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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67화 (57/191)

67화

“어머, 너무 아름다워요……. 신화 속의 수인은 늘 아름답다 묘사되었는데 정말이었네요.”

내게 옷을 입혀 주다 말고 요나는 연신 감탄을 터트렸다. 마멜라도 열정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 뒤에 서서 조잘거렸다.

“수인이 실제로 있다니 정말 꿈만 같아. 오라버니가 그런 건 다 미신이라고 해서 나도 그렇구나 했지만 실은 내심 믿고 있었거든. 애초에 운명도 없다고 하는 오라버니의 말을 믿는 게 아니었어.”

“가주님은 정말 특이하세요. 신전에 후원을 그렇게나 많이 하면서도 늘 신은 없다고 주장을…….”

말끝을 흐린 요나가 나를 보더니 헛기침했다. 마멜라가 웃음을 터트리며 내 머리를 만지작댔다.

“오라버니는 눈으로 보는 것만 믿는다니까?”

잠자코 앉아서 두 사람의 대화를 듣던 나는 참지 못하고 등을 돌렸다. 마멜라의 손에서 예쁘게 땋아지고 있던 새하얀 머리칼이 쏙 빠져나갔다. 마멜라가 아쉬운 탄식을 흘렸다.

나는 눈썹을 축 내린 채 물었다.

“그럼 역시 내가 아릴이라고 말해도 이딜로스는 믿지 못하겠지……?”

마멜라는 조금 머뭇대다가 대답했다.

“응, 아무래도……. 눈앞에서 아릴이 네가 고양이가 된다면 몰라도…… 다시 고양이가 되는 법은 모른다고 했지?”

“……응.”

머릿속에서 이딜로스에게 내가 너네 집 고양이 아릴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상상해 봤다. 애초에 내 말은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던 그였지만 만약 내가 하는 말을 들어준다고 해도…….

<그럼 한번 변해 봐.>

싸늘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눈초리가 떠올랐다. 아마 눈빛과 목소리는 내 헛소리에 어울려 줄 시간이 아깝다는 티를 팍팍 내고 있겠지.

하지만 나는 고양이로 변하는 방법 따위 알지 못하니 이딜로스에게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이딜로스의 성격을 떠올려 보라. 그가 어디 나를 친절하게 기다려 줄 인간이던가.

내가 고양이 아릴일 때면 몰라도 적어도 인간 모습인 내게 이딜로스의 친절을 바라는 건 바보짓이었다.

이딜로스는 나를 곧장 경비대에 넘겨 가둘 테고, 그대로 나를 물고문…….

“끔찍해…….”

나는 요나가 입혀 준 레이스 달린 보들보들한 네글리제를 내려다봤다.

내가 고양이인 채로 말할 수만 있다면 좋을 텐데. 아니, 그렇다면 이딜로스가 무서워할까.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자 여전히 낯선 인간의 모습이 보였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칼, 바다처럼 푸른 눈, 서늘하게 올라간 듯하면서도 어쩐지 유순한 눈매, 생기가 감도는 입술까지.

한없이 아름답지만 이딜로스의 눈에는 그저 무단 침입자로밖에 보이지 않는 거겠지.

어깨를 토닥이는 마멜라의 손길이 느껴졌다.

“아릴, 걱정하지 마. 너한테 무슨 일이 생기지 않게 내가 지켜 줄게.”

“고마워…….”

마멜라가 듬직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몸을 틀어 뒤에 서 있던 마멜라를 다시금 와락 끌어안았다.

아까완 달리 마멜라가 서 있어서인지 이번엔 마멜라가 나보다 더 컸다.

익숙하게 마멜라에게 머리를 마구 문질렀다. 마멜라가 까르르 웃었다.

“아릴이가 나보다 훨씬 언니 같은데 이러니까 이상해!”

“언니?”

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슐란의 말로는 나 이제 곧 한 살이랬어.”

마멜라가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외양적으로 봤을 때 언니 같다는 거야. 지금 아릴이는 인간 나이로 열여덟 살 정도로 보여.”

“내가 마멜라보다 여섯 살이나 많아 보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자 마멜라와 요나가 웃었다. 요나가 말했다.

