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그 후로 여러 시도를 했으나 모두 무참히 실패하고 말았다. 결국 나는 시간이 지나길 기다린 끝에 다시금 고양이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아슐란을 다시 만나고 싶어……. 아슐란이라면 나를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이상하게도 그라면 내게 해결 방안을 제시해 줄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다시 한번 나를 찾아와 줬으면 좋겠다고 마음속으로 바란 것인데…….
“아릴, 사제님이 오셨대. 네게 줄 변비약을 가지고 오셨다지 뭐야.”
“…….”
바로 다음 날,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마멜라의 말을 멍하니 들었다.
그 인간, 뭐지……? 정말 귀신같게도 나를 찾아왔다.
‘아니, 근데 왜 하필 찾아온 게 변비약 때문인 건데?’
만나자마자 한 사발 욕이라도 물어다 주고 싶은 마음을 애써 참았다.
비록 괘씸해도 나한테 임시방편의 해결책을 제시해 준 고마운 인간이지 않은가.
나는 반가운 마음에 창가에서 폴짝 내려왔다. 정말 어떻게 이런 절묘한 순간에 나를 찾아올 수가 있을까!
“아옹!”
마멜라는 환호하는 내 반응을 보곤 웃으며 말했다.
“아릴이 너 사제님이 잘생겨서 좋아하는 거지? 네가 우리 오라버니도 좋아하는 걸 보면 아무래도 그래. 고양이 눈에도 잘생긴 건 똑같나 봐.”
“…….”
마멜라의 발상에 잠시 기가 막혔다. ……잘생겨? 아슐란이?
나는 아슐란의 얼굴을 곰곰이 떠올려 보았다. 음, 예쁘장하니 잘생겼긴 했던 거 같긴 한데…… 영 흐릿했다. 조금 심오한 인상이어서 그런 걸까, 얼굴이 그다지 확 떠오르지 않았다.
반면 이딜로스는 햇살답게 환한 얼굴이 아주 또렷하게 머릿속을 자리했다. 그의 모습을 떠올리자 묘하게 상기되는 기분에 나도 모르게 피식했다.
아…… 갑자기 이딜로스를 찾아가고 싶어지네.
이딜로스의 품에 늘어져 있으면 만족스러운 손길로 나를 만져 주는 데다가 시원하면서도 은은한, 잔잔한 파도 같은 냄새가 난다.
거기다 이딜로스의 체온은 마멜라나 안셀에 비해 상당히 서늘한 편인데도 그에게 안겨 있을 때는 이상할 정도로 온몸이 눅진해져서 녹아내릴 것 같았다.
‘……이딜로스가 보고 싶어.’
아슐란이 찾아온 건 정말로 절묘한 때가 맞구나. 만나고 싶긴 했지만 왜 꼭 지금이어야 할까 싶은…….
아니, 아니야. 지금 나에겐 이딜로스가 보고 싶은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지 않은가.
내가 인간화 조절을 못 해서 갑자기 이딜로스의 눈앞에서 인간이 되기라도 하면. 여태 나한테 엄청난 원한을 쌓아 온 이딜로스가 정말로 나에게 덤벼들지도 모르는데.
생각을 재정비한 나는 소파에 앉아 얌전히 아슐란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도 누군가 알리러 오거나 방문이 열릴 기미가 없었다.
“……사제님이 왜 안 오시지?”
“아옹…….”
“아까 분명 내가 마중까지 나갔거든? 그런데 옷 품에 넣어 둔 약이 갑자기 사라지셨다고 해서…… 마차에 흘린 것 같다며 먼저 올라가라시기에 올라온 거거든.”
“…….”
“안 되겠다, 아릴. 내가 한 번 내려가 볼게. 혹시 모르잖아. 마차에서 약까지 잃어버리시는 분인데…… 저택에서 길까지 잃으셨을지.”
마멜라의 표정에 한순간 못 미더움이 가득해졌다. 일어선 마멜라가 문고리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릴, 조금만 기다려.”
철컥, 문이 닫혔다.
‘……사실 아슐란 그 인간을 믿어선 안 되었던 건가?’
마멜라가 말한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아슐란에 대한 신뢰가 바닥까지 내려앉았다.
아니, 생각해 보면 그랬다. 그 인간이 나한테 인간화를 연습하면 도움이 될 것이라 했는데 다시 고양이가 될 수 없어 더 곤란해지기만 하지 않았던가.
‘믿을 수가 없어. 믿을 수가…….’
그때였다. 갑자기 눈앞에 파지직 소리를 내며 신비로운 빛 가루가 타오르더니 요동치는 빛 소용돌이 속에서 아슐란이 나타났다. 아슐란을 토해 낸 빛은 그대로 꺼져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나는 입을 떡 벌렸다.
“…….”
“아, 죄송합니다. 놀라셨습니까?”
내 얼굴을 본 아슐란이 곧바로 사과했다. 아니, 뭐야? 어떻게 한 거야……?
표정에 그 생각이 드러났던 것인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내게 그가 답변했다.
“신성력을 사용한 워프입니다. 아릴 님도 상태가 안정되신 후에는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아옹…….”
