화

충동적으로 아릴의 머리를 감싸 끌어내렸던 이딜로스는 자신의 행동에 후회를 느낄 틈조차 없었다.

숨조차 황홀한 입술을 머금은 채, 그는 눈밭을 굴러 위치를 뒤집었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아릴이 당황해 소리를 흘렸다.

순식간에 위를 점하게 된 이딜로스는 눈밭에 쓰러진 아릴의 손을 찾았다. 이대로 영영 놓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깍지를 껴 단단히 붙잡으며 입술을 머금었다.

충동이란 역시 무서운 것이었다. 그러나 본능은 그보다 더 무서웠다.

이미 충동에 져 버린 일, 조금 더 욕심껏 굴자는 마음이 이성을 삼켰다.

이딜로스는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아릴의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빼내고, 그 손으로 그녀의 턱을 지그시 눌렀다.

저항 없이 입술이 벌어졌을 때, 포개어진 온기는 더 깊게 뒤섞였다.

눈밭에 파묻혀 있다는 사실이 무색하게 와 닿는 모든 것이 뜨거웠다. 눈마저 녹일 듯한 온기를 나누며 달뜬 숨을 내쉬었다.

그와 깍지 낀 아릴의 손에 의지하듯 점차 힘이 실렸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저항조차 하지 않는 건지. 몹쓸 짓을 하는 이딜로스의 양심이 괴로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놓을 수가 없었다.

모든 사고를 마비시키는 감정이 이미 그의 가슴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걸 도무지 제어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아릴…….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너로 내 욕심을 채우고 싶어.’

그 얄팍한 생각이 그를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맞물린 입술을 마침내 떨어트렸다. 평소보다 젖은 마찰음이 울리고 입김이 흩어졌다.

심장이 어지럽게 뛰었다.

이딜로스는 지난번처럼 아릴의 입술에 남은 물기를 닦아 주지 못했다. 그대로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이딜로스?”

아릴의 가슴과 어깨가 가쁘게 오르내렸다.

이딜로스는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좋아해. 버거울 정도로. 숨이 막힐 정도로.

하지만 그 말을 입에 담는 순간. 그녀 역시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할 걸 안다. 그래서 말할 수가 없는 거였다.

그녀가 정의하는 좋아함과 자신이 말하는 좋아함은 명백히 다를 테니까.

이딜로스는 떨리는 숨을 내뱉으며 중얼거렸다.

“……넌 지금 내가 어떤 기분을 느끼는지 모를 거야.”

그의 말대로 이딜로스의 심정을 알지도, 방금 한 말을 이해하지도 못한 아릴은 의아함을 가졌다.

잠시 후 이딜로스가 그녀의 위에서 비켜섰다. 그는 쓰디쓴 속과 달리, 여트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서 돌아가자. 춥잖아.”

조금 전의 입맞춤으로 춥기는커녕 더워지기만 했다. 그건 아릴도 마찬가지였으나 그녀는 잠자코 이딜로스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이번에는 넘어지지 않게, 아릴은 이딜로스의 손을 꼭 잡았다.

* * *

“아펠리아 아가씨. 아가씨의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어요.”

베로니가 전해 준 편지의 발신인을 본 나는 화색이 되었다. 마멜라로부터 도착한 편지였다.

베로니가 방을 나가자 페이퍼 나이프를 찾을 틈도 없이 편지를 손으로 그냥 북 찢었다.

처참하게 뜯긴 봉투 속, 연분홍색 편지지가 보였다.

‘마멜라 냄새가 나!’

나는 편지지를 잡아 킁킁 냄새를 맡았다. 반가운 마음과 함께 울컥 마멜라가 보고 싶은 마음이 치밀었다. 서둘러 편지를 펼쳤다.

[아릴, 잘 지내?

나는 벌써 기숙사에 적응해서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고 있어.

우리 가문이 이렇게까지 유명한 줄은 몰랐는데, 다들 나한테 관심이 많더라고. 그래도 난 친구를 가려서 사귈 줄 아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마멜라의 걱정을 많이 했던 나는 그녀의 안부에 안도할 수 있었다. 마멜라의 성격이 이딜로스와는 달리 활발하고 착해서, 친구를 사귀는 데 어려움이 없는 듯했다.

나는 마멜라의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를 읽다가 멈췄다.

[네가 나한테 물어본 거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

내가 보기엔 아무래도 네가 오라버니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아. 시도 때도 없이 생각나고 두근거린다면 그건 아마 좋아하는 마음일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좋아하는 마음이라니.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내 가족인 마멜라와 이딜로스였다.

나는 이러한 당연한 사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었다. 이딜로스에게만 어째서 좀 더 각별한 마음을 느끼는 것인지가 궁금한 거였다.

나는 마멜라의 악필을 연이어 읽어 갔다.

[이렇게 말해도 아마 넌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겠지.

언제 한번 내 책장에 있는 책을 꺼내어서 읽어 보기를 바라. 역사서는 말고!

네가 읽기 싫어했던 그 책이 아마 너한테 그 마음이 어떤 건지 설명해 줄 거야. 아마 읽어 보면 깜짝 놀랄걸. 네가 느끼는 그 감정과 책 속에서 서술되는 그 마음이 너무나 같아서.]

……마멜라의 책을 읽으면 내 마음이 뭔지 알 수 있다고?

나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책이 빼곡한 마멜라의 책장을 바라봤다.

“……말도 안 돼.”

충격 어린 말을 중얼거리며 책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마멜라의 말대로, 그녀의 책은 내가 느끼는 감정을 아주 비슷하고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이건 말도 안 되었다. 혼란과 불안, 막막함이 연이어 휘몰아쳤다.

