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지나가던 시녀들이 복도에 덩그러니 서 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저마다 ‘꺅’ 소리를 내며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 탓에 길이 막힌 나는 제대로 떼지도 못한 한 걸음을 도로 멈출 수밖에 없었다.
“아옹…….”
나는 갑자기 몰려든 인간들을 경계했다. 그러자 나와 눈높이를 맞춰 무릎을 굽힌 시녀들이 말했다.
“아기 고양아, 어디 가니?”
“아옹.”
이딜로스한테 가려던 길인데…….
나는 시녀들을 경계하다 말고 코를 벌름거렸다. 그러곤 눈을 번뜩였다.
이 인간들, 내가 좋아하는 고기 간식을 가지고 있다. 틀림없어!
“세상에, 엄청 작아! 어쩜 털 보송보송한 것 좀 봐.”
“귀여워라. 여기서 고양이를 보는 날이 오다니!”
나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천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자 시녀들이 서로 어쩔 줄 몰라 하며 난리를 피웠다.
이곳의 사용인들은 내게 관심이 많았다.
저택에 내 존재가 공공연히 드러난 지도 보름째.
그동안 그들은 내게 거리낌 없이 다가왔다. 처음엔 그들이 마냥 무서워서 하악질 하던 나도 이젠 서서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 배운 인간들이야. 한 번 내쳤더니 다들 간식을 들고 오잖아.’
허구한 날 이상한 잡동사니나 챙겨 오던 안셀보다 머리가 네 배는 더 좋은 인간들이었다.
“아옹!”
나는 해맑게 울며 바로 앞에 있던 시녀의 다리를 꼬리로 감싸 머리로 문질렀다.
시녀가 기절할 것처럼 좋아라 하더니 곧바로 속주머니에서 고기 간식을 꺼냈다.
주변의 다른 인간들이 부러움을 토했다.
“베로니, 부러워……!”
“나 앞으로 다리는 안 씻을 거야. 말리지 마.”
입에 들어온 고기 간식을 순식간에 해치운 나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그루밍했다. 인간에게 조금 치댔다고 털이 금세 엉망이 되었다. 이딜로스를 만나러 갈 건데 멀끔하게 가야지.
“그거 알아? 아가씨 말로는 똑똑하기도 엄청 똑똑하대.”
“정말? 그럼 이런 것도 되나……? 야옹아, 손!”
나는 시녀 한 명이 수줍게 내민 손바닥을 바라보다가 자그만 앞발을 척 올렸다. 그루밍하느라 바쁘지만 간식은 참을 수 없다.
거기다 손은 뭐 껌 아닌가. 안셀의 말을 빌리자면 난 한 발로 물구나무도 설 수 있는걸.
내가 단번에 재주를 성공하자 시녀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네?
“그럼 이건? 엎드려!”
“헉, 한 번에 알아들었어.”
“돌아!”
“어머. 정말 똑똑하네. 우리 말도 다 알아듣는 거 아니야?”
그들이 시킨 걸 하나하나 해내던 나는 무심코 고개까지 끄덕일 뻔했다.
아차 싶었다. 아무리 내가 똑똑한 걸 과시해서 애교 부리는 거라지만, 내가 사람 말까지 알아듣는 건 좀…… 무섭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번엔 다른 시녀가 부스럭거리며 천으로 감싼 말린 고기를 꺼냈다. 나는 하던 걸 멈추고 초롱초롱 간식을 바라봤다.
“안셀 님 말대로야. 간식을 엄청 좋아하나 봐.”
“아옹!”
“자. 맛있게 먹어.”
인간들에게서 흡족할 정도로 간식을 뜯어낸 나는 다시금 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루밍을 마칠 때까지 나를 구경하던 시녀들은 내가 떠나려 하자 저쪽으로 가 보라며 눈치껏 이딜로스가 있는 곳으로 나를 안내했다.
‘이 인간들은 그저 해 본 말일 텐데 내가 알아듣고 진짜로 이딜로스를 찾아갈 거란 걸 알면 깜짝 놀라겠지.’
나는 시녀들이 알려 준 대로 계단을 올라 이딜로스에게로 향했다. 냄새의 종착지는 이딜로스의 집무실이 아닌, 복도 한복판이었다.