“그래도 그 정도면 가주님보다는 다섯 살이나 어리신데요.”

“……이딜로스는 나이가 많구나. 그렇게 안 보이는데.”

“오라버니가 들으면 충격받겠어.”

나는 마멜라를 놓아주곤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고양이 발바닥이 그려진 내 밥그릇을 발견했다. 저걸 보니 갑작스레 울화가 치밀려고 했다.

“저기, 마멜라. 나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내가 먹는 그 사료 말인데…….”

그때 갑작스레 머리가 핑 돌았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어, 잠깐만, 잠깐만! 나 이 말은 꼭 해야 한단 말이야. 내가 비록 고양이지만 입맛은 인간 쪽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시야가 훅 낮아졌다.

마멜라가 눈을 깜빡이더니 발랄하게 말했다.

“어? 고양이다! 아릴, 드디어 고양이로 변했네. 축하해!”

“…….”

하나도 안 기쁘다.

씨, 말할 시간 그게 걸려 봤자 얼마나 걸린다고. 조금만 기다려 줄 것이지…….

조금 전 입고 있던 네글리제에 파묻혀 있던 나는 다시 작아진 몸뚱이로 화장대의 의자에서 폴짝 내려왔다.

젠장, 말을 마무리 짓지 못해서인지 기분이 구렸다. 사람은 말을 끝까지 할 줄 알아야 한다.

* * *

며칠 후 안셀이 찾아왔다. 나는 고양이의 모습으로 안셀을 맞이했다.

안셀은 내게 자연스레 손을 뻗다가 표정이 굳더니 재빠르게 손을 물렸다.

“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아옹.”

저 태도는 뭐란 말인가? 만지고 싶으면 만지던가!

나는 눈매를 좁히며 안셀에게 등을 내밀었다. 만지라는 신호였다. 그러나…….

“아, 아닙니다. 제가 어찌 감히 귀하신 분의 옥체에.”

“…….”

나는 코웃음 쳤다. 안 만질 거면 말던가.

자꾸 은근하게 아쉬운 눈빛을 보내기에 배려해 준 것인데 나중에 후회해도 내 알 바 아닌 거다.

나는 도도하게 꼬리를 살랑이며 마멜라의 곁으로 갔다. 다과를 가져온 요나가 테이블에 찻잔을 내려 두었다.

테이블에 자리를 잡은 안셀은 목을 가다듬고는 장대한 발표라도 하듯이 입을 열었다.

“제가 지난밤에 생각해 온 방법이 있습니다.”

“난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방안이 없던데…….”

“그전에 아릴 님도 대화에 참여하실 수 있도록 인간으로 변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나는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블 위에 마련된 쿠션에서 내려와 마멜라에게 다가가자, 그녀가 나를 번쩍 안아 요나에게 넘겼다.

안셀이 입을 떡 벌렸다.

“아, 아니, 좀 더 소중히 감싸듯이 안아 옮기시지 못하고…….”

“요나, 아릴이 옷 좀 부탁할게.”

안셀이 안절부절못하는 걸 신경도 쓰지 않은 마멜라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요나는 나를 안고 드레스 룸으로 들어갔다. 어제 입었던 실내복이 정중앙에 단정히 걸려 있는 것이 보였다.

“아릴 님, 그럼.”

요나가 나를 바닥에 내려 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이젠 제법 익숙하게 기운을 끌어냈다.

시야가 급격히 높아지고 부드러운 머리칼이 어깨에 내려앉는 것이 느껴졌다.

인간화를 하면서 잠시 감았던 눈을 떴다. 이제는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인간화를 하는 데는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요나는 멍하니 넋을 놓고 있다가 아차, 소리를 냈다. 요나가 네글리제를 들고 다가왔다.

실내복으로 갈아입은 나는 머리를 한 번 빗질하곤 드레스 룸을 나왔다. 내가 없는 사이 열띤 대화를 하고 있었던 건지 두 사람은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주고받고 있었다.

“나쁘진 않아. 그런데 아릴이한테 괜찮을까? 난 그게 좀 걸려……. 아릴이를 주웠던 우리 별장은 대신전 근처란 말이야…….”

