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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53화 (50/191)

53화

저걸 들고 여기까지 온 건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귀공자 그 자체인 인간이 세 살 아기들이나 가지고 놀 법한 장난감 낚싯대를 들고…… 상상이 잘 가지 않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의 발치로 쪼르르 달려갔다. 무릎을 굽힌 이딜로스가 내 머리를 문질렀다.

그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투덜댔다.

“여기 사람들은 남한테 왜 그리 관심이 많은지.”

“아옹?”

“지나치는 사람마다 손에 든 게 대체 뭐냐고 물어 대서 늦었어.”

척 보면 모르나. 낚싯대인데. 혀를 차며 중얼거린 그가 낚싯대를 휙 휘둘렀다.

‘그 사람들이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네가 무표정으로 그런 귀여운 장난감을 들고 가니까 이상했겠지…….’

낚싯대의 물고기가 눈앞을 알짱거렸다. 방울도 달려 있는지 매달린 물고기가 딸랑거리며 흔들리자 나는 반사적으로 뛰어들어 물고기를 붙잡았다.

한 번에 붙잡았다는 뿌듯함에 물고기를 왕 물며 자만심 가득한 눈으로 이딜로스를 바라봤다.

자아도취의 단맛을 좀 맛보려는 찰나였다. 꼬리에 털 달린 물고기가 쏙 빠져나가더니 공중을 붕 날았다.

“뛰어야지, 어서.”

“아옹……!”

“거기 없는데. 아릴, 속도를 그것밖에 못 내나?”

빠직. 낚싯대를 붕붕 움직여 대는 이딜로스의 도발에 자존심에 금이 갔다. 나는 눈에 불을 켜고 딸랑거리는 물고기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몇 차례 앞발을 휘두른 끝에 마침내 물고기가 잡혔다. 보란 듯 의기양양하게 고개를 치켜들자 물고기는 또 내 품에서 빠져나갔다.

“풋…….”

“……?”

풋……?

이딜로스가 내뱉은 웃음소리에 나는 깡패처럼 인상을 구겼다. 지금 날 도발하고 농락한 걸로 모자라서 무시한 거야?

내 험악한 표정이 보이지 않는 건지 이딜로스는 쿡쿡 웃어 대며 낚싯대를 요리조리 움직였다.

“힘이 너무 없네. 느리고.”

이게……!

나는 이를 갈며 이딜로스를 노려봤다.

쭈그려 앉아 턱을 괴고 있던 이딜로스가 피식 웃었다. 분명 부드러운 미소인데 내게는 가소로워서 짓는 미소로 보였다.

모멸감에 휩싸인 나는 화르륵 승부욕이 불타올랐다. 분노로 가다듬어진 앞발을 마구잡이로 휘둘러 대며 낚싯대를 따라 폴짝폴짝 뛰어 댔다.

내 날랜 움직임에 이딜로스가 감탄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다시 낚싯대를 움직이더니 그가 의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릴, 잠깐만. 여기 줄이…….”

이딜로스가 낚싯대를 자기 쪽으로 홱 잡아당겼다. 승부욕이 뼛속까지 도사리고 있던 나는 눈에 뵈는 것도 없이 낚싯대에 무작정 달려들었다.

폴짝 뛰어오른 나는 그대로 이딜로스의 품에 폭 들어갔다.

“……아릴, 괜찮아?”

등을 감싸 안는 손길이 느껴졌다. 고개를 들자 이딜로스의 당혹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그의 반대쪽 손에 줄이 엉킨 낚싯대가 보였다.

나도 당황해서 그의 눈을 마주한 채 눈만 깜빡이자 이딜로스가 갑자기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설마 내가 갑자기 달려들어서 겁먹은 건가?

이딜로스라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합리적인 의심을 하며 잠시 떨어질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이딜로스가 웃음을 터트렸다.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못 참겠다는 듯 말했다.

“미치겠네.”

“…….”

“너무 귀여워.”

그에게서 이 정도의 호쾌한 웃음은 처음 본 나는 잠시 멍해졌다. 그 청량한 웃음을 듣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마음이 녹아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사냥 놀이 중이던 것도 잊은 채 애교 부리듯 그의 품에 몸을 기대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자 부드러운 체취가 밀려들었다.

‘……따뜻해.’

익숙한 이딜로스의 냄새와 그에게서 들리는 규칙적인 심장 박동이 몸과 기분을 나른하게 만들었다.

