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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의 반려수인이 되었습니다-25화 (22/191)

25화

그간 내가 어떤 노력을 해 왔던가.

이딜로스가 나를 내팽개치려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나는 헥헥대면서 쫓아갔다. 이딜로스가 안셀을 시켜 나를 잠시 쫓아내더라도 나는 금세 돌아가 능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아옹!”

그럴 때마다 이딜로스는 질겁하며 나를 떨쳐 내려고 매몰차게 굴었다.

하지만 한 번 딛고 일어선 내겐 상처가 쌓일지언정 포기를 바라보게 하진 못했다.

‘나한테 그런 무시가 대수냐! 이젠 익숙해졌거든!’

내가 포기하지 않고 졸졸 따라다니자 이딜로스는 제 나름의 특단을 내렸다.

그건 바로…….

“내보내도 계속 찾아오니 도무지 집중할 수가 없다. 차라리 네가 붙잡고 있어라, 안셀.”

안셀을 밧줄 삼아 나를 묶어 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말은…….

‘내가 안셀의 손안에 있기만 하면 집무실에서 내쫓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 아니야?’

안셀은 때때로 이딜로스의 명을 받고 나갈 때가 아니면 대부분을 집무실에서 이딜로스와 함께 업무를 본다. 그런 안셀의 손에 붙잡혀 있는 거라면……!

“아옹!”

나는 감격한 눈으로 이딜로스를 바라봤다.

내가 집무실에 있어도 된다고 허락한 거지? 그런 거지?

내 초롱초롱한 눈빛을 받은 이딜로스가 거북한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돌렸다. 썩 내키지는 않는지, 꼭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하고 후회하는 사람처럼 낯이 막막하게 질려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까지 긍정적인 발전은 아니다. 이딜로스는 나에 대한 안 좋은 감정으로 어떻게든 내가 접근하는 걸 막을 목적으로 그런 대책을 내렸을 테니.

하지만 나는 그보다 미래를 내다봤다. 이딜로스가 나를 좋아하게 만들 거라는 포부를 가진 이상, 기분이 좋을 수밖에.

‘이딜로스랑 더 가까워질 기회인 거야, 분명!’

곧바로 다가가기엔 무리가 있더라도 여기에 계속 있을 수만 있으면 이딜로스를 관찰할 수 있을 테고, 그럼 그가 어떤 성향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맞춰 내가 예쁜 짓을 해 주면 분명 나를 좋아하게 될 테지.

머릿속으로 엄청난 계획을 한순간에 뽑아낸 나는 스스로가 대견해졌다.

이날 나는 기쁜 나머지 처음으로 나를 붙잡고 있던 안셀의 손등을 핥았다.

“저, 전하! 이것 좀 보십시오! 아릴이 제 손을 핥아 줬습니다! 하하하하하!”

“……나가.”

그러나 안셀이 기뻐서 방방 날뛰다가 나와 함께 호되게 내쫓긴 후, 나는 두 번 다시는 안셀의 손등을 핥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역시 안셀은 도움도 안 되는 멍청한 인간이었던 거다.

“아릴, 다녀와.”

“아옹.”

마멜라의 배웅을 받으며 의기양양하게 방을 나선 나는 익숙하게 이딜로스의 집무실로 향했다.

내가 인간들이 노크하는 것처럼 문을 살짝씩 콩콩 박자 안셀이 문을 열어 줬다.

“전하, 아릴이 왔습니다.”

나는 세상 깜찍한 표정을 지으며 이딜로스를 올려다봤다. 밤을 새워 마멜라의 화장대 위에서 연구한 새로운 표정이었건만 이딜로스는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성가시다는 듯 한숨만 살짝 내쉬었다.

“내 근처로 못 오게 잘 붙잡아 둬라.”

“예, 전하.”

안셀이 이리 온, 하며 손을 내밀자 나는 안셀을 살짝 흘겨보곤 별수 없이 엉덩이를 내밀었다.

그러자 몸이 번쩍 날아 책상 위로 옮겨졌다. 푹신한 방석이 밟혔다.

어제까지만 해도 없던 것인데…… 가만 보면 안셀 이 인간은 나에 대한 정성이 참 대단했다.

‘이딜로스도 안셀의 반의반만큼만 나를 좋아해 주면 참 좋을 텐데.’

나는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들어 올렸다. 한 손엔 서류철, 또 다른 한 손엔 펜을 쥔 이딜로스가 집무를 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 시작했다.

‘이딜로스는 오른손잡이야.’

집중할 때는 대체로 무표정이지만 종종 미간을 살짝 찡그리고 있을 때도 있다.

누가 완벽주의 아니랄까 봐 업무를 보는 자세는 흐트러짐 하나 없었다.