그런데 방금 마멜라가 널 찾으러 갔는데…….
“그렇군요. 일부러 공녀께서 나가실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
“……그런 눈으로 보시면 상처받습니다. 저도 아릴 님과 둘이 있기 위해 어쩔 방도가 없었습니다.”
나는 혀를 차며 불신스러운 마음을 대변하는 불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슐란이 어리둥절하게 웃더니 물었다.
“혹 인간화 연습이 잘 안되시는 겁니까?”
“아옹.”
“고양이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슐란은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했다.
“고양이로 변할 때, 어떻게 시도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음……. 나는 지난날의 기억을 돌이켜 보며 그간의 연습 방식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인간이 되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그 반대의 방법을 썼는데 고양이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그냥 막무가내로 엉덩이에 힘을 주고…….
내 말을 듣고 있던 아슐란이 불현듯 싱긋 웃더니 말했다.
“변비가 해결되었겠군요.”
“……아옹!!”
“어이쿠. 아픕니다.”
내가 앞발을 휘두르자 아슐란은 피할 생각도 없이 잠자코 맞았다. 그러곤 내뱉는 소리가 저 진심 없는 말이라니. 내가 눈썹을 바르르 떨며 노려보자 아슐란이 난처하게 웃었다.
“죄송합니다. 그러니까 다양하게 시도해 보아도 고양이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는 것이지요?”
“아옹.”
“……하나 말씀드리자면 사실 저도 수인이 아니기에 잘 모릅니다.”
……뭐야, 도와줄 수 없는 거였어?
김이 팍 식는 기분이었다.
실은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의 말마따나 아슐란은 수인이 아니었으니.
나는 시무룩하게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아슐란이 내 이마에 경건히 손을 얹더니 위로하듯 말했다.
“괜찮습니다. 저와 차근차근 연구해 보면 되는 것을요. 우선 인간이 되어 보시겠습니까?”
“……아옹.”
그의 말과 자상한 태도에 용기를 얻은 나는 인간이 되기 위해 심호흡했다. 그러곤 일전에 인간이 되기를 성공했을 때의 감각을 떠올리며 숨을 참았다.
배 속에 기운을 응집시켰다가 몸 곳곳에 퍼트리는 것이다.
그러자 이제는 제법 익숙한 감각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아닌 인간일 때만 느낄 수 있는 감각들…….
가뿐히 성공한 나는 보란 듯 뿌듯하게 고개를 쳐들었다. 고양이가 될 수 없을 뿐이지 인간 정도는 거뜬하다고.
“아슐란, 이것 봐. 나한테 인간이 되는 것 정도는 이제…….”
그런데 나를 보고 감탄과 칭찬을 퍼부어 줄 것이라 생각했던 아슐란의 표정에는 아까의 미소가 온데간데없었다.
그는 부자연스럽게 굳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슐란?”
“…….”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빛이 어딘가에 부딪혀 단단히 부서진 것만 같아 보였다.
나는 이상함을 느끼곤 다시금 그의 이름을 부르려 입을 열었다.
그러나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소리에 그럴 시도조차 잊고 놀라 문 쪽을 바라봤다.
‘버, 벌써 마멜라가 오잖아……! 아직 고양이가 되는 법 같은 건 못 들었는데!’
나는 급박하게 아슐란을 바라봤다. 빨리 고양이가 되어야 해!
어서 고양이가 되는 방법을 알려 달라고 하려는데 갑작스레 아슐란이 내 이마 위로 다소 거칠게 손을 얹었다. 아까의 정중함과는 거리가 먼 행동에 깜짝 놀랐다.
어느새 다시금 원점을 찾은 그의 녹색 눈을 마주함과 동시에 시야가 급격히 낮아졌다.
이제껏 느껴 본 것 중 가장 극심한 울렁거림이 머리와 속을 헤집었다.
아슬아슬한 차이를 남기고 방문이 벌컥 열렸다.
“아릴, 사제님이 안 보…… 어? 언제 오셨어요?”
아슐란이 뒤돌아보며 마멜라에게 대답했다.
“아까 도착했습니다. 공녀께서 안 계시기에 아릴과 놀아 주고 있었지요. 변비약은 여기 있습니다.”
“아, 감사해요. 전 사제님이 길을 잃으신 줄 알고.”
나는 한차례 멀미가 사라지자 다시금 되돌아온 앞발을 멍하니 문질렀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아슐란을 바라봤다.
‘방금…… 강제로 날 고양이로 돌려보냈어.’
……대체 어떻게?
아슐란이 나를 흘긋 바라봤다. 눈이 마주치자 다시금 평소처럼 미소 지은 그가 마멜라에게 인사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옹!”
잠시만!
나는 그를 붙잡기 위해 소파에서 내려가 쫓아갔지만 얼마 못 가 마멜라에게 덥석 붙잡혔다.
마멜라가 ‘씁!’ 소리를 내며 내 등을 토닥거렸다.
“안 돼, 아릴. 사제님은 무척 바쁘신 분이셔.”
하지만……!
나는 미소와 함께 고개를 살짝 숙이곤 방을 나서는 그의 뒷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