멀리서 보이는 이딜로스의 모습에 나는 심호흡하고 달려갔다. 운 좋게 그의 옆에는 내 방패막인 안셀도 있었다.
‘잘됐다, 잘못돼도 안셀이 나 대신 내던져지겠네.’
안셀이야 뭐, 창밖에 던져져도 내가 물어오면 되니 상관없었다.
“아옹.”
걸어가면서까지 서류철을 넘기며 안셀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던 이딜로스의 걸음이 뚝 멈췄다.
불과 다섯 걸음을 사이에 두고 이딜로스와 시선이 마주쳤다.
나는 해맑게 울었다.
“아옹!”
“이 녀석,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전하와는 아직 친하지 않을 테니 틀림없이 날 찾으러 온 것이겠구나.”
안셀이 만면에 기대감을 띠곤 설레발쳤다. 나를 당장에 쓰다듬고 싶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너 말고, 난 이딜로스를 보러 온 거야.’
그런데 정작 반응을 보여야 할 이딜로스의 얼굴은 굳어 가기만 했다.
정색도 이렇게나 싸늘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표정을 굳힌 그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아옹?”
“자자, 아릴. 이리로 오렴. 하하, 전하도 조금만 부드러운 태도를 보이시면 저처럼 아릴에게 사랑받을 수 있…….”
나는 온갖 헛소리를 내뱉으면서 쪼그려 앉은 안셀을 지나쳐 이딜로스의 발치로 달려갔다. 안셀이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아릴, 그쪽이 아니라 이쪽이란다…….”
“아옹.”
내 눈높이로 올려다보기엔 무척 거대한 이딜로스를 바라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보통은 이렇게 다가오면 키를 낮춰 주는데 어째 이 인간은 꿈쩍도 안 하네…….
‘조금만 더 애교를 부려 볼까? 마침 피로도 많이 쌓인 것 같아 보이는데 은근슬쩍 피로까지 몰아내 주면 나에 대한 인식이 더 좋아질 거야.’
나는 다가가 이딜로스의 발목을 붙잡을 생각으로 앞발을 뻗었다. 기습으로 내 기운을 밀어 넣을 생각이었는데 그러기도 전에 그의 발목이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저, 전하! 조심 좀 해 주십시오. 아릴이 치이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안셀은 내 옆을 아슬하게 지나쳐 간 이딜로스를 보곤 기겁했다.
어느새 나와 세 걸음은 떨어진 이딜로스가 돌아봤다.
나는 그의 눈빛에 놀라 굳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
핏발이 선 살벌한 눈에, 눈썹까지 찌푸린 그 표정은 경멸이라는 말 이외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적어도 지금은 그 시선이 내가 아닌 안셀에게 향했기에 다행이라고 할지. 하지만 이딜로스가 진정으로 저런 표정을 보이고 싶은 건 나인 것이 분명했다.
주눅 들기도 잠시 이딜로스가 그대로 걸어가기 시작하자 나는 서둘러 그를 뒤쫓아갔다.
그러나 일부러 나를 떨어트리기 위함인지, 내 짧은 다리로는 이딜로스의 빠른 걸음을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서서히 뒤처지자 이딜로스를 따라가던 안셀이 나를 흘긋 보곤 말했다.
“전하. 조금만 천천히 가 주십시오……!”
“발이 느리면 따라오지를 말지 그러나.”
잔뜩 날이 선 목소리에 안셀이 흠칫하는 것이 보였다.
안셀은 나를 미안한 눈초리로 쳐다보더니 곧 멀어지는 이딜로스를 따라 사라졌다.
결국 이딜로스를 놓치고 만 나는 허망하게 걸음을 멈췄다.
뒤늦게 이딜로스가 한 말에 대한 서러움이 밀려왔다.
‘그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냐니…….’
나는 고개를 푹 떨궜다.
이딜로스는 바보인 게 분명했다.
당연히 상관이 있지. 난 마멜라가 키우는 고양이고 마멜라의 가족이고, 그러니 자신과도 가족이 될 사이잖아…….