일전에도 느꼈지만, 숨이 막힐 듯하게 완벽을 추구하는데 이상하게도 그가 하면 고상하게만 느껴졌다. 타고나기라도 한 건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면 눈을 떼기가 힘들었다.

한창 이딜로스를 뜯어보듯 관찰하고 있을 때 갑자기 등 위로 안셀의 손이 올라왔다. 놀란 나머지 털이 오소소 일어섰다.

나는 앙칼지게 안셀을 홱 째려봤다. 안셀은 유하게 웃으며 내 털을 쓰다듬어 엉망으로 만들었다.

“전하, 아무래도 아릴이 전하를 무척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전하께 한시도 눈을 떼지 않는군요.”

“…….”

쳐 내도 쳐 내도 부메랑처럼 계속해서 돌아오는 안셀의 손을 와다다 내치고 있는데 옆에서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살며시 돌렸다. 미간을 찌푸린 채 이쪽을 보고 있는 이딜로스와 눈이 마주쳤다.

또다시 귀여운 표정을 지을 기회다.

천진하게 눈을 뜨고 해맑게 울려던 그때였다. 콧구멍이 움찔했다.

‘자, 잠깐, 이 느낌은…….’

타이밍 한번 짓궂게 갑작스레 하품이 밀려왔다. 그 탓에 귀여움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게 입이 반사적으로 크게 벌어졌다.

참지 못하고 입을 있는 힘껏 벌렸다가 서둘러 닫았다.

아무리 생리 현상이라지만 이딜로스가 똑똑히 봤을 거라 생각하니 낭패감이 밀려왔다. 젠장, 귀여운 모습만 보여 줘도 부족한데!

그래도 3초 만에 끝났으니까 다시 귀여운 척하면……!

그러나 눈에 고인 눈물을 짜내고 시선을 든 순간. 나는 애교를 부리는 것도 잊었다.

찌푸리고 있던 미간이 무력하게 풀어져 있는 표정……. 이딜로스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안색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다음으로 이딜로스의 손에서 펜이 툭 떨어졌다. 그 눈빛에서 묻어나는 충격에 나는 진땀을 흘렸다.

‘그, 그렇게 못 볼 꼴이었나……?’

얼마간 굳어 있던 이딜로스가 곧 미간을 찌푸렸다. 지극한 혐오가 내비치는 시선이 내게로 향했다. 나는 깜짝 놀라 방패막인 안셀에게로 달려갔다.

‘서, 설마 이제 와서 마멜라 몰래 날 내쫓아 버리고 그러지는 않겠지.’

이딜로스의 눈빛이 저걸 진짜 어떻게 처리해야 하지, 싶은 눈빛이라 나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아무리 이딜로스한테 예쁨받고 싶은 처지라지만 그가 내게 위협적이지 않다는 건 결코 아니었다. 사실 나를 내쫓으려면 언제든 내쫓을 수 있는 인간이 이딜로스이지 않은가.

‘오, 오늘은 이만 돌아가야겠네……!’

뭐든지 적당히 치고 빠질 줄도 알아야 하는 법.

늘 저돌적으로 굴면서도 이딜로스의 심기가 나빠 보일 때면 슬쩍 꼬리를 빼 왔기에 나는 오늘도 모른 척 꽁무니를 뺐다.

‘미안, 내일 다시 찾아올게……. 못된 심보 좀 가라앉히고 있어!’

* * *

나는 이딜로스가 낮에 기겁해 마지않던 하품을 크게 내뱉고는 기지개를 켰다.

‘깜빡 졸았나 봐.’

시계의 시침이 한창 저녁 시간대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오래 잠들 생각은 없었는데 봄의 나긋함에 휩쓸리기라도 한 모양이다.

나는 깔고 있던 물고기 인형을 내치고 쿠션 위에서 느긋하게 내려왔다. 주변을 둘러보자 소파에 빼꼼히 나와 있는 마멜라의 조그만 머리가 보였다.

다가가 그녀의 발목에 이마를 문지르자 마멜라가 책을 내렸다.

“아릴, 깼구나.”

“아옹!”

나는 마멜라가 쓰다듬어 주기를 바라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봤다. 그런데 마멜라는 내 바람과 달리 책을 다시 들어 올리며 말했다.

“잠시만, 이것만 마저 보고 놀아 줄게.”

곧이어 내가 옆에 있다는 것도 잊고 책에 집중하는 마멜라를 보자 어안이 벙벙해졌다.

책은 눈으로 보는 거고 날 만져 주는 건 손으로 하는 건데. 아무래도 마멜라가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마멜라의 발목에 머리를 문질렀다. 한 손이면 되니 한번 해 보라는 의미였는데 마멜라는 나를 흘긋 바라보더니 조금 귀찮다는 듯이 발을 뒤로 물렀다.