나는 바보처럼 벌리고 있던 입을 세게 다물며 울먹거렸다.

‘내가 이딜로스를 먹이로 생각하는 거였다니…….’

생각만으로 진저리 친 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난 이딜로스를 가족으로 생각해. 먹이로 보지 않는다고!

나는 몇 시간을 들여 열심히 읽고 있던 『포식자의 관계』라는 책을 내던지며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무리 내가 짐승이라지만, 나는 이딜로스를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가끔 이딜로스를 마구 깨물어 흔적을 남기고 싶을 때가 있지 않던가.

그렇다면…… 지난번에 이딜로스의 부모님을 뵙고 눈밭에서 입을 맞췄을 때도, 그렇게나 위험한 충동이 들던 게 다 이딜로스를 먹이로 여겨서 그랬던 건가?

처음엔 갑작스레 입 안을 침범하는 이딜로스의 행동에 놀랐었다.

그러나 뒤이어 마음이 헤집어질수록, 정신이 몽롱하게 풀려 감히 입에 올리기도 힘든 충동이 들끓고 있었다.

그게 실은 이딜로스를 먹이로 생각해 잡아먹고 싶은 마음이었던 거라니.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그대로 소파의 끄트머리를 붙잡고 바닥으로 주르륵 미끄러졌다.

머리가 혼란스러워져 머리카락을 양손 가득 쥐고 끙끙 앓았다.

그로부터 몇 시간의 고뇌를 거친 나는 비장하게 일어섰다. 뒤죽박죽 어지러운 정신머리로 이딜로스를 찾으러 나섰다.

‘만나 보면 이게 정말인지 아닌지 확인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확인이 필요해.’

걸음을 바쁘게 놀린 나는 이제 내 방보다도 익숙한 이딜로스의 집무실 앞에 다다랐다.

나는 마주하게 될 무서운 진실을 앞두고 머뭇거렸다.

지난번 그의 부모님 묘를 찾아갔을 때 이후로는 처음 만나는 거였다.

그날부로 이딜로스는 바쁘기라도 한 건지 식사도 함께하질 않고 집무실 내부의 작은 식탁에서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노크하면 나인 줄은 어떻게 알고 바쁘다며 계속 돌려보내기까지 했지.

내게 이딜로스는 눈을 감기만 해도 보고 싶은 존재였지만, 바쁜 그를 위해 꾹 참았다.

그런데 지금 이대로라면 이딜로스가 너무 먹고 싶어서 눈앞에 아른거렸다는 게 되고 말지 않나.

‘그걸 부정하기 위해서라도 꼭 이딜로스를 만나 봐야 해.’

나는 집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바쁜 그가 나를 또 보지도 않고 돌려보낼까 봐 서둘러 말했다.

“이딜로스. 들어가도 돼? 나 꼭 널 봐야 해.”

간절함을 담아 말하였더니 통한 걸까. 잠시 후 이딜로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들어와.”

나는 긴장하며 문을 열었다.

이딜로스는 평소처럼 책상이 아닌, 응접용 소파에 앉아 차를 들고 있었다.

그의 위에 매달린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이 이딜로스의 머리칼을 화사한 금빛으로 색색이 물들이고 있었다.

‘다행히 잠시 쉬고 있었나 봐.’

긴장을 머금은 채 그에게 다가가자 이딜로스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그런데 그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절망을 맞고 말았다.

그 책에서 장황히 서술되어 있던, 포식자가 먹음직스러운 먹잇감을 눈앞에 두었을 때 느껴지는 흥분감…….

큰일이었다.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한 것이다.

마음이 간질거리며 설렘을 몰고 왔다. 고작 시선이 마주쳤다는 것만으로.

확실시되는 충격에 다가서던 걸음을 우뚝 멈췄다.

이딜로스는 가만히 멈춰 서 있는 나를 의문스러운 눈으로 보다가, 이내 단호히 시선을 찻잔으로 내리며 말했다.

“다시 일하려던 참이니 심심해서 찾아온 거라면 돌아가.”

여느 때보다도 매몰차게 나를 돌려보내고 싶어 하는 투였지만 나는 그 말의 내용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오직 잔잔하게 듣기 좋은 목소리가 마음을 뒤흔드는 느낌에만 신경이 쏠렸다.

“……아릴?”

이딜로스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먹이를 노리는 포식자의 걸음걸이가 아닌, 그저 물먹은 솜 같은 묵직한 걸음이었다.

“아릴, 무슨 일이야.”

그의 옆에서 걸음을 멈췄을 때, 고개를 든 나는 울먹거리고 있었다.

이딜로스의 낯이 어느새 심각하게 뒤바뀌어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겁이 나는 심정을 꾹 참으며 말했다.

“나 큰일 났어.”

“왜 그래. 무슨 일인지 말해 봐.”

“…….”

“아니. 그전에 우선 여기 앉아서…….”

나는 그대로 이딜로스에게 달려들었다. 늘 차분하던 이딜로스의 눈이 커지는 게 보였다.

순식간에 널따란 소파 위로 이딜로스를 깔고 앉은 나는 울먹이며 그를 내려다봤다.

이딜로스는 잠시 당황한 듯했으나, 눈물을 뚝뚝 떨구는 나를 밀어내지 않고 재차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왜 그래, 응?”

“흑…….”

나는 본능에 착실하게 이딜로스의 손목을 붙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누르며 말했다.

“나…… 아무래도 널 잡아먹고 싶은 건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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