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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32화 (29/191)

32화

호기심이 든 나는 창문에 몰려든 그들의 발치를 알짱거렸다. 그러나 인간들에게 가려진 창문은 끄트머리도 보일 기미가 없었다.

새삼 나의 자그만 크기를 실감해 침울해졌다. 그때 어떤 인간이 나를 번쩍 안아 올렸다.

“좀 비켜 봐요. 아릴이 궁금하다잖아.”

눈을 동그랗게 뜨자 연갈색 머리를 땋아 내린 시녀, 베로니가 보였다.

베로니의 언성에 창문을 가리고 있던 사용인들이 주춤거리며 길을 터 주었다. 덕분에 베로니는 나를 데리고 창밖이 가장 잘 보이는 정중앙 자리로 갈 수 있었다.

베로니가 창밖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아릴, 저기 보여?”

그녀의 손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웬 우락부락한 낯선 인간과 함께 있는 안셀이 보였다.

열 손가락에 빈틈없이 굵직한 금반지를 끼고, 목에는 모피를 두른 거대한 인간. 그가 사용인들이 말한 진상 손님인 듯했다.

저 우람한 어깨에 비실비실한 안셀이 치이기라도 하면 안셀은 곧장 구름 너머 옆 동네까지로 날아갈 것 같았다.

‘와…… 무섭게 생겼다. 혼자 다른 세계에서 온 것 같잖아.’

처음 보는 거대한 인간상에 존경심이 생기기도 잠시, 그의 손에 쥐어진 세 개의 목줄을 발견한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늠름하니 잘생긴 까만 개 세 마리가 정원 한복판에 굳건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가주님을 뵙는데 개를 데리고 오다니. 개념은 어디다 두고 온 거래…….”

베로니가 투덜거렸다.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창밖의 상황을 지켜봤다.

안셀은 거대 인간의 앞에서 쩔쩔매며 손을 내젓고 있었다. 누가 봐도 개를 데리고 들어갈 수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이딜로스는 나처럼 작은 고양이도 싫어하는데……. 저 인간은 뭐야?’

생각이라곤 조금도 없는 인간의 행동에 그를 아니꼽게 흘겨봤다. 그런데 문득 불안한 생각이 번쩍였다.

‘잠깐만……. 설마 나는 작고 못생겨서 싫어하는 거고, 저렇게 크고 멋있는 개는 좋아하는 거면 어쩌지?’

멍하니 입을 벌린 나는 실소를 터트렸다.

아…… 왜 갑자기 짜증이 나는 거지?

나는 베로니의 품에서 뛰어내렸다. 인상을 와락 구긴 채로 시녀가 내팽개친 낚싯대의 물고기를 덥석 물어 씹었다.

어느새 나 혼자 분풀이를 하는 걸 발견한 인간들이 내게 관심을 보였다.

“아릴이 놀고 싶은가 봐.”

“이번엔 내가 낚싯대 흔들 거야.”

“뭐? 내 차례인 거 몰라?”

다시금 내 근처로 몰려든 사용인들이 아옹다옹했다. 나는 그들을 신경 쓸 여념도 없이 양껏 분풀이에만 몰입했다. 마음이 꽤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

머릿속에서 그 시커먼 개들과 이딜로스의 모습이 서서히 사라져 갈 무렵이었다.

멀리서 큰 소란이 일었다.

꺄아악! 들리는 비명 소리에 나는 화들짝 놀라 물고 있던 인형을 놓쳤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소리가 난 방향을 바라보는데 저 멀리서 웬 인간들 여럿이 급박하게 달려오고 있는 게 보였다.

겁먹은 나는 근처에 있던 사용인의 뒤로 몸을 숨겼다.

그들은 도망이라도 치는 것처럼 우리의 옆을 지나쳐 달려갔다.

나와 놀아 주던 사용인들이 놀라 일어섰다. 그들은 지나가는 시종 한 명을 붙잡아 물었다.

“왜 그래, 무슨 일이길래 그러는데?”

“저, 정원에 묶어 둔 게생키 백작님의 개들이, 모, 목줄을 끊더니……!”

겁에 질린 표정으로 더듬더듬 말문을 뗀 시종은 말을 끝맺지도 않고 으아악,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갔다.

우리는 어리둥절하게 서로를 바라봤다.

“……방금 뭐가 지나간 거지?”

“몰라. 뭐라는 거야……?”

그때였다.

“컹컹!”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들렸다. 거기다 그 소리는 점차 가까워지더니 반대편 복도에서 웬 세 마리의 개가 튀어나왔다. 그 우람한 인간이 데리고 온 세 마리의 개였다.