“지금 중요한 장면이니까 잠시만 기다려 봐.”

내게로 잠시 향했던 마멜라의 시선이 다시 책으로 옮겨 갔다.

‘저 못된 책이 나한테서 마멜라를 빼앗아 갔어…….’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 마멜라를 올려다보다가 꼬리로 그녀의 다리를 찰싹 치고는 돌아섰다.

이상한 책한테 정신이 팔려선 나와 놀아 줄 생각도 없는 마멜라에게 굳이 매달려 가며 놀아 달라고 보챌 생각도 없었다.

난 혼자서도 의젓하게 잘 노는 멋진 고양이니까.

‘오랜만에 탐험 대장 놀이나 하자.’

나는 씩씩하게 마멜라의 방에서 나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은 위층을 탐험해 보겠어.’

위층에선 늘 이딜로스의 집무실에만 들렀기 때문에 가 보지 않은 곳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탐험할 거리도 넘쳐나서 언젠가 찾아오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있던 중이었다.

나는 계단을 폴짝폴짝 오르며 지금쯤 집무실에 있을 이딜로스를 떠올렸다.

‘이딜로스에게는 아까 미운털이 살짝 박힌 것 같으니까 집무실만 피하자. 오늘은 더 이상 눈에 띄면 안 돼.’

아무리 나라도 계속 심기를 건드리면 후폭풍을 감당하기 힘들 거란 것 정도는 알았다.

고작 하품 한 번 한 걸로 꼬리를 빼야 한다는 게 우습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딜로스가 나를 보는 것만으로 진저리를 칠 정도로 싫어하니까.

나는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이딜로스의 냄새는 어김없이 집무실로 향하는 길로 이어져 있었다.

‘온종일 일만 하다니, 하여간 무서운 인간이라니까.’

집무실을 흘겨보곤 지나치는 순간이었다. 반사적으로 코를 벌름거린 나는 멈칫했다.

분명 집무실을 지나쳤는데…….

이상함을 느끼곤 집무실의 문 앞으로 돌아가 냄새를 맡았다. 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냄새가 집무실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니잖아.’

그럼 이 냄새는 어디로 이어지는 거란 말인가. 밖을 나갔다기엔 냄새가 이곳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의문스러움을 참지 못하고 냄새를 쫓아갔다. 머지않아 도달한 냄새의 종착지는 어떤 문 앞이었다.

나는 의심스럽게 눈을 흘겼다.

‘여긴 뭐지?’

바닥에 코를 박고 킁킁대어 보니 이딜로스의 냄새가 이 문 안으로 이어져 있는 건 확실했다.

‘이상하네, 이딜로스는 늘 집무실에만 있는 인간인데. 아까도 집무실에 있었잖아.’

설마 내가 계속 찾아와서 자리를 옮기기라도 한 건가?

나는 미심쩍게 문을 바라보다가 폴짝 뛰어 문고리를 잡아 내렸다.

아무래도 궁금하니까,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몰래 들어갔다가 조용히 확인만 하고 나오는 거다.

문이 철컥 소리를 내며 스르르 열렸다.

안쪽에서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확인한 나는 벌어진 문틈 사이로 머리를 밀어 넣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엄청 어둡네.’

보이는 창문마다 암막 커튼이 쳐진 방 안은 낮임에도 야심한 밤처럼 캄캄했다.

나는 금세 어둠에 적응한 시야로 주변을 둘러봤다.

마멜라의 방처럼 테이블과 소파가 있고, 커다란 침대가 있었다. 가구의 색들은 대부분 무채색이라 산뜻한 마멜라의 방과는 달리 어딘가 생기가 없었다.

그럼에도 이곳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건 잔잔하게 들리는 깊은 숨소리와 방을 메운 기분 좋은 냄새 덕분일까.

나는 숨죽인 채 두리번대다가 이딜로스의 기척이 느껴지는 방 한가운데의 침대를 바라봤다.

‘……설마 이딜로스가 자는 건가?’

안셀이 잠 좀 자라고 등을 떠밀기라도 한 모양인데.

그간 이딜로스의 관찰에 매진한 나는 그가 자발적으로 일할 시간을 줄이고 수면을 취할 인간이 아니라는 걸 일찌감치 파악하고 있었다.

세상 신기한 이딜로스의 침대를 바라보다가 걸음을 틀었다.

‘이제 그만 가 보자.’

이곳이 뭐 하는 데인지 확인만 하자는 목적을 달성했으니 더 이상 이곳엔 볼일이 없었다. 괜히 여기 있다가 이딜로스가 깨어서 불똥이라도 튀면 곤란했다.

오소소 돋는 소름에 진저리를 치곤 서둘러 앞발을 떼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레 뒤편에서 들린 소리가 발을 붙잡았다.

나는 반사적으로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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