“아릴?”

등을 쓰다듬어 주던 이딜로스가 잔잔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의 목소리는 늘 평온하고 잔잔해서 듣고 있으면 모든 게 풀어진다. 특히 가슴과 마음이 해이해진다.

그러니 들을 때마다 심장이 두근거리는 건, 느슨해진 마음이 심장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해서 그런 걸 거야.

“아릴, 그만하려고?”

그에게 좀 더 치대고 싶은 나와 달리 이딜로스는 계속 낚싯대를 움직이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가 아쉬운 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지쳤어?”

“아옹…….”

나른한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문질렀다. 그의 체취에 내 흔적을 남겨 뒤섞여 버리길 바랐다.

‘떨어지고 싶지 않아.’

그런 내 마음을 알 리가 없는 이딜로스는 낚싯대의 엉킨 줄을 풀어내며 말했다.

“간식 걸게.”

“아옹?”

눈을 깜빡인 나는 단 몇 초 만에 생각을 정리했다.

나는 이딜로스의 품에서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자세를 낮춰 사냥할 준비를 했다.

아무리 이딜로스의 품이 아늑해도 간식은 참을 수 없다. 특히 맛없는 사료로 입을 버리고 난 후에 먹는 간식은 더.

나는 앞발로 땅을 몇 차례 문지르며 낚싯대가 움직이길 기다렸다.

이윽고 이딜로스가 입매를 씩 올리며 낚싯대를 움직이자, 나는 하늘을 붕 날았다.

이딜로스가 들어간 욕실에서 물소리가 쏟아졌다. 나는 멍하니 털실 공을 굴리다가 창밖을 바라봤다.

어느새 하늘에 캄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사냥 놀이, 정말 무섭기도 하지. 낚싯대에 정신이 팔려선 해가 떨어지는 줄도 몰랐던 거다.

끼익. 물소리가 멈추더니 욕실 문이 열렸다. 고개를 돌리자 모락모락 피어나는 뿌연 수증기를 머금은 이딜로스의 모습이 보였다.

더 정확히는 앞섶을 제대로 여미지도 않은 목욕 가운만 걸친 채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나오는…… 무척 민망한 모습이.

나는 못 볼 걸 본 기분에 충격받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아니, 여밀 거면 꼼꼼히 여미던가. 밖에 있을 땐 살색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꽁꽁 동여매는 인간이 왜 저렇게 다 풀어 헤치고 나오는 건데?

‘빨리 옷 입어. 빨리!’

민망함에 내가 다 열이 올랐다. 나는 꼬리로 바닥을 탁탁 치며 언짢음을 몸소 표현했다.

그런데 이딜로스의 기척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확실했다. 바로 뒤에서 풍기는 비누 향과 따끈한 열기에 숨이 막혀 왔으니.

열기만큼이나 낮게 풀어진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왜 화나 있어?”

자극을 받은 것처럼 두 귀가 반사적으로 쫑긋거렸다. 온몸에 열이 올랐다.

뜨거운 물에 목욕하고 온 그의 열기가 전이되기라도 한 걸까. 거북할 정도로 속이 울렁거린다…….

목석처럼 가만히 굳어 있자 이딜로스의 팔이 나를 붙잡았다.

단숨에 번쩍 들려 그의 품에 안긴 나는 그제야 놀라 고개를 들었다.

늘 올려 정돈한 것과 달리 물기에 젖어 내려간 그의 머리칼이 보였다. 벌어진 가운 틈으로 와 닿는 단단한 피부는 평소의 서늘함은 어디 가고 따뜻하기만 했다.

‘제발, 옷 좀…….’

말만 할 수 있다면 소리치고 싶었다. 내가 앞발로 두 눈을 가려 버리고 싶다는 걸 모르는 이딜로스는 소파로 가 나를 무릎 위에 놓았다.

딱 달라붙어 있던 것보단 나아서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눈이 마주쳤다. 벌어진 가운 사이로 보이는…….

나는 벌떡 일어서서 이딜로스의 벌어진 가운 양 깃을 한 번씩 입으로 물고 잡아당겨 가운데로 오므렸다.

옷을 여며도 부족했다. 아까부터 코로 파고드는 저 포근한 비누 향이 미칠 것 같았으니 말이다.

나는 이딜로스를 이글이글 노려봤다.