“설마 그 말씀은 신전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속닥속닥하는 거야?”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내 앞에서 그렇게 대화해 봤자 다 들리는데……. 굳이 힘들여 그럴 필요 없다고 알려 주고 싶었다.

마멜라와 안셀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시선을 피했다.

“으응, 아니야. 어서 여기 앉아.”

“아, 제가 의자를 빼 드리겠습니다!”

안셀이 벌떡 일어나 내가 앉을 자리의 의자를 뺐다. 나는 안셀을 힐끔 바라보곤 그 자리에 앉았다.

요나가 내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졸졸 따라 줬다. 향긋한 허브 향이 올라오자 나는 반사적으로 코를 킁킁댔다.

“아릴 님, 안정을 도와주는 레피치오 차입니다.”

나는 찻잔을 한 번 바라보곤 요나를 바라봤다. 눈을 깜빡이다가 찻잔을 가리켰다.

“……나 마셔도 돼?”

“네, 당연한 말씀을요.”

요나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마멜라와 안셀도 내가 손을 뻗어 찻잔을 들어 올리는 걸 보고 있었다.

나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다 대곤 먼저 냄새를 천천히 음미하듯 맡았다. 펄펄 올라오는 따뜻한 김으로부터 고소하고 향긋한 향내가 올라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노곤해졌다.

찻잔을 기울여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따뜻하고 향긋해…….”

몸과 마음이 절로 녹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 반응에 세 사람 모두 안심이라도 하듯 화색을 띠었다.

나는 차를 홀짝이다가 미간을 찡그렸다. 여태 이 기분 좋은 걸 자기네들끼리만 마신 거지? 고양이는 입도 아니야?

아무도 모르게 불량스러운 표정을 짓다가 말했다.

“그런데 이딜로스의 집무실에서 늘 맡던 차 냄새랑은 다른 것 같아.”

“아, 전하께서 늘 마시셨던 건 홍차입니다.”

“홍차?”

이거랑 다른 건가?

나는 흰 찻잔에 담겨 찰랑이는 녹색의 물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이딜로스가 늘 마시던 건 붉은 빛이 도는 아주 예쁜 색이었던 것 같다.

마멜라가 웃으며 말했다.

“오라버니가 홍차를 맛있게 먹었나 봐. 아릴이 표정이 마셔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마셔 보고 싶은 건가?

딱히 맛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내게 홍차는 그냥 붉은 빛이 도는 뜨거운 물일 뿐이고, 맛은 아마 이거랑 비슷할 것 같았으니.

차에 대한 호기심과 식욕의 문제라기보다는 그저…… 이딜로스랑 같은 걸 마시고 싶다. 그뿐이었다.

“다음번엔 홍차로 준비해 드릴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요나가 미소 지으며 알겠다고 답했다. 따뜻한 차를 홀짝이고 있자 마멜라가 말했다.

“아릴, 오라버니한테 수인인 걸 알리고 싶지 않은 거지?”

마멜라가 상기시켜 준 현실에 나는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응. 내가 그 인간이었다는 걸 이딜로스가 알면 나까지 미워하게 될지도 몰라. 겨우 날 꺼리지 않게 되었는데…….”

“점점 인간으로 지내는 시간도 길어지고 있다고 했잖아. 그래서 방법이 있긴 한데…….”

마멜라가 조금 머뭇대다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조금 부담되는 방법일 수도 있어.”

“뭔데?”

마멜라는 안셀에게 눈짓했다. 안셀이 마멜라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차근차근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저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로제트 가의 삼남입니다. 둘째 형님이 가문을 이어 후작위를 계승하였고 첫째 형님은 형수님과 함께 멀리 떠나셨지요.”

“…….”

갑자기 자기소개는 왜 하는 거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다.

그러한 내 눈빛을 읽었는지 안셀이 허허 웃더니 말했다.

“이제부터 본론이니 조금 더 들어 주십시오. 저희 첫째 형님에 대한 소식은 로제트 일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바로 이걸 이용하자는 겁니다.”

“어떻게?”

“아릴 님을 저희 첫째 형님의 수양녀로 들이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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