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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80화 (70/191)

80화

“입에서 녹아, 신기해…….”

아펠리아는 아이스크림 한 스푼을 입에 떠 넣고는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의 맛이 혀에 퍼지자 안달이 나 얼른 다시 한 스푼을 떴다.

마멜라는 초코 시럽이 잔뜩 올라간 파르페를 먹으며 웃었다.

“언니, 앞으로도 종종 올까요?”

“응, 돌아서면 또 먹고 싶을 것 같아.”

마멜라는 앞으로도 셋이서 밖에 나오자는 은근한 말을 뿌린 거였지만, 정작 이딜로스의 신경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는 파르페를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심기 불편하게 옆을 바라봤다.

참다못한 그가 말했다.

“마멜라, 꼭 이런 탁 트인 곳에 앉아야 했어?”

“이 자리가 좋잖아요, 바깥도 다 보이고.”

마멜라는 고개를 갸웃했다. 바로 옆에 뻥 뚫린 기다란 창문이 활짝 열려 있어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와 좋기만 했다.

그러나 이딜로스는 바깥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리는 것을 보곤 당장 점원에게 저 창문을 걸어 잠그고 커튼까지 치라고 하고 싶었다.

정확히는 이쪽이 아닌, 아펠리아 로제트에게 쏠리는 시선이 거슬려서 말이다.

신경 쓰이는 건 저 창밖뿐 아니라 가게 안도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그의 맞은편에 앉은 아펠리아를 흘끔대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러나 아펠리아도 그렇고 마멜라 또한 그런 시선에 관심도 없어 보였다.

이딜로스는 속이 타는 듯한 기분에 파르페를 크게 떠서 입에 넣어 버렸다. 차가운 게 들어오니 열이 제법 식을 법도 한데 그러기는커녕 머리가 띵해지기만 했다.

‘모자라도 쓰고 있을 것이지.’

아펠리아가 갑갑하다며 자리에 앉자마자 벗어 둔 챙 모자를 바라봤다. 안 그래도 눈에 띄는 외양에 미모인데.

그녀에게로 시선이 몰리는 것이 왜 이리 짜증이 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런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고 있는 거지.’

문득 드는 기가 찬 의문에 그는 신경을 끄기 위해 스푼만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 그를 발견한 아펠리아가 웃으며 물었다.

“공작님, 파르페가 입에 맞으신가 봐요.”

아펠리아의 뜬금없는 말에 줄곧 그녀에게 찰싹 붙어 조잘대던 마멜라도 고개를 들었다. 그러곤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이네! 분명 아까까지만 해도 오라버니 거는 손도 안 댄 상태였는데. 오라버니, 언제 다 먹은 거예요? 역시 오라버니도 파르페가 맛있는 거죠?”

“응…….”

이딜로스는 불편한 심정임에도 여동생에게 착실하게 대답해 주었다.

그 뒤로 대화를 하다가 녹아서 조금 남은 파르페를 두고, 그들은 식사를 위해 유명 콘 수프 가게에 갔다.

이번에 그들은 이딜로스의 고집스러운 의견을 반영해 2층의 구석진 자리에 앉게 되었다.

이딜로스는 주문한 메뉴를 기다리며 까르르 수다를 떠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는 대화에 끼어들 생각이 없어 간간이 고개만 끄덕이는 반면 여동생은 무척 신난 것 같았다.

“언니, 그래서 말이에요! 제가 콘 수프를 처음 먹어 봤던 곳이 이 가게였는데……. 아! 그게 무려 3년 전이었어요.”

그는 볼까지 상기시킨 채 아펠리아와 웃음꽃을 피우는 마멜라를 바라봤다.

들뜬 여동생을 보니 만감이 교차하는 기분이 들었다.

‘……기뻐 보이네.’

마멜라가 평소보다 밝아서 그의 기분도 좋아지는 한편, 이렇게까지 기뻐하는데 왜 친구 한 명 붙여 주지 못했을까 하는 죄책감이 찾아왔다.

여동생의 웃음은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

“오라버니, 왜요? 저 뭐 묻었어요?”

한참을 바라보았더니 시선을 느낀 마멜라가 웃음을 띤 채 고개를 돌렸다.

이딜로스는 안도와 비례하는 깊은 죄책감에 차마 웃지 못하고 대답했다.

“……아니.”

마멜라는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주문했던 메뉴가 나오자 환희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사이 이딜로스의 시선은 맞은편의 아펠리아에게로 옮겨 갔다.

어쩌면 이 여자라면…….

이딜로스는 쓰게 웃으며 뚝 떨어진 식욕으로 둥그런 빠네에 담긴 고소한 콘 수프를 바라보았다.

그런 이딜로스의 변화를 눈치챈 것은 찰나에 그와 눈이 마주친 아펠리아였다.

어째선지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쓸쓸하게 시선을 떨구는 이딜로스를 보자 의문이 차올랐다.

‘어디가 안 좋기라도 한 건가?’

그가 조금 침울해 보이자 아펠리아의 마음도 덩달아 좋지 못해졌다.

아펠리아는 무릎 위에 있던 제 손을 만지작댔다.

‘지금 난 이렇게 손이 있는데…….’

테이블 위에 우두커니 올려 둔 그의 손을 붙잡고 싶은 마음이 들었음에도 잡지를 못했다.

이럴 때면 다시 고양이일 때가 그리워졌다. 만약 지금 고양이였다면, 이딜로스의 입가에 야트막한 웃음 정도는 피워 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펠리아는 그가 제 시선을 눈치채기 전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나는 콘 수프로 눈길을 돌렸다.

