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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43화 (40/191)

43화

날이 밝자 새벽까지 내리던 비가 그쳤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은 오늘이 특별한 날임을 아는 것 같았다.

잠에서 깬 마멜라는 한결 나아 보였다. 새벽의 일은 떠올리고 싶지 않은지 그녀는 마냥 밝게 웃으며 간소한 치장을 마쳤다.

걱정스레 쳐다보던 내게 마멜라가 말했다.

“어제는 슬펐지만 오늘은 오라버니 생일이니까 웃어야지. 아릴이 너도 기운 차려, 알았지?”

“아옹.”

마멜라가 나를 덥석 안아 들어 거울이 달린 탁자 위로 올려 주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갑자기 요나와 몇몇 시녀들이 방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이 들고 온 걸 확인한 나는 까무러쳤다. 인형이 입을 정도의 작은 옷들과 온갖 액세서리들…….

설마, 설마 아니겠지?

나는 떨리는 눈으로 마멜라를 바라봤다. 마멜라는 내 불안감을 모조리 날려 버릴 정도의 해사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오라버니 생일이니까 아릴이 너도 예쁘게 하고 가야지.”

“아옹……!”

아니야, 그러지 마. 제발!

난 이대로도 귀엽잖아. 옷 안 입고 있어도 늘 예뻐해 줬잖아!

내 불쌍한 표정 연기는 보이지도 않는지 둥근 빛과 리본을 든 시녀들이 다가왔다.

“아릴을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고양이로 꾸며 보겠습니다.”

“귀여운 것에 귀여운 것을 더하면 더욱 귀여워지는 게 세상의 이치거든요. 금방 끝날 테니 안심하렴, 아릴.”

안심하기엔 이 인간들의 눈빛이 너무 이상했다……!

나는 천천히 뒷걸음질 치다가 거울에 엉덩이를 부딪쳤다. 차가운 감촉에 화들짝 놀라 뒤돌아본 순간 한 시녀가 나를 잡았다.

“가만히 있어야지.”

이윽고 나를 내려놓고선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그들의 모습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몇 차례 손길이 휩쓸고 지나간 후 나는 초점 없이 거울을 바라봤다. 영혼이 하얗게 타들어 간 것 같았다.

옆에 공처럼 말려 굴러다니는 내 털 뭉치들을 바라봤다. 나는 내 꼬리에 묶인 붉은 리본을 경멸 어린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아, 어쩜 너무 앙증맞아요!”

“가주님께서도 틀림없이 예뻐하실 거예요!”

나는 그들의 칭찬을 한 귀로 흘리며…… 무엇보다도 가장 충격적인 내 옷차림으로 시선을 옮겼다. 헛웃음이 나왔다.

시녀들과 요나, 마멜라는 내게 이걸 입히자 저걸 입히자 아옹다옹하더니 결국 기나긴 설전 끝에 지난번에도 입은 적 있던 딸기 드레스를 입혔다.

부드러운 흰 안감에 딸기가 콕콕 그려져 있고 흰색과 붉은색의 레이스가 치렁치렁하게 달린 드레스. 앞발이 나오는 소매 부분은 봉긋했고, 뒷발 부분은 호박 바지 같은 것이 드레스의 풍성한 레이스 안에 감춰져 있었다.

‘갑갑해…… 무거워!’

내가 몸을 푸르르 털어 버리자 시녀들은 탄식을 터트리며 달려왔다.

“아릴, 이러지 말렴!”

“아아, 한 시간의 노고가……!”

그때 누가 나를 뒤에서 번쩍 안아 들었다.

마멜라였다. 그녀는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문으로 향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어서 가야 해.”

나를 데리고 방을 나서는 그녀의 뒤로 요나가 준비해 둔 생일 선물을 들고 따라왔다.

‘이딜로스한테 선물을 주러 가는 건가 봐.’

그렇게 생각했으나 마멜라는 이딜로스가 있을 위층이 아닌 아래층으로 향했다.

이딜로스에게 가는 게 아니었어?

