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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45화 (42/191)

45화

나는 먼저 자리를 뜨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이딜로스에게 쉽사리 다가가지도 못한 채로 덩그러니 있었다. 이딜로스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곧 집무실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무런 말도 없이 걸음을 옮기는 그를 보며 망설였다.

‘아무래도 따라가긴 해야겠지……?’

점차 간격이 벌어지는 이딜로스의 꽁무니를 쫓아 빠른 걸음을 옮겼다.

이딜로스의 반듯한 걸음걸이는 여전히 빨라서 나는 헥헥대며 겨우겨우 그의 뒤를 쫓았다. 이 상황으로는 그가 나를 멀리하던 예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딜로스가 나를 직접 집무실로 불러들였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그래도 지금은 평소처럼 구네. 다행히 머리를 부딪쳤던 건 아니었나 봐.’

조금 마음 놓였다. 나와 눈을 맞추고 내 밥에 신경을 쓰는 건 전혀 이딜로스답지 않은 행동이니까.

안심하기가 무섭게 이딜로스가 뒤를 돌아봤다. 빗겨 나듯 아주 잠시 시선이 마주쳤다.

이딜로스가 걸음을 멈췄다.

“내가 너무 빠르게 걷나?”

“…….”

새삼스러운 그의 말에 나는 왜 그런 당연한 걸 묻냐는 듯 이딜로스를 쳐다봤다.

이딜로스가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손을 뻗었다. 그는 조금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 행동에 조금 당황했으나 곧 그의 손에서 떨림이 전해지는 걸 느끼곤 뻣뻣하게 굳었다.

겁먹은 상태인 게 분명하다. 그는 지금 나를 무서워하면서도 용기를 내고 있다.

‘너 대체 왜 이러는 건데…….’

내가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이딜로스가 소스라치게 놀랄 것 같아서, 나는 그가 다시 일어설 때까지 최대한 인형처럼 있었다.

숨까지 참아야 하나 고민 중인데 위에서 조금 주눅이 든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불편해?”

조심히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나를 보며 내리뜬 그의 눈이 어쩐지 기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안아야 편하지?”

물음과 함께 이딜로스가 나를 바비큐처럼 돌려 가며 안기 시작했다. 나는 기겁했다. 어지러움을 견디다가 끝내는 못 참고 그의 팔을 덥석 잡았다.

‘처음이 제일 나아, 처음이 제일 낫다고!’

내 격렬한 눈빛과 행동에 놀란 건지 이딜로스의 팔이 굳었다. 조금 두려운 기색이 비치자 나는 서둘러 발을 거두었다. 옅은 한숨이 마구잡이로 나오려 했다.

‘……애초에 내가 그렇게 무서우면서 왜 고생을 사서 하는 거야.’

결국 나는 직접 몸을 움직여 편안한 자세로 그의 품에 기댔다. 내가 움직일 때마다 움찔거리면서도 나를 절대 내려놓지 않는 이딜로스의 행동이 어이가 없었다.

‘이 손 많이 가는 인간 같으니.’

나는 지금 내가 편안하다는 걸 보여 주려고 일부러 작게 하품까지 하며 나른히 늘어졌다. 그가 겁먹지 않도록 눈도 감자 누가 봐도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

‘이젠 무서워하지 않겠지. 어서 가자.’

그러나 이딜로스는 움직일 생각 없이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대신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열렬한 시선이 주는 부담스러움에 발바닥에 땀이 다 나려고 했다.

‘안 가고 뭐 하는 거야…….’ .

갑자기 눈 뜨면 이딜로스가 기겁하겠지. 깜짝 놀라서 날 집어던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안 좋은 상상을 하며 입을 우물거리는데 이딜로스의 팔이 살짝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얼마 후 손가락 같은 것이 내 턱에 닿았다. 그 손가락은 턱을 살살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해이해져 가르릉 소리를 내자 화들짝 놀란 것처럼 손길이 사라졌다.

‘아, 겁먹었겠다…….’

내가 계속 자는 척을 하자 이딜로스는 곧 아무렇지 않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따라 이상한 이딜로스의 손길도 시선도 이미 사라진 뒤였지만, 나에게는 알 수 없는 몽글거림이 남아 기분이 자꾸만 일렁거렸다.

아마 이딜로스의 이러한 태도가 익숙지 않아 그런 것이리라.

집무실 특유의 향이 몰씬 풍기며 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이딜로스는 나를 어떤 폭신한 곳에 내려놓았다.

집무실의 구조상 그가 나를 내려놓은 곳이라면 분명 구석에 박힌 작은 소파쯤일 것이라 생각했다.

‘이쯤이면 괜찮겠지.’

나는 슬쩍 눈을 떴다. 그런데 바로 옆에 이딜로스가 펜에 잉크를 적시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예상치도 못한 풍경에 자지러지게 놀랐다.

‘뭐야, 설마 여기 책상 위인 거야?’