파슬리를 뿌리고 치즈와 마카로니를 넣어 꾸덕해진 콘 수프는 낯선 점도에 부드러운 풍미가 더해져 가히 행복한 식사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펠리아는 식사를 하는 내내 가라앉은 낯의 이딜로스가 걸렸다.

‘많이 피로해서 그런 걸까…….’

혹시 모르니 식사가 끝나면 돌아가자고 하자.

아펠리아는 돌아가 고양이가 되면 그에게 기운을 밀어 넣어 피로를 조금이나마 풀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비록 상대방의 호감을 사는 방법, 그 세 가지를 제대로 수행해 보지 못하는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말이다.

만족스러운 듯 그렇지 못한 식사를 마치고 나오자 아펠리아는 입을 열었다.

“저기, 우리 이제…….”

“오페라 보러 가요!”

아펠리아의 말을 중간에서 끊어 버린 마멜라가 자연스레 말을 덧붙였다. 아펠리아는 그 천연함에 입을 살짝 벌렸다.

그녀는 이딜로스의 표정을 살짝 살폈다. 그러나 좁아지리라 생각했던 그의 눈가는 어째선지 아까보다 풀리고 있었다.

이딜로스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래, 가자.”

사실 이딜로스가 아무런 반응도 없었더라면, 아펠리아는 마멜라에게 조금 지쳤다는 핑계로 돌아가자고 할 셈이었다. 그런데 이딜로스가 곧바로 대답하는 바람에 핑계고 뭐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마침 오페라 하우스는 조금만 이동하면 나오는 거리에 있었다.

아펠리아는 웅장한 오페라 하우스의 건물을 앞두고 걸음을 멈췄다.

오페라는 일전에 안셀이 가져다준 잡지를 통해 알게 되었다. 그걸 보며 꿈에 부푼 아펠리아가 오페라라는 걸 실제로 관람해 보고 싶다고 마멜라에게 말한 적이 있기는 했다. 그러니 이건 마멜라의 배려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아펠리아는 이딜로스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그 탓에 기대하던 오페라 하우스를 눈앞에 두고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오히려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상 현상이 일어났다.

“아릴?”

마멜라가 멍하니 걸음을 멈춘 그녀의 다른 이름을 목소리를 낮춰 불렀다.

이딜로스는 벌써 저 앞으로 가 매표소에서 티켓을 끊고 있었다.

아펠리아는 결국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마멜라, 나 안 되겠어. 우리 그냥…….”

“아니, 이게 무슨 우연입니까!”

그녀가 마음먹고 말을 꺼낸 순간에, 어디선가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펠리아는 아연한 눈으로 갑작스레 등장한 안셀을 바라봤다.

“너 왜 여기…….”

“안셀 로제트, 네가 왜 여기 있지?”

아펠리아가 하고픈 말을, 어느새 안셀을 발견하고 다가온 이딜로스가 대신해 주었다.

입 아플 수고를 덜었는데, 오늘만 해도 말이 여러 번 가로막힌 아펠리아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안셀은 이딜로스의 차가운 눈을 마주 보며 뒷덜미를 문질렀다. 저 입에서 곧 잘리고 싶냐는 말이 튀어나올 걸 예상하며 그는 서글서글 웃었다.

“우연히 지나치다 제 조카가 보이기에 들렀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여길 지나칠 이유가 뭐냐고. 넌 지금쯤 집무실에 앉아 내가 맡기고 간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어야 할 텐데.”

아펠리아는 이딜로스에게 눈을 흘겼다.

저 인간이 어떻게 온종일 일을 안 하고 배길 수 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일을 떠넘기고 온 거였다. 그가 못 하면 남이라도 해야 한다는 심보인 걸까.

아펠리아는 유능해서 탈인 안셀이 조금 불쌍해지려 했다.

안셀이 대답했다.

“전하께서 맡기신 서류 중, 엘 리오스트 지점에 위치한 루나뜨로트의 납품록에 조금 오류가 있는 듯해 확인하고자 방문한 것입니다.”

이딜로스의 눈썹이 비딱하게 올라갔다.

그가 의심스러운 눈길로 뭔가를 캐물으려는 듯 입을 떼자마자, 마멜라가 큰 소리로 말했다.

“루나뜨? 안셀, 루나뜨에 가던 길이야?”

“예, 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케이크가 당겼는데! 아까 파르페를 먹고 나니 루나뜨의 디저트가 훨씬 훌륭하다는 걸 알아차렸지 뭐야.”

나도 같이 가, 안셀!

뒤이은 마멜라의 목소리에 아펠리아도, 이딜로스도 바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아펠리아의 시선이 이딜로스의 손에 들린 표에 닿았다.

‘……이미 끊은 티켓은 어쩌고?’

우연하게도 두 사람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그 생각에 친절하게 대답이라도 하듯 마멜라가 말했다.

“아, 이미 표를 끊으셨네요. 그러고 보니 아펠리아 언니가 오페라를 무척 보고 싶어 했는데…….”

아펠리아는 갑작스레 제 이름이 호명되자 당혹감에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난…….”

괜찮아, 라는 말이 그녀의 입에서 떨어지기도 전에 마멜라가 해맑게 웃으며 폭탄을 안겨 주었다.

“안셀은 바쁘고, 전 케이크를 지금 당장 먹어야겠고……. 아, 오라버니가 언니랑 함께 오페라를 보면 되겠어요! 그렇죠?”

아펠리아는 한순간 경악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들떠 말하는 마멜라의 옆에서 안셀은 어정쩡하게 손을 들어 올린 채 아펠리아에게 눈을 찡긋대고 있었다.

그 손은 모로 보나 뒤로 보나 꿋꿋하게 치켜든 엄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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