나는 마멜라를 올려다봤다.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가 말했다.

“아침 먹으러 가는 거야. 우리 아직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 아마 오라버니도 오실 거야.”

내 궁금증을 용케도 알아본 마멜라가 대답했다. 늘 척하면 척. 가끔 빗나가는 걸 제외하면 마멜라는 나와 쿵짝이 제법 잘 맞았다.

‘그럼 오늘은 두 사람이랑 같이 먹겠네!’

나를 보며 이딜로스가 밥을 먹을 수 있긴 할까 걱정되었지만 이기적이게도 그보다는 설렘이 앞섰다.

셋이서 밥을 먹는다니. 정말로 가족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가족 같은 모습에 수줍은 기대를 간직했다.

“아, 오셨습니까, 아가씨.”

그런데 도착해 보니 보이는 얼굴에 나는 김이 식었다.

왜 안셀 이 인간도 있는 거지.

이딜로스와 오랜 친구라더니…… 그래서 온 건가?

안셀은 커다랗고 기다란 식탁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멜라가 착석할 때까지 안셀은 가까이 다가오는 나를 반짝이는 눈으로 쳐다봤다. 어서 나를 쓰다듬고 예뻐해 주고 싶다는 눈빛이 간절했다.

‘윽…… 부담스럽게.’

저렇게 과한 관심을 보이면 일부러라도 반응해 주기 싫다는 걸 저 인간은 모르나?

나는 마멜라가 나를 내려놓자마자 안셀에겐 내 엉덩이만 보이게끔 돌아앉았다.

그럼에도 안셀의 지대한 관심은 끊어질 줄을 몰랐다.

“아가씨, 오늘 아릴이 무척 사랑스럽군요! 유난히 털도 보송한 것 같고 정말 깨물어 주고 싶습니다!”

나는 안셀의 찬양에 거만하게 코웃음 치곤 꼬리를 새침하게 흔들었다.

안셀은 그런 나를 쓰다듬고 싶은 건지 살그머니 손을 뻗었다. 그의 손을 발견한 나는 꼬리를 휘두르며 하악질 했다.

그러나 이 인간은 위협이란 것도 모르는지 겁도 없이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렇게까지 머리가 나쁜 인간이라니.

나는 안셀을 질린 눈으로 바라보며 입을 다물었다. 멍청해서 불쌍한 인간을 물어 버릴 순 없었다.

마침 요나와 선물을 두고 이야기 나누던 마멜라가 이쪽을 바라봤다. 나는 반가운 얼굴로 안셀을 눈짓했다.

마멜라, 이 인간 좀 치워 줘.

그러나 마멜라는 나를 신경도 쓰지 않으며 말했다.

“안셀, 오라버니의 선물로 어떤 걸 준비했어?”

자연히 그들의 대화에서 배제된 나는 뾰로통하게 마멜라를 바라봤다.

안셀은 머리를 긁적이더니 말했다.

“아, 저도 준비하려고 했습니다만…….”

“준비 못 했어?”

“비슷합니다. 전하께서 선물 같은 건 됐으니 야근으로 때우라고……. 그래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저에겐 너무나 가혹한 것이지만 전하께서 행복하시다면 이 한 몸 희생해야지요.”

안셀은 폭삭 늙은 것 같은 초췌한 표정으로 웃었다. 그런 안셀의 낯을 보자 처음으로 가여운 마음이 들었다.

이딜로스는 일 중독자도 아니고, 선물도 일로 받아 내면 어떡해?

안셀을 안타깝게 쳐다봤더니 나와 눈이 마주친 그가 이번엔 달려들어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안셀을 밀어내기 위해 안간힘 쓰다가 끝내는 체념했다.

안셀은 처량하고 가식적인 울음소리를 흘렸다.

“아릴, 나 대신 일 좀 해 주려무나. 일당은 전하께서 챙겨 주실 거란다. 그걸로 고기 간식을 사 먹을 수도 있고.”

“오자마자 별 헛소리를 다 듣는군.”