아래를 보니 내가 깔고 앉아 있는 건 붉은색의 금색 자수가 놓인 폭신한 방석이었다. 이딜로스의 책상에…… 원래 이런 게 있었던가?

당황스러움에 다시 고개를 들자 이딜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그가 펜에 잉크 묻히던 걸 멈췄다.

“나 때문에 깬 건가?”

나직이 말하는 낮은 목소리가 유난히 부드럽게 느껴져 정신이 멍해졌다. 가만히 시선을 마주하고만 있자 그가 설핏 웃음을 흘렸다.

“오늘은 안 도망가네.”

“……?”

“날 마주칠 때마다 계속 도망갔잖아. 어제도 곧바로 등을 돌려 가 버리려 하고.”

그의 말을 잠자코 듣던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렇게까지 이딜로스가 나한테 적극적으로 말을 건 적이 있던가.

내가 그렇게 노력하며 졸졸 쫓아다닐 때는 외면하고 싫어했으면서, 그를 배려해서 일부러 멀어지기 시작했더니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그가 은근히 괘씸하게 느껴졌다. 대체 무슨 심적인 변화가 생겼기에 이러는 건지.

그때, 긴장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이렇게만 보면 그리 무섭진 않은데.”

그의 말에 나는 멈칫, 그를 올려다봤다.

목소리에서 자신을 타박하는 기색이 묻어났고 눈빛 또한 그랬다. 나는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딜로스는 어쩌다 동물을 무서워하게 된 걸까?’

불현듯 이딜로스가 내게로 조심히 손을 뻗었다. 늘 일관적이고 명료한 사고만 하던 그가 답지 않게 머뭇거리며 말했다.

“만져 봐도 될까?”

……지금 내게 허락을 구하는 건가?

고작 나를 만지는 것에 허락을 구하는 인간은 이딜로스가 처음이었다. 안셀과 마멜라마저도 허락 없이 마구잡이로 내 털과 앞발을 만지는데…… 이 인간은 정말 알면 알수록 특이했다.

나는 이딜로스에게 가져가란 듯이 앞발을 쭉 내밀었다.

“아옹.”

그의 표정이 티가 안 날 정도로 미미하게 밝아졌다. 이딜로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곧 조심스레 내 앞발을 잡았다.

공포가 깃들던 그의 눈빛에 일순간 설렘과도 같은 생기가 돌았다. 그의 묘한 표정을 보자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엄청 좋아하잖아?’

다들 내 발바닥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딜로스마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기에 의외였다. 이딜로스는 겁이 많았을 뿐 생각보다 나를 좋아했던 건 아닐지 의심마저 들었다.

‘저렇게 좋아하는 걸 보면 누구라도 그렇게 의심할 거야.’

그런데 이 인간은 신나서 내 앞발을 만지작대는 주제에 신경 쓰이게 내 눈치도 자꾸만 살폈다. 나는 그런 이딜로스를 하찮게 바라봤다.

아무래도 내가 갑자기 난리를 떨면 어쩌나 불안한 모양인데……. 말만 할 수 있다면 소리 내어 말해 주고 싶었다. 이래 봬도 난 이제 제법 머리가 자라서 멋대로 날뛰고 그러진 않는다고.

이딜로스에게 앞발을 내어 준 나는 그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너무 빤히 쳐다봤더니 또 겁먹은 것 같은 눈치라……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한창 무료하게 창밖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열려 있는 창문으로 웬 흰 새 한 마리가 날아와 창틀에 앉는 게 보였다.

새는 인물을 가늠하듯 이딜로스를 보며 고개를 갸웃갸웃하더니 갑작스레 방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뭐야, 넌 뭔데 내 구역에 들어와?’

내 구역을 멋대로 침범한 새를 보자 나는 회까닥 눈이 돌았다. 불쾌해져서 새를 향해 사납게 일갈했다.

“아옹!”

이쪽으로 다가오던 새는 내 위엄 있는 울음에 놀라 푸드덕거렸다. 그러곤 도망치듯 날아가더니 창밖으로 꽁무니를 빼기 전, 웬 종이를 떨어트리고 갔다.

짙은 녹색의 종이봉투에 매 그림의 인장이 찍힌 편지였다.

‘야, 물건 흘렸어!’

비록 내가 내쫓긴 했지만 한숨이 나왔다. 아무리 새대가리라지만 칠칠맞지 못하긴.

나는 벌써 저만치나 날아간 새를 보며 끌끌 혀를 찼다. 뭐 자기 손해지 내 손핸가.

새에게서 신경을 끄고 다시금 이딜로스를 바라봤다.

그런데…… 얘 왜 엎어져 있는 거지?

나는 이딜로스를 불렀다.

“아옹.”

“…….”

“……아옹?”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나는 의아함에 내 앞발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을 툭 건드렸다. 그러자 이딜로스의 손이 스르륵 미끄러지더니 아래로 힘없이 떨어졌다.

“…….”

맙소사. 나는 맥없이 쓰러진 그를 황당하게 쳐다봤다.

너 설마 기절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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