어디 그뿐이야? 난 마멜라의 사랑을 한가득 받고 있는, 마멜라가 소중히 하는 고양이라고. 나를 잘못 건드리면 마멜라에게도 미움을 받게 될 텐데.
그럴 텐데…… 그런 건 신경도 쓰이지 않을 만큼 내가 싫은 건가?
‘……짐승이라는 이유로?’
나는 이딜로스가 사라진 자리를 노려봤다. 억울하고 분해서 표정이 절로 못나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분명 난 이딜로스가 싫어하는 평범한 짐승들과는 다를 거다. 내가 그러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 거니까.
‘이딜로스는 반드시 나를 좋아하게 될 거야.’
내가 꼭 그렇게 만들고 말 거야.
* * *
승부욕에 불을 지핀 후로 나는 지지리 이딜로스를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이곳에 내 정체가 밝혀진 후로 수많은 인간을 봐 왔지만 그들 중에 귀여운 걸 싫어하는 인간은 단언컨대 없었다.
그러니 우선 내 애교로 이딜로스의 철옹성 같은 마음을 함락시키겠어.
“아옹!”
해맑게 울며 졸졸 따라가면 분명 귀여워 보이겠지.
“아옹?”
나를 내치려고 할 때 고개를 갸웃거리며 무구한 표정을 지을 때도 분명 귀여워 보일 거야.
“아웅!”
놀아 달라며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기면 이건 정말 당해 내기 힘들겠지!
아니나 다를까 반응이 있었다.
“아, 귀여워라! 정말 천사 같지 않습니까, 전하?”
……안셀에게만.
나는 내 눈앞에서 귀엽다며 호들갑을 떠는 인간을 바라봤다.
‘너 말고, 이딜로스!’
고개를 돌려 눈을 최대한 초롱초롱 뜨곤 이딜로스를 올려다봤다. 왜 이딜로스한테서는 반응이 없는 거지? 대체 왜?
날 봐 봐, 너희 인간들은 내 맹한 얼굴이 귀엽다며 좋아하잖아!
하지만 이딜로스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내가 졸졸 쫓아가면 도저히 붙잡기 힘든 속도로 달아나기 일쑤고,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라도 매정하게 고개를 돌렸다.
거기다 옷자락을 물고 잡아당기려고 하면.
“안셀.”
“아, 예…….”
지금처럼 아주 험악한 표정으로 안셀을 불러 나를 떨어트려 놨다.
내가 안셀에게 붙잡혀 바둥거리는 새에 이딜로스는 어느새 나와 다섯 걸음이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
이딜로스는 냉랭한 눈초리로 나를 바라보더니 성가시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안셀, 내가 마멜라에게 고양이 좀 잘 데리고 있으라 전하라 했을 텐데.”
“전 분명 전하의 말씀을 전해 드렸습니다.”
안셀이 억울하다는 듯 눈꼬리를 내렸다.
비록 효과는 없는 듯했으나 안셀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다.
이틀 전인가, 이딜로스에게 접근하려다 붙잡힌 나를 마멜라에게 데려다주면서 안셀이 말을 전하지 않았던가.
마멜라가 괜찮다며 웃어넘긴 게 조금 문제가 되었을 뿐.
“확실한 건가?”
“예, 그렇다니까요. 그러지 말고 차라리 전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가씨께 좀 더 진정성 있게 전해질 것입니다.”
안셀은 제법 정중하게 말했으나 고개를 들어보니 날 시키지 말고 네가 좀 해 보라는 폭탄 넘기기식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이딜로스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다.”
“왜입니까?”
이딜로스는 복잡한 눈으로 시선을 살짝 굴리더니 곧 한숨을 내쉬었다. 그다지 대답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고양이나 내보내.”
이딜로스는 집무실의 의자에 기대앉으며 손을 내저었다. 날벌레를 쫓아내는 듯한 무신경한 손짓에 나는 또다시 마음이 상했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내일도, 모레도, 아주 질리다 못해 내가 없으면 허전해질 정도로 쫓아다니자고 다시금 마음먹었다.
그렇게 또다시 일주일이 흘렀을 때.
마침내 내 노력이 효과를 발했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