안셀의 말에 조금 솔깃하고 있던 나는 갑작스레 들린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리 소문도 없이 온 이딜로스가 식탁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는 넌지시 웃으며 마멜라에게 인사를 건넸다.

“좋은 아침이구나, 마멜라.”

“네, 오라버니. 생일 축하드려요.”

“응, 고마워.”

“생신 축하드립니다, 전하. 올해도 무탈하셔서 다행입니다. 어제와 더불어 오늘도 휴식을 취하시며 안락한 탄신일을 보내시는 게…….”

“고맙군.”

안셀의 말을 뚝 끊은 이딜로스의 시선이 두 사람을 지나쳐 내게 닿았다.

전날, 평소엔 상상도 못 하던 그의 약한 모습을 봤기 때문인지 나는 그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비록 그가 어제는 별수 없이 내게 의지했다지만 나를 무서워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을 터였다.

그 점 역시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기에 나는 괜스레 안셀의 품에 더 파고들었다. 바보 같은 안셀은 내가 애교 부리는 거라고 생각하는지 화색하며 내 등을 쓰다듬었다.

이딜로스의 걸음 소리가 들리고 의자 끄는 소리와 그가 착석하는 기척이 느껴졌다.

이쯤이면 그 역시 내 존재에 신경을 껐으리라 생각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설마 곧바로 시선이 마주칠 거라고는 정말 몰랐다.

이딜로스는 내가 제 쪽을 보길 줄곧 바라 온 것처럼 한순간 눈가를 휘며 청초하게 웃었다.

“안녕.”

그 눈부신 미소에 내 등을 쓰다듬던 안셀이 뜨억 소리를 냈다. 잔에 물을 따라 마시던 마멜라는 잘못 삼킨 건지 연신 기침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딜로스가 황급히 마멜라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마멜라, 괜찮아?”

“콜록, 괜……, 콜록…….”

“……전하 혹시 어디에 머리를 부딪치신 겁니까?”

“무슨 헛소리지?”

이딜로스가 눈썹을 확 찡그렸다.

저 모습은 확실히 평소의 이딜로스가 맞는데…… 저 인간이 그렇게 환하게 웃을 줄도 아는 인간이던가?

방금 내가 헛것을 본 게 아니라면 정말로 이딜로스가 머리를 부딪친 것이리라. 그러지 않고서야 날 무서워하는 인간이 그렇게 활짝 웃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어쩌다 머리를 다친 걸까. 설마 내가 여태 넣어 준 기운의 부작용인 건가?’

마멜라가 기침을 진정할 즈음엔 식탁 위로 식사가 하나씩 차려졌다.

화려한 음식의 자태를 본 나는 넋을 놓았다. 냄새도 외관도 입 안에 침이 절로 고일 정도로 자극적이었다. 여태 인간들은 날 따돌리고 이런 걸 먹었던 거야?

한창 넋이 나가 있던 나는 마멜라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오라버니, 오늘은 평소랑 다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안셀은 흠흠 목을 가다듬더니 말했다.

“간밤에 푹 주무셔서 그런가 봅니다. 제가 깨우러 갔음에도 계속 주무시더군요.”

“오라버니가? 어제?”

마멜라는 믿기지 않는단 눈으로 이딜로스를 바라봤다. 그가 뭘 잘못 먹기라도 했나 싶은 표정이었다.

이딜로스는 짤막하게 미소 짓는 듯하더니 안셀의 품에 갇혀 있는 내게 시선을 고정하며 말했다.

“어제 같은 날 그렇게 푹 잔 건 처음이야. 무척 좋은 꿈도 꾸었고.”

꼭 내게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행이에요, 오라버니.”

“맞습니다, 전하. 수면은 사람에게 있어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지 않습니까. 늘 그렇게 주무시기만 한다면 저 안셀은 여한이…….”

“그보다 안셀.”

“예, 전하.”

안셀은 말이 잘라 먹혀도 이젠 하도 익숙하기 때문인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런 안셀을 대단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던 중이었다.

돌연 이딜로스가 나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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