옆에 있던 베로니가 놀라 숨을 들이켜는 것이 느껴졌다.

우리를 발견하곤 멈춘 개들이 일대를 훑기 시작했다. 그 시선이 나에게 닿는 순간, 개들은 사나운 기세로 굵고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냈다.

흠칫 몸을 떤 내가 뒷걸음질한 순간이었다. 세 마리의 개가 잔뜩 흥분해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아릴, 피해!”

한 시녀가 나를 감싸고 데구루루 굴렀다.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자리로 개들이 이빨을 내민 채 들이닥쳤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정말 아슬아슬하게 개를 피했다.

“베로니, 괜찮아?”

“네……, 어서 아릴을 데리고 피해요!”

바로 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나는 고개를 들었다.

나를 개들에게서 구한 베로니는 다리를 접질렸는지 그 자리에서 내 엉덩이만 밀어 줬다.

얼떨결에 밀려난 나는 베로니를 바라봤다.

“아옹……!”

“아릴, 난 괜찮으니 어서 도망쳐! 비록 짧은 생이었지만 널 구하고 봉급도 오를 테니 난 행복해!”

뭐라는 거야……!

나는 아무 말이나 내뱉고 있는 베로니의 옷자락을 물고 낑낑 잡아당겼다.

베로니, 같이 가자. 내가 데리고 갈게. 네가 나한테 간식 제일 많이 줬잖아!

개가 진득한 타액을 줄줄 흘리며 포악하게 그르렁거리자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던 사용인들은 혼비백산해서 뒷걸음질 쳤다.

나는 힘껏 베로니의 옷자락을 당겼다. 그러나 내 입으로 끌고 가기엔 베로니가 너무 무거웠다.

옷자락을 놓을 수밖에 없던 나는 힐끔, 커다란 개들을 바라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개들은 더욱 사납게 눈을 부라렸다.

나는 잠시 주춤했지만 그에 지지 않으려 눈을 부릅떴다. 이판사판이다.

내 간식 친구인 베로니를 지키기 위해 나는 그녀의 앞에 척 섰다.

‘베로니 괴롭히지 마!’

개들을 향해 으르렁, 자그만 송곳니를 드러냈다. 막상 개들 앞에 서니 두려움보다 짜증이 밀려왔다.

뒤이어 떠오르는 이딜로스의 얼굴. 나한텐 묘하게 멸시 섞인 눈빛을 보내면서 개들한테는 멋있다며 감탄을 쏟아 내는…….

나는 인상을 험상궂게 구기곤 개들을 노려봤다.

이것들이 보자 보자 하니까 선을 넘으려 하네. 이제 막 나한테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이딜로스를 가로채려고 해?

내 기세에 눌린 개들이 돌연 주춤했다. 제 주인을 닮아 개념 없게 생긴 것들이 갑자기 쉬 마려운 강아지들처럼 안절부절못하기 시작했다.

나는 짜증스러운 마음을 담아 앞발을 바닥에 ‘쿵!’ 내리찍었다.

그리고 사납게 일갈했다.

이딜로스는 내 거다, 이 멍멍이들아!

“아옹!”

“끼, 끼깅……!”

몸을 움츠린 개들이 겁에 질린 눈빛을 하더니 곧 반대편으로 달아나 버렸다.

“아옹아옹!”

나는 달아나는 개들의 뒷모습을 향해 심한 욕을 퍼부었다.

한결 개운한 마음이 된 나는 후련하게 베로니를 돌아봤다. 베로니가 깜짝 놀란 얼굴로 입을 벌리고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찔끔했다.

설마 내가 욕한 거 알아들은 건 아니겠지……?

“아, 아릴이…… 개를 쫓아 줬어…….”

뒤로 물러나 있던 사용인들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중얼대며 내 주위로 몰려들었다.

익숙한 관심 어린 말들을 한 귀로 흘려듣고 있던 나는 베로니의 반응을 살피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가 놀랐다.

감격에 젖은 무지막지한 시선 여러 쌍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릴이 우릴 구해 줬어……!”

“어쩜 이렇게 용맹할 수가 있을까!”

부담스러운 얼굴로 그렇게 외친 그들은 나를 안아 들곤 서둘러 안전한 곳으로 이동했다.

이후에 시녀에게 들은 바로는, 그 개들은 내가 욕을 퍼부으며 쫓아낸 후로 알아서 정원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목줄이 뜯겼던 그 자리에서 제자리를 빙빙 돌며 안절부절못했다는데……. 잔뜩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고 한다.

나는 코웃음 쳤다.