‘야, 나도 짐승이야, 짐승! 누가 다 벗고 돌아다니래, 겁도 없이……!’

그러나 내 경고는 경고도 아니란 건지 이딜로스는 마냥 나를 신기하게 쳐다봤다. 눈빛이 ‘주인의 옷도 여며 주는 똑똑한 아기 고양이’ 정도였다.

짜증이 난 나는 이딜로스의 손을 꼬리로 퍽치고는 그의 무릎 위를 벗어났다.

그러나 멀리 가지는 못하고 그의 바로 옆에 자리를 잡고 엎드렸다.

이딜로스는 그런 나를 쓰다듬으며 이곳까지 챙겨 온 일거리를 손에 쥐었다. 집 밖에서도 서류를 보는 이딜로스를 질린 눈으로 쳐다봤다.

막 내가 앞발 털을 그루밍하는 때였다. 바깥에서부터 누군가 다가오더니 문을 두드렸다.

“공작 전하. 파베논 남작께서 뵙기를 요청하십니다.”

나는 파베논 남작이라는 자의 몰상식적인 매너에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한밤중에 만남을 청하는 건가.

그런데 당사자인 이딜로스는 이러한 일이 익숙한 것 같았다. 그는 서류를 넘기다가 감흥 없는 눈으로 문 쪽을 흘겨본 후에 말했다.

“피곤하다고 전하십시오.”

“예.”

나는 무심하게 반응한 그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런 일이 잦은 걸까?

내 시선을 느낀 건지 그가 서류에서 눈을 뗐다. 마멜라처럼 반딧불 같은 금색 시선과 마주쳤다.

내가 빤히 보던 걸 어떤 의미라고 생각한 건지, 이딜로스가 내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에 널 두고 내가 어딜 가.”

이딜로스는 서류를 보면서도 계속해서 나를 쓰다듬었다. 이딜로스의 수준급 손길을 계속 받고 있자니 졸음이 밀려왔다.

나는 무심코 입을 크게 벌리며 하품했다. 그러자 한순간에 이딜로스의 손이 떨어지더니 그가 굳었다. 나는 사색이 된 그의 반응을 보곤 입을 얌전히 다물었다.

‘……아직도 내가 입을 크게 벌리기만 하면 무서워한다니까.’

머뭇거린 이딜로스의 손이 다시금 살포시 머리에 닿았다.

“졸려?”

“아옹…….”

“고양이는 야행성이라던데.”

다 그런 건 아닌가 보지…….

이딜로스가 서류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는 조금 전까지 서류를 들고 있던 손으로 나를 안아 들며 소파에서 일어났다.

방 안의 모든 불을 끄기 시작한 그는 침대 옆 간이 스탠드의 불빛만을 남겨 둔 채 침대로 향했다.

나는 어리둥절하게 그를 바라봤다.

“작은 만큼 일찍 자야지.”

지금 나더러 작다는 거야?

사실이긴 했지만, 이 부분에서만큼은 자존심이 태산이나 다름없던 나는 인상을 구기려다 참았다.

이딜로스는 나를 제 옆에 두곤 등받이에 기댔다.

내가 편하게 누워 몸을 웅크리자 이딜로스가 빤히 쳐다봤다. 감기려던 눈도 도로 뜨였다. 가뜩이나 누구랑 같이 자는 건 익숙지 않은데 저렇게 쳐다봐 대니 잠에 들 리가 있나.

나 역시 그를 빤히 바라봤더니 이딜로스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안 자?”

잠이 오겠냐? 그만 좀 보고 너도 빨리 자, 제발.

날 재워 놓고 또 손에 종이를 들려는 게 분명했다. 나는 꼬리로 옆자리를 탁탁 내려쳤다. 이딜로스가 의아하게 보는가 싶더니 곧 짤막한 웃음을 흘렸다.

“나도 자라고?”

“아옹.”

새침하게 대답하자 이딜로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하지만 그뿐, 잘 생각은 없는 건지 그가 손을 뻗어 내 등을 느리게 쓸어내렸다.

깜빡깜빡, 그의 손길을 받고 있자 눈이 감겨 왔다. 방 안을 메운 정적 속에서 이딜로스의 숨소리와 규칙적인 심장 소리가 들렸다.

눈을 감고 듣고 있으니 의식이 점차 빨려 드는 것 같았다.

“잘 자, 아릴.”

희미한 의식 속에서 들린 나직한 목소리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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