그러게 노릴 걸 노렸어야지. 내 소중한 간식 공급처와 마멜라의 오빠를 노리다니, 간덩이가 부은 게 분명했다.

나는 개념 없는 것들을 속 시원하게 교육해 줬다고 생각하며 편히 엎드렸다. 어느새 낮잠 때가 훌쩍 지나 졸음이 솔솔 밀려오고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한 나는 고개를 파묻고 태연히 잠을 청했다.

이 일이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할 줄도 모르고.

“뭐? 그게 정말이야? 우리 아릴이 완전 영웅 고양이네!”

마멜라가 웃음을 빵 터트렸다. 나는 안셀과 마멜라가 나를 주제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불편하게 바라봤다.

영웅 고양이라니……. 나는 그들의 발상에 조금 어이가 없어 물고기 인형을 물어뜯다 말고 고개를 들었다.

처음에 일파만파 퍼졌던 ‘아릴이 개를 쫓아냈다’는 말이 갑자기 와전되더니 어느새 ‘아릴이 저택을 구했다’고 인간들의 입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탓에 내가 복도를 지나갈 때마다 사용인들이 저택의 영웅이라고 수군대며 귀찮을 정도로 관심을 퍼붓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간식을 가져다 바치는 인간들도 많고…… 딱히 싫다는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 부담스러웠다.

이전보다 저택에서의 내 인기가 치솟은 건 물론이고, 어딜 가나 안셀처럼 나를 졸졸 따라다니는 인간들도 생겼다.

내 관심을 받으려고 눈앞에서 온갖 재롱을 떠는 인간들을 보면 얼마나 애잔하던지. 내가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봐도 그들은 모르는 눈치였다.

대체 내가 뭐라고 이러는 걸까. 난 그냥 눈에 넣어도 시원찮을 아기 고양이일 뿐인데.

‘귀찮아…….’

한숨을 푹 내쉰 나는 나를 이상할 정도로 쫓아다니는 인간들을 피해 도망친 나무 위에서 몸을 말고 엎드렸다.

마멜라는 내가 저택에서 사랑받는 게 좋은지 나를 지켜 주기는커녕 오늘도 잘 놀고 오라며 내 등을 방문 밖으로 떠밀기나 하고.

‘분명 또 이상한 책에 빠져선 나와 놀아 주기가 귀찮아진 거야.’

나는 흥, 콧바람을 내쉬며 꼬리로 나무를 팍팍 내려쳤다.

그때 멀리서 나를 찾는 아우성이 들려왔다.

“아릴! 어디 있어!”

“숨바꼭질하는 거지, 아릴?”

진짜 무서울 정도로 쫓아다닌다. 이딜로스가 나를 보며 늘 질린 표정을 지었던 것도 이래서인 건가?

아니, 그 인간은 내가 몸소 쫓아다녀 주는데 저 인간들처럼 기뻐하지는 못할망정.

이딜로스가 특이 인간인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직까지 나를 예뻐해 주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나는 침잠한 눈으로 나무 아래를 바라봤다. 어느새 나를 찾아 이까지 온 인간들의 머리가 보였다.

다들 내가 설마 이 커다란 나무 위를 타고 올라갔으리라곤 상상도 못 하는 듯했다.

“아릴이 어딜 갔지……. 어디 위험한 곳에 간 거면 안 되는데.”

“반대쪽으로 가 보자.”

그들은 내가 없는 것에 아쉬워하며 반대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나는 그들의 꽁무니를 보고서야 마음 놓을 수 있었다.

널따란 가지 위에 축 늘어진 나는 눈을 깜빡였다.

‘이제야 좀 편히 낮잠 잘 수 있겠네.’

요즘 들어 또다시 밤새 불을 켜고 책을 읽는 마멜라 때문에 잠을 자도 자는 것 같지가 않았다.

‘대체 그 책은 뭐길래 마멜라가 읽을 때마다 양 뺨이 발그레해지는 거래.’

거기다 낮에는 귀찮은 인간들이 놀아 달라고 달라붙으니 낮잠도 쉽게 못 자고 있었다.

나랑 잘 맞는 건 아무래도 이딜로스 같은데……. 이딜로스였다면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을 거야.

이딜로스가 나를 좋아해 준다면 나를 옆에 두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텐데.

피로가 쌓인 눈꺼풀이 점차 무거워졌다.

선선하게 부는 바람에 나뭇잎이 휩쓸리는 소리가 금세 단잠을 몰고 왔다. 어느새 몸과 마음이 노곤해진 나는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눈 떴을 때 